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이라는 비트코인 시세가 폭등했다고 해서 비트코인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았다. 아둔한 머리로 채굴, 반감기, 트랜잭션 같은 용어

들을 이해하긴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대충 이해한 바로는 비트코인은 

오픈소스로 공유되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프로그램이었다. 


실물경제가 박살나고 있으니 이제 디지털 알고리즘까지 돈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실물보다 더 확실하고 굳건하게 믿는다. 


 그러나 더 무서워지는 것은 삶의 무제한적인 디지털화이다. 

지금까지는 컴퓨터를 인간화하는 세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을 컴퓨터화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AI를 인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화 된다. 우리의 모든 삶이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육체와 마음까지 전부 싸그리 말이다. 우리 삶은 0과 1의 이진법 알고리즘으로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화 된 삶이 의심없이 거래되고 마구흘러가는 흙탕물마냥 두둥실 방향도 없이 마구 흘러간다. 

사람들은 유트브, SNS에서 꺼리낌없이 자기자신을 발가벗기고 스스로 디지털화한다. 

인스타에 접속해보면 쇠질하는 나체들 셀피가 우글거린다. 육체는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된다. 


디지털이 세상을 혁신하고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내 삶은 더 우울해진다. 

디지털에 접속하면 할 수록 나는 더 우울해진다. 


소통, 연결, 디지털의 과잉이 삶을 갉아 먹는다. 삶은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을 구걸할 때, 사랑을 받는 것으로 여길 때, 내가 준 사랑에 대해 보답을 받으려고 할 때, 사랑은 갈등과 눈물의 씨앗이 된다.

​ 사랑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존재에서 느끼는 기쁨을 통해 나는 이미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거래를 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하려고 하며, 그러한 바램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원망한다. 그럼으로써 그 관계는 착취로 변질된다.

​ 사랑이 착취와 거래로 변질되는 이유는 '나'를 지키려는 욕망 때문이다. 지켜야 할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착각, 사랑을 받아야만 '나'의 결핍이 채워진다는 착각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애초에 지킬 수도 없고 채울 수도 없으며,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이 텅 비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은 무명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감정이다.

​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해서 충족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결핍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텅 빈 그 자체로 충만하다. 사랑받고 싶은 이유는 생각과 기억의 다발에 불과한 '나'라는 허상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허상은 지킬 필요도 없고 채울 필요도 없다. 허상인줄 알면 그뿐이다.

​ 실체 없는 허상인 '나'를 타인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소금물로 갈증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것과도 같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 끝없이 목마르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는 텅 빈 피리이기에 어떤 바람도 나를 채울 수 없고 그저 통과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 뿐임을 모르는 것이다.

​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자립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의존하지 않고, 아무런 기대와 조건 없이, 지금 여기에서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실체화하여 그것이 영원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립은 사랑의 필수 조건이다.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미소님 블로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 시리즈 1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딸아이에게 줄 책 선물로 고양이를 다룬 책을 찾아보다가 이용한 시인이 쓴 고양이 3부작 포토에세이집이 눈에 띄었다. 이용한 시인 약력을 살펴보니 시인이었고 고양이 작가로도 유명한 분이셨다. 3부작중 첫번째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품절이라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내친김에 3부작 전체를 알라딘중고에서 구입했다^^

출판순서로 보면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명랑하라 고양이>,<나쁜 고양이는 없다> 이렇게 되겠다. 세 권 모두 공히 이용한 작가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책과는 거리가 멀고 스마트폰 게임(배틀그라운드를 열심히 하는데 세상에, 여자 아이가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다니..)에 너무 빠져 있는 현실을 타개할 묘책이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딸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기에 그렇다면 고양이를 주제로 한 책을 선물해 준다면 글을 좀 읽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점에서 이용한 작가의 고양이3부작 포토에세이가 제격이었다. 일단 내가 3권을 속도으로 훑어봤는데 상당히 좋은 책이다. 작가는 동네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의 생노병사, 희로애락을 정갈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 보인다. 길고양이에 대한 한없이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느껴지고 페이지마다 가득찬 이쁘고 귀여운 길고양이들 사진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저자의 세밀하고 집중력 있는 관찰력 덕분에 길고양이들은 저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새로 태어난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수십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모두 이름을 달아주었다.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은 분명한데 혹시나 딸이 고양이 사진만 대충 후루룩 훑어보고 책을 탁 덮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길고양이들 사진뿐만 아니라 작가가 담담하게 따스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를 읽히는게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어쨋든 딸아이가 한동안 스마트폰 대신 이 책들을 좀 열심히 뒤적여주면 좋겠다.

 

 

 고양이 3부작 중 가장 안타깝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권 <명랑하라 고양이>에서 길고양이 바람이가 기생충 감염으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부분이었다. 이용한 필자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만난 녀석이었고 먹이주기 3개월만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정말 바람같은 녀석이다. 먹이를 먹으로 올때도 먹이를 먹고 갈 때도 늘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필자는 그래서 녀석 이름을 바람이로 지었다고 한다. 필자가 각별한 애정을 쏟은 녀석인데 어느날 바람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채로 나타난다. 눈에서 고름이 흐르는 바람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해보니 기생충 감염이었다. 야생에서 감염된 기생충이 뇌를 파고들어 전신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이었다. 치료할 약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바람이는 온몸이 마비되어 죽어갔다. 길고양이 바람이는 이름 그대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갔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처럼.. 바람이는 평소 자주 다니던 꽃다지 방죽에 묻혔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바람이가 끝내 애석하고 섭섭해서 이용한작가는 바람이의 무덤에 민들레 한 포기를 심어준다.

                늠름했던 왕초 고양이 바람이

 

 

 바람이가 묻힌 꽃다지 방죽에 민들레 한 포기가 피어있다.

 

 길고양이들이 삶은 쉽지 않다. 차에 치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수많은 길고양이들뿐만아니라 고양이를 혐오한 동네 어른이 놓아둔 쥐약을 먹고 길고양이 온가족이 급사하고 자동차에서 흘러나온 부동액을 먹은 녀석들도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다. 이용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길고양이 평균 수명은 대략 3년정도. 집에서 키우는 집고양이 수명 15년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은 삶이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길고양들중에서 3년 이상을 사는 녀석이 드물어 보인다. 작년에 봤었던 길고양이를 해를 넘겨 다시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녀석들의 삶은 조건은 가혹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도 생존의 조건이 녹록치 않겠지만 유독 길고양이들의 삶이 힘들어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생존 공간과 인간들의 생활 공간이 가장 밀접하게 중첩되기 때문일 것이다. 먹이를 얻을 가능성이 많은 곳은 바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기에 길고양이들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체수가 훨씬 많다. 다른 종과 상생할 줄 아는 법을 아직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인간들 세상에서 공생을 시도해야 하는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위험은 적은 바로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이 챙겨주는 사료나 음식같은 먹이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은 정말 안타깝다. 그들은 애초에 자연과 야생에서 인간의 조력없이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었으나 이제 그들이 마음놓고 사냥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의 공간에서 불규칙적으로 공급되는 한정된 먹이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내 차 트렁크에는 늘 고양이 사료 한봉지가 있다. 어느 곳을 가든 고양이들이 눈에 띄고 그 중에서 배고픈 녀석들한테 사료를 놓아두고 간다. 녀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지만 한끼라도 든든히 먹고 힘내서 생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도 여전히 명랑하라 고양이들아!. 좌절과 실패는 분별심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언어일뿐 고양이들은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 것이다.

 

 

ps. 내가 만난 길고양이 이야기

 

 동네 편의점 앞에 출몰하던 누렁이.

길고양인데도 사람들한테 거부감이 없었다. 편의점 앞 의자를 아예 전세내고 누워있던 놈인데 재작년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전에 사라졌다. 그 후로 1년이 지나 현재까지 다시 볼 수 없었다.  

 

 우리 시골 어머니집에 출몰하는 욕심쟁이와 겁쟁이.  

아래 검은털과 갈색털 조합이 욕심쟁이 암컷, 누워서 노는 노랑이가 겁쟁이 수컷이다. 둘은 모자사이인데 욕심쟁이가 겁쟁이 어미다. 욕심쟁이는 먹이를 혼자 독차지하는 못된 습관을 가진 덕에 딸아이가 붙여준 이름이고 겁쟁이는 먹이를 줘도 경계심이 너무 강해 사람한테 접근하지 않는 성격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고양이의 외모가 아닌 성격으로 이름을 붙여준 딸이 참 재밌다.

어미 욕심쟁이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 대략 7년 이상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먹이에 욕심이 많아서 자기 자식인 겁쟁이가 사료를 같이 먹으려고 접근하면 앞발로 냅다 후려패버린다. 하긴 아들인 겁쟁이는 이미 젖을 뗀지 1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어미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겁쟁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겁쟁이가 성묘가 되자 욕심쟁이는 앞발로 후려치는 짓을 그만두고 모자가 나란히 겸상을 해서 다행이었다.

 

겁쟁이가 성묘가 되자 비로소 겸상을 하는 어미 욕심쟁이.

수컷인 겁쟁이가 어미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욕심쟁이는 일년에 3~4차례 정도 새끼를 놓는다. 거의 매달 임신상태인 셈인데 그래서 촌에 갈때마다 사료와 간식을 듬뿍 주고 온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어머니는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하셔서 늘 녀석들이 나타나면 "저놈에 꼬내이들 다 잡아야 된데이" 하시면서 고양이 밥그릇도 치워버리는 분이라서 "제발 우리들이 없는 사이 고양이 사료 좀 주세요" 라고 부탁하기 곤란한 형편이다. 두 녀석은 사는 곳이 일정치 않다. 욕심쟁이는 원래 이웃집 할아버지댁 집고양이였는데 지금은 길고양이가 되어 버렸다. 동네 어귀에서도 보이고 들판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면 집고양이 정체성은 이미 오래전에 버린 듯하다.

 

욕심쟁이, 겁쟁이, 그리고 점박이.

겁쟁이와 점박이 둘다 욕심쟁이 자식이다. 우리가 시골집에 갔다가 떠나올 때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저런 일령횡대 집합 자세로 우두커니 바라본다.

사람들아! 사료랑 먹이 좀 자주 가져오란 말이다! 이렇게 시위하듯이 쳐다보는 것 같아 괜히 짠하다. 내일부터 또 다시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안녕 고양이들아, 추위 잘 견디고 다시보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1-01-29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속의 고양이 이야기보다 실제 길고양이를 만난 후기가 더 재미있고,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

파트라슈 2021-01-29 21:38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쯔양 먹방이 하도 유명하다길래 유튜브 가서 잠시 구경하고 왔다.

대부분 편집된 영상들이던데?

내가 너무 궁금한건 이거다.

다들 믿는 척 하는거야? 아니면 진짜 믿는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실형선고 받아서 깜방에 들어갔다는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왜케 많어? 지금이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1960년대 미국이 아폴로호를 달에 보낼때 사용한 컴퓨터보다 더 우수한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생각과 개념은 아직도  전근대적 왕정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재용이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의 합리적인 근거를 단 한 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저 한국경제에 기여한 부분이 지대하므로 뇌물횡령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헤괴망칙한 주장을 열심히 하고 계신다. 이 헤괴망칙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보면 남녀노소와도 관계가 없는 듯 하다.

 

이는 법치주의를 포기하겠다는 말 아닌가?

 

법치를 포기하고 돈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말인데 이 사람들아..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입도 삐뚤어지고 말도 삐뚤어졌다.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 아닌가..

돈의 논리가 지배적인 이 세상에서 그나마 우리가 인간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법치주의라는 국가 이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 30프로를 차지하고 매년 수십조 세금을 내는 공과가 있으니 그 삼성의 오너는 뇌물을 주고 횡령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게 그게 공정한 것인가? 세금은 삼성만 내나? 나도 매달 소득세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데?

 

당신들 자식들한테도 그딴 식으로 가를칠텐가? 

 "얘들아, 큰기업 회장님들은 나라를 먹여살리는 막중한 과업을 하는 분들이라 무슨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아야 마땅하단다!"

 

 이딴 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래서 편법과 뇌물과 부정청탁으로 법과 원칙을 어기고 사리사욕을 채운 것들이 저지른 해악은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화물을 더 싣기 위해 원칙적으로 채워져 있어야 할 평형수를 덜어내고 여객을 더 수용하기 위해 불법으로 배를 개조하고 항해를 책임지지 않고 근무중에 만취해서 뻗어 자다가 빤스바람으로 도망친 새끼때문에 우리 꽃다운 수 백명 학생들이 숨진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우리는 세월호 사고에서 도대체 무슨 교훈을 얻었단 말인가?

 

돈의 논리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돈은 중요하지만 돈과 이익밖에 모르는 것은 추악하다. 그 추악함은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친다.

 

 삼성이라는 회사가 창출하는 부가 우리나라 경제에 지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중요하지만 그 삼성의 오너가 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세가 너무 많아서 기업활동에 위축이 된다는 것도 참으로 지랄같은 개소리다. 그 상속세는 이건희 회장과 그 자식들간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지 삼성이라는 회사의 부담이 될 수 없다. 삼성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망할 것 같은가? 이재용이 없으면 삼성이 망할 것 같은가?  노키아가 몰락해서 핀란드가 망했다는 소식 들은 적 없고 스티브 잡스가 죽어서 애플이 망했다는 소식도 들은 적 없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게 아니라고 한다. 마찬가지다.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삼성을 왜 그렇게 걱정하나? 희한하게도 꼭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들을 억수로 걱정하는데 참말로 웃긴다.

그렇게도 삼성이 걱정되면 새로나온 갤럭시s21이나 팍팍 구매하시든지.. 쯧쯧;;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억의집 2021-01-2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한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