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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제2장 <상황의 우스움과 말의 우스움> (공감1 댓글0 먼댓글0)
<웃음 / 창조적 진화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2015-03-15
북마크하기 제1장 <모든 웃음에 관하여> (공감8 댓글0 먼댓글0)
<웃음 / 창조적 진화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2015-03-14
북마크하기 Thanks to 구매자 1% 적립금 폐지 유감 (공감20 댓글11 먼댓글0) 2014-11-19
북마크하기 위로 들린 얼굴, 별이 있는 하늘 (공감3 댓글0 먼댓글0)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2014-08-17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카뮈의 <이방인>에 담긴 부조리와 우리들의 부조리 (공감23 댓글7 먼댓글0) 2014-04-23
북마크하기 나이에 대하여... (공감12 댓글6 먼댓글0) 2014-01-29
북마크하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공감8 댓글0 먼댓글0) 2014-01-21
북마크하기 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공감10 댓글0 먼댓글7) 2014-01-10
북마크하기 연극과 구경꾼 (공감2 댓글4 먼댓글0) 2013-12-15
북마크하기 오늘은 보르헤스가 탄생한 날이구나. (공감2 댓글5 먼댓글0) 2013-08-24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영화 '마지막 사중주'를 보고...... (공감13 댓글8 먼댓글0) 2013-08-16
북마크하기 잠과 꿈 (공감3 댓글0 먼댓글0) 2013-07-29
북마크하기 묘한 '말', 묘한 '욕망' (공감3 댓글2 먼댓글1) 2013-07-29
북마크하기 재미있는 '동물' 이야기, 그 뒤를 잇는 '비슷한' 생각들 (공감8 댓글2 먼댓글0) 2013-07-26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공감10 댓글15 먼댓글1) 2013-01-11
북마크하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관한 이야기 (공감7 댓글4 먼댓글0) 2013-01-08
북마크하기 해가 바뀔 즈음의 겨울 풍경 (공감11 댓글11 먼댓글0) 2013-01-03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사진에 담아본 두꺼운 책들 (공감45 댓글9 먼댓글0) 2012-12-24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생각의 역사] 도끼에서 싹튼 '생각'의 과거, 현재, 미래 (공감10 댓글2 먼댓글1) 2012-11-30
북마크하기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공감5 댓글2 먼댓글0) 2012-11-07
북마크하기 눈의 탐욕 (공감12 댓글6 먼댓글0) 2012-09-29
북마크하기 쇼펜하우어와 다윈 (공감3 댓글3 먼댓글0) 2012-09-15
북마크하기 칸트, 데카르트, 스피노자, 의지와 표상, 자유의지 (공감7 댓글0 먼댓글1)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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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공감3 댓글2 먼댓글0)
<세상을 보는 지혜>
2012-05-29
북마크하기 하루, 아홉 달, 60년, 천년, 2,000년 (공감2 댓글2 먼댓글0) 2012-05-29
북마크하기 항상, 가끔, 대체로 (공감1 댓글0 먼댓글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012-05-29
북마크하기 라플라스의 가설에 따르면......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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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 (공감0 댓글0 먼댓글0) 2012-02-07
북마크하기 '참다운 작품'만을 읽어야 하는 이유 (공감10 댓글5 먼댓글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2012-01-24
북마크하기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 (공감8 댓글0 먼댓글0)
<세상을 보는 지혜>
2012-01-14
북마크하기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허식을 경계해야 한다 (공감4 댓글0 먼댓글0) 2012-01-08
북마크하기 "卽是現今 更無時節"(즉시현금 갱무시절) (공감10 댓글8 먼댓글0) 2011-12-31
북마크하기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공감3 댓글4 먼댓글0)
<세상을 보는 지혜>
2011-12-19
웃음 / 창조적 진화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동서문화사 월드북 74
앙리 베르그손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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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자세히 살펴보라. 현재의 쾌락 가운데 지난날 쾌락의 추억에 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늘 그렇듯 우리는 쾌락이나 고통의 감정에 대해서 선천적으로 노숙한 것처럼, 마치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은 듯이 말한다. 특히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들 대부분의 환희의 정서 속에 아직도 이른바 어린애와 같은 면이 있음을 잊고 산다. 자세히 살펴보라. 현재의 쾌락 가운데 지난날 쾌락의 추억에 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만일 우리의 정서를 엄밀하게 느껴진 것만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만일 단순히 회상되는 것 모두를 거기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면, 그 많은 것에서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일정한 나이에서부터 우리는 선명하고 새로운 환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성인의 가장 감미로운 만족이 되살아난 아이의 감정, 차츰 과거가 멀어져 갈수록 드물게 불어넣는 잔잔한 훈풍인지 누가 알겠는가? 더구나 이 지극히 일반적인 물음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하건 하나의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어릴 적 유희의 쾌락과 성인이 되어서의 쾌락 사이에는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극은 바로 유희, 삶을 모방하는 하나의 유희이다. 그리고 아이가 놀 때 인형이나 꼭두각시 등을 모두 가느다란 실로 움직인다면, 우리가 희극의 상황을 연결한 실 속에서 되찾아야 하는 것 역시 너무 써서 가늘어지긴 했지만 그것과 똑같은 실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선 어린애의 놀이에서부터 출발하자.(47쪽)

 

(나의 생각)

쇼펜하우어의 『삶의 예지』가운데  <나이에 대하여>에서 다룬 내용과 너무나 닮았다.

 

 

 

《소송광들》과 돈키호테

 

다음으로 희극을 보자. 이 단순한 유형으로 환원되는 익살 장면, 희극에도 얼마나 많은가.《소송광들》에서 시카노의 말을 다시 읽어보자.11  소송이 소송으로 톱니바퀴 돌 듯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 계략은 차츰 신속하게 진행되어 (라신은 소송 용어를 차츰 집중적으로 늘어놓음으로써 가속화되는 느낌을 준다) 결국에는 한 줌의 건초 때문에 제기한 소송이 고소인의 재산 대부분을 탕진하게 한다. 돈키호테의 두세 장면에도 역시 같은 짜맞춤이 있다. 예를 들어 숙소 장면에서, 기이한 사정의 연속으로 마부가 산초를 구타하게 되고, 산초는 마리톨네스에게 덤벼들고, 그녀 위로 숙소 주인도 넘어진다.12(53쪽)

 

주석

11. 라신 《소송광들(Les Plaideurs)》제1막 제7장

12. 《돈키호테》상편, 3권 제16

 

 

 

허버트 스펜서와 칸트

 

······ 그런데 그 공이 여기저기서 돌다 멈추다 하며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면 더욱 큰소리로 웃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앞서 우리가 말한 구조는 그것이 직선적일 때에도 이미 희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운동을 해서, 인물의 이런저런 노력이 원인과 결과의 숙명적인 톱니바퀴 장치에 의해서 철두철미하게 같은 장소로 되돌아오게 되면 더욱 희극적이 된다. ······ 

 

이러한 우스개가 얼마나 강하게 또 빈번하게 나오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몇몇 철학자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말할 나위없이 수고만 하고 전혀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희극성을 정의하려고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허버트 스펜서의 생각 역시 이런 것이었으리라.15 그에 따르면 웃음은 노력이 갑자기 허무에 부딪히는 노력의 징표의 징표라고 했으니 말이다. 칸트는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웃음이란 기대가 갑자기 무로 해소되는 것에서 생긴다" 우리도 이러한 정의 가 바로 전에 말한 예에 적용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공식에는 두세 가지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 헛수고도 많기 때문이다. (54∼55쪽)

 

주석

15. 스펜서이론(Essays : Scientific, Political and Speculative, Ⅱ, 452ff, Appleton, 1892)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프로이트가 《기지론》에서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여기는 계기가 되는 다른 독창적인 의견도 포함하고 있다.

 

 

 

희극성은 삶이 없는 운동을 모방하는 인간적 사건의 양상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기계적인 구조를 보고 웃는 것일까? 한 사람이나 단체의 일이 일정한 순간에 톱니바퀴, 스프링, 또는 조종하는 실의 소행처럼 우리에게 보인다는 것, 그것이 왜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이 물음은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제기되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변함없이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인간적 사물의 계속되는 삶 속에서 우리가 때때로 침입자처럼 발견하는 경직된 기계 장치는 우리와 완전히 특수한 이해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방심과 같기 때문이다. 만일 사건이 끊임없이 그 자신의 여정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기이한 만남은 물론이요 우연한 만남도 동행의 만남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앞으로 전개되어 어디까지나 진보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만일 언제나 삶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쏟았다면, 만일 우리가 언제나 타인과 또 우리 자신과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결코 스프링이나 실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희극성은 사물을 닮아가는 사람이 지닌 어떤 면이고, 완전히 특수한 일종의 경직에 의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 장치, 자동 현상, 즉 삶이 없는 운동을 모방하는 인간적 사건의 양상이다. 따라서 그것은 초미의 교정을 촉구하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인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웃음은 이 교정 그 자체이다. 또한 인간과 사건의 어떤 특수한 방심을 지적하고 저지하는 사회적 행동이다.(55쪽)

 

(나의 생각)

찰리 채플린의 여러 작품들, 그 가운데 특히 『모던 타임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설명이다.

 

 

 

반복, 뒤집기, 교차

 

생명은 우리에게 시간 속에서의 일정한 진화, 공간 속에서의 일정한 복잡화로서 나타난다. 시간으로 고찰하면, 생명은 끊임없이 늙어가는 어떤 존재의 계속적 진행이다. 그것은 결코 뒤로 되돌아감이 없고, 되풀이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공간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생명은 서로 친밀하게 연대적이고 한결같이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동시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동시에 다른 유기체에 속할 수는 없다. 저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다른 체계와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하나의 닫힌 현상 체계이다. 양상의 기계적 변화, 현상의 역행 불가능, 그 자체 속에 틀어박힌 한 계열의 완전한 개별성, 그것이 (현실인지 겉치레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치고) 살아 있는 것을 단순한 기계로부터 구별하는 외부적 특징이다. 그 정반대의 것을 취해 보자. 그 결과 우리는 반복, 뒤집기, 교차라고 불러도 좋은 3가지 방법을 얻게 될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이치이지만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보드빌 그 자체이고, 그 밖의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56쪽)

 

(나의 생각)

'시간'과 '공간'에 대해 특별히 예민한 감각과 통찰을 보여준 철학자의 글 답다. 『창조적 진화』에 담긴 생각들의 '풍성한 밑거름' 가운데 일단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연극에서 보여주는 반복

 

1. 반복-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와 같이 어느 인물이 되폴이하는 한 마디 내지 한 구절이 아니고 하나의 정황, 즉 여러 가지 사정의 짜맞춤이다. 이것은 몇 번이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리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삶의 흐름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이러한 우스개를 불충분한 상태로나마 맛보았다. 내가 느닷없이 거리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났다고 하자. 이 상황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만일 같은 날에 또다시 그를 만나고 또 세 번, 네 번 더 만난다면 마지막엔 그 '똑같음'에 함께 웃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삶의 착각을 충분히 주는 일련의 사건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진행해 가는 이 계열의 한가운데에 동일한 인물 사이도 좋고, 또는 다른 인물 사이라도 좋고, 같은 장면이 여러 차례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자. 여러분은 역시 똑같음, 훨씬 이상한 똑같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연극에서 보여주는 반복이다.(57쪽)

 

 

 

사건의 희극성은 사물의 방심

 

······ 이 모든 작용은 삶을 뒤바꿀 수도 있고 부분 부분이 서로 교환할 수도 있는, 반복되는 기계 장치처럼 다루는 것이다. 삶이 같은 종류의 효과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도록 하고, 따라서 삶이 자신을 스스로 잊는 정도에 정비례해서 현실 생활은 보드빌이 된다. 왜냐하면 삶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역으로 할 수 없는 진보이며 분할할 수 없는 통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건의 희극성은 사물의 방심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개인의 성격의 희극성이 우리가 이미 암시해둔 것처럼, 그리고 뒤에 더욱 명쾌하게 증명하듯이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방심에 따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방심은 예외적이며, 그 결과는 하찮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교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보고 웃는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만일 웃음이 하나의 쾌락이 아니라면, 인간이 웃음을 낳는 최소의 기회라도 재빠르게 잡지 않았다면, 이 방심을 과장하고 체계화하고 그것을 하나의 예술로 창조해 보자는 생각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62쪽)

 

 

 

희극적이 되는 것은 언어 그 자체

 

말의 우스개에 대해서 하나의 특별한 범주를 세우는 것은 다분히 인위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우리가 연구해 온 해학적 효과의 대부분은 이미 말의 매개를 통해 낳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가 표현하는 우스개와 언어가 창조하는 우스개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만 한다.

 

전자는 필요하다면 어쨌든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물론 풍습이나 문학 특히 관념의 연합을 달리하는 사회로 옮길 때에는 그것의 탁월함을 대부분 잃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반면 후자는 대체로 번역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희극성이 문장의 구조나 단어의 선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언어의 도움으로 사람이나 사건에서 보이는 특수한 방심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의 방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희극적이 되는 것은 언어 그 자체인 것이다.(63쪽)

 

 

 

재치의 구별, 독서가, 배우, 시인

 

우선 넓은 의미의 재치와 좁은 의미의 재치를 구별해 두자. 언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람은 연극적인 사고방식을 재치라고 부르는 듯하다. 재치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관념을 단순한 상징으로서 다루는 대신에 인물처럼 그것들을 보고, 듣고, 특히 그것들에게 서로 대화를 시킨다. 또한 그것들을 무대에 올리고, 자기 자신도 어느 정도 무대에 오른다. 재치 있는 민족은 연극을 몹시 좋아하는 민족이다. 뛰어난 독서가에게는 배우의 소질이 있듯이 재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쯤 시인적인 면이 있다. 이런 비유는 일부러 꺼낸 것으로, 이렇게 하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이 네 가지의 비례적 관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잘하려면 대체로 배우가 지닌 예술성의 지적인 부분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연기를 잘하려면 진심으로 온 인격을 바쳐 연기하는 배우여야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의 창조도 어느 정도 자아 망각을 요구하는데, 보통 기지가 있는 사람은 거기에 빠져드는 일이 없다. 이런 축에 드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 배후에서 다소라도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는 그곳에 몰입하지 못한다. 그곳에 자신의 지성만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모두 자신이 원할 때에 재치 있는 사람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그 때문에 무언가를 손에 넣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잃어야 할 것이다. 그저 자신의 관념을 "아무것도 아닌 일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서로 대화를 시켜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단순히 자기의 관념을 자기의 감정에,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삶에 접촉시키고 있는 이중의 연계를 느슨하게 풀기만 하면 된다. 즉 시인이 감정을 토대로가 아니라 지성만으로 시를 짓는다면, 그는 재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64쪽)

 

(나의 생각)

'뛰어난 독서가' 뿐만 아니라 '뛰어난 문장가'에 필요한 감각과 소질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글이다.

 

 

 

언어의 올가미

 

재치 있는 사람은 누구를 상대로 하고 있을까? 언어가 상대 한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었다면, 우선 그가 그 상대이다. 그 자리에 없는 인물이 상대일 때도 가끔 있는데, 그때 재치 있는 사람은 그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자신이 대답한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주 있는 상황은 세간(tout le monde), 즉 내가 상식(sens commun)과 상대하는 것이다. 재치 있는 사람은 통념을 역설(paradoxe)로 전환함으로써, 관용구를 이용함으로써, 또는 인용이나 속담을 모방함으로써 해치우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장면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 그러면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도둑맞은 도둑'이란 희극의 주제에 바탕을 둔 변형임을 깨달을 것이다. 어떤 은유라든가 격언이라든가 논법을 갖다 붙여 그런 것들을 만든 사람, 또는 만들 것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말하게 하여 이른바 언어의 올가미에 걸리도록 하는 것이다.(65쪽)

 


 

 

패러디

 

장중한 어조를 일상적인 어조로 바꾼 결과 완성되는 것이 패러디이다. ······

 

몇몇 철학자, 특히 알렉산더 베인이 희극성 전반을 폄훼하여 정의한 까닭은 분명 패러디의 희극성 때문이다. 그들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란 "이전에 존경받던 사물을 하찮은 것으로 제시할 때" 낳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폄훼는 전환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전환 자체도 웃음을 얻는 방법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73쪽)

 

 

 

과장

 

사소한 일을 큰일처럼 부풀리는 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과장이다. 과장은 그것이 계속되거나 특히 체계적일 때 희극적이다. 실제로 그때야말로 과장이 전환의 한 수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과장은 사람을 정말 잘 웃기기 때문에, 일부 저자가 폄훼로 희극성을 정의했듯이 몇몇 저자는 과장으로 이를 정의했을 정도이다.(73쪽)

 

 

 

전문 용어

 

보통 직업에는 그만의 전문 용어가 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개념들을 이 직업적 언어로 옮겼을 때 웃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마찬가지로 사무적 언어를 사교적 관계로까지 확장하는 것도 희극적이 된다.(75쪽)

 

 

 

웃음이 가려내고 교정하려는 것

 

수면에 낙엽 몇 잎 떠 있지 않은 연못이 없고, 타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경직되는 습관 하나쯤 붙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상투적인 것을 배제하고, 단순한 사물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적용해보고 싶어하는 뒤집기·전환 등과 같은 기계적 조작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각 부분을 일일이 배려하는 말은 없다. 유연한 것, 부단히 변화하는 것, 살아 있는 것에 반대되는 경직된 것, 상투적인 것, 기계적인 것, 주의에 반대되는 방심, 요컨대 자유 활동에 반대되는 자동 현상, 그런 것들이 바로 웃음이 가려내고 교정하려는 것이다.(75∼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