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국가에 있어서 평화는 백성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같이, 교회의 평화는 교회의 재산인 진리와 교회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보배로운 것을 보호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 한 국가 안에 적이 침범하여 약탈하는 것을 보고도 평안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이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평화를 거역하는 일이 되는 것같이(평화란 오로지 재산의 안전을 위해 정당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일단 평화가 재산의 상실을 방임할 때는 부당하고 유해한 것이 되며, 오히려 이것을 지킬 수 있는 전쟁이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어서도 진리가 원수에 의해 공격당하고 신도들의 마음에서 진리를 앗아가 오류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한다면, 이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과연 교회에 봉사하는 일인가, 교회를 배반하는 일인가? 교회를 지키는 일인가, 파멸시키는 일인가? 진리가 다스리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것이 죄라면, 진리가 파괴될 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도 죄라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화가 정당한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정당한 때가 있다. 그렇기에 <평화의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다>(『전도서』 3장 8절)고 적혀 있으며, 이것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바로 진리의 이익이다. 결코 진리의 때와 오류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느님의 진리는 영원하리라>(『시편』 116장 2절)고 적혀 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면서(『요한』 14장 27절) 한편 전쟁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마태』 10장 34절). 결코 진리와 허위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447∼44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4편, 『프로뱅시알』을 위한 수기>

 

 

(나의 생각)

 

수천 년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 얘기가 왜 유독 우리에게만 새삼스럽게 들릴까? 북한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 때문에?  왜 진보 정권만 들어서면 이 불변의 진리가 어김없이 흔들리는가? 결국 '평화 만능 주의'가 빚어낸 웃지 못할 희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 푸시킨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고 흔히들 말한다네.

그건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푸시킨의 운문소설 한 편 읽고 드디어 나도 따라

운문으로 감히 서평글을 쓰려 하다니 말일세.

 

운문이라곤 오십줄이 넘도록 여태 쓴 게 없는데도?

그래도 수업시간에 졸진 않았다네, 특히 국어 시간엔.

그러니 시인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네, 진달래꽃 김소월도

광야의 이육사도 별 헤는 밤 윤동주도 가슴으로 외웠었지.

 

단지 내가 못 해 본 건 다짜고짜 운문시를 종이 위에 써보는 일.

호메로스도, 오비디우스도,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비극 시인들도

모두들 이야기를 운문시로 읊었다네, 뮤즈의 힘을 빌어.

그러나 뮤즈와 사귄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무대뽀로 운문을 짓는다네.

 

그러니 용서하시게, 운율도 모르는 사람이 에멜무지로 글줄을 읊더라도.

초입부터 말 많으니 내 글이 어딜 가려나, 이제부터 슬슬 달려볼 때 되었네.

여기서 소개할 작품은 그 이름도 특출난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네.

이래저래 한두 번쯤 들어는 봤을 테지만, 다 읽은 이 많지는 않을 그런 작품.

 

나 역시도 이 작품은 귀로만 들었다네, 클래식을 틀어주는 FM을 통해서지.

차이코프스키가 만든 3막극 오페라는 본 적 한 번 없지만 음악은 들었거든.

오페라의 스토리도 모르고 귀로 듣는 음악은 감동조차 약하더군.

풋치니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토스카》도 안 보고 들은 셈이지.

 

『예브게니 오네긴』은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네, 7년 세월 바쳤으니.

작가도 기존 형식에 없었던 운문소설의 가치를 새삼 강조했다네,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운문소설일세. 그 차이란 엄청난 것이지!> 하고.

그러니 아무리 무대뽀라지만, 어설픈 흉내라도 쥐어짜볼 참이라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네, 등장 인물도 두 손가락이면 충분하다네.

남자 주인공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시인을 꿈꾸지만 별 직업이 없다네.

운이 좋았던 건 친척 아저씨가 일찍 죽고 그의 유산 상속인이 된 것.

시골의 영지에서 한가로이 책이나 읽으며 산보나 즐기는 신세였다네.

 

어느 날 이웃 지주이자 시인 지망생인 렌스끼를 만난 게 사건의 단초라네.

렌스끼는 이웃에 사는 올가와 애인 사이였고, 올가에겐 참한 언니도 있었다네.

렌스키는 오네긴을 꼬드겼네. 시골 자매가 사는 집에서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그때 만난 시골 처녀 따찌야나는 첫 눈에 그만 오네긴에게 반하고 말았다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무대뽀가 휘갈기는 엉터리 운문은 그만 집어 치우고,

지금 당장 푸시킨의 멋진 싯구절부터 좍좍 인용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그래도 소설의 스토리가 아주 간략 하거니와, 그 이야기부터 마무리하세.

오네긴을 만나자 말자 부푼 가슴 억누르지 못한 따찌야나는 편지를 쓴다네.

 

그대의 신비한 시선에 애간장을 태웠고

제 영혼에선 그대의 음성 울려 퍼졌죠

벌써 오래 전부터…… 아니, 그건 꿈이 아니었어요!

그대가 들어오신 바로 그 순간 저는 알았어요.

얼굴은 달아오르고 온몸이 마비되어

저는 속으로 말했어요, 바로 저분이다!

그렇죠, 제가 들은 건 그대의 음성이었죠.

 

그녀의 편지는 전부 다 펼치기엔 너무 길다네, 무려 80줄이나 되니까.

아,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오네긴은 이 처녀의 사랑을 거절하고 만다네.

혹여나 순진한 처녀와 결혼까지 이르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까 걱정되어.

가슴에 멍이 든 따찌야나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 빠진다네.

 

오네긴은 그 처녀를 잊지만, 그녀는 오매불망 오네긴 생각뿐이었다네.

기회를 엿보던 렌스끼가 영명축일 빌미삼아 친구와 함께 그 자매를 찾는다네.

거기서 사소한 일로 화가 치민 오네긴이 언니는 제쳐두고 올가한테 치근대고,

그 꼴을 참을 수 없었던 렌스끼는 불같이 화를 내고 결투를 신청한다네.

 

권총에 실린 총알이 렌스끼의 가슴을 꿰뚫으니, 애통하구나 젊은 청춘이여.

올가는 시름 잊고 창기병 만나 시집가네, 불쌍한 따찌야나는 마음 둘 곳 없다네.

세월이 좀 더 흘러 따찌야나는 모스끄바 사교계로 진출한다네, 시집은 가야 하니.

운 좋게도 그녀는 공작 부인이 되었다네. 퇴역 장군 만나서 그의 마음 사로잡아.

 

운명의 여신은 하릴없는 오네긴을 모스끄바로 데려가네, 따찌야나가 있는 그곳으로.

얄궂게도 에로스의 화살은 오네긴을 맞혔다네, 몰라보게 달라진 따찌야나 보고 나서.

 

<설마, 설마 저 여성이?

그런데 닮았어……. 아니야…….

이럴 수가! 그 촌구석에서>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오네긴이 당할 차례, 그녀는 그를 보고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네.

 

그렇다! 오들 오들 떨지도 않았고

핏기를 잃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술을 깨물지도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펴보아도

오네긴은 전에 알았던 따찌야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와 얘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지만

영…… 되지가 않았다. 그녀가 물어 왔다.

여기 온 지는 오래 되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혹시 전에 살던 곳에서 올라왔는지?

그러더니 남편에게 피곤한

시선을 돌리고는 미끄러지듯 가버렸다…….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이제는 오네긴 차례, 의혹의 여지없이 그 남자는 어린애처럼 따찌야나를 사랑했다.

밤이고 낮이고 사무치는 연모의 정에 괴로울 뿐, 아무리 발버둥처도 뾰족한 수는 없다.

오네긴은 나날이 수척해져 환자처럼 변했고, 남들은 입을 모아 <온천>을 가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은 게 낫겠다고 버틴다, 그리곤 편지를 쓴다, 허약한 손으로.

 

내 생명이 다해 간다는 건 나도 압니다.

그러나 이 목숨이나마 부지하려면

아침마다 오늘도 당신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 겸허한 간원 속에서

당신의 엄격한 시선이

무슨 비열한 간계라도 발견할까 두렵습니다.

당신의 격노한 질책이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의 갈망으로 열에 들떠 괴로워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성으로 끓는 피를 억제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당신이 알아주신다면.

 

그러나,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는다, 기다려봐도. 하루 이틀 사흘~ (송창식의 노래가?)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차갑기 한량 없다. 딱 마주치는데 서릿발 같은 모습!

 

도대체 곤혹은, 동정의 빛은 어디에 있는가?

눈물 자국은 어디 있는가……? 없다, 없다!

그 얼굴에는 분노의 흔적밖에 안 보인다…….

 

희망을 잃은 그는 이제 서재 속으로 침잠한다. 다시 한 번 세상과 연을 끊고.

그는 또다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기번, 루소, 만초니, 헤르더, 샹포르, 스탈 부인, 비샤, 타소

 

그래서? 눈은 글자를 읽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거의 미쳐 가는 듯했고, 그랬으면 진짜 시인이 될 뻔했다고, 작가는 농을 한다.

<우둔한 내 제자 하나도 최면술의 힘을 빌어 러시아 시 작법을 터득할 뻔했다.> 라면서.

해골 같은 모습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은 그래도 여전히 공작 부인의 저택뿐.

 

평상복 차림의 공작 부인이 창백한 모습으로 혼자 앉아 있다. 무슨 편지 같은 걸 읽으며.

 

아, 이 짧은 순간에 그녀의 말없는 고뇌를

알아차리지 못할 자 누구냐!

지금의 공작 부인에게서 예전의 따냐,

그 불쌍한 따냐를 못 알아볼 자 누구냐!

미칠 듯한 연민에 가슴이 아파

오네긴은 그녀의 발 아래 몸을 던졌다.

……

오네긴 님, 저는 그때 더 젊었고

아마 더 예뻤을 겁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의 가슴속에서 제가 찾은 게 무엇이었죠?

어떤 대답이었죠? 단지 냉혹함뿐이었죠.

그렇지 않았나요? 당신에게는 수줍은 소녀의

사랑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죠?

……

그러나 당신을 탓할 맘은 없어요. 그 끔찍했던 순간에

당신은 고결하게 처신한 겁니다.

……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발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가슴속에 자존심과

순수한 명예심이 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나갔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서 있던 그의 앞에

따찌야나의 남편이 나타난다, 참으로 입장 곤란하게시리.

이 곤란한 장면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참으로 친절을 베푸신다.

이쯤에서 독자 곁을 떠나겠노라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그러면 독자여, 나의 주인공이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한 이 시점에서

그를 떠나기로 하자.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그의 뒤만 좇아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세상을 헤맨 셈이다. 이제 뭍에

다다른 것을 축하하자, 만세!

진작에 도착했어야 했다!(안 그런가?)

 

자, 어떠신가? 친애하는 벗님들이여. 무대뽀가 써내려 온 엉터리 운문 서평이?

푸시킨의 저 뛰어난 운문 소설이 엉터리 서평가의 운문을 만나 엉망이 되었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푸시킨의 소설에도 '잡담'만 풍성할 뿐, 뾰족한 수는 없다네.

헐거운 구성, 미약한 주인공, 불분명한 주제가 이 작품의 특징으로 꼽힐 정도니.

 

그런데도 왜? 도대체 왜 이 작품이 그토록 드높은 평가를 받느냐고?

그건 이 작품이 <소설로부터 자유로운 소설>이기 때문이라더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푸시킨은 시의 리듬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네.

그는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소설가였기 때문이라네.  그런 예는 예로부터 있었다네.

 

셰익스피어의 그 많은 희곡들도 9할이 시였다네, 오로지 시로만 쓴 설화시도 있었다네.

푸시킨이 좋아했던 바이런의 설화시 「돈 후안」도 그렇다는군, 읽어 보진 않았지만.

푸시킨의 위대성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했다는 거지, 변변한 소설조차 없던 때에

이토록 유례없는 비범한 운문소설을 써냈으니, 그것도 기존의 모든 관례를 파괴하면서.

 

작가는 『예브게니 오네긴』 속에서 '전통적인 화자'로만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네.

때로는 등장 인물로, 때로는 푸시킨 자신으로, 때로는 소설의 저자로, 무시로 넘나든다네.

 

그는 오네긴의 친구이자 ㅡ

<번잡한 세상사에 작별을 고한 내가 / 그(오네긴)와 친교를 맺은 건 그 즈음의 일>

따찌야나와 매우 가까운 소설 속의 인물로 ㅡ

<따찌야나, 사랑스런 따찌야나! / 너와 함께 나도 지금 눈물을 흘리누나>

푸시킨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의 유배 생활에 대한 회한에 젖기도 하고 ㅡ

<자유의 순간이 내게도 오려나? / 어서 오려무나, 자유여!>

작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네 ㅡ

<내가 리쩨이의 정원에서 /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던 시절 ……>

 

그러니 알고 보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진짜 주인공은 화자인 푸시킨이라네.

등장 인물들은 어찌보면 순전히 문학에 관한 화자의 관념을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지.

낭만주의에 대한 푸시킨의 관념은 시인 지망생인 렌스끼를 통해서 나타난다네.

그가 오네긴의 총에 맞아 죽기 전에 쓰는 시는 낭만주의에 대한 패러디의 절정이라네.

 

서서히 흐르는 레테의 강물이

젊은 시인의 추억을 삼켜 버리고

세상은 나를 잊겠지. 그러나 그대,

아름다운 처녀여, 그대만은

청춘의 무덤을 찾아와 눈물 흘리며

회상하겠지, 그는 나를 사랑했노라고,

폭풍 같은 생애의 슬픈 새벽을

나 한 사람에게 바쳤노라고!

 

<청춘의 무덤>, <폭풍 같은 생애>, <슬픈 새벽> 등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낭만주의의 언어인데,

그게 바로 렌스끼가 소설의 중간에서 총에 맞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하는 격이라네.

소설 속의 화자는 렌스끼의 시를 두고 <이렇게 그는 침침하고 맥없이 썼다>라고 혹평한다네.

그게 바로 낭만주의와 시에 대한 대한 푸시킨의 입장이라네. 이 작품으로 시와 작별했으니.

 

<세월은 엄정한 산문으로 나를 기울게 한다>는 작품 속 고백이야말로 자신에게 한 말이라네.

렌스끼는 젊은 시절의 푸시킨 자신어었던 셈인 거지. 눈 밝은 독자들은 알게 된다네

이 소설에는 논평하고 회상하고 사색하고 조롱하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인이 있다는 걸.

그래서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평을 듣는다네.

 

어찌어찌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건만, 끝끝내 이 서평은 졸작 되고 마는구나.

어느새 사라진 게 운율만이 아니구나. 늘어놓은 글줄들은 벗어 놓은 바지 꼴.

꼬락서니 보아하니 운문 서평은 글렀구나,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흡족한데 하나 없네.

아이고 아이고(I GO), 나는야 가야 하네, 어설픈 산문 끄적이던 그 자리로 가야 하네.

 

서럽고도 서러워라, 뮤즈 여신 못 사귄 탓에 운문 서평 엉망됐네.

늦은 나이에 재미 붙인 훌륭한 서책 중엔 이름난  서사시도 많았건만

거기서 배운 지식도 실전으로 들어가니 말짱 꽝인 줄 몰랐구나.

노래하소서, 뮤즈의 여신이여. 운문 서평도 못쓰는 알리디너의 분노를.

 

독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던 그 이름난 서책들이여.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여,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여, 에우리피데스의 <토로이의 여인들>이여.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며 <구름>이며 <새들>이여,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여.

 

오비디우스의 위트와 파토스여, 루크레티우스 철학시의 심오함이여.

단테의 질서정연함이여, 셰익스피어의 현란함과 무궁무진함이여.

에머슨의 심오함이여, 엘리엇의 난해함이여. 참으로 애석하구나.

그들을 읽은 수고가 이토록 헛되이 운문 서평글 하나로써 다 무너지다니.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3-15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운문 서평에 큰 박수를 쳐 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이런 실험적 리뷰를 다 쓰시고...
재밌게 읽었어요. 운문 덕분이겠지요. 무슨 운명의 장난이 둘이 만날 때 한 쪽에서만 열정이 있답니까.
이걸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해야 하나요? 결국 인연이 되려면 타이밍이 중요한 것.
잘 보고 갑니다. 재밌습니다.

oren 2019-03-15 23:4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사랑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부르는 게지요.
운문으로 소설도 쓰는데, 까짓꺼 서평글로 못 쓸 게 어디 있겠나 싶어서 끄적거려 봤는데,
푸시킨이 <7년의 낮과 밤>을 갈고 닦은 걸작품을 ‘7시간‘도 안 걸려 서평글로 매조지하니,
작가한테 참 미안하다 싶은 생각도 많이 들긴 하더군요.^^
 
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1932∼2016)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였다. 이만큼 특이한 이력을 지난 그가 최초로 쓴 소설이 1980년에 출판된 『장미의 이름』이었고, 이 책은 이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여기에 크게 고무된 에코는 『바우돌리노』, 『전날의 섬』,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등을 연이어 쏟아냈고, 소설 말고도 『미의 역사』, 『추의 역사』, 『궁극의 리스트』 등 많은 책들을 써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여러 언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최고의 석학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지식을 쌓은 인물이었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를 일약 세계적인 소설가의 반열에 불쑥 올려 놓은 작품이다. 도대체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길래 전세계의 독자들이 그토록 이 작품에 환호했을까. 장미의 이름들로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뜻밖에도 『장미의 이름』에는 장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짧게 비유적으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쉽게 말해서 장미의 이름 속엔 그 어떤 장미의 이름조차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말 뜻밖에도 이 책 속엔 장미가 아닌 기묘한 책 한 권이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 속에 아침에 피었다가 이내 시들고 마는 장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결코 시들지 않는 희귀한 책이 한 권 등장한다는 사실로부터 실로 수많은 상상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게다가 그 한 권의 책이 참으로 절묘하다. 가령, 그 책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책이라면? 또한 발견된 적도 없는 그 책이 이미 금서로 지정할 정도로 위험한 책이라면? 더군다나 그 책이 중세의 어느 철옹성처럼 당당한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다면? 더군다나 그 책을 둘러싼 수도원 내부의 갈등 때문에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더군다나 그 연쇄 살인 사건이 《요한의 묵시록》에 따라 7일 동안 단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된다면?

 

어쨌든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과는 사뭇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은 책일 수밖에 없다. 지난 날의 장미는 얼마나 빨리 시들고 마는가.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그러나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끈질기게 오래 살아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비록 그 책이 그토록 연약하고 가냘픈 종위 위에 쓰여졌음에도 말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책에 얽힌 이야기임을 새삼 강조한다. 그것도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던 14세기에 실존했던 어느 인물의 입을 빌어서.

 

누항(陋巷)의 일상 잡사가 아닌, 책에 얽힌 이야기여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모방의 도사 아켐피스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 한숨에 섞여 나올지도 모르겠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이쯤되면 이 작품에 담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울지는 거의 보장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 책이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임에랴.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는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중세의 요새 같은 수도원에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채, 장서관의 희귀한 금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빚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당대의 수도원이 품고 있음직한 온갖 음험한 분위기와 상징들과 함께 절묘하게 버무려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의 그 낯선 시공간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맨다.

 

중세 유럽 수도원이 지니고 있는 음험한 상징들은 무엇일까. 그곳은 단지 탈속한 수도사들이 죽어서조차 거기서 뼈를 묻어야만 하는 영구히 속박된 기도원으로만 기능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대학을 대신해서 인류의 지혜가 보존되고 전승되는 지식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권 옹호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정신적 · 물질적 토대였고, 수도사들의 온갖 인간적 번민과 고뇌가 교차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의 수도원은 '감히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성채의 표징'으로 성별(聖別)될 만한 어마어마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수도원을 보았다. 그러고는 놀라고 말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보아 왔던, 수도원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벽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벽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엄청나게 큰 건물에 놀란 것이었다. 뒤에 알았지만 그 건물은 바로 수도원의 본관이었다. 이 본관은 8각 기둥 건물이었지만, 멀리서는 4각 기둥 건물(성도의 위엄과 금성철벽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였다. 남쪽은 수도원이 앉은 고원과 닿아 있었고, 북쪽은 산의 가파른 사면에서 솟은 듯이 불겨져 있었다. 아래쪽에서 본 광경도 소개해야겠다. 아래쪽에서 보면 가파른 석벽이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데, 색깔이나 재질이 한결같은 이 석벽의 정점은 그대로 탑과 관망대(하늘과 땅을 두루 아는 대가의 작품임에 분명한)였다. …… 크기나 형태로 보아 본관은 뒷날 내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보았던 카스텔 우르시노, 카스텔 데 몬테와 흡사했다. 그러나 그 범접하기 어렵게 하는 위용이나, 거기 다가가는 행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위구심(危懼心)으로 말하면, 후일에 내가 보게 되는 어떤 수도원이나 성채도 이와 같지 못했다.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이 때마침 1327년 11월이라는 사실은 교권과 속권의 권력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저 유명한 <아비뇽의 유수>와 직접 연결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황인 요한 22세는 당연히(!) 프랑스 남부지방 소도시인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에 머물고 있었으며, 당시의 황제인 루트비히와는 그리스도의 청빈 논쟁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급기야 교황 요한은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하기에 이르렀고, 황제는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벌어졌던 극렬한 권력 다툼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으로 번졌고, 수많은 카톨릭의 신학자와 사제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싸움에 휘말려들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 배경을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골라잡은 것이다.

 

1322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황제는 정적(政敵)이었던 프리드리히를 거세했다. 황제가 둘일 때보다는 하나 있을 때를 더욱 두려워한 교황 요한은 승리자인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했다. 우리 황제는 자신을 파문한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했다. 바로 이 해에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었고 총회장이었던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는 엄격주의파의 절충안을 받아들이고, 신앙과 교리에 관련된 문제로서의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해,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usus facti(사용권, 이용권)에 의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교단의 가치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이 귀중한 헌장은, 교황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다. 이는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주교를 임명하는 황제의 권리를 부인하고, 교황이 황제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했던 교황 자신의 주장에 위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한 22세는 1323년 회칙(回勅) <쿰 인테르 논눌로스>를 통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선언을 묵살해 버렸다.(33∼34쪽)

 

마침 이럴 때 소설의 주무대인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교황과 황제의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 참석하는 주요 인물들인 카잘레 사람 우베르티노, 체세나의 미켈레, 베르나르 기 등은 모두 당시 카톨릭 세계를 대표하던 실존인물들이다. 이들이 황제와 교황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청빈'과 '이단 논쟁'을 둘러싸고 벌이는 불꽃 튀는 논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들이 격렬하게 맞붙어 자신들의 논리를 치열하게 전개하는 와중에도 연쇄 살인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이단 조사관을 지낸 양 진영의 고위급 핵심 멤버들은 이 살인 사건조차도 자신들의 영역 확대를 위한 싸움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파고들수록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공간은 뜻밖에도 본관에 있는 장서관으로 모아진다.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이 한결같이 장서관의 사서나 보조 사서 혹은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특명을 받고 수도원에서 열리는 실무 회담에 파견된 윌리엄 수도사는 그 수도원에 도착하던 당일부터 비범한 추리력을 발휘하면서 단숨에 수도원장의 신임을 받고 살인 사건의 조사를 떠맡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유난히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4세기 초반의 교황파와 황제파의 권력 다툼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에 어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불려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을 둘러싼 치열한 논리 싸움에서 황제파에 가담한 인물들은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 오컴의 윌리엄(1280∼1349), 카잘레의 우베르티노(1259년~1329년) 등이 대표적이었고, 교황파를 대표한 인물들은 중세의 악명 높은 이단 심문관이었던 베르나르 기가 주축이었다.

 

이들이 주고 받는 날선 논쟁들은 중세의 이단 논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양 진영은 '그리스도의 청빈'을 본받아 교회의 재산권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황제파와 그에 반대하는 교황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했고, 교황파 인물들은 마침내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이단으로 몰고 간다. 그들이 논리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상대방에 의해 순식간에 이단으로 내몰리고 결국은 화형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 사이의 타협점은 좀체로 찾기 어려웠고, 소설 속에서도 그 회담은 결렬된다. 먹을 게 부족해서 밤마다 수도원을 들락거리며 몸을 팔며 주방의 식재료를 얻어가던 애꿎은 사하촌 처녀 하나만을 희생물로 삼은 채.

 

이 작품이 책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실존하는 많은 책들이 수많은 등장인물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가운데 주인공 격인 책은 단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시학』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서사시에 대해서는 자세하고 충분한 설명이 담겨 있지만 희극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만 나올 뿐인데,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대해 쓴 『시학 2편』이 망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장미의 이름』속에 '희극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을 '책 속의 책'이자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핵심적인 사물로 재등장시키고 있다. 망실된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책이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었고, 이 책을 둘러싼 모종의 암투가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학』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망실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증거로 『시학』1449b 21을 보면 희극에 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그 후로는 희극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정치학』 1341b 38을 보면 '카타르시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에 관해서는 『시학』을 참조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학』에는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 천병희 옮김, 『시학』,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장장 9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추리 소설이 이렇게 단촐한 문장으로 시작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독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수기(手記)인 이유 자체가 미궁을 헤메는 것처럼 몹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이야기가 결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교묘한 장치'를 통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1968년 8월 16일, 작가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당연히(!) 실존인물이었던 발레(1754∼1824)라는 프랑스의 수도원장이 펴낸 책이었다. 출판사는 1842년 파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였다. 책의 제목은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이 책 이름에 등장하는 마비용 수도사 역시 실존 인물이고 멜크 수도원 역시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이다. 더군다나 이 수도원은 9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제로' 로마 가톨릭의 본거지였으며, 때로는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요새이기도 했다.

 

멜크 수도원(출처:위키백과)

(멜크 수도원은 1089년 최초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건축되어 1297년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한다. 에코가 이 수도원을 소설의 배경 가운데 일부로 삼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그 책에는 18세기의 석학 마비용(1632∼1707)이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한 14세기의 수기를 충실하게 복원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작가는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독파한 뒤 단숨에 대학 노트에다가 이 책을 번역한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탄 배는 다뉴브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멜크에 닿는다. 작가는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아드소 수기의 사본을 찾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다가 그만 그 중요한 책을 잃고 만다. 연인과 함께 이동중이던 작가가 몬트제 호반에서 짧게 1박할 때 그들의 관계가 끝장 났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 비극적인 밤에 연인과 헤어질 때 그 소중한 책마저 상대방의 짐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작가는 그 책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파리의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을 뒤지는가 하면 유명한 중세학자와도 상의해 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라 수르스 수도원으로 달려가도 그런 책을 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생각마저 품는다. 어쩌면 그 책이 위조된 유령 도서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 중에 작가는 197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리엔테스 거리에서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작은 고서점의 서가를 뒤지다가 우연히 밀로 테메스바르라는 사람이 쓴 카스틸리아어판 소책자 『장기 놀이에서의 거울 이용법』을 찾아낸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책에 아드소의 수기로부터 인용된 대목이 상당수 있는데다가, 그 내용 또한 발레 수도사가 불역한 수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까마득한 옛날 '프랑스 접경에 있는 아페니노 산맥 중앙부 기슭쯤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 동안의 기록'인 아드소의 수기가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움베르토 에코가 책에 대한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뒤섞어 '아드소의 수기'에 대한 실재성을 강조하는 수법은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처럼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 전달 방식은 일찌감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속에서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보인 솜씨이기도 하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이야기는 결코 자신이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아랍 사람인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책이며, 자신은 어느 날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소년이 팔겠다고 하는 잡기장 한 권 속에서 그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식이다.(☞ 다시 읽는 돈키호테)

 

움베르토 에코는 '아드소의 수기'를 소개하는 방식에서만 보르헤스에게 빚진 게 아니었다. 그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보르헤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본 딴 늙은 수도사를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단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결코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는 '책에 미친' 늙은 수도사의 이름은 부르고스의 호르헤였다! 그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수도사인데, 젊어서 한 때 수도원 장서관의 사서를 맡았지만 너무 일찍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그는 눈이 멀었어도 머리 속에 담긴 기억만으로 장서관에 보관된 수많은 책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눈 먼 수도사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는 게 마땅하다. 『장미의 이름』은 지적 호기심을 만낄할 수 있는 드물게 뛰어난 추리 소설인데, 호르헤의 비밀을 이런 글에서 너무 자세히 드러내는 것은 미지의 독자들에게 결코 유익할 리 없기 때문이다.

 

비록 7일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뜻밖에도 이 소설은 엄청나게 길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작가가 미리 세심하게 마련해 놓은 여러 장치들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롤로그이다. 거기엔 '늙고 병든 몸으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갇힌' 아드소가 젊어서 수련사로 지낼 때 경험했던 '7일간의 기록'을 어떤 심정을 담아 썼는가가 절절히 베어 있다.

 

가련한 죄인의 삶이 이윽고 막바지에 이르고 보니 이제 내 머리는 백발…… . 바야흐로 바닥 모를 심연, 고요와 적막의 신성(神性)이 가득한 그 심연을 헤맬 날을 기다리는 한편 천사의 은혜인 지성의 광명에 의지하고 세상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싯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 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나는 보고 들은 바를 한 순간 산 순간,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옮기되 굳이 어떤 구상의 형식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뒤에 오는 이들(가짜 그리스도가 먼저 오지 않는다면)에게 표적을 표적으로만 남기는 뜻은 글을 아는 교우로하여금 이를 음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원컨데 주님께서, 이름이야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편이 온당하고 크신 뜻에 합당할 터인 저 대수도원 일을 투명하게 그려 낼 권능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때는 주후(主後) 1327년 말, 루트비히 황제가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 아비뇽에 진치고 앉아 사악한 왕위 찬탈과 성직 매매를 일삼으며 사도를 욕되게 한 저 사교(邪敎)의 우두머리를 척결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해이다(죄 많은 사교의 우두머리가 누구던가? 믿음이 없는 자들이 교황 요한 22세라고 부른 카오르의 자크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 수많은 다른 책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이 거의 대부분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너무 희귀한 책들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독서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 배경이 14세기 초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정말 뜻밖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이미 읽은 책들 가운데 '다시 한번' 펼쳐 읽고 싶은 책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책들은 주로 희극과 웃음과 책과 도서관과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만한 책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들』이다. 도대체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눈 먼 수도사인 호르헤는 왜 그토록 '웃음'을 죄악시했던가를 그 책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플라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ㅡ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ㅡ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웃음을 사랑한 니체의 보다 결정적인 말은 이랬다. "신들도 위버멘쉬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그들은 신성한 행위를 할 때조차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쓴 『웃음』이라는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어느 누구도 그 본질을 제대로 건드려보지 못했다던 '웃음의 비밀'을 그 철학자가 무려 2,000여 년 만에 다시금 들춰봤으니 말이다. 그 책에서 베르그송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 연구'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다시금 찾아 읽어보고 싶다.(베르그송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한 철학자다.) 그 다음으로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다. 미궁처럼 끝없이 펼쳐진 바벨의 도서관 이미지야말로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원의 장서관 모습을 가장 닮았을 테니.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책은 뜻밖에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이 책을 꼽은 이유가 그저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인물과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조르바도 젊어서 한 때 그리스의 아토스 산자락에 위치한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었고, 케이블 고가 선로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러 찾아간 수도원에서는 마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기묘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수도원 살인사건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살인 사건'과 얼마나 닮았을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아토스에 대하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 책의 두께 때문에라도 끝까지 읽지 못한 독자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괴롭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이 책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전해진 놀라운 소식 하나도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덴마크의 어느 대학 지하실에 보관된 수백년 전 고서 가운데 희귀서적 3권에 맹독이 묻어 있었다는 뉴스였다. 중세시대 양피지에 적힌 라틴어 글자 판독을 위해 분석한 결과 고농도의 비소 성분이 거기서 검출됐다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니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는 이 정도의 뉴스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로서는 아무래도 궁극의 빅뉴스를 기다릴 테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고 약속했던 시학 제2권이 정말로 유럽의 어느 수도원의 장서관에서 발견되는 대사건 말이다.

 

 * *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9-03-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전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중에서는 가장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읽었던 것이 <장미의 이름>이 아닐까 해요. 물론 앞부분은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사실 기록이고 어느 것이 소설로서의 내용인지 혼동되어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읽어야했지만 그러면서까지 읽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게 한 매력이 있던 작품이었어요.
덴마크 고서의 맹독 소식은 오싹하네요. 그리고 곧 드는 생각은 그 희귀서적 세권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

oren 2019-03-12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오래 전에 사 놓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답니다. 언젠가 읽을 기회가 오겠지, 하고 때를 기다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다른 분의 서재에서 <소설의 도입부, 최고의 첫 문장 Best 10>이라는 글을 봤어요(☞ http://blog.aladin.co.kr/caspi/10693048) 그 열 권의 책 가운데 제가 여태껏 안 읽은 책이 딱 두 권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었지요. 그래서, 올커니, 이제야 마침내 읽을 때가 찾아왔군, 하고 마음 먹은 후로 틈을 엿보기 시작했더랬지요. 사실, 이 책이 너무 유명한 데다가,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엄청 재미있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자주 떠올렸는데, 똑같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그 소설이 저는 훨씬 재미있더라구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으니까요.(그 책도 몹시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가, 소설의 초반과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인물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이 마침내 하나 하나 촘촘히 연결되어 드러날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더군요.) 그에 비하면 <장미의 이름>은 ‘결말 부분이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인지‘ 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추리소설의 결말을 미리 안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지를 그 때 절절히 느끼겠더군요.

그리고,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 사용된 트릭은 보르헤스의 소설들, 가령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등에서 이미 봐왔던 터라 ‘작가가 일부러 이러는구나‘ 하고 재빨리 눈치를 챘었지요. 미처 보르헤스의 소설들을 읽지 않은 상태로 이 책을 먼저 붙잡았더라면 저도 엄청 헤맬 뻔 했지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이 의외로 이런 데서 많이 당하면서(?) 중도에 너무 일찍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더군요. 그게 다 작가가 일부러 독자들과 함께 잠시 장난을 즐기자고 하는 수법인데 말이죠. 실컷 뺑뺑이를 돌리고 나서, 나 잡아 봐라~, 어디 있게? 하는 거죠. ^^

2020-03-04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극작가의 임무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헨릭 입센

 

 

헨릭 입센(1828∼1906)

 

 

입센은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끼진 극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노르웨이의 부유한 선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극작가로 입지를 굳힐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약국 수습원 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20대에는 운문극과 시와 역사소설에도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나마 23세 때부터 12년 동안 노르웨이 극장의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일한 경험이 훗날의 성공 기반이 되었다. 34세 때 노르웨이 극장이 파산한 뒤 약간의 보조금을 받아 설화 수집을 위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페르 귄트》의 소재를 얻은 것도 훗날의 창작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36세때 국왕의 외유 연구비를 받은 덕분에 고국을 떠난 그는 그로부터 무려 27년 동안이나 외국에서 생활한다. 덴마크와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오래도록 체류했던 그는 '남국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고 창작에 몰두한다. 이 무렵부터 노르웨이 국회가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하면서 생활도 차츰 안정되었다.

 

39세에 발표한 《페르 귄트》는 오늘날까지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대 노르웨이에서는 악의적으로 국민성을 과대 묘사했다는 심한 악평을 들어야 했다. 이 작품은 발표된지 9년 만에 그리그의 음악을 배경으로 음악극 형식으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뒀다. 페르귄트 모음곡 가운데 <솔베이그의 노래>와 <아침의 기분> 은 지금도 클래식의 명곡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어서 입센의 희곡을 뛰어넘은 느낌이 든다.

 

입센을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극작가로 변모시킨 작품은 로마에 살면서 51세에 완성한 《인형의 집》(1879)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떠받들지만, 당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신성한 결혼과 가정생활을 파괴하고 부추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런 반응에 자극받은 입센은 더욱 대담하고 충격적인 후속작인 『유령』(1881)을 발표했고, 거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의 적》(1882)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들 세 작품으로 크게 고무된 입센은 1884년에 걸작 《들오리》까지 완성함으로써 가장 숨가쁜 창작 시즌을 보낸다.

 

60세에 쓴 《바다에서 온 여인》(1888)은 《인형의 집》, 《유령》과 함께 '여성해방 문제를 다룬 3부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는 분위기와 색채가 많이 다른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62세에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헤다 가블레르》(1890)를 완성한 작가는 이듬해인 1891년 마침내 기나긴 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국에 안착한다. 1899년, 작가의 나이 71세때 지어진 노르웨이 국립극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입센은 1905년 조국이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도 생존했고, 이듬해 국장(國葬)으로 예우를 받으며 삶을 마감했다.

 

《인형의 집》은 1879년에 출판되자 말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혼이나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지위는 결코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당대의 도덕관념으로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을 담은 이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상연 자체가 금지되거나, 결말 부분이 수정되어 공연될 정도였다. 세 아이를 버려두고 집을 나간 노라의 행위를 둘러싼 격론은 두 갈래로 나타났다. 여성해방론자들과 일부 문학 관계자들은 적극 환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가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쪽에 섰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 작품을 쓸 때만 하더라도 입센이 스스로 여성해방론자를 자처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발표 이후로도 그런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입센의 작품을 극찬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심지어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다. "만일 입센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카톨릭 주교다." 작가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이 의식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명예로운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입센을 두고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다. 《인형의 집》을 쓰던 해인 1879년 10월 19일 작가의 노트에 남긴 기록만 읽어봐도 작가의 입장이 어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비극을 위한 비망록>

 

'두 종류의 도덕규범이 있다. 두 종류의 양심이 있다. 하나는 남성의 것이고, 하나는 전혀 다른 여성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융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여성은 여성의 기준이 아닌, 남성의 기준으로 재판받는다.

 

여성은 현대사회에서 독립된 인격체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완전히 남성적이어서, 남성이 만든 규범으로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행동을 판단한다.

 

작품 속 여인은 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상식에 기대어 그녀를 비판하고, 법률의 잣대와 남성의 눈으로 정황을 판단한다.

 

도덕적 갈등, 권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아내이자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및 자녀양육의 의무에 대한 확신을 잃는다. (……) 모든 것을 혼자서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파국은 무자비하고 돌이킬 수 없다. 절망, 저항, 그리고 파멸.'(462쪽)

 

 - 동서문화사, 『인형의 집 / 유령 / 민중의 적 / 들오리』중에서

 

작가가 《인형의 집》에서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는 보다 심오했다.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타자성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입센은 철저하게 인생의 허위를 파헤쳐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형의 집》은 등장 인물과 줄거리가 간단한 편이다. 변호사인 토르발 헬메르와 아내 노라는 '남편의 은행장 취임'을 앞두고 몹시 들떠 있다.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오랜 친구인 랑크 박사와 노라의 학교 친구였던 린데 부인이 찾아온다. 린데 부인은 최근에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변변한 수입조차 없어서 '취직 부탁'을 위해 들른 참이었다. 노라는 남편에게 부탁하면 그 정도는 쉽게 해결되리라고 장담한다. 그런 틈에 일종의 대출 브로커나 마찬가지인 크로그스타가 불쑥 집을 찾아온다. 노라는 오래 전에 남편이 과로로 건강이 몹시 나빠졌을때 남편 몰래 그 남자에게 찾아가 돈을 융통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실업과 요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자로서는 대출 자격조차 없었던 터라 노라는 궁리 끝에 친정 아버지의 명의로 대출을 받았고, 아버지의 서명은 그녀가 대신 써넣었다.

 

크로그스타는 은행장이 바뀐다는 소문을 듣고 일찌감치 헬메르의 집으로 미리 찾아온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은행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부도덕하고 부패한 인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헬메르에게 찾아봐 자신이 해고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한 그는 노라에게 다시 부탁한다. 자신이 짤리지 않도록 남편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노라 역시 그런 부당한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크로그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노라의 '불법 대출'을 문제삼는다. 친정 아버지가 서명한 대출 서류가 위조됐다는 것이다. 마침내 헬메르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평소에 노라를 끔찍하게 사랑하던 남편의 태도는 돌변한다.

 

헬메르 어리석기는…….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노라 떠나게 해주세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곤란해져선 안 돼요. 나 대신 죄를 뒤집어쓰면 안 돼요.

헬메르 비련의 여주인공 흉내는 그만둬! (복도로 나가는 문을 잠근다) 여기서 얌전히 설명해 봐.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어? 대답해 봐! 알고 있느냐고!

노라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그래요. 이제야 진실을 알겠군요.

헬메르 (방을 서성이며) 아!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람! 8년 동안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던 여자가 위선자에 거짓말쟁이…… 게다가 범죄자였다니! … 당신에게 이렇게 추악한 면이 있었다니……! 에잇!

노라 (말없이 계속 바라본다)

헬메르 (노라 앞에 멈춰 서서)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했어야 했어,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고. 이게 다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 입 다물어! 당신 아버지의 무책임한 성격을 물려받아서 그래. 믿음도 없고, 도덕심도 없고, 책임 의식도 없지……. 아, 당신 아버지를 잘못 본 벌을 이렇게 받다니. 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한 거야. 그런데 그 보상을 이렇게 하는군.

 

 

이런 식의 험담을 계속 쏟아낸 헬메르는 앞으로는 아이들 양육까지도 아내에게 맡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다가 상황이 급반전된다. 노라의 친구인 린데 부인이 크로그스타를 유혹했고, 자신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노라를 위해서라도 더이상 위조 서명을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온갖 오명과 불명예로부터 순식간에 해방되는 감격에 휩싸인 헬메르는 다시금 아내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되돌린다. 다음과 같은 낯뜨거운 말들을 쏟아내면서.

 

"남자란 아내를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만족함을 느끼는 법이지. 그럼으로써 아내는 두 가지 의미에서 남편의 소유가 되는 셈이야. 남편이 아내에게 새 생명을 준 거나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아내는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자식인 거야. 당신도 오늘부터는 그래, 갈 곳 잃고 쩔쩔 매는 내 귀여운 아가,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노라, 나한테 다 털어놓기만 해."

 

노라는 이토록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남편을 도저히 수긍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남편은 단지 자신을 인형을 다루듯 대해왔다고. 그 옛날 자신의 아빠가 그녀를 대했던 것처럼. 그러면서 이제 아이들조차 키울 자격을 상실한 자신은 집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보다 먼저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 더 급선무라면서.

 

헬메르 (펄쩍 뛰듯 일어서며) 지금 뭐라고 했어?

노라 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당신과 살 수 없어요.

헬메르 노라, 노라!

……

헬메르 이 무슨 미친 짓을!

노라 내일, 내가 살던 옛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뭘 하든 그곳에서 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아요서요.

헬메르 세상 물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주제에!

노라 그걸 알려고 이러는 거예요, 토르발.

헬메르 집도, 남편도, 애들도 버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댈지 생각해 봤어?

노라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내가 아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뿐이에요.

헬메르 최악이군! 가장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거야?

노라 뭐가 가장 신성한 의무죠?

헬메르 꼭 말해야 알겠어?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잖아!

노라 나에겐 그것만큼 신성한 의무가 또 있어요.

헬메르 그런 건 없어. 도대체 무슨 의무를 말하는 거야?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요.

헬메르 당신은 무엇보다 아내이자 어머니야.

노라 이젠 그런 것도 믿지 않아요. 난 무엇보다 사람이에요, 당신하고 똑같은.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처럼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토르발.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고요. 하지만 난 이제 사람들의 말이나 책에 쓰인 것에는 믿음이 안 가요.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이치를 깨달을 거예요.(89∼90쪽)

 

결국 그날밤 노라는 여행가방을 꾸린다. 그리고 손가락에 꼈던 결혼반지마저 남편에게 돌려준 뒤 끝내 집을 나간다.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입센의 걸작  《인형의 집》은 이렇게 끝난다.

 

아래쪽에서 탕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토록 충격적이고 놀라운 결말이라니! 입센은 《인형의 집》을 발표한 이후 세상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에 자못 신명이 났던지 더욱 충격적인 작품을 집필한다. 후속작은 1881년에 발표한 《유령》이었다.

 

이 작품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열정적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어느 미망인이 주인공이다. 마침 남편의 서거 10주년을 맞아 그녀는 고아원 개원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외아들까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 녀석이 어느 틈에 가정부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미망인은 '남편의 유령'을 보는 듯한 착각과 충격에 빠진다.

 

《유령》의 공연 모습

 

남편은 세간의 고상한 평가와는 달리 몹시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일찍 병들어 죽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과오를 감추는 대신 세인들이 고인을 우러러 보도록 남편의 유산을 자선사업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아들이 지금 유혹하려는 가정부는 과거에 자신의 남편이 하녀를 범해서 얻은 자식이었다. 미망인은 가정부와는 가까이 말라고 아들을 간곡히 타이르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아들은 이미 심각한 병을 얻어 발작을 경험했고, 한번 더 발작이 일어나면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들은 터였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마지막 삶의 위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병은 아버지의 성병 때문에 유전된 불치병이었다. 아들은 벌써부터 품속에 독약을 지닌 채 살아온 터였다. 3막에서 아들은 끝내 발작을 일으키고, 미망인은 아들과 약속한 대로 아들에게 약을 주어 죽게 할지 아니면 아들을 살려 가망없는 불치병자로 계속 살게 할지 고심한다. 바로 그 순간 연극은 막은 내린다.

 

'유령'은 작품에서 단지 스치듯 두세 번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한 대목은 이렇다.

 

만데르스 뭐가 나타나요?

알빙 부인 유령이요! 아까도 레지네와 오스왈드가 저기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꼭 유령을 만난 기분이었지 뭐예요. 이런 생각마저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유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령이 우릴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죠. 모든 낡은 사상과 온갖 낡은 신앙도 우릴 따라다녀요.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에 달라붙어 있을 뿐인데도 우린 그걸 밖으로 몰아내지 못하죠. 신문이라도 읽을라치면 유령이 활자들 사이에서 꾸물대는 것 같아요. 분명 온 나라에 유령들이 득실대는 거예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잔뜩. 그래서 우리가 빛을 무서워하는 거예요.(133쪽)

 

 

입센은 이 작품을 발표하기에 앞서서 미리 세간의 반응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 《유령》은 사회 일각에서 꽤 큰 소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쓸 필요도 없었던 셈이니까요.'

 

작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령》은 출판되기가 무섭게 북유럽 전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입센은 이 작품을 쓰기 전부터 《유령》이 《인형의 집》과는 관계가 없음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인형의 집》의 주제를 한층 더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작가는 사랑이 결여된 결혼과 남들의 이목을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낡은 인습이라는 유령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망치는지를 알빙 부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 속의 사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거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무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습을 공격한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입센은 그런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자신을 지지했던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답장했다.

 

'저도 그런 난리가 벌어질 것은 이미 각오했습니다. 우리 스칸디나비아의 비평가들 몇몇은 다른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들이 판단하려는 책의 저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재능만큼은 틀림없이 갖추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것이 진정 오해에만 그치는 문제일까요? …… 그들은 희곡의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말한 의견에 대해 제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렇지만 이 희곡에는 작가의 책임이 될 만한 의견이나 발언이 어디를 봐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죠. …… 제 의도는 독자들이 제 작품을 통해 마치 현실의 경험처럼 생생한 인상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사 안에 작자 개인의 의견을 끼워 넣는 일만큼 그런 인상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5-17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문제로다.

 - 셰익스피어, 『햄릿』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1867∼1916)

 

 

 * * *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그가 사망한지 벌써 100년도 더 지났지만 그의 명성이나 위상이 흔들린 적은 거의 없다. 그의 작품은 중고생들의 교과서에서 세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읽혀졌고, 그의 얼굴은 1,000엔 권 지폐를 가장 오랫동안 장식했다. 무슨 이유로 그는 이토록 일본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을까.

 

그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서양 문물을 직접 배워오도록 영국으로 파견한 국비 유학생의 원년 멤버였다. 비록 신경쇠약으로 중도에 귀국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유학 경험은 작가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나쓰메는 유학 시절에 이미 선진 문물을 모방하고 뒤따라가기 바쁜 조국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터였다. 그는 일본이 피상적인 근대화를 추구한 나머지 서양에 대한 정신적인 예속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학계는 그의 논설과 강연을 이내 '문명 비판'이라는 층위로 격상시켰고 그는 점차 국민적 지식인으로 떠올랐다.

 

국민 작가라는 칭호는 자연스레 정치적인 이념과 결부되기 마련이었다. 민족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혹은 국가적 신념과 결부된 나쓰메의 작품들은 차츰 '소세키 신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은 어느 공동체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나쓰메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일본 열도가 러일 전쟁의 승리에 한껏 들떠 있던 바로 그 즈음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년)로 뜻밖의 성공을 거둔 나쓰메는 그 직후 잇따라『도련님』과 『풀베개』 등을 써냈고,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 교수라는 명예로운 자리마저 가볍게 내던지고 《아사히 신문》에 소속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좀 더 원대한 포부를 향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창작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스스로 맹세했네. …… 단지 엄청나게 격변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만큼 나의 감화를 받고, 내가 얼마만큼 사회적 존재가 되어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고 싶다네.

 

한 자루의 붓을 들고 낡은 세상을 뜯어고치고 자신이 꿈꾸는 멋진 세상을 그려보고픈 당찬 포부가 그대로 묻어나는 이런 출사표야말로 나쓰메의 본심이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일본인들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서양 문명을 극복하도록 부단히 독려했다. 비록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 총칼을 들고 서양과 직접적인 전쟁에 나선 적은 없었지만 문화 전쟁에서는 늘 그들에게 뒤처져 있다는 열패감이 그를 지배했고, 그는 문학을 통해서라도 서양에 대적할 정신적인 힘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여겼다.

 

1914년에 발표된 『마음』은 여러 다른 인기작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정받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나쓰메 문학의 본령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라는 상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 특유의 시대적 불안과 문화적 소외감이 등장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이상화하고 싶었던 인물들의 성격적 특징들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마음』을 바탕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꾸준히 용맹 정진하고, 추호도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금욕적이면서도 도의적이고, 향상심을 잃지 않고 맹진하는 인간 유형. 이런 유형은 작중 인물인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암중 모색하는 '나'에게서는 아직까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선생님'의 경우도 성격과 자질은 충분히 갖춰졌지만 여전히 실현되지는 못한다. 거의 모든 면에서 언제나 선생님보다 앞서 있었지만 끝내 '사랑 때문에' 자결로 생을 마감한 K의 경우가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K의 안타까운 죽음이 선생님의 삶을 끊임없이 압박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로 보여진다. 작가가 『마음』을 통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부단히 일깨우고 호소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두 사람의 '참을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에 있었던 듯싶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해서 삼간다기보다 나로서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글을 쓸 때도 그런 마음은 같다. 어색한 이니셜 따위는 도무지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16쪽)

 

이렇게 시작되는 『마음』의 전체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자인 '나'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생기발랄한 학생이다. '나'는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어떤 중년 남자를 알게 된다. 그저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그를 관찰하던 나는 며칠 후부터 그와 함께 해수욕을 즐길 정도로 가까워진다. '나'는 나중에 도쿄에 돌아와서도 선생님 댁을 다시 찾게 된다.

 

선생님은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도쿄의 주택가에서 조용하고 단촐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선생님은 대체로 비사교적인 데다가 사람들에게 냉담한 편이다. 그의 일상에서 주목할 만한 유일한 특징이 하나 있다면 매달 어김없이 정해진 날짜에 조시가야 묘지에 성묘를 간다는 점이다. 물론 선생님은 그 묘지의 주인공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속 주인공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오는 것조차 거북해 한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24∼25쪽)

 

선생님의 마음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나'는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학생이었을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선생님이 왜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바뀌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대학생일 때 겪었던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변사가 한 원인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다.

 

주인공인 '나'는 도쿄에서 학업을 마치고 잠시 고향에서 지내기 위해 낙향한다. 더군다나 아버님은 최근에 신장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병세가 위중했다. 병환 중에도 아버지는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아주 꼼꼼히 읽는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메이지 천황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병세도 갑자기 악화된다.

 

그 무렵 신문은 사실 시골 사람들이 날마다 기다릴 만한 기사로 가득했다. 나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꼼꼼하게 읽었다, 읽을 시간이 없을 때는 슬쩍 내 방으로 가져와 빠짐없이 훓러보았다. 나는 군복을 입은 노기 대장과 궁녀 같은 차림을 한 부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132쪽)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멀리 타향에 나가 있는 형과 매형이 불려오고, 하루하루 병세가 위중한 가운데 어느날 선생님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는다.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개가 짖는 곳에서는 전보 한 통조차 대사건이었다." 전보에는 잠깐 만났으면 하는데 올 수 없겠느냐고 간단히 쓰여 있었다.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부탁에 응할 수 없다는 상세한 설명을 담은 긴 편지를 보내지만 그 후로 별다른 답장을 받지 못한다.

 

아버지의 병환이 마지막 일격을 앞둔 시점에 뜻밖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두툼한 편지가 등기로 배달된다. 그 편지에는 뜻밖에도 자신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장이 들어있다. 주인공은 만사를 제쳐두고 황급히 도쿄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품안에서 다시 꺼내 찬찬히 읽기 시작한 편지는 결국 '선생님의 유서'였다. 거기엔 자신의 지나온 과거가 소상히 담겨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지금에서야 죽기로 결심했는지 하나도 숨김없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수천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 중에 오직 자네에게만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네. 자네는 진실하니까, 자네는 진실하게 인생 자체에서 살아 있는 교훈을 얻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내가 어둡다고 한 것은 물론 윤리적으로 어둡다는 것이야.(151쪽)

 

편지 내용은 길게 이어진다. 선생님은 스무살도 안 되어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부모를 잃고 나서 한동안 숙부가 자신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야 도리어 숙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로 그는 인간 부류를 통째로 불신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한 그는 고향을 영영 떠나 홀로 도쿄에서 대학을 다닌다. 적당한 하숙집을 물색하던 그는 청일전쟁때 전사한 남편 때문에 마땅한 수입이 없던 아주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학교에 다니던 외동딸과 하녀와 함께 셋이서만 살고 있다.

 

다다미 여덟 장이 깔린 널찍한 하숙방으로 이사한 뒤로 조금도 불편한 점 없이 학교에 다니던 그는 이내 한 집안 식구처럼 그 집에서 지낸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가씨와도 곧잘 차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눌 정도가 되면서 선생님은 차츰 하숙집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무렵 그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을 중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같은 고향 출신이자 같은 대학에 다니던 K라는 친구가 부모와 갈등 끝에 의절하다시피 하면서 오갈데 없는 처지로 내몰리자 그 친구를 하숙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게 바로 운명적인 사건의 발단이었다.

 

남몰래 아주머니의 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아주머니로부터 자신의 딸을 '빨리 치워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그로서는 K가 자신의 연애 경쟁 상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K는 태생부터 스님의 아들이었던 데다가 보통의 승려보다 훨씬 승려다운 성격을 지녔고, 스스로도 장차 종교적인 방면이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려는 고상한 인품을 지닌 친구였다.

 

K는 악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머리속엔 온통 훌륭한 사람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과묵하면서도 사교에 서투른 그런 친구를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바로 그의 친구였고, 하숙집 아주머니와 아가씨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데서 문제를 일으킨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K의 행동들은 차츰 의심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영락없이 오셀로의 처지로 내몰린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결백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 오셀로 말이다. 다음 대목만 읽으면 인간의 정념 중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질투심이 이제 막 독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눈앞에서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어느 날 나는 간다에 볼일이 있어 귀가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늦어졌다네. 잰걸음으로 대문 앞까지 와서 격자문을 드르륵 열었지. 그와 동시에 나는 아가씨의 목소리를 들었네. 목소리는 분명히 K의 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지. …… 나는 들어와 바로 격자문을 닫았네. 그러자 아가씨의 소리도 금방 그치더군. 나는 그때부터 하이칼라여서 벗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상화를 신고 있었는데, 내가 허리를 굽히고 구두끈을 푸는 동안 K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평소처럼 K의 방을 지나가려고 장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두 사람이 앉아 있더군. K는 여느 때처럼 이제 오나, 라고 말했지. 아가씨도 앉은 채 "오셨어요?" 하고 인사하더군.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그 간단한 인사가 내게는 좀 딱딱하게 들렸네. 내 고막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어조로 울렸지.(205쪽)

 

 

이때부터 급작스럽게 조성된 선생님과 K 사이의 팽팽한 긴장 상태는 늦여름에서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숨막힐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된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한 질투심은 꺼질 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무턱대고 K를 추궁할 수도, 그와 담판을 벌일 수도 없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아주머니에게 고백하고도 싶지만 끝내 결행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엔가 K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자신이 하숙집의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숙집 안주인과 아가씨에게까지 직접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상황이 진척된 게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자신의 연인을 한순간에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선생님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K를 경계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그가 아가씨를 포기하도록 잔인한 말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인간은 쓰레기다."라는 K의 평소 지론까지 곁들이며서.

 

교묘한 방법으로 K를 궁지로 몰던 선생님은 마침내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칠 계획에 골몰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주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요청한다. 아주머니도 시원스럽게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당사자의 의견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면서.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K는 자신의 방에서 자살하고 만다. 그가 친구에게 남긴 유서에는 아가씨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단지 "의지와 실천력이 박약해서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고백만 있었을 뿐이고, 친구에게는 도리어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준 후의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사건은 원만하게 수습되지만, 자신의 비열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밝히지 못한다. K의 자살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내막조차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하숙집 아가씨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선생님과 결혼한다. 결혼 이후 아내와 함께 할 때마다 언제나 그 두 사람 사이에 K의 죽음이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선생님은 뿌리 깊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결혼할 때 아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둘이서 K의 묘에 다녀오자는 말을 꺼내더군. 나는 까닭도 없이 그저 가슴이 철렁했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냐고 물었지. 아내는 둘이서 묘를 찾아가면 K가 무척 기뻐할 거라고 하더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

 

아내가 바란 대로 둘이서 조시가야에 갔네. 나는 K의 새 묘석에 물을 끼얹어 깨끗하게 씻어주었지. 아내는 묘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꽂았지.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합장을 했네. 아내는 필시 나와 결혼한 전말을 알리면 K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속으로 그저 내가 잘못했다고 되풀이할 뿐이었네.(262쪽)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건 그저 외관에 그칠 뿐이고,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매달 한 번씩 친구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한편 숙부로부터 당한 배신감 때문에 인간들을 경멸했던 자신이 바로 그런 경멸의 대상이 된 점을 깨닫고 부끄러워한다. 그런 불행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오던 그는 메이지 천황의 병사 소식과 노기 장군의 순사(殉死) 보도를 접하고 마침내 자신도 죽기로 결심한다. 그가 낙향해 있는 '나'에게 전보를 보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되어 천황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군.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우리가 그 후에 살아남는 건 결국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쳤네. 나는 분명히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내는 웃으며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나에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놀리더군.(271쪽)

 

 

나쓰메의 소설에 깊이 매료된 일본 독자들은 아마도 이런 대목에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사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묘한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앞서 등장했던 '나'의 아버지도 병환 중에 들려온 천황의 붕어 소식에 충격을 받고 급작스레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무렵에 배달된 선생님의 편지 속 내용에서 그런 모습이 거듭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억의 밑바닥에서 가라앉은 채 썩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순사(殉死)라는 말이 선생님과 강하게 결부된 모습은 다음 대목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지났지. 천황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 소리를 들었네. 나에게는 그것이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음을 알리는 소리로 들렸지. 나중에 생각하니 노기 대장이 영원히 떠난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네. 나는 호외를 들고 무심코 아내에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말했지.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을 읽었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무심코 손가락을 꼽아 노기 씨가 죽을 각오로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 보았지. 세이난 전쟁은 1877년에 일어났으니 1912년까지 35년의 거리가 있네. 노기 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272∼273쪽)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선생님은 죽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이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 거라며, 모든 것을 자네 가슴에 묻어두라는 부탁을 끝으로 편지를 맺는다.

 

이 작품은 독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선생님'과 'K'라는 두 젊은이의 내면에 자리잡은 이기심과 윤리 의식 사이의 맹렬한 투쟁,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빚어진 뿌리깊은 죄의식이 압권인 소설이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책략들을 동원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또한 경쟁자가 있든 없든, 그 과정이 조용하거나 떠들썩하거나 관계없이, 구애 과정은 언제나 자연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본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런 싸움에서 돌연 패배한 친구의 급작스런 자살이 행복을 구가해야 마땅할 나머지 두 사람마저 끝내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이야기는 너무 암울하다.

 

그런데,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천황의 죽음과 노기 대장의 순사 이야기는 너무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봉건적 군신 관계를 상징하는 '순사' 풍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와 '선생님'의 자살 동기에 동시에 드리워져 있다. K의 죽음만 순수할 뿐 나머지 두 사람의 죽음엔 마치 충군애국의 이념이나 명예를 위한 자기희생의 색깔이 너무 짙게 채색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천황과 선생님과 아버지의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는 생각이야말로 군사부 일체라는 케케묵은 충효사상의 재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지적했듯이,『마음』은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등으로 대표되는 K의 덕목들을 적잖이 강조한다. 그는 그토록 권장할 만한 훌륭한 성품들을 두루 지녔으면서도 끝내 실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의연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선생님 또한 자신의 삶에 그 어떤 오점 하나라도 남길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로 자신의 비겁함과 죄과를 참회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보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들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 이후에 쓴 『마음』을 통해서 비로소 오래 전부터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마음 속의 다짐 일부를 이룩한 게 아닐까 하고.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겠노라'던 그 다짐 말이다.

 

 * * *

 

 

 

 

 

 

 

 

 

 

 

 

 

 

 

 

접힌 부분 펼치기 ▼

 

사족을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의 말미에 붙은 어느 문학평론가의 해설 가운데 어느 한 문장이 도무지 마음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275쪽)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게 사실이라면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담긴 그 무수한 '마음'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무슨 말을 번역해 놓은 괴물이란 말인가. 이 소설 속엔 (잘만 찾아보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정말로 자주 등장한다! 또한 마음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는 마음과 비슷한 어휘들도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답답한 마음에 일부러 찾아 봤다. 내가 불과 60쪽 이내에서 찾아본 마음 비슷한 어휘들만 나열해도 이렇게나 많다!

 

질투심, 비겁, 담판, 결심, 의심, 고백, 회한, 정진, 이기심, 양심, 정직, 각오, 고집, 인내, 용서, 의혹, 번민, 오뇌, 교활, 통절, 참회, 슬픔, 행복, 속죄…. (208∼267쪽)

 

펼친 부분 접기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2-17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전체 내용을 다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K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친구에게 최대의 복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소중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작은 모욕에도 칼을 뽑거나, 할복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근대 이전의 일본 정신 ‘무사도‘를 K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oren 2019-02-17 23:43   좋아요 1 | URL
K의 죽음이나, 선생님의 죽음이나, 노기 장군의 순사나 모두 ‘일본 사무라이 정신‘이 깊숙히 드리워져 있는 건 부정하기 어렵죠. 그런데 나쓰메가 세심하게 묘사한 ‘K의 모습‘에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친구에게 복수한다는 듯한 뉘앙스는 조금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K는 어쨌든 고결한 구도자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인물이니까요.^^

겨울호랑이 2019-02-18 00:0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oren님 말씀을 들으니 참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작품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ren 2019-02-18 11:4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마음』은 ‘마음‘에 다가가는 일의 어려움을 형상화한 소설로도 읽힌답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K와 선생님이 ‘장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하숙집, 같은 대학, 같은 고향 출신이면서도 끝내 서로의 속마음을 툭 터놓고 지내질 못하는 모습도 그렇고, 하숙집 아가씨 또한 결혼한 이후에도 남편의 속마음을 (그가 죽을 때까지도, 어쩌면 죽고 나서도 영영) 알지 못하는 측면도 그렇고요.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 ‘인간의 고독‘을 그린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cyrus 2019-02-18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평론가가 ‘마음’이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의미를 찾아냅니다. 나스메 소세키가 남긴 작품들의 제목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죠. ^^

oren 2019-02-18 18:3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마음』이라는 소설은 제목이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지요. 그런데 평론가가 단정적으로 표현한 저 문장(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은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알맞은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더군요. 나쓰메 소세키가 정말로 ‘마음‘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도 <제목이 ‘마음‘일 수밖에 없는 걸작>을 쓴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사족을 덧붙였던 거고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 부분을 통째로 덧붙여 놓겠습니다.
* * *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의 유서>의 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왜 소설의 제목이 『마음』이어야 하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마음』이 『마음』일 수밖에 없는 까닭, 그게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읽는 첫 번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