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끝낸 것은 월요일 아침 7시 32분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붙잡고 있던 원고. 후련한 마음으로 기지개 쭉 펴고 늦은 잠을 잤다, 고 했으면 세상 좋았겠지만 구보씨는 한 통의 엽서를 받은 터였다. 지난 주, 김정일 위원장 꿈을 꾼 다음날이었다. 21세기에 엽서라니, 구보씨는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엽서를 뒤집었다. 엽서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예비군 교육훈련 소집통지서'
2010년 3월 22일 09시부터 18시까지 향방기본훈련이 있으니 너님은 군복 차려 입고 ㄱㄱ 하라는 얘기였다. 니미... 엽서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두루마리 같은 것이 두르르 펼쳐졌다가 곧 사라졌다. 구보씨는 그것을 곧 알아보았다. 그것은, 오늘 하루 그가 치러야 할 일과였다. 그는 생각했다. "니미, 담배 존나 펴야겠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서른 살의 구보씨는 밤을 새고 예비군 훈련에 나가야 했던 것이다. 베란다 한 구석에 쳐박혀 있던 군복을 꺼내던 구보는 야상 점퍼 아래에서 지난 겨울 그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찾던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깔깔이었다. 새삼 지난 겨울의 추위를 떠올리며, 구보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무링은
군화 속에 있었다. 군복 바지의 아랫단을 잡아주는 국방색 끈. 고무링을 바지 위에 끼운 뒤 바지를 말아 넣기 위해 한참이나 낑낑대던 구보씨는,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무링 끼우는 방법을 까먹었단 사실을. 15 빼기 4는 11. 엄마의 남동생은 외삼촌. 20, 19, 18, 17, 16... 간단히 치매 테스트를 해본 그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손가락 운동을 몇 차례 했다. TV에서 본 치매 예방 운동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 출근 길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 고무링을 어떻게 끼우냐고 물어보는 구보씨는, "병신아"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충분히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참이나 잔소리를 한 후에야 친구는 "고무링을 발목에..."라고 이야기했고, 그제야 구보씨는 깨달았다. 그래, 바지에 끼우는 게 아니라 발목에 끼우는 거지. 발목에 끼운다음에 바지를 말아 넣는 거였어... 순식간에 고무링을 끼운 그는, 다시 손가락 운동을 한다.
사실 굳이 그날일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두 번은 무단으로 불참해도 자동 연기가 될 테니까. 하지만 구보씨는 나가기로 한다. 예비군 특수부대가 되어 김정일의 목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귀찮아하는 것조차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지치기에도 지친 탓이다.
마침내 집을 나서는 그의 한 손엔 말아쥔 모자가, 다른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무엇이든 넣을 수 있는 군복바지의 건빵 주머니엔 서문문고의 <헤밍웨이 단편집>이 들어 있었다. 훈련장에서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한 비상식량이라기에 그는, 너무나 구제불능이었다.
버스 정류장은
이미 수많은 예비군들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얼굴에 하나같이 '니미'라고 쓰여있는 예비군들은 저마다 침을 뱉거나, 담배를 피거나, 인상을 쓴 채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담배를 피고, 또 피는 동안에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니미, 니미, 니미, 니미. 예비군들의 얼굴은 험악해져만 갔다. 구글 어스에서 그날 아침 불광동을 검색했다면, 거대한 국방색의 '니미'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마침내 나타난 704번 버스. 하지만 이미 수백명의 예비군을 싣고 달리던 가련한 버스는, 정류장에 설 생각도 하지 못한채 예비군 교장을 향해 나아갔다. 기사 아저씨는 다만, 절레절레 손을 흔들 뿐이었다. 니미, 니미, 니미, 니미, 니미... 떠나가는 버스를 향해 저주파의 사념이 쏘아졌고, 니미, 니미, 니미, 니미, 니미... 떠나가는 버스 안에 끼어있던 예비군들은 그것을 다시 반사했다. 일촉즉발.
필요이상으로 자주 오던 703번 버스에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분이 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절묘한 타이밍. 폭도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있던 예비군들은, 군인의 본분으로 돌아가 다만 눈빛을 빛낼 뿐이었다. 저도 몰래 휘파람을 불 채비를 하던 구보는, 입술에 따끔함을 느끼고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밤을 샌 탓이었다. 자연스레 '니미'가 그의 얼굴에 다시 쓰여졌다.
수십 분이 흘렀고 두 대의 버스가 더 지나갔다. 예비군들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총이라도 있었다면, 나라 하나 쯤은 쉽사리 점령할 기세. 물론 그들이 향할 곳은 북한이 아니었겠지만...
결국
예비군 특유의 친화력으로 몇몇 아저씨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도착한 마포교장. 도착하자마자 PX에서 750원을 주고 장갑을 산 후 총을 받았다. 어느 할 일 없는 예비군 기자가 예비군훈련에 다녀 온 뒤 기사를 썼듯, 1965년 이후 생산이 끊긴, 칼빈 소총이었다. 잘 봐줘야 삼촌 뻘인 그 소총을 예비군들은 잘도 끌고 다녔다. 질질... 몸채의 절반이 나무인, 특히 개머리판이 나무인 소총이 그런 대접을 수십년간 받으며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구보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김없이 동창회가 되고 만다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구보씨는 고등학교 동창 몇 명을 만난다. "뭐하냐 요즘" "그냥 있지 뭐, 넌" "나도 그냥 있지 뭐" 담배 한 대의 정적이 지나고, "나 회사 그만두고 놀고 있어" "정말 언제?" "몇 달 되었어" "나도! 난 지난 달에!" 이렇게 비로소 말문이 트이기를 몇 차례. 그중 한 친구는 구보의 귀걸이를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야, 서른 살이다 우리"
서른 살의 구보씨는, 귀걸이를 한 채, 밤을 샌 월요일 아침부터, 군복에 고무링까지 차려 입고, 삼촌 뻘인 칼빈을 끌며, 주머니엔 헤밍웨이 단편집을 넣은 채, 750원짜리 장갑과 함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담배를 존나 피웠다. 점심을 먹고 나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대장은 눈은 오지만 날씨가 안좋은 건 아니라고 했다. 쌀쌀하지만 추운 건 아니라고 했다. 눈이 와도 담배는 피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칼빈은
단 한 번 쏴본 적이 있는 총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학 예비군 훈련을 받던 날, 구보씨는 후배들과 선배들과 함께 예비군 교장을 향했고, 9발을 쐈다. 그리고 확인한 표적지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모두 10개의 구멍이었다. 한 발은 아마도, 그의 사격에 감명 받은 신께서 뚫어주신 거라고, 구보씨는 믿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구보씨는 칼빈과 함께 다시 사선에 섰다. 우비를 입고, 장갑을 꼈지만 몸이 떨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달달달, 떨며 엎드려 쏴 자세를 한 구보씨는, 12번 표적지를 향해 다섯 발을 쏘기로 한다. 탄착군을 살펴 보고 자신에게 맞도록 클리크 조정을 하는 영점 사격. 눈이 온 탓에 사격장은 축축했고, 그가 엎드린 곳도 이미 질척질척한 상태였다. 어쨌거나 사격개시-
니미 빵 니미 빵 니미니미 빵빵 니미 빵 니미 니미 니미...
5발을 쏘고 확인한 표적지에는, 단 한 발의 총알도 닿지 못했다. 구보씨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표적지는 여전히 깨끗했다. 맞춰야 할 영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하 이것참. 구보씨는 어쩐지 겸손한 웃음을 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격에 들어가기 전 동대장은, 견착만 제대로 하고 호흡만 조절해서 쏘면 맞게 되어 있다고, 그게 아니라면 표적지가 안보이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고 했던 것이다. 구보씨의 시력은 각각 1.5 였다.
구보씨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표적지에 총알을 맞추지 못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K2는 물론, 동원훈련에서 쏘던 M16, 심지어 4년 전에 쐈던 칼빈도... 남은 다섯 발 중에선 한 발이 표적지에 맞았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3월 22일에 이렇게 내리는 눈을 본적이 있던가,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물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12사단 훈련소였다. 뭐, 그런 적도 있었지. 생각하는 구보씨. 지나갔다고 다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어느 순간이 지나면 상관 없게 되어버리곤 하니까. 그것이 바로 군대를 제대한 청년들이 등산을 싫어하고, 아저씨들은 좋아하는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예비군을 이런 날씨에 굴려도 되는 건가 궁금할 뿐이고... 아니, 구보씨는 궁금해 했고...
DMZ에서예비군훈련받을기세.jpg
하필 사격 마지막 조에 배정되어 있던 터라, 이미 눈을 맞을 대로 다 맞은 구보씨는 그제야 강당을 향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강당에서는 전항공대 총장이자 현 인하대 정외과 교수이고,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는 사람이 '한국전쟁의 진실'이란 제목의 강연을 진행중이었다. 한 마디로
부르스 커밍스 좆까라는 이야기였다.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이 합심해서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승만과 맥아더를 칭찬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택동을 끝까지 마오택동이라고 발음하던 그가 강연을 끝낼 무렵에는 모두 박수를 쳤다. 니미 짝 니미 짝 니미 짝 니미 짝 니미니미 짝짝. 한 마디로
알겠으니까 꺼지라는 이야기였다.
마침내
길었던 향방기본훈련은 끝났고, 구보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위병소에서 소대장이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고, 구보씨는 반신반의 했으나, 정말 관광버스가 있었던 것이다. 택시를 탈까 잠깐 망설이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상기했다. 예비군이자 무직자인 그는, 길게 망설이지 않고 버스를 탔다.
한산했던 버스는 구보씨가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 점점 예비군들로 가득 찼고, 호흡이 곤란해지기 직전에야 시동을 걸었다.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궂은 날씨에 예비군 훈련 받으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저희 버스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요금은 3천원이고, 상암동 성산동 홍대와 망원동 합정동에서 정차한다는 사실을 구보씨는 그때 알았다. 그가 내려야 할 곳은 응암동이었고, 택시비는 5천원이었다.
마지막까지 니미, 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으나 구보씨는 화내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다만 차창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버스는 구파발을 지나고 연신내를 돌아 그의 동네로 들어섰다. 그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버스가 그의 동네를 지나 월드컵경기장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귓속에서 울리는 writing to reach you 같은 노래들을 흥얼 거리며.
그래, 걷자
버스에서 내린 구보씨는 불현듯 생각했다. 조금 걸으면 월드컵경기장 역이었고, 그곳에서 집까진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구보씨는 그냥 걷기로 한다. 불광천을 따라 3023m를, 군화를 신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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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의 중간, 오랜만에 들른 헌책방에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던 구보씨는 마침내 몇 권의 책을 고른다. 집에 책은 이미 차고도 넘치지만, 앞으로는 책을 사지 않겠노라고 결심했지만, 택시비를 아끼지 않았냐고 스스로를 속이며. 이런 책들이었다.
고려원에서 나온 <탈냉전시대의 문학 1, 2> 스타니스랍스키의 <액터스북>과 경서원에서 나온 <메소드 연기> 그리고 하세민의 <브리티시 모던 록>이었다. 구보씨는 고려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모든 사그라진 것들이 그렇듯, 공룡의 화석을 바라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스타니슬랍스키와 그의 메소드 연기론을 구보씨는 사랑했다. 그것은 일종의, 생존전략. <브리티시 모던 록>은 그저 웃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무척이나 웃겼다.
니콜의 수의학 개론
마침내 집에 돌아온 구보씨는, 거실의 식탁에 앉아 니콜의 수의학 개론과 UFC 최단시간 경기 Best 30이란 프로그램을 본다. 군복도 벗지 않은 채. 둘다 즐겨보는 프로는 아니었지만, 군복을 벗지도 않고 그 위에 깔깔이까지 걸쳐 입은 채, 그는 그 프로그램을 뚫어지게 시청하고 있었다. 니콜이 정말 귀엽네, 복싱을 배워 볼까... 부질 없는 생각들을 하며.
문득 그는 오늘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책을 생각한다. 건빵바지에 들어있는 <헤밍웨이 단편집>을, 그 중 '킬리만자로의 눈'을, 그리고 그 마지막을.
"몰로!"
여자는 불렀다.
"몰로! 몰로!"
그리고 여자는
"해리! 해리!"
하고 불렀다. 이어서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해리! 아아, 해리!"
대답은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텐트 밖에서는 하이에나가 여자의 잠을 깨울 때와 똑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가슴이 울렁거려 그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전히 눈이 내리는 3월의 어느 월요일 저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