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봉황새야, 봉황새야!

너의 덕은 어찌 이다지도 쇠락했느냐!

지난날의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따라갈 수 있구나!

그만두자, 그만두자!

지금 정치를 하는 자들은 위험할 것이다!

 

 - 사마천, 『사기 세가』, <공자 세가> 중에서

 

 

 * * *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우대하여 정치를 맡기시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겠다."

 

자로가 말했다.

 

"그런 일이 [언제] 있었습니까? 선생님의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거칠구나, 유由여!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고,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둘 데가 없다. 군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명분이 들어맞아야 하고, 말을 했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어야 한다."

 

 - 사마천, 『사기 세가』, <공자 세가> 중에서

 

(나의 생각)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명분이 없는 '법무장관 임명 강행' 때문에 초래되는 엄청난 후과(後果)들을 이토록 명쾌하게 드러내는 글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 * *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대답하여 말했다.

 

"정치란 좋은 신하를 고르는 데에 있습니다."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자 말했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게 놓으면, 정직하지 않은 사람도 정직해집니다."

 

 - 사마천, 『사기 세가』, <공자 세가> 중에서

 

(나의 생각)

정치란 참으로 쉽고도 어렵구나... 빤히 알고도 정작 실행에 옮기기는 그토록 어려우니...

 

 

 * * *

 

 

저 선생은 말한다.

 

"남편은 용과 같이 변한다. 전하여 말하기를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데, 그 무늬는 변하지 않는다. 가家가 변하여 국國이 되었지만 그 성씨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남편이 부귀할 당시에는 온갖 죄악이 없어지고 가려져 영화만이 빛나지만, 빈천할 때에는 어찌 그리 잘 연루되는가?"

 

 - 사마천, 『사기 세가』, <외척 세가> 중에서

 

 

 * * *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나라가 흥성하려면 상서로운 징조가 꼭 있게 되고, 군자는 임용되고 소인은 물러나게 된다. 나라가 멸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게 되고 어지럽히는 신하들이 귀하게 된다. …… 어진 사람이여! 어진 사람이여! 자질이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를 등용할 수 있겠는가? 지나치구나! '나라의 안정과 위험은 명령을 내리는 데에 있고, 나라의 존재와 망함은 임용하는 신하에 달려 있다.'라는 말은 진실로 옳은 것이구나."(741쪽)

 

 - 사마천, 『사기 세가』, <초원왕 세가>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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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5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보내셨어요? 늘 건강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전 인제 한숨 돌리네요^^

oren 2019-09-15 16:41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카알벨루치 님..
길어 보이던 연휴도 벌써 끝나가네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모든 좋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모든 좋은 사람들이 말하네.
좋은 사람들은 다 우리(we)이고 나머지는 다 그들(they)이라고.

- 러디어드 키플링, 『가족의 친구(A frend of the Family)』

 

 * * *

 

두 달째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게 정말 많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여지는 뉴스 하나를 두고도 사람들마다 어쩌면 그토록 다양한 생각들을 품을 수 있는지, 그런 관점의 차이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지경이다.

 

완전히 동일한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서로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견해를 표출하는 현상들을 보노라면 사람들마다 태어날 때부터 깊이 각인된 '고유의 인쇄 회로'를 갖춘 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어떤 자극이나 정보가 입력되면 그 회로를 따라 생각들을 굴린 끝에 각자에게 가장 흡족한 결과물을 자동으로 생성해 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어쩌면 이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일지도 모른다.

 

『빈 서판』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핑커에 따르면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게 결코 아니며, 태어나서 자라는 매 순간마다 미리 정해진 '본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만들어진 존재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인지과학 등이 발달한 덕분에 오늘날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만큼이나마 과학적으로 밝혀 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실로 다양한 견해들이 뒤죽박죽으로 혼재해 왔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 시피 '흰 종이'와도 같은 인간의 마음이 오로지 '경험으로부터' 채워진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영국의 존 로크였다. 그가 『인간 오성론』에서 주장한 개념이 바로 타블라 라사(빈 서판)였다. 그의 경험론은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유용한 정치 철학으로 활용된다.

 

로크의 경험론은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초로도 작용했다. 토머스 홉스가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하는 비합리적 충동에 사로잡힌 야만인이라고 주장했던 것에 영향을 받아, 루소는 소위 '고상한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욕심이 없고 평화로우며, 탐욕, 근심, 폭력과 같은 병폐는 문명의 산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로크와 루소, 베이컨과 데카르트 등을 거치면서 경험적 합리주의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던 시간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어느새 찰스 다윈이 등장하여 인류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인류는 알고 보면 결국 긴꼬리원숭이에서 진화한 포유류의 일종일 뿐이었고,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온갖 다양한 성격들도 결국은 '무리 본능'과 같은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다.

 

무리 본능이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만큼 강력하게 제어하는지는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우리 스스로 그 끈질긴 본능을 매번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느낌은 언제나 편안하다. 정반대로, '그들'이라는 느낌은 언제나 불편하다. 여기에 무슨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그런데 '우리와 그들'로 편가르기를 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너무나 많다는 게 문제다. 인간 부류는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 한 가지 부류만 놓고 봐도 그 속에서 또다른 하위 범주를 찾을 수 있고 그 하위범주들 속에서 또다시 새로운 하위 범주들을 찾을 수 있다. 인종, 국가, 종교, 언어가 모두 똑같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또다시 세분하는가. 출신지역, 출신학교, 직업, 거주지, 경제력뿐만 아니라 눈으로 살필 수조차 없는 이념까지도 범주로 작용한다.

 

어떤 인간 부류는 인간이 아닌 것까지도 포함한다. 예컨대 당신의 가족이라는 부류에는 머나먼 타지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는 개나 고양이가 포함될 수도 있다.

 

 - 데이비드 베레비,『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우리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가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부적절한' 부족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기까지 한다. 9.11 사태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때의 미국인들은 전세계 곳곳에 사는 아무런 죄 없는 선량한 아랍인들 대부분을 테러리스트로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 보면 '우리'라는 개념이 단지 마음이 만드는 산물일 뿐이며,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선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늘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일하는 사회에서 아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공유하는 인간 부류의 상징을 다루는 일이다. 같은 출신 대학, 같은 영화 취향, 당신이 사는 곳에 내가 살았다는 사실 등 어떤 공통점이라도 좋다. 당신을 배제하는 어떤 선 긋기(“서부 영화를 좋아하세요? 나는 못 보겠던데”)도 고난을 예견하는 작은 먹구름이다. ‘우리’를 느끼는 인간의 능력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에 속한다는 감정적 안정은 쉽게 얻어지는 만큼 쉽게 잃을 수도 있다. 그것이 단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여행자라면 알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의 감정은 경종을 울린다.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 데이비드 베레비,『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개인이 어느 한 부류로 규정되지 않고 처한 상황과 마음에 따라 수시로 쉽게 합치고 갈라서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상할 게 조금도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광팬들이 경기장에서 격렬하게 고함을 지르고 상대편을 욕하다가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은 '대학 동기'와 마주친다면 금방이라도 웃고 떠들며 학창 시절의 옛 이야기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게 사람 사는 방식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마음 속의 분류 기준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라는 느낌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을 만들어 내고 구분짓기 위해 애쓴다. 인간의 마음 속에 면면히 흐르는 '무리 본능'이 그걸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의 원시 부족들에겐 우리 마을을 벗어난 다른 마을 종족들은 오로지 '적'일 뿐이었다.

 

먹는 것과 못 먹는 것

······ 사람들의 도덕적 범위에는 모든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친족, 마을, 부족의 구성원들만 포함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범위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공감의 대상이고,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돌이나 강이나 음식물처럼 취급된다. 이전의 한 책에서 나는 아마존에 사는 와리 부족의 언어에는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구별하는 일련의 명사 분류사가 있는데, 그 부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먹는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은 이토록 다양한 범주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떨 땐 나의 일상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에서조차 '그들'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이번 <조국 사태>가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조국 후보자에게 쏟아진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맹렬하게 분노했지만, 또다른 사람들은 후보자 가족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과 검찰의 수사에 대해 도리어 거센 비난을 쏟아붓는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선'이 이토록 극명하게 어긋나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

 

이번 사태에서 '진영 논리'를 가장 크게 자극한 인물들은 뜻밖에도 <조국 편> 사람들이었다. 논란의 최선봉에 선 사람은 유시민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침묵을 굳게 지키던 그는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급속도로 확산될 무렵 마침내 거의 맨 처음으로 총대를 매고 나섰다. 조국에 대해 의혹만 갖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나선 것이다. 경희대의 모 교수는 ‘조국을 먹잇감으로 넘기겠다는 자들은 그가 누구든지 이제 적’이라 주장했고, 안도현 시인은 ‘조국을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승냥이들이 더 안쓰럽다’며 '무리 본능'을 한껏 자극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 유명 인사들의 '조국 옹호론'을 여기에 일일이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이쯤되면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만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떤 인물들이 끝끝내 침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집권여당에 속한 어떤 의원이 '오버하지 말라'는 식으로 아군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가 얼마만큼 호되게 곤욕을 치렀는지도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번 사태의 주인공을 옹호하는 논리가 거의 대부분 '진영 논리'에만 기댄 억지와 궤변으로 점철된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공격하는 쪽에서도 '진영 논리'로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홍준표가 대표적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그의 말 속에 늘상 빠지지 않는 핵심 단어가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그들' 혹은 '니들'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정치적 투쟁'에서 '진영 논리'가 배제될 수는 없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선명한 이분법만큼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상대편을 공격하기 쉬운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영 논리에만 기댄 억지스러운 주장들을 마냥 옹호하고 권장할 수는 없다. 진영 논리가 횡행할 수록 진실은 호도되고, 감정적인 대립과 거친 충돌만 자극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국 사태가 극한으로 치달은 과정도 아주(!) 넓게 보자면 결국 '우리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만들자는 데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 암묵적 합의가 전제된 긍정적 갈등이라면 얼마든지 더 세게 충돌하고 부딪쳐도 좋다. 그러나 과연 이토록 너그러운 시선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볼 여지가 얼마쯤이나 있을까. 오로지 '니들은 그르고 우리가 옳다'는 식의 원시적인 진영 논리만 앞세운 야만스러운 갈등만으로 가득찼던 게 사실이니 말이다.

 

진영 논리에 기댄 무비판적인 억지와 궤변은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결국 <정의, 평등, 공정>의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그 어떤 정부보다도 절박하게 <정의, 평등, 공정>의 가치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온 대통령과 핵심 실세의 합작으로 이뤄졌다는 게 진짜 문제다. 촛불로 탄생된 정권이 촛불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 사태를 '진영 논리'를 배제한 채 순수하고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2016년 겨울에 광화문을 그토록 뜨겁게 달궜던 '촛불'은 단지 부당한 권력자를 향한 분노의 표출 수단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올바르게 행사되어야 마땅할 권력이 권력자의 입맛대로 행사되는 데 대한 분노를 넘어서서, 그 촛불은 우리 모두에게 좀 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갈등과 분열을 넘어 다 함께 '정의로운 나라'에서 더 멋지게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공감을 느꼈다. 그토록 연약한 촛불이 한겨울의 추위마저 녹여낼 듯한 뜨거운 온기로 느껴진 까닭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 모두 함께 한다는 느낌이 가져다주는 '삶의 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삶의 온기

 

이처럼 내용 없는 '우리라는 느낌(we-feeling)'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것이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태에 있기를 원한다. 수단의 소설가 타옙 살리(Tayeb Salih)는 7년 만에 고향 마을로 돌아와 그러한 감정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마치 내 안에서 한 덩이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기분, 마치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 있는 꽁꽁 언 물체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되찾은 것은 "부족이 주는 삶의 온기"라고 남자는 말한다.

 

삶의 온기, 우리라는 느낌은 음식이나 거리의 소음, 어린 시절 창 밖으로 보이던 불빛들이 주는 친숙함과 쉽게 결부된다. 그러나 냄새와 광경은 느낌의 '표현'일 뿐,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라는 느낌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지 사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느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당신이 아는 것이 적절하며, 따라서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고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며 당신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우리 부류 속에 있다는 느낌이며, 버지니아 울프의 묘사에 따르면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고, 함께한다는 편안한 느낌이며, 친밀함과 온전함과 신속한 상호협력을 지향하는 공통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 데이비드 베레비,『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조국 사태>는 아직까지도 그 결말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어디론가 계속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조국 사태를 통해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은 비단 '진영 논리'에만 갇힌 채 온갖 억지와 궤변으로 무조건적인 지지와 옹호만을 부르짖는 사람들 때문에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도리어 조국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와 '공감 능력 부재'에 분노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청문회때 자신의 제자였던 여당 국회의원으로부터 핀잔에 가까운 질책까지 받았다.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정당한 분노에 동문서답식 답변을 해서 그들의 상처를 깊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이다. 그 제자는 과거 조 후보자의 SNS 발언을 지적하며 "우리 편을 대할 때와 다른 편을 대할 때 기준이 다르면 편 가르기다. 법무부 장관으로 큰 흠"이라고도 말했고, "후보자의 단점은 공감 능력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인격 모독에 가까운 지적까지도 불사했다. 그만큼 품성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본 것이다. 그가 자신을 향해 철벽을 두른 듯한 모습을 바라 보노라면 그는 마치 '규칙을 익히지 못한 아이'처럼 비쳐진다. 

 

 

규칙을 익히지 못한 아이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일도 그러한 예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감정의 차이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진지하고 비극적인 경험에 울지만 어린아이들은 놀이터를 떠나야 할 때도 운다. 어른들은 우스운 것을 보고 웃지만 어린아이들은 멍청한 행동이나 난처한 상황을 보고도 키득거린다. 아이들도 태어난 첫날부터 슬픔과 기쁨을 느낄 줄은 알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에 '대해' 슬퍼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쓰러져 통곡하는 행동이 국가적 참사에는 어울려도 초콜릿 바를 갖지 못했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기분에 맞추는 법을 배운다. 이는 '우리 부류'가 따르는 규칙을 배운다는 의미다. 그런 규칙을 익히지 못한 아이는 어떤 감정이 적절한지 알려주는 지침 없이 강렬한 감정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갈 것이다.(258쪽)

 

 - 데이비드 베레비,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중에서

 

 

나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조국 제자의 가차없는 스승 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제자야말로 '진영 논리'를 훌쩍 뛰어넘어 주권자인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마지 않는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에게 허물이 있다면 사제지간의 인연보다 국가와 국민을 더 중시한 것뿐이다. 그토록 바람직스러운 의원을 비판한 사람들이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진영 논리' 혹은 '무리 본능' 말고 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예민한 본능을 몸 속에 지니고 타고났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그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이타적인 도덕감정 또한 오래도록 진화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인간에게 <정의, 평등, 공정>과 같은 도덕감정이 발달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무리 본능에 의지한 채 살벌하게 상대방을 공격하고 물어뜯기 바쁠 지 모를 테니 말이다.

 

다윈주의는 일찌감치 인간 부류의 수수께끼를 다루었다.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르면,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유기체만이 자손을 갖고 그들의 특성을 전파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다윈에게는 생물들이 때때로 남을 위해 자신의 적응도를 감소시킨다는 사실도 분명해 보였다. 꿀벌이 적에게 침을 쏘면, 벌집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침을 쏜 자신은 죽는다. 다가오는 고양이를 조심하라고 경계음을 내는 새는 다른 새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정작 자신은 고양이의 주의를 끌게 된다. 남을 돕는 방식으로 자신의 적응도를 감소시키는 이런 행동은 생물학적 의미에서 이타주의다. 실제로 도덕적 코드들의 거의 대부분이 다윈의 표현대로, 적응도를 극대화하려는 충동의 억제와 관련된다. 도덕적 행동은 공정성, 친절, 타인의 권리를 위해 개인의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법칙이 개체뿐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도 작용한다고 추론했다.

 

 - 데이비드 베레비,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중에서

 

 

새로운 법무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이래로 지금까지 진행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상당 부분 <진영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무장관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불의와 불평등과 불공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마땅하며, 그런 자리에 합당한 인물일수록 '진영 논리'에서도 가장 멀치감치 떨어져 있어야 마땅할 터인데, 그런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이 바로 법무장관이니 이런 기묘한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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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09-1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정의, 공정,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바랍니다~^^

oren 2019-09-14 15:09   좋아요 0 | URL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국 후보자가 지명될 때부터 떠올린 우화가 하나 있었다. 전갈과 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다. 강을 건너려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등 좀 태워 달라'고 한다. 독침이 무서운 개구리가 마다하자 '둘 다 죽는데 찌를 리 있겠느냐'고 달래 올라탄다는 얘기다. 강을 다 건너기도 전에 전갈은 결국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원망하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한 말은 이랬다.

 

"미안해. 급하면 나오는 본능이야"

 

이 이야기는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중간에서 철회하든 끝끝내 임명을 강행하든 둘 모두에 적용이 가능하다. 전갈이 독침을 찌른다는 점에서는 임명 철회의 경우에 들어맞을 듯하지만,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면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훨씬 더 들어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공생관계이던 전갈과 개구리가 둘 다 물에 빠져 죽는다는 점에서.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던 신임 법무장관과 그를 끝끝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문대통령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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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로 전갈 새끼를 대통령으로 뽑은 거네요. 국민이 개눈깔이네요. 전갈을 사람으로 보았다니 말입니다.
허허허허...

oren 2019-09-09 15:13   좋아요 1 | URL
그렇게까지 비약해서 해석할 수도 있는 거로군요. 허허허허.

아무튼 제가 이 우화를 떠올린 건 단순합니다.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듯이) 그 어떤 난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결국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리라 예상해 왔었고, 그런 무리수가 결국은 나중에 ‘재주복주(載舟覆舟)‘의 교훈처럼 실현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지지가 현 정부를 떠받쳐 왔듯이, 이제부터는 국민들의 분노의 강물이 결국 현 정부를 뒤집어 엎을 것 같은 불행을 예감한다는 것이지요.

돌궐 2019-09-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쉽기는 한데, 이 일로 정부가 뒤집히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지켜봐야겠죠.

oren 2019-09-09 16:04   좋아요 1 | URL
박근혜 정부처럼 배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배에 탄 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는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 까마득한 군부통치 시절인 1987년의 4.13 호헌조치를 비롯해서, MB정부 때의 광우병 파동처럼 정권 자체가 휘청거릴 만큼의 ‘거센 파도‘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은 듭니다. 다만, 지금의 야당이 너무나 허약해서 국민들의 힘을 얼마만큼 결집시킬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은 신문기사 내용읍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교육학박사 학위 위조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8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경력에서 교육학박사가 삭제됐다. 가짜학위 가능성이 제기된지 얼마 안 돼서 사실상 박사학위가 허위임을 인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교육학박사가 기재된 채 발부됐던 동양대 총장 명의 상장, 표창장은 모두 허위이고 최성해 총장이야말로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 검찰 뭐하나˝라고 반문했다.

최근 최성해 동양대 총장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서 ‘교육학박사‘ 학위가 돌연 수정되면서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고일석 전 중앙일보 기자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 유령 학위 의혹‘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 총장이 학위를 취득한 미국 소재 신학대학교가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학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학교였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네이버 인물정보에서는 박사학위 부분이 삭제됐지만 한국대학신문에 게재된 그의 프로필에는 신학사(1991년), 교육학석사(1993년), 교육학박사(1995년)를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며 관련 사진을 첨부했다.

이어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는 알 수 없는 시기에 버지니아 워싱턴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최성해 총장의 프로필에 소개되어 있는 교육학석사, 교육학박사학위가 이 학교가 수여할 수 있었던 학위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내 학술진흥재단은 미국 소재 신학교에서 수여하는 ‘가짜 박사학위‘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미국 신학교 단체인 신학교협의회(ATS)에 가입된 신학교만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최 총장이 이 학교의 학위를 취득한 1991년부터 1995년까지의 시기는 ATS 가입 이전이라는 것이 고 전 기자의 설명이다. 또 이 학교가 ATS에 가입한 뒤에도 교육학은 여전히 승인 학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같은 의혹은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누리꾼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 최 총장의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 인물정보 학력사항에서는 현재 ‘교육학박사‘가 사라진 상태다. 8일 최 총장의 포털 프로필 학력사항에는 1978년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학사, 1985년 템플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수료 외에 워싱턴침례대학교 대학원 석사, 단국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 등 학위가 수여 연도 없이 적힌 상태다.

동양대는 그동안 총장이 수여하는 졸업증, 장학증서, 표창장 등 상장에서 하단에 ‘동양대학교 총장 교육학박사 최성해‘라고 기재해왔다.

oren 2019-09-09 20:58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몰랐는데, 방금 뉴스로 검색해 보니 최성해 총장은 자신의 박사 학위가 ‘명예 박사학위‘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더군요. 그런데 조국 후보자의 딸이 받은 표창장은 ‘위조 의혹‘으로 법원에 기소까지 된 사안이고, 의심을 받는 쪽에서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 문제로 보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칼럼에 실린 글을 일부분만 덧붙여 놓겠습니다.

* * *

거짓말에도 예의가 있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하는 것이어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사실의 엄중함을 존중한다. 그래서 사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고, 사실이 드러나면 당황하거나, 변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을 밝힌 쪽에다 대고 거꾸로 거짓말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사기꾼이 아니면.

조국 법무부 장관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을 했다. 가장 간단한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건을 보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 (딸의 총장 표창장 발급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조국을 바꿔줬다”고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다음날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은 ‘위임’이라는 핵심단어만 뽑아내 총장이 잘못 들은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자기 아내는 총장에게 “위임해주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거다. 전에 표창장 발행 권한을 위임해주고도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뜻이다.

거짓말도 이쯤 되면 사람 잡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최 총장은 조국과의 두 번째 통화를 하며 위임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라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딱 한번 통화했다고 했다. 조국의 배우자가 표창장을 위조하는 데 그쳤다면, 조국은 권력형 압력을 가하고 사실 은폐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 조국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청문회 전까진 조국이 직접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회 직전 조국이 최 총장에게 권력형 위협을 가하고 은폐 조작을 종용한 것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김순덕의 도발]문 정권은 조국 식으로 국민을 속여왔나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21:08   좋아요 2 | URL
아, 그 유명한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 즐겨 읽으시는군요. 반박을 하시려면 제대로 된 자료나 글을 가져오셔야죠. 알라딘 리뷰 쓰실 땐 책 인용 제대로 하시더니....


김순덕 사설에서는 최총장은 조국과 두 번째 통화를 한 것으로 말하는데 사실이 전혀 아닙니다. 찾아보세요. 최총장 스스로 2번 통화했다는 말을 바꿔 1번 통화했다고 정정했습니다. 뭐, 그리 변명을 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력 허위 기재로 사문서 위조한 총장, 본인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학 박사가 아니라 단순한 명예박사라고 시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확정이죠 ? 그리고 조국 후보 딸의 의혹은 사실 검증이 안된 수사 중입니다. 오렌 님은 조국 딸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총장의 사문서 위조에 대해 비판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교육학 박사와 교육학 명예 박사의 차이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명예박사도 박사 학위라면 연예인 명예경찰도 결찰이 될 수 있죠. 참고로 박근혜도 서강대 명예 철학박사입니다.

에곤 실례 2019-09-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께 댓글이 따로 달리지는 않는군요. 곰발님은 스스로 문빠라고 당당히 말씀하셨으니까 질문 한마디 합니다.
지금 문정부가 하는 방식이 좋은 정치입니까?
아니, 누구 때보다 낫다 그런 말은 아니고요.
정말 제대로 되어 가는 정부인것 같으냐구요.
예를 든다면 조국이 없어서 법무부 장관에 다른사람이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8   좋아요 2 | URL
조국이 없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죠. 이 말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조국이 있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질까요 ?


에곤 실례 님은 같은 질문을 이 블로그 주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예를 든다면 조국이 있어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 ˝

oren 2019-09-09 21:08   좋아요 0 | URL
조국 법무장관 한 사람 때문에 이 정부가 무너지느냐 마느냐를 단정적으로 결론내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새로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이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너무나 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어서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비판과 분노를 사고 있어서, 자칫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험스러운 지경으로 치닫지나 않을까, 그게 큰 걱정이라는 말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컷 뉴스 보니 최성해 총장은 최종 학력이 고졸이랍니다. 그 많은 학력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오랜 님의 견해는 무엇인지요... 고졸인 최성해가 대학 총장으로 20년 넘게 좌지우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한 범죄아닙니까 ?

oren 2019-09-10 22:26   좋아요 0 | URL
대학총장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면 해외토픽 감이겠지요.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 *

 

조국의 아내가 기소됐다.

 

범죄 혐의는 사문서 위조였다.

 

자녀 입시에 사용된 대학총장 표창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마침내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조국 대전'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 진행중이다.

 

왜 이토록 어리석은 싸움을 누가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조국이 아니면 사법개혁은 좌초되고 만다는 식의 무서운 집착이 빚은 결과임은 분명하다.

 

사태가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대통령의 지명 철회 기회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후보 지명자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모펀드 의혹과 사학재단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장학금 특혜 수령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하더라도 사태 전개 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고교생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가 아마도 맨 처음으로 찾아온 'STOP'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모펀드 투자금과 사학재단의 사회환원 카드를 내밀어 여론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분노한 민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로 번졌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난데없이 '국민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한다.

 

간난신고 끝에 이틀간의 청문회 개최가 가까스로 합의되지만 후보자 가족 등을 포함한 증인 채택 문제로 또다시 교착에 빠진다. 그러는 와중에 급기야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한다. 이미 사모펀드 관련 핵심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해외로 도주하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수사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때부터 사태는 급류를 타기 시작하고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검찰의 범죄 혐의 수사를 두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 등 집권세력의 무모하고도 거센 비판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권여당의 첫 번째 패착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패착은 청문회를 둘러싼 증인 협상 결렬을 빌미로 결국 '기자 간담회'를 강행한 것이다. 원래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핑계로 버텨오던 후보자 입장에서는 무수한 의혹을 일거에 해소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라도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장관 후보자가 법에 정해진 절차까지 무시하고 기자들만 불러 '해명 간담회'를 열어봤자 악화된 여론을 되돌릴 수 없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탄핵 직전까지 내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론이 최고조로 악화되었을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불러놓고 갖은 몸짓을 다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거짓으로 해명하는 모습의 데자뷰일 뿐이었다.

 

특수부 수사 인력을 더욱 보강한 검찰은 내친 김에 동양대와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고, 이튿날 아침에 갑작스레 터져 나온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은 숱한 관전자들을 경악 속으로 빠트렸다. 이번 사태가 전체 몇 막의 구성으로 그 장대한 결말을 마무리할 지는 몰라도 <조국 대전> 제1막 제1장의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바야흐로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후보자 부인의 다급한 전화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후보자와 집권세력의 유력 인사들의 의심스런 통화가 잇따라 폭로되었다. 여론이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어쨌거나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합의된 맹탕 청문회만 건너뛰고 나면 무사히 '임명 절차'를 밟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청와대는 스모킹 건이나 다름없는 '표창장 조작 의혹'을 덮기 위해 총력을 동원했고, 그런 무리수들이 결국 검찰과의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 급기야 청와대의 모 행정관은 검찰을 향해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집권 세력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검찰의 행보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여권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을 향해 온갖 험악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 이번 사태의 세 번째 패착이었다.

 

어젯밤의 맹탕 청문회가 무미건조하게 막을 내리면서 제1막이 싱겁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1막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제2막이 활짝 열리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후보자 아내의 소환조사 마저 건너뛴 불구속 기소가 7년이라는 기나긴 공소시효 마감을 딱 한 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국 대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물론 이번 대전의 깊숙한 정치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쏟아낸 수많은 명대사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TV나 뉴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식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궁금한 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이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가장 싱겁게 끝나는 해피엔딩(?)은 갑작스레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다. 조기 종영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주인공이 일신 상의 사유로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오는 경우다. 물론 감독의 교체 사인이 중도 하차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가장 불행한 네버엔딩 스토리는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감독과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들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뿐 아니라 감독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덤벼드는 국면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파국으로 끝난다. 설마 그토록 흉악한 드라마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진 않다.

 

아무쪼록 사태가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이라도 대통령이 법무장관 임명을 포기하면 그것으로 기나긴 싸움은 간단히 끝난다. 물론 그 싸움은 '집권세력의 완패'로 규정되면서 수많은 후폭풍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 되면 결국 '해피엔딩'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번 사태는 결국 비극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임명 강행이 '파국' 없이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나 또한 임명 강행=불행한 결말을 예상한다. 단지 불행의 크기만이 문제될 뿐.

 

임명 강행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외신에는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대통령, 자녀 입시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배우자를 아내로 둔 핵심 측근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임명 강행을 둘러싸고 여야 극한 대치, 대학생 및 시민들 대규모 항의 집회

한국 검찰, 최근에 임명된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 강제 소환(혹은 구속영장 청구)

한국 검찰, 최근에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에 연루된 법무장관 피의자로 소환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반정부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과연 <조국 대전>은 언제까지 전개될까. 지켜보는 관객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파국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기 종영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껏 시달려온 내우외환만으로도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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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9-08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서재에는 정말 논리적으로나 지성으로 봐서 타 사이트들 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그래서 내가 자주 와서 여러분들의 글을 흥미롭게 읽고 있답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글로써 다른사람들을 설득하는 재주들도 훌륭합디다.
그런데, 서울대 환경 대학원 2학기 다 장학금을 받은 문제나 부산 의전원 등록금 수여 문제만으로도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도 확실히 잘못된것 같은데,
이곳의 똑똑하고 젊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조국을 염려하고 계속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보면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인가 싶고 또 지성이란 무엇인가 싶더군요.
물론 그사안은 조국의 범법이 아니고 조국 자체로는 하자가 없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라는게 있지않겠습니까.
과연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는 말을 정의를 전매특허라도 받은 냥 떠버리던 사람들이 할소리입니까?
내편이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을까요?
쓸데없이 댓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oren 2019-09-08 22:44   좋아요 1 | URL
이번에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조국 사태> 때문에 깨닫게 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이자 충격은 이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부 최대의 과제이자 구호가
그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대국민 홍보용 선전 문구‘에 불과하였는지를
<조국 사태>만큼 상징적이고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태는 일찍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두 번째 충격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만 갇힌 채,
조국 후보자의 명백한 거짓이나 불의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아 버리고,
온갖 억지와 궤변을 총동원해서 무작정 그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거의 ‘인간 실격‘에 가까운 온갖 거짓 행태를 눈앞에서 셀 수도 없이 확인하고 나서도,
오로지 맹목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두둔하려는 눈물겨운 모습들 속에는
그 어떤 정당한 논리나 합리성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오로지 ‘내 편이니까 무조건 지지한다‘는 식의 ‘내로남불 사상‘밖에 찾을 수 없더군요.
출범 이후 줄곧 <국민의 정부>를 표방해온 문재인 정권이 결국 <그들만의 정부>임을
이번 사태만큼 역설적이면서도 도드라지게 드러낸 경우도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좁은 범위‘의 충격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입니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평등, 공정, 정의‘를 위해 SNS에 남겼던 그 무수한 글들이,
도리어 ‘불평등, 불공정, 불의‘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그를 공격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번에 한 달 내내 전국민 앞에 표정 연기까지 곁들여 쏟아낸 저 무수한 거짓말들이
앞으로 과연 얼마 동안이나 그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삶 속에서,
불평등하고 부도덕하고 특혜 받은 일들은 참으로 많았지만,
최소한 ‘위법 행위나 범법 행위는 없었다‘는 조국 후보의 최후의 방어막이
앞으로 얼마만큼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그걸 지켜볼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LAYLA 2019-09-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 부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에 남을 모먼트입니다.
 

 

자애심과 인간적 자아(自我)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는 위대하기를 원하지만 못난 자신을 본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한 자신을 본다. 그는 완전하기를 원하지만 불완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본다. 그는 뭇 사람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결함이 그들의 혐오와 경멸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안다.

 - 파스칼, 『팡세』중에서

 

 * * *

 

득국오난(得國五難)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제후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기 세가』에 실린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득국오난을 검색해 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주 쓰이지 않는 고사성어다. 그런데 이 말이 새삼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이 있다. 바로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법무장관 후보자 때문이다.

 

애시당초에 그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후보자가 법무장관으로 지명되는 과정에서 이만큼 수많은 문제를 드러내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듯하다. 그가 비록 남들을 공격하기 위해 과거에 내뱉은 숱한 매서운 말들 때문에 도리어 자신이 화를 입는 곤욕을 치르기는 하겠지만, 자신과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뿌려놓은 부도덕한 씨앗들이 자라나서 이만큼 거대한 산사태가 되어 자신과 가족들을 덮치고, 끝끝내 만신창이가 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리라고 그 누가 감히 예상이나 했겠는가?

 

뭐? 아직도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모른다고? 글쎄, 사태가 이만큼에서라도 마무리되어 더 큰 비극으로 전개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후보자나 집권당이나 대통령이나 버티면 버틸수록 더 큰 화를 자초할 뿐일 테니 말이다. 민심의 거대한 쓰나미를 어떻게 한 줌밖에 안되는 권력이 맞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이쯤에서 다시 득국오난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 과거의 역사만큼 오늘을 훤히 드러내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마천의 이야기임에랴. 때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쯤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공왕(BC 600년~BC 560년)에게는 아들이 다섯이었다. 맏이부터 차례대로 강왕, 위(영왕), 자비, 자석, 기질(평왕)이라고 불렸다. 그들의 운명을 둘러싼 이야기는 치국(治國)의 어려움과 권력의 무서운 본질에 대해 새삼 숙고하게 만든다.

 

처음에 공왕은 총애하는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적자를 임금의 자리에 세우지 않고,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기탁하여 신령이 그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면 그에게 사직을 주관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 강왕은 연장자로서 자리에 올랐으나 그의 아들에 이르러 자리를 잃었고, 위圍는 영왕이 되었다가 자신에 이르러 시해되었으며, 자비는 왕이 된 것이 여남은 일 남짓하였으며, 자석은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또한 모두 주살되었다. 이 네 아들은 후손이 끊어졌다. 오직 기질만이 후에 자리에 올라 평왕이 되어 결국 초나라의 제사를 이어 갔으니 ……(368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오형제 가운데 맏이인 강왕에 이르기까지는 제위가 순조롭게 이양된다, 강왕이 죽고 나서부터 격변이 일어난다. 강왕이 임금이 된 지 15년 만에 죽자, 아들이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숙부인 강왕의 동생 위에게 왕위를 찬탈당한다. 숙부인 위는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중도에 왕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되돌아와 군왕의 병을 살핀다면서 갓끈으로 조카를 시해하고, 조카의 어린 아들까지 모조리 주살했다.

 

5형제 중 둘째인 위가 영왕으로 즉위하자 셋째인 자비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진晉나라로 달아난다. 영왕은 성격이 교만하고 포악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민심을 잃어 백성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자비가 진나라로부터 돌아오자, 한선자가 숙향에게 물었다.

 

"자비는 아마도 성공하겠지요?"

 

숙향의 대답은 No였다.

 

한선자가 말했다.

 

"초나라 백성들이 한결같이 초나라 왕을 싫어하여, 새 임금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마치 시장의 장사치처럼 하니 어찌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이때 내놓은 숙향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른바 득국오난(得國五難)이라는 말이 여기서 태어났다.

 

"더불어 잘 지내는 사람도 없으니, 누가 함께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취하는 데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총애하는 사람은 있지만 어진 사람이 없는 것이 첫째요, 현인은 있지만 주도하는 자가 없는 것이 둘째요, 주도하는 자는 있지만 계책이 없는 것이 세 번째요, 계책은 있지만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 네 번째요, 백성들은 있지만 덕이 없는 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자비는 진나라에서 13년간 있었는데, 진나라와 초나라에 그를 따르는 사람 가운데 두루 통달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 보지 못하였으니 어진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고, 가족이 없어지고 친족도 배반하였으니 주도하는 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정변을 일으키고자 하니 계책이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평생을 나라 밖에서 살았으니 백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고, 나라 밖에 망명하였는데도 어느 누구도 그의 자취를 안타까워하지 않으니 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포학하여 거리낄 바가 없긴 하지만, 자비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뛰어넘어 군주를 시해하려는데 누가 그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369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나의 생각)

숙향이 날카롭게 짚어 낸 득국오난 이야기야말로 오늘날 조국 후보자가 처한 다섯 가지 어려움을 그대로 빼닮은 게 아닐까. 총애하는 사람은 있지만 어진 사람이 없는 것, 현인은 있지만 주도하는 자가 없는 것, 주도하는 자는 있지만 계책이 없는 것, 계책은 있지만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 백성들은 있지만 덕이 없는 것, 이 다섯 가지 어려움이야말로 조국 후보자나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날 떠안고 있는 핵심 난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공왕의 다섯 아들 가운데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위(영왕)의 비극적인 말년은 또다른 여운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영왕의 비참한 말로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자.

 

초나라 영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동안에 제나라 대부였던 관기觀起는 영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의 아들 관종觀從이 오나라로 달아나서 초나라를 정벌하기를 권하였다. 관종은 오나라와 월나라 군대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했고, 공자 비로 하여금 공자 기질을 만나게 하고, 영왕의 태자 녹을 죽이고, 비를 받들어 세워 왕으로 삼고, 공자 자석을 영윤으로 삼았으며, 기질을 사마로 삼았다. 관종은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 군사들에게 말했다.

 

"나라에 왕이 새로 생겼으니 먼저 돌아가는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던 관직과 봉읍, 전답, 집을 회복해 줄 것이며, 늦게 돌아가는 사람은 멀리 쫓아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초나라 군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영왕을 떠나갔다. 영왕은 태자 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스스로 마차 아래로 몸을 던지며 말했다.

 

"사람들이 아들을 아끼는 것이 이와 같은가?"

 

시종이 말했다.

 

"이것보다 심합니다."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관종의 '부친 살해범에 대한 복수극' 때문에 비롯된 영왕의 급작스러운 몰락과 비참한 최후는 뜻밖에도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이나 고대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페르세우스를 보는 듯한 비애감을 자아 낸다. 사마천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영왕이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많이 죽였으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윤이 말했다.

 

"청하건대 [왕께서는] 교외로 나가셔서 백성들의 처분을 들으십시오."

 

영왕이 말했다.

 

"백성들이 노여워해도 나를 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윤이] 말했다.

 

"잠시 큰 현에 들어가 제후에게 군대를 빌리십시오."

 

"모두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우윤이] 다시 말했다.

 

"잠시 제후들에게 달아나 큰 나라의 생각을 들으십시오."

 

왕이 말했다.

 

"큰 복은 다시 오지 않으니 단지 치욕을 당해야 할 뿐이다."

 

이에 영왕은 배를 타고 언성에 들어가려고 했다. 우윤은 영왕이 그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듯하자, 함께 죽으까 두려워 영왕을 떠나 달아났다.

 

영왕은 홀로 산속을 방황했지만, 산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영왕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영왕은 길을 가다가 옛날 견인(궁정을 청소하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말했다.

 

"내게 요기할 것 좀 주시오. 사흘이나 굶었소."

 

견인이 말했다.

 

"새 왕이 법령을 공표하여, 감히 왕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왕을 따르는 사람은 죄가 삼족에게 미칠 것이라고 한 데다 지금은 음식을 찾을 만한 곳도 없습니다."

 

영왕은 그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견인은 흙더미를 가져다가 자신의 다리를 대신하고 달아났다. 영왕이 깨어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배가 고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

 

여름 5월 계축일에 영왕이 신해의 집에서 죽자 신해는 두 딸을 따라 죽게 하였으며 그들을 모두 매장했다.(364∼366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초나라 영왕의 비참한 말로나 자비의 여남은 일 남짓한 짧은 제위 기간이 어찌 까마득한 옛날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로만 여겨질 수 있겠는가.

 

사마천은 『사기』 곳곳에서 못난 정치와 그것이 초래하는 수많은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정치 중에서 가장 못난 정치를 '백성과 다투는 정치’라고 보았다. 사마천이 <초 세가>를 마무리하면서 후세에 전하는 말은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롭기만 하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초나라 영왕이 바야흐로 신읍에서 제후들과 회맹하고 제나라 경봉을 주살하고, 장화대를 만들고, 주나라의 구정을 얻고자 했을 때 마음은 천하를 하찮게 보았다. 그러나 나중에 신해의 집에서 굶어 죽으려 할 때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영왕은] 지조와 품행을 닦지 못하였으니 정말로 슬프도다! 사람에게 권세가 있다면 정녕 신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기질이 변란을 이용하여 왕의 자리에 오르고, 진秦나라를 총애하고 음란한 것이 너무도 심하여 거의 다시 나라를 잃을 뻔하게 되었구나!"(409쪽)

 

 

  - 사마천, 『사기 세가』 , <초 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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