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코건이 새 프로젝트 밴드 즈완을 결성했다는 소문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팬들에게는 구원이자 동시에 절망이었다. 빌리 코건의 코맹맹이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구원이었지만, 오직 호박들의 재결성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더없는 시련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즈완의 2003년 앨범 [Mary Star of the Sea]는 결코 온전히 평가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나름 유명짜한 뮤지션들이 합류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차베즈(Chavez) 출신의 매튜 스위니와 토터스(Tortoise) 출신의 데이빗 파조가 기타를 맡고, 퍼펙트 서클(A Perfect Circle)의 파즈 렌천틴이 다아시와 멜리사의 뒤를 이어 코건의 미녀 베이시스트 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무엇보다 펌킨스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함께 한 지미 체임벌린이 다시금 드럼 앞에 앉았건 말건. (적어도 한국의) 팬들에게 즈완은 이유 없이 우울했지만 그만큼 찬란했던 90년대를 상기시키는 코건의 목소리만으로 더 이상의 평가가 필요치 않은 밴드이거나, 그 시절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시켜주는 뒤늦은 부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고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밝고 또 명랑했지만.
하지만 코건의 독재를 견디지 못한 ‘슈퍼그룹’ 즈완은 이내 호박들의 전철을 따랐고,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 코건은 즈완의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간이야말로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며 펌킨스를 그리워하는 포스트를 올린다(물론 밴드 해체를 다른 멤버들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펌킨스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음반 산업에 대한 회의가 다시금 그를 잠식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배우가 되겠다며 밴드를 탈출했던 다아시처럼 음악계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외모가 영화배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닥터 이블’ 역은 이미 마이크 마이어스가 꿰찬 후였다) 애초에 그는 음악을 떠나서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Blinking with Fists]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며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던 그는 2005년, 밴드의 고향인 시카고 지역 신문에 팬들의 마음을 다시금 설레게 하는 전면광고를 개제한다. “지키고자 마음먹었던 비밀들, 그 비밀들과 함께 나는 홀로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매싱 펌킨스를 새롭게 되살리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나는 되돌리고 싶습니다. 나의 밴드, 나의 노래, 그리고 나의 꿈을.” 그와 동시에 자신의 첫 솔로 앨범 [Future Embrace]를 발표하지만, 어딘지 기괴한 느낌을 주는(심해생물, 그중에서도 대형 문어에 대한 서양인들의 오랜 공포를 자극하는) 앨범 커버 탓인지 “내면의 마틴 고어에 집중한” 그의 신스팝 친화적인 앨범은 오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채 처참한 실패를 맞아야 했다.
2년 후, 마침내 스매싱 펌킨스라는 이름으로 체임벌린과 함께 돌아온 코건은 밴드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인 동시에 사실상 두 번째 솔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Zeitgeist]를 발표하지만, 나쁘지 않은 차트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우호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평들과 함께 하나의 사실과 대면한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차갑고 단단한 사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던 20세기 소년소녀들은 어느덧 어엿한 직장을 가진 기성세대가 되었고, 커트 코베인의 죽음 이후에 출생을 신고한 21세기의 아이들은 흑인음악과 제 나이 또래의 아이돌에 열광하고 있었다. 코건의 ‘시대정신(zeitgeist)’은 이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나버린 것이다. 이후 챔벌린까지 해고한 코건은 [Teargarden by Kaleidyscope]라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통해 온라인에 신곡을 무료로 공개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힘에 겨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함께 했던 그 노랫말처럼, 또다시 그에겐 “버티기 위해 노력해(try to hold on)”(‘Try, Try, Try’)야만 하는 세월이 찾아온 셈이다. 길고도 암울한, 영혼의 티타임이.
아무려나,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흐르고 있으며, 또한 흐를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우리는 낭비해왔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는 불만을 터트릴 권리가 있다. 하물며 스매싱 펌킨스도 아닌 즈완의 앨범을 말하기 위해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이만큼이나 낭비한 것에 대해서. 언젠가 스미스(The Smiths) 앨범의 재발매 소식을 접한 모리시를 따라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즈완이라고? 지금 내게 있어 즈완이란 강둑에 말라붙어 죽어가고 있는 물고기와 다름없는 의미일 뿐인데?”
좋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여기엔 ‘Siva’나 ‘Disarm’도, ‘1979’나 ‘Zero’도 없다. 그저 얼간이처럼 웃고 있는(‘Honestly’의 뮤직비디오를 보라) 빌리 코건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 언젠가 몇 번 흘려들은 것만으로 이미 짐작했듯, [Mary Star of the Sea]는 그 어느 매체의 ‘○○대 명반’에도 들지 못할 것이다. 말마따나 즈완이란 이름은 고작해야 지나간 추억의 하찮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대 명인’에도 들지 못할 인생과 함께 여기까지 달려 온) 우리들의 과거가 대개 그러하듯이. 하지만 그런가? 정말 그것뿐인가?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Honestly’)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거대한 에고에 갇힌 채, 필연적으로 뒤틀리거나 모호할 수밖에 없는 자의식의 풍경을 방황하던 한 천재가 환하게 웃으며 진정으로 음악을 즐겼던 순간이 여기 있다고. 너무 빨리 변한 세상과 조로해버린 청춘, 너무나 일렀던 후회 속에서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 또한, 아직 여기에 있다고. 그러니 어쩌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늦어버린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시간은 흐르고 음악은 남는다. 그리고 언제나 음악은, 음악 그 이상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밝은 앨범을 통해 빌리 코건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http://youtu.be/NLPgz9K4D20
http://100beat.hani.co.kr/archives/16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