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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과 나는 몇 가지의 경험을 공유한다. 일단 세대가 같고(비록 내가 한두 살 많긴 하지만 그가 내게 말을 놓는 것으로 보아 동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루한’ 자유기고가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익숙하며(탈출에 성공한 그는 어엿한 기자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연명 중이다), 같은 정당에 당비를 내고(상근자들에게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탈당을 유예”한다는 그와 달리 한 푼이 아쉬운 나는 종종 탈당을 고민한다), 공통의 지인들이 있다(출판계라는 게 워낙 좁은 동네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그의 책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흥미롭게 읽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의 이야기다. 그만큼 공감의 여지가 많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당신은 그럼 그렇지, 혀를 찰지도 모른다. 이것을 또 하나의 ‘세대론’으로, 익숙한 편 가르기로 받아들인다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또래 독자만으로 만족하기엔 그의 포부가 너무 큰 탓이다. 서문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또래에게는 위안을 주고, 다른 세대에겐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봐야 하는 책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는 청년 세대의 문제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이라고 말한다. 대학 등록금과 청년 실업, 점점 힘겨워지는 결혼과 출산, ‘내 집 장만’에 이르는 청년들의 문제는 곧 그들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야 제 자식이 안정적인 정규직이 되어 받아 마땅한 몫을 챙기기 바라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IMF를 거치며 폭주하기 시작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식들에게 ‘투자’하느라 적절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부모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고 궁핍한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 청년층의 부모들은 하필 이 사회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베이비부머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밥값을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내면화한 청년들은 스스로를 잉여로 부르며 만성화된 불안 속에서 어두운 미래를 향해 마지못해 걸어갈 뿐이다.


자, 이제 익숙한 질문이 등장할 차례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세대론의 대답은 명쾌하다. 저놈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차라리 ‘세대론’이라고 쓰고 ‘개새끼’라 읽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기성세대는 이런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는 무능한 청년세대를, 청년세대(를 지지하는 쪽)는 이런 세상을 만든 부패한 기성세대를 비난하며 서로에게 화살을 돌린다. 때로는 온 국민이 사이좋게 개새끼가 되기도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애당초 복잡하고 다층적인 정치사회적 문제를 단순한 세대론으로 환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대 담론에서 정작 당사자인 청년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대는 본인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으며, 윗세대들은 그들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으며 누구를 참고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규정하기 힘든 것에 대해 억지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평거리가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청년 세대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맞닥트린 어떤 불안감의 실체를 대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불안감의 이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청년 세대의 삶의 문제를 발견한다.”(170쪽)


그리하여 <청춘을 위한 세대는 없다>는 일종의 ‘메타-세대론’이자 세대론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다종다양한 문제들을 직시하려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된다. 본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세대 담론의 유행 속에서 본의 아니게 담론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젊은 필자의 “청년 문제에 대한 당사자의 발언권을 사수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공허한 고담준론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일상사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잉여(청춘)의 초상을 생생하게 그리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들에 대한 명민한 분석과 요약을 통해 일종의 지적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기타 등등에 대한 골치 아픈 고민을 그에게 ‘아웃 소싱’한 채 단지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의식 있는 독자가 될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딛고 선 자리를 돌아볼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사실 조금 피곤할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을 리 없다. ‘잉여 시대를 명랑하게 돌파하는 청춘 여행’이라는 서문의 제목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명랑이라는 단어의 주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통해 스스로를 ‘낭만 혹은 명랑 공산주의자’라고 소개한 우석훈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윤형을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우석훈 박사님?”이라고 중얼거린 사람의 한 명으로서,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불필요한 오해는 피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경향신문 2013. 4. 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19213522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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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은 물론 농담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고, 농이건 진이건 없어도 좋을 부분이다. 아는 이의 책에 서평을 쓴다는 게 어쩐지 겸연쩍어 부린 수작이고, 누군가 웃는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사실 웃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구절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교양의 실종'이라는 꼭지의 도입부다.


"세기말엔 지식인들이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과학 도서를 보지 않고 <인물과 사상>이나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인물과 사상>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뜨끔했다.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 나는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오늘날의 <인물과 사상>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110쪽)


서평 청탁 전화를 받은 게 월요일이었고, 마감은 목요일 오전이었지만, 정작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수요일 밤이었다. 책을 받은 게 그때였다. 하루 종일 집에서 택배를 기다리다, 결국 늦기 전에 교보문고에라도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던 중 1층 우편함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마음이 급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저 구절에서 독서를 멈추고,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문인줄 알았다.


(A)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다"와 (B)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라는 두 개의 단문이 합쳐진 중문이다. 비문이 아니다. 하지만 내겐 그 문장이 어색했다.  (A)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서 이어진 문장은 (C) "요즘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읽는 대학생들도 찾기 힘들다"였기 때문이다. 나라면 (B)와 같은 문장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A)와 (C)로 이루어진 문장, 그러니까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요즘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읽는 대학생들도 찾기 힘들다"는 무리 없는 문장이다.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어떤 뜻으로 말했는지는 알겠지만 사실 망하지는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지 않는다는, 일종의 객관적인 진술 아닌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앞선 문장에 고등학교 떄 <인물과 사상>을 읽었고, 그러면서도 지식인들의 비판에 자기 반성을 하는 '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뒤에 (C)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더는 객관적인 진술이 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 <인물과 사상>을 읽었던 나'와는 달리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지 않는 대학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옛날엔 이랬는데 요즘 애들은... - 전형적인 꼰대의 문장. 이렇게 보자면 <인물과 사상>이 망한 것(물론 안 망했지만)도 대학생 책임인지 모른다. 읽지 않으니까 망할 수밖에. 이어질 이야기도 뻔하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책도 좀 읽고,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말고... 뭐 그런 '어른'의 질타, 충고, 그리고 격려. 너무나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당연한 건 아니다(그러니까 이건 너무 당연하게 (C)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반면 (B), 그러니까 한윤형의 문장대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보기도 힘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학생들이 힘들다는 것이다. 소설책을 보기도 힘들 정도라면, 그렇게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말하자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바로 그 대답이다.


세기말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인물과 사상>을 읽었던, 그럼에도 '<인물과 사상>이나 본다'는 지식인들의 비판에 뜨끔해했던 '나'의 성장담과(1부), 그런 '나'가 자라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기 힘든 대학생들의, 청년 세대의 현실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여러가지 고민들이(2부와 3부) 특유의 관찰과 분석, 요약과 정리를 통해 그려지는... 그런데 존나 따듯한 이야기...... 


그러니까 원래 저 서평은 이런 식으로 쓰여질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계획이 그렇듯 그저 계획으로만 남긴 했지만.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어떤 부분은 살짝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세대는 물론 마더 파더 젠틀맨 모두 한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하이드 2013-04-22 14:40   댓글달기 | URL
한윤형이 강남 교보 티움에서 ㅇ일 7시에 강연회.인가 사인회.인가 한다고 해서 지금 샵에 와서 날짜가 언제지? 찾아보다보니, 아마, 꿈이었던듯. 그리고 꿈의 원인은 이 글이었던듯. 합니다.

아, 꿈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이 봄날.

poptrash 2013-04-22 15:37   URL
오늘 강남 교보에서 7시에 강연회인가 사인회인가 한다던데요 ㅎㅎ
현실도 꿈처럼 느껴지는 이 봄날!

하이드 2013-04-22 17:37   URL
앗! ㅡㅜ
 

무작위로 재생시켜 놓은 음악파일 중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흘러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난 누구도 필요하지 않았어, 사랑은 그저 장난이었지,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네…”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그 노래를. 에릭 칼멘이 작곡하고 브리짓 존스가 목 놓아 불렀던 노래의 제목은 '올 바이 마이셀프'. 라흐마니노프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대신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이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라는 묘한 제목을 가진 단편을 (다시) 읽던 중이었고, 마침 한 등장인물이 “저도 말합니다. 날씨, 음식, 음악, 책 말합니다. 저는 라흐마니노프 좋아합니다.”라는 대사를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이 피아노를 조율하리라고도,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편이 대꾸했다. 나 역시 그들이 라흐마니노프를 이야기하리라고도, 그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흘러나오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새해를 앞둔 마지막 날, 피아노를 조율하기 위해 아내의 친구가 집으로 찾아온다. 사트비르 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인이다. 남편은 그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아내의 ‘대화 상대’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싫고, 아내도 없는 집에서 낯선 외국인과 시간을 보내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그는 문을 열어 이방인을 받아들인다.


사내는 피아노를 조율하고, 남편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불편한 시간을 보낸다. 오랜 시간 방치한 피아노는 상태가 좋지 않다. 서툰 한국말로 사내가 묻는다. “이 피아노, 어떻게, 이렇게 왔습니다.” 피아노가 그의 집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되짚는 남편. 어린 시절 체르니 40번에 들어갔지만 나오지는 못한 아내와,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흐르는 가정을 상상하던 그 자신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들 부부와 한 노인이 얽힌 복잡한 사연이다. 문득, 남편은 깨닫는다. 익숙하다는 핑계로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은 채 그저 습관처럼 아내를 대했던 자신을, 그런 자신 때문에 외로웠을 아내의 마음을. 이제 남편은 아내가 돌아오기를,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해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낯선 손님이 조율한 것은, 실은 남편의 마음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의문은 남는다. 두 부분으로 나뉜 제목에서 ‘모두에게 복된 새해’는 그렇다 쳐도, ‘레이먼드 카버에게' 는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대답은 김연수가 번역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성당’에 있다. 


카버의 소설 역시 아내 친구의 방문으로 시작한다. 그는 맹인이고, 오래 전 아내가 그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며 만난 사이였다. 그들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지속해왔고, 아내를 잃고 여행을 떠난 맹인이 이제 그들의 집에 하룻밤을 묵으려 들른 것이다. 물론 남편에겐 그의 방문이 달가울 리 없다. 아내와 그가 계속해서 연락했다는 사실이 싫고, 낯선 맹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도 싫다.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아내와는 달리 남편은 그와의 시간이 불편하기만 하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잡담을 나눠보지만 불편함은 도무지 가시지 않는다. 결국 남편은 습관처럼 TV를 튼다. 아내가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TV에서는 대성당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손님에게 남편은 대성당을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때 맹인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대성당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남편이 펜을 잡자 맹인이 그의 손을 잡았고, 그들은 손을 맞잡은 채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맹인은 그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말한다. 남편은 눈을 감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는 순간적으로 맹인이 ‘보는 세계’를 ‘본’ 것이다. 그가 맹인과 함께 그린 것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지레 포기한 타인의 세계였다. 그는 말한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어느덧 새해다. 지난 새해 다짐의 대부분을 지키지 못한 채 우리는 또 다시 나이를 먹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는 여전히 삶에 서툴다. 소중한 사람은 물론 많은 순간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누구도 필요하지 않고, 사랑도 그저 장난이었던 그 시절로부터 한 치도 자라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음악과 그림이 있는 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그러니 지레 겁먹고 문을 닫지 말라고 말하는 이 두 편의 소설은 퍽 위안이 된다. 하지만 이 글은 소설이 아니고, 나 역시 누구를 위로할 주제가 못 된다. 그러니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


행복한 동행 2013년 1월


















 
 
구차달 2013-01-22 18:16   댓글달기 | URL
희안할세. 내 여기 댓글을 달았노라 여기고 있었거늘 댓글이 없네. 모쪼록 복되시길. 2013은 아니지만 13은 소수라고 우격다짐하는 새해입니다. ㅋ

poptrash 2013-01-23 01:30   URL
벌써 1월 23일이네요. 구차달 님도 복된 새해 되세요!
 

고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게 되는 책, 이라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백과사전적 기술과 다양한 이들의 감상을 훔쳐보기 위해서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굳이 책을 사서 읽는 수고 없이도 유용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근찬의 ‘수난이대’는 고전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단편이다. 이미 웹상에 요약과 교과서적 분석이 가득한데도 여전히 줄거리를 요구하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뜨거운 고전이다.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학생도 아닌 내가 ‘수난이대’를 검색한 이유는 따로 있다. 보는 이들에게 ‘어레스트’(심정지)를 불러일으키는 최인혁 교수님이 등장하는 드라마 [골든타임]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의 다리를 절단하는 장면을 함께 시청하던 여자친구가 난데없는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잠깐, 다리를 절단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렸다고? 덕분에 드라마와 <최강전설 쿠로사와>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번갈아 보던 나는 현대문화와 인간성에 대한 피상적이지만 심각한 고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친구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부지, 이래가 우째 살까 싶습니더.”

 

그건 바로 ‘수난이대’에 나오는 대사였고, 비로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물론 현대문화와 인간성에 대한 피상적이지만 심각한 고찰에서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넘어간 후, 그녀의 연상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을 그 시간 동안 나는 적지 않은 상념에 사로잡혀야만 했지만. 뭐,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

 

굳이 이 자리에서 ‘수난이대’의 줄거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만, 여전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전국의 학생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바로 이런 내용이다.

 

만도는 아들을 기다린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돌아온다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전쟁이다. 이웃의 아무개는 전사통지를 받고, 다른 아무개는 생사여부를 확인할 길 없는데 아들 진수는 당당히 살아 돌아온다니 만도의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다. 일제강점기 오키나와에 징용으로 끌려가 한쪽 팔을 잃은 만도는 아들이 성히 돌아온다는 생각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산을 넘고 개천을 건넌 만도는 장에 들러 고등어 한 손을 산다. 아들에게 구워줄 고등어를. 남은 손에 달랑달랑 고등어를 든 만도는 기차역에 앉아 아들을 기다린다. 기차 도착 시간은 아직 멀었고, 만도는 하릴없이 옛 생각에 빠져든다. 십수 년 전, 바로 이 기차역에서 끌려간 오키나와의 살인적인 태양과 잠자리만큼 크던 모기와 형편없는 음식과 비행장을 닦던 노역을. 이어지던 공습과 공습을 피해 자신이 설치한 발파용 폭탄 옆으로 몸을 던지던 어느 날을. 어렴풋이 뜬 눈에 보이던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낀 나무토막” 같았던 자신의 팔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그 팔을 바라보며 혼절했던 그날을.

 

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만도는 아들을 찾는다. 시꺼먼 열차 속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지만 만도는 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룩거리는 상이용사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만도.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만도를 부른다. 돌아보는 만도.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그 상이군인이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낀 채 서서 만도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바로 아들 진수였던 것이다. 만도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것을 본다. 사라진 다리. 만도는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지만, 떨리는 입을 열어 고작 이렇게 내뱉을 뿐이다. 에라이, 이놈아!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만도는 화가 난다. 마치 그것이 진수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가자, 라는 무뚝뚝한 한 마디와 함께 만도는 지팡이에 의지한 진수가 절름절름 따라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혼자 앞장서 걷는다. 주막집 앞에 도착해서야 만도는 돌아본다. 길가에 오줌을 누고 있는 진수. 지팡이를 던져놓고 나무 둥치를 붙잡은 채 오줌을 싸고 있는 진수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진다. 만도는 주모를 재촉해 빈속에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들이켠다. 그제야 도착한 진수에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들에게 이리 들어와 보라고 소리를 지르는 만도. 아무데서나 묵으라고 이르고는 주모에게 국수를 시킨다. 꼬빼기로 잘 좀……. 참지름도 치소, 알았능교?

 

말없이 국수를 먹는 진수. 주막을 나온 부자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이번에는 진수를 앞세우는 만도. ‘지팡이를 짚고 찌긋둥찌긋둥 앞서 가는 아들의’ 뒤를 술에 취한 만도가 달랑달랑 고등어를 흔들며 따라 걷는다. 그제야 다리에 대해 묻는 만도에게 진수는 그간의 사정을 들려준다. 멀쩡한 다리를 잃은 사연이건만, 진수의 말은 짧기만 하다. 전쟁하다가 이래 안 되었냐고. 수류탄 쪼가리에 맞았다고.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 버리더라고. 아부지를 부르는 진수. 와, 대답하는 만도에게 진수가 말한다. 이래 가지고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우째 사냐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거라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아들을 타이르는 만도.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대겠나 말하며 아들을 향해 지긋이 웃어준다. 아들에게 보여준 첫 번째 웃음. 하지만 이내 요의를 느낀 만도는 손에 들고 있던 고등어를 입에 물고 바지춤을 내린다. 그때 아버지에게서 고등어를 받아드는 진수. 볼 일을 본 만도는 다시 아들에게서 고등어를 받아들고 길을 걷는다. 그때 그들의 앞에 펼쳐진 개천. 외나무다리가 놓인 시내를 건널 일이 캄캄한 진수에게 만도는 말한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업히라고. 망설이는 진수에게 고등어를 건넨 만도는 진수를 업는다.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넌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들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그렇게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있다.

 

*

 

결국 이 글을 쓰기 위해 ‘수난이대’를 다시 읽은 나는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들고, 흐르지 않게 또 살짝 웃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슬프게 했는지, 기어이 눈물 흘리게 했는지, 동시에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줄거리가 넘쳐나는 고전을 요약하기 위해 다시 읽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다. 아무려나. ‘수난이대’에 담긴 문학사적 의의 따위 알 리 없는 나는, 지난여름 인천에서 보냈던 어느 하루를 떠올린다.

 

우리는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manic street preachers’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내렸고, 그들의 무대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다른 무대에서는 다른 팀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와 친구는 자리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우리가 들고 있던 맥주는 점점 더 묽어졌다. 우비사이로 흘러든 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나는 이빨을 맞부딪치며 저체온증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등장했다. “안녕”이라는 활기찬 인사와 함께 ‘motorcycle emptiness’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광분했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지막 곡이 흐르고 있었다. ‘If you tolerate this your children will be next’라는 긴 제목을 가진 노래가.

 

스페인 내전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그 노래 속에서,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은 당신이 이것을 묵인한다면 다음은 당신 자식들의 차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아름답게, 그렇지만 비통하게.

 

그리고 바로 그것이 ‘수난이대’와 그 작가 하근찬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 봉변을 당한 부자가 운명에 순응하며 서로를 보듬는 과정을, 그 애처로운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지만 시대의 비극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다. 진수의 잘려나간 다리가 진수의 잘못이, 그렇다고 만도의 잘못도 아닌 것처럼. 그렇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다. 진수의 잘려나간 다리가 결국 만도들의 잘못인 것처럼.

 

간단하게 말하자.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의 예의 노래가 실린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 앨범은 1997년에 발매되었다. IMF로 기억되는 1997년은 우리의 부모가 망한 해다. 그들은 인내했고, 살아남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찾아온 2012년, 이번에는 그들의 자식인 우리가 망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래의 내 자식이 망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겠지. 그리고 그것은 아마, 일정부분 나의 잘못이 맞을 것이다. 부를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식을 잘못 키워서도 아니다. 시대의 비참에는 우리 모두의 지분이 있다는 말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우리들의 수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여전히 이래가 우째 살까 싶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똥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까. 만약 우리가 이것을 단지 인내하고 종내 묵인하며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재산을 불리려는 노력으로만 살아간다면, 그러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천 번(?)의 흔들림을 그저 어른이 되기 위한 노정이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다음은 영락없이 우리 자식들의 차례가 될 것이다.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은 말이다. 


2012.9.7. 프레시안북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90714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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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소홀했던 서재를 철지난 글들로 채우려는 시도의 첫 번째는 뜬금없는 '수난이대' 원고. 


2012년 판 수난이대에서는 "아부지, 이래가 우째 살까 싶습니더"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긍께 투표 하라고 자식아"라고 했다나 뭐라나 하는, 선거 전날에나 가능한 농담을 해볼까 해서는 아니었...나?



 
 
후와 2012-12-19 06:58   댓글달기 | URL
하근찬의 <수난이대>를 들고 돌아오셨군요ㅎㅎ

poptrash 2012-12-20 16:50   URL
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됐네요... 하 하 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고 언젠가 김훈은 썼다. 그 문장을 읽은 건 스무 살을 갓 넘긴 어느 가을이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고 그는 썼지만 책장에선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 했다. 썩어가는 귤처럼 죽음 앞에서 단내를 짙게 풍기는 그의 글이 진정으로 닿고자 했던 곳을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꼭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지하실에서 저 홀로 빠지는 이빨을 뱉으며 <칼의 노래>를 썼다던 작가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나는 여전히 세상 많은 것을 모르는 채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아저씨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었고, 책을 팔았으며, 책에 대해 썼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공무도하>로 이 칼럼을 시작한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고 일갈하던 그 책 말이다. 아득한 그 말의 뜻을 더듬으며 나는, 아둔한 서른을 맞았다. 그리고 서른한 번째의 가을, 나는 또다시 김훈을 읽는다.

그의 신작 <흑산>은 늙은 작가가 서해안의 작은 섬에 틀어박혀 6개월 동안 쓴 원고지 1135매의 소설이다. <내 젊은 날의 숲> 이후 1년 만의 장편소설이고, <남한산성> 이후 4년 만의 역사소설이다. 천주교도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1801년의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정약전과 박해를 피해 암약하는 그의 조카사위 황사영이 이야기의 중심축이지만 소설을 이끄는 것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다.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그의 문장 속에서 모든 ‘주의’는 기만하고, 언어는 공허하며, 삶은 무참하다. 험난한 삶의 조건 속에서 민초들 사이로 들불처럼 번진 천주교 교리는 따듯하나 그로 인해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그런 백성들에게 보내는 대비의 다급한 언어는 허망하게 공중을 떠돌며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누군가는 순교하고 누군가는 배교하지만 실상 그들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 모두는 그저 인간의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이 아무리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사업에 불과하더라도, 그야말로 도리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김훈은 그 도리 없음을, 도리 없이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눈 돌릴 수 없고, 외면할 수 없기에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록 그 자신의 언어를 믿지 못할지라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살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쨌거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늘, 너무나 많은 말을 이미 해버린 것이 아닌지를 돌이켜 보면 수치감 때문에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의 노동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칼럼의 시작과 끝을 그의 소설로 열고 닫은 인연을 핑계 삼아, 나 역시 비슷한 수치감으로 연재를 마친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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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헛소리만 늘어놓던 무비위크 연재를 털었음
꾸역꾸역 참 별 소리를 다했었구나, 새삼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제가 김훈 영감님 팬은 아닙니다. 뿌잉뿌잉~ ლ( ╹ ◡ ╹ ლ)

 
 
연남살롱 2011-10-25 13:03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개 안 읽어 봤지만 그게 헛소리인지 난 몰랐소 허허허~~~ 그리고 누가 알것소~~~ 손가락 살아있을 때 열심히 끄적거리쇼~~

poptrash 2011-10-26 01:40   URL
음... 내 손가락을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_-;
가게에 무비위크 과월호 필요하면 말해. 갖다 줄게.

치니 2011-10-25 13:22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이모티콘 ლ( ╹ ◡ ╹ ლ) 짱이에요 ~ 써먹어야짐.

poptrash 2011-10-26 01:41   URL
"뿌잉뿌잉~"과 세트에요. 뿌잉뿌잉~~ ლ( ╹ ◡ ╹ ლ)

Arch 2011-10-26 20:12   URL
저도 저 이모티콘 보고 아하항, 이랬어요.

팝님, 뿌잉뿌잉

poptrash 2011-10-28 18:52   URL
뿌잉뿌잉으로 하나 되는 인터넷 세상이에요 뿌잉뿌잉~

한수철 2011-10-25 14:56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지는 내 스타일.

그뿐. 춥네요 오늘, pop 님?


poptrash 2011-10-26 01:42   URL
요즘 날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분명 하루가 엄청 춥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게 오늘이었는지 내일인지를 모르겠어요. 아무튼 오늘 정말 추웠고요, 추웠습니다.

아까도 생각했는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 출항하지 못했다"는 문장 사이에서 10년이 흘렀네요. 날이 참.

영구 2011-10-25 15:20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비위크 마지막 연재를 축하(?) 드립니다. 커피 잘 마셨고요!
ლ( ╹ ◡ ╹ ლ)

poptrash 2011-10-26 01:44   URL
그만두는 일은 참 신나는 거 같아. 그게 뭐든.
주변 사람들도 다들 좋아하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그만둘 걸 그랬지...

말없는수다쟁이 2011-10-26 02:24   댓글달기 | URL
무비위크 연재가 뭐에요? 제가 부주의해서 몰라본 건가요 ( '')~ 그건 그렇고 팝님의 글을 읽으니, 김훈 작가의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의 제 느낌이 잘 정제되는 느낌이 드네요. 도리 없음을 도리 없이 바라본다. 흐아... [흑산]을 언제 읽을까요?

ㅎㅎ 이모티콘 귀여워요, 뿌잉뿌잉~~

poptrash 2011-10-26 16:43   URL
무비위크는 영화 주간지고요, 거기에 격주로 북칼럼을 썼어요. 아니 썼었어요. ㅎㅎ 흑산을 읽기엔 지금이 제일 좋은 계절 같아요.

연남살롱 2011-10-26 10:26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빨리와서 글써!! 손가락 접수해버릴라니깐!!

poptrash 2011-10-26 16:43   URL
ㅜ_ㅜ 아... 알겠습니다
 

중매를 잘못 서면 뺨이 석대라지만 책을 추천하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사랑하는 작가의 책을 추천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설마 책 한 권 잘못 권했다고 뺨이야 때리겠냐만, 나도 몰래 두근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마치 사랑을 고백한 소년소녀처럼 상대의 반응만 초조히 기다리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집 <커튼>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폴란드의 소설가 곰브로비치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쿤데라는 한 프랑스인 친구에게 그의 작품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며칠 후, 다시 만난 친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당신 말대로 했어요. 그런데 정말이지 무엇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열을 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당황한 쿤데라가 무슨 책을 읽었느냐고 묻자 <저주받은 것들>을 읽었다고 대답하는 친구. 쿤데라는 탄식한다. “이런 제기랄! 왜 하필이면 <저주받은 것들>이죠?”

쿤데라의 말에 따르면 그 작품은 곰브로비치의 대표작이 아닐뿐더러, 생전에 출판조차 거부했던 작품이다. 곰브로비치의 정수를 느끼려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 <페르디두르케>나 <포르노그라피아>를 읽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우울한 표정으로 쿤데라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친구여,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은 짧아요. 내가 당신 작가를 위해 소비한 시간의 분량이 바닥나 버렸어요.” 결국 소개팅이건 독서건 첫인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내>는 추천하기엔 조금 곤란한 책이다. 물론 ‘스펙’은 그럴듯하다. 일단 함께 출간된 <화성의 타임슬립>, <닥터 블러드머니>보단 훨씬 상식적인 제목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독일과 일본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린 대체역사소설이니 (‘진지한’ 독자들이라면 흔히 경계하곤 하는) 외계 생명체나 과학기술에 대한 장황한 설명도 없다. 게다가 휴고상까지 수상한 딕의 대표작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딕은) <높은 성의 사내>로 현대 미국 소설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추천사는 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책장을 넘기다간 십 분 이내에 졸음이 몰려올 것이다. 별 상관도 없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분명한 플롯 없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인 ‘높은 성의 사내’는 사실상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맥거핀에 불과하며, 과학기술에 대해 장황한 설명 대신 일본에 의해 전 세계에 수출된 <주역>에 관한 지루한 설명이 수시로 등장하고, 그것으로 부족해 중반 이후 갈피를 잃은 이야기는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지루하고 심심한 소설이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매력이 있다. 분명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보다 장르적 재미가 떨어지고, <유빅>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의 폭발·사고의 확장 같은 느낌도 없건만, <높은 성의 사내>만의 맛이 있는 것이다. 마치 평양냉면 같다고 해야 할까. 처음 먹을 때는 밍밍하고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뒤돌아서면 자꾸만 생각나는 그런 맛이. 그러니 오늘의 (억지) 결론. 소개팅이건 독서건 한 번에 모든 걸 알 순 없으니, 인생 비록 짧을지언정 여유를 갖고 살아가자는 그런 이야기.




 
 
다락방 2011-10-14 17:20   댓글달기 | URL
취지는 좋고 이 글도 좋아서 저는 기꺼이 추천을 했지만, 그렇지만 저는 소개팅에 나온 찌질한 남자를 보고 절대로 여유를 가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책이라면 여유를 갖고 읽어볼 생각이 조금쯤은 있지만요.

poptrash 2011-10-14 19:26   URL
음, 언젠가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 만화>에서 본 구절이 생각나네요. 한 남자 생물이(정말 생물임... 진화의 도정에서 갓 육지에 상륙한) 한 여자 생물을 쫓아다니는데, 이 여자아이는 아직 연못에서 살고 있는 남자 생물의 할아버지에게 반해요. 그런데 남자아이가 눈치도 없이 계속 쫓아다니니까 참다 못해 한 소리 하는 거죠. "꺼져, 이 올챙이야!" ... 언제 한 번 소개팅에서 써보세요.

하이드 2011-10-14 17:43   댓글달기 | URL
lg의 가을야구에도 여유..를? 아.. SK가 올라왔으니, 롯데는 이제 광탈만 남았어요. ^^

poptrash 2011-10-14 19:26   URL
저는 롯데가 이겼으면 좋겠지만, 이미 제 달력에서 야구란 건 이미 끝났으므로 책을 읽고 술을 마시겠습니다...

코르타사르 2011-10-14 19:10   댓글달기 | URL
덤으로 붙은 볼라뇨 추천사를 보니 복합적으로 므흣하군 ㅎ

poptrash 2011-10-14 19:27   URL
thanks to 라도 넣을 걸 그랬나 ㅎㅎ

후와 2011-10-15 13:41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추천하시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ㅋㅋㅋ 그동안 바쁘셨던 모양이네요^^

poptrash 2011-10-15 14:01   URL
정신이 나갔었어요. 좀 잘 나가요.

LAYLA 2012-01-10 00:38   댓글달기 | URL
poptrash님 근데 이 책 마지막이 무슨 말이에요?
저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어요
주역의 점괘처럼 메뚜기 책이 진실이라면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허구라는 것인가요? (매트릭스처럼)

힘들어도 결말 바라보고 열심히 읽었는데
밤 12시에 이 카오스라니 OTL

poptrash 2012-01-10 00:58   URL
이런, 어쩌죠.
그런 카오스 저도 뭔지 아는데,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지금 제게는 책도 없고,
지나버린 페이지는 대개는 잊어버리는 편이라.
다만 저는 그 부분을 읽을 때 별다른 의문이 들지 않았단 기억인데,
그렇다면 아마 생각하시는 게 맞을 거예요.
(혹은, 그냥 몽롱하게, 아무 비판의식 없이,
쭉쭉 단어들만 읽어나갔을 가능성도...;)

LAYLA 2012-01-10 01:41   URL
고맙습니다 poptrash님
모든 리뷰와 페이퍼를 샅샅이 뒤졌는데
poptrash님이 제일 잘 아실거 같드라구요
생각하는게 맞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설득력을 가지다니 ㅎㅎ
갑자기 카오스 종료 ^,^

poptrash 2012-01-11 01:53   URL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ㅎㅎ
하지만 정작 저는 저만의 카오스에 빠져 버린 밤이에요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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