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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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키티는 백묵을 손에 쥔 채 수줍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레빈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구부리고서 빛나는 눈으로 테이블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글자의 뜻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그때 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묻는 듯한 눈길로 머뭇머뭇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때만 그랬나요?"

 

"네." 그녀의 미소가 답했다.

 

"그럼, 지…… 그럼 지금은요? 그가 물었다.

 

"저, 여기, 이걸 보세요.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할게요. 간절히 바라는 것을!" 그녀는 머리글자를 썼다. 당, 지, 일, 잊, 용,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당신이 지난날의 일을 잊고 용서해 주기를.'

 

그는 긴장하여 떨리는 손가락으로 백묵을 쥐었다. 그러고는 백묵을 부러뜨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의 머리글자를 썼다. '내게는 잊고 용서할 것이 없습니다. 난 줄곧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그를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34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카프탄과 루바슈카

 

"…… 당신에게 고백하지요. 난 당신과 아내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전보를 받은 후, 난 여전히 똑같은 감정을 품고서 이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할까요. 난 그녀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 그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까 말까 망설이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난 아내를 본 후 그녀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행복이 내게 나의 의무를 보여 주었습니다. 난 완전히 용서했습니다. 나는 다른 뺨까지 내밀고 싶습니다. 내게서 카프탄을 앗아 가는 사람에게 루바슈카까지 건네주고 싶습니다. 난 하느님에게 그저 그분이 내게서 용서와 행복을 빼앗지 않기만 기도할 뿐입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맑고 평온한 시선이 브론스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당신은 나를 진흙탕 속에 짓밟을 수 있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난 아내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당신에게도 결코 비난의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내 의무는 내 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습니다. 난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면, 당신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떠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376∼37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죽음의 임박이 그녀 안에 불러일으킨 부드러움이 사라졌을 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안나가 그를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는 무언가를 바라면서도 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 것처럼 보였다.(38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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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녀는 어떨까? 어떨까? 예전의 모습 그대로일까, 아니면 마차에 있을 때의 모습일까? 만일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지만 사실이 아닐 이유가 뭐야?' 그는 생각했다.

 

"아, 그래, 카레닌을 소개해 줘." 그는 간신히 말을 내뱉고는 필사적이고 결연한 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예전의 그녀도, 마차에 있던 그녀도 아니었다. 그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는 놀라고 머뭇대고 부끄러워했으나, 그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다. 그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녀가 그를 보았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뻤다. 그리고 그가 안주인에게 다가와 그녀를 향해 다시 눈길을 던진 순간, 그녀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그녀 자신도, 레빈도, 그들을 지켜본 돌리도 그녀가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생각할 만큼 당황해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창백해지고 다시 또 붉어지다가 얼어붙었다. 그녀는 입술을 희미하게 떨며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만일 입술의 희미한 떨림, 눈동자에 어린 촉촉함과 그로 인한 반짝임이 없었다면, 그녀가 말하면서 보인 미소는 평온에 가까워 보였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필사적이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차가운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당신은 날 보지 못했지만, 난 당신을 보았습니다." 레빈은 행복한 미소를 빛내며 말했다. "당신이 기차역에서 예르구쇼보로 가는 것을 보았죠."(311∼312쪽)

 

(나의 생각)

이토록 긴장되고 가슴 떨리는 '레빈과 키티의 재회 장면'이 또 있을까? 이런 묘사는 특별히 나보코프의 『롤리타』에서 몰래 계승된 듯한 느낌도 든다. 나만의 생각일까?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녀의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과 눈동자와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울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는 용서를 구하는 마음, 그에 대한 신뢰, 애무, 부드러우면서도 수줍은 애무, 약속, 희망, 그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랑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랑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31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안나와 타락

 

"아내 스스로 남편에게 그 일을 대 놓고 말하는 데야 오해를 하기도 어렵죠. 아내는 8년 동안의 생활도, 아들도, 이 모든 게 다 실수라며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답니다." 그는 코를 식식거리며 성난 어조로 말했다.

 

"안나와 타락……. 나로서는 이 두 가지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가 없어요. 믿어지지 않아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그는 이제 동정과 흥분이 뒤섞인 돌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혀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직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의심하는 동안에는 괴롭기는 했지만 지금보다 나았습니다. 의심할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어요. 심지어 난 이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아들을 증오하고, 어떨 때는 이 아이가 내 아들인지도 의심합니다. 난 너무나 불행합니다."(33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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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자신이 꺾어 시들어 버린 꽃

 

최근에 그녀에게서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런 질투의 발작은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식게 만들었다. 물론 그도 질투가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녀의 사랑이 곧 행복이라고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안나는 사랑을 인생의 모든 행복보다 소중히 여기는 여인만이 할 수 있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안나를 좇아 모스크바를 떠날 때보다 행복으로부터 훨씬 멀어졌다. 그때 그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미래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최고의 행복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녀는 추한 모습으로 변했다. 안나의 몸은 옆으로 푹 퍼져 버렸고, 그녀가 여배우에 대해 말하는 순간에는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표독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꺾어 시들어 버린 꽃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신으로 하여금 그 쫓을 꺾어 망치게 만들도록 유혹한 그 아름다움을 애써 찾아보려는 남자처럼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사랑이 지금보다 더 뜨거웠을 때 그렇게 하려는 마음만 강했다면 자신의 가슴속에서 그 사랑을 뽑아낼 수도 있었을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이런 때에는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262∼26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비겁하다는 것은 정부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서도 남편의 빵을 먹는 것

 

"남편이 단지 예의를 지켜 달라는 조건으로 아내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가문의 명예로운 보호를 베풀었는데, 당신은 그걸 잔인함이라고 부르는군. 그것이 잔인한 건가?"

 

"그건 잔인함보다 더 나빠요. 당신이 굳이 알고 싶다면 말하죠. 그건 비겁한 짓이에요."

 

안나는 증오를 폭발시키며 이렇게 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안 돼!" 그는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높은 음을 띠었다. 그는 커다란 손가락으로 팔찌의 자국이 빨갛게 남을 만큼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고는 그녀를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비겁하다고? 당신이 굳이 그 말을 사용하고 싶다면 말해 주지. 비겁하다는 것은 정부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서도 남편의 빵을 먹는 것, 그걸 두고 하는 말이오!"(27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아주 작은 혹성에 핀 작은 곰팡이

 

"그게 어때서? 난 지금도 계속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야. 이 모든 게 다 무의미하다는 것도. 자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난 나의 사상과 일을 어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어. 하지만 자네도 한번 생각해 봐.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전체는 아주 작은 혹성에 핀 작은 곰팡이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상이나 일 같은 것 말이지! 이 모든 건 모래알에 불과해." 레빈이 말했다.(2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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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들은 몰라

 

'그가 옳아! 그가 옳아!' 그녀는 같은 말을 되뇌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옳았어.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이고 관대한 사람이지! 그래,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 같으니! 나 말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 앞으로도 그렇겠지. 나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어. 사람들은 말하지. 그가 신앙심이 두텁고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총명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본 것을 보지 못해. 그들은 그가 지난 8년 동안 내 삶을 얼마나 숨 막히게 했는지, 내 안에 살아 있던 모든 것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몰라. 그들은 몰라. 그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이 필요한 살아 있는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들은 그가 항상 날 모욕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했다는 것을 모르지. 내가 노력하지 않았나? 온 힘을 다해 내 삶의 정당성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는 아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때가 온 거야. 난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난 살아 있는 여자야. 내게는 죄가 없어. 하느님은 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여자로 만드셨어. 이제야 그걸 알겠어. 그런데 지금 도대체 이게 뭐야? 남편이 날 죽이거나 그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난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냐, 그는…….' (121∼12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이 거짓의 거미줄을 찢어 놓고 말거야

 

'우리의 생활은 예전처럼 계속되어야 하오.' 그녀는 편지에 있던 다른 문구를 떠올렸다. '그 생활은 전에도 고통스러웠어. 최근에는 끔찍할 정도였지. 이제 어떻게 될까? 그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어. 난 숨을 쉬었고 사랑했어. 난 그것에 대해 후회따윈 할 수 없어. 그는 그 점을 잘 알아. 그는 거짓과 기만 외에 여기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그는 날 계속 괴롭혀야만 하지. 난 그를 알아! 난 그가 물속의 물고기처럼 거짓 속을 헤엄치며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안 돼. 난 그에게 그런 기쁨을 허락할 수 없어. 난 그가 내 주위에 휘감고 싶어 하는 이 거짓의 거미줄을 찢어 놓고 말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것이든 거짓과 기만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어떻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나처럼 불행한 여자가 또 있었을까? …….'

 

"아냐, 찢어 놓겠어, 찢어 놓을 거야." 그녀는 벌떡 일어나 눈물을 참으려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 또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아무 것도 찢어 놓지 못할 거라는 것, 아무리 위선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 해도 자신이 그러한 예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었다.(12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남편을 버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긴 것

 

남편에 대한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명백했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사랑한 그 순간부터,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권리만은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다. 남편은 단지 불필요한 방해꾼일 뿐이었다. 남편이 불쌍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남편이 가진 유일한 권리는 손에 무기를 쥐고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다. 브론스키는 그것에 대해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사이 그와 그녀 사이에 새롭게 내적인 관계가 타나났고, 이 관계의 불분명함이 그를 위협했다. 바로 어제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그 소식이나 안나가 자기에게 기대하는 것이 자기가 삶의 지침으로 삼은 법전에 충분히 규정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임신을 알린 처음 순간, 불시의 습격을 받은 그의 마음이 그로 하여금 그녀에게 남편을 버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긴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지금 다시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며 그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나쁜 짓이 아닐까?'(150∼15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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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배신한 아내들의 예가 많아질수록

 

'멸시받아 마땅한 여자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지. 내가 할 일은 오직 그녀가 내게 지운 이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가장 좋은 출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찾아낼 것이다.' 그는 얼굴을 더욱더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자 역사적인 예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아름다운 헬레네」로 인해 모든 사람의 기억에 새롭게 떠오른 메넬라오스를 비롯하여 부정한 아내를 둔 오늘날 상류사회의 남편들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머리속에 차례차례 떠올랐다. '다리얄로프, 폴타프스키, 카리바노프 공작, 파스쿠진 백작, 드람……, 그래, 드람……, 그토록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이……. 세묘노프, 챠긴, 시고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가령 그 사람들에게 어떤 불합리한 ridicule이 쏟아진다고 하자. 하지만 난 그 속에서 불행 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언제나 그들을 동정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그런 종류의 불행에 동정을 보낸 적이 없으며, 남편을 배신한 아내들의 예가 많아질수록 스스로를 더욱더 높이 평가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행이 나에게 닥쳤다. 문제는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냐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세세하게 떠올리기 시작했다.(96∼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래, 시간이 흐르면

 

세부적인 것들을 좀 더 생각하는 동안,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기와 아내의 관계가 왜 예전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없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결코 그녀를 다시 존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그녀가 품행이 나쁘고 부정한 아내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활을 망치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또한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간이 흐르면, 관계도 예전처럼 회복되겠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활하면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는 회복될 것이다. 그녀는 불행해져야만 해. 하지만 난 죄를 짓지 않았으니 절대로 불행해질 수 없어.'(102∼10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래, 모스크바로 가자. 밤 기차를 타고 가는 거야.

 

그녀는 가만히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의 우듬지와 차가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말간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 저 하늘과 저 푸른 잎들처럼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지금의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녀는 또다시 자신의 영혼 속에서 사물이 이중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생각해서는 안 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해. 어디로 가지? 언제? 누구를 데리고? 그래, 모스크바로 가자. 밤 기차를 타고 가는 거야. 안누슈카와 세료자를 데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하지만 먼저 그 두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해.'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테이블 앞에 앉아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11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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