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고 언젠가 김훈은 썼다. 그 문장을 읽은 건 스무 살을 갓 넘긴 어느 가을이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고 그는 썼지만 책장에선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 했다. 썩어가는 귤처럼 죽음 앞에서 단내를 짙게 풍기는 그의 글이 진정으로 닿고자 했던 곳을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꼭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지하실에서 저 홀로 빠지는 이빨을 뱉으며 <칼의 노래>를 썼다던 작가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나는 여전히 세상 많은 것을 모르는 채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아저씨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었고, 책을 팔았으며, 책에 대해 썼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공무도하>로 이 칼럼을 시작한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고 일갈하던 그 책 말이다. 아득한 그 말의 뜻을 더듬으며 나는, 아둔한 서른을 맞았다. 그리고 서른한 번째의 가을, 나는 또다시 김훈을 읽는다.
그의 신작 <흑산>은 늙은 작가가 서해안의 작은 섬에 틀어박혀 6개월 동안 쓴 원고지 1135매의 소설이다. <내 젊은 날의 숲> 이후 1년 만의 장편소설이고, <남한산성> 이후 4년 만의 역사소설이다. 천주교도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1801년의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정약전과 박해를 피해 암약하는 그의 조카사위 황사영이 이야기의 중심축이지만 소설을 이끄는 것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다.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그의 문장 속에서 모든 ‘주의’는 기만하고, 언어는 공허하며, 삶은 무참하다. 험난한 삶의 조건 속에서 민초들 사이로 들불처럼 번진 천주교 교리는 따듯하나 그로 인해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그런 백성들에게 보내는 대비의 다급한 언어는 허망하게 공중을 떠돌며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누군가는 순교하고 누군가는 배교하지만 실상 그들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 모두는 그저 인간의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이 아무리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사업에 불과하더라도, 그야말로 도리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김훈은 그 도리 없음을, 도리 없이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눈 돌릴 수 없고, 외면할 수 없기에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록 그 자신의 언어를 믿지 못할지라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살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쨌거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늘, 너무나 많은 말을 이미 해버린 것이 아닌지를 돌이켜 보면 수치감 때문에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의 노동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칼럼의 시작과 끝을 그의 소설로 열고 닫은 인연을 핑계 삼아, 나 역시 비슷한 수치감으로 연재를 마친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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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헛소리만 늘어놓던 무비위크 연재를 털었음
꾸역꾸역 참 별 소리를 다했었구나, 새삼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제가 김훈 영감님 팬은 아닙니다. 뿌잉뿌잉~ ლ( ╹ ◡ ╹ 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