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뒤에 `불암사`라는 자그만 절이 하나 있다. 등나무 그늘 아래에는 누구나 차를 마실 수 있게끔 준비가 되어 있고, 예쁜 정원을 두고 있는 아담한 절이다. 재작년에는 한동안 내가 출근하기 전 새벽에 찾아 108배를 올리기도 했다. 소박함에 이끌려 찾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고요함이 좋아 이 절을 가끔 찾아간다.

 

어느 날 밤, 아내, 슬뫼와 함께 이 절에 올랐다. 둥근 달이 금정산 능선 위로 살짝 솟아 올랐고, 소쩍새는 고요하게 산능선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절간은 고요했고 캄캄했다. 은은히 향내가 절 마당에 번져 올랐고,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 대웅전은 고요한 불빛으로 눈이 편안했고, 3층 석탑은 그냥 서 있었다. 석탑 뒤 정원에는 금낭화가 땡그랑 울릴 것 같았고, 스님이 손수 가꿀 상추밭은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오를 것이었다. 모두가 소리가 없는 적막한 시간이었다.

 

이 절에서 20여 년 째 공양을 짓고 계신 보살님을 만났다.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고요와 적막 뒤에 느껴지는 회한같은 게 느껴졌다. 슬뫼를 보면서 손자를 떠올리는 모습이 유독 그랬다. 아니 아니, 이건 그 보살님만 그런 게 아닐 거야, 그리 생각하다가도, 보살님의 음성이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끈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슬뫼에게 건네는, 우리가 먹이지 않는 과자를 건네는 그 손길에도, `어, 저건 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게, 참으로 망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언젠가, 삶은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지는 것인가, 살아내는 것인가, 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 답은 살아지는 것이다, 로 결론이 났었다. 살아간다고 하기에는 삶이 너무 쉽게 여겨졌다. `살아간다`는 말 속에는 그 어떤 걸림이나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척 편안하게 `살아진다`라고 말했다. 그 어떤 장애물이나 힘겨운 일들이 있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냥 `이 또한 지나가는`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지나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과 눈물과 아픔이 필요했다. 하여 이제는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때론 극과 극을 달리는 생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야, 아니, 무엇인가가 없더라도 나는 이 과정을 존중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마음 먹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 메일을 확인하다가 10년 전의 상황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사진 몇 장을 찾았다. 그 상황이 고스란히 떠오른다는 것은, 또 헤매어야 할 감정과 맞닿는 것이고, 아니, 이젠 좀 거리를 두고 객관화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미안함이 지배하는 이 감정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묵은 숙제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느 가을 산행.

 제대와 복학 후, 나는 심한 정신적 방황기를 경험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난 사춘기를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제서야 성장통을 경험한 셈이다. 그 성장통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진은 현상이 되어 어머니 집 장식장에 들어 있다.

 

 

 범어사 뒤편이었다. 대성암 표지판을 보고 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었지.

 이 사소한 기억까지 한다는 것은...

 

 

 

 대학 4학년. 이때는 취업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다?

 교육과정해설서, 문학, 문법, 교육학... 지하철이고 카페고 도서관이고

 짬만 나면 펼쳐들었다.

 

 

 

 임용을 치고 발표가 나기 전에 부석사로 여행을 떠났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의 부석사. 바람이 몹시도 불었던 풍기 영주, 기차.

 

 

 발령을 받고 또 긴 시간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살은 쭉쭉 빠졌고, 주름은 얼굴을 덮었다.

 불면의 밤을 긴 시간 보내야 했다.

 

  사상에 있는 어느 해물탕집 건물의 호프집.

 삶은 슬픈 것이라고

 이젠 더 이상 꿈꿀 것도, 애쓸 것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어보자는 마음이,

 지금도 읽힌다.

 

 우린 모두 그동안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으므로.



 
 
2012-05-21 12:25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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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이른 슬뫼이지만, 휴일이니만큼 집안에 있기에는 그랬다. 하여 친구 가족네들하고 삼락 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 날 행사에서 만나 같이 놀기로 했다. 우리 식구가 도착한 무렵에는 어린이날 행사가 거의 종료될 시점이었고, 할 수 없이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공원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없어 뜨거운 땡볕이었다. 얼마 전 구입한 텐트를 치고 놀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어렵사리 텐트를 쳤다.

 

 

 

 한동안 국립자연휴양림에 빠져 다니다가 이젠 캠핑으로 슬~~ 관심 이동. 그래서 이 텐트를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코베아 문리버 텐트.

 

 

  삼락 공원은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렇게 맨발로 놀아도 별 무리가 없겠다. 하지만 여기저기 버려진 담배 꽁초는 조심해야.

 

 

 

 슬뫼는 공놀이를 좋아한다. 공을 쫓아 뛰는 모습

 

 

 

 어이차 어이차~ 공을 뺏어볼거라고 용쓰는 모습

 

  이젠 뛰는 것도 제법이다.

 

 폼을 잡는 아들

 

 

 뛰는 걸 좋아한다.

 표정이 봄같다.

 

 이날 친구네 식구는 떠나고 우리는 텐트 안에서 더 놀다가, 대구에 놀러간 동생네 식구를 불렀다. 동생네 식구가 오는 사이, 나는 걸어서 홈플러스 가서 이것 저것 장을 보고 왔고, 텐트 안에 등을 밝히고, 둥근 달을 배경삼아 밤늦게까지 놀다가 돌아왔다.

 

 아... 이제 진짜 캠핑을 가고 싶다~



 
 
 

 우리 가족은 통도사 암자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 아내가 정토회와 인연이 닿아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덕도 있고, 통도사 암자가 주는 느낌이 무척 안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우리는 `통도사 갈래?` 말이 나오면 어김없이 채비를 한다.

 

 이 날도 아내가 오후에 여유가 생겨 통도사로 출발했다. 4월의 서운암은 들꽃으로 가득할 것이었다.

 

 

 

 아내가 준비한 점심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고 서운암 산책에 나섰다. 우리 세 가족을 본 어떤 분이 `제가 가족 사진 찍어드릴까요?`해서 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올 11월 말이면 이 사진에 새 식구가 포함될 것이다. 기대되고 떨린다.

 

 

 

 아내와 슬뫼. 뭐가 그리 재미진지 슬뫼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나이 들어서도 저런 표졍을 지을 수 있길... 아빠가 해보지 못한 거라, 그런 희망이 있다.

 

 

 

 `온나 온나` 하는 장면이다. 뭐 좋은 걸 발견했는지, 엄마를 향해 이런 몸짓을 한다.

 

 

 이제 걸음걸이가 자리를 잡았다. 씩씩하게 넘어지지 않고 잘도 걷는다.

 

 

  나무 밑에 너른 평지가 있어 공을 차고 놀았다. 아래로 굴러 내렸다가 쫓아가서 주워 오기를 여러번 반복. 장애물도 곧잘 타고 넘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놀았다.

 

 

 넘어지고 나서 `어, 왜 넘어졌지?`하는 듯한 표정이다.

 

 

 4월 서운암은 이렇게 금낭화가 지천이다. 땡 종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걷기에 좋은 길이다. 고요하다.

 

 

  서운암의 장독. 줄을 지어 선 모습에서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진다. 장도 잘 익겠다.

 

 

 

 좀 놀았다고 목이 타는 모양이다. 이젠 물도 혼자서 마시겠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 삼각대를 세우고 가족 사진 찰칵~~!!



 
 
 

 

 이 노래를 듣고 가슴이 벅차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