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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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1809∼1849)

 

포는 아주 오래 전에 활동했던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 옛날 사람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주는 작가는 아주 드물다. 그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천재였다.

 

그의 생몰연대를 살펴 보면 놀라운 사실이 두 가지나 한꺼번에 발견된다. 하나는 그가 태어난 때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아주 젋어서 삶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대략이나마 살펴 보면 그가 얼마만큼 과거의 인물이었는지 더욱 뚜렷해진다. 그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이제 막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져나가던 시절을 살았다. 포와 동시대에 활약한 미국의 작가라고 해봐야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 너새니얼 호손(1804∼1864), 롱펠로우(1807∼1882) 정도다. 포는 바로 그런 때에 활동했고, 평생을 불운에 시달린 끝에 일찍 죽었고, 늘상 비주류 작가로 활동했다.

 

그에게는 추리소설의 창시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따라 붙는데, 그보다 세 살 아래인(!)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화는 특히 흥미롭다. 그 영국 소설가가 연재 중이던 작품의 결말을 포가 너무나 정확하게 예측해서 디킨스를 경탄에 빠트렸던 것이다. 디킨스 또한 추리 소설에 대해서라면 대가다운 솜씨를 지닌 작가였는데, 포가 디킨스의 구상을 훤히 꿰뚫어 보았던 셈이다.(디킨스의 미완성 유작인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는 아직도 추리소설 세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디킨스의 몇몇 작품에서도 추리 소설적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위대한 유산』에서는 기괴하게 늙어가는 노파인 미스 헤비셤을 둘러싼 온갖 비밀들이 '죄수의 탈옥 사건'과 함께 복잡하게 맞물리며, 『황폐한 집』에서는 체스니 월드의 대저택에 사는 데들록 부인의 갑작스런 실종 사건이 '여주인공 에스더의 출생의 비밀'과 맞물려 숨가쁘게 진행된다.)

 

포의 부모는 유량극단의 배우였다. 그런데 포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부모를 병으로 잃고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다. 자식이 없던 사업가인 앨런 부부의 가정에 입양되어 좋은 교육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포가 버지니아 대학교에 다닐 때 큰 빚을 졌고, 돈 문제로 양아버지와의 갈등을 겪은 끝에 의절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전형적인 남부 명문가의 아들로 자라온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포는 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입대하여 2년 만에 특무상사까지 진급한다. 이왕이면 장교로 근무하는 게 낫겠다싶어 전역한 후 이듬해에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지만 반 년 만에 근무 태만으로 처벌을 받고 퇴학당한다. 

 

오갈데 없던 포는 고향인 볼티모어로 찾아가 고모인 마리아 클렘의 집에서 지내면서 어린 여사촌 버지니아의 공부를 돌봐주는 한편 문필활동에 전념한다. 이 때 볼티모어의 잡지에 50달러 상금 단편 공모에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문학 잡지의 편집자이자, 시인, 소설가, 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문인으로서의 명성을 떨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작품을 발표해도 기성 문단의 문인들과 관계가 편치 못했고(특히 기성문단의 대표 격인 롱펠로를 심하게 공격했다.), 잡지의 사주들과도 끊임없는 충돌을 빚었다.

 

1836년에 포는 고종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 당시 버지니아의 나이가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탓에 홋날 여러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버지니아와 사촌간인 것을 두고 근친상간이 아니냐는 혐의도 있었고, 아동성애자가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도 뒤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사촌간의 결혼은 흔한 일이었고, 사춘기 소녀들의 결혼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비난은 지나치게 악의적이었던 듯하다. 애석하게도 포와 버지니아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1847년 결핵으로 요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마저 잃은 포는 가눌 수 없는 절망감과 심한 우울증과 알콜 중독 증세에 시달린 끝에 2년 후 열병으로 사망한다. 그의 인생은 가난, 절망, 비참, 알콜 등으로 점철되다가 갑자기 끝난 셈이었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가 한 편 있다. 『애너벨 리』라는 시다.

 

아주 여러 해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는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ㅡ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소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전,

바닷가 이 왕국에선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래서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들이 알 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ㅡ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ㅡ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는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바닷가 그곳 그녀의 무덤에서ㅡ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 정규웅 번역, 애너벨 리

 

이 시는 포가 2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어린 아내 버지니아 클렘을 추모하여 쓴 애도시이다. 죽은 아내는 15세나 연상인 자신과 결혼하여 내내 가난과 폐결핵으로 고생만 하다가 그의 곁을 떠났다. 더군다나 혹한 속에 담요도 없이 짚을 깐 침대에서 쓸쓸히. 그러니 그녀를 잃은 포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했겠는가. 바닷가 왕국, 천사들의 시기, 애너벨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없으면 달도 별도 뜨지 않는 캄캄한 세계 등으로 그려지는 '환상의 바닷가 세계'라도 떠올리지 않으면 그 시인은 단 하루도 더 살기 어려울 것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는 시다.

 

『애너벨 리』를 읽고 영감을 얻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신의 대표작인 『롤리타』에서 애너벨을 부활시킨다. 롤리타를 만나기 전에 험버트가 '바닷가 공국'에서 만난 열세 살 소녀의 이름이 바로 애너벨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 아득한 여름의 빛 속에서였을까. 아니면 그 아이를 향한 과도한 욕망은 나의 선천적 이상을 입증하는 최초의 사례에 지나지 않았을까? …… 그러나 마법 때문이든 운명 때문이든 간에 롤리타는 애너벨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애너벨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때문에 그 악몽 같은 여름날의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것이 연애를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바람에 청춘을 쓸쓸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안다. …… 애너벨이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깃든 그녀의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만나기 오래전부터 똑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의 기억을 비교해보니 신기하리만큼 유사점이 많았다. …… 아, 롤리타, 너도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었더라면!(24∼2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포의 단편소설들은 초자연적이면서도 동시에 기괴하거나 어쨌든 몹시 극단적이다. 절망감에 시달리고, 모순적이며, 자기분열적인 작가의 성격이 깊게 베어 있다. 작가 스스로 '도착적인 것(the perverse)'이라고 부른 비현실적이고 예외적인 소재를 추구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 또한 크게 엇갈렸다. 아주 현대적이거나 심지어 탈현대적인 모든 것의 선구자라는 견해와, T. S. 엘리엇이 말한 대로 '재능이 탁월한 사춘기 이전 젊은이의 지성'을 가진 작가, 즉 미성숙한 작가로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작품들로는 이 책의 맨 앞에 수록된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나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이 특히 인상적이다. 북대서양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추락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어부의 체험을 다룬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폭풍우를 소재로 삼아 쓴 「템페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산더미같은 폭풍우와 맞서 싸우는 영화 「퍼펙트 스톰」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거대한 소용돌이에 대한 너무 생생한 묘사 때문에 발끝이 저릴 정도다.

 

붉은 죽음이라는 무서운 역병을 피해 왕과 귀족들이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성에서 사는 동안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공포 영화 「Goast Ship」을 떠올릴 정도로 소름이 돋고 무섭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포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가장 심오하게 그린 작품은 「리지아」가 아닐까 싶다. 보기 드문 학식과 환상적인 미모와 음악적인 언어 등등 세상의 모든 남자가 바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춘 리지아를 아내로 둔 남자의 이야기다. 그토록 완벽한 아내와 더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하루 아침에 그녀를 병으로 잃는다. 고귀한 가문 출신의 리지아는 아주 막대한 양의 재산을 남기고,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황량하고 외딴곳에 있는 사원을 구입한 뒤 거기서 칩거한다. 그는 음습하고 황량한 사원의 외관은 그대로 두지만 실내만큼은 왕궁을 능가할 만큼 호화롭게 꾸미고 나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숙녀를 '리지아의 후계자'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리지아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 맞은 아내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끝내 병들어 죽는다. 수의를 입힌 로웨나 곁에 머무는 동안 남자는 리지아에 관한 수천의 기억에 빠져들고, 마침내 죽은 로웨나가 리지아로 환생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그녀의 이마와 뺨과 목도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온기가 그녀의 몸 전체에 스며드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심장도 약하게 뛰었다. 아내가 살아났다.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그녀를 소생시키는 일에 덤벼들었다. …… 그러다 갑자기 혈색이 가시고 맥박이 멈췄으며 입술은 죽은 자의 표정으로 되돌아 갔다. 곧 그녀의 몸 전체가 얼음장처럼 차디차게 식은 채 납빛을 띠었고, 경직 상태에 접어들어 팽팽한 윤곽을 잃어버리고 마치 여러 날 동안 무덤에 묻혔던 시체 같아 보였다.

 

 

인간의 자아에 대한 이중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은 「어셔가의 몰락」과 「윌리엄 윌슨」을 꼽을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은 익숙한 공포 소설의 원형에 가깝다. 컴컴하고 우중충하고 적막하던 어느 날 '나'는 어셔 저택을 찾아간다. 저택의 주인은 소년 시절 단짝 친구 중 하나였다. 황량하고 음침한 모습의 어셔 저택 안에는 오랜 병환에 시달리는 여동생 메들라인과 오빠인 로더릭 어셔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갑작스레 죽은 여동생을 지하 납골당에 매장하는 일을 도와 주는데, 며칠 후 폭풍이 휘몰아치는 한밤중에 둔중한 문이 열리고, 그 문밖에 수의를 입은 매들라인 어셔 양이 우뚝 서 있다.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면서 흔들거리다가 오빠 쪽으로 꽈당 넘어졌고, 그를 시체로 만들어버린다. 혼비백산한 '나'는 그 저택을 피해 도망쳐 나오는데, 그때까지 여전히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와 함께 어셔 가의 저택 건물도 지붕에서부터 지그재그를 그리며 쪼개지더니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윌리엄 윌슨」은 주인공의 이름인데, 그가 잉글랜드 지방의 고색창연한 마을에 자리잡은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똑같은 이름을 지닌 친구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 학교에서 5년 동안이나 생활하는 동안 윌슨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다니며, '나'를 흉내내고, 대들고, 조소한다. 마침내 나는 그 아이를 견딜 수 없이 증오하게 되고, 그 학교를 떠난다. '나'는 이튼으로, 옥스퍼드로 학교를 옮겨 다니지만, 그는 어김없이 거기까지 찾아온다.

 

로마의 카니발 기간 동안 어느 공작의 궁전에서 개최된 가면무도회에 참석했을 때, '나'는 젊고 명랑하며 아름다운 공작 부인을 초조하게 찾는다. 바로 그 순간 어깨에 가벼운 손길이 느껴지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낮고도 지긋지긋한 속삭임'으로 다가온 윌슨과 마주친다. 분노에 휩싸인 '나'는 그 녀석을 옆방으로 끌고가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마침내 결투 끝에 그를 칼로 찔러 죽이고 보니, 가면과 외투를 벗은 그의 모습은 '나' 자신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 사람은 윌슨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으니,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동안 나는 마치 나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네가 이겼고, 내가 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너 또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넌 세상과 천국과 희망에 대해 죽은 존재니까! 넌 여태까지 내 안에서 존재해 왔으니까. 너의 모습과 똑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죽임으로써 네가 얼마나 철저하게 너 스스로를 살해한 것인지 똑바로 보라고."

 

 

「배반의 심장」과 「검은 고양이」는 살인범의 도착적인 심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배반의 심장」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무 이유도 없이 함께 사는 노인을 죽이고, 「검은 고양이」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나중에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아내까지 살해하는데,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을 게 가장 확실해진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범행의 발각'을 자초한다는 점에서 똑 닮았다.

 

「구덩이와 추」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끔찍한 공포를 그린 작품인데, 사방이 벽으로 갇힌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시시각각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와 처절하게 씨름하는 모습은 '악몽' 그 자체다. 지하 감옥의 가운데는 썩은 곰팡이의 고약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깊은 구덩이가 파져 있고, 죄수의 몸은 나무 틀처럼 생긴 것 위에 단단히 묶여 있다. 감옥의 천장에서는 시계추처럼 생긴 강철 칼날이 쉿 소리를 내며 자꾸만 아래로 내려온다.

 

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여하튼 그 장치가 아주 조금만 밑으로 내려와도, 날카롭게 번뜩거리던 그 도끼가 내 가슴을 후려칠 거라는 기대에 신경 마디마디가 다 떨려 왔다. 내 신경을 떨게 한 요인, 내 몸을 움츠리게 한 요인은 희망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아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자에게 속삭이던 것은 희망 ㅡ 고문대 위에서조차 개가를 올리는 바로 그 희망 ㅡ 이었다.

 

 

끈에 묶인 사형수가 최후에 시도하는 탈출 방법은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어렵다. 주위에 들끓는 쥐들로 하여금 자신을 묶은 끈을 갉아먹을 수 있도록, 자신이 먹다 남긴 양념이 묻은 음식 조각들을 끈 위에 열심히 문질러대기 때문이다. 죄수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향해 덤벼드는 거칠고 대담한 쥐들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손가락이 박히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상은 적중한다. 수백 마리의 쥐가 음식이 발라진 결박끈 주위를 바삐 돌아다니고, 그 짐승들이 목 위에서 몸을 비틀고, 그것들의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지만, 초인적인 인내 끝에 결박은 느슨해지고 마침내 죄수는 결박에서 탈출한다.

 

사형수가 겪는 극한의 공포 단계에서 난데없이 붉은 눈을 번뜩이는 '쥐'가 등장한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이 작품이 조지 오웰의 『1984』에도 조금은(?)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반역 혐의로 체포된 주인공 윈스턴이 거듭되는 가혹한 고문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최후로 끌려간 곳은 악명 높은 '101호실'인데, 거기서 윈스턴이 마주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쥐였기 때문이다.

 

"자네의 꿈속에 자주 나타났던 공포의 순간을 기억하나? 자네 앞에는 시커먼 벽이 있었고, 짐승 우는 소리가 자네 귀에 들렸지. 벽 맞은편에 무시무시한 게 있었네. 그게 뭔지 자네는 알고 있었지만, 감히 그걸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 벽 맞은편에 뭐가 있었나? 바로 쥐들이 있었잖았나?"(397∼398쪽)

 

 - 조지 오웰, 『1984』 

 

 

극한의 공포와 절망감, 심연으로의 추락이나 가차없는 몰락, 음습함과 기괴함이 가득한 게 포의 작품들을 특징짓지만, 「도둑맞은 편지」에 이르면 그런 기분이 싹 가신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부터 뭔가 다르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서는 탐정의 원조인 뒤팽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훗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도둑맞은 편지」는 중편 길이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함께 '추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작품이다.

 

포의 문학적 특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여러 문학 장르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추리 소설이나 공포 소설뿐만 아니라 공상 과학 소설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쉽게 감지된다. 그의 작품에는 대체로 마음의 어두운 구석에 자리잡은 불가해한 심리들이 짙게 깔려 있다. 기괴하거나, 공포스럽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끝없는 추락에 내몰리거나, 혹은 괴기스럽게 복수하거나. 어찌 아니 그랬겠는가. 그의 인생 자체가 늘 불운의 연속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가난과 우울과 절망과 비참에 내몰렸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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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8-09-22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점점 한 작품, 한 작가만 다루시는 게 아니라 그 깊이와 외연도 확장되어 가시네요.
어릴 때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무서워 이불뒤집어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 못 이루던 여름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세상에 벽속에 시체라니요.ㄷㄷㄷ
이 끔찍한 상상은 <수사반장>의 벽장속의 귀뚜라미 시계로 이어지며 제 어린시절 불면을 만들어냈었죠.;;;;
수사반장의 그 에피소드는 대강 이렇습니다. 주택 공사장 인부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 중 한명이 실종됩니다. 살해혐의는 충분한데 시체가 없죠. 시간은 흐르고 집은 완공되어 입주합니다. 얼마 뒤 신고가 들어옵니다. 벽쪽에서 자꾸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고요.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저 벽 너머의 공포를 항상 상상하게 해준 포였습니다.
쓰신 내용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짬 내어 들어와 대략적으로 읽었네요.
추석 연휴 평안히 보내십시오~

oren 2018-09-23 15:31   좋아요 0 | URL
한동안 웅편거작들을 꽉 붙잡고 오랫동안 거기에 탐닉하는 재미를 붙여왔는데, 최근에 몇몇 작가들의 단편들을 읽어보니 나름대로 독특한 재미가 있더군요. 그런데, 포의 단편들은 너무나 최신의 작품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주 현대적이면서도 기발한 상상들이 가득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추리소설들과 괴기 소설들의 원형이 바로 포에게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요.

가장 놀랐던 건 물론 포가 쓴 「애너벨 리」였어요. 나보코프의 작품 『롤리타』에 등장하는 그 열세 살 소녀가 다름아닌 포의 애너벨이었다니... 포의 단편이라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둘 사이의 연관을 새까맣게 모를 뻔했어요. 포와 애너벨, 포와 나보코프, 험버트와 롤리타와 애너벨의 연관 등에 얽힌 사연들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롤리타』를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치솟았지만, 꾹꾹 눌러 참고 있습니다.^^

생매장 이야기는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아몬티야도 술통」 등등에 거듭 등장해서 나중엔 별로 놀랍지도 않던데, 아주 어릴 적에 일찌감치 그런 작품들을 읽고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 어려운 남모를 공포에 떨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어릴 때 들었던 귀신 이야기는 단 한 번만 들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으니까요. 저는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의 종갓집 연못 못둑에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는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위를 배회했다는 ‘하얀 상복의 귀신 이야기‘를 듣고, 그 소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지나다녔는지 모른답니다.(물론 그 소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서 있지요.) 특히나 깜깜한 밤에 홀로 그 소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면 간이 콩알만 해져서 진땀이 빠작빠작 날 정도였지요. 뭐, 지금은 그 이야기가 언제 존재하기나 했었나 싶을 정도가 되었지만요.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새 30년도 훌쩍 지났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8-09-30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깊고 넓음의 독서에 대하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님의 글을 보면 늘 자극을 받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알라딘 메인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님의 페이퍼를 발견하여 꼼꼼히 읽고 책을 구입한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독서의 방향을 제시 받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기회가 되어 말씀드립니다. -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8-10-01 00:24   좋아요 2 | URL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하고, 구름처럼 빠르게 휙휙 스쳐가기도 하는 듯해요. 그런 생각들을 제때에 얼마쯤이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다시는 그 생각들을 영영 되살리기 힘들 때도 많은 것 같고요.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책 내용을 곰곰 되짚어 보고, 어느새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는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해봐야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기도 하고요. 리뷰나 페이퍼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영영 사라질 때가 아주 많으니까요.그래서 때로는 숙제하는 듯한 무거운 기분이 들더라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글로 차분히 정리해 보려고 끙끙거린답니다. 그런 글들이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옆가지로 뻗어나가더라도 일부러 내버려 두기도 하고요.

어떤 책이든 그걸 다 읽고 난 직후의 아주 생생한 느낌이나 생각들은 너무나 증발하기 쉬운 얄미운 속성들을 지닌 듯해요. ‘나중에 적당한 시간이 나면 글로 한번 정리해 봐야지 …… ‘ 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독후감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 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돌이켜 보면 속상할 때도 많고요. 그래서 이런 글이라도 남기고 나면 괜한 안도감이 들 때도 있답니다. 나중에라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느낌들을 되살펴 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제가 받았던 느낌을 전달해 드릴 수도 있고요. 아무튼 단 한 번의 작업으로 꽤나 먼 미래까지 무언가가 계속 연장되는 효과를 얻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인 듯해요.^^

늘해랑 2019-01-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동감하네요. 저또한 항상 좋은 책을 읽고 나중에 잘 정리해야지 하면서 놓쳤던 일이 매무 많았거든요ㅠㅠ
근데 이 글을 보고 다시금 그때그때 후회하지않고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의 고민이 혼자만 생각했던것이 아니라는게 느껴져서 위로받고 갑니다.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ㅋㅋ

oren 2019-01-04 16:34   좋아요 0 | URL
네.. 제 글에 공감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투르게네프(1818∼1883)

 

투르게네프는 러시아를 빛낸 위대한 소설가에 반드시 포함되는 작가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또 그만큼 덜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작가가 한창 시절을 보내던 1840년대와 1850년대에는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호소력을 지니지 못한 탓도 있다. 그는 그만큼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0년 전에 태어난 작가에게 우리가 과연 얼마나 친숙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러시아 작가인데 말이다.

 

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자면 우선 그가 살았던 시대부터 조금 더 고찰하는 게 순서이지 싶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완성되던 해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 무렵의 세계를 좀 더 넓게 둘러 보면 이렇다. 구대륙에서는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쓴 끝에 알프스를 넘어 러시아 원정(1812.5∼1812.10)까지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 여파로 이듬해 파리가 함락되고 파리 평화 조약이 체결된다(1814년). 새로운 유럽의 국제 질서는 빈 회의에 맡겨지는데, 빈 회의가 잠시 난항을 겪자 그 틈을 비집고 나폴레옹은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지배는 100일 천하로 끝나고, 워털루 전투(1815년)에 패해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빈 회의가 끝난 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제창으로 신성 동맹이 성립되고, 영국 · 러시아 ·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이 4국 동맹(1815년)을 맺는다. 저 멀리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1821년)하고, 그리스는 지난한 독립 전쟁(1821∼1832)을 겨우 시작한다.

 

이제 다시 눈길을 러시아로 돌려 보자.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는 몹시 분주했다. 나폴레옹 전쟁을 치른 뒤에는 파리에 입성하여 빈 회의와 신성동맹 결성을 주도했다. 그런데 1825년에 갑자기 사망한다. 이때 후계자 문제로 어수선한 틈을 타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반란이 일어난다. 나폴레옹을 추격해 유럽 원정에 나섰던 진보적인 청년 귀족들이 1816년부터 혁명적 결사를 조직해 활동해 오다가, 반동적인 니콜라이가 즉위하는 1825년 12월 26일에 행동을 일으켰지만 군대에 진압되고, 대다수는 잔혹하게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다.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러시아 최초의 무장 봉기이자 러시아 혁명 운동사의 시작인 셈인데, 러시아 전역에 오래도록 커다란 충격파를 남겼다. 데카브리스트와 깊숙히 교유했던 푸시킨이 이 반란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남겼고,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 또한 구상 단계에서는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중심 소재이자 배경이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하던 무렵에는 데카브리스트 혁명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겪는 지식인의 이야기를 쓸 참이었다. 그러자면 데카브리스트 반란보다 앞서 일어났던 나폴레옹 전쟁부터 먼저 고찰해야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러시아 국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도중에 작가의 생각이 바뀌었다. 데카브리스트 지식인 몇 사람보다는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러시아 민중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 이야기로 바뀌었고,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듬해인 1813년까지의 이야기가 웅대한 장편으로 탄생했다. 『전쟁과 평화』에 딸린 에필로그에서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소소한 훗날 이야기들도 1820년 12월 초순에 이르면 한결같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정지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25년 12월에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혁명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에서는 끝내 담기지 못한다.

 

투르게네프가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말고도 작가의 주변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860년 이후 검열이 가혹한 러시아의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평생 동안 쫓아 다녔던 여가수인 폴린 비아르도를 따라 홀연 프랑스로 건너간 뒤 유럽에서 여생을 보냈고, 거기서 수많은 작가들과 교유하며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가 교유한 인물들은 대표적으로 플로베르, 에밀 졸라, 모파상, 빅토르 위고, 알퐁스 도데, 조르주 상드, 헨리 제임스 등이었다. 물론 그는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는 푸시킨(1837년), 레르몬토프(1839년), 도스토옙스키(1845년), 톨스토이(1855년) 등과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을 탈고하던 해인 1861년에는 톨스토이와 결투까지 갈 정도로 심한 언쟁을 벌였던 적도 있었고, 1867년에는 바덴바덴에서 도스토옙스키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략 이만큼 투르게네프의 주변을 둘러보고 나면 그가 우리에게 조금은 덜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투르게네프와 그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얘기하자면 이런 식으로 작가의 주변을 한번쯤 빙 둘러 돌아보는 방식이 약간은 유용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작가가 이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야말로 '세대 간의 갈등'이 핵심 주제인데, 세대 간의 갈등이란 결국 동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이며, 이런 세대 갈등의 요소들을 한겹 두겹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그 속에는 시대 자체가 차츰 변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반되는 '세대들 사이의 다양한 인식 차이'가 깊숙히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굳이 200년 전쯤의 시대적 배경들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시시콜콜 들추어 낸 이유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그런 역사적 배경 지식들이 적잖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세대 간의 갈등 속에는 뜻밖에도 나폴레옹, 나폴레옹 전쟁, 웰링턴 장군 등은 물론, 1825년에 일어났던 데카브리스트 반란, 알렉산드르 1세, 니콜라이 황제 등이 심심찮게 자주 등장하며, 심지어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주요 인물로 활약했던 실존 인물인 꾸뚜조프 장군(러시아군 총사령관) 같은 인물까지도 등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와 아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푸시킨의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싯구절이 슬며시 인용되는 정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여서 조금도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와 아들』에 담긴 가공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소설 제목의 원뜻은 『아버지들과 아이들』이지만 두 세대의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로 굳어졌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의외로 단촐하다. 아들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자로프와 그의 대학 동창인 아르카디 키르사노프다.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아르카디의 아버지인 니콜라이와 아르카디의 큰아버지인 파벨이다. 이들 네 사람은 당대 러시아 사회가 떠안고 있던 온갖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 사사건건 견해를 달리하고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 충돌의 중심에는 늘상 바자로프와 파벨이 자리잡고 있다.

 

1859년 5월, 페테르부르크에서 학업을 마친 아르카디가 귀향길에 오른다. 그는 절친이자 스승 격인 바자로프를 자신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영지인 마리노 마을로 함께 데려간다. '아버지 세대'인 니콜라이와 파벨은 귀족 출신들이고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인 데 반해, '아들 세대'인 바자로프는 잡계급 출신의 혁명적이고도 급진적인 민주주의자이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러시아의 농노해방(1861년 1월)을 앞두고 두 세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파벨과 바자로프는 대면한 첫날 저녁부터 '서로가 강력한 적수'임을 직감한다. 당시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던 이슈였던 농노제도,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 유물론과 관념론, 문학과 예술, 러시아의 미래 발전 방향 등등에 대해 어느 하나 서로의 견해가 다르지 않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벨이 보기에 바자로프는 '몹시 오만하고 뻔뻔스러운 냉소주의자이자 천한 놈'일 뿐이었고, 바자로프에게 파벨은 철주한 귀족주의자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현상'일 뿐이었다. 그들의 견해 차이는 너무나 커서, 그 둘 사이에 끼인 온건한 보수주의자인 니콜라이와 온건한 진보주의자인 아르카디가 곤욕을 치른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려 애써 보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파벨은 젊어서 한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제법 잘 나가는 젊은 귀족 신분이었으나 어느새 영락하여 홀몸으로 동생의 영지에 얹혀 사는 신세다. 니콜라이는 아내와 사별하고 나서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의 동네 처녀를 데려와 후처 삼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런 시골 영지에 일부러 '친구 따라' 시골로 찾아와 손님 신세로 체류 중인 바자로프 또한 자신의 거처가 마냥 편할 리는 없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서로 다함께 차를 마실 시간이나 식사 시간만 되면 파벨과 같은 '꼴통 보수'와 매번 마주쳐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파벨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자로프가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해서 무작정 그를 내칠 입장도 아니다. 아무리 그 청년이 못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조카가 가장 믿고 따르는 절친이자 일부러 손님으로 데려온 전도유망한 청년을 어떻게 함부로 내쫓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에는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만 있는 건 아니다. 연인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던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 속에 어김없이 다양한 유형의 커플들을 창조해 냈다. 그 가운데는 동네 처녀인 페네치카에 대한 향반(鄕班) 귀족 니콜라이의 동정 어린 사랑이나 카챠를 향한 청년 아르카디의 순수한 사랑 만으로도 인상적이지만, 아무래도 젊은 과부인 오딘초바를 향한 바자로프의 사랑만큼 특별하진 않다.

 

바자로프는 자칭 니힐리스트로서 '사랑의 감정' 자체를 냉소하고 배척하려 애쓰지만,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과부인 오딘초바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마저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절감한다. 바자로프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젊은 청년과의 불확실한 사랑 때문에 새로운 번민에 빠지기 보다는 안정과 평온을 선택하는 오딘초바는 냉정하고도 이기적이다. 사랑의 열병에 빠져 허우적대는 바자로프에게 결단코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딘초바의 그런 태도 때문에 바자로프는 더욱 애타게 그녀 주위를 맴돌지만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끝끝내 오딘초바에 의해 거부되고, 두 사람은 기약없이 결별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스스로 위로하고, 아픈 사랑에 대한 미련과 회한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도리어 안도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오딘초바는 바자로프가 뜻하지 않게 사랑을 고백했던 그 방이 아니라 객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그에게 다정하게 손가락 끝을 내밀었지만 얼굴 표정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어 있었다.

 

"안나 세르게예브나." 바자로프가 서둘러 말했다. "우선 당신을 안심시켜야 하겠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한 평범한 인간은 오래전에 정신을 차렸고, 자기가 행했던 어리석은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잊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에 떠나면 오랫동안 뵙지 못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연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당신이 혐오감으로 저를 회상하리라 생각하며 떠난다면 아주 불유쾌할 겁니다."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높은 산 위에 방금 올라온 사람처럼 심호흡을 했다. 얼굴은 미소로 활기를 띠었다. 그녀는 다시 바자로프에게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악수에 응했다.

 

"지난 일을 떠올려서 뭘 하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게다가 솔직히 제게도 잘못이 있었어요. 애교를 부리진 않았다 해도 뭔가 다른 잘못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전처럼 친구로 지내요. 그건 꿈이었어요. 그렇잖아요? 누가 꿈을 기억하겠어요?"

 

"누가 그런 걸 기억하겠습니까? 게다가 사랑이란 …… 그건 위선적인 감정이니까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뻐요."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이렇게, 바자로프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둘 다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진실이었을까? 그들 자신도 모르는 일을 작가가 어찌 알겠는가.(271∼272쪽)

 

 

한편, 파벨과 바자로프의 갈등은 엉뚱한 데서 끝내 폭발하고 만다. 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장차 뛰어난 의사가 될 소양이 풍부했던 바자로프는 친구네 집에 머무는 동안 친구 아버지인 니콜라이의 후처 페네치카와 사이가 돈독한 편이었다. 그녀가 낳아 기르는 갓난아기가 아플 때 정성껏 돌봐주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느날 아침 산책길에 정원에서 만나, 서로 함께 장미꽃 향기를 맡으면서 키스하는 장면이 우연히 파벨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파벨은 더이상 바자로프의 행동거지를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고,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뿌리깊은 증오심과 경멸을 담은 상대방의 도발에 바자로프도 곧바로 결투에 응한다. 다음날 아침 곧바로 권총 결투가 벌어졌지만 다행히 파벨이 다리에 총상을 입는 정도로 그치고, 바자로프는 이내 그곳을 떠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귀향한 아들을 맞이하게 된 바자로프의 부모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얼마 전에도 아들이 친구인 아르카디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 곁에 머물렀지만 그 기간이 너무나 짧았기 때문이다. 그때 바자로프는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에서 고작 사흘밤만 묵고 나서 갑작스레 훌쩍 떠나고 말았다. 자바로프의 부모는 어쩌면 아직도 그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잠깐 그 때의 느닷없는 이별 장면으로 되돌아가 보자.

 

다음 날 바자로프와 아르카디가 떠났다. 아침부터 온 집안이 침울한 분위기였다. ……  바실리 이바니치는 전에 없이 부산을 피웠다. 그는 눈에 띄게 허세를 부리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발을 쿵쿵 굴렀지만, 그의 얼굴은 삐쩍 말라버렸고 눈길은 끊임없이 아들 쪽을 스쳐지나갔다. 아리나 블라시예브나는 조용히 울었다. 남편이 아침 일찍 꼬박 두 시간 동안 달래지 않았다면 노파는 망연자실하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안에 꼭 돌아오겠다고 여러 번 약속을 하고 자기를 붙잡고 있던 포옹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바자로프가 여행마차에 올라탔을 때, 말들이 움직이고 방울이 울리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이젠 더 이상 배웅할 필요가 없고 피어올랐던 먼지도 가라앉았을 때, 티모페이치가 완전히 등을 구부리고 비틀거리면서 조그만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을 때, 갑자기 쪼그라들고 낡아버린 것 같은 집에 노부부만이 남았을 때, 조금 전만 해도 현관 계단에 서서 힘차게 손수건을 흔들던 바실리 이바니치는 맥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머리를 가슴에 푹 떨어뜨렸다. "버렸어. 우리를 버렸어!" 그는 중얼거렸다. "우릴 버렸어. 우리와 있는 게 답답했던 거야. 이젠 혼자야. 이 손가락처럼 혼자 남았어!" 그는 몇 번이나 되뇌었고, 그때마다 집게손가락만 편 한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아리나 블라시예브나가 다가와 백발이 성성한 자기 머리를 하얗게 센 남편의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바샤, 어쩔 수 없어요! 아들이란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거예요. 그애는 매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지만, 우리는 한 구멍 속에 난 버섯처럼 나란히 앉아서 꼼짝하지 않지요. 나만은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도 그럴 테지요."(215∼216쪽)

 

 

어딘가 실의에 잠긴 모습으로 불쑥 집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말했다. 육 주 동안 머무를 생각으로 왔으며, 공부를 하고 싶으니까 제발 아무런 방해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서재를 통째 내어주고, 아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러던 아들에게 우울한 권태와 막연한 불안이 찾아오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갑자기 사라졌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그만두고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일을 찾아냈다. 군의(軍醫)로 복무하다 퇴역한 아버지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상당한 농군을 힘겹게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진료를 직접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자로프가 아버지의 방으로 찾아가 '질산은'이 있느냐고 묻는다. 자신의 상처를 지져야 한다고 했다. 이웃 마을에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망한 환자가 나타났고, 일부러 간청해서 그 환자의 해부 실습에 참여했다가 그만 손가락을 좀 베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티푸스에 감염되었다면 때가 이미 늦었다는 게 문제였다. 손가락을 베었을 때만 하더라도 군의(郡醫)에게 질산은이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째 되던 날, 아들은 이미 식욕도 잃고, 두통과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실리 이바니치는 말없이 아들을 간병했다. 아리나 블라시예브나가 아들 방으로 들어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바자로프는 '훨씬 좋아졌다'고 말하고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바실리 이바니치는 아내를 향해 두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문 채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집 안의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모두 풀죽은 얼굴을 했다. 집 안은 이상한 정적에 휩싸였다. …… 바실리 이바니치는 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아들을 피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저 다시 안락의자에 죽은 듯이 앉아서 이따금 손가락만 딱딱 꺾었다. 노인은 잠깐씩 정원으로 나와 형용할 수 없는 충격으로 장승이 되어버린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질문을 피하면서 다시 아들에게로 돌아갔다. 결국 참다 못한 아내가 그의 손을 붙들고 거의 위협하듯이 발작적으로 말했다.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대답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웬일인지 미소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295∼296쪽)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바자로프에게 단 하나 남은 유일한 소망은 오딘초바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평생을 바자로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꿋꿋이 버티며 살아왔던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뜬금없는 '아들의 소원'이었지만 그 요청을 흔쾌히 들어준다. 소식을 들은 오딘초바는 독일인 의사까지 데려왔지만, 이미 환자는 죽은 사람 같은 창백한 얼굴과 흐릿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힘겹게 그녀에게 건네는 말 속엔 '다시 오지 못할 순간들'에 대한 깊은 회한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절박한 메시지가 함께 농축된 느낌을 준다.

 

"아,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만 하는데……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전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은 하나의 존재 형태인데, 나 자신의 형태가 이미 해체되고 있으니까요."

 

바자로프가 죽고 나서도 세월은 무심하게 흐른다. 그러나 마리노 마을의 지주 저택에서 일어난 몇몇 중요한 변화들(두 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다. 아르카디는 오딘초바의 여동생 카챠와 결혼하고, 니콜라이는 후처 페네치카와 정식 결혼식을 올린다. 오딘초바는 정치가를 지망하는 유능한 법률가와 결혼한다. 파벨은 모스크바로 떠난다.)을 모두 합친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노부부의 삶에 끼친 극적인 변화에 비하면 턱없이 사소해 보인다. 바자로프의 무덤가 풍경을 묘사한 작가의 문장은 너무나 애통하고 가슴이 시려 계속 읽기 힘들 정도다.

 

러시아의 한 벽촌에 조그만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공동묘지가 다 그렇듯이, 이 공동묘지도 서글픈 모습을 하고 있다. 공동묘지를 에워싼 도랑은 오래전부터 잡초로 뒤덮였다. 잿빛 나무십자가들은 옆으로 기울어진 채 예전에 한번 페인트칠을 했던 십자가 지붕 밑에서 썩어가고 있다. 돌비석들은 마치 누군가가 밑에서 떠밀어 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씩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다. …… 그러나 그 무덤들 가운데 사람의 손길도 닿지 않고 동물의 발에도 짓밟히지 않은 무덤이 하나 있다. 그저 새들만이 그 위에 앉아서 노래를 부를 뿐이다. 철책이 무덤을 둘러싸고 있고, 어린 전나무 두 그루가 양쪽 끝에 심겨 있다. 이 무덤에 예브게니 바자로프가 묻혀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서 이미 노쇠한 부부가 자주 이 무덤을 찾아오곤 한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온다. 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오랫동안 서럽게 울면서 말 못하는 비석을 빤히 바라본다. 그 비석 아래 그들의 아들이 누워 있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서 비석에 앉은 먼지를 털고 전나무 가지를 다듬어주다가 다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거기에 있으면, 아들에게 더 가까이 있고, 아들과 관련된 추억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기도, 그들의 눈물이 헛된 것일까? 정말로 사랑, 그 성스럽고 헌신적인 사랑이 무력한 것일까? 오, 아니다!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정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315∼316쪽)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그런데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엄청난 소란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논쟁의 핵심은 바자로프에 대한 투르게네프의 태도에 관한 문제였는데, 보수주의자들은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의 장점을 너무 과장하고 미화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작가가 바자로프를 통해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을 악랄하게 희화하고 중상모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들은 당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왜 그토록 엄청난 소란을 일으켰는지를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양쪽 진영이 극단적인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주장했던 내용들이 현대의 독자들에겐 그다지 커다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세대 간의 갈등'을 그린 사회·정치적인 소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대를 살던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온갖 삶의 애환들을 그린 세태 풍속 소설이나 연애 소설, 혹은 가족 소설의 요소들도 두루 지니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의 좋았던 한 때를 자주 회상하는 파벨과 니콜라이의 모습에서 차츰 스러져가는 러시아 특유의 귀족 문화에 대한 애가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니콜라이가 자식 또래에 불과한 마을 처녀를 데려다 사는 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토속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더구나 젊은 청년 바자로프가 그녀의 발산하는 젊은 매력에 홀딱 빠져 느닷없이 입맞춤을 시도하는 모습은 도리어 순수하고도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전도 유망한 의사 지망생이었던 바자로프가 늙은 부모에게 다소 쌀쌀맞게 대하고, 그 부모들은 아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헌신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태도 또한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다.

 

투르게네프에게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느껴지는 혁명적이고 테리리스트적이며 충격적인 기질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 대신에 (정말 뜻밖에도!) 우리나라의 근대 문학 작품들에서 곧잘 느껴지는 특유의 토속적인 향수나 우수, 혹은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모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환자들을 돌보며 돈독하고 즐겁게 지낼 꿈에 잔뜩 부풀어 오른 바자로프의 부모들에게 들이닥친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얼마나 황당하고도 슬픈가. 이 대목에선 현진건의 단편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인력거를 끌던 김첨지가 억세게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몹시 들떠 하루를 보내지만, 정작 그날 저녁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내의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오딘초바와 바자로프의 지극히 조심스러운 사랑 접근법은 얼핏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은근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현실의 장벽 때문에 끝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서로 안타까워하면서 이별한다는 점에 한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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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어떤 위대한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보다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경우란 대개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 사람이 쓴 책을 감명깊게 읽었거나, 혹은 그 사람의 발자취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거나.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내가 직접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을 정도로 가까이 찾아간 최초의 인물이 바로 갈릴레이였다. 2001년에 난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이었던 두 아이들은 이름난 여행지마다 끊임없이 마주치는 비둘기떼 꽁무니만 좇을 뿐, 엄마와 아빠의 설명은 들은 체 만 체 했다. 비싼 경비 들여서 큰 맘 먹고 열흘 이상 짬을 내어 멀리 유럽까지 장거리를 떠나 온 데다, 로마 시내를 비롯한 여러 관광지마다 뙤약볕 아래 하루 온 종일 걷다시피 했던 터라, 도무지 애들한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 고생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었다.

 

피렌체에 갔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렌체 시내에 있던 단테의 생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피렌체 대성당 앞 세례당에 청동으로 조각된 '천국의 문' 등등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딱 한 번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피렌체 산타클로체 성당 안에서 마주친 갈릴레오의 무덤 앞에서였다.

 

"아빠! 사진 한 장 찍어줘요!"

 

과학자가 꿈이라던 아들 녀석이 어떻게 갈릴레이를 알았는지, 그의 무덤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느닷없이 자청해서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도 사진을 찍기 싫어 하고, 곳곳에서 마주치는 온갖 이름난 명소와 예술 작품들에 대해선 도무지 아무런 관심도 없던 녀석이 갈릴레이의 무덤 앞에서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나타낸 것이었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그 동안 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겪었던 고생들이 한 순간에 싹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 때 내 마음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었던 (아들 녀석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갈릴레오는 그 후 좀처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명저인 『대화_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라는 책이 과학 분야의 탁월한 명저라는 사실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책은 국내에선 번역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은 원래부터 어렵사리 쓰여진 책이었고, 갈릴레이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결코 쉽사리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건 물론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장을 금기시했고, 책의 유통을 아예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1559년에 교황 파울루스 4세는 교회 전체를 상대로 「금서목록」을 발표하고, 여기 수록된 책들을 읽으면 영혼이 위험해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에라스무스의 모든 책이 목록에 올랐고, 코란도 포함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1758년까지 목록에 남아 있었고, 갈릴레오의 『대화』는 1822년까지 금서로 묶였다.(674쪽)

 

 * * *

 

"사제, 수사, 고위 성직자들도 암시장에서 갈릴레오의 『대화』를 구입하려 했다. 이탈리아 전역의 암시장에서 책값은 원래의 반 스쿠도에서 4∼6스쿠도로 크게 뛰었다.(675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갈릴레오 이전에도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가 있었다. 폴란드의 의사였던 코페르니쿠스(1473∼1543)였다. 그는 일찌감치 1513년에 지동설을 발표했지만 교회의 반대를 고려해 자신의 이론을 담은 저술인『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일부러 죽기 직전에 출간했다. 그는 단지 지구보다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것이 천체의 모델을 훨씬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고, 궤도 주기의 수학적 계산을 더욱 간편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단지 하나의 이론'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 책이 출판된 이래 천문학자들은 차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타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확고하게 믿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철학자들과 카톨릭 교회 성직자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릴레오는 바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과학자였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굳건하게 진리로 인정받아 온 사실이 한 순간에 엉터리로 뒤바뀌고, 전혀 새로운 세계관이 마침내 확고한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가 도리어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유명한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으나 곧바로 수학에 흥미를 느껴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피사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지내던 갈릴레오는 천문학에 뛰어들기 전부터 물체의 온갖 운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느껴 온갖 실험과 관찰에 몰두했다.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쇠공을 떨어트린 실험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 실험을 통해 물체의 자유낙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2,000년 가까이 인정받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틀렸음을 증명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피사 대학에서 쫒겨났다. 1592년에 베네치아 공국의 파도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거기서 18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면서 물리학 연구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의 삶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사건은 파도바 대학으로 옮긴지 18년째 되던 해인 1609년에 일어났다. 160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들이 발명한 망원경을 손에 넣고 나서 무려 30배나 성능이 확대된 망원경을 손수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망원경을 통해 갈릴레오는 말 그대로 인류 최초로 천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광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들이 갈릴레오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달은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있어서, 그 험준한 지형은 마치 지구와 비슷했다. 금성은 마치 달처럼 그 모습이 변했다. 어떠한 별자리를 살펴보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것들에 비해서 수십 배 더 많은 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발견은 목성에 딸린 4개의 위성들이었다. 그것들은 목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목성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가 우주의 회전의 중심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9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갈릴레오는 이 놀라운 발견들을 정리해서 1610년에 『별들의 소식』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유럽의 지식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2,000년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는 모든 게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제작하기 바빴고, 갈릴레오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갈릴레오는 이 덕분에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고,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는 태양의 흑점들을 관찰한 결과들에 대해서도 책으로 출판했다. 갈릴레오가 점점 더 지동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로마 교황청의 입장을 옹호하는 여러 성직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갈릴레오는 직접 로마를 방문했다.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승인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616년에 로마 교황청의 종교 재판소에서는 도리어 갈릴레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지 말라는 선고를 내렸다. 그만큼 기존 관념에 대한 뿌리깊은 확신은 강고했다.

 

종교 재판소에서는 "태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어리석고 터무니없으며, 신학적으로 이단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여러 구절들과 명백하게 어긋나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갈릴레오에게 판결문을 전달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지구가 그 둘레를 움직인다는 이론에 대해, 이 이론과 견해를 가르치거나 변호하거나 논의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며, 차후 이에 관하여 그 어떠한 방법으로든, 말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지지하거나 가르치거나 변호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한다."(12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판결문이 전달된 이후 교황을 알현하게 된 갈릴레오는 다행히 교황으로부터 신병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간신히 화를 면한 갈릴레오는 천문 관측을 통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온갖 증거들을 무수히 발견했지만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책으로 출판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논쟁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620년대가 되면서 로마의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한 갈릴레오는 『시금저울』이라는 책을 출판해서 새로운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게 헌정했다. 그 책은 주로 천체들의 움직임, 고체와 유체의 회전 등을 다루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이 들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교황은 갈릴레오의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했고, 갈릴레오는 1624년에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을 알현하고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교황은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이론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책을 써도 좋다고 친히 허락했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한다는 게 사실인 것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피렌체로 돌아온 갈릴레오는 일생일대의 위대한 작품을 쓰기로 즉시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해서 로마 교황청의 검열을 거쳐 출판을 허락받은 책이 『대화』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이 유명한 책은 1632년 2월에 피렌체에서 1,000권이 인쇄되어 나왔다.

 

이 책이 출판되자 갈릴레오의 친구들은 경탄을 쏟아 냈고, 갈릴레오와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던 숱한 적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책 속에서 우둔한 바보로 묘사된 샤이너는 갈릴레오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 그는 제수이트 신부이자 수학, 광학, 천문학을 두루 연구하면서 갈릴레오의 『대화』를 비판하는 책인 『태양 운동 입문』을 저술하기도 했다. 샤이너는 갈릴레오를 종교 재판에 회부하는 데 앞장섰고, 교회의 입장에서 갈릴레오를 공격하는 이론을 제공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갈릴레오가 책을 쓰도록 허락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마저 『대화』를 읽고 나서 격노했다. 지동설을 하나의 가설로서 다룬다는 조건으로 책의 출판을 허락했지만, 책의 내용은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지동설이 실제 사실이라는 점을 너무나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교황이 스스로 강조했던 말이 책 속의 등장 인물인 머리 나쁜 심플리치오의 입을 통해 버젓이 발설된 점을 특히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건 마치 교황 자신을 (천동설을 믿는) 어리석은 심플리치오에 직접 빗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의 이상한 상상을 갖고 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제한하려 하는 것은 참람한 짓이다."

 

교황은 갈릴레오를 로마로 압송해 종교 재판에 회부하도록 명령했고, 종교 재판소는 갈릴레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으며, 갈릴레오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다음과 같은 참회 성사를 읽어 내려갔다. 1633년의 일이었다.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고 빈첸초 갈릴레이의 아들이며, 나이 일흔이며, 여기 재판정에서 이단 행위에 대한 재판을 맡으신 대주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 눈앞에 성경을 놓고 거기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저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가 믿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모든 조목을 믿어 왔으며, 앞으로도 믿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이 종교 재판소에서 제게 해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이런 틀린 개념을 절대로 갖지도, 옹호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했으며, 이 생각은 성경과 어긋남을 알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써서 출판한 책에서 이 저주받을 개념을 다루었으며, 거기에서 이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이유들을 꿰어 맞추고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런 행동이 이단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해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움직이지 않고, 지구는 중심에 있지 않고 움직인다고 제가 믿고 있다는 오해와, 제게 정당하게 쏠리는 이 강한 의혹을, 대주교와 모든 교인의 마음에서 없애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런 틀린 개념과 이단,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다른 어떠한 실수든 포기하고, 저주하고, 혐오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다시는 입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이와 비슷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단 행위를 하면 저는 그를 이 종교 재판소에 고발할 것이며, 제가 지금 있는 이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 것입니다. 저는 이 재판정에서 제게 요구하는 어떠한 속죄 행위라도 지키고 따를 것임을 맹세합니다.

 

하느님에 맹세코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제가 만에 하나 이 약속과 맹세와 언명을 어길 때에는, 이 판결문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 성스러운 교회법과 다른 일반법 또는 특별법의 규정에 따른 모든 처벌과 고통을 감수할 것을 맹세합니다.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성경에 손을 얹고 위와 같이 맹세하고, 서약하고, 약속하고, 다짐합니다. 증인들 입회하에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쓰고 이것을 읽습니다.

 

1633년 6월 22일, 로마 미네르바 교회에서

저 길릴레오 갈릴레이는 위와 같이 제 손으로 이 맹세를 썼습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옮긴이의 글> 

 

 

이 재판이 끝나고 나서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서는 동안에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 유명한 일화가 탄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갈릴레오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설마 이토록 엄중하고도 가슴 아픈 참회 성사를 하고 나서 곧바로 저런 말을 감히 입밖으로 낼 수 있었을까 싶지만, 뒤바뀔 수 없는 진실에 대한 과학자의 참을 수 없는 확신을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웅변하는 말도 구경하기 어렵다.

 

이 유명한 종교 재판에서 갈릴레오가 남긴 참회 성사는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도그마에 갖힌 종교적 세계관과 엄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세계관과의 충돌 문제뿐 아니라, 천재 과학자가 발견한 새로운 진리가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려야 하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남겼다는 '진실'에 관한 다음 명언은 언제 들어도 갈릴레오를 떠올리게 만든다.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첫째, 조롱받는다.

둘째, 격렬한 저항을 받는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순교를 하더라도 자신이 애써 발견하고 실증해 낸 과학적 진실을 끝까지 지켰어야 옳았던 게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형식적으로나마 교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을 두고 굳이 비겁한 행동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갈릴레오는 이미 1616년에 종교 재판소로부터 지동설을 유포하지 말라는 판결을 받은 상태였지만, 스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로마 교황청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별다른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나자 더욱더 연구에 매진한 끝에 미리 교황청으로부터 '출판 허가'까지 받은 뒤 『대화』를 출판했던 터였다. 갈릴레오는 아마도 자신의 저서 때문에 나중에 종교 재판소에서 크나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추론해 낸 온갖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숨기거나 축소하거나 적당하게 얼버무리지 않고 옹골차게 끝까지 밀어부쳤다. 비록 그 주장들이 아무리 우리의 감각이나 일반 관념에 어긋나고, 또한 로마 교황청에서 한사코 금기시하는 지극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마치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갈릴레오의 문학적 재능이 번뜩이는 매우 수사적인 작품이다.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 자체도 너무나 흥미로운 데다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뿌리 깊게 박힌 고정 관념을 절묘하게 타파해 나가는 갈릴레오의 이야기 솜씨는 그 어떤 과학서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하다. 더군다나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법한 천체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음에도, 갈릴레오가 문재(文才)를 발휘하여 곁들여 놓은 르네상스인 특유의 유머와 해학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교황마저도 갈릴레오의 글솜씨에 탄복해서 결국 이런 책을 쓰도록 허용했다고 하는 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직접 나누는 인물들은 셋이다. 천동설 및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이론을 신봉하는 심플리치오, 심플리치오가 옹호하는 이론의 헛점을 파고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온갖 과학적 증거와 수식을 설명하는 살비아티,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의 균형을 잡으면서 대체로 살비아티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그레도가 그들이다. 갈릴레오 자신은 아주 가끔씩 제3의 인물로만 등장한다. '우리의 절친한 동료 학자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

 

대화는 모두 나흘 동안 진행된다. 첫째 날의 대화는 우주의 일반적인 구조와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험적, 논리적 과정을 담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서 관측한 달의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낮달과 구름과의 비교,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골고루 환하게 빛난다는 사실, 초생달일 때 낫 모양의 달 모습 뒤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둥근 모양이 지구에서 반사된 빛 때문이라는 이야기 등등은 현대인이 들어도 신기하기만 하다.

 

둘째 날의 대화는 지구의 자전에 관한 내용으로, 갈릴레오의 관측 결과뿐만 아니라 그의 천재성에 빛나는 독창적인 추론이 얼마나 예리하고 탁월한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그토록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면 땅 위에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구름들은 왜 그토록 고요한지, 땅 위에 지어진 숱한 건물들은 왜 휩쓸려 쓰러지고 바람에 날라가지 않는지 등등에 대한 온갖 비유와 설명들은 누구에게라도 다시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셋째 날의 대화는 지구의 공전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새로 발견된 별과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다소 복잡한 계산식도 등장하고, 수학이나 삼각함수를 이용한 설명들도 적잖이 포함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지구의 공전을 이용해서 외행성(화성, 목성, 토성)의 역행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태양의 흑점들이 태양의 표면에서 움직이는 궤적을 이용해서 지구의 공전을 설명한다.

 

넷째 날의 대화는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을 다룬다. 갈릴레오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는 잘못된 추론을 펼치지만 '갈릴레오의 실수'로부터 배울 점도 아예 없지는 않다. 갈릴레오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까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공전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한다는 점은 추론해 냈다. 갈릴레오는 중력이나 관성의 법칙은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달이 바닷물을 잡아당긴다는 만유인력의 개념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이 끝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교유는 허용되었다. 차츰 동료 학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유럽의 먼 나라에서 갈릴레오를 만나려고 찾아오는 학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그럴 때 갈릴레오는 동료 학자들에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을 법하다. 왜냐하면 갈릴레이의 명언은 훗날에 일부러 지어낸 게 아니라, 갈릴레오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니 말이다.

 

갈릴레오의 『대화』를 읽고 나서도 기존의 철학자들과 성직자들은 고집불통으로 갈릴레오의 주장과 증거들을 부인했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잊지 못할 망언을 남겼다. 피사 대학의 키아라몬티는 갈릴레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동물들은 팔다리와 근육이 있어서 움직이지만, 지구는 팔다리와 근육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라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로마 교황청에서 금서로 판결한 이후 인쇄소까지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이미 다 팔려 나갔고, 몇 년 뒤에는 라틴어 번역본까지 출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600년에 있었던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과 1633년에 있었던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과학 연구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대화』를 저술한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한 끝에 1638년에 『새로운 두 과학 :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하여』를 출판했다. 갈릴레오는 그 책에서 물체의 낙하 법칙뿐 아니라, 뉴턴의 운동 법칙 중 제1법칙과 제2법칙을 거의 완벽하게 제시해 놓았다고 한다. 갈릴레오는 출판 금지령 때문에 그 책을 멀리 네덜란드에서 출판했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출판된 후 200년 가까이 금서로 묶였지만, 과학자 갈릴레오가 공식으로 복권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7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실수였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특별위원회를 소집했다. 1992년에 이르러 마침내 갈릴레오는 복권됐다. 특별위원회가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 최종 보고를 한 뒤였다.

 

갈릴레오는 『대화』의 첫째 날에 '망원경을 통해 본 달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화를 남겼다.

 

살비아티

…… 이것을 보면, 달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한 면만 지구를 향하고 있으며 이 이상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어.

 

사그레도

이 신기한 발명품 덕분에 온갖 희한한 것들을 관찰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군.

 

살비아티

다른 위대한 발명품들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러면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거야.(123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영면에 잠긴 갈릴레오가 어느 날 문득 피렌체의 무덤에서 깨어나 단 하루 동안이라도 '오늘날의 세계'를 슬쩍 엿보았다면 과연 얼마만큼 많이 놀랄까? 자신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장비와 고도의 계산 능력을 갖춘 인간이, 온갖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들이 가득 담긴 '별들의 고향' 구석 구석을 아주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만큼 놀랄까? 설마 지금도 여전히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담담하게 중얼거리지는 않겠지? 더군다나 나처럼 감상에 빠져 어줍잖은 글월을 두 줄씩이나 꾸며내는 일은 더더욱 없겠지?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총총히 빛나건만,

별빛을 찾는 인간들의 눈동자는 날이 갈수록 더 큰 놀라움으로 가득찬다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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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018-09-10 0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 잘 지내셨나요?
언제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그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자료,함축적이며 정성들인 리뷰와 글에 감동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서 지금처럼 귀한 글을 남겨주세요^^

oren 2018-09-11 22: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랜드슬램 님.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선들선들한 공기가 느껴지는 가을이네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어느 정도 습관을 들이긴 해도, 막상 어떤 글이든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늘 주저되곤 합니다. 괜히 어줍잖은 글 하나 보태서 글 읽는 분들께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여기 저기 뒤져 보고,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들을 소신껏 하나의 글로 정리하고 마무리하고 나면 보람도 느껴집니다. 늘 잊지 않고 찾아주시고 분에 넘치는 성원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화 -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6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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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살비아티

 

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어. 하도 한심한 이야기라서, 내가 여기에서 그걸 소개하고 싶지도 않네.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의 체면이 문제가 아니야.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으면 되지. 이건 인류 전체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겠네.

 

내가 오랜 시간 관찰해 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앞뒤가 뒤바뀌게 추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먼저 마음속으로 어떤 결론을 내려.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또는 그들이 전적으로 믿는 사람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 그 결론을 뼛속 깊이 새겨 놓아서, 도저히 제거할 수 없어.

 

그들이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논리는, 어떤 것이든 무조건 손뼉 치고 환영을 하지. 그들이 스스로 발견했든 남이 제기했든, 아무리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논리라도 말일세. 반면에 그들의 결론에 어긋나는 것이면, 아무리 정교하고 확실한 것일지라도, 경멸을 하고 화를 벌컥 내. 덤벼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나서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억눌러 침묵을 강요하려고 음모를 꾸미기를 서슴지 않아. 나는 이미 여러 번 당했네.

 

사그레도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런 사람들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추론을 통해 결론을 확립하는 게 아니고, 이미 확고하게 내려놓은 결론에다 전제와 추론을 꿰어 맞추고 있어. 그러니 전제와 추론이 뒤틀리게 될 수밖에 없어. 그런 사람을 가까이해 봐야 득이 될 게 없네.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 불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위태롭게 될 수도 있어.(430∼431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기대해 보게. 자신이 남들보다 학식이 뛰어남을 보이려는 욕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자신의 권위에 대한 확신과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과장해 말하게 되는지, 자네들이 들으면 놀랄 걸세.(442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심플리치오, 이 사람의 교묘한 잔꾀를 자네가 알아차렸군. 뭐 그렇게 대단한 꾀는 아니었지만 말일세. 이 사람의 정체를 알아야 하네.

 

자네를 비롯해 다른 단순한 철학자들의 순진함으로 자신의 교활함을 가린 다음에, 자네의 환심을 사려고 교묘하게 아첨하고 있어.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네의 야망을 부추기고 있어. 소요학파의 절대 불변인 하늘을 공격하려고 덤비는 귀찮은 천문학자들을 잠잠해지도록 만들었다고 뻐기면서, 더구나 그들의 무기를 써서 그들을 공격해 꼼짝못하게 만들었다고 떠들거든. 이 사람의 정체를 깨닫게 되면, 자네는 놀라고 분개하게 될 걸세. 내가 자네를 도와주겠네.(443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 그러나 이 사람의 실수는 그런 식으로 덮을 수가 없네. 이 사람은 모르는 척 하고 있어. 우리 모두와 자신이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네.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자기 이론의 주가를 높여 선전하고 있어.(454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 * *

 

 

살비아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실수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자 온갖 시시껄렁한 핑계만 댄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비웃지. 지금 이 사람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톱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네.(481쪽)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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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도 그렇지만, 대화체로 구성된 작품들은 독자들을 보다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됩니다^^:)

oren 2018-08-24 00:57   좋아요 1 | URL
갈릴레이는 수학,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만 잘 했던 사람이 아니라, 진리와 허위를 가려 내는 대화법에 아주 통달한 사람 같아요. 말을 어찌나 조리있게 잘 하는지 거듭 감탄하게 됩니다.^^
 
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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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이런 상념들은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그를 괴롭히고 지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그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읽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읽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최근 그는 모스크바에서나 시골에서나 유물론으로부터는 해답을 발견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플라톤, 스피노자, 칸트, 셸링, 헤겔, 쇼펜하우어 등 삶을 윰물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철학자들의 책을 다시 읽어 보거나 처음으로 통독을 하곤 했다.

 

그들의 사상은 그가 책을 읽거나 다른 학설, 특히 유물론에 대한 반박을 찾으려 할 때는 유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책을 읽거나 직접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 할 때면, 언제는 곧 똑같은 것이 되풀이되곤 했다. 정신, 의지, 자유, 본질 같은 모호한 말들의 정의를 따라가는 동안, 철학자들이나 그 자신이 그에게 쳐 놓은 말들의 덫에 일부러 빠지는 동안, 그는 마치 무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인위적인 사유 과정을 잊은 채, 삶에서 벗어나 그저 주어진 실을 따라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만족을 준 것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카드로 만든 집 같은 그 인위적인 구조물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그 구조물은 삶에서 이성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와 상관없이 그저 치환된 것에 불과한 똑같은 말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곤 했다.

 

언젠가 그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의지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사랑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 새로운 철학은 그가 그 철학을 벗어나기까지 이틀 동안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삶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 역시 와르르 무너지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하는 모슬린 옷이었음을 드러냈다.(501∼50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559∼560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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