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가는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이것은 작년 폐암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한 병리학자의 말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아름다운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는 아라비아인의 인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낙타를 구별하는 데 수십 가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세계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하여 구정되는 것일까. 그러나 존재와 언어 사이에는 아무래도 틈이 있는 것 같다. 언어는 그만치 불완전한 것이다. 그 틈을 우리는 시로 메우는 것이다.

사람에게 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황홀한 말이다. 나는 바다와 강이 맞닿는 낙동강 하구에서 바라보았던 어느 겨울날의 한 풍경을 생각한다. 그날 새는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아득히 먼 낙탓빛 바람에 흩날리면서 새는 눈부신 한 점에 불과했다.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1983.허만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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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책이다. 내 책을 꽂을 공간을 갖는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소원이 되어버린 처지에 소장하는 책은 몇 번을 고심해서 고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도서관에서 두어번은 빌린 적이 있는, 너무너무 갖고 싶은 열망에 잠을 설칠만한 책일 경우에 해당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 벼르고 벼르다가 산-도서관에서 몇 번은 빌려서 본 책이다.
나는  읽으며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냄새의 정체가 내 속에 조금이라 잠재되어 있는지 확인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2004. 9. 20.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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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9-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언어는 그만치 불완전한 것이다. 그 틈을 우리는 시로 메우는 것이다. ] 대단한 성찰이네요.
킁킁~ 저도 십리밖 물냄새를 맡다가 더 오랜 시간을 맡아보아야겠기에 추천하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