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qualia 서재)</title><link>http://blog.aladin.co.kr/qualia</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마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마음은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2006년 12월 16일 토요일 아침 08시 26분</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6 May 2012 02:56: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qualia</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4181175457784.jpg</url><link>http://blog.aladin.co.kr/qualia</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qualia</description></image><item><author>qualia</author><category>번역과 비판</category><title>자기 표절</title><link>http://blog.aladin.co.kr/qualia/5582407</link><pubDate>Mon, 23 Apr 2012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qualia/5582407</guid><description><![CDATA[<BR>아랫글은 제가 “뿌와쨔쨔” 님의 블로그 글 「미국 학교에서 논문 표절하면 어떻게 될까?」(http://puwazaza.com/314)에&nbsp;댓글로 올렸던 글입니다(04월 21일 저녁때쯤). 제 블로그에도 옮겨와 기록해두기로 합니다. 원래의 댓글에 아주 약간의 첨삭만 가했습니다. 즉&nbsp;“자기 표절”임을 미리&nbsp;밝혀둡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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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우리나라 교수님들 정말 문제 많습니다. 문대성 씨가 표절 · 대필 논문으로 석 · 박사까지 하고 교수까지 된 것은 한국 교수님들의 부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증명해주는 사건 그 자체입니다. 일개 개인 문대성 씨 선에서 그치는 문제가 전혀 아니죠. <BR><BR>
문대성 논문 표절 논란이 처음으로 불거진 때는 4 · 11 총선 훨씬 이전이었죠. 그때 이미 벌써, 논문을 한 편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즉 교수라는 직함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대성 씨의 논문은 100% 이상 표절 혹은 대필 논문으로 판정내릴 수 있는 수준임이 확실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즉 학문적 양심과 엄격함이 (더도 덜도 말고 딱) 상식적 수준만큼이라도 작동하는 사회라면 즉각 표절/대필 판정나야 했고, 이어서 즉각 문대성 씨의 사퇴도 일사천리로 뒤따랐어야 했던 그런 적나라한 수준이었습니다. <BR><BR>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절대로 그런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란 것입니다. 관련 있는 동아대학교나 국민대학교에서는 미적미적대면서 웬만하면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었죠. 공범자처럼 같이 썩어 있는 대학 사회, 교수 사회이니 당연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었죠. (비리와 부패로 만연한 한국의 대학 사회, 교수 사회는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형적으로 노출하는 행동 양태가 있습니다. 이번 문대성 표절 사태에도 이들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의 불의하고 의뭉스런 행동 양태는 그 무슨 전형적인 시나리오처럼 판에 박은 전개 양상을 보여주고 있죠. 즉 자신들의 카르텔에 균열을 가하는 치명적 비리의 증거가 은폐되거나 폭로되는 수위와 강도에 따라, 과연 동업자 처벌에 의연한 척 나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태추이를 지켜봐가면서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건 은폐쪽으로 슬슬 묻어갈 것인가 궁리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들이 미적미적대다가 문대성 논문에 표절 판정을 뒤늦게 내린 것은 사그러들 줄 알았던 비판 여론이 사그러들지 않고 용케도 계속 일정 강도를 유지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만약 여론이 정반대로 유야무야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면 공식적인 문대성 논문 표절 판정은 없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의 불의한 행동 양태에 관해서 언젠가 신랄한 비판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BR><BR>
한국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에서 표절 문제는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작심하고 한국 대학/교수 사회의 “표절밭”을 갈아나간다면 표절한 논문과 저서들이 고구마 줄기에 알고구마가 줄줄이 달려나오듯&nbsp;수없이 밝혀져 나올 것입니다. 석 · 박사 학위 논문뿐만 아니라 각종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도 검토해보면 금방 표절 논문으로 판정나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런데도 한국은 문제가 되는 때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표절에 관한 한 한국은 양심 마비의 중증 상태입니다. 이런 양심 마비 증세가 치유되리라는 희망은 현재 거의 없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더욱 더 곪아 터지고, 더욱 더 부패하고, 더욱 더 구조화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뿐입니다. <BR><BR>
예컨대,&nbsp;《한국○○어문학회》의 공식 학술지에 발표 · 게재된 한 논문을 읽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최신 소설 장르에 관한 급관심이 일어서 검색을 통해 입수하게 된 관련 논문이 바로 《한국○○어문학회》의 학회지에 실린 논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너 페이지를 읽지 못해 전혀 학술지 논문답지 못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논문은 제 판단에 따르면 몇 편의 외국 논문을 베껴서 짜깁기한 표절 논문임이 분명했습니다. 외국 논문을 엉터리로 오역해서 갖다 붙이는 과정에서 표절의 꼬리를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표절 혐의를 제쳐놓고 보더라도 도저히&nbsp;《한국○○어문학회》 공식 학술지에 실릴 수가 없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었습니다.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이라면 일차적으로 동료 심사(peer reviews)를 거칠 것이고 편집진의 최종 심사도 거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정식 절차를 그 논문이 거쳤다면, 아예 초장부터 게재 논문 후보도 될 수 없었을 뿐더러 표절 혐의에 대한 정식 문제 제기에 이어 한국○○어문학회 측의 조사가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문제는 제기조차 되지 않았던 듯하고, 너무나도 우스꽝스럽게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 지원금까지 받아가면서 당당히 학회지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논문은 총체적 부실 · 부패의 집약체 그 자체였습니다. 그 논문의 필자는 당시 ○남권의 한 국립대 ○어○문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는데요. 그 논문 수준 자체만 가지고 판단하면, 도저히 대학 교수의 자질/자격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류의 표절과 표절 교수가 비일비재합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거의 없습니다. 거의 구제불능입니다. 이처럼 문대성의 표절 사건은 한국 대학 사회, 교수 사회에 만연한 총체적 부패가 그 빙산의 일각을 일시적으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BR><BR>
앞으로 문대성 표절 사건도 점점 그 파장이 잦아들 것이고, 한국의 대학 사회와 교수 사회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시 평화로운 모습으로 재빨리 표정을 바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카르텔은 다시 순조롭게 정상 가동하고, 화기애애한 동업자 의식도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표절이 뭐가 그리 문제가 됩니까. 석사 · 박사는 물론이고 교수도 돈 있으면 되는 겁니다. 돈 앞에 만인 평등, 얼마나 좋습니까. <BR><BR>2012/04/21 19:49&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qualia</author><category>번역과 비판</category><title>EBS의 도킨스 관련 2011년 수능 지문 번역 비판과 수정</title><link>http://blog.aladin.co.kr/qualia/5542440</link><pubDate>Mon, 02 Apr 2012 2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qualia/55424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17616&TPaperId=554244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1/56/coveroff/89547176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17608&TPaperId=554244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1/56/coveroff/89547176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22849&TPaperId=554244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75/34/coveroff/895472284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아랫글은 원래 2012년 04월 01일에 이덕하 선생의 《진화심리학》 카페(http://cafe.daum.net/Psychoanalyse)에 올렸던 글입니다. 즉 그곳 회원이신 “날아라삐약” 님께서 「EBS의 도킨스 관련 2011년 수능지문에 대해 번역검토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부탁글을 먼저 올리셨는데요. 제가 그 글을 보고 답글로 올렸던 것입니다. “날아라삐약” 님에 따르면, 교육방송(EBS) 측의 교재인 『EBS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 2012』에 나오는 영문의 제시(혹은 모범?) 번역문에 상당한 오역이 있는 듯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래의 단 한 문단만 검토한 격인데요. 제 번역 교정/비판 경험에 비춰볼 때, 번역이 아래와 같은 수준이라면, EBS 외국어 교재의 전반적 번역 수준에&nbsp;문제가&nbsp;적지 않을 듯합니다. 이곳에 찾아오시는 누리꾼&nbsp;분들께서 간략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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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 『EBS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 2012』 (2012. 01. 20).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516쪽, 7,500원] 
▷ 『EBS 겨울방학특강 수능길잡이 영어독해 유형편 - 2012』 (2011.11. 04).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158쪽, 3,500원] 
▷ 『EBS 겨울방학특강 수능길잡이 영어독해 구문편 - 2012』 (2011. 11. 04).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엮고 펴냄. [158쪽 3,800원]&nbsp;<BR>&nbsp;<BR>=======================================================================================<BR><BR>아래에서 교육방송(EBS) 측의 번역문을 비판해보겠습니다. 먼저 “날아라삐약” 님께서 올려주신 해당 원문과 번역문을 인용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강조와 밑줄은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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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이 시행된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 42번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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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립니다.<BR>EBS에서 어느 정도로 엄밀하게 번역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BR>심심풀이로 문제도 풀어보시고요^^&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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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Richard Dawkins and John Krebs argued that although in some circumstances it might be appropriate to describe animal signals as transferring information, in many other, perhaps most, cases there would be such a conflict of interest between signaller and receiver that it is more accurate to describe the signaller as attempting to ‘manipulate’ the receiver rather than just inform it. For example, an angler fish that dangles a worm-like bit of skin in front of a small fish and catches it because the smaller fish snaps at the ‘worm’ can certainly be said to have carried out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 In this case, if information has been transferred, it is most definitely false.&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dangle: 매달다 <BR>&nbsp;
① Are Smaller Fishes Smarter? <BR>② Talking Animals: Fact or Myth? <BR>③ Cooperation in the Animal World <BR>④ Manipulation: Tricking the Signaller <BR>⑤ Animal Messages: Not What They Seem 
<BR>[EBS의 공식적인 해석]<BR>어떤 상황에서는 동물이 보내는 신호들을 정보 전달로 설명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다른 많은 경우,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호를 보내는 동물과 신호를 받는 동물 사이의 이해가 너무도 상반 되어서, 단지 신호를 받는 동물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물이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Richard Dawkins와 John Krebs는 주장했다. 예를 들면, 벌레 같은 피부조각을 작은 물고기 앞에 달아두고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벌레(같은 피부조각)'를 덥썩 물기 때문에 그 것(더 작은 물고기)을 잡는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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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교육방송(EBS) 측의 위&nbsp;번역문은 모두 3 문장으로 돼 있는데요.&nbsp;첫째 문장은 그럭저럭 괜찮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호를 보내는 동물이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으로〉 하는 부분은 〈the signaller as attempting to ‘manipulate’ the receiver〉 부분을 번역한 것인데요,&nbsp;직역투라 자연스런 우리말답지 못합니다. “신호를 받는 동물을 조정하다”와 같은 표현은 우리말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붕어를 조정하다”, “쥐를 조정하다”, “반달곰을 조정하다”, “원주민을 조정하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활용해보면 얼마나 어색하고 그 뉘앙스가 크게 엇나가는지 알 수 있죠. 반면에 “계량기를 조정하다” “텔레비전 안테나를 조정하다” 같은 경우에는 말이 되죠. 이런 두 가지 상반되는 사례에 비춰볼 때 “조정하다”라는 번역어는 그 의미와 쓰임새가 살아 있는 생물체한테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적절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따라서 여기에서는 ‘manipulate’를 신호를 받는 동물을 “속이다”라고 옮겨야&nbsp; 원문의 본래 의미와 문맥에 맞고, 또 우리말다운 표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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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문장과 셋째 문장에는 모두 결정적인 오역들이 있습니다. 또한 전혀 우리말답지 않은 뻑뻑한 번역투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둘째 문장은 비문에 가까운 아주 조악한 문장입니다. 먼저 둘째 문장을 봅시다. [강조와 밑줄은 인용자]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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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벌레 같은 피부조각을 작은 물고기 앞에 달아두고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벌레(같은 피부조각)'를 덥썩 물기 때문에 그 것(더 작은 물고기)을 잡는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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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번역문에서 밑줄 친 부분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는 엄밀히 따질 때 오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위 번역문만 봐서는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어떤 것보다 더 작은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할&nbsp;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앞뒤의 논리적 연결이 도저히&nbsp;순조롭게 되지 않습니다.&nbsp;때문에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뒤가&nbsp;켕기는 느낌에 묶여&nbsp;제자리를 맴맴돌게 됩니다. 조악한 번역서를 머리 싸매고 읽을 때 숱하게&nbsp;겪게 되는 경험이죠. 즉, 문제의 부분은 번역문의 문장 구조상&nbsp;“작은 물고기보다 더 작은 물고기”라는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이런&nbsp;독해는 내용 전개상&nbsp;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역이 아닌가 의심을 품으면서 맴맴돌게 된다는 것이죠.&nbsp;역시나 원문을 찾아보면, 위 번역문과는 전혀 달리,&nbsp;분명히 “아귀(angler fish)보다 작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나옵니다.&nbsp;따라서 위 번역문은 번역도 잘못하고 문장 구성도 완전히 잘못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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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뒤에 밑줄 친 부분 〈아귀는 확실히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이는 것을 수행했다고 확실히 일컬어 질 수 있다〉도 어눌하고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의 전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 공부에 막 입문한 초심자들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오류 사례랄 수 있습니다. 원문의 의미에 맞게 자연스럽고 매끄럽고 간결하게 고치면 〈아귀는 그 먹이를 성공적으로 속였다고&nbsp;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즉, “~ can certainly be said to have carried out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를 영어식 수동태/피동태에 꿰맞춰 부자연스런 수동문/피동문으로 번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EBS 측의 번역문 형식은 우리말 문장 기본 형식에 존재하지 않는 형식입니다. 저런 억지 끼워맞춤식 번역투 문장은 우리말을 조악하게 만들고 해치는 독소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들이 글을 쓸 때 주의해야 될 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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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셋째 문장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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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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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문장은 엄밀히 말해 오역입니다. “그것”은&nbsp;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데, 뭐가 완전히 잘못된 것인지 이 번역문만 보아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딱 읽어서 즉시 파악할 수 있어야 잘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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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 번역문을 따라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고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봅시다. 첫째, 정보가 잘못됐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분명 아귀한테 희생된 작은 물고기 측의 시각인 것이죠. 그러나 아귀 측 시각으로 볼 때 그 정보는 (속임수 정보지만) 아주 잘된/성공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한쪽에는 해롭고 다른 한쪽에는 이로운 정보인데, 그걸 종합해서 모두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죠. 따라서 첫째 가정은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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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정보 전달’ 자체가 잘못됐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위와 똑같이 작은 물고기 측과 아귀 측 시각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작은 물고기 측에서 보면 정보 전달이 잘못된 것이지만, 아귀 측에서 보면 정보 전달이 잘된 것이거든요. 즉 아귀는 자신이 의도한 정보 전달이 잘됐기/성공했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정보 전달’ 자체도 쌍방의 시각 차이에 따라 잘됨↔잘못됨 즉 성공↔실패로 이중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둘째 가정도 폐기되죠.&nbsp;따라서 이 경우에도 위 번역은 오역이라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 오역의 까닭은 원문의 의미를 잘못 독해한 채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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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예시된 원문에서는 마지막 문장이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에 담긴 정보는 수신자 측에게 이로운 진짜 정보가 있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해로운 거짓 정보, 속임수 정보, 미끼처럼 유인하는 가짜 정보도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런 의미를 전하고 있는 마지막 원문을 〈이러한 경우 만약 정보가 전해졌더라도 그것은 아주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번역하면,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EBS 측 번역자가 위 원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nbsp;부실하게 번역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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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In this case, if information has been transferred, it is most definitely false.”에서 “false”는 전달된 정보가 “거짓, 가짜, 허위, 속임수”였다는 것을 뜻하는 형용사이죠. 원번역자가 “잘못된”에도 그런 뜻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애매한 번역(즉 오역)은 독자가 원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혼란만 줍니다. 최선의 정확한 번역어가 따로 있는데 애매하고 불분명한 차선책을 택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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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위와 같은 비판을 종합해서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번역문은 더 다듬을 여지가 있긴 하겠지만, 위 원문의 본래 의미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부 용어들은 다른 동의어/유사어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문체도 간결체로 바꿀 수도 있고요(짧게 끊어 번역하기). 문장 구성도 좀 더 단순하게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위 원문에서 “describe”는 어떤 특별한 학술적/전문적 의미로 쓴 것이 아닙니다. 원문의 문맥에서는 그냥 “~로 해석하다”, “~로 설명하다”, “~로 기술하다”, “~로 여기다” 따위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전치사 “of”로 이루어진 명사구는 곧이곧대로 동일한 형식의&nbsp;명사구로 옮기는 것보다 적절히 풀어서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런 우리말 번역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위 원문에서 “a successful manipulation of its prey” 같은 예입니다. 영어 전치사 “of”는 소유격, 동격, 목적격 등 여러 용법으로 쓰이는데요. 앞의 사례는 목적격으로 쓰인 예죠. 이런 경우는 적절하게 풀어서 번역하면 자연스런 우리말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BR>번역안 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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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nbsp;어떤 상황에서는&nbsp;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기’ 위한 유인책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고 앞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 때 잽싸게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이들을 유인하는 속임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 정보는 분명히 가짜 정보인 것이다. 
<BR>번역안 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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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nbsp;어떤 경우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한테 단순히 어떤 정보를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려는’ 꾐수/계략/책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아 앞쪽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면&nbsp;재빨리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잇감들을 속여넘기는 꾐수/미끼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거짓 정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nbsp;
번역안 ⑶ 
&nbsp;
리차드 도킨스와 존 크렙스는 주장하기를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는&nbsp;어떤 상황에서는&nbsp;정보 전달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아마도 그 대부분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이해 관계가 전혀 상반되기 때문에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를 ‘속이기’ 위한 시도/계략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아귀는 벌레 모양의 피부 조각을 매달고 앞에 흔들어서 작은 물고기가 그것을 먹으려고 덤벼들 때 잽싸게 잡아먹는데, 이 경우 그 ‘벌레’는 아귀의 먹이들을 꾀어들이는 속임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정보가 전달됐다고 본다면, 그 정보는 분명히&nbsp;가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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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4. 02. 월요일. 밤 8시 29분. 흐림. 비 온 뒤끝이다. <BR>2012. 04. 03. 화요일. 밤 11시 12분. 아주 맑음. 위 원문 앞부분에 있는 “in some circumstances”를 처음에는 제 번역안 ⑴, ⑵, ⑶에 모두 “대부분의 경우”로 잘못 옮겨 놨었는데요. 뒤늦게 부주의한 제 잘못을 발견했습니다. 각각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어떤 상황에서는”으로 고쳐 넣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end clix_content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75/34/cover150/895472284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22849</link></image></item><item><author>qualia</author><category>Mind Books</category><title>Mind and Brain ― William R. Uttal</title><link>http://blog.aladin.co.kr/qualia/5495094</link><pubDate>Tue, 13 Mar 2012 15: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qualia/54950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26201596X&TPaperId=549509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63/11/coveroff/026201596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Mind and Brain <BR>A Critical Appraisal of Cognitive Neuroscience <BR>William R. U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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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MIT Press <BR>Pub Date: October 2011 <BR>Cloth: xxviii ＋ 497, 24 figures, 11 tables <BR>ISBN-10: 0-262-01596-X <BR>ISBN-13: 978-0-262-01596-7 <BR>Book Dimensions: 9 × 7 inches <BR>List Price: $55.00 / £37.95 / Amazon Price: $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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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of Contents and Sample Chapters <BR>http://mitpress.mit.edu/catalog/item/default.asp?ttype=2&amp;tid=12667&amp;mode=t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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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tive neuroscience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minds and our brains, most recently by drawing on brain imaging techniques to align neural mechanisms with psychological processes. In Mind and Brain, William Uttal offers a critical review of cognitive neuroscience, examining both its history and modern developments in the field. He pays particular attention to the role of brain imaging ― especially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 in studying the mind-brain relationship. He argues that, despite the explosive growth of this new mode of research, there has been more hyperbole than critical analysis of what experimental outcomes really mean. With Mind and Brain, Uttal attempts a synoptic synthesis of this substantial body of scientific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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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an introductory discussion, he turns to his main theme: what neuroscience and psychology have contributed to each other. He considers specific empirical findings in such fields as sensation, perception, emotion and affect, learning and memory, and consciousness. For each field, he considers psychological and behavioral concerns that can help guide the neuroscienctific discussion; work done before the advent of imaging systems; and what brain imaging has brought to recent research. Cognitive neuroscience, Uttal argues, is truly both cognitive and neuroscientific. Both approaches are necessary and neither is sufficient to make sense of the greatest scientific issue of all: how the brain makes th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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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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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R. Uttal is Professor Emeritus (Engineering) at Arizona State University and Professor Emeritus (Psychology) at the University of Michigan. He is the author of many books, including The New Phrenology: On the Localization of Cognitive Processes in the Brain (MIT Press, 2001) and Distributed Neural Systems: Beyond the New Phre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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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orsements <BR>“Mind and Brain presents the reader with a remarkably complete and clear understanding of cognitive neuroscience as a field. With the inclusion of topic-specific philosophy, history, and research, the chapters serve a particularly effective foundation function for those planning neuroscience research or preparing grant projects and/or research reports. This book should be required reading for both research neuroscientists and instructors whose goal is to provide the clearest and most current understanding of the neuro-, cognitive, and behavioral sciences. It is exceptional.” <BR>― Steven Schandler, Professor of Psychology and Director, Addiction Research and Cognitive Psychophysiology Laboratories, Chapman University <BR>&nbsp;<BR>&nbsp;<BR>SOURCE: <BR>http://mitpress.mit.edu/catalog/item/default.asp?ttype=2&amp;tid=1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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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13. 화요일. 낮 3시 30분. 맑음. 포근한 봄날씨다. 
지금까지&nbsp;인지과학, 뇌과학, 마음철학(심리철학), 형이상학, 교양과학, 인문학&nbsp;관련 원서들을 다수 입수해 놓았다. 다만, 그 원서들에 해당하는&nbsp;한국어&nbsp;번역판은 10여권밖에 입수하지 못했다. 앞으로 여름까지 해당하는 수십 여권의&nbsp;번역본들을 모두 입수한 다음, 원서와 번역서들을 비교해 번역 비판(비평)을 치밀하게 진행할 계획이다(서점에 가서 대충 살펴본 것만으로도 번역판들에 얼마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원서들을 마련하느라 매우 힘들었다.&nbsp;번역판들 또한&nbsp;늦어도 올&nbsp;여름까지는 모두 입수해야 할 것이다. 잘 될지 모르겠다. 워낙에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nbsp;물가도 올랐고, 돈 나갈 데는 많고, 방세 걱정도 해야 된다. 아무튼 일 많이 나가서 열심히 일해 드리고 많이 많이 벌어와야겠다. 화이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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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Hwighting, Fighting)”은 이제 거의 우리말로 굳어진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수열 선생님과 안정효 선생님의 관련 비판을 기본적으로는 인정하고 존중한다. “아자 아자”로 쓰자는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이제 “화이팅”은 영어도 아니고 콩글리쉬도 아니고, 어엿한 우리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화이팅”은 우리 한국인들이 만든 단어고, 한국적인 독특한 의미가 스며들어간 “화이팅” 넘치는&nbsp;단어다.&nbsp;“화이팅”은 이미 한국을 넘어서서 유명한 세계적인 단어가 됐다. 웬만한 한류 팬들 혹은 케이팝(K-Pop) 팬들은 “화이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한국 · 한국 팀 · 한국 아이돌들을 응원하거나 지지할 때 모두&nbsp;“화이팅”이라고&nbsp;외친다.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의미를 부여한 그&nbsp;&nbsp;“화이팅”을 세계인들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화이팅”을 내 국어사전에 어엿한 우리말의 하나로 올린다. 누가 뭐래도 “화이팅”은 우리말이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63/11/cover150/026201596x_1.jpg</url><link>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26201596X</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