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2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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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오랜만에 아벨서점에 갔다가 온전한 외양으로 꽂혀 있길래 이천원을 주고 사왔다. '정한이선배로부터'라는 여자글씨가 화이트로 지워져 있었다. 95년 중판 발행본인 이 책을 내 나이 또래의 정한이라는 사람이 여자 후배에게 선물하고, 10여년이 흘러 그 관계의 끈은 끊어졌는지... 헌책방에까지 흘러들어, 결국은 내 손에 이르게 되었다. 

 

이외수의 <들개>의 초판 발행은 89년이다. 89년이라면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가 극한까지 갔던 때이다. 이러한 극한의 부조리 상황에서, 이외수는 사회에 대한 얘기는 접어둔 채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현실사회의 모든 제약을 의지로 극복하고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여 예술과 예술가가 몰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른, 한마디로 뼈를 깎는 고통이 담긴 예술만이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들개>의 주인공 남자는 청량음료의 광고를 그리다가, 진정한 예술을 하기 위해 회사를 나오고, 외부와 단절한채 일년간 그림만 그리다가 그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의도한바는 아니지만 이외수의 이러한 예술관은 독재자의 정치관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을 보면 엘리트주의와 테러리즘의 유사성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대중을 믿지 못하고 대리주의에 빠져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그런 대중들과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서로 통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흡사하다. 정치는 정치를 가장 잘할수 있는자가 해야하므로, 민주주의는 '바보들의 합창'인 것이다.

이외수의 예술관 역시 이러한 사상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예술가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 자체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럴 각오가 있지 않은 일반 대중은 예술을 하더라도 '가짜' 예술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대중들과 호흡하는 예술이 아닌, 하늘 위에 둥실 떠오른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래서인지 <들개>는 지루하다. 예술을 위해 칩거한 화가와,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차폐의 길을 택한 여자 주인공의 얘기이기 때문에, 주로 둘 사이의 의식의 흐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왜 여자주인공은 끝끝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정답은 바로 칩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20대 초반의 여성이 글을 쓰는데 있어 '부딪혀 깨어지는 것' 과 '스스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일까. 글을 쓰겠다고 산으로 들어가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 글이 써지는 것일까. 그리고 설령 글이 씌어진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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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더린 2012-04-07 05:2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다 만 소설,,지루한 건 참겠는데 유치하건 못 참을수없었다. 요즘시대의 글빨로는 도저히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요샌 물만난 고기처럼 설익은 멘토 역활을 하는데 토나올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