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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토지 서문에서-
'여자의 독서'는 여자 작가들이 여자에 대해 쓴 책만을 소개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완벽히 홀로 서본 이들' 혹은 '완벽히 홀로 서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거나,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낸 작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작가를 빼닮은 캐릭터들의 여정이 소개된다.
예를 들면,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불행한 가정사에 전쟁의 비극이 겹친 것으로 모자라,
고작 이십 대에 남편은 형무소에서 명을 다하고, 세 살 아들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다.
그녀는 1950년 대에 과부로 힘겹게 살아가면서,
'재봉틀' 하나를 믿고 '토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을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토지'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낱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지는 얼마나 중요한가.
(운명 앞에, 가혹한 삶 앞에) 애쓰고 저항하면서 우리는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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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제인 에어, 캔디 같이 익숙한 캐릭터의 이야기도 좋지만,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부분은 '스스로 생각하라'는 한나 아렌트의 일침이었다.
한 인종을 청소해버리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 '나치즘'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태도'들 때문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런 자세가, 언젠가부터 나를 좀먹고 있었다.
"전에 같이 촌스럽고 초라하던 친구들은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가고 있는데,
나 혼자 운동장을 헥헥대며 뛰는 것 같아..."
나는 체계적으로 일을 배우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며, 조직 속에서 안정을 찾고 숨어버렸지만,
자기 발로 사업을 일구고, 사람을 모으고, 꾸준히 작품을 내던 친구들은
눈 깜짝 하는 사이 연락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그들에게는 하루가 천만년 같았을 테다..)
더 무서웠던 것은, 지금 같이 지낸다면
1년 뒤에도 나는 더 크게 후회만 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라'는 말이 필요했던 때,
자기 삶을 꿈꾸고 만들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야 했던 때,
운명같이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