아름다운 여름 - 포켓북 한국소설 베스트
고은주 지음 / 일송포켓북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여름>

 

예술의 꿈을 접고 돈벌이에 매진하는 아버지와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의 어머니를 둔 주인공 경은은 두 분의 소망을 절충하여 지방 소도시에서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는 문학을 하려 했으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였고, 뭐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준에게 끌린 후 지지부진한 연애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작가 지망생이 옛 연인 연희를 생각나게 한다며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의 양태는 스토커의 그것이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허투루 듣지 못하는 것은 주인공 스스로가 그의 이야기에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 그리고 마루야마 겐지의 대담 등을 인용하며 그녀가 작가가 될 숙명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평온한 삶을 지향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들여다보길 거부하던 그녀에게 그의 집착은 한편으로는 부담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태와 무기력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경은은 구설에 휘말리게 되고 풍문을 들은 그의 집착은 조울적인 양태를 띠게 된다. 그리고 그의 누나로부터 그가 자신에게 쓴 편지 형식의 수기를 유품이라며 건내받은 경은은 준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 아나운서를 그만 둔다.

 

제2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작가 자신이 실제로 진주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하였고, 그만 둔 뒤에 작가로 데뷔하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나와, 그 이미지에 도취되어 상대편의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는 청취자 스토커 이야기 이다. 스토커의 모습에서 점점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며 자신의 삶 역시 스토커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경은이 지금까지의 허상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한편 동료 아나운서인 유화, 미영, 그리고 수림의 양태를 통해 자신의 어정쩡한 모습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유화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구설과 질시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미영은 전문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애를 쓰며 결혼 후에도 일을 하려 하고, 수림은 젊은 나이를 무기로 통통 튀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인공 경은은 자신이 그 어느 편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임을 알게 된다.

 

작품 중 마루야마 겐지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인상 깊어 축약하여 적어 둔다.

 

...문학이란 혼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혼의 문제를 다룬다 함은 외로움이 전제 조건입니다. 혼이란 깊은 우물이나 구멍 같은 것으로 성격적으로 파탄이 난 사람들이 그 구멍을 들여다 봅니다. 문제는 그 구멍의 어느 정도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인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려간 채 거기에 머물러버리면 자살과 다양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구멍은 매력적이며 내려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올라오는 것은 예술가들의 일 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재능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는 그 구멍에 매력을 느끼고 내려가 보고자 모험하는 재능, 또 한 가지는 그 구멍에서 무언가를 획득하여 올라와서 세상에 보여주는 재능. 즉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으면서도 그 성격을 컨트롤하는 또 다른 나의 자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리>

 

세 군데의 대학에 합격했지만 집안이 기울어 대학 등록이 막연한 주인공 유리는 K 프로덕션의 사장에게 몸을 맡기는 한편 학원에서 만난 삼수생과도 별 의미 없는 관계를 갖는다. K 프로덕션 사장은 첨단 기계가 곧 자신의 기술을 돋보이게 해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으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유리가 진정 좋아하는 동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였지만 동현은 유리와 헤어지자는 의사표시를 했고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는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한편 친구 진아는 장래가 유망한 법대생과 허우대가 멀쩡하고 돈이 많은 브래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그리고 K 프로덕션 사장이 성행위 비디오를 찍자는 말에 응한 유리는 스너프 필름을 찍으려던 사장에 의해 살해 당한다.

 

세기말 암울한 분위기와 경제 위기 등에 맞물려 쾌락 이외의 다른 관계를 찾지 못한 젊은이의 위기감을 표현한 것 같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정련된 느낌이 떨어진다. 습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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