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떠오른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의 특징은 미국문화를 바탕으로 하되, 그 외의 문화에 대해서는 보편성을 획득한 것만을 취한다는 점이다.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를 2000년대 후반인 지금 보아도 시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일본적인 것을 버리고 미국적인 것을 취했다는 점과, 미시적 사회현상에 대한 외면에 있을 것이다.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양복, 중국옷 등을 입고,(기모노를 입는 경우는 없다) 가공의 세계와 가공의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등장하는 자동차, 집, 소품 하나도 당시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미국에서도 이미 고전으로 인정받았을 법한 모델들을 차용한다. 이런 점들이 토리야마 아키라 만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화에 따지고 들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는 '만화가' 이며,  그가 그려내는 마을과 사회는 우리가 이상향이라 부를 그런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닥터 슬럼프를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게임 제작에만 몰두하는 그가 펜을 다시 들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 무국적이며 미시적 현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잠깐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 전공투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외도를 범한 외에, 그는 사회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이상을 위해서 고민할 지언정, 혹은 세계와의 부조화 속에서 괴롤워할 지언정, 쪼잔하게 생활고로 고민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트럭운전사 조차도 그런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본다. 순전히 자아에 대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고, 독서라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요새 말로 뉴요커 스타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독서가 끝난 후 현실을 둘러보면, 독자는 세계와 자아의 부조화를 형이상학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먹고사는 현실에 고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임을.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1016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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