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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개 ㅣ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매그레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누런 개>는 매우 황송하옵게도(!!)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에 번역된 적이 있는 심농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77년경에 <사나이의 목>이라는 작품과 함께 <황색의 개>라는 제목으로 함께 동서미스터리북스 시리즈에 포함되어 출간된 바 있다. 이 동서미스터리북스의 구입연도는 2005년 2월경이다.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매그레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번역 출간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이십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난 시간들이 꿈같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질의 번역물이 넘쳐나는 지금이, 환상적이면서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근자에 번역된 그것과 약 35년전에 번역된 같은 작품을 한 손에 잡고 뒤적이다보니, 묘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래된 중역본인 <황색의 개>를 읽었을 때에는 그 어두운 분위기와 무서운 동물의 이미지가 겹쳐져 묘한 감정의 변화와 본격적인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좀 더 깔끔한 번역을 통하여 작품의 묘미와 본질을 더욱 쉽고 감질맛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그레 시리즈를 그렇게 많이 읽어본 것은아니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번역된 네 작품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분위기와 초현실성, 그리고 보다 더 강화된 본격추리의 틀과 사회상의 반영을 더욱 심도깊게 그려냄으로써, 다양한 장점들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앞의 네 작품과 비교되는 이 작품의 특화된 장점은 바로 더욱 높아진 작품 자체의 중량감과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앞의 작품들에 비하여 이 작품에서는 개인의 아픔과 사건이 사회 전체의 공포와 타격으로 심화됨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건의 동기나 범행 자체 등에 있어도 거대하면서도 냉혹한 사회의 영향력과 힘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 작품들과도 흡사한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 외에도 앞의 네 작품들에 비해 더욱 강화되고 세련되어 졌다고 볼 수 있는 순수미스터리로서의 작품의 재미 또한 대폭 강화되어,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그 수준이나 노련함이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지역 유지, 기자, 기업가 등의 다양한 사회 계층이 작품에서 제시되고 또 이들을 둘러싼 범죄가 시(市)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사회 반영적이고 사회 고발적인 경향을 가진 작품으로도 이 <누런 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분석이나 사건 전체를 큰 틀에서 보는 매그레의 추리 경향도 이제는 정점에 오른 듯 하여, 다양한 한계나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점에 오른 추리물로서의 매그레 시리즈의 위치를 확실하게 다진,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의 무대는 콩카르노 시의 라미랄 호텔 일대인데, 이 작품이 발표되고 1932년 영화화되자, 이 작품의 무대가 된 콩카르노 클랭슈 호텔의 소유주는 작중 호텔명인 <라미랄 호텔>로 개명하도록 작가에게 요청했다고 하니, 이미 인기절정의 젊은 작가가 된 심농의 위상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매그레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인지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그레는 살아 움직이는 우리들의 친구이다. 그것도 매우 전도가 유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