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틱10호에는 <누가예방접종을 가로막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는 예방접종으로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홍 역 등 수많은 전염병을 박멸하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지난 십 년 동안 사라졌던 질병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백일해와 홍역의 재등장이 골칫거리다. 2014년 캘리포니아에는 백일해 환자가 거의 1만 명이나 발생했는데, 이는 1947년 이후 가장 많은 발생 건수다. 입원 환자중 200명 이상은 태어난 지 채 4개월이 되지 않 은 영아다, 2014년 12월, 캘리포니아 남부 디즈니랜드에서 발생한 홍역은 캘리포니아를 넘어서 미국 전체를 휩쓸었다. 전염력이 강한 홍역 바이러스는 심각한 뇌 질환, 경련, 귀나 흉부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한 경우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 질병은 예방접종률이 낮아지면서 집단면역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캘리포니아뿐 만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처럼 예방접종 거부율 이 상승하면서 어린이에게 질병이 발생하는 빈도도 증가했으며, 종종 어린이에게 심각한 장애나 치명적인 결과를 남기기도 했다. 디즈니랜드 홍역 사태를 분석한 MIT와 보스턴 소아병원 과학자들 은 홍역에 노출됐던 집단의 예방접종률이 50~86%까지 떨어진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는 집단면역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95~99%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13쪽)


우리나라에서도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반응이었지만, 최근들어서는 부모들을 중심으로 안아키 모임에 대해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들을 중심으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상당하고, 잠잠하던 부모들이 주정부에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사는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로 문제를 풀어간다. 정부에 의한 예방접종 강제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반대 논쟁의 장이 마련되었다. 예방접종으로 인한 부작용, 몇 몇 제약회사들에 대한 백신 독점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논쟁을 민주주의라는 틀에서 볼 수 있을까?


예방접종과 자폐증의 상관관계는 몇 십년 째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특정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던지 하는 문제는 사실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다. 발병율이 백신 때문인지 백신과 상관없이 주사라는 접종형태 때문인지가 밝혀지지 않았고, 통계라는 것이 예방접종을 받은 이들중에 자폐증 발병율만을 따지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이들중에서의 자폐증 발병율은 통계적으로 없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이들에 대한 통계정보가 상대적으로 아주작기 때문에) 


또한 제약회사의 독과점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제약회사의 연구개발에 들어간 비용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많은 예방접종이 국가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이 이슈는 적은 편이다. 그래서 차라리 예방접종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리 및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준이 그저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라면 캘리포니아 예방접종 논쟁은 확실히 민주주의의 기준을 충 족한다. 하지만 여기에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 혹은 최소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지 않은 시민이라는 부가적인 충족요건을 덧붙이면 캘리포니아 사태는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다소 벗어나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예방접종의 위험성에 대한 거짓 정보의 전파, 과학적 증거의 거부, 극단적인 양분화 현상이 폭력적인 위협으로 번지는 상황은 신중함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의도와는 어긋난다. (16쪽)


게다가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예방접종에 의한 집단면역에 무임승차하는 것이고, 알레르니나 희귀질환으로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해당 전염병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남의 생명을 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적 방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집단면역이 깨질 때 전염병이 확산된다. 집단면역은 면역소외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기도 하다. 집단면역율이 99%이고, 해당집단이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99명은 면역을 가지고 있고, 1명은 면역이 없다. 이 한명은 희귀질환으로 예방접종을 할 수 없거나, 주사 알레르기 혹은 백신의 특정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고 인해 예방접종을 할 수 없는 이다. 이때 다른 99명이 예방접종으로 면역을 형성해 이 1명에게 해당 전염병이 전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집단면역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예방접종 거부자들은 이런 집단면역체계를 해친다.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자신들의 자식 뿐 아니라 다른 이유로 예방접종을 할 수 없는 이들의 자녀들을 심각한 위험에 노출시킨다. 


완벽한 것은 없다. 예방접종 또한 완벽할 수 없다. 그렇지만 백신이 지금의 인류가 유아사망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데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팩트다. 예방접종에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부작용 보다는 사회전체의 안전망 확보에 기여가 더 크다. 그렇다면 예방접종을 부정하기 보다는 예방접종 부작용을 줄이는데 힘을 쏟는게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내 가족의 예방접종으로 예방접종에서 약자들에게도 사회적 안전망의 테두리를 쳐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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