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철수 사용 설명서>의 뒤표지에 당당하게 적힌 “루저 문학의 최고 극단”이라는 심사평을 보고 조금 웃었다. 루저 문학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가 무엇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을 뿐더러, 최고 극단이라는 상찬이 너무 과해 도리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 탓이다.

물론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애매하다. 최고 극단은 집어치우더라도 루저 문학을 1) “루저가 쓴 문학”이라고 정의할 때,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면 루저 문학이 아닌 현대 한국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2) “루저를 다루는 문학”이라고 할 때, 불사신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오락 소설이나 재벌가의 선남선녀들이 티격태격하는 로맨스 소설을 빼면 루저 문학이 아닌 문학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뭐,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가 적어도 2)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173cm의 키에 65kg 몸무게, 지방국립대를 졸업한 철수는 스물아홉의 백수다. 취업 시장과 연애 시장 모두에서 간택 받지 못한 그는 부모가 보기에 제품보증기간이 한참 지나버린 재고품이자, 사회가 보기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불량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회사가, 부모가, 애인이 원하는 기능을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철수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아무리 노력한들 냉장고가 와이셔츠를 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철수는 손수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쓰기로 결심한다. 취업 모드, 학습 모드, 연애 모드, 가족 모드 등 상황에 따른 사용법을 적는 것으로 모자라 준비와 사용, 관리와 주의사항에 이르기까지 사용 설명서의 형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심지어 옛 여자친구들의 상품평과 질의응답을 싣기도 한다.

문제는 철수가 ‘자신의 기능을 확인할 기능’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취향과 욕망, 비밀이 없는 철수는 타인의 시선에 그저 반응할 뿐인, 철저하게 수동적인 인물. 시종일관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그걸 알아내는 기능이 없고, 설령 안다 해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으니 나는 참 가련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철수의 사용 설명서는 결국 그가 할 수 없는 것들의 지루한 나열일 뿐이다. 그런 그의 태도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라고 고심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사용 설명서 형식을 취하느라 일부러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약화”시켰다고 밝힌 작가는, 대신 드라마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수혈한다. 형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킨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속적인 것은 철수 그 자신. 그는 인간이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루저들의 안타까운 초상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주장하는 ‘패기 없는 이십대’의 프레임 안에 통속적인 관념과 자기연민을 채워 만들어진 엉터리 기계인형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저를 다룬 새로운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라는 심사평은 한번쯤 숙고할 가치가 있다. 기존의 문학과 다른 루저 문학의 정의가 3) “바로 이 작품에 있음”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루저 문학이 나올 필요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내가 루저라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아니, 진짜, 울컥한 게 아니라니까요, 레알…




















soy un perdedor i'm a loser baby so why don't you kill me


 
 
비로그인 2011-09-06 13:28   댓글달기 | URL
안철수 사용 설명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겼어요 한수촬님!!!
저도 '루저 문학'이라는 용어가 거슬려요. 왠지 '루저'가 '문학'을 수식하기 위해 붙은 것 같아서요ㅠㅠ

poptrash 2011-09-06 19:18   URL
루저란 말이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원래는 저렇게 beck 같은 청년들이 흐적흐적 노래하던 단언데...

말없는수다쟁이 2011-09-06 16:47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고 싶어요! 이거 읽으면 왠지 어라, 누가 날 이렇게 잘 아는겨? 이런 반응 나올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지만요. ㅎㅎ (댓글 읽고 킥킥)

poptrash 2011-09-06 19:19   URL
문득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 14 - 모여라! 패자 축제>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요

별족 2011-09-06 17:05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끝까지 도저히 못 읽은 거군요.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없으니 어떻게 끝까지 읽을 수 있겠어요?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것은 쓸모가 있기 때문이지만, 내게 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poptrash 2011-09-06 19:19   URL
그렇다면 이제 철수를 만드실 차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