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그 꿈을 다시 나타나게 하려면, 단지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이름 안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장소들이 불러일으킨 욕망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봄에도 발베크라는 이름을 책 속에서 발견하기만 하면, 폭풍우와 노르망디의 고딕 양식에 대한 욕망을 내 마음속에 눈뜨게 하는 데 충분했고, 폭풍우가 부는 날에는 피렌체 또는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내게 태양과 백합, 총독 궁전 ,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다.(340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3부_고장의 이름ㅡ이름

 

 

(나의 생각)

 

발베크라는 이름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 도시엔 여태껏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다르다. 고작 반나절 아니면 하루쯤 머무른 기억밖에 없지만 그 두 도시는 단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도시가 된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영화나 TV 등을 통해 영상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잠깐식 스쳐가는 아름다운 영상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차분히 책을 읽는 동안에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이 두 도시에 대한 특별한 감동을 뛰어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그만큼 이 두 도시는 문학적인 도시로도 손색이 없다.

 

 

그 두 도시가 아무리 뛰어난 역사가들, 가령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와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장식하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다채롭게 빛낸 '르네상스'의 핵심 무대였다고 하더라도, 단테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 혹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문학 특유의 그윽한 향기를 더하지 못했더라면 이들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평범한 도시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이름들이 그 도시들에 대한 내 이미지를 영원히 흡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만, 그 이미지의 출현을 내 마음속에서 이름 고유의 법칙에 종속시킴으로써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름들은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만들긴 했지만, 노르망디나 토스카나 지방 같은 도시들을 실제와는 아주 다르게 만들어, 내 상상력이 주는 기쁨은 커졌으나 미래 여행에서 받을 내 실망 역시 더 크게 했다. 이름들은 내가 몇몇 지상의 장소에 대해 품고 있던 관념들을 자극하면서 그 장소들을 보다 특별한 것, 따라서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도시들, 풍경들, 유적들을 동일한 질료에서 여기저기 오려 낸, 다소 마음에 드는 정경이라 상상하지 않고 그 각각을 내 영혼이 열망하고 내 영혼이 알면 유익한, 다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알 수 없는 것이라 상상했다. 그 장소들은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름, 인명과도 같은 이름으로 지칭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개별성을 획득했던가!(340∼341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3부_고장의 이름ㅡ이름​ 

 

(나의 생각)

 

몽테뉴가 유별나게 강조하고 집착했던 대상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장소'와 '이름'이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서 그 특이한 프랑스적 경향(?)이 고스란히 반복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파르마의 수도원』을 읽고 나서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가 된 파르마라는 이름은 내게 조밀하고 매끄러우며 보랏빛을 띤 부드러운 이미지로 나타났고, 그리하여 내가 머무를지도 모르는 파르마의 한 저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내게는 조밀하고 매끄럽고 따뜻한 보랏빛 저택에서 지내리라고 생각하는 기쁨이 생겨났다. 그 저택은 이탈리아 어떤 도시의 저택과도 관계가 없었지만, 단지 내가 파르마-파름이라는 이름의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무거운 음절과, 스탕달의 부드러움과 보랏빛 반사광을 흡수한 모든 것의 도움을 받아 그 저택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마치 경이로운 향기를 풍기는 화관과도 흡사한 도시로 피렌체를 떠올렸는데, 피렌체가 백합의 도시라 불리고, 그곳 대성당 이름이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발베크의 경우, 노르망디의 옛 도자기가 그것이 발굴된 흙의 색깔을 간직하듯이, 이제는 폐지된 어떤 관습이나 봉건 제도, 고장의 옛 모습,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음절로 구성되어 옛날 식으로 발음되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발베크에 도착해서 성당 앞 맹위를 떨치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안내받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카페오레를 내 앞에 가져다줄 호텔 주인으로부터 그런 말투를 다시 들으리라는 것을, 그 주인이 우화 시에 나오는 인물처럼 입씨름하기 좋아하고, 점잔 빼고, 풍모가 중세적이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341∼342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3부_고장의 이름ㅡ이름

 

(나의 생각)

 

니체가 탁월한 작가로 손꼽아 마지 않았던 스탕달의 작품을 프루스트도 무척이나 좋아했나 보다. 스탕달의 작품은 『적과 흑』 이후로는 영영 재회한 적이 없었는데, 『파르마의 수도원』을 염두해 놓아야겠다...

 

 

내 건강이 나아져서, 비록 발베크에서 머물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한번은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건축물과 경관을 보기 위해 그처럼 상상 속에서 여러 번 탄 적 있는 1시 22분 기차를 타는 것을 부모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나는 우선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서 내려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번 그 도시들을 비교해 보았지만,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그 개별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어떻게 더 아름다운 도시를 고를 수 있단 말인가. 불그스름하고 우아한 레이스 안에서 그렇게도 높이 솟아 있고 꼭대기가 마지막 음절의 오래된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이외(Bayeux). e 모음 위 방점이 오래된 유리창을 검정 나무 같은 마름모꼴로 나누는 비트레(Vitré). 달걀 껍질의 노란색에서 진주 빛 회색에 이르는 희끄무레하고 부드러운 랑발(Lamballe), 기름지고 노르스름한 마지막 이중모음이 버터로 만든 탑을 장식하는 노르망디의 대성당 쿠탕스(Coutances), 마을의 고요 속에 역마차의 소음과 함께 파리가 뒤따르는 라니용(Lannion), 하얀 깃털과 노란 부리가 강물이 흐르는 시적인 장소의 길 위에 흩어져 있는 그 우습고도 소박한 케스탕베르(Questambert)와 퐁토르송(Pontorson), 해초 한가운데로 강물을 끌어들이려는 듯 밧줄에 겨우 매인 듯한 베노데트(Benodet),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천 모자의 옅은 분홍색 날개가 운하의 초록빛깔 물속에서 떨리며 반사되는 퐁타벵(Pont-Aven), 중세 이래로 시냇물에 보다 단단히 매어 있고 그 사이를 졸졸 노래하며 검게 그은 옷의 무딘 점으로 변한 햇살이 유리창 거미줄 너머로 그림을 그리듯 아주 섬세한 잿빛 진주 방울로 아롱지는 캥페롤레(Quimperlé).(342∼344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3부_고장의 이름ㅡ이름 

 

(역자 주)

 

문체론적으로 유명한 이 문단은 프랑스 시인 랭보의 『모음(Voyelles)』 이라는 시 못지않게 주목을 받아 왔다. 문화적, 음성학적, 문자적인 함의로 가득한 이 문단에서 우선 장식 융단으로 유명한 바이외(Bayeux)의 yeu는 고풍스러운 금색을, 마름모꼴 유리창이 연상되는 비트레(Vitré)의 é는 검은색을 떠올리게 한다. 랑발(Lamballe)에는 하얀색(blanc)이란 음소가 들어 있으며, 쿠탕스(Coutances)의 an은 버터의 노란색을 환기한다. 라니용(Lannion)은 마부의 끈(laniére)과 라퐁텐의 우화에 연유하며, 케스탕베르(Questambert)는 이 고장의 카망베르 치즈에서, 이밖에도 퐁토르송(Pontorson)의 하얀 깃털과 노란 부리는 이 도시 문양이 백조인 데서, 베노데트는 수초로 불리는 이 고장 수생식물에서 비롯되었다. 퐁타뱅의 모자 날개는 고갱의 그림 『브르타뉴의 네 여인들』에 나오는 하얀 천 모자와 연결되며, 플로베르를 매혹했던 '들판과 모래톱'의 투명한 시냇물 이미지는 캥페를레(Quimperlé)의 진주 빛(perlé) 방울로 표현된다.

 

(나의 생각)

 

프루스트의 문장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 같다.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비하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들은 얼마나 괴벽스럽지 않으면서도 매혹적인가. 『댈러웨이 부인』의 버지니아 울프가 이런 문장들을 읽고 어찌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두고 <실패작, 천재성은 있지만 질이 낮다. 산만하고 찝찔하고 젠체하며 상스럽다>고 개탄하지 않을 수 있었겠으며, 마르셀 프루스트를 두고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다. 이 책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앞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 *

 

책을 무려 여덟 권이나 사 놓고 여태껏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던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그런데 1권을 슬슬 읽어 나가다가 특별한 문장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루스트의 소설을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불쑥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문장이란 이 기나긴 소설의 첫 문장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은 다음 대목에서였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짦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86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1부_콩브레

 

이런 독특한 느낌들이야말로 프루스트를 읽는 독자들만이 맛보는 경이로운 체험이 아닐까 싶다. 프루스트의 소설엔 문학이 우리의 의식을 얼마만큼 폭넓고도 깊숙하게 자극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그런 수단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화자의 지나간 기억만이 우리의 의식을 자극하는 건 아니다. 도처에 널려 있는 그림과 음악, 연극과 오페라도 중요한 매개체다. 그밖에도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화창한 날씨, 비, 바람, 브리오슈빵, 마로니에 그늘, 라일락 향기, 시냇물, 저녁놀, 구름, 빗방울 등등등. 그렇게 다소 어리둥절하게 '우리의 의식을 자극하는 수많은 덩어리들' 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장편 소설의 제1권이 뚝딱 끝난다.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의 <1부 콩브레>의 배경이 전원풍의 시골이었다면, <2부 스완의 사랑>의 주된 배경은 프랑스 사교계 인물들이 밤마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파리의 화려한 살롱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도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최고급의 귀족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대저택의 현관을 가득 메울 만큼 화려한 마차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식은 아니다. 극히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소수의 핵심 멤버들이 거의 매일 저녁에 삼삼오오 만나 고급 만찬과 음악 연주와 이야기를 즐기는 식이다. 거기서 우리의 주인공 스완은 '과거가 의심되지만' 보티첼리의 그림 속 미녀를 연상시키는 오데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2부 스완의 사랑>에서는 <1부 콩브레>에서 이야기를 이끌던 화자는 아주 가끔씩 어쩌다가 등장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가 이끄는 '스완의 사랑'에만 집중된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오데트를 만났으며,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금전적으로' 얽히게 되었고, 어떻게 질투 때문에 괴로워하는지가 숨막히게(?) 펼쳐진다. 스완의 사랑은 어느날 저녁 살롱에서 연주되는 뱅퇴유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갑자기 솟아오른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홀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윤곽을 분명히 구별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 갑자기 매혹된 그는, 마치 저녁나절 습기찬 공기 속을 감도는 장미 냄새가 우리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듯이, 지나는 길에 그의 영혼을 크게 열어 준 악절 또는 화음을 ㅡ 그는 어느 것인지 알지 못했다. ㅡ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처럼 스완이 어떤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음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인상은 오로지 유일하게 음악적이고 내적인, 다른 어떤 인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런 인상이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말하자면 '시네 마테리아'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듣는 음은 그 높이와 부피에 따라 우리 눈앞에 있는 다양한 차원의 표면을 감싸고 아라베스크 무늬를 그리며 우리에게 넓이, 미묘함, 안정감, 변화에 대한 감각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음은 뒤이어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 음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들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충분히 형성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절들의 복사본을 만들어 그것들을 다음에 오는 악절들과 대조하고 구별하게 하도록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액체성'과 '뒤섞임'으로 계속 모티프들을 감쌀 것이고 그리하여 모티프들은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이따금 솟아오르다 이내 가라앉고 사라지면서 그것이 주는 특별한 기쁨에 의해서만 지각될 뿐 묘사할 수도 기억할 수도 명명할 수도 없는, 즉 '말로 펴현할 수 업는 것'이 된다. 이처럼 스완이 느꼈던 감미로운 감각이 사라지자 마자 그의 기억은 곧 그 감각에 대해 간략하고도 일시적인 복사본을 마련해 주었지만, 악절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지나치게 그 복사본에 눈을 던지고 있었으므로, 똑같은 인상이 갑자기 되돌아왔을 때에 이미 그 인상은 포착할 수 없어지고 말았다. 스완은 그 인상의 넓이와 대칭적인 배열, 문자, 표현적인 가치를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그러자 그는 자기 앞에 이미 순수 음악이 아닌 데생이나 건축, 사상과도 흡사한 그런 것을 보았다. 이제야 그는 음향의 파도 위로 잠시 솟아오른 악절을 뚜렷이 식별할 수 있었다. 악절은 금방 그에게 특별한 쾌락을, 그것을 듣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쾌락을 주었는데, 악절 외 다른 어떤 것도 그런 쾌락을 맛보게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악절에 대해 미지의 사랑과도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44∼47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2부_스완의 사랑​  

 

스완의 사랑은 가파른 호흡으로 숨가쁘게 진행되다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결여와 공백 때문에 갑작스레 방황하다가, 느닷없는 의심과 질투와 이별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또다시 마주친 뱅퇴유의 소나타에서 '사랑이 끝났음'을 절감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거기서 이어지는 대목이 앞서 일부 문장들을 인용했던 <3부 고장의 이름 ㅡ 이름>이다.

 

여기까지 읽고 보니, 문득 뒤늦게 붙잡고 읽기 시작한 프루스트의 엄청나게 긴 소설에 뜻밖에도 빨리 적응된 느낌이 든다. 전체 <7편 13권>으로 구성된 책 가운데 현재로서는 (민음사판 기준으로) <4편 8권>까지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틈틈이 읽다 보면 8권까지는 충분히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 읽고 나서도 여전히 후속 번역판이 출간되지 않는다면 그땐 과연 어떤 느낌이 찾아들까.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뚝 멈춰버린 음악 같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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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3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지리산을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리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그리고 각자 길이 서로 다른 매력을 준다는 면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보이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할텐데 좀처럼 진득하게 한 작품만 파는 편이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워집니다. oren님께서는 그런 면에서 같은 시선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바라보실 수 있기에 oren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다.^^:)

oren 2019-10-13 14:30   좋아요 2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오솔길을 선택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물들과 상념들에 따라 콧노래를 부르거나, 또는 힘에 겨워 잠시 땀을 닦으며 바위 위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쉬어 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독자들마다 무수히 다른 산행 경험과 다리의 감각과 삶의 다양한 기억들을 서로 다르게 지녔을 테니까요.

저는 뜻밖에도 산행을 하는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마치 하나의 미술 작품이나 음악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이렇게도 해석하거나 저렇게도 달리 해석하는 예술가적 취향에서 프루스트를 읽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차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이 ‘서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하고자 애쓰는 ‘작가의 의식‘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이 작품을 읽게 되면서 느끼게 된 안도감은, 10년 전이나 20년 전과는 달리, 생소한 작가나 작품들이나 이야기들이 과거보다 적잖이 줄어들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프루스트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소설을 읽을 것인가? 사랑을 담아서 보여 주면 사랑스럽게, 시간과 장소에서 한계를 나타내는 이미지가 되면서도, 프루스트적인 삶의 축복을 준다면 질투에 사로잡혀 읽게 된다.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중에서

2019-10-1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3 15: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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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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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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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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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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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함이 합법적으로 되고,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도덕의 망토를 입는 꼴보다 더 괴악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이다.

 - 몽테뉴

 

 * * *

 

하나의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이나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움직임을 보고도 오랫동안 정반대의 해석을 내렸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사실을 확신했지만 교황청이 엄금하는 지동설을 대놓고 함부로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먼저 『시금저울』이라는 책을 써서 교황에게 헌정했다. 기존의 천문학자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아서 '잘못된 우주관'을 깨트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갈릴레오의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했고, 자신감을 얻은 갈릴레오는 직접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지동설 이론에 대한 금지'를 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교황은 그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천동설과 지동설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책을 써도 좋다고 윤허했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한다는 게 사실인 것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책이 『대화』였다. 책이 출판되자 독자들의 반응은 격렬하게 찬반으로 갈렸다. 숱한 적대자들이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장에 경악했고, 신앙심이 깊은 천문학자는 『대화』를 비판하는 책을 따로 저술할 정도였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마저 그 책을 읽고 격노했다.

 

교황이 특히 격노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황이 평소에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 그 책 속의 등장 인물의 입을 통해 버젓이 발설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교황은 『대화』속에서 '천동설'을 믿는 어리석은 인물을 대표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가 된 표현은 이랬다.

 

"누구든 자신의 이상한 상상을 갖고 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제한하려 하는 것은 참람한 짓이다."

 

교황은 갈릴레오를 로마로 압송해 종교 재판에 회부하도록 명령했고, 종교 재판소는 갈릴레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으며, 갈릴레오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기나긴 참회 성사를 읽어 내려갔다. 1633년의 일이었다.

 

갈릴레오가 쓴 『대화』에는 꽤나 복잡한 수학 공식도 여럿 담겨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 읽어도 여전히 흥미로운 대화들도 많다. 그런 대화들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들은 사람들이 편견을 갖는 이유와 그런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밝히는 대목들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화들이 그렇다.

 

살비아티

 

내가 오랜 시간 관찰해 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앞뒤가 뒤바뀌게 추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먼저 마음속으로 어떤 결론을 내려.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또는 그들이 전적으로 믿는 사람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 그 결론을 뼛속 깊이 새겨 놓아서, 도저히 제거할 수 없어.

 

그들이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논리는, 어떤 것이든 무조건 손뼉 치고 환영을 하지. 그들이 스스로 발견했든 남이 제기했든, 아무리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논리라도 말일세. 반면에 그들의 결론에 어긋나는 것이면, 아무리 정교하고 확실한 것일지라도, 경멸을 하고 화를 벌컥 내. 덤벼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나서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억눌러 침묵을 강요하려고 음모를 꾸미기를 서슴지 않아. 나는 이미 여러 번 당했네.

 

사그레도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런 사람들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추론을 통해 결론을 확립하는 게 아니고, 이미 확고하게 내려놓은 결론에다 전제와 추론을 꿰어 맞추고 있어. 그러니 전제와 추론이 뒤틀리게 될 수밖에 없어. 그런 사람을 가까이해 봐야 득이 될 게 없네.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 불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위태롭게 될 수도 있어.(430∼431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판단을 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기울어진 어느 한 쪽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나중에야 판명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까닭이 꼭 진영 논리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라는 책에서 아주 중요한 통찰을 하나 얻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구별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간파한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어쨌든 도저히 나눌 수 없는 단계까지도 기어이 나누고 쪼개고 분할해 보려는 강렬한 본성을 지녔다는 말이다. 이 욕망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다른 책에서도 거듭 지적되었다. '지속'의 개념을 주창한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 단위인 1초와 2초 사이의 무한한 간극을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일 초의 공간

 

일 초의 공간 속에서 적색 빛ㅡ가장 긴 파장을 가지며 따라서 파동vibration의 빈도가 가장 적은 빛ㅡ은 400조(兆)의 잇따르는 파동들을 완성한다. 이 수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고자 하는가? 우리 의식이 그것을 세기 위해서는 또는 적어도 그것들의 순차성succession을 명시적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 파동들을 서로간에 충분히 벌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잇따름이 며칠, 몇 달 또는 몇 년을 점유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그런데 엑스너Exner에 따르면, 우리가 의식하는 텅 빈 시간의 가장 짧은 간격은 천분의 이(2/1,000) 초와 동등하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짧은 여러 간격들을 연이어 지각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무한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인정해 보자. 한마디로 아주 순간적인 400조의 파동들의 행렬을 목격하는 어떤 의식을 상상해 보자. 이 파동들은 단지 그것들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 2/1,000초에 의해서만 서로 분리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이 작용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2만 5000년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초 동안 우리에게 체험된 이 적색 빛의 감각이 우리 지속 속에서 가능한 가장 경제적인 시간으로 펼쳐진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우리 역사의 250세기 이상을 점유할 현상들의 잇따름에 상응한다. 그것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여기서 우리의 고유한 지속과 시간 일반을 구별해야만 한다. 우리 의식이 지각하는 지속, 우리의 지속 속에 주어진 한 간격은 제한된 수의 의식적 현상들만을 포함할 수 있다. 이 [지속의] 내용이 증가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무한히 가분적인 시간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지속인가? (343∼349쪽)

 

 - 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제4장 이미지들의 한정과 고정에 관하여>

 

 

앙리 베르그송은 말한다. 채워지지 않을 구별의 욕망에 뒤틀려 의식은 실재를 상징으로 대체시키거나 또는 상징을 통해서만 실재를 본다고. 또한 한쪽 편을 들 때 가지는 무반성적 열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통찰했다.

 

 

한쪽 편을 들 때 가지는 무반성적 열정

우리가 어떤 문제들에 대해 한쪽 편을 들 때 가지는 무반성적 열정은, 우리의 지성도 자신의 본능을 가진다는 것을 족히 증명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관념들에 공통되는 충동, 즉 그들의 상호 침투에 의해서라 아니라면, 어떻게 그러한 본능을 표상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의견은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의견이며, 우리가 그것들을 정당화하는 이유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 의견을 취하도록 결정케 한 이유일 경우는 드물다.127)

127) 우리가 어떤 의견을 취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애착을 가진 것일수록 더욱더 우리 자아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그만큼 더 객관화하기 어렵고, 따라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내부로 들어가면 갈수록 사물들은 엉켜서 불가분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로 표현하는 이유들은 대부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간혹 <정곡을 찌를>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이유와 일치할 경우가 드물다.(171쪽)

 

 - 앙리 베르그송,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서서히 종점으로 다가가는 듯하지만 언제쯤 마무리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이는 <조국 사태>는 시나브로 클라이막스를 저만치 앞두고 이런 저런 사소한 변주들을 울리는 단계로 접어든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이런 국면에서도 거듭 깨달은 게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아주 쉽게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들에 대한 극단적으로 상반된 사람들의 반응들이 그런 증거들이다.

 

그런데, 이번의 <조국 사태>가 3년 전의 <최순실 사태>와 뚜렷이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사태의 핵심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모종의 특별한 지위가 아닐까 싶다. <최순실 사태> 때에는 핵심 당사자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했는데, <조국 사태>의 핵심 당사자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들을 보호해 주는 강력한 우군들이 아주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진실 규명을 위해 범죄 피의자들을 열심히 불러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집권 여당이 사태의 핵심 당사자를 대신해서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을 도리어 고발하고, 정권에 우호적인 진보단체의 간부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내부 고발을 해도 도리어 같은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는 모습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 마디쯤 거들어도 수긍할 만한 인사들이 여태껏 꾹꾹 눌러참으며 호위무사 대열에 결단코 가담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놓고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며 온갖 억지와 궤변을 동원하여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려 애쓰는 아첨꾼들의 노력만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반대 진영을 향해 '묘한 진실'이 담긴 말을 자기도 모르게 크게 외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호위무사를 자처하던 어느 의원이 반대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외친 다음 말처럼.

 

"내가 조국이야?"

 

누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나에게 동조하는 숫자가 적다고 해서 그게 꼭 틀린 의견도 아니고, 반대로 그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게 꼭 옳은 의견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의견이 부디 '부정의를 정의로 간주하는 최악의 행위'를 편드는 쪽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믿는다. <조국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 보더라도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 진영 싸움은 아니지 싶다. 싸움에 너무 매몰되어 부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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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엘시 2019-10-1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국문제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지 정의와는 상관없는데 똥같은 얘기를 안똥같이 쓰려고 똥칠하고 있네

겨울호랑이 2019-10-11 09:4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하여 지난 2달 가까운 시간 동안 일어난 여러 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oren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은 저마다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며, 사건의 중요도와 선후 관계에 대해 다른 인식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 의견이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oren님 말씀처럼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이는 1930년대 당시 나치 독일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들이 정의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로 뒷받침되리라 생각됩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정의와 정의롭지 않음을 판단하기에는 불확실한 것이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불확실한 현실에서 각자가 보다 객관적으로 사안을 보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여러 색깔들이 모여 이 시대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어느 쪽이든 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이가 브레이크처럼 느껴지지만, 안전 운전을 위해서는 엑셀레이터 뿐 아니라 브레이크도 필요한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oren님과 저는 의견을 끝까지 달리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oren님과 마찬가지로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신은 틀려도 우리 사회는 꾸준히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침 oren님 페이퍼를 읽고 두서없는 적은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9-10-11 12:00   좋아요 4 | URL
우리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들은 결국 ‘위대한 판관‘인 시간이 다 해결해 주리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 전까지는 서로의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도 있고, 그래서 결국에는 ‘엄정한 사법 절차‘에 따라 진실을 규명할 필요까지 생긴다고 봅니다.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을 두고, 그 누구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며 서로 왈가왈부할 수도 있고, 상대편의 의견을 얼마든지 논박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온갖 억측과 억지와 궤변과 여론몰이식 선동과 세력 대결 식으로 흐르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도 봅니다. 저와는 일정 부분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늘 관대한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 *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나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누구건 비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는 아무도 비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 말은 우리의 판단력이 당장 문제에 오른 자를 공격해 본다고 해서, 그것이 내적 비판으로 우리 자신의 잘못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속의 악덕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자가, 다른 사람의 악덕에는 그 근본이 덜 모질고 덜 악질이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없애 주려고 애쓰는 일은 자비로운 봉사이다.

그런데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그도 역시 그 결함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격에 맞는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하여튼 알려 준 일은 진실하고 유익하다. 우리 코가 멀쩡하다면 우리 똥은 그것이 우리 것인 만큼 더 구려야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와 자기 아들과 다른 한 사람이 어떤 폭력이나 부정 행위로 죄를 지었을 경우, 자기가 맨 먼저 재판소에 가서 형 집행인의 손으로 자기 죄를 씻어 달라고 간청할 것이고, 둘째는 자기 아들을 내보내고, 마지막에 다른 사람을 내보내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이 교훈은 그 어조가 매우 고매한 것으로서, 적어도 자기 양심이 하는 처벌에는 자기가 먼저 나서야 할 일이다.

- 몽테뉴
 

 

세상사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법이라네.

죄를 지은 도둑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치더라도

거기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잔뜩 널려 있으니 말일세.

 

조국 사태의 본질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뇨.

애시당초에 겉 다르고 속 다르고 흠결이 많은 인물을,

나랏님께서 너무 어여삐 여겨 높은 자리에 앉힌 게 아니었나.

 

어떤 사람인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냐만,

이번에 높으신 자리에 올라 앉은 그 분은,

그 정도가 단군 이래 최고봉이라 불릴 정도로 아주 특별하시다네.

 

남들은 그런 흠결 가운데 한두 가지만 있었어도,

임명은 고사하고 청문회에 앉는 일조차 없었으련만,

이번에 장관 되신 그 분은 가지간담회까지 거치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네.

 

혹자는 말하더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게 무어 하나 있냐고.

여태까지 나온 의혹만으로는 아직도 성에 안 차,

얼마나 더 새로운 의혹을 보태야만 기어이 만족한단 말인가.

 

내가 주워들은 의혹만 나열해도 열 가지는 족히 넘는다네.

고1짜리 여고생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게 첫째라네.

그 논문은 진작에 직권 취소되어 반박의 여지조차 사라졌다네.

 

두 번째는 발급한 적도 없다는 대학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이라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의혹의 당사자 부부는 어쩔 줄을 몰랐다네.

위임해 준 걸로 하면 안 되냐고 아침부터 전화통만 부여 잡았지.

 

어르고 달래고 간청하고 읍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자,

기어이 전직 장관과 여당 의원까지 나서서 거들었다네.

나중엔 표창장 실물을 제출하라 요청해도 못 찾겠다고 버텼다네.

 

세 번째는 딸 아이 허위 스펙을 꾸며낸 의혹이라네.

KIST에서도, 공주대에서도, 서울대에서도,

정상적으로 발급한 적은 없다는 데 받은 건 다 있다네.

 

네 번째는 장관 부인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이라네.

블라인드 펀드여서 어디에 투자되는 지도 몰랐다는데,

코링크다, 블루펀드다, 돈 들어간 데 훤히 꿰고 있었다네.

 

WFM이라는 주식을 둘러싸곤 주가조작 의혹마저 있다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장외매입도 두 차례나 있었고,

5촌 조카가 횡령한 회삿돈을 받아 챙긴 의혹까지 있다네.

 

웅동 학원과 관련해서도 여러 의혹이 있다네.

위장 소송 의혹에다, 허위 공사 의혹이 덧보태지고,

위장 이혼 의혹에다, 채용 비리 의혹까지 겹쳐 있다네.

 

이만큼만 하더라도 의혹이 이미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아들의 서울대 인턴 증명서도 허위 발급이 의심된다네.

논문 써준 장교수와 대학 동기의 아들 인턴 경력도 챙겨줬다네.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부인은 증거인멸 까지 시도했다네.

집에 있는 하드 디스크는 증권사 직원에게 뺴돌렸고,

동양대 컴퓨터는 통째로 빼돌려 직원 트렁크에 숨겼다네.

 

이러고도 장관 부부는 휴대전화 압색조차 없다네.

검찰이 자택으로 압수수색 나오자 '인륜의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입네, 전화 바꿔 수사검사에게 신속처리 요청했다네.

 

이러고도 법무 장관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고 오늘도 외친다네.

그런 사람 임명한 나랏님도 '사법 절차'를 지켜보지 못하고,

범죄 수사에 여념 없는 총장한테 검찰 개혁만 거듭 재촉한다네.

 

이러니, 평검사까지 나서서 '비위 맞추지 그러셨어요.'라고,

나랏님의 은혜를 모른다고 '우리 윤총장님'을 나무라고,

힘 센 쪽에 붙지 못한 굳센 지조를 나무라는 세상이라네.

 

공직자의 제일덕목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 있다면,

첫 번째가 도덕성이요, 두 번째가 언행일치라 말하겠네.

이런 덕목이야말로 능력이나 자질보다 훨씬 중한 법이니.

 

그런데도 나랏님은 '의혹만으로는' 자기 사람 버릴 수 없다며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등극한 인물을 장관으로 기어코 임명 했다네.

그러니 언행일치와 도덕성은 개돼지에게나 주라는 꼴.

 

세상이 어지러울 땐 거꾸로 도는 게 정상으로 보일 때도 있다네.

백성들이 화가 나도, 나랏님이 더 화가 많이 나셨는지 여부가 우선이고,

숱한 비리 파헤쳐온 '우리 윤총장님'이 벌써부터 적폐로 내몰린다네.

 

증거를 반출하는 행위는 검찰의 증거조작을 방지하는 행위가 되고,

자택을 압색당한 법무장관의 전화 통화는 인륜의 문제로 미화되고,

범죄 혐의가 있는 조국이 문제가 아니라, 수사하는 윤총장이 더 문제라고 떠든다네.

 

두고 보세, 두고 보세, 이런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오래 전에 사마천도 얘기했다네, 물극필반(極必反)이라고,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할 때가 오는 법이거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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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10-0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폭입니까, 열폭입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성해 최종 학력이 고졸이라는데, 단국대 졸업 거짓말, 교육학 석사 거짓말, 교육학 박사 거짓말.... 최성해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사기열전에서 인용한 문장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oren 2019-10-01 16:03   좋아요 0 | URL
너무나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더더구나 어린 청년 학생들을 속여 왔고,
또한 교육자로서는 용인받기 어려운 ‘학력‘을 속여왔다니 더욱 충격적입니다만,
뒤늦게나마 거짓이 세상에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보다 깨끗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보탬이 될 테니까요.^^
 

 

후회는 우리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며, 우리를 아무 데로나 되는 대로 끌고 돌아다니는 미친 생각에 대한 반대 심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 자에게 지난 날의 도덕과 순결성을 부정하게 한다.

 - 몽테뉴

 

 * * *

 

<조국 사태>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이제 거의 사라진 듯하다. 검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조국이 죽든지 윤석열이 죽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이 게임이 끝나게 생겼다. 돌이켜 보면, 임명 강행이냐 철회냐를 두고 고민하던 시절이 그나마 좋았다. 사태는 언제나 옴싹달짝 못하는 구석으로 점점 내몰리게 마련이다.

 

조국의 가족 입장에서라면 지금의 시간을 어디까지로 되돌리고 싶을까? 법무장관 임명장을 받기 직전? 아니면 청문회가 끝난 직후? 아니면 동양대 총장과의 통화가 끝난 뒤?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민정수석에서 물러날 때쯤이 가장 알맞은 때로 보일지 모른다. 법무장관 자리만 탐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끔찍한 악몽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다 무슨 소용일까. 억센 운명에 휩쓸리면 인간의 판단력이 얼마만큼 나약하면서도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 때 멈췄더라면' 하는 매 순간들까지 아무리 되돌려 놓고 생각하더라도, 과연 그 때 정말로 멈출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운 게 인간사의 진행 방식이니 말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더라면 어느 누가 불행의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갔겠는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내가 그토록 뜯어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별 일 없으리라 믿고' 원로원에 나아갔다가 기어이 브루투스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힘만을 믿고 모스크바까지 넘보다가 결국 수십 만 군대를 잃고 자신마저 황제에서 쫓겨났다. 나폴레옹과 전쟁터에서 마주쳤던 프로이센의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써서 '승자의 교만'을 경계했다. 승리의 한계 정점을 알고 적당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책의 가장 큰 핵심 교훈이다.

 

<조국 사태>가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는 느낌이 든다. 현직 법무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내신이나 외신이나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검찰,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

한국 법원,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 구속 수감

한국 검찰, 역사상 최초로 현직 법무장관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

한국 사회,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대통령에 대한 비난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해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기껏 쓰고 보니 조국 장관 임명 직전에 썼던 관전평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이나 장관에 임명된 사람이나 '검찰 개혁'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보다 훨씬 중요한 '헌법 정신'을 무시한 탓이 크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다수의 국민이 부적격이라고 반대하는 인물을 기어이 법무장관에 앉혔으니, 검찰로서도 끝까지 파헤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그런 주권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조국 대전>은 과연 언제쯤 마무리될까. 10월말? 11월말? 어느 누가 그걸 알겠는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오래 끌면 끌수록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 불리하리라는 사실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조국 대전>이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 * *

 

우연과 역(逆)의 우연

  

그 사람만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영광과 위대(偉大)의 이상,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자기 찬미, 대담한 범죄,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인간이었으므로 거의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의 우유부단과 무계획, 그가 하는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휘말려 그 음모가 성공을 거둔다.

 

우연이, 무수한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인간들이 상의라도 한 것처럼 그 권력의 강화에 협력한다. 우연이, 당시의 프랑스 총재들의 성격을 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 계속된 일련의 승리에 의해서, 실로 시종일관해서 그를 예정된 목적지로 이끌어온 우연과 천재 대신에, 보로지노의 코감기에서, 혹한과 모스크바에 불을 붙인 하나의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 대신에 유례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정체를 드러낸다.

 

침략자는 패주하여 뒤로 물러났고, 다시 패주해서 모든 우연이 이제는 그의 편을 들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파리ㅡ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폴레옹 정부와 군대는 붕괴된다. 나폴레옹 자신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는 분명히 비참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또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 생긴다. 동맹자들이 나폴레옹을 자기들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힘과 기능을 빼앗기고 악행과 간지(奸智)가 폭로된 이상, 그는 10년 전이나 1년 후에 그랬던 것처럼 동맹자의 눈에 무법한 악당으로 비쳐야 했다.

 

(…)

 

그 막은 끝난다. 마지막 연기가 끝난다. 배우는 옷을 벗고 눈썹과 입술연지를 씻어내도록 명령된다ㅡ그는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이 고독하게 자기의 섬에서 스스로 자기에게 비참한 희극을 연출하고, 정당화가 이제 필요 없을 때에 자기 사업을 정당화하려고 쩨쩨한 책략을 꾸미며 거짓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나이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에 수년의 세월이 흐른다.

 

모든 일을 꾸몄던 자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의 옷을 벗기고 우리들에게 보인다.

 

"보시오. 당신들이 믿었던 것을! 이거요! 이제 알겠죠? 이 사나이가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태양이나 우주 공간의 하나하나의 입자는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지만,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전체적인 것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도 자기 자신 속에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은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전체의 목적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꽃에 머물고 있던 벌이 어린이를 쏘았다. 그래서 어린이는 벌을 무서워하고, 벌의 목적은 사람을 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꽃 속에서 꿀을 따고 있는 벌에 정신이 팔려, 벌의 목적은 꽃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양봉가들은 벌이 꽃가루를 모아 벌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보고 벌의 목적은 꿀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른 양봉가는 더 자세히 벌들의 생활을 연구하여, 벌은 새끼를 기르고 여왕벌을 양성하기 위해 꽃가루를 모으고 있으며 그 목적은 종(種)의 유지에 있다고 말한다. 식물학자는 암수가 서로 다른 식물의 꽃가루를 몸에 묻혀 암꽃으로 날아옴으로써 벌이 수분(受粉)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식물학자는 그것을 벌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식물의 확산을 관찰해서 벌이 그 확산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찰자는 이것이 벌의 목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지(人知)가 분명히 밝힐 수있는 제1, 제2, 제3의 어느 목적에 의해서도 모두 밝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목적을 해명하는 데에 있어 인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궁극적 목적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벌의 생활과 그 이외의 생활 현상과의 상관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역사적 인물과 여러 국민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1545-1551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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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9-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관자리에 욕심내지 않았다면...386세대의 흔히착각하는 소명의식(자신은 절대선이란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정도까지 몰리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ㅡ.ㅡ
 
사기 세트 - 전6권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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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이 틀리지 않았소? 사슴을 말이라 하니 말이오."

 - 사마천, 『사기 본기』, <진시황 본기> 중에서

 

 * * *

 

 - 사마천(BC 145∼86)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동서양의 온갖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책들 가운데 『사기』만큼 풍부하고도 뛰어난 기록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한무제 때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근무했던 공무원이었다. 태사령의 직무는 공식 문서를 보관하고 왕의 언행을 기록하면서 천상과 지상의 조짐과 징조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기록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훌륭한 역사가로 탈바꿈하여 '제왕학' 분야에 크게 이름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마키아벨리를 닮았고, 역사가이면서도 하늘의 뜻을 살폈다는 점에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를 닮은 듯한 인상을 준다. 플루타르코스도 무려 30년 동안이나 델포이 신전을 지키는 신관으로 지내면서 아폴론의 신탁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책을 남기게 된 까닭은 몹시 흥미롭다. 우선, 진시황의 분서갱유(BC 213∼212)가 한 원인이 되었다. BC 221년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방식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던 제자백가의 저서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460여 명의 학자들을 생매장했다. 다행스럽게도(?) 진나라는 그런 비극이 있고 나서 불과 7년도 지나지 않아 멸망(BC 206년)하고 만다. 진나라 말기에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고, 뒤이어 항우와 유방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면서 진나라는 멸망하고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다. 새롭게 출범한 한나라가 차츰 안정되자 분서갱유 사태로 인멸된 책자를 체계적으로 되살리는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서, 태사령에게 완벽하고 체계적인 역사책을 집필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과거의 역사와 문헌들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기록하는 일은 사마천보다 앞서 태사령 직책을 맡았던 부친 사마담에게 주어졌다. 그가 생전에 미완성인 채로 남겨놓은 역사 기록 작업은 사마천에게 유업으로 남겨졌다. 사마담이 BC 110년에 사망하고, 사마천에 의해 마침내 BC 97년에 『사기』가 완성되었다.

 

사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100년 전에 쓰여진 역사책이며,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이룩한 거대한 성과다. 당시만 하더라도 책은 종이에 쓰여진 게 아니라 죽간(가로3cm, 세로 30cm 정도의 대나무쪽)에 쓰여졌고, 소가죽 끈으로 일일이 엮어 매는 형태였는데, 전체 52만 6,500자에 이르는 분량이 얼마만큼 많은 대나무쪽에 쓰여졌을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다.

 

『사기』는 전체 130장으로 이루어진 웅편거작이다. 황제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기 본기』는 12장이다. 제후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기 세가』는 30장이다. 황제와 제후들을 보좌했던 영웅적인 인물들을 다룬 『사기 열전』은 70장이다. 각 시대의 연표를 기록한 『사기 표』가 10장이고, 제도와 문화를 다룬 『사기 서』가 8장이다. 인물 전기로만 따진다면 모두 112장인 셈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단지 50명의 영웅들을 다루는 데 비해『사기』가 얼마만큼 더 풍부하고도 방대한 인물들을 다룬 저술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사기 본기』, 『사기 세가』, 『사기 열전』은 '인물 중심'의 역사 기록이다. (네 권을 합하면 3,314쪽)

 

사기가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무려 2,600년에 이른다. 사마천이 이미 2,100년 전의 인물이니만큼 그가 기록한 역사가 얼마나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아주 먼 옛날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다스리던 시절 만큼이나 아득한 '신화의 세계'까지도 역사로 다루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사기 본기』의 초반부인 <오제 본기>,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는 신화와 전설과 역사가 혼재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은 본기>에 실린 사마천의 기록들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덕분에 구체적으로 실증되었으며, 『사기』의 기록이 얼마만큼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쓰여졌는지를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기』는 그 규모만으로도 엄청나게 놀랍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1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다는 점이다. 사마천이 그만큼 뛰어난 문장가였고, 그의 역사관이 그만큼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만큼이나 부지런했다. 그는 고문서의 기록이나 풍문 또는 전설로만 존재했던 희미한 과거를 찾아서 중국 전역의 숱한 도시들과 고문서 보관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또한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가까운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한나라 왕실의 도서관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과거의 역사를 최대한으로 꼼꼼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그의 노력은 『사기』의 전편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에 '묘비명 수집가'로 맹활약했던 포조 브라치올리니를 떠올리게 만든다.(그는 1,000년 이상이나 먼지 속에 묻혀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굴해냈다.) 그가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금석문의 글들이 『사기』의 곳곳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다. 20세기 초에 일부 중국 학자들이 사마천의 <은 본기>에 기록된 여러 왕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논쟁이 벌어진 이후 고고학적 발굴팀이 사마천이 옳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사마천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 1,000년이나 앞선 통치자들에 대하여 그토록 정확하게 기술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사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뿐만 아니라 위대한 역사가인 동시에 탁월한 문장가였던 사마천의 혜안이 담긴 책으로도 유명하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 이전부터 육경六經을 비롯한 제자백가의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10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인 장안에 와서 고문을 배웠기 때문이다. 20세 때부터 황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중국 전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한 경험이 『사기』 편찬의 귀중한 바탕이 되었다. 태사령으로 일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3년이 지나자 사마천도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종하는 한편,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기원전 104년에 정식으로 사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집필에 열중한지 5년이 지났을 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어떤 장군을 옹호하다가 황제로부터 극도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1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끝내 거세형에 처해졌다. 황제가 신하들의 불충에 대해서는 몹시도 포악하게 대응하는 폭군임을 뻔히 알면서도 큰 잘못이 없는 장군을 위해 충언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옳은 일이라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직언을 서슴치 않는 사마천의 강직하고도 대담한 성격이 엿보이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업이었던 『사기』 편찬의 대업을 위해 환관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치 않는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통찰 때문이다. 사마천이 다룬 역사는 크게 나눠서 온갖 군웅들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에 의해 중국이 최초로 통일되는 시대,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세워지는 시기, 한나라의 건국부터 한무제의 통치기까지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들이 얼마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삶이 얼마만큼 놀라웠던지는 『사기』로부터 비롯된 고사성어가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기 본기』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는 <진시황 본기>에 등장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빼놓을 수 없다. <항우 본기>에 나오는 사면초가(四面楚歌)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한 대목을 떠올릴 만큼 강렬하다. <오제본기>에 나오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은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한 사자성어다.

 

『사기 세가』에서 비롯된 고사성어 중에는 <월왕 구천 세가>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과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유명하다. <초 세가>에 나오는 득국오난(得國五難)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 따르는 다섯가지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공자 세가>에 나오는 상가지구(喪家之狗)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고국을 떠나 이웃 나라들을 떠돌던 무렵의 공자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빗댄 말이다. 같은 편에 나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책이 닳고 닳을 때까지 여러 번 읽었던 공자의 독서습관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 세가>에 나오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은 충신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어 임금을 섬긴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식()은 개자추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진나라 문공은 옛날에 현명한 군주로서 나라 밖으로 망명하여 19년이나 지내면서 지극히 곤궁하였으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서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오히려 개자추를 잊어버리기도 하였으니 하물며 교만한 군주이겠는가. …… 따라서 군주가 된 자가 그의 신하를 부리는 것은 정녕 쉽지 않구나!"(338쪽)

 

 - 사마천, 『사기 세가』, <진 세가> 중에서

 

고사성어의 보고는 무엇보다도 『사기 열전』이 으뜸이다. <관 · 안 열전>에 나오는 관포지교(管鮑之交), <계포 · 난포 열전>에 나오는 계포일락(季布一諾),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계명구도(鷄鳴狗盜), <소진 열전>에 나오는 현량자고(股), <염파 · 인상여 열전>에 나오는 교주고슬(膠柱鼓瑟),  완벽귀조(趙), <평원군 · 우경 열전>에 나오는 낭중지추(囊中之錐)와 모수자천(毛遂自薦), <회음후 열전>에 나오는 배수지진(背水之陣)과 천려일실(千慮一失),  <평진후 · 주보 열전>에 나오는 토붕와해(土崩瓦解), <유림 열전>에 나오는 곡학아세(曲學阿世)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껏 소개한 고사성어들은 『사기』라는 거대한 숲에 담겨 있는 무수한 이야기에서 들춰낸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일설에 따르면, 『사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만 하더라도 무려 600여 개에 이른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두툼한 책을 따로 엮을 정도이다. 『사기』에는 사자성어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역급 인물들만 하더라도 대략 200명에 이르며, 전체 등장인물은 대략 4,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꽤나 많다. 황제급 인물로는 진시황, 항우, 유방, 여태후가 대표적이다. 제후급 인물로는 강태공, 월왕 구천, 진섭(진승), 소하, 장량, 진평 등을 꼽을 만하다. 제후들과 동급으로 볼 수 있는 성인급 인물로는 공자, 맹자, 노자, 묵자, 손자, 한비자가 자주 등장한다. <열전>에 실린 인물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다. 굳이 고르자면 백이, 숙제, 관중, 포숙, 오자서, 소진, 장의, 사공자(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여불위, 굴원, 이사, 회음후 한신, 편작 등을 꼽을 수 있다.

 

『사기』는 출간되자 말자 베스트 셀러가 되지는 않았다. 사마천이 생존할 당시의 황제였던 한무제와 부친인 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당대(唐代)부터 관리 임용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당송 팔대가로부터 문장 학습의 기본서로 인정받았다. 송대의 구양수를 비롯한 숱한 문장가들이 『사기』 애호가가 되었으며, 중국 근대화의 공헌자인 양계초는 사마천을 '역사계의 조물주'라고 치켜세웠다. 위대한 문학가인 루쉰은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요, 운율이 없는 『이소』'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여 『사기』 전체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사기 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 열전』을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를 읽게 만든 작가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24쪽)

 

 - 사마천, 『사기 열전』, <작품 해제> 중에서

 

인류는 사마천으로부터 큰 신세를 졌다. 그가 남긴 『사기』 덕분에 '역사 서술의 훌륭한 모델'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인 24사는 모두 사마천을 모범으로 삼았고, 각 왕조는 바로 앞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걸 신성한 의무로 삼았다. 중국이 기원전 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공식 역사서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마천 덕분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역시 사마천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사기』를 읽는 일이 훨씬 더 쉬운 형편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때 고문(古文)과 한문(漢文)을 배운 독자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손자와 한비자, 관중과 포숙,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 진시황과 여불위, 항우와 유방 등등을 한꺼번에, 그것도 위대한 역사가가 남긴 명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몹시 특별한 경험이다.

 

사마천은 70장으로 이루어진 『사기 열전』의 맨 마지막에 <자서전>을 한 편 끼워 넣었다. 『사기』 전체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이기도 한데, 작품의 구성 체제뿐 아니라 자신의 집안 내력과 학문적 배경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무래도 <집필 동기> 부분이다. 발분저서()라는 말이 여기서 태어났는데, 마치 그의 유언을 듣는 기분이 든다. 그 대목을 인용하며 서평을 맺는다.

 

그로부터 칠 년 뒤에 태사공은 이릉의 화를 입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이 내 죄인가? 이것이 내 죄인가? 몸이 망가져 쓸모없게 되었구나."

 

그는 물러나 깊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시경』과 『서경』의 뜻이 은미하고 말이 간략한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펼쳐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 옛날 서백西伯(주나라 문왕)은 유리羑里에 갇혀 있으므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呂覧(여씨춘추)』을 전했으며, 한비는 진秦나라에 가서 감옥에 갇힌 중에 『세난說難』과 『고분孤憤』 두 편을 남겼다. 『시』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이다."(882쪽) 

 

 - 사마천, 『사기 열전』, <태사공 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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