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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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내가 읽은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은 개정신판이다. 2007년에 초판으로 출판된 걸 읽었었는데, 올해 독서토론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읽기 위해 개정신판을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초판보다 분량이 늘었고, 시대의 아픔-세월호-에 관한 글이 새롭게 실렸다. 이 대목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꾸준한 성찰적 자세를 엿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회 현상을 통해 스스로를 포함한 우리 인간의 꾸준한 성찰을 해야 한다는 자세, 매 순간이 언제나 처음이어야 한다는 결기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선생님께서는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사셨다는 반증 아닐까 한다.

 이십대 중반 무렵 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시작으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만났다.(후로 두 번 정도 선생님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그 후로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담론> <강의> <변방을 찾아서>을 읽었다. 또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을 읽었는데, 그건 뒤에 신영복 선생님께서 뒤친(번역한) 글이란 걸 알게 되었다. 전반부의 책들은 짧은 에세이를 묶어 놓아 읽기가 쉬울 것 같지만, 내용이 진중할 뿐만 아니라 글에 힘 있이서 곱씹게 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니 한 편의 에세이를 읽고서, 그것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다시 읽어보고 되새기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책 <처음처럼>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의 글이 이처럼 진중하고 도저한 뜻을 품고 있는 것은 고전에 대한 깊은 공부에서 길어온 것이어서도 그렇겠고, 감옥에서 보낸 시간, 그러니까 사람이나 본인, 그리고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빚어진 정수같은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앞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길게 보면서,

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이 말씀은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남긴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길게`와 `함께` , `동행`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셨고, 실천하셨다. 그리고 영면에 드셨어도 우리들과 함께 길게 동행하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삶 전체, 아니 죽음 이후에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실천하시는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 본문은 책 제목이 된 짧은 걸로 시작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책 21쪽) 

 

 이 글은 책의 초판에서도 제일 처음 실린 것으로, 그만큼 선생님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매 순간을 처음처럼 대하는 선생님의 성실함은, 긴 영어의 생활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 후로도 흔들림없이 깊은 사상적 성찰을 설파해오실 수 있도록 한 원천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의 글은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버릴 것 없이 마음에 꾹꾹 새겨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걸 여기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무리이고,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 몇 개 정리해 두어야겠다.

 

물은 빈 곳을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차곡차곡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책 124쪽)

 

 `盈科後進`의 제목이 달린 글의 전부이다.

 소위 지금의 시대를 속도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빠른 일처리에 능숙한 사람이 능력있다 평가받는 경우가 많고, 기계의 성능도 빠른 일처리로 평가되고 값이 매겨진다. 생활의 속도는 우리 부모 세대보다 더 빨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빨라졌기 때문에 좋아진 것도 있을 것이다. 일의 효율이 높아졌다는 것이 대표적이겠지. 그런데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바빠 죽겠다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아니, 기계의 일처리 속도도 전보다 빨라졌고, 많은 일들을 자동화했는데, 왜 우리는 바빠 죽는 걸까?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집중하기 보다, `이 일을 끝내고 나면 저 일을 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현재에 충실한 삶보다 오지 않은 순간을 걱정하며 준비하며 각오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재에 충실한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빈 곳을 채우고서야 다음이 있다, 말씀하신다. 일에는 과정이 있다는 말씀같기도 하고, 현재에 충실한 것이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내가 다시 이 서재에 글을 남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실은 선생님의 이 글이 남긴 여운 때문이다. 거기다 독하지 못한 독서는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세상에 완성이란 없습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이 삶의 참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책 153쪽)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나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아예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실패가 참 삶이라 말씀하신다. 그 속에 반성이 있으며 가능성이 있다고,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에 눌어담아 두어야겠다. 완전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진 못하더라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면 좋겠다.

 

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은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열어 주는 문도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열고 나가는 문이라야 합니다.

자기 발로 걸어 나가는 문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책 172쪽)

 

 

 `감방문 안쪽`이라는 제목이 달린 글이다. 선생님의 체험에서 길어올린 글임은 분명하다. 답답한 감방을 스스로 걸어나오고야 말겠다는 결의같은 것이 무겁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힘을 빌어 자유를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결기로 자유를 쟁취하고야 할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나는 언제라도 한 번 이런 주체적인 의지를 세워보겠다 다짐했던 적이 있었나. 부끄럽다.

 

세월호의 참사는 하부의 평형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과적 증축 정원 초과 등 상부의 과도한 무게에 비하여

하부의 중심이 허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부를 증축하는

감시권력의 강화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부의 중심이 든든해야 합니다.

하부는 서민들의 삶이며 그것을 지키려는 민중운동입니다.

이러한 서민들의 의지를 억압하고 상층권력을 강화하는 것은

평형수를 제거하고 또다른 세월호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책 272쪽)

 

 `세월호`라는 제목의 따끔한 글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 운동이 한창인 요즘, 우리들의 표심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이대로 괜찮은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과도한 상층 권력의 무게를 빼내고 삶과 민중을 지키려는 민중운동의 흐름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인지, 아니면 새로운 상층권력을 뽑아 또다른 세월호를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선생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잊지 않으셨다. 강연이나 글에서 여러 차례 밝히신 `碩果不食` 씨 있는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다. 언제고 씨앗을 틔워 새로운 열매를 맺을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 우리 현실이 암울하고 참담하다 해도, 희망의 언어를 놓아서는 안 된다. 함께 손잡고 같이 비를 맞는 자세로 앞으로 올 희망을 노래하길, 선생님께서는 당부하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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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법칙 - 생명에 관한 대담하고 우아한 통찰
션 B. 캐럴 지음, 조은영 옮김 / 곰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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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사이 날씨가 더워질 무렵이면, 금강과 낙동강의 녹조 심화와 관련한 기사가 난다. 강물에서 유독성 물질이 검출되었다거나 물고기의 집단 폐사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강 생태 환경은 이미 그 균형이 망가졌으며, 그 속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 사업 이후, 이런 경향은 보다 심화된 것 같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한 강의 직강하 작업과 보를 가장한 댐의 건설이 주원인이라는 진단이 많다. 그래서 환경단체나 시민들은 보를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 있는 지구상에 남은 몇 안 되는, 다양한 생태가 군집을 이뤄 야생하는 생태 발물관이다. 이 책은 세렝게티에서 야생 코끼리를 조우한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황금 사자 무리와 줄무늬 물결이 바다를 이룬 듯한 20만 마리의 얼룩소, 100만 마리의 검은꼬리 누의 장관이 펼쳐진다. 어떻게 세렝게티는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각기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많은 동물들이 같은 공간에 서식하면서 그곳에 존재하는 먹잇감을 모조리 먹어치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인체도 수많은 종류의 분자와 세포가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조절하는 자가 조절 시스템으로 유지가 되는 것처럼, 자연 생태계 또한 서식하는 동식물의 균형을 유지하는 생태적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저자는 세렝게티 법칙이라 부른다. 이 책은 인체의 몸에서 부터 시작해, 이러한 동식물의 자가 조절 능력을 다양한 사례로 보인다. 또한 생태 균형이 무너진 사례와 그 원인,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을 안내하면서, 앞으로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생리학자 월터 캐넌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병사들의 쇼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몰두한다. 캐넌은 쇼크를 경험하는 군사의 혈액을 검사했더니 탄산수소이온의 농도가 현격히 낮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 농도를 높이기 위해 탄산수소나트륨을 환자에게 주사하게 되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로써 캐넌은 인체의 `항상성` 개념을 도입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우리의 신체는 신체 환경을 특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하도록 제어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사람의 자가 조절 메커니즘이 무너졌을 때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물의 수는 어떻게 조절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찰스 밀턴은 극지 탐사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그는 극지 경험에서 동물성 플랑크돈과 어류는 바닷새의 먹이가, 바닷새는 북극여우, 북극여우는 바다표범, 바다표범은 북극곰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른바 `먹이사슬`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모든 동물을 움직이게 하는 1차적 원동력은 먹이에 있으며, 군집 전체도 먹이 공급에 따라 그 규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사령관으로 복무했던 모노는 보편적 조절의 법칙을 발견한다. A가 B를 양성적으로 조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때 A가 B에 대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A가 B를 억제하는 C를 억제함으로써 B에게 간접적으로 양성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실제 모노는 효소 합성 연구에서 이와 같은 현상-억제자의 존재-을 발견하고, 이를 `이중부정의 논리`라고 부른다. 효소 합성 실험에서 유도 물질을 넣었더니 효소 합성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유도 물질이 직접적으로 효소 합성을 활성화한 것이 아니라, 효소 합성을 저해하는 인자를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를 억제함으로써 양성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발견이었다. 이러한 이중부정의 논리는 생태계에서도 작동한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A의 개체수가 없거나 확연히 준다면 C의 창궐로 인해 B또한 절멸할 가능성이 있다. 해조류 켈프는 성게의 먹이, 성게는 해달의 먹이다. 해달이 사라진 곳에서는 성게만 무한 증식하고 해조류 켈프는 거의 없어져 버렸다. 

 인체에 발생하는 암또한 마찬가지 현상이다. 암세포는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 않고 특정 세포가 무한 증식할 경우 발생한다. 우리의 몸은 무한 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억제자가 있다. 그런데 그 억제자가 파괴되었거나, 억제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도록 하는 외부적 요인이 있을 때, 세포 분열은 억제되지 못하고 무한 분열하게 되고, 그것은 곧 암으로 이어진다.

 세렝게티 법칙은 항상성에서 출발해서, 먹이사슬, 이중부정의 논리를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어느 개체 한 군데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곳 생태계엔 암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것을 유발하는 존재가 최대 포식자 우리 인간이라는 점이다. 금강 낙동강 녹조류의 발생 원인도 결국엔 인간에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이리호수의 녹조, 동남아시아의 벼멸구 이상 증가, 대서양의 소코가오리의 이상 증식 또한 인간이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었다. 벼멸구 이상 증가와 인간이 관련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는데, 이런 논리였다. 벼멸구의 유충과 성충을 잡아머근 천적은 거미이다. 그런데 인간이 벼멸구를 처치하겠다고 농약을 쳤더니, 천적인 거미를 모조리 없애버린 결과를 초래했고, 그것이 벼멸구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소코가오리의 천적은 상어인데, 인간이 상어 남획을 한 결과 소코가오리가 이상 증식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우리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인간의 노력으로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스스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준 사례가 많다.

 고롱고사는 모잠비크의 국립공원이다. 원래 여기도 세렝게티처럼 다양한 생태종이 서식하는 거대한 생태 박물관이었다. 그런데 1975년 모잠비크 내전으로 인해 이 낙원은 사라져버렸다. 2002년 미국의 한 자선 사업가 그레그 카는 고롱고사를 방문하고서 그곳의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큰 꿈을 꾸게 된다. 공원은 동물이 절멸해버려서 숲이 넓어졌고, 초원은 높아져만 갔다. 먹이사슬의 아래로부터 회복할 필요가 있었고, 카는 다른 공원으로부터 초식동물인 아프리카물소부터 도입하는 노력을 했다. 그후로 얼룩말, 검은꼬리 누, 코끼리, 하마, 영양 등을 차례 차례 도입했다.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00년에는 모든 종을 다 합해도 1000마리가 못 되었던 것이 2013년 무렵에는 총 개세수가 무려 7만 1,086마리로 집계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1970년 무렵으로 생태계가 회복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인간은 확실히 생태계를 독점하는 핵심종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생태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생태계에 해를 가한다면 결국에는 최후의 패배자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또한 20세기가 `의술을 통한 더 나은 삶`이 우리 삶의 모토였다면, 21세기에는 `생태학을 통한 더 나은 삶`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생태계 조절의 법칙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생태 환경의 유지는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 그리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인간의 실천만이 길이다.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의 국정 운영 목표는 경제 성장률 몇 프로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도 증진이라고 한다.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으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생태계를 보존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은 어떤가.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무분별한 토목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훗날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증거가 곳곳에서 넘쳐나는 데에도 무한반복, 무한질주하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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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고, 자식이 생기면서 문득, `죽음은 내게 어떤 순간으로 다가올까?`를 염려비슷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사랑하는 이와 한순간, 지극히 찰나적인 순간,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미칠 때면 두렵기까지 하다.

 살면서 경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는데, 죽음만큼 이것과 저것을 확연히 가르는 것이 있는가. 사랑하던 이와의 이별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는 아침도, 12월 31일과 1월 1일의 그 간극도, 결코 확연하지 않았다. 물론, 불가에서는 죽음을 인연설로 설명한다만,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현상에 많은 것을 걸 수밖에 없는 평범한 나로서는 공감은 하나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한 평범한 가장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그날로 그의 서른 중반의 시집가지 않은 막내딸이 카메라를 집어든다. 그로부터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까지 아버지의 일상을 담기 시작한다. 죽음을 앞둔 이의 일상이라... 너무나 지극한 일상이어서, 너무나 지극하게 덤덤한 일상이어서 나는 꽤 놀랐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는 나로서는, `손녀랑 잘 놀아주기`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의 앞자리에 두는 그이의 용기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운명 직전에 손녀에게 더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장면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의 소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더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 살아계시는 아흔의 노모에게는, 제가 먼저 가게 돼서 죄송합니다.

 

 죽음의 준비 과정을 무척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이었다. 본인이 장례식에 초청할 사람의 명단을 준비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그 바람대로 장례식장을 스스로 준비하고 사전답사를 마치는 과정이 뭐 큰 결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냥 살아가는 나날의 일상 가운데 하루쯤으로 여겨졌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 나의 죽음은 어떤 순간일까? 나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까? 누군가는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뜻은 뭘까? 죽음은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럴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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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싸해지면 `산`을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며칠씩 걸리는 여행은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잘 나지 않고,

그저 하루 일정으로 산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산 가운데서도 으뜸은 단연코 지리산! 이유는 딱히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지난 10월 25일. 나는 가을을 핑계 삼아 지리산에 다녀왔다.

슬뫼와 아내는 남겨두고.

두 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땐 내 마음에 신열같은 게 있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집에서 두 시간여를 달려 거림에 도착했다. 가

까운 식당에서 소박한 시골 밥상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완만한 산길에 들어섰다.

가다 거림 계곡에 내려 다리를 잠시 쉬기도 했고,

예쁘게 물든 잎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석산장에서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데웠다.

촛대봉에 올라 한 시간여를 상념에 젖었다.

 

 시골 밥상

 

  별꽃처럼

 

  가을이구나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능선

 

  촛대봉에서 반야봉과 노고단을 건너보다

 

  하산길 마지막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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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학교에서 여는 시창작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1주일에 2시간, 시인 박윤규 선생님이 오셔서 시쓰는 것에 대한 강의를 해주신다. 사실 그 공고를 접하고부터 좀 갈등했다. 시 읽기에는 그런대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시 쓰기라...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소스 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그런 고민과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 마을 학교 교장 선생님의 전화 한통 탓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나에게까지 전화를 하셨다니... 측은했다. 마을에서 이 좋은 강좌를 여는데, 그것도 무료인 셈인데, 사람이 없다니... 나는 괜히 이런 순간에 오기같은 게 발동한다. 쪽수라도 채워서 이런 강좌가 다음 번에도 지속될 수 있는 힘이 생기길, 하는 것. 하여 나는 두번째 강좌부터 참여했다. 수식과 행구분과 연구분 등을 구체적 시를 통해 조금 맛봤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 각자가 시를 써내라셨다. 어이쿠... 이 강좌를 듣겠다 마음 먹으면서 영화 <시>를 떠올렸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시 창작 수업에 참여하고 자신의 이야기와 손자의 이야기를 엮어 시를 써내려간다. 나는 시 쓰기 과제가 제일 두려웠던 거다.

 

 하지만... 언젠가 살아오면서 열렬히 뜨거웠거나, 가슴 무너지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표현했다면, 지금 역시 표현할 수 있겠거니, 막연히 자신감을 가졌다. 어쩌면 `뭐든 다 된다.`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한몫했겠다.

 

 근데,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2,3년 전 어느날 끄적인 걸 시랍시고 냈다.

 

 아래와 같다.

 

 

미황사

 

            

미황사에는 누런 소가 병풍처럼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아득히 그리운 시간과 그 그리운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 사내를 위해

천년을 오도카니 추억처럼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길도 핏빛 서러움을 꽃으로 피워낸 동백숲 이야기도 품고 있을 게고

아무렴 깻돌의 자갈자갈자갈 소리도 품고 있겠지.

배를 타고 넘어온 황소처럼

해풍을 닮은 늙은 어부의 낯빛도 품었겠다.

한 밤중 반딧불이가 신비롭던 밤,

시 노래를 흥삼아 오른 아득한 산 오솔길

땅 디딘 다리만큼이나 청초한 청춘들 옆에도 누워있을 게다.

바다를 건너왔다던 황소 이야기 들려주던 목소리를 품은 길은

아직도 휘랑휘랑 돌아

그이에게로 이어질까.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으니

 

 박윤규 시인이 하나하나 총평을 해주셨다. 2행의 그립다는 말이 반복된다는 것, 4행의 보길도 핏빛 서러움의 연결이 어색하다는 것. 나는 그런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

 

 사실, 나는 이게 시라고 쓰진 않았다. 편지글 한 부분에 생각난 게 있어 끄적였다.

 

 시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보다,

 나는 다시 보길도와 미황사와 걸으면서 보낸 그 남도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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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