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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그러니까 어떤 미소 같은 것 (공감7 댓글5 먼댓글0) 2010-04-08


라이언 빙햄은 해고 전문가다. 클라이언트의 의뢰에 따라 미국 전역을 누비며 해고를 통보하는 남자.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그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다. 1년 중 322일을 비행기에서 생활하며 43일을 집에서 보냈다는 사실에 끔찍해 하고, 가방에 넣을 수 없는 가족과 친구와 집 같은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라고 말하는, ‘내추럴 본’ 해고 전문가.

라이언이 만난 해고자들은 5단계 법칙을 따른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때론 라이언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엔 받아들일 것을 알고 있으니. 그는 단지 신의 뜻처럼,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전할 뿐이다. 그 소식이 어떤 사람을 절망에 빠뜨린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비즈니스가 아닌 것이다.

영화 ‘인 디 에어’는 바로 그런 해고 전문가의 이야기다. 쿨한듯 쉬크하지만,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면 ‘소시오패스’ 판정을 받게 될 남자의 이야기. ‘인 디 에어’가 매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조지 클루니 덕분이다. “사람들을 해고하는 게 직업인 외로운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 자체로 멋진 배우가 있어야 한다“는 라이트먼 감독의 말처럼,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라이언은 변한다. 자신만의 고치에 갇혀있던 그는, 영화가 끝날 무렵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연단을 뛰쳐나가고, 상처 입은 부하직원을 위해 추천장을 쓰며,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동생을 위해 목숨처럼 아끼던 비행 마일리지를 양보하는 훈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라이언에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충분한 걸까?

문제는 그가 자신의 직업을, 그 의미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모두 개인의 의지 너머에 존재하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영화는 교묘하게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 영화의 끝에서 라이언은 좀 더 멋진 인간이 되지만, 그는 여전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람을 정리하는 해고 전문가일 뿐이다. 인간적이고 멋진 해고 전문가. 마음을 열고 다가간 알렉스에게 배신당하는, 인간적이고 멋지고 상처 입은 해고 전문가.


월터 컨의 원작 소설 <업 인 디 에어>와 비교하면 영화의 전략은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 ‘인 디 에어’가 라이언 빙햄 개인의 소소한 성장기라면, 소설 <업 인 디 에어>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표류하는 한 인간의 견문록이다. 영화의 중심축인 알렉스와의 연애, 나탈리와의 관계가 소설에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별다른 로맨스도 갈등도 없이 그가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하고 욕망하는 것들을 모은 소설은, 우리사회의 모순을 그려낼 뿐이다. 썩 아름답지만은 않은 우리 삶의 진실을.

그것이 월터 컨과 제이슨 라이트먼이라는 개인의 차이인지,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인지, 출판업과 영화산업이라는 비즈니스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업 인 디 에어>가 근래 보기 힘든 멋진 소설이고, 조지 클루니의 미소는 변함없이 빛난다는 사실.

삶에 대한 성찰과 조지 클루니의 미소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는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겠지만.


* * *

여기까지가 지지난 주 무비위크 원고.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실은 미소 쪽이 더 끌...)

 



 
 
비로그인 2010-04-09 02:34   댓글달기 | URL
아아.. 이건 여성분들을 겨냥한 페이퍼. 저는 로맨스보다는 삶에 대한 성찰에 끌리네요.
저는 역시 안 될 거예요.

poptrash 2010-04-09 13:30   URL
최고는 조지 클루니가 하는 인생에 대한 성찰 아닐까요... 60억분의 1. 5,999,999,999은 안될 거에요.

(그나저나 요즘 조지 클루니 한 물 갔나요?)

다락방 2010-04-09 14:57   댓글달기 | URL
조지 클루니 한 물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락방 2010-04-12 09:01   URL
↑이건 보기 전에 단 댓글이고,

조지 클루니 한 물 안갔네요. 씨익 웃으면서 베라 파미가에게 "정말로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엄청나게 매력적이던걸요. 음, 어떤 남자들은 꽤 오래 빛나기도 하나봐요.

↑이건 보고 난 후에 다는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04-13 10:22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let me be the one who shines with you
in the morning we don't know what to do
two of a kind, we'll find a way...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