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었지만 빈둥대던 새벽. 시급한 일을 하기 싫어 비교적 덜 시급한 일을 반쯤 끝내고 나니, 비로소 할 마음이 생겨 결국 아침에 잠들고 말았다. 문득 정겨운 후배 녀석이 생각났는데, 신년 초에 전화를 걸어 와 "그런 일이 있으면 제발 남한테 듣게 하지 마!"라고 나를 윽박지르던 녀석이었다. 나는 나를 윽박지르는 남자를 좋아하므로, 물론 여자는 더 좋아하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남자였으므로,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를 윽박지르는 인간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으므로, 그 녀석을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언제나.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합정에 나갔고 두 친구를 만났고 갈비탕을 먹었고 책 선물을 받았고 커피를 마셨고 잡담을 나누었다. 책 이름은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한 친구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나는, 그러니까 남은 둘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녀석을 남겨두고 향한 곳은 또 다른 커피숍이었고, 아는 후배와 선배가, 그러니까 둘은 부부였는데, 운영하는 작은 커피숍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작년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이름은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속 한 구석으로는 후배를, 커피숍을 운영하지만 나를 윽박지르지는 않는 후배가 아닌 전화를 통해 나를 윽박지르던 정겹고 윽박지르는 후배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생각일까. 시간은 항상 빠르거나 늦고, 대개는 늦다. 그런데 늦이라는 글자는 이상하다. 무척 게으르고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니까 나다. 나는 어떤 시인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늦었다. 무엇에? 성애가 낀 창에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렸다. 이름 없는 고양이. 창밖으로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름을 지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일까. 문득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내 모든 일은 예정에 벗어나있지만 그 자체로 조화로웠다. 어떻게? 그리고 그 자리엔 후배가, 윽박지르는 후배가 더없이 다정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없이 조화롭게. 몇 잔의 술을 마셨고, 몇 잔의 술을 마셨고,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커피도. 이야기도. 같은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각각의 질서에 따라 차례로 흘러나왔다. 세 번째의 커피숍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제 알라딘에서 도착한 열네 권의 책이 나를 기다린다. 하나 같이 중고였다. 내가 펼쳐보지 않았는데도. 언제부터? 그리고 나는 책 이름을 밝히지는 않을 생각이다. 도무지 생각이 없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어쩌면 정말 그때의, 의, 의, 의, 의, 의 생각이리라.


나는 조금 모르겠다.



 
 
구차달 2012-01-12 02:30   댓글달기 | URL
그냥 구보씨가 생각나네요. 쉬세요. ^^

poptrash 2012-01-13 13:58   URL
그렇게 말씀하시니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의 구보 씨가 문득 부럽네요...

2012-01-13 09:2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이 글이 참 좋구나.

poptrash 2012-01-13 13:58   URL
이런 댓글도 좋은데요.

다락방 2012-01-13 13:23   댓글달기 | URL
책 이름을 밝혀주십시오.

poptrash 2012-01-13 14:02   URL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진 그럴 수 없습니다!

다락방 2012-01-13 15:05   URL
오늘 칼 가지고 갑니다.

poptrash 2012-01-13 17:12   URL
저는 책 싸들고 도망갑니다...

뽀숑 2012-01-13 16:1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보고 感 잡았.. 누피:)

poptrash 2012-01-13 17:12   URL
무슨 감을 얼마에 잡으셨습니까

김토끼 2012-01-16 14:26   댓글달기 | URL
ㅎㅎ 다락방vs 팝트레쉬 재미나요-
시 쓰시나요? 저도 시 썼는데/혹은 쓰다가 안쓰다가 하는데- 등단에 목 매다가 이제는 힘 탈려서 아아..못 하겠네요

poptrash 2012-01-16 14:33   URL
시는요 무슨 ㅎㅎ 참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날들이에요

뽀숑 2012-01-20 17:2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3억이면 되는 거지?

poptrash 2012-01-22 06:32   URL
3억이면 됩니다 물론...
 

새해 들어 처음 받은 책 선물은 <바틀비와 바틀비들>이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너무 노골적인 제목이라 어쩐지 읽기 싫어지기도 하는 그런 종류의 책이었는데, 그래서 사지 않고 빌려 볼 생각이었으나 이 책의 존재 자체를 처음으로 알려준 친구가 새해의 첫날에 선물해주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벌써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새해의 첫 책으로는 무척이나 적절했다는 기억이다.


두 번째로 받은 책 선물은 이승훈의 <해체시론>과 김상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이었다. 전자는 다시 나올 가능성이 없는 품절도서고, 후자는 제 값 주고 사기는 아까운, 이미 시기가 지나 버린 책이다(나는 언젠가부터 이렇게 계산적인 독자가 되었다). 사실 이 책들에는 조금의 사연이 있는데, 사연 없는 책은 세상엔 없다는 생각이므로 길게 쓰는 일은 피곤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이주 남짓 계속했더니 이 시간만 되면 머릿속이 혼곤하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 무렵에 더욱 배가 고프고, 담배를 끊으면 (적어도 며칠 동안은) 목이 더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생활은 나를 더 피곤하게 하는 모양이다.


다만 이 책이 누군가의 손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온라인)을 거쳐, 나의 장바구니에 잠시 동안 머물러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주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 아니 도대체 세상에 누가 이런 책을, 하필 이 시점에, 그것도 중고로 구입했을까 의문을 품고 있던 차에, 간단한 검색을 거쳐 이 책이 알라딘 중고서점(부산_오프라인)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 그날 나와의 약속을 미루고 부산에 내려간 누군가가 있어 그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함께 장바구니에서 사라진 <길리아드>도 그곳으로 갔다고 하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결국 술잔을 앞에 두고 책을 받아들게 된 나는 책 값을 물어는 보았으나, 그냥 감사한 마음만 주었다. 살다보면 종종 신세를 지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런 경우에 대비해 감사한 마음만은 항상 넉넉히 준비하는 편이다. 나는 그렇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그가 언젠가 내가 찾아 해맸던 어떤 '등'이 등장하는 정지용의 시를 찾아주었다는 것인데, 그 등의 정체는 '장명등'이었고, "혹시 프랑스가 들어간 제목에 장명등이 나오는 거 아냐?"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등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므로 당연히 그 시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조금 전에 검색을 해본 결과 장명등이 맞았고 그 시가 맞았다(따라서 나는 아직 이것에 대해 적절한 감사를 표하지 못했다). 여전히 장명등은 난생 처음, 물론 이제는 한 두어번쯤, 들어본 것 같은 등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기억력의 문제다. 그것은 이런 시였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 프랑스에 가자.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오오 패롤서방! 꿋 이브닝!」

 

「꿋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기씨는 이밤에도

경사 커-틴 밑에서 조시는 구료!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사실 처음 장명등이 나오는 부분까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에서 바로 이 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시기 모더니스트들의 이국 취향에는 어딘지 모를 향수가 배어있으므로, 나는 분명히 그것을 기억한다. 향수란 표현은 이상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가진 적이 없는 어떤 나라를, 항상 상상 속에서만, 어떤 이미지로, 그려 왔으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해체시론>이건 <해체론 시대의 철학>이건 학창시절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이라는 생각이지만, 지금 읽는 것에는 또 나름의 재미가 있다. 세상 모든 독서에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러니 독서는 끊기 힘든 악이다. 세상 모든 일 또한 나름의 재미가 있겠지만, 사실 이만큼의 재미가 있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고기를 먹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고, 농담을 따먹었는데도 그렇다.



 
 
구차달 2012-01-10 15:02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정지용 전집 '시'편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시 '카페 프란스' 였을 줄이야. 뒷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인데요?

저도 그런 경험 있어요, 대체 이 따위를 누가 사겠나 싶어 중고 올라 온 사실만을 확인하고 게으름 피우다가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더군요. ^^

poptrash 2012-01-11 00:54   URL
정지용 전집 1권도... 한때 제 장바구니에 [중고]라는 말머리를 달고 들어 있다가 어느새 사라진 책이라지요. 혹시 그 책이 구차달 님 서재로?

벌써 십년도 전에, 현대시론 수업에서 배웠던 시에요. 좋아했고, 몇 번쯤 들여다보았겠지만, 그 이후로는... 그래도 여전히 기억 속 어딘가에 단어의 찌꺼기로나마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죠.

구차달 2012-01-11 01:05   URL
아, 전 아닌 것 같아요. 한때 품절이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 풀렸거든요.

단어 조각의 형태로도 남아 있지 않다면 저 같은 인간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을 거에요. 기억력이 저렵해서 ^^

poptrash 2012-01-11 01:52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기억력도 만만치는 않거든요 ㅎㅎ
 

이 카테고리를 비워둔 지난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읽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섬을 삼킨 돌고래, 츠츠이 야스타카

-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 마이더스의 노예들, 잭 런던

- 아폴로의 눈, G.K. 체스터턴

- 더블, 박민규 중 몇 편

- 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중 몇 편

-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레이먼드 카버 하루키 역 중 몇 편

- 어떤 작위의 세계, 정영문 중 일부

- 꿈, 정영문 중 몇 편

- 달에 홀린 광대, 정영문 중 몇 편

-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다카하시 겐이치로


빌린 책은 없고, 반납 기한을 이미 넘긴 책들이 몇 권 있을 뿐이며, 누군가가 내놓은 절판도서를 알라딘 적립금으로 결제했지만, 그 책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나란 놈은 결국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놈팽이이라는,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 같은 사실이 며칠 간의 경험을 통해 명명백백 밝혀진 사정으로, 구태여 밀고 당길 것도 없이 책의 제목을 말하자면 윌리엄 사로얀의 <아빠, 미쳤군요>다. 윌리엄 사로얀은 알 뭐시기라는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다.


나열한 책들로 말하자면 대부분이 이미 읽은 책들이었고,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는 느낌인데, 무엇에 필사적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적어도 이번 한번 만은, 피차 좋을 것 없으므로, 나 자신의 말을 들을 작정이다. 이것은 감상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고, 아무 의미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이 글을 통해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으니 누구에게도 미안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오늘 하루도 놀고 앉아 있다 앉은뱅이가 되어 버린, 혹은 놀고 자빠지다 뒤통수까지 깨어 먹은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 그렇기도 한 모양이지만, 냉동실에서 오랜 시간을 숙성한 조기 두 마리를 구워 먹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렸으니, 할 만큼은 했다는 것이 가감없는 심정이다. 실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시에 끼인 작은 살점에도 나는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말년은 언젠가 그의 웹툰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화내지 마 미친놈아. 나도 심란해.


나 역시, 참하 꿈엔들 잊힐리 없는 마음으로, 정확히 같은 생각임을 밝히며 비인 하늘에 걸려 있는 차단---한 등불을 따라,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를 따라, 수심을 알지 못해 도무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 나비처럼, 혹은 지친 공주처럼, 깊은 잠속으로 하얗게 빠져들 예정이다(이것을 공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지용과 김수영과 윤동주와 김광균과 김기림과 백석과 박인환과 이상과 다시 김수영과 기형도가 불쑥 등장하는 그런 꿈, 꿈, 꿈 같은 것을 꿀 생각은 없다. 눈은 푹푹 나리지 않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어주지 않는 꿈이라면 아마도. 혹시라도 한잔의 술이 있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해서 안될 것은 없겠다. 비록 그것이 내용없는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아무려나. 우리는 더더구나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식어가는 지구 위에 밤낮 없이 따스하니 서로 껴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단은 표절인가? 도용인가? 무엇에 대한 모독? 아니면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인가? 글쎄.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하고,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지만, 절망은 끝까지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나는 이런 문장들을 이어가고야 만다. 그러니 잘 자거라. 짧았던 밤들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커튼을 치네. 가엾은 내 사랑을 너무나 사랑해서 TV도 껐어.)



 
 
후와 2011-12-08 05:26   댓글달기 | URL
윌리엄 사로얀은 저도 한때 좋아했는데요 ㅎㅎ <인간희극>을 읽었을 때였을 거예요 아마. 심란해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냥 저도 소리치렵니다. 나도 심란해!!!^^

poptrash 2011-12-08 05:38   URL
어쩌면 겨울잠을 잘 때가 다가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겨울잠은 잘 수 없으니, 심란한 마음을 안은 채, 짧은 잠이나마, 아니 부디 짧은 잠이기를 바라며, 저는 이만 엷은 조름에 겨운 노인네처럼 짚벼개를 돋아 고여야겠어요. 굿나잇 & 굿럭!

poptrash 2011-12-08 06:34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김광균의 와사등 말고, 정지용의 작품 중에서도 가스등이 등장하는 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 혹시 아시는 분?

구차달 2011-12-08 12:49   URL
http://www.jiyong.or.kr/html/jiyong/literatue/literatue_03_01.html 여기서 한번 찾아 보시면 되겠습니다.

poptrash 2011-12-08 13:17   URL
앗, 고맙습니다. 일단 제목들을 훑어 보는데... 음... 제 기억과는 다른 시들이네요 대부분이;

구차달 2011-12-08 12:51   댓글달기 | URL
`기교`조차 낳지 못하는 `절망` 때문에 저도 `심란`합니다. ^^

poptrash 2011-12-08 13:17   URL
자고 일어나도 심란함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네요 ㅎ

2011-12-14 21:40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5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5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찍 잘 생각이었다. 실제로 침대 머리 맡에 놓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긴 스탠드를 끄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읽던 책을 바닥에 놓인 스위치에 던지는 것으로 별 소득 없는, 그렇다고 새삼스럽지도 않은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으리라. 딱, OFF.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내가 던진 책은 어이없이 빗나갔고, 그 책의 제목은 <몰로이>였으며, 실은 그 전까지 읽고 있던 책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도착한 새 양장본을 던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원칙과 신념이라는 게 있다. 어쩐지 분한 마음에 읽고 있던 그 책을 다시 던질까 생각하다 결국 그만두고 게으른 손을 길게 뻗어 불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분함은 가시지 않았고, 결국 다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다. 책의 제목은 <가나>, 작가는 정용준이다. 절반 정도를 읽었을 뿐이지만 '떠떠떠, 떠'에서 받은 인상을 갱신하기엔 충분했다는 기억이다. 다른 많은 작품들을 두고 굳이 그 작품을 골라 상을 안겨 준 모 출판사의 선택에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이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것과 함께 오늘 내게 도착한 것은 이준규의 <삼척>과 송승환의 <클로로포름>과 이수명의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그리고 두 권의 소설이었다. 소설의 제목은 비밀이다. 언젠가 빌려 읽었던 책들이고, 그래서 굳이 살 필요는 없는 책들이라는 사실만 밝혀둔다. 중고책이었다. 마침 문학동네 겨울호도 와서 박민규의 연재소설과 박형서의 단편, 그리고 배명훈 특집을 읽었다. 박민규는 언제나처럼 즐거웠지만, 벌써 원고지 600매가 되었다는 그 소설을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나쁜 의미에서다), 일종의 변형된 소설가 소설이라 할 박형서의 단편은 무척 즐거웠지만, 배명훈 특집은 조금 이상했다는 생각이다. 작가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와 평론, 작가 자신의 자전소설로 구성된 특집에서, 에세이는 팬픽 같았고 평론은 무언가 필사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던 것이다. 소설도 내 마음에 쏙 들진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 나의 느낌은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굳이 따지지 않으련다. 아무려나. 나는 막다른 골목에 있고 내일 아침에도 여전한 그곳에서 눈을 뜰 예정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아침일까? 아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수철 2011-11-26 05:45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서량이 엄청나네요. pop 님.^^

근데 몰로이는 김현 번역인가요, 아니면 문지...?

poptrash 2011-11-26 05:48   URL
문지요. 김현 번역이 있다는 사실은 며칠 전에야 알았어요. 같이 읽으면 좋으련만, 구하기는 힘들겠죠?

아무 곳에도 닿지 않는 독서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구차달 2011-11-26 13:50   댓글달기 | URL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책을 펴게되고... 그러나 전 요즘 누우면 자네요. 인생을 잠으로 전소시켜 버리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불태우듯...

poptrash 2011-11-26 21:41   URL
잠, 참 좋아요. 저도 좋아해요. 다만 밤에는 못 자겠더라고요. 왜일까...

yamoo 2011-11-27 15:25   댓글달기 | URL
언급해주신 작품들은 전혀 몰루는 작품들이라 뭐라 말씀드릴 수 없고..
그저 이 글을 쓰신 시간대가 놀라울 뿐입니다! 새벽 5시22분..엄청 일찍 일어나신 건지, 아님 저때까지 잠을 안주무신건지...후자쪽으로 생각이 기웁니다만^^;;

poptrash 2011-11-27 21:29   URL
그래도 이 글 쓰고 바로 잠들었던 것 같아요 ㅎㅎ

후와 2011-11-27 16:01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신문에 정용준 작품집 발간 소식이 실렸더군요. 사진이 같이 실렸는데 미소년 같은 인상이어서 좀 놀랐습니다. 짬을 내서 책구경하러 서점에 들러봐야겠네요^^

poptrash 2011-11-27 21:29   URL
미소년이라니... 그건 좀 질투가... (하지만 책날개에 실린 사진만으로 봐선 모르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소설이었어요 ㅎㅎ
 

김종광의 <경찰서여, 안녕> 중에서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세 편의 소설을 읽다. 내가 그를 처음 읽은 것은 나 역시 경찰서에 있던 시절이고, 지금은 방에 앉아 있으므로 그때만큼 재밌지는 않았다는 감상이다. 사실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는데, 멋대로 기대한 건 나였으니 작가에게 따질 생각은 없다. 정용준의 소설집을 주문한 기념으로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그의 '떠떠떠, 떠'도 다시 읽었다. 언어에 대한 관심과 결국 연애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내 취향이라 하겠지만, 그것을 채우고 있는 상황은, 감정은, 그리고 작가의 시선은 별로 내 취향이 아니었고, 여전히 아니다. 앞으로도 아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조금 돈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홀어머니를 보며 자란 탓인지 대개의 경우, 술과 담배 등을  비롯한 몇 가지의 분야를 제외한다면, 나는 무척이나 쉽게 아까워하는 편인데, 다만 아깝다는 생각만은 아낌없이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다행인 것은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추측되는 어떤 유전적 성향으로, 아까워하는 마음이건 뭐건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나의 성격을 자랑할 생각은 아니다. 원고를 쓰기 위해 제임스 우드의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다시 읽었고, 벤야민의 짧은 글과 바르트의 역시 짧은 어떤 글을 잠시 뒤적였다. 그리고 그들의 글을 뒤적이건, 뭉개건, 깔고 앉아 쉼없이 노려보건, 내 이해의 폭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는 별로 커다랗진 않은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이런저런 독서의 와중에 나는 문득 방바닥이 이상하게 따듯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엉덩이가 따뜻하게 덥혀지는 것을 느꼈고, 그럼에도 나는 어떤 안온함에, 차라리 안도하는 기분을 느끼며 확인을 미루었지만, 결과적으로 확인한 보일러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저 홀로 작동하고 있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일러를 켠 모양이리라. 살겠다고, 살겠다고. 나는 정말로, 조금 살만하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기도 했던 것인데, 그건 분명 내 엉덩이의 의견이었다.

 
 
구차달 2011-11-25 13:42   댓글달기 | URL
기특한 엉덩이로군요. 제게 그 비슷한 녀석으로 니코틴에 중독된 '뇌'라는 녀석이 있습니다만... 제껀 별로 기특하진 않은 것 같네요. 오히려 그 반대이겠습니다. ㅋㅋ

poptrash 2011-11-25 19:04   URL
매일 의자나 방바닥에 앉아 있으니 그저 불쌍한 놈이지요 ㅎㅎ

소이진 2011-11-25 22:20   댓글달기 | URL
오, 연애소설이란 말이십니까... 떠떠떠, 떠 한번 읽어보고 싶은걸요.
어떤 내용인가요..?

poptrash 2011-11-25 23:24   URL
음, 일반적인 장르소설로서의 연애소설은 아니에요. 그냥 저는 남자랑 여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연애소설이라고 불러요 ㅎㅎ 말을 더듬는 남자와,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남녀가, 그러니까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이, 서로를 만나 아픔을 나누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