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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내게는 로봇공학의 3원칙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공감3 댓글2 먼댓글0)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2010-02-09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아시모프를 생각하면 어쩐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오른다. 아시모프의 수다를 감안하면 우디 알렌을 떠올리는 게 맞겠지만, 더티 하리 영감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 때문이겠다. 마이클 무어를 "총으로 쏴죽이겠다"고 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언젠가 우연히 접한 "과학소설의 정치성 : 작가들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통계적 연구"라는 에세이에 따르면 아시모프는 하드 SF를 선호하는 작가군 중 으뜸이었고, 이는 대체로 우파적 성향과 일치한다는 것.

우스운 좌우파 놀음을 계속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화 된 나로서는 우파 예술가를 상상하기가 꽤나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노인(정확히는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고인)은 꽤나 의아한 존재였던 것 같다. 내 고정관념과 달리, 그들은 너무나 훌륭한 우파 예술가였으니까. 어쩐지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시모프는 참 멋진 사람이라는 얘기다.

<Gold>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에서 우리가 우선 만날 수 있는 건 유쾌한 예술가 아시모프의 인간적인 면모다. 주로 <아시모프의 SF 매거진>을 위해 쓰여진 글들과 각종 앤설러지에 들어간 글들을 모아둔 1부 '과학소설론'과 2부 '과학소설 창작론'에서 무심한듯 소심한, SF 계의 큰형님 처럼 충고를 하기도 하고, 개구쟁이 아이처럼 장난을 치기도 하며  때론 대놓고 잘난척도 하지만 그게 결코 밉지만은 않은, '인간' 아시모프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신을 인터뷰한 한 신문기사를('플롯 감각이 있다'는 칭찬) 들어 그의 소설의 플롯이 엉망이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을 쏘아대고, 다시 그 기사의 말미에 있는 말을 들며(스타일이 나쁘다) 그것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인정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참고로 그 글의 끝맺음은 이렇다. "여러분은 뭐가 더 좋겠는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 아시모프인가, 아니면 패션의 첨병 아시모프인가? 경고해두지만, 둘 다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  

사실 번역서의 제목이 제목인 탓으로, 많은 사람들이 2부 '과학소설 창작론'을 기대하겠지만, 당연히도 '과학소설 창작의 A to Z' 같은 게 있을리 없다. 그런 건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아시모프 자신도, 그런 건 없으니 말해줄 수 없다고 하며 다만 작가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뿐이다. 물론 눈밝은 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대작가에게 배울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굳이 모른다고 해도 어쨌거나 재미있으니 상관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3부 'GOLD : 아시모프 최후의 소설들'에서는 아시모프의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그러나 그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15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아시모프의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 1~2부의 수다를 읽으며 당연히 품었을, "그래서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데?"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되겠다. 특히나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인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칼'과 '골드'가 각각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으니, 세심한 편집이라 할 만하다. (원서와는 달리 소설 부분을 맨 마지막으로 뺀 것도 좋은 선택이랄 수 있겠다)

아직은 척박한 우리나라의 SF계에서, 계속해서 좋은 책을 내고 있는 오멜라스 출판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이 책은 굳이 SF 팬이 아니더라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소설가에 대한 꿈을 꿔본 이라면 누구든 즐겁게 읽을만한 책이다. 일상에 치여 그 꿈을 잃어가는 이라면 더더욱.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칼'의 마지막을 옮겨 본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로봇공학의 3원칙이 내 발목을 붙들지나 않을까. 아니, 3원칙에는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원칙들은 나를 절대 구속할 수 없다. 내게는 로봇공학의 3원칙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 나의 행동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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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머지 한 편.
마지막 문장 남우세스럽지만, 일단은 인용이니까.

 
 
2010-02-10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02-12 01:57   URL
아, 근래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멋진 이야기 중 하나인 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