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차 타기
스티븐 킹 지음, 최수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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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킹 아저씨의 <총알차 타기>.  그러나 종이책으로 만들어 놓으니 그 빈약함이 절실히 느껴지는군요. 컴퓨터로 읽을 때는 분량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만 (에코 님이 미네르바 성냥갑 1권에서 단테의 신곡을 컴퓨터로 읽고 자기에게 소감을 말해달라고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일반 종이책의 경우 작은 사이즈에 100여 페이지란 분량은 너무 적지요. 단편집에 수록된 하나의 단편이라면 모를까, 양장본 한 권으로 치기는 너무 심하잖아요.

킹 아저씨 특유의 으시시한 분위기는 살아있지만, 다른 이야기에 비해 결말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무서움도 덜 하고,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책값 다 주고 사서 본다면 분명 본전 생각 나겠네요. 서점에 서서 읽기에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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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8-04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그렇지?
그나저나, 책, 무지하게 빨리 보는군! ㅎㅎㅎ

stella.K 2004-08-0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못 쓰는 책도 다 있군요.
 
토미노커 1
스티븐 킹 지음 / 교원문고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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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예전에 읽다 만 이 책의 존재가 떠올라, 책장 위에 박혀 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상, 중, 하 세 권으로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만 투자하면 다 읽을 수 있다. 킹 아저씨의 입담은 참으로 좋기 때문이다. 킹 아저씨의 장편은 대개 도입 부분이 약간 지루하지만 그것만 넘어가면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다만 그 몰입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인데, 

<로즈 매더> <그린 마일> <샤이닝>과 같은 킹 아저씨의 수작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책 <토미노커>는 그 점에서 좀 떨어진다. 킹 아저씨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섬뜩함과 오싹함도 좀 덜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리처드 버크만의 이름으로 나온 <데스퍼레이션>정도라고 보면 무리없겠다.

줄거리를 살짝 소개하자면, 작은 마을의 외딴 집에서 소설을 쓰며 홀로 사는 여자가, 어느날 산책을 나갔다가 땅에 묻혀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은 뭔가 꽤 큰 물체의 모서리 부분으로 보였는데, 그것에 손을 대자 기묘한 진동이 느껴진다. 여자는 뭔가에 홀린 듯이 그 물체를 파헤치는 데 몰두하고, 그러면서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해간다. 그 변화는 이 여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에게 일어나는데.... 계속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겠다.

공포의 대상이 뭔가 뚜렷한 실체를 갖추고 있지  않을 때 더욱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 토미노커의 정체는 3권 말에 가서나 대충 밝혀지는데, 역시 밝혀지고 나서부터는 긴장감이 떨어진다. 썩 흡족하지 않은 결말 때문에 이 작품은 킹 아저씨의 수많은 범작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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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7-26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런 말은 안 할라구 했는데 말이죠.. 판다님 미워욧! 흑.. ㅠㅠ
1000페이지짜리 책을 하룻밤에요?? 으아악, 나한테는 열심히 열심히 읽고 또 읽어도 열흘은 걸리는 분량인데.. 엉엉.
이러니 판다님의 지식과 교양을 내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냐고요~~ 오오, 신은 진정 불공평하셔!!!! 판다님한테 없는 건 도대체 모냔 마럇!!! 이런 번개같은 속독 능력까지 주시다닛!!! (리뷰 댓글로 이런 거 써도 되나? 되겠지 모.. -_-;;)

Smila 2004-07-26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스퍼레이션>정도라면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킹 아저씨의 수많은 범작들조차 대부분 읽어서 손해보진 않는다는 게 제 생각. (판다님처럼 속독을 하신다면 더더욱)

2004-07-26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4-07-26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밀라님, 맞아요, 킹 아저씨 책 읽고 에이, 이게 뭐야 시간아까워 싶었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
스타리님, 소설이잖아요- 전 어려운 책은 한 달씩 읽는다구요... ㅡ..ㅡ;;;
속삭여 주신 마***님, 녜.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ㅋㅋㅋㅋ

아영엄마 2004-07-2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죠? 본 기억이 나는데 글로는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해지는군요~

panda78 2004-07-2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못 봤는데, 아무래도 킹 아저씨의 소설은 영화화되면 좀 실망스러워지는 지라..
샤이닝은 수작이었지만요. ^^;; 옥수수밭의 아이들 같은 경우엔 좀... 트럭도 그렇고...

아영엄마 2004-07-2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이랑 옥수수밭의 이이도 책으로(영화도 있나요? ^^;) 아직 못 봤어요. 구입 예정 목록 저기 뒷 쪽에 자리 잡고 있죠~ ^^

진/우맘 2004-08-0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 작품 중 유일하게 <재미없어서> 끝까지 못 읽은...-.-

panda78 2004-08-0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영엄마님 드리기로 했는데 "재미없"는 걸 그렇게 강조하시면... ㅜ_ㅜ
 
운명의 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8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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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순서대로만 따지면 마지막 작품이 아니지만, 씌어진 순서대로 하면 마지막이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까지 멋진 작품을 쓰셨군요, 여사님.

이 책에는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나온다. <비밀 결사> <부부탐정> <N 또는 M> <엄지손가락의 아픔>에 나오는 그 아마추어 탐정들이다.  이들이 나온 작품들 중에서 <N 또는 M>을 제일 먼저 보았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첫인상이 그래서인지 여사님이 제일 이뻐라 하셨다는 터펜스를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파커 파인이나 할리 퀸 보다도 덜 좋아했으니... (물론 최고는 무슈 포와로)

그래서 해문판 빨간 아가사 전집 중에서 이 책만은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점에서 나오는 손에 이 책이 들려 있었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터펜스 시리즈 중에서는 이 책이 (나에게는)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다. 분하기 짝이 없다.

어딘가 어설프기 그지 없던 토미와 터펜스 커플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연륜이 생긴 듯 조금 나아졌다. 결말이 약간 흐지부지하긴 해도, 도입부분의 재미로 상쇄된다. 집을 사면서 덤으로 받은 어린이 책들 중 한권(스티븐슨의 추적 - 키다리 아저씨에도 나오는 바로 그 책이다.) 을 읽던 터펜스가 여기저기 쳐진 밑줄에 호기심을 느끼고, 밑줄쳐진 글자들을 조합해 본 결과,

"메어리 조던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었다. 범인은 우리들 중에 있다." 라는 문장이 나온 것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지만, 터펜스는 죽일 수 없다. 터펜스의 목숨은 과연 몇 개인지 심히 궁금하다.  여하튼 그 호기심 때문에 다시 사건에 말려 들게 된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어찌어찌 위태롭게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중간 중간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으니 한 번 읽어도 시간버렸다는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사족 : 여사님의 작품들에 무지 자주 등장하는 여우장갑(디기탈리스)의 모습이 아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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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7-1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터펜스를 무지무지 좋아하는데, 별로 안 좋아하는 캐릭터라니 아쉽군요. 그나저나 이사올 때 버리고 온 해문사 아가사 크리스티를 판다님께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80권 다 있었는데 죄 버리고 너댓 권만 놔뒀거든요. 아쉽다..
디기탈리스.. 이건가?



아영엄마 2004-07-1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 80권이나 버리시다니..ㅠㅠ 참고로 저도 추리소설, 판타지 무지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것이 디기탈리스인가요? 저도 책 속에서나 들어봤지 검색해서 찾아볼 생각은 못했네요..

Fithele 2004-07-1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 모양을 보니 맞는 것 같네요. 다만 어렸을 때 본 건 흰색 꽃이였는데... (왜 이런 걸 본 거지? 심장병에 특효지만 지나치게 쓰면 독약이랍니다. 사실은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회상속의 살인 사건의 존재가... ... ... -_-;;)

반딧불,, 2004-07-1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책 버리는 사람은 나빠요.
방생을 해야지요..방생^^

흠..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디기탈리스..
판다님..간만에 늦은 시간에 있는데...아..졸렵다요ㅜ.ㅜ

panda78 2004-07-1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그런 보물단지를 버리시다니. 너무해요, 스타리님, 우흑-
여사님이 무덤에서 돌아 누우시겠네! (뭐라구요, 적당한 운동은 몸에 좋다구요? 그래야 등에 종기 안 생긴다구요? ㅡ_ㅡ;;)
디기탈리스가 저거구나- 아항- 그렇구나-!
피델님.. 옛날 신문 뒤지시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의문사가 피델님과 연관있는 건 아닌지... ^^;;;;

panda78 2004-07-1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님, 큭큭, 부군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안 들리셔요? 이리와, 같이 자자! ^^;;;; 부러워잉--

반딧불,, 2004-07-1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끄트머리에 살짝 적은 것을 ...


판다님 스토커였지??

sunnyside 2004-07-1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래요. 요즘 안그래도 추리에 필 받았는데.. 보관함!

starrysky 2004-07-1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제가 나쁜 사람이 될라구 책을 버린 건 아니었구요.. 크흐흑.. 어쩌다 보니.. ㅠ_ㅠ
그때 알라딘을 알았더라면 그런 나쁜 짓을 절대루 절대루 안 했겠지요. 도서관에라도 기증할까 했지만 그럴 정신도 없어서 온 식구들 책 다 합쳐서 근 1000권 가까이를 버렸답니다. 아흑, 내 책들아~~~

panda78 2004-07-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권..... ㅡㅁㅡ 나중에 스타리님은 버린 책들밑에 깔려 있는 벌을 받을 거시야요.
그 때 판다가 옆을 지나가더라도 부르지 마세요. 헹.

panda78 2004-07-1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헉- 새벽별님, 그런 것이었군요! 판다 80마리를! TㅁT 아아아아, 이건 이건.. 너무나 잔혹한 참극이야아아아아!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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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았을 때 표지의 그림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그림은 그만큼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 때는 시간약속에 쫓겨 미처 이 책을 사지 못하고 서점을 나서야 했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알라딘에서 검색을 하다 다시 마주친 이 소녀는 저번처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머리에 칭칭 감은 저 푸른색과 노란색의 천은 무엇이며, 진주 귀고리가 그렇게나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약간 기묘하게 생긴 옷이며, 신분을 짐작케 할 만한 소품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또 무엇때문인지.. 그림 한 장을 보고 있는 동안 떠오르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었고, 과연 저자는 이 물음들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얼마 뒤에 손에 들어온 책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된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의 일상도 흥미로왔고,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는 소녀 - 그리트의 캐릭터도 정말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림물감을 만드는 과정이나, 베르메르가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묘사한 부분도, 정말 저자가 꿈 속에서라도 17세기 델프트에 가서 슬쩍 훔쳐보고 온 듯 생생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화가 베르메르씨네 하녀로 들어간 그녀가 그림의 주인공이 되고, 작은 마님의 진주귀고리를 걸게 되고, 결국은 집을 뛰쳐나올 수 밖에 없게 되고 만 이야기는, 읽는 동안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원작에는 없는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들을 삽입하여 책을 펴 낸 것도 참 좋았다.

맑은 눈을 하고 촉촉한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왼쪽 어깨 위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왜 이 그림의 <북구의 모나 리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또한 왜 진주귀고리가 그렇게 중요했는가를 알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서, 또는 책을 읽고 난 후 표지 그림을 찬찬히 보면서 진주 귀고리가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말았다 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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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1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어제 이 책 읽어볼려구 샀어요. 영화로도 나온다던데...배달 오면 빨리 읽어봐야 겠네요. 님의 글을 읽어보니 책을 보고 실망할 일은 없을 듯...

panda78 2004-05-0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 과연 누가 그리트 역을 할런지.. 나오면 꼭 볼거에요!

waho 2004-05-04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모델이던데...이름이 뭐더라...제 서재에 올려 놨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waho 2004-05-04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티시아 카스타랍니다...

반딧불,, 2004-06-2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메르 ....
창해 ABC북으로 있습니다.
빌렸습니다^^;;

방긋 2004-07-2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습니당~
전부터 읽고 싶어서 침만 질질 흘리다가 샀지요.
델프트묘사라든가, 그림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어요.
그런데 사랑이야기가 흐지부지 된 듯해서 좀~ 그렇더군요.
 
그리고 이제는....
브리지트 지로 지음, 편혜원 옮김 / 관수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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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클로드가 죽었다. 나는 클로드를 사랑했다. 내 삶은 멈춤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건을 입에 담지 않으려고 나는 이전과 이후라고 말한다.

오늘 밤 클로드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육체는 이제 시신이 되었다.

당신 눈앞에 20년을 함께 살아온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비닐커버 속에 싸여 있고,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는데 당신은 아직도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를 연발한다.

아직, 나는 걸을 줄도, 계단을 내려갈 줄도, 난간을 잡을 줄도 안다.

내가 없는 동안, 내가 등을 돌린 사이에 죽다니. 이해가 안된다, 이해할 수 없다. 한 마디, 내게 마지막 한 마디, 포옹 한 번도 없이.

나는 병원에 가고, 경찰서에 가고, 장의사에 가고, 교회에 간다. 뭔가 끊임없이 행동해야만 하는 시간의 한 단위로 전락한다. 가장 힘든 일은 샤워하는 것이다. 허벅지, 어깨에 바닐라향 비누를 바른다. 냄새가 우스꽝스럽다. 바닐라향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어떤 눈치도 채지 못했고,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창문으로 들어온 나비도 없었고, 시계도 멈추지 않았고, 그 순간 햇빛을 가리는  구름 한 점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 나는 진정으로 옛날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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