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 <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소설이 존재한다. 펼치는 순간 잠이 폭풍처럼 몰려오는 소설과 책장을 덮은 후에도 좀처럼 잠을 청할 수 없는 소설. 후자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너무 매혹적인 탓에 좀처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는 소설이 하나고 읽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소설이 다른 하나다.


전아리의 장편소설 <앤>은 심란한 종류다. 다소 난해한(?) 보라색의 표지만 그런 게 아니다. 그녀가 그리는 인물이 그렇고, 세계가 그러하며 무엇보다 그녀의 소설 자체가 그렇다. 실제로 어떤 의무감으로 책을 집었던 그 새벽 이후, 나는 한동안 불면에 시달려야만 했다.


소설은 다섯 명의 소년과 한 소녀를 둘러싼 어두운 비밀과 욕망, 집착과 배신을 그린다. 친구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 여자아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한 사소한 장난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홀로 죄를 뒤집어 쓴 친구는 감옥에 간다. 남은 이들은 비밀의 무게에 짓눌린 채 서로에게서 도망친다. 어른이 된 그들. 그리고 감옥에서 출소해 그들 앞에 나타난 친구. 서로 다른 것을 욕망하는 그들은 스스로의 어둠을 견디지 못한 채 결국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었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불편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심란함의 이유는 아니다. 좋은 작품은 무릇 불편한 법이고, 불편함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돌아보게 하는 법이니까. 물론 모든 불편한 작품이 좋은 작품은 아니다. 바로 그것이 <앤>이 나를 심란하게 하는 이유다.


<앤>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겠다는 욕망 하나로 쓰인 소설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진실도 , 장르소설의 쾌감도 없다. 자극적인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감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작가의 욕망과 철저하게 소비되는 인물들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그건 바로 ‘막장 드라마’다.



2. 5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1년 맨부커상 심사를 마친 후, 심사위원장 스텔라 리밍턴은 이렇게 말했다. “카펫에 흘린 피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씩씩거리며 자리를 뜬 사람도 없었다. 우리 모두 친구가 되었고, 결과에 만족했다.” 실제로 심사는 고작 31분 만에 만장일치로 이루어졌고,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수상자가 줄리언 반스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놀라운 건 이것이 반스의 첫 번째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사실뿐. 심사위원회에서 내세운 심사기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두 말 없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살만 루슈디, 이언 매큐언 등과 함께 ‘골든 제네레이션’ 작가로 불리는 반스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10과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등의 작품에서 선보인 현란한 지식과 형식실험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작가라는 수식을 얻었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찌질한’ 남자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집요한 시선과 뒤틀린 유머에 있다. 삼각관계에 놓인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구차한 속내를 거침없이 그려낸 <내 말 좀 들어봐>와 <사랑 그리고>가 그랬고, 부인의 과거에 대한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뇌내망상’적 모험을 그린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이 또한 그랬다. 맨부커상 수상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은 바로 그런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작가를 따라 소설의 주인공 역시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사랑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그러나 사랑할 능력은 갖지 못한 구제불능의 ‘찌질남’일 뿐이다. 대신 깊어진 건 작품의 깊이. 스스로를 왜곡하며 기만하던 남자의 기억이 치명적인 진실을 대면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인간존재, 나아가 인간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철학적이라고?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고, 그건 끝내주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3. 6월(예정), <헤밍웨이 전집>


어쩌면 당신은 헤밍웨이를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가련한 노인이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청새치 한 마리를 잡겠다고 죽도록 고생한 끝에 결국 앙상한 생선뼈만 가지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쓴 작가,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은 알록달록한 삽화가 그려진 ‘소년소녀 세계명작’의 한 권으로 그것을 읽었고, 독후감도 썼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사춘기를 맞은 당신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필요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그곳에 있었다. 이를테면 <상실의 시대>. “누구라도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대사를 통해 당신은 피츠제럴드라는 이름을 만난다. 때마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개봉하고 당신은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을 구입한다. 좋은 선택이다.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까지 꼼꼼히 훑어보는 타입이라면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을 것이다(둘은 절친한 친구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문화시민이 된 당신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노상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두르던 남자, 그게 바로 헤밍웨이다. 새삼스럽게 그의 이름을 검색한 당신은 그가 1961년 엽총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확실히 많은 걸 알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당신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후 50년이 지나면 저작권 보호가 풀린다는 사실, 그리고 바로 올해가 그 해라는 사실이다. 참 오래 걸렸다. 마침내 당신 앞에 ‘소년소녀 세계명작’의 껍질을 벗은 온전한 헤밍웨이가 놓이기까지. 그리고 이제 당신은 알았을 것이다. 한 번도 헤밍웨이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헤밍웨이가 너무 많다. 올해 출간된 헤밍웨이만 벌써 수십 종이다. 꼼꼼한 당신이라면 책을 펼치고 번역 문장을 일일이 비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예쁜 책이 언제나 읽기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꽂아 놓기는 더 좋은 법이다.



*


<보그 걸>이라는 패션지를 위해 쓰고 있는 5매짜리 원고. 첫번째 원고는 작품 선정에 나름 고심을 했지만(그리고 결과적으로 혹평을 하게 되었지만) 너무 '본격 비평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구석이? 아마도 5매짜리 박스 기사에서 문단을 나눈다는 게 너무 젠 체 하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절치부심한 두번째 원고에서는 작품 내적인 이야기보단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수상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주가 되었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들도 자제하지 않았고, 문단을 나누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무릇 자유기고가라면 갖추어야 할, 겸허한 자세다. 바로 오늘 아침에 넘긴 세번째 원고에서는 조금 더 커다란 도약을 감행한다. 재출간 열풍이 불고 있는 헤밍웨이에 대해 쓰기로 한 것. 네이버 백과사전의 작가 소개가 아닌 이상 5매 안에서 헤밍웨이에 대해 무슨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신간이 나온 것도 아니고, 어느 작품 하나에 대한 글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꼼수를 쓰게 되었는데 일단 하루키와 피츠제럴드와 우디 앨런 등의 이름으로 지면을 채우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내가 몇 달 동안 이 잡지를 관찰하며 나름대로 파악한 '보그체'라는 것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세간의 평가에 의하면 일단 그것은 '버캐별러리'의 차원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겠으나, 나의 단어 사전은 미들스쿨 2학년의 수준에서 퍼즈된 관계로 문장 구조의 차원에서 그 일을 해내야 했으니, 나는 시종일관 '당신'을 호명하며 멋대로 단정하는 문장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 그건 분명 보그체의 일종이다. 가장 인기 있는 종류는 아닐지 몰라도... 아무려나 나는 그렇게 했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그저 한글 파일을 열었을 뿐, 나머지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감시간이 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손가락을 움직인 것 뿐. 물론 문단을 나누지 않은 것만은 나의 선택이고 의지였다. 벌써부터 다음 달 원고를 걱정하는 나는 이토록 성실한 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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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으로는 글렌 체크의 'vogue boys and girls'가 좋겠다.








 
 
faai 2012-05-08 16:54   댓글달기 | URL
키득키득 보그체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걸요. 정말 성실한 필자이십니다!

poptrash 2012-05-09 02:04   URL
하지만 정작 담당자 님께서는 원래 쓰던 대로 쓰라며... 흑흑

이매지 2012-05-08 23:09   댓글달기 | URL
온갖 수식을 영단어의 나열로 채우는 것만 보그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도 그럴싸하네요.ㅎㅎ 5매면 짧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군요. :)

poptrash 2012-05-09 02:05   URL
6매라고 생각하고 썼다가 부랴부랴 줄였더니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많이 있네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저도 놀랐습니다. 문단을 바꾸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요.

브론테 2012-05-09 12:51   댓글달기 | URL
'보그체'란 단어에 완전 공감. 유치원부터 잡지와 함께 자라온 매거진키드, 동서양의 수많은 잡지를 섭렵해온 잡지홀릭자인 저는, 그 잡지 성격에 맞지 않은 칼럼/에세이들이 불쑥불쑥 나타날때마다 짜증나요 ㅜㅜ 바로 어제도, 모잡지 속에서 꽤 유명해지신 분이 쓰신 글이 홀로 동동 떠다니는 걸 보고 작가도 자신의 적절한 이미지 구현을 위한 자기관리가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 본인이 기고하신 잡지 성격을 (잡지측에서 제목만 던져주었던 것일지도) 제대로 파악 못하신 그 분이 좀 성의없게 보였달까요. 보그걸은 타겟계층이 분명하니까 편하실듯.

아, 그런데 위에 쓰신 댓글처럼 담당자께서 원래 쓰던 대로 쓰라고 하셨다면, 호혹시 poptrash님의 분석이 잘못된 것이....? '보그체'의 정체는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요? ㅎ

poptrash 2012-05-10 23:39   URL
그그럴지도요... 저는 음악잡지 sub와 영화잡지 kino - film2.0 - movieweek를 끝으로 잡지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지라... 5매 안에 이것저것 욱여 넣는다는 게 쉽지 않네요. 좀 더 공부가 필요합니다. ㅎㅎ

Jeanne_Hébuterne 2012-05-09 20:21   댓글달기 | URL
공맹보다 칼 라거펠트와 안나 윈투어의 시즌 투어에 관심 많은 독자 1인 여기 대령이오.
보그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든 언제든 저를 찾아주십시오. 보그는 5월이 가장 좋아요. 패션위크 스페셜 부클릿이 별도증정되거든요.(여기서부터, 보그체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줄리언 반즈는 홍상수보다 날카롭고 우디 알렌보다 수다스러워요.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제발 내 말 좀 들어봐' 에서 그가 말하는 남자의 뒤끝, 속좁음, 좋은 기억력의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보다도 완벽했습니다. 정반대의 의미로.

poptrash 2012-05-10 23:40   URL
정말 홍상수보다 날카롭고 우디 알렌보다 수다스럽죠. ㅎㅎ 어쩌면 그게 오늘날 소설이 영화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인 건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세상은 넓고 보그체의 고수는 많군요...

달사르 2012-05-09 21:16   댓글달기 | URL
6월 예정의 헤밍웨이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 팝님 덕분! ^^

from, 성실한 필자에 따르기 마련인 성실할 (예정인) 독자. 히힛.

poptrash 2012-05-10 23:42   URL
고맙습니다. 사실 말로만 성실한데... 오늘도 하루종일 놀다 이제서야... 흑흑

후와 2012-05-10 15:33   댓글달기 | URL
오! <보그>에도 글을 쓰시는군요. 전방위 저술가!ㅎㅎ 5매로 제한된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요. 멋집니다^^

poptrash 2012-05-10 23:44   URL
<보그>는 아니고, 조금 더 어린 분들을 타깃으로 하는 <보그걸>이에요. 근데 정말 5매 분량의 글쓰기는 어렵네요.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아빠 얼굴 그리다 보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 음음... 같은 느낌이랄까요. 전방위 저술가는 아니고, 그냥 온갖 잡스러운 걸 다 쓰는 그런 사람이죠. ㅎㅎ;

구차달 2012-05-14 20:17   댓글달기 | URL
뭘까요. 팝님이 오늘따라 (오늘따라라기 보다는, 평소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아니, 그러니까 이 말은 오늘 새롭게 발견하였다 하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의 의미를 갖습니다) 존나 멋있어 보입니다.

poptrash 2012-05-14 23:36   URL
매체의 특성을 나름대로 연구하는 비주류 자유기고가의 애환을 보신 게... 저는 존나 멋있어 보인다는 말을 존나 좋아해요. 언젠가 정말 보기만 해도 '존나'가 바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그 뒤에 뭐가 붙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yerin 2012-05-23 16:53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헤밍웨이...
댄디한 음악이 흐르는 쿠바의 시크한 바 구석에서 홀로 다이키리와 모히토를 즐겼다던 그 올드맨.
하루의 피로를 상큼하게 씻어줄 그런 모히토를 서브해줄 핸썸한 웨이터는 이제 레어아이템이 되었지. 혹 발견한다고 해도 말하고 싶지 않아. 셀럽과 팔로워들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와 머스트 해브 아이템들에 나는 지쳤거든. 오늘 저녁, 나는 헤밍웨이에게 다이키리를 내어주던 시크한 바텐더와 체의 스피릿을 이어받은 프리한 플라멩고 뮤직이 하모니를 이룬 나만의 패러다이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 훗, 동행이 필요하지 않냐고? 아니... 자칫 손이 베일 듯한 날카로운 나의 외로움과 차가운 아이스가 흘린 티어드랍이면 충분한걸...

***
죄송합니다;;; starla 에게서 기쁜 소식 듣고 축하하러 왔다가 보그체를 보고 업되어서는 그만;;; 사실 올리는 페이퍼들은 늘 잘 읽고 있어요. 잘 지내고, 일도 잘 되어가길 바랍니다. 언젠가 '다이키리' 한 잔 해요. 축하해요. ^^

poptrash 2012-05-24 02:45   URL
아 보그체의 고수가 여기 계셨군요 제가 괜한 허세를... 저 며칠 전에 꿈꿨는데 yerin 님이 나오셨어요. 꿈 내용은 비밀입니다... 라기 보단 너무 뻔해서 못 쓰겠어요. 축하해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조금 쪽팔리기도 하고... 스마트폰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미천한 중생은 이만 줄입니다. 다이키리 한 잔 꼭 사주세요!
 

그의 재능은 나비의 날개에 (꽃)가루로 뿌려진 무늬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나비만큼 그걸 의식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휩쓸려가고 약탈당했을 때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후, 그는 피해 입은 자기 날개와 무늬의 상태를 깨닫고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비상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단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몰두할 수 있었던 그 시절만을 돌이킬 수 있었을 뿐이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203쪽)

 

*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연이어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말년의 ‘파파 헤밍웨이’는 가진 것 없지만 열정만은 가득했던 자신의 ‘꼬꼬마’ 시절을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여기서 ‘겸허하다’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랫배에 힘을 준 채 독설을 내뱉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무릇 대가란 그런 법이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위대한 작가다운 훌륭한 솜씨로 그 일을 해낸다.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문학수업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1920년경 파리 시절을, 수많은 문우들과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을 곱씹어 한 권의 책으로 남긴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즐겁게 (곱)씹었다’고 해야겠지만.

 

1957년과 60년 사이에 쓰고 사후인 64년 출간된 [A Moveable Feast](번역본으로 불어를 중역한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과 2010년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한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있다)는 실제로 “자화자찬의 잔치이자 희생자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헤밍웨이의 독설에 나가떨어진 희생자들이 줄을 잇는” 책은 그가 ‘곱씹은’ 것이 비단 추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한때 그와 우정을 나누고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친구들은 결코 스텝을 멈추지 않는 노련한 복서와도 같은 헤밍웨이의 펜 앞에서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이쯤 되면 ‘A Chewable Feast(씹는 축제일)’라고 하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은 역시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추억이다. 화려한 ‘재즈 시대’의 대변인이자 재능 있는 젊은 작가로, 무엇보다 요란한 스캔들 메이커로 이름을 날리던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는 절친한 친구이자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무명 작가였던 헤밍웨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장편 데뷔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출간을 도운 사람이 그였고, 작품에 대한 조언과 ‘첨삭’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헤밍웨이가 문단에 자리 잡게 한 사람도 그였다. 나아가 헤밍웨이의 작업을, 헤밍웨이가 쌓게 될 작가로서의 경력을 자기 자신의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역시도.

 

피츠제럴드의 우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커다란 애정을 담아 스콧의 첫 인상을 묘사한다.

 

스콧은 잘생기고 귀염성 있는 얼굴로 소년을 닮은 남자였다. 그는 무척이나 심하게 곱슬거리는 금발이었고 넓은 이마와 열정적이고 친근감 있는 눈빛에, 긴 입술은 우아한 아일랜드인의 입이었으며, 그것은 아름다운 입을 가진 소녀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턱은 잘 빚어져 있었고, 그리고 멋진 귀와 아름답고 거의 우아하기까지 하면서도 흉터가 하나도 없는 코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멋진 얼굴을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아서, 거기다 피부색과 금발, 그리고 입까지 언급해야만 했다. 입은 스콧을 몰랐을 때도 그토록 자극적이었는데, 스콧을 알게 될수록 더욱 더 자극적이었다. (203쪽)

 

헤밍웨이의 재능은 사실 ‘장미물’에 있었던 걸까? 스콧 피츠제럴드가 들었다면 멋쩍게 웃으며 얼굴을 붉힐 법한 묘사. 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미 세상에 없었고, 헤밍웨이 또한 그런 뜻은 아니었으리라. ‘귀염성 있는 얼굴’, ‘심하게 곱슬거리는 금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입’은 피츠제럴드가 성숙하지 못한 남자임을 암시하고, ‘아름답고 거의 우아하기까지 하면서도 흉터가 하나도 없는 코’는 싸움 따윈 모르는 겁쟁이란 뜻이며, ‘자극적인 입’은 둘도 없는 수다쟁이라는 말이다. 또한 ‘우아한 아일랜드의 입’이라는 표현은 스콧의 외가 혈통을 암시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아일랜드에 대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편견을, 다시 말해 정열적이고 재기발랄한 동시에 자기 파괴적인 이미지를, 무엇보다 그의 음주벽을 환기시킨다. 섬세하고도 단정한 문장에 가려 쉬이 보이지 않지만, 헤밍웨이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뭐랄까… 계집애지. 계집애고, 계집애이며, 계집애 같고, 또…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그래, 계집애야. 술에 진탕 취해 노상 수다를 늘어놓는 그런 계집애.”

 

이런 헤밍웨이의 태도는 이어지는 문단에서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피츠제럴드의 이야기에는 귀를 거의 기울이지 않으며(“왜냐하면 그것은 연설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비만도와 그가 입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고급 양복을 관찰하던 헤밍웨이는 마침내 관찰을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이 술집의 의자에 앉았을 때 다리가 몹시 짧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걸 빼고, 나는 그때부터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을 알아볼 게 없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키 작은 자식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렇게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그가 정상적인 다리였다면 어쩌면 5센티미터는 더 키가 컸을 것이다.”

 

피츠제럴드에게 할애된 세 챕터를 채우고 있는 남은 문장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헤밍웨이는 넓은 아량과 속 깊은 우정으로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억하지만, 하나하나의 일화는 모두 피츠제럴드의 나약함과 괴팍함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가엾은 피츠제럴드’는 소심하고 나약한 동시에 건강염려증이 있고, 술꾼인 주제에 술은 약하지만 어쨌거나 계속 마시고, 마신 후에는 관심을 끌기 위해 헛소리를 늘어놓거나 쓰러지기 일쑤이며, 자신의 재능을 상업적인 단편들에 소진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착한 녀석이 틀림없고, 딱하게도 부인을 잘 못 만나 자신의 타고난 단점을 후천적으로 극복할 기회조차 놓쳐 버렸을 뿐이라는 식이다.

 

그 중 백미는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스콧의 ‘물건’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다. 어느 날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헤밍웨이는 친구에게 무언가 고민이 있음을 직감한다. 먹는 둥 마는 둥 안절부절못하는 피츠제럴드와 인내심을 갖고 친구가 먼저 말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려 깊은 헤밍웨이. 비즈니스 관계자와의 점심처럼 무미건조한 시간이 흐르고, 헤밍웨이가 후식으로 나온 체리파이와 마지막 포도주까지 해치운 후, 피츠제럴드는 마침내 속내를 털어놓는다.

 

“젤다(피츠제럴드의 부인)가 신체 구조상 나는 결코 그 어떤 여자도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고, 그리고 이것이 그녀를 근본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네. 그녀는 크기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네. 난 그녀가 그 얘기를 한 다음부터는 예전처럼 느낄 수가 없고, 정말로 그것이 어떤가 알고 싶어졌다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254쪽)

 

아, 이 가련한 친구! 입으로만 늘어놓는 값싼 위로에는 관심 없는 ‘진짜 남자’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를 화장실로 데려가 직접 두 눈으로 그의 ‘물건’을 확인한다. 그리고 친구를 안심시킨다.

 

“자넨 완전히 정상이야.” 내가 말한다. “자넨 문제없어. 자책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 자네가, 자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축소되어 보이는 것뿐이라네. 루브르에 가서 조각상들을 보게나.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거울 속의 자네 모습을 보게나.”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255쪽)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자세하게 나열되는 그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심한 피츠제럴드가 “어쩌면 그 조각상들은 일반 크기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결국 그는 ‘다리가 몹시 짧은(하지만 적어도 ‘물건’은 완전히 정상인)’ 친구를 몸소 루브르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조각상들의 하얗고 단단한 ‘물건’들 앞에서 사이즈를 가늠하며 바쁘게 눈을 돌리는 친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활동을 하지 않을 때의 크기가 문제되는 건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건 또한 세워졌을 때의 크기에 달려있기도 하지. 각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나는 그에게 베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알아두면 좋은 다른 어떤 여러 가지 방법들을 설명했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255쪽) (참고로 ‘킬리만자로의 눈’에 따르면 헤밍웨이의 이상형은 “부드럽고 장미꽃잎 같고 꿀같은 뱃가죽에 젖통이 크고, 엉덩이에 베개를 고일 필요가 없”는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는 귀여운 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를 보면 비로소 헤밍웨이의 호방한 언어구사력을 확인할 수 있다. 비난을 넘어 조롱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모자라게 느껴지는 그런 표현들을. 이를테면 1949년, 출판인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보낸 편지. 사업상의 문제를 상의하던 헤밍웨이는 뜬금없이 피츠제럴드를 욕하기 시작한다. 일은 제쳐두고 예의 ‘물건’ 사건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헤밍웨이는, 편지의 말미에서 그런 자신의 태도를 사과하며 뒤늦게 피츠제럴드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이런 칭찬이다.

 

“하지만 무식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부자들을 동경했음에도 그는 훌륭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스패니얼로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378쪽)

 

아마도 헤밍웨이는 대단한 애견인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개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곰곰이 생각하면 그는 코코스패니얼이나 그가 생전에 키웠던 스프린저스패니얼보다도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 다른 자리에서는 “살아 있을 때 개자식은 죽어도 개자식”이라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으니, ‘개보다 못하다’는 마지막 말은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린 헤밍웨이 씨의 실수라고 보는 것이 공정한 일일 것이다.

 

반면 피츠제럴드에게는 정반대의 일화가 있다. 자신의 집을 방문한 젊은 작가에게 헤밍웨이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무기여 잘 있거라>의 일부분을 큰 소리로 낭독한 그는, 손님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이렇게 되묻는다. “그와 같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표현이 마음에 드는가? 내가 당신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다면 감명을 받겠는가?” 그리고 그는 정말 손님의 머리 위에 올라선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라서려고 용을 쓰다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고 해야겠지만. 정말 눈물 나는 우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그들의 관계가 단지 피츠제럴드의 일방적인 짝사랑만은 아니었으니까.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와 즐겁게 어울렸으며 또한 그에게 의지했다. 기꺼이 조언을 구했고, 생활이 어려울 때면 돈을 빌리기도 했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헤밍웨이의 편지들은 언뜻 무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문우에 대한 걱정과 애정을 숨기지는 못한다.

 

문제는 시차였다. 그들이 우정 어린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세상은 바뀌었다. 대공황과 함께 요란한 파티와도 같았던 ‘재즈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로스트 제네레이션’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피츠제럴드라는 이름은 ‘말라버린 강바닥에서 죽어가는 물고기’에 다름 아니었고, 그의 작품은 어느 밤의 달뜬 꿈처럼 실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슬럼프에 빠졌고, 좀처럼 벗어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태양은 또다시 떠올랐다. 바로 헤밍웨이라는 이름의 태양이.

 

새로운 시대의 문학 영웅은 헤밍웨이였다. 그의 단호하면서도 건조한 문체와 강력한 목소리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었다. 피츠제럴드는 마흔도 되기 전에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313쪽)

 

*

이쯤에서 당신은 익숙한 서사를 떠올릴지 모른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라는 격언을 관계 속에서 풀어낸, 야심으로 가득한 남자가 있고 그를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는 여자가 있으며 마침내 남자는 성공하고 여자는 버림받는다는 이야기.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와 [청춘의 덫]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여전히 지겹게 반복되는 바로 그 서사 말이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연인사이는 아니었지만(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그저 가십일 뿐이었다), 헤밍웨이를 두 드라마 모두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이종원의 자리에 대입하기는 어렵지 않다. 재능과 실력은 있지만 인간성은 바닥인 나쁜 남자(그것도 모자라 소설가)라는 익숙한 캐릭터. 우리는 이야기를 사랑하고, 이야기는 익숙할수록 좋은 법이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옛 연인의 흔적을 지우려는 남자처럼 피츠제럴드에게 받은 모든 영향을 집요하게 부정했고, 때론 사실을 호도하며 헛소문을 퍼트리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파국의 책임이 헤밍웨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헤밍웨이의 팬이자 찬미자였고, 헤밍웨이가 성공을 거둘 때면 광신자처럼 기뻐 날뛰었던” 것으로 모자라 “친구의 성공을 위해 애쓰다가 정작 자신의 작품에 쏟아 부었어야 할 정식적 에너지를 탕진”했던 피츠제럴드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헤밍웨이의 광신자였다는 사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30년 간 두 작가의 소설을 연구하고 또 강의한 스콧 도널드슨은 이렇게 말한다.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로 피츠제럴드의 성격 역시 어떻다고 꼬집어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에이보더 K. 오피트가 ‘연극 같은 성격’이라고 분류한 성격과 많은 점에서 일치한다. 대개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구성하는 공연에서 주인공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들은 일부러 붙임성 있게 굴면서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며, 그런 시도가 실패할 경우 스스로를 과장되게 낮추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중략)

 

피츠제럴드의 예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런 사람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불명예를 택한다. 포도주 잔을 깨뜨리고, 손님들을 모욕하고, 싸움을 거는 등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저지르고 나면 그는 비굴할 정도로 용서를 청했다. 그가 헤밍웨이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는 자신의 술주정을 사과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둘이 우정을 지속하는 동안 내내 그는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469쪽, 강조는 인용자)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내부 지향적이었던 헤밍웨이는 자기가 이상으로 삼은 이미지(초인)에 부응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끌어내 최대한으로 활용”했던 반면 “외부 지향적이고 자긍심이 부족했던 피츠제럴드는 평생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며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자신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열등감에 시달려왔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과장되게 연기했고, 그리하여 더욱 깊은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소설도 쓸 수 없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술에 취한 채 자신이 빠진 늪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일밖에는.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용감하고, 절제할 줄 알고, 자신감 넘치는” 이상적인 남성상의 체현이라 할 헤밍웨이 앞에서 징징대는 일을 멈출 수 없었고, 헤밍웨이는 그런 피츠제럴드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그의 나약함을 도무지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성격차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그렇다. 이 역시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서사들을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연예인들의 ‘열애’와 화려한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는 서사를. 어쩌면 청소년들의 우정과 반목 그리고 설익은 사랑을 그린 성장 드라마의 서사를. 곱상한데다 하얗고 안경까지 쓴 아이는 자신과 다른 친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까만 피부와 두터운 입술과 커다란 주먹을 가진 친구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착으로 변한 친구를 바라보며 어떤… 아니, 여기까지 하자. 차라리 다시 한 번, 스콧 도널드슨의 문장을 빌려오는 것이 낫겠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어울리는 멋진 문장을. 그는 이렇게 썼다.

 

한 작가는 우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낮추었고, 강철처럼 단단한 심장을 지녔던 또 한 명의 작가는 이를 용인하려 하지 않았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469쪽)

 

사실 그들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살았고, 서로 사랑했으며, 그로 인해 미워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위대한 작품을 썼다. 여기까지.

 

대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작품이다. 피츠제럴드 덕에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로 분한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았고, 같은 배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볼 예정이며, ‘벤자민 버튼’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 또한 볼 수 있었다. 피츠제럴드와는 달리 헤밍웨이는 우리에게 산티아고 노인으로 분한 안소니 퀸의 실감나는 얼굴을 볼 기회를 주었을 뿐이지만, 1961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50년 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출판사들에게 때마침 저작권이 만료된 그의 작품을 마음껏 출판할 수 있도록 아량을 베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수십여 종의 <노인과 바다>에 더해 십여 권에 달하는 새로운 <노인과 바다>를 갖게 되었다. 과연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들의 우정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자못 분명해 보인다. 성격은 운명이고 운명은 그들의 우정을 시기했다.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승승장구하던 30년대에 그들의 관계는 이미 우정이라는 단어로는 감당하지 못할 의미들로 덧칠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 글쓰기를 독촉하고 또 격려하던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를 경멸하기 시작했고, 피츠제럴드 또한 그런 헤밍웨이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들은 각자(주로 헤밍웨이) 다른 이들에게(그러나 대개는 같은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서로를 헐뜯었고, 때로는 비평과 소설을 통해(전적으로 헤밍웨이) 침을 뱉기도 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니까 1940년 피츠제럴드가 짧은 생을 마감한 후에도, 홀로 남아 계속해서 친구를 헐뜯었던 헤밍웨이의 마음. 나는 그게 궁금하다.

 

헤밍웨이는 “고인에 대해서는 가급적 좋게 이야기하는 전통을 철저히 무시했다.” (심지어 사르트르조차 카뮈의 추도사를 통해 마지못해서나마 그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개가 비스킷을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피츠제럴드를 모욕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깎아내리려 했던 친구뿐 아니라 그 자신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당연하다. 사랑만 돌아오는 게 아니라 비난과 욕설도 그것을 뱉은 이에게 돌아오게 마련. 굳이 부메랑을 던지며 혀짤배기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고, 헤밍웨이 또한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왜?

 

시중에 유통되는 표준 답안은 이렇다. 피츠제럴드 사후 십 년이 흐른 1950년대 초반,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다. 한동안 절판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책들이 새로운 장정으로 재출간되었고, 둘 모두의 친구였던 에드먼드 윌슨(<핀란드 역으로>의 바로 그)의 편집으로 피츠제럴드의 유고까지 출간되면서 ‘피츠제럴드 붐’이라고 할 만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는다. 피츠제럴드가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밤은 부드러워>를 개정한 소설가 맬컴 카울리에게 그는 이렇게 비아낭거렸다. “자네와 윌슨이 말끔하게 단장해준 덕분에 스콧은 20세기의 헨리 제임스가 됐지 뭔가.”

 

한편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헤밍웨이의 새 소설은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피츠제럴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경쟁으로 여기며 기어이 이기려 들었던 헤밍웨이의 입장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1951년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밍웨이는 이렇게 쓴다.

 

“스콧은 주정뱅이에 거짓말쟁이에다…… 겁에 질린 천사의 재능을 이용해 남의 돈을 우려냈습니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378쪽)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쟁심, 혹은 질투심의 발로였을 뿐일까. 분명 카울리나 스크리브너에게 한 말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부족한 조각들이 너무 많다. 그뿐이었다면 52년 <노인과 바다>를 통해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명성을 회복하고, 54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야, 적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말았어야 한다. 이미 피츠제럴드가 이룩한 모든 (대외적인) 성과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그가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넘보지는 못할 위업을 달성한 그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멈추지 않는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피츠제럴드를 조롱하고 또 깎아내리며,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린다. 피츠제럴드의 전기를 쓰겠다며 헤밍웨이를 찾아 온 이들에게는 그들이 좋아할, 그러나 진위여부는 확인할 길 없는 온갖 가십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피츠제럴드의 전기 일부가 ‘라이프’지에 공개되자 헤밍웨이는 잡지사를 비난했다. 이제 와 피츠제럴드의 음주벽을 다시금 들춰내는 것은(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두 번 죽이는 처사라는 것이었다. 전기를 쓴 마이즈너에게는 그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하수구를 청소하거나 매음굴에서 경비를 서거나 뚜쟁이 노릇을 하는 게 낫겠다”는 악담을 퍼부으며 “허름한 차고 앞에서 목을 매달거나 참수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카울리에게는 “죽어서도 이상한 사람들에게 갈가리 찢기고 이용당하다니 스콧이 너무 불쌍하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중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헤밍웨이는 심지어 [A Moveable Feast]의 ‘스콧에게 바치는 서문’을 이렇게 쓰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그를 몰랐지만, 나는 그의 너그러운 마음씨와 친절한 행동을 비롯해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해 제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너그러운 마음씨’와 ‘친절한 행동’은 서문에서 언급했으니 본문에서 쓰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전기를 쓴 마이즈너에게 쓴 일곱 통의 편지 어디에도 그런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책에는 문제의 대목이 없다. 미망인 메리와 스크리브너 출판사의 편집장이 그 부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의 눈에 그것은 너무 과한 조롱으로 느껴졌으리라. 물론 그들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헤밍웨이가 피츠제럴드에 대한 조롱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그러면서도 그런 서문을 썼던 이유는 알지 못했다.

 

*

 

이제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할 차례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빈 구멍을 메우는 데에는 이야기만한 것도 없는 법이니까. 나는 헤밍웨이가 1938년에 발표한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을 떠올린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아프리카의 고원. 사고를 당해 오도 가도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를 헤밍웨이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킬리만자로는 높이 19710피트, 눈에 뒤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 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불려지고 있는데,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엔 말라 얼어 빠진 한 마리 표범의 시체가 놓여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헤밍웨이 단편집> 91쪽)

 

헤밍웨이 역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어지는 소설을 통해 그 표범이 다름 아닌 주인공 해리임을, 그리고 해리는 헤밍웨이 그 자신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물어야겠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해리는, 헤밍웨이는, 그러니까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죽음을 눈앞에 둔 해리는 과거를 바라본다. 그가 걸었던 거리들을, 그의 곁을 스쳐간 사람들을, 그의 인생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그 모든 여자들을. 하지만 그는 그리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가 쓰려고 했던, 그러나 이제는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그 모든 글들에 대한 회한일 따름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훌륭한 글을 쓸 때까지는 쓰지 않기로 했던 것들도 이제는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써 보려다가 실패를 하는 경우도 없게 될 것이다. 어차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착수를 못한 것이다. 하여튼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헤밍웨이 단편선> 96쪽)

 

이런 식의 진술은 소설 곳곳에서 반복된다. 이런 식이다 :

 

이것은 그가 후일 글을 쓰려고 간직해 두었던 것 중의 하나다. (99쪽)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안일만을 추구하며 자기 스스로 멸시했던 그런 인간이 되어 버린 매일의 생활이 그의 재능을 우둔하게 만들었고, 일에 대한 의욕마저 약하게 했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107쪽)

 

그러나 언젠가는 쓸 때가 오리라, 하고 늘 생각해왔다. 쓸 것은 참 많았다. 나는 이 세상의 변화를 보아 왔다. 그것은 표면의 사건뿐이 아니다. 사건도 많이 보아 왔으며 사람도 관찰하여 왔으나 그것보다는 미묘한 사회의 변화를 보아 왔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회상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을 관찰해 왔으므로 그것을 쓰는 것은 나의 의무다. 그러나 이제는 쓰지 못하리라. (120쪽)

 

그렇다. 나는 아직 파리에 대해선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다.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파리에 대해서는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러면 아직 써 본 일이 없는 다른 일에 대해서는 무엇을 썼던가. (129쪽)

 

글쓰기에 대한 집착. 차라리 강박. 이것은 비단 ‘킬리만자로의 눈’뿐만 아니라 그가 쓰는 거의 모든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편지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라도 아침 여덟 시면 책상 앞에 앉았던 그는 끊임없이 썼고, 쓰기를 계속함으로써 돌아갈 길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구덩이를 파는 사람처럼 자신을 쓰기 속으로 더욱 깊이 몰아갔으며, 그럼에도 언젠가 쓸 수 없는 날이 찾아 올 거라는 두려움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인 어빈 D. 얠럼과 문학비평가인 그의 아내 마릴린 얠럼은 그런 헤밍웨이의 성격을 이렇게 분석한다.

 

헤밍웨이는 초인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상으로 채택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목표로 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기에 그는 자기회의와 자기경멸에 끊임없이 발목을 붙잡혔고,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457쪽)

 

헤밍웨이 또한 자신이 그 목표에 결코 도달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그렇기에 그는 서쪽 봉우리 근처에서 얼어 죽은 표범을, 고립무원에서 다리를 다친 채 죽어가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저런 이유들로 글을 쓰지 못한 채 파멸해가는 피츠제럴드는 “두려움과 절망이 겉으로 드러난”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는 날지 못하는 나비 따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가 어떻게 피츠제럴드를 공격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두려움과 싸우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피츠제럴드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공격했던 헤밍웨이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공격을 멈출 수 없었다. 피츠제럴드가 죽은 후에도 그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아니, 두려움이라는 무형의 존재로 화한 피츠제럴드는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또한 그가 피츠제럴드를 온전히 증오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에 대한 하루키의 단평에는 공정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하루키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은 제아무리 현실에 가혹하게 시달려도 글에 대한 신뢰를 거의 잃지 않았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은 글을 씀으로써 구제되리라 굳게 믿었다. 아내의 발광도, 세간의 냉랭한 묵살도, 서서히 육체를 좀먹어가는 알코올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빚도 그 뜨거운 믿음을 앗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글을 통한 구원을 믿지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옛 기숙사 친구 헤밍웨이의 운명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죽음 직전까지 매달리듯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 ‘이 소설만 완성하면……’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모든 것이 회복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314쪽)

 

헤밍웨이는 애초에 글을 통한 구원 따위 믿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죽음을 불신자의 비겁한 선택으로 몰아가는 것은 일종의 근본주의적인 폭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글쎄. 누구도 알 수 없고, 짐작조차 힘든 마음이다. 나는 다만 그가 남긴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볼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은 잘해야 외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작가를 위한 단체는 외로움을 덜어주지만 글이 좋아지는가 하는 점에는 회의가 듭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면 작가의 공적인 위상은 올라가지만 작품의 질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지요.

 

혼자 일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작가라면 매일 영원의 세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직면해야겠죠. (노벨 문학상 수락 연설 중에서, <헤밍웨이의 글쓰기> 79쪽)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그는 정직한 작가라면 영원의 세계를, 혹은 영원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27120551&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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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최근에 나온 헤밍웨이 책은 <태양은 다시 뜬다> 밖에 없다. 

세로쓰기로 된 다섯 권짜리 전집이 있긴 한데, 아마 읽을 일은 없겠지.

나는 언제나 헤밍웨이 보단 피츠제럴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최근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브론테 2012-04-30 16:09   댓글달기 | URL
지금 마침 헤밍웨이의 A Moveable Feast를 재밌게 읽고 있는 중이라서 (위에 말하신 증보판), 반가운 포스팅이네요. 이 책을 불어버전에서 중역한 책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피츠제랄드부분까지 읽지 못해서 그런지 poptrash님이 말씀하시는 이 책의 감상과 저의 감상이 너무도 달라서 좀 당황스럽기 까지 -_-;;
어쨌든 전, 이 책때문에 헤밍웨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poptrash 2012-05-01 17:45   URL
저도 헤밍웨이가 좋아요. 무엇보다, 사람을 교묘하게 까는 부분이 제일 좋았습니다. (-_-;;) 헤밍웨이는 주변에 사람을 모여들게 하는,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그 관계를 견뎌내지 못해 대부분의 관계를 스스로 파탄냈다고 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생각만큼 못 해서 아쉬워요.

구차달 2012-04-30 23:06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노인과 바다 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poptrash 2012-05-01 17:46   URL
노인과 바다 좋죠. 금방 읽으실 듯 ㅎㅎ

Arch 2012-05-01 10:06   댓글달기 | URL
소설 같은 페이퍼예요. 오랜만에 페이퍼 읽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를 구해놓고 보기만 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하루키 잡문집에서 하루키의 피츠제럴드 사랑을 보면서 피츠제럴드 재조명이 하루키를 통해서는 아닌가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poptrash 2012-05-01 17:48   URL
저도 그 책, 나름 품을 팔아서 구했는데 읽지 않고 있다가 이 글을 쓰려고 읽었어요.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한국에서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 챈들러)의 인기는 하루키 때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있긴 합니다. 조영일 평론가. 최근 프레시안 쿤데라 <만남> 서평에 그 내용이 있을 거예요.

후와 2012-05-02 00:08   댓글달기 | URL
오후에 추천만 눌러놓고 댓글은 이제 다네요. 이 정도로 긴 글이라면 적어도 한 문단 정도는 지루할 법하거늘... 역시 프로의 글은 다르네요 ㅎㅎ^^

poptrash 2012-05-02 01:32   URL
후와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제가 프로라면 후와 님은 마스터? ㅜ_ㅜ 긴 글 지루하지 않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아마도 인용의 힘이 아닐까요? ㅎㅎ

다락방 2012-05-02 11:06   댓글달기 | URL
우앙. 읽어보고 싶은데(왜냐하면 피츠제럴드의 크기....때문에), 읽고 나서 피츠제럴드 보다 헤밍웨이를 더 좋아하게 될까봐 망설여지네요.

(아니야, 안그럴거야, 나는 지조 있는 여자니까. 흑흑. )

다락방 2012-05-02 11:58   URL
[파리에서 보낸 7년]은 절판이니까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으면 되겠죠?

poptrash 2012-05-02 12:04   URL
필립 말로를 좋아하는 다락방 님이라면 헤밍웨이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ㅎㅎ 저는 <파리에서 보낸 7년> 밖에 읽지 않았는데, 사실 불어 중역이고 번역문장이 썩 좋지 않은 책이에요.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증보판을 번역했고, 영어에서 번역했으니 훨씬 나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2-05-02 13:08   URL
제가 이 긴 글을 출력해서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poptrash 2012-05-02 15:05   URL
저와 종이와 다락방 님을 위해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ㅜ_ㅜ

말없는수다쟁이 2012-05-02 14:01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집에 가서 당장 출력해서 읽겠사옵니다! +_+

poptrash 2012-05-02 15:06   URL
이면지에 모아 찍기로...

Jeanne_Hébuterne 2012-05-02 20:09   댓글달기 | URL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하는 지금의 독자들은 어디까지나 지금 남아있는 텍스트로만 상상을 할 뿐입니다. 두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두 사람이 저렇게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사람들은 죽고 없는데 글이 남고 말이 남아있다는 것이 늘 부당하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끝끝내 모를 일들이지만 말하여도 끝끝내 상상하게 될 일들이 지천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전 절대 유명해지지 않을 겁니다.
실은 유명해질 능력도 없다는 것이 가장 다행스럽고도 슬픈 사실이지만 구글링을 해도 나오지 않는 제가 뿌듯할 따름(?) 입니다.

poptrash 2012-05-03 01:44   URL
그렇죠.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물건에 관한 예의 논쟁은 아마 헤밍웨이가 지어냈을 거라는 게 정설이더라고요. 두 사람이 저렇게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하는 부분은 결국 행간을 통해서 밖에는 알 수 없는 일이겠지요. 실제로 옆에서 그들의 보고,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결코 온전히 알 수는 없는 일이겠고요. 하지만 사람은 죽고 없는데 글이 남고 말이 남아있다는 건 부당한 게 맞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그것은 그들이 쓴 글이고, 한 말이니.

전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구글링 하면 이런저런 것들이 걸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혼자 생각하는 밤입니다.

Jeanne_Hébuterne 2012-05-03 15:08   URL
사랑이 깨어지는 것 보다도 우정이 깨어지는 것이 더 괴팍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전자가 간단히 산산조각이 나는 사기 그릇이라면, 후자는 너무 조각조각 흩어져서 파편을 줍기조차 힘든 코렐 그릇(특정 상표 언급 죄송)이랄까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글들의 행간에서 나오는 감정의 드러냄이 꽤나 세세하고 치졸하여 헤밍웨이라는 그 이름이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합니다만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인지도 몰라요.

유명해지셔서 여기저기서 팝트래쉬님의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낮입니다.

poptrash 2012-05-03 15:57   URL
그렇겠죠. 책표지를 비닐로 포장할 때, 보통은 뜯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그것을 뜯으려 하면 스카치 테이프가 빛바랜 책날개에 노란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헤밍웨이도 참 치졸한 게 맞는데, 그게 또 귀엽네요. 아무려나 씁쓸한 일이에요.

달사르 2012-05-03 20:13   댓글달기 | URL
오. 이 멋진 글을 어케 제대로 읽을까..고민하는 나에게 댓글들이 답을 줍니다. ^^ 저도 퇴근 전에 출력을 좀.. ^^;

이전 포스팅은 아이폰으로 몇 번이나 읽었거든요. 글자가 쪼매내서 눈이 좀 고생을. ㅋㅋ (이제 출력해서 보면 눈이 편안~하겠슴돠.)

참, 오에 겐자부로 의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는 품절이던데요..ㅠ.ㅠ 아까비..대신에 3부작 시리즈가 있길래 일단 그걸 확! 질렀슴돠. 힛.

달사르 2012-05-04 14:48   URL
힛. 어제밤에 다 읽고선 신이 나서 하루키 잡문집을 뒤져봤어요. 나에게 있는 책이 이웃님 포스팅에 언급되는게 이렇게 기분좋은 거로군요. ^^

팝님 글 읽고나니깐요. 헤밍웨이가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고뇌가 있는) 한 인간이구나..싶어져서 책이 더 궁금해지고 그래요. 앞서의 포스팅 또한 그러한 거 같은데요. 작가와 소설 그리고 독자. 이 셋의 연결고리에 팝님의 관심사가 있는 걸까요?

poptrash 2012-05-04 17:50   URL
저는 그들의 성격과 관계가 어떻게 글을 통해 드러나는지, 또 그들의 성격과 관계가 어떻게 글 뒤로 숨는지, 이런 게 궁금해요. ㅎㅎ 물어봐도 대답해 줄 사람은 없는 그런 이야기가.

저도 며칠 전에 <오에 겐자부로, 자기 자신을 말하다>란 인터뷰 집을 샀어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운 작가에요 저한테는. 그리고 매번 길기만 한 글을 써 눈을 혹사시키고 종이를 낭비하게 한 점, 깊게 반성합니다. ㅜ_ㅜ

영구 2012-05-03 21:04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둘 성격은 약간 서구판 미시마-다자이 같지 않나요? 헤밍웨이가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를 권했어야 하는데.

poptrash 2012-05-04 17:47   URL
전장을 경험했다면 남자가 되었을 거라는 식의 말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이런 성격-관계의 프랑스 버전으로는 사르트르와 카뮈, 한국 버전으로는 김수영과 박인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나는 시를 단념한 인간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시의 말과 소설의 말의 근본적인 차이를 어떻게든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시 쓰기를 그만두고 소설로 향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시를 단념했지만, 결코 말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결국 시를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이다. 소설가다. 그는 이렇게 쓴다.

 

다양한 시대, 여러 지방의 전투에서 비참하게 쓰러져 간 병사의 배낭에서 종종 시집이 발견된다는 보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명료한 의식을 갖춘 채, 눈앞에 있는 자신의 육체=영혼의 죽음을 응시할 때, 자신이 하나 혹은 몇 편의 시를 내면에 안고서 쓰러질 게 틀림없다고 똑똑히 확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소설이란 다 읽고 나면 참호에 내버려지는 것이다. 다 읽고 난 소설을 참호에 버린 채 일어나서 떠나간 병사들이 총알을 맞고 쓰러질 때, 그는 그 육체=영혼으로부터 떼어 내기 힘든 시와 함께 죽었던 것이다. 나는 병사는 아니지만 이 뜻하지 않은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러한 돌연한 죽음 앞에서 내 육체=영혼의 내부에서 나와 함께 죽어 갈 수 있는 시를 확보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얼마간 완화시키고자 시를 구하고 있을 뿐, 그러한 시 외에는 어떠한 화려한 말의 수식도 찾아내고 싶지 않다. (오에 겐자부로,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12쪽)

 

그렇다면, 나는 생각한다, 뜻하지 않은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한 시대를 저마다의 시를 통해 살아낸 시인의 경우는 어떨까. 명료한 의식을 갖춘 채, 눈앞에 있는 자신의 육체=영혼의 죽음을 응시할 때, 그 자신의 내면에 안고 쓰러지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시인은 무엇과 함께 죽는가? 시인가 감정의 조각인가 몇 개의 단어인가 혹은 그가 평생을 통해 붙잡으려 했던 어떤 이미지인가. 그러니까 4월의 어느 아침, 36년을 함께한 자신의 육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경우.

 

 

2.

 

마야코프스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몇 가지 키워드 : 미래파, 선동가, 혁명의 계관시인. 그것은 모두 진실이다. 마야코프스키는 미래파이고 선동가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혁명을 꿈꾸고 또 노래하던 혁명의 계관시인이다. 물론, 그것이 마야코프스키의 전부는 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준비된 혁명가였다. 어린 시절,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던 누이가 가져다준 혁명시를 읽으며 당시 러시아 사회를 휩쓸고 있던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된 마야코프스키.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생 데모에 참가하며 고리키와 마르크스를 탐독하던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사회주의. 연설. 신문. ……나는 아침 여섯 시면 일어나곤 했다. 술 취한 사람처럼 읽었다. ……내 생활 전체는 엉킨 것을 풀고 세계를 조직화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능력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마르크스 연구 모임에 갔다. 에르푸르트 강령에 깊이 심취했다.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도. 스스로 사회 민주당원으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총들을 몰래 빼내서 사회 민주당에 가져다주었다. ……리옹에 자주 갔다. 입에 자갈을 가득 물고 연설을 연습하곤 했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22쪽)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빈털터리가 된 가족들은 모스크바로 이주하고, 어린 마야코프스키는 점점 더 혁명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배경을 이루고 있던 그루지야로부터 넓고 더러운 도시 속의 초라한 곳으로 나온 그는” 가난한 두 손으로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혁명은 그곳에 있었다.

 

열네 살의 나이에 볼셰비키에 가담한 마야코프스키는 이후 선전선동 혐의로 세 번의 체포를 당한다. 2주와 한 달 그리고 6개월 동안의 수감 생활. 특히 세 번째에는 경찰을 조롱하고 당국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꼼짝없이 독방 신세를 져야만 했다. 고작해야 열다섯 살의 소년이다. 부티르키의 독방에서 마야코프스키는 정치활동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곳에서, 소년은 고전을 읽으며 일생 동안 자신을 사로잡을 예술에 대한 열망을 키운다.

 

1910년 1월, 마침내 출소한 마야코프스키는 당을 떠나 ‘모스크바 회화‧조각‧건축 학교’에 입학한다. 직업 화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그곳에서 그는 다비드 부를류크를 만난다. 훗날 자서전을 통해 “진정한 나의 스승”이라고 부르게 될 남자를. 마야코프스키의 운명을 바꾼 만남이었다.

 

열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부유한 집안 덕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아방가르드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부를류크는 마야코프스키의 천재를 알아본 첫 번째 사람이었다. 어느 날, 어두운 모스크바 거리를 걷던 마야코프스키는 부를류크에게 자신이 쓴 시의 몇 구절을 들려준다. 친구가 쓴 시라는 소심한 거짓말과 함께. 하지만 그 자리에 멈춰 선 부를류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친다. “아냐, 바로 네가, 네가 쓴 거야! 이제 보니 훌륭한 시인이로구나!”

 

부를류크는 마야코프스키에게 계속해서 시를 쓰도록 부추기는 한편, 자신이 몸담고 있던 모임으로 그를 안내한다. 부를류크는 자신의 동지들에게 마야코프스키를 젊은 천재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순식간에 그룹의 핵심 멤버가 된 마야코프스키. 그것은 혁신과 전위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모임, 스스로를 ‘미래인’이라고 불렀지만 이내 비평가들에 의해 ‘미래파’라고 불리게 될 모임이었다.

 

 

3.

 

미래파의 입장은 요란했고, 과장되었으며 그만큼의 패기로 가득했다. 1912년 12월 발표한 시집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에 실린 같은 제목의 선언문을 보자. 수많은 선배 예술가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전의 모든 문화를 철저하게 조롱하고 또 부정하는 그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아니, 명령한다.

 

오직 우리만이 이 시대의 얼굴이다. 시간의 뿔피리는 우리를 통해 언어 예술 속에서 울려 퍼진다.

과거는 갑갑하다. 아카데미와 푸슈킨은 상형 문자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다.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을 현대라는 기선에서 던져버려라.

(…)

우리는 마천루의 높이에 올라 보잘것없는 그들을 내려다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인의 권리를 존중해줄 것을 명령한다.

1. 독단적이고 자유로운 파생어로 시인 자신의 어휘 범위를 확장시킬 권리(새로운 말).

2. 그들 시대 이전까지 존재해온 언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의 권리.

3. 당신들이 목욕탕 회초리로 만든 보잘것없는 명예의 화관을 자신의 오만한 이마에서 혐오스럽게 떼어내 버릴 권리.

4. 비난과 분노의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라는 말의 바위덩어리 위에 서 있을 권리.

그리고 만일 당분간 우리의 문장 속에 당신들의 “상식”과 “좋은 취향”의 더러운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자기 충족적인(자족적인) 말의 새롭고 아름다운 미래의 여름 번갯불과 함께 가장 먼저 명멸할 것이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246쪽)

 

“얼굴에는 색칠을 하고 단추 구멍에는 나무숟가락을 꽂은 괴상한 복장으로 거리를 뽐내며 활보”하고, “그랜드 피아노를 거꾸로 달아놓고 시를 낭송”하는 등 과격한 행색과 기이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한 미래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러시아 문화계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마야코프스키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더 미래파적인 모습으로, 무심함과 오만함이 뒤섞인 열정으로, 시와 희곡을 발표하며 촉망받는 천재 시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의 저자인 앤 차터스와 새뮤얼 차터스는 당시의 마야코프스키를 이렇게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 어떤 비극>(첫 번째 희곡)을 썼을 무렵, 마야코프스키의 성격에는 두 가지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세상이 알고 있는 마야코프스키를 화려하고 오만한 멋쟁이로 과장시켰다. 그것은 소심하고 연약하기만 한 자기 내면의 이중 감정이 스스로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그 감정이 자기를 압도해버릴 것만같이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그는 외롭다고 느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형무소에서 보낸 다섯 달 동안의 상처받은 경험은 그를 정서적으로 불균형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는 자주 자살을 생각했다. 미래파로서의 촌뜨기 같은 태도라던지, 많은 사랑을 편력하며 보여준 냉담함이라던지, 상처받기 쉬운 자기의 정서를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점들만 보더라도 그가 불안정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34쪽)

 

많은 위대한 시인들이 그러했듯 마야코프스키 또한 그 자신의 인생의 배우가 되어 이상적이라고 상상한 삶을 연기했다. 그는 과장된 제스처로 자신의 재능을 과시했고, 탐욕스러운 연인이 되어 여인들의 마음을 뻔뻔히 요구했다. 하지만 그가 믿고 싶었던 자신과 실제의 그 자신 사이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고, 그가 ‘화려하고 오만한 멋쟁이’로서의 자신을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그것은 더욱 깊어만 갔다. 차터스 부부가 말한 외로움과 상처받기 쉬운 예민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했고 거침이 없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미 어찌할 도리 없는 절망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아버지 막심 고리키는 마야코프스키의 내면에서 들끓는 혼란을 보았다. 그의 앞에 놓인 미래 또한. 그것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그만큼 깊은 어둠을 가진 어떤 것이었다. 1915년의 어느 여름, 마야코프스키를 아침식사에 초대한 고리키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발작적으로 시를 외우던, 몸을 제멋대로 흔들며 점점 다급해지는 목소리로 시를 내뱉다 이내 격정에 휩싸여 낭송을 채 마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젊은 시인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자네에겐 위대하지만 아마도 어려운 미래가 있을 걸세. 그리고 자네의 재능은 많은 노력을 요구할 걸세”라고 그에게 내 의견을 얘기하자 마야코프스키는 음울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전 오늘 미래가 필요합니다. 기쁨이 없으면 미래도 필요하지 않지요. 그런데 전 기쁨을 모릅니다.” 행동이 매우 신경질적인 것이 뭔가 깊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역력했다. 그는 두 개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같았다. 하나는 순수한 서정시인의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풍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유난히 예민하고,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우 불행하다는 것도.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46쪽)

 

<닥터 지바고>를 쓴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또한 그것을 알았다.

 

모스크바 시절 파스테르나크는 시인이 되겠다는 그의 강철 같은 의지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체하기를 잘 한다던가, 한참을 뚱해가지고 난폭한 행동만 일삼는다던가, 요란한 과시욕에 빠진다던가 하는 등의 그의 태도 이면에는 깊은 우울이 자리하고 있음을 파스테르나크 역시 감지할 수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수줍음과 억지로 꾸민 그의 자유 뒤에는 정작 자유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62쪽)

 

그들이 본 그대로, 비록 마야코프스키 자신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대단한 재능은 그를 위대하고도 험난한 미래로 이끌었다. 숨길 수 없는 흉터처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서정시인의 목소리와 그를 위대한 혁명 시인으로 만들었던 “요란한 과장과 모욕과 허식이 한데 어우러진” 풍자의 목소리는, 그 사이의 간극은, 그의 예민한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아무리 가장을 하고 또 과장해도 소용없었다. 그리하여 불행은, 그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그 후로도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4.

 

마야코프스키의 운명을 바꾼 두 번째 만남은 오십 브릭과 릴리 브릭 부부와의 만남이었다. 마야코프스키는 원래 릴리의 동생인 엘자에게 구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릴리는 동생을 따라다니는 자칭 시인을,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건달을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 끝에, 그러니까 마야코프스키가 달갑지 않아하는 그들 부부의 귀에 자신의 시를 끈질기게 쑤셔 넣은 끝에, 그들은 시인에 대한 자신들의 인상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인상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었다.

 

마야코프스키가 읽어주는 ‘바지 입은 구름’을 듣고 있던 우리들은, 그때, 바로 그 날 저녁, 운명이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와 형부가 그의 시에 보여준 반응은 열광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시를 맹목적으로 사랑해버렸다. 그리고 마야코프스키는 언니 릴리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됐고.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48쪽)

 

엘자의 증언대로, 오십과 릴리 부부는 그의 시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오십은 자신이 직접 그의 시를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것으로 모자라 앞으로 마야코프스키의 시 한 줄당 50코페이카를 지불한다는 내용의 ‘영구적인 계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마야코프스키는 오십이 떨리는 손으로 읽고 있던 자신의 노트를 빼앗아 릴리 앞에 펼친 후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 시를 부인에게 바쳐도 되겠습니까?”

 

릴리 역시 마야코프스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내 연인이 되었고, 오십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육체관계에 별 관심이 없는데다가 기존의 가족구성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꿈꾸던 이상주의자 오십은 그들의 관계에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릴리에게 “당신을 충분히 이해하겠소. 마야코프스키 같은 사람을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헤어져서는 안 되오”라고 말한 오십은 마야코프스키에게는 ‘평생 친구’로 지내자고 말한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다소 기묘한,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없이 자연스러웠던 삼각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마야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

 

 

5.

 

하지만 마야코프스키는 오십과 달리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다. 릴리의 모든 것을, 하나부터 끝까지. 그러나 릴리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모스크바 미래파의 일원이자 마야코프스키의 친구였던 빅토르 슈클로프스키의 표현대로, 릴리는 “슬퍼할 줄도 알고, 여자다울 줄도 알고, 변덕스러울 줄도 알고, 천박할 줄도 알고, 자존심을 부릴 줄도, 사랑을 할 줄도, 영리할 줄도 아는 여자였다. 뭐든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이다.”(슈클로프스키는 여기에 다소 냉소적인 어조로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코미디에 여자를 그려 넣었던 모양이다"라고 덧붙인다.)

 

마야코프스키의 호텔방에서 함께 사랑을 나눈 후면 그녀는 어김없이 오십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야코프스키의 불같은 질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법적인 남편이자 변함없는 파트너인 오십에 대한 배려라고 보기는 어렵다. 15년의 시간 동안 그녀는 오십과 마야코프스키 아닌 수많은 남자들과의 ‘여흥’을 즐겼던 것이다. 물론 마야코프스키 또한 적지 않은 여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릴리를 갈구했고, 질투를 멈추지 않았으며(오십에 대한 질투는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앤과 새뮤얼 차터스는 이렇게 쓴다.

 

릴리와의 사랑은 ‘바지 입은 구름’이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 어떤 비극>에서 보았던 순교자로서의 시인의 환상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랑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었던 그의 감정 상태에서는 죽음만이 오직 가능한 결말이었다. 저항할 길이 없는 이러한 감정의 역류에 휩쓸린 채로 그는 릴리에게 매달렸다. 그는 최후의 사랑을 찾아서 천국과 지옥도 불사하는 영웅적인 반역자로서, 자기의 상대역을 해낼 완벽한 여자로서 그녀를 점찍었던 것이다. 과연 그녀가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62쪽)

 

사랑스런 연인과 미친 여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던 그녀의 변덕을 맞추기 위해 마야코프스키는 필사적으로, 때때로 절망적으로 노력했다. “새 시를 쓰라고 브릭이 주는 돈으로 마야코프스키는 릴리를 위해서 꽃으로 방을 장식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케이크도 사주었다.” 말하자면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가 느낀 그 모든 감정의 파고는, 어지러운 마음의 소용돌이는, 고스란히 시가 되었다.

 

그녀는 분명 마야코프스키가 자신에게 기대한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내게는 한 사람에게 아교처럼 붙어 있을 능력이 없어요. 난 어디에 매여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어쩌면 마야코프스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시 말해 결코 그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기에 그토록 그녀에게 매달린 것은 아니었을까.

 

마야코프스키가 생각하기에 “시인이란 작가가 아니라, 서정시의 실체이며, 세상을 제일 먼저 몸으로 체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릴리는 마야코프스키에게 그가 몸으로 체험하는 세상, 그 자체였다. 그것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녀가 관계되는 일이면 무엇에나 그는 괴로운 질투를 느꼈다. 그것은 ‘그가 시의 주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가슴을 훔쳐간 그대

가슴속에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대,

나의 재능을 거두어 가오.

어쩌면 난 결코 다른 어떤 창조도 못할 테니……

 

- ‘척추 피리’

 

 

6.

 

한편 오십과의 관계는 그에게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바로 공적인 세계. 그는 마야코프스키의 시집을 출판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문학 살롱’을 통해 그 자신 미래파 비평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들은 밤새워 토론하고, 잡지를 발행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점점 더 키워나갔다.

 

그리고 1917년 10월(구력 기준), 혁명이 시작되었다. 마야코프스키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기 집에 들어가듯이 혁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점점 급박하게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도 마야코프스키는 “지칠 줄도 모르고 새로운 사회에서의 미래파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요란하게 자기를 내세웠다. 행동하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 같았다. 그리고 그는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에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열두 살의 나이에 자갈을 입에 물고 연설을 연습하던 그다. 그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자신조차 스스로의 연설에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마야코프스키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난폭한 행동과 사춘기 소년 같은 감정의 폭발과 엉뚱한 성격 그리고 젊고 재능 있는 훌륭한 다른 시인들이 자기를 추종해주기를 바라는 그러한 기질도 다 받아들이면서까지 마야코프스키를 숭배했다. 그러나 그 순간 파스테르나크는 마야코프스키로부터 처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객관적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의 친구가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음을 알았다. 미래파 예술의 중심이 된 것은 마야코프스키 그 자신이었다기보다는 시인의 뒤처진 생각이 만들어놓은 낭만적인 영웅이었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62쪽)

 

그러거나 말거나, 마야코프스키는 이 위원회다 저 작가모임이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친다. “볼셰비키 인민교육위원회가 발행하는 잡지 <코뮌 예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혁명 정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미래주의자 및 형식주의자들과 함께 <좌익 예술 전선>을 창간하기도 했다.” 브릭과 마야코프스키는 일종의 문화권력을 쥐게 되었고, 그들 또한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아무 관심도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의 예술이 새로운 러시아 문화운동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미래파의 예술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문화의 독재도 서슴지 않을 생각이었다. (차터스 부부는 이룰 두고 “그들이 정치적 독재자가 아니었기에 망정”이라고 썼다.) 마야코프스키는 말한다.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신문에, 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137쪽)

 

 

7.

 

1920년대에 들어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의 재능을 ‘로스타(러시아 전신국의 약자)’의 선전부를 위해 쓰기 시작한다. 그는 수천 장의 풍자화, 표어, 짧은 노래 광고 등의 ‘슬로건 예술’을 미친 듯이 ‘생산’하며 그것을 혁명에 봉사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거의 모든 창조력을 ‘슬로건 예술’에 쏟아 부었지만, 시작을 멈추지는 않았다. 특히 그는 언젠가 고리키가 주목했던 풍자적 재능을 한껏 발휘했는데, 그중에는 (본래 그와 미래파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레닌의 마음을 사로잡은 ‘회의광’이라는 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 속 화자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관청에 방문하지만, 담당자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각종 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운 탓에 매번 헛걸음만 하고 만다.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회의장을 박차고 들어가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런,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몸이 반쪽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깜짝 놀란 그에게 비서가 조용히 속삭인다.

 

“그는 한꺼번에 두 군데 회의에 참석 중이십니다.

우리는 하루

스무 군데 정도 회의에

참석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자연히 몸이 둘로 나누어져야만 하지요.

허리까지는 이곳에 참석하고

나머지는

저곳에.”

 

절망에 빠진 화자는 이렇게 절규한다.

 

“오,

모든 회의를 폐지하는 것에

관한

회의를

한 번 더 했으면!”

 

마야코프스키는 로스타에서의 선전업무를 지속하는 한편 출판과 강연을 위해 해외를 오가며 20년대의 몇 년을 보냈다. 몇 편의 희곡을 썼고, 제법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러시아에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레닌의 신경제 정책(NEP) 도입 이후 점차 변하기 시작한 정세는 24년 레닌의 사망 이후 급격하게 변해버렸다. 새롭게 등장한 소브루주아와 마야코프스키가 그토록 증오했던 해묵은 관료주의가 혁명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릴리와의 관계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언제나처럼 (릴리가) 밀고 (마야코프스키가) 당기기를 반복하던 그들의 관계는 1925년 마야코프스키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그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육체적인 관계는 맺지 않게 된 것이다. 뭐,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릴리와 마야코프스의 주위에는 적당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많은 ‘파트너’들이 차고 또 넘쳤으니까.

 

그리고 스탈린이 등장한다. 스탈린은 물론 마야코프스키와 미래파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는 점점 더 교조화되고 있었다. 마야코프스키는 여전히 정부의 문화적 대변인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그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정부도, 대중도 더 이상 그의 말과 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해외를 떠돌았다. 파리에서는 릴리 이후에 처음으로 그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은 여인 타치아나를 만나 그녀에게 구혼하지만, 그녀에게 마야코프스키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수많은 구혼자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마야코프스키보다 젊었고, 부자였다. 당시 상심에 젖어 있던 마야코프스키를 만난 화가 유리 아넨코프는 이렇게 증언한다.

 

마야코프스키는 내게 언제 모스크바로 돌아갈 생각이냐고 물었다. 화가로 남아 있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해본 지 오래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내 어깨를 흔들며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돌아갑니다. 난 이제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때 갑자기 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마야코프스키가 흐느끼며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난 서기가 되었소.”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울먹이자 깜짝 놀라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자 마야코프스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서요.”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281쪽)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시인이 아닌 서기라고 말했다. 비단 사랑만이 아닌 혁명과 예술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고, 울었다. 때마침 작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이다.

 

 

8.

 

1929년 4월, 비자가 만기된 그는 러시아로 귀국한다. 타치아나를 설득해 결혼 약속을 받아낸 그는 10월이 되어 다시 파리로 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녀와 결혼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대수롭지 않은 연애사건이라고 생각했던 릴리는 전과 다른 마야코프스키의 진지한 모습에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하지만 마야코프스키가 영화촬영장에서 만났던 젊은 여배우, 노라 폴론스카야에게 몇 달 전 타치아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전에 없던 열정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자 릴리의 질투심은 곧 사그라진다. 릴리에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럴 수도.

 

그렇다면 마야코프스키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 그는 무엇보다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절실하게, 차라리 절망적으로. 하지만 두 여인 중 누구도 그의 마음을 향해 걸어오진 않았다. 젊은 여배우는 그와의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나중에야 그녀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9월, 타치아나는 편지를 보내 마야코프스키의 비자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절망했다.

 

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다시금 일에 몰두한다. 완성한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극단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움직였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았던 상황이다. 하지만 신은 우리를 위해서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도 그보다 더한 최악을 남겨두시는 법이다. 10월 초가 되자 외교관으로 해외에 나가있던 뒤플레시스 자작이라는 젊은 남자가 파리로 돌아왔고, 타치아나에게 구혼을 하던 수많은 남자 중의 하나였던 그는 그녀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아낸다. 결혼식은 두 달 뒤, 12월이었다. 고국에 발이 묶인 마야코프스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릴리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쓴다.

 

마야코프스키는 자주 외롭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고, 친구가 없었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좀더 명성이 필요해서도 아니었다. 시가 발표되면,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고, 홀을 꽉 메운 청중들은 그의 시에 귀를 기울였다. 그를 사랑하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는 대양의 물방울과도 같은 것이었다. 브릭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영혼 속에 만족할 줄 모르는 도둑이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시를 읽고, 자기의 강연회장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자기의 시를 들어야 하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이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281쪽)

 

사랑이 실패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실연은 그를 좌절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연극 또한 실패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풍자하며 소비에트의 정치제도를 웃음거리로 삼았던 <목욕탕>을 본 관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그의 작품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작품 이십 년’ 전시회 또한 실패했다. 처참한, 그리고 완벽한 실패였다. 일련의 실패들은 마야코프스키에게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지난 시절 그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얻으려 했던 사랑과, 혁명, 그리고 예술이, 그러니까 그 자신의 전존재가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다.

 

마야코프스키는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이끌던 ‘레프(좌익예술전선)’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속하지 않은 다른 모든 그룹들을 싸잡아 비난하던 ‘라프(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도 가입한다. 하지만 라프는 마야코프스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적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쓴 적 없는 그곳의 작가들은 마야코프스키를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으로, 이류 작가로 취급하며 도덕과 예술을 가르치려 들었다. 마야코프스키의 친구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전향’을 비난했다. 마야코프스키의 고독한 몸부림은 그 자신을 더욱 더 고독하게 할 뿐이었다.

 

 

9.

 

1930년 2월, 오십과 릴리 브릭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난다. 홀로 남은 마야코프스키는 다시 한 번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엔 라프의 소속 작가 신분이었다. 하지만 “라프를 비롯한 어용 작가 그룹에서는 섬뜩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시회의 실패를 연애에서 만회하려는 듯 마야코프스키는 노라 폴론스카야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에게 싫증이 난 상황이었다. 그녀는 극단의 젊은 남자 배우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질투로 불타오른 마야코프스키의 집요한 청혼을 모두 거절했다. 그렇지만 데이트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마야코프스키는 여전히 강연과 모임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핼쑥한 얼굴, 불안한 정서, 점점 깊어만 가는 우울.” 그는 신경쇠약으로 입원까지 하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1930년 4월 11일, 마야코프스키는 난생 처음으로 약속된 강연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매니저였던 라부트는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강연자가 아프다는 핑계로 강연회는 취소된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아파트를 찾은 라부트는 침대 속에 있는 마야코프스키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뭔가 쓰고 있었다. 문간에 서 있다가 가까이 가려고 하니까 갑자기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옮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나하고 같이 여행을 다닐 때도 그렇게 많이 아팠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야 난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 305쪽)

 

그날 저녁, 노라를 집으로 부른 마야코프스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당국에 보낸 편지에서 당신을 나의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썼소.” 그녀가 차갑게 대꾸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에만 제 얘기를 해주세요.”

 

다음 날 마야코프스키는 노라를 만나기 위해 극단을 향한다. 다짜고짜 드라이브를 청하는 마야코프스키. 하지만 노라는 연습이 있어서 안 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마야코프스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지팡이로 의자를 내리치며 커다랗게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오!”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는 마야코프스키. 그는 소리쳤다. “아니오?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오직 ‘아니오’라고. 어디를 가나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온통 ‘아니오 뿐이야!” 그리고는 몸을 돌려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노라와 함께 친구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그는, 자고 가라는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고 정부 출판국 사무실 근처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다. 새벽 세 시였고, 그의 곁에는 노라가 있었다. 그것이 노라와의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 마야코프스키는 노라에게 자신을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했다. 아니, 소리쳤다. 하지만 노라는 연극 연습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녀로서는 처음 맡은 주요 배역이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를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노라는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를 남겨두고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배역을 향해 걸어갔다. 또각 또각 또각.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이윽고 총성이 복도를 가득 채웠고, 피가 온 방을 적셨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고, 차마 문을 열수 없어 힘없이 주저앉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몇 분 후면 복도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었다.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주검 옆에 놓인 유서를 볼 수 있었다. 이틀 전, 라부트가 찾아왔을 때 쓰고 있던 바로 그 편지였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성실한 유대인 매니저에게로 옮을까 두려웠던 것일까?

 

 

10.

 

여러분 모두에게

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하지 마오. 그리고 이야깃거리로도 만들지 말아주오. 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하오.

어머님, 누이, 동지들이여, 나를 용서하오. 이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여러분에게는 이 방법을 권하고 싶지 않소) 나로서는 다른 출구가 없었소.

릴리, 나를 사랑해주오.

정부 동지, 릴리 브릭과 어머님, 누이들 그리고 베로니카 비톨도프나 폴로스카야가 나의 가족이오.

이들에게 윤택한 생활을 보장한다면 고맙겠소.

완성하지 못한 시는 브릭 부부에게 주시오.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들 말대로, “사건은 끝났소.”

 

사랑의 배가

나날에 부딪쳐 부서졌다.

삶과 나는 이해도 득실도 없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와,

아픔과,

멸시를 일일이 헤아려도

승부의 득점은 없구나.

 

그대들 모두에게 최고의 행운이 깃들기를!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4/12/30

 

프롤레타리아 작가 연맹의 동지들, 나를 겁쟁이라 생각 마오.

정말, 어쩔 수 없엇소.

안녕히!

에르밀로프에게는 게시판을 떼서 대단히 미안하다고 전해주시오 -- 우린 끝까지 싸웠어야 했소.

V.M.

 

책상 서랍에 2,000루블이 잇소. 그 돈으로 내 세금을 내기 바라오. 연방 출판국에서도 받을 돈이 있소.

 

 

11.

 

그러니까 바로 그것이, 1930년 4월 13일 아침 10시 경, 시인이 명료한 의식을 갖춘 채, 손을 들어 오직 한 발뿐인 총탄을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겨눌 때, 마침내 방아쇠를 당길 때, 눈앞에 있는 자신의 육체=영혼의 죽음을 응시할 때, 그 자신의 내면에 안고 쓰러진 것들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그의 죽음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소비에트 연방을 떠돌았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의 명성을 둘러싼 몇 번의 조정 작업도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 인민의 영웅이 되었고, 다음 순간 철지난 낡은 외투가 되었다. 그럴 만도 하다. 어느새 그의 죽음과 우리 사이에는 70년이 넘는 시간이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그저 추문일 뿐이다.

사건은 끝났고 우리에게 남은 전부는 그가 남기고자 한 것들뿐이다.

그는 분명, 이렇게 썼다.

 

릴리, 나를 사랑해주오.




















http://bkworlds.tistory.com/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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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블로그를 위해 쓴 글.

나 역시 시를 포기한 인간이므로,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쓸 수 없었고 그래서 전기 위주로 썼다.

차터스 부부의 <마야코프스키>는 사실 좋은 평전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다음 달에는 루소의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라는 책을 쓰기로 했는데.....



 
 
2012-04-17 21:4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8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차달 2012-04-17 22:20   댓글달기 | URL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처음 들어보는 작가입니다. 자신을 전소시킨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의 삶과 가까울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아, 오에겐자부로의 저 글귀는 과거 팝님의 다른 글에서 본 것도 같은데 여러모로 참,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시는 여전히 저와 대치 상태입니다. 제 주제에 말이지요.

poptrash 2012-04-18 18:28   URL
저 글귀로 시작하는 일기가 있어요. ㅎㅎ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예전 일기가 생각나서 슥슥. 사실 '시를 포기한다'는 건 오에 정도 되는 소설가니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시를 포기한다기 보단, 그냥 무지한 거겠죠. 그게 저에요.

말없는수다쟁이 2012-04-17 22:34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기다리던 글 같아요. 오랜만에 팝님 서재 놀러와서 싱싱한 수확하고 가네요.
그치만 제 서재에는 꽃봉오리만 가득하다는~ 흐흐

poptrash 2012-04-18 18:29   URL
그쵸. 봄인데 저는 책이나 붙잡고 원고나 쓰고 있습니다. ㅎㅎ

소이진 2012-04-17 23:22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스크롤 내리느라 숨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후후, 저도 표현하자면 구차달님과 함께 시와 대치 상태입니다. 저 따위에 말이지요.
팝 님의 글도 만만찮게 제겐 어렵군요...

poptrash 2012-04-18 18:30   URL
이 글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순전히 제 탓이겠지요. 고치고 싶은 문장, 빼고 싶은 단어가 꽤나 많은 글이네요. 봄날에 대치하는 시라면, 조금 좋을 것도 같아요.

달사르 2012-04-18 15:53   댓글달기 | URL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느 시인의 죽음>을 읽고 있던 중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보리스 자신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가 마야콥스키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부랴부랴 마야콥스키에 관해 찾던 중이었어요. 팝 님 글 덕분에 마야콥스키에 대해 알게되어 무척 기분이 좋네요. ^^ 게다가 오에 겐자부로 까지 알게 되고 말이죠. 보리스를 통해 시인이 쓰는 소설의 맛을 알았는데 오에 겐자부로 소설도 다음에 읽어봐야겠어요.

참, 위 포스팅 제목, 너무 멋집니다. ^^

poptrash 2012-04-18 18:31   URL
아, 감사합니다. ^^ 제가 모든 종류의 짧은 글짓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제목은 항상 고민스러운데, 이번엔 마침 글을 올리는 순간 본문에 들어있던 저 문장이 생각났어요. 오에 겐자부로 소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

후와 2012-04-19 02:31   댓글달기 | URL
시와 사랑과 혁명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그려지네요. 시를 잘 몰라서 사랑을 노래할 줄도 모르고 혁명에도 영 떨떠름한 모양이에요 저란 인간은...^^

poptrash 2012-04-19 22:14   URL
시 모릅니다. 노래 못합니다. 혁명은... 글쎄요. 혁명하면 역시 김수영이죠. 저 역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습니다. 아니 사실 청소도 안 해요. 마지막으로 청소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영구 2012-04-19 19:39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꾸 분량 타령 하는 것도 참 하수 스럽기는 하나, 제가 만약 매체 측이라면 이만큼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만큼 자율적으로(!) 써서 주면 진짜 뿌듯할 것 같네요. -ㅂ-b

근데 책세상은 블로그 홍보를 좀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군요. 단순히 신간 정보나 보도자료 업데이트로 마는 수준도 아니고 외부 기고가까지 섭외해서 컨텐츠를 꾸미는데 그에 비해 블로그 자체는 너무 조용해서리. 블로그 홍보가 먼저 이루어졌어야 맞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면 오빠 칼럼을 통해 고정 방문자를 모으려는 걸 지도! #중요한역할 #임무

poptrash 2012-04-19 22:20   URL
그냥 분량을 정해놓지 않고 쓰는 게 편해서 매번 이렇게 늘어놓고 있는데, 항상 마감 직전에야 완성해서 넘기니 퇴고를 안(못) 하고, 다시 보면 쪽팔리고, 무엇보다 이제 짧은 글을 더더욱 못쓰겠음. -_- 지금도 엄청 짧은 글 하나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습니다. 흑.

책세상은 올 초부터 트위터로 홍보도 하면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은데,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야. 쉽지 않은듯. 혹시라도 내 칼럼을 통해 고정 방문자를 모으려는 생각이었다면... #심심한_사과 #눈무링
 

90년대, 치열했던 영국 대중음악의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남자’ 로비 윌리엄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지금 듣고 있는 사랑 노래를 꺼 / 네 귀를 울리고 있는 감상을 / 넌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 또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로비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는 감상에 젖을 시간이 필요하고, 설령 그 노래를 끈다 하더라도 우리 머릿속에 남아 시시때때로 우리를 사로잡는 멜로디까지 어쩔 수는 없다는 사실.


파리 10대학의 철학교수이자 음악이론가인 페테르 센디는 그런 멜로디를 가리켜 ‘귀벌레’라 명명한다. 실은 가디언의 기사에서 빌려온 표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날 좋은 어느 오후의 산책길에서, 친구와 함께 들른 술집에서, 한산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돌린 TV 채널에서 스치듯 듣는 것만으로도 귀벌레는 당신의 귀를 파고드는 것이다. 아무리 귀를 후벼 봐도 도무지 떨쳐낼 수 없다. 살충제가 듣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세스코’를 부른다 해도 소용없다. 그게 바로 귀벌레다.


<주크박스의 철학 - 히트곡>은 그런 귀벌레, 다시 말해 히트곡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고찰이다. 저자는 묻는다. “어떻게 그저 그런 곡조 하나, 어디에나 있을 듯하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단순하고 짧은 곡조 하나가 둘도 없는 음악이 되어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꽤나 심오한 질문. 이에 저자는 우회로를 택한다. 보리스 비앙과 마르크스, 벤야민, 키르케고르에 이어, 알랭 레네와 프리츠 랑, 히치콕을 지나 프로이트와 칸트에 이르는 제법 복잡한 우회로를. 그러니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저자가 즐겨 인용하는 벤야민의 ‘산책자’가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으며 화려하게 진열된 상품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도취에 빠지듯,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어폰을 통해 노래하는 대중가요 후렴구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감상에, “낡은 외투로 몸을 감싸듯 노래가 환기시키는 상황에 에워싸이는 것”처럼, 이 책의 독자 또한 센디가 세심하게 닦아 놓은 철학과 미학의 산책로를, 노래 그 자체를 닮은 그 길을 그저 느릿하게 걸어가는 것으로 족할 테니까.


물론 귀벌레 몇 마리쯤 대동하는 것도 좋겠다. 우리들의 산책에는 BGM이 필요하니까. 나라면 카라의 노래를 고르겠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라는 가사가 있는 그 노래를.

















* [행복한 동행] 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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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산을 향하는 9701번 버스. 이런저런 노래들이 무작위로 흐르던 이어폰에서 펫 샵 보이스의 'nothing has been proved'가 나왔고, 머릿속으로 그들의 멜로디를 따라가던 나는 문득 이와 비슷한, 그러나 결코 같지 않은 멜로디의 오솔길을 발견한다. 잠시 귀를 닫고 그 멜로디를 따라간 내가 마침내 닿은 곳은 바로 스파이스 걸스의 '2 become 1'. 그러니까 이런 부분이었다.


커몬리를빗 클로서 베이베

게리롱 게리롱

코스투낫 이즈더나앗

웬 투비 커머어언


아이 닛섬럽 라카네버 니딛럽 비포

(워너메잌럽투야 베이베)


이게 도대체 언제적 귀벌레인지. 정말이지 귀벌레는 죽지 않는 모양이다.



 
 
구차달 2012-04-05 18:04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것도 귀벌레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게리롱 푸리롱'이 생각나네요. 잊을 수가 없어요.

poptrash 2012-04-06 06:45   URL
이게 바로 그 노래죠 ㅎㅎ 게리롱 게리롱 푸리롱 푸리롱...
특히 국산 '게리롱 푸리롱' 버전은 귀벌레 맞아요 ㅎㅎㅎ
귀가 썩게 하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고매하신 공자님의 말씀이다. 나는 감히 고개를 갸웃한다.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나는 다만 궁금할 뿐이다. 만약 공자님이 21세기 한국에 태어났다면? 과연 그때도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요즘에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다. 축하할 일이고 또한 훌륭한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런 말씀은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몇 만 광년쯤 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란 말이다.


  서점에는 따듯한 위로와 달콤한 약속을 늘어놓는 책들이 넘쳐난다. 몇 주면 당신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좀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들. 거짓말이다. 그 책들은 당신을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잠깐의 고민을 덜어줄 뿐.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은 후, 당신은 여전히 같은 고민과 함께 제자리를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공부가 어렵다는 사실을. <단단한 공부>는 바로 그런 책이다. “공부를 대신할 기적과 만병통치약을 찾는다면 여기서 당장 책을 덮어라”라는 말로 시작되는 책은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위로도 약속도 없다. 다소 딱딱하고 퉁명스러운 늙은 스승과 그의 지혜가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를 싫어할 수도 있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거짓말을 늘어놓진 않는다는 것.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실은 이렇다. 아무리 먼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곳을 오르더라도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한 번에 오직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때론 비틀대고 또 넘어지면서.


  물론 약속은 있다.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간 닿게 되리라는, 소박하지만 분명한 약속. 갈 길이 너무 멀다고 한숨부터 내쉴 필요는 없다.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자신과 싸우던 마라토너가 어느 순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듯, 우리 또한 ‘러너스 하이Learner's High’를 느끼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결국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달린 셈이다.


  공자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 없다!”
















* [행복한 동행] 20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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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글쎄, 확실한 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사실.

공자 님만 믿고 갑니다.



 
 
구차달 2012-04-05 20:46   댓글달기 | URL
공부를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내게서 이미 소설점의 끝으로 달아난 시점에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십년 전의 이십 년 전의 내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식에게 해야겠어요. 물론 자식 새끼는 내 얘기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poptrash 2012-04-06 06:46   댓글달기 | URL
그게 바로 인간이 너무 뛰어난 존재가 되는 걸 막기 위한 자연의 현명함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