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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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물결』이라는 책으로 너무나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또다시 베스트셀러 한 권을 써 냈다. 책의 제목만 보면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미래의 부'에 대해 상당한 식견과 통찰을 얻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통찰은 언제나 '거대담론'에 너무 치우치는 감이 없지 않다. 제10부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만 대충 훓어보더라도 그렇다. 제3부는 '시간의 재정렬'이고 제4부는 '공간의 확장'이고 제8부는 '자본주의의 미래'인 식이다.

그렇지만  그의 저작이 결코 책상머리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비현실적 주제'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자만큼 '지금 현재'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들에 대해 '최신의' 지식들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인물도 드물며, 현대세계의 놀랄만큼 빠르고 광대한 변화 속에서도 그 심층에 흐르는 변화의 맥점들을 날카롭게 짚어내서 '현실과 조우'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인물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쨌든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일상 생활에서 접하고 느끼는 많은 부분들이 어떤 연관성과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저자의 주장이 몇가지 떠오른다.

첫번째는 '속도의 충돌'에 관한 얘기인데, 선두와 느림보가 동시대를 살면서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가령 기업이나 사업체는 시속 100마일로 움직이고, 노동조합은 시속 30마일, 학교는 시속 10마일, 정치조직은 시속 3마일, 가능 느림보인 법(법원, 변호사협회,법과대학원과 법률회사 등)은 시속 1마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다양한 조직체의 구성원들과 접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속도의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토플러의 설명을 듣고 나면 '그려려니'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두번째는 '무용지식의 함정'에 대한 지적인데, 날이 갈수록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게 되면서 쓸데없는 쓰레기 지식들이 너무나 범람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무용지식(obsoledge), 즉 쓰레기 知識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쓸모없는 知識을 골라내는 능력이 富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프리에이전트와 프로슈밍의 확산,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의문(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혁명적인 부의 전환을 견뎌낼 수 있을까?)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부에 관한 이야기' 만이 아니라, '우리와 부가 소속된 문명 안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결국 그의 다양한 분석과 통찰들을 '우리의 부의 미래'와 얼마만큼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조합해 내서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느냐는 문제만 남았고, 그것은 언제나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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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동서문화사 월드북 87
찰스 다윈 지음, 송철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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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 금년에 와서야 온전히 다 읽은 `올해 만난` 최고의 과학 고전. 다윈은 이 책을 통해 마침내 창조론을 뒤집었지만, 이 책 속에는 우리 세계에 대한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생각들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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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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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주면 인간은 한결 나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안톤 체호프

먼 미래에는 ······ 여러 가지 분야가 개척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은 개개의 정신적인 힘이나 가능성의, 점차적인 변화에 의한 필연적 획득이라는 새로운 기초 위에 세워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광명이 던져질 것이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중에서

* * * * * * * * * * *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밖에 언급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종의 기원』의 성공을 위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인간의 기원에 관한 나의 신념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유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윈이 탄생한지 200년이 갓 지난 오늘날 '인간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증거들은 너무 많이 발견되었다 싶어서 오히려 충격적이다.


인간과 돼지, 인간과 소는 50개가 넘는 긴 배열을 공유한다. 모든 것이 살아있는 새끼나 젖이나 털만큼이나 설득력있는 공통 후손의 증거이다. ...... 대부분의 유전학적 전망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생쥐와 인간은 모든 부분에서 같으며, 수천개의 인간 유전자가 생쥐의 유전자와 정확히 똑같다. DNA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생쥐 염색체의 절반 이상이 인간의 염색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는 우리와 훨씬 더 많이 닮았다. 모든 식물 유전자의 절반이 생쥐의 유전자와 같다. 벌레는 고유 유전자의 1/5을 효모와 공유한다(효모는 벌레로부터 10억 년 전에 갈라져 나왔다).
- 스티브 존스, 진화하는 진화론 中에서

최근까지의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증거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아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스티븐 핑커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신념들을 제대로 풀어낸 것같다. 이미 그의 전작들(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단어와 규칙)을 통해 심리학의 새로운 기초를 세우는데 일익을 담당한 전력이 있었던 만큼,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펼치는 주장은 신념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저자의 신상에 유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본래부터 타고난 '인간 본성'을 이제는 정말 제대로 파악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말이다. '타불라 라사'라고 하면 오래 전 한 때 자주 접했던 용어라서 생소하지 않는데, 국내 최고의 온라인 게임회사인 N사가 '울티마' 시리즈의 아버지로 유명한 게리엇 형제들을 거액을 주고 영입하면서, 그들이 세계시장을 휩쓸 목적으로 개발에 나선 온라인게임의 이름이 바로 '타뷸라 라사'였던 것이다. 오늘 문득 살펴보니 7년간 개발한 그 게임의 흥행은 실패했지만 N사에 대한 스톡옵션을 통해 게리엇 형제들은 무려 600억 이상을 챙겼다는 뉴스도 보인다.

어쨌든 2001년경 타불라 라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흥미가 생겨 알아본 바로는 그 말이 라틴어가 어원이고 '빈 판때기' 정도의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정도로 알았었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을 통해 뭘 좀 제대로 알고 보니 이 용어의 기원은 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단다. 어쨌든 로크는 흰 종이와도 같은 인간의 마음이 오로지 '경험으로부터' 채워진다고 주장하면서 '빈 서판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것이고, 그의 경험론은 중세의 암흑기는 물론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자명한 진리로 강요되었던 교회의 권위와 신성 왕권을 힘차게 타파하고 체제로서의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유용한 정치 철학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토머스 홉스가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하는 비합리적 충동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주장했던 것에 영향을 받아(혹은 반발하여), 루소는 소위 '고상한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자연 상태의 인간은 욕심이 없고 평화로우며, 탐욕, 근심, 폭력과 같은 병폐는 문명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로크와 루소, 베이컨과 데카르트 등을 거치면서 경험적 합리주의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인간이 '고상하지 못하고 야만스러운' 본성을 타고난다는 주장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되고 20세기로 건너올 때까지도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만 더욱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조상으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게 되는 '타고난 본성'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이 적을수록, 인간이라는 존재가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개조 가능한 말랑말랑한 원재료 쯤으로 여기게 된 맹신들은 결국 유토피아적인 이상형 인간의 추구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스티븐 핑커가 '빈 서판' 이론을 맹렬히 비난하는 근거지로 삼는 무대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무시한 채 '고상한 야만인' 상태의 인간을 대상으로 훌륭한 환경과 교육 등을 통한 인위적인 '양육'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책이 이처럼 두꺼워진 주된 이유도 '빈 서판' 이론을 맹공하기 위한 무기 역할을 하는 그의 지식의 창고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MIT에서 21년간, 하버드에서 8년째) '인간 본성의 과학' 연구에 매진해온 학자 답게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 본성에 관한 증거들을 끊임없이 우리들 앞에 제시한다. 일견 지루할 것도 같지만 그의 주장은 유력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명료하고, 논점이 고르고, 공정하고, 깊이가 있고, 탄탄하고, 위트가 넘치고, 교양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전혀 따분하지 않다! 다만, 다윈의 영향을 깊숙히 받아들인 대부분의 과학자들처럼 '압도적인 증거에 의해 자연스럽게 침몰할 것'으로 보는 '창조론'을 아직까지도 압도적으로 믿는 서양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그가 특히 종교적 문제에 관해 지나칠만큼 자세한 설득과 논리적 반박에 지면을 너무 할애한 점은 아쉽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이라는 도발적인 책을 써서 수많은 교회를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드나드는 열성 신도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이 책에서 스티븐 핑커가 '허위와 날조'의 증거로 찾아낸 종교적 기록들 역시 그에 못지 않다 싶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삼위일체 이론에 대한 비판이나 교황청의 신성하고도 권위있는 발표는 물론이고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성서의 기록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이다.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 이론과 '고상한 야만인' 이론에 대한 광범위한 탐구를 통해 그 허구성을 반박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 또한 신의 입김을 통해 생겨난 것이 아님을 인정하더라도) 인간의 도덕 관념이나 윤리, 정치 조직이나 사회 제도가 혼란에 빠질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열을 올린다. 오히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등과 평화, 그리고 인류가 추구하는 즐거움과 행복한 삶이 오히려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이러한 주장들은 일견 만들어진 신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기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때 종교적·이념적 분쟁이 사라지고 진정한 인류의 삶의 목적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본문 내용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주석을 따로 제쳐두더라도 참고문헌 목록만 해도 817쪽∼870쪽에 걸쳐 빼곡히 나열할 만큼 엄청나다. 솔직히 쉽게 읽겠다고 덤벼들기에는 다소 벅찬 내용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또한 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물학과 인문학은 물론이고 역사와 철학적 방법론까지 포괄하는 거의 모든 지식 영역에서 다윈주의의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고된 '건축'에 해당한다고 할만큼 독특한 깊이를 지닌 책이다.

저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부인 혹은 인정이 인간의 삶의 거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데 주목하면서 사람의 '마음'이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우리 인류의 삶과 직접 대조하면서 하나 하나 올바른 해결책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주로 정치, 폭력, 성(性), 어린이, 예술과 인문학에 대해 '인간 본성'이 던져주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역시 어린이에 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부모가 자식을 말랑말랑한 공작용 재료쯤 된다고 생각하는 이론은 부모들에게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양육 체제를 강요해 왔다고 본다. 그래서 각자 타고난 본성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결국 바라는 대로 성장해 주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통을 배가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양육의 효과는 유전자의 영향보다 훨씬 작으니 부모가 양육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충고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말대로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 힘도 쥐고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저자가 오랜 기간 동안의 인류 진화의 역사를 통해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타고난 인간 본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또 인정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마냥 극단적인 '본성' 입장에 서서 극단적인 '양육' 입장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러차례 선을 긋는다. 그는 본성(nature) 대 양육(nuture)의 오래된 논쟁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리기에 앞서 책의 앞부분에서 미리부터 '진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한 발을 빼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그가 나름대로 '본성 대 양육'에 대해 생각하는 '저울의 눈금'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

행동 유전학의 세 가지 법칙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일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법칙이 여러 시사 잡지의 커버 스토리를 통해 소개되었음에도,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세 법칙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전자 50퍼센트, 공유 환경 0퍼센트, 단독 환경 50퍼센트(조금 양보하자면, 유전자 40∼50퍼센트, 공유환경 0∼10퍼센트, 단독 환경 50퍼센트).

이 책이 국내에 번역된 지도 벌써 6년쯤 된 것 같다. 이 책이 소개된 글을 보고 '뭔가 대단한 깊이가 있는 책'일 것같아 사두기만 하고 읽기를 미뤄오다가 뒤늦게 2007년 초에 읽기를 마쳤었는데 그 후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좀 더 쉽고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 뒤늦게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면서 스티븐 핑커의 '마음'에 좀 더 다가갈 기회를 얻었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빈 서판'을 읽어보니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서 처음에 읽을 때보다 훨씬 속도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5월에 아이들과 함께 미국 동부지역의 명문대학들(하버드대, MIT대,예일대, 컬럼비아대 등)을 탐방할 기회를 가졌었는데(아이들이 그 쪽으로 진학할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단지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라는 생각을 실천한다는 차원), 하버드대 교정에 들어섰을 때는 정말 이 사람, 스티븐 핑커만은 꼭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었다.(설사 누가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었더라도 언어 '본능'이 아니라 언어 '환경' 탓에 내가 그를 만나고 싶었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독후감'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는데, 방대한 책의 무게에 압도되어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밑줄친 부분과 노트에 적어둔 일부 내용들 덕분에 이렇게 두서없는 서평글이나마 쓸 수 있어서 저자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은 기분도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인 스티븐 핑커가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이 훌륭한 책이 퓰리처상의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가 결국 수상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 너무 과격한 탓이어서 나름대로 종교적·정치적인 반대파들의 목소리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혹시 지나치게 두꺼운 책의 부피가 수상을 가로막은 장애요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지적 도전과 탐험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읽기를 권해 드리고 싶고, 혹시라도 이 책의 두께 때문에 미리부터 읽기에 실패할까봐 걱정이 앞서는 분들을 위해 제 나름대로 (스크롤에 대한 압박은 있을지 몰라도) 두께에 대한 부담없이 이 책을 맛볼 수 있는 요약본을 덤으로 준비했으니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

빈 서판 ① ② ③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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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 서판 ① ② ③ ④
    from Value Investing 2011-03-04 10:56 
    인류의 초상화 15이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금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금기에 대한 도전이 정말로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인가를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또한 이 책은 이제 막 윤곽이 잡히고 있는 인류의 초상화에 호기심을 느끼거나 그 초상화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금기로 인해 우리가 긴급한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완전한 기반 없이 해결을 시도하고 있음을
  2. 이런, 내가 우리 부모랑 똑같이 되어가고 있군!
    from Value Investing 2013-08-11 11:41 
    (밑줄긋기)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우리가 여느 때 보고 있는 사물들 중에도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들이 많다고 본다.도대체 이 정액 한 방울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이기에 거기서 우리가 생겨나며, 거기에 우리 조상들의 육체적 형태뿐 아니라, 그 사상과 경향의 흔적까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 물방울은 어디다 이 무한한 수의 형태를 깃들이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물방울들은 종잡
 
 
라로 2010-10-0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적 도전은 즐기고 싶지만 탐험까지는 아직,,아니 탐험을 하기엔 이제 머리가 안돌아가요,,ㅠㅠ
저는 님이 올려주신 요약본으로 만족 해야 할 듯~.^^;;

oren 2010-10-06 14:34   좋아요 1 | URL
어쨌든 이 책은 '좀 읽기 어렵겠구나' 싶은 분들은 지나쳐도 좋을 만큼 '너무 두꺼운 게' 흠이에요.

사람들마다 각자 나름대로 취향들이 다 달라서 저는 일단 책의 부피가 '얇은 책'들은 괜히(혹은 이상하게도)사 놓고도 읽지 않게 되고, 늘상 '두꺼운 책'을 붙들고 고생 고생한답니다.(어쩌면 책과 거의 씨름하다시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은 나비님과 같은 분들처럼 이 곳 알라딘에 계신 많은 분들이 엄청난 권수의 책들을 '아주 날렵하게' 읽어내시는 모습들이 부러울 때도 무척 많답니다.

제가 서평글에서 쓴 '지적 도전과 탐험'은 역자의 표현에서 빌린 건데요.
이 표현을 보면서 '가짜 지식인의 화려한 서가에 오랫동안 읽히지도 않고 꽂혀 있겠다'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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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조금만 어려우면 그 속에 담긴 내용과 질에 상관없이 '이런 책을 과연 누가 읽을 수 있을까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다만 지적 도전과 탐험을 즐기는 '지식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가난한 지식인의 낡은 서가에 오랫동안 꽂혀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할 뿐이다.(875쪽)
- 역자 후기 中에서

마녀고양이 2010-10-06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놓고,
아직 구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도 함께 넣어놓아야겠네요.

본성과 양육, 진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 놓여있다에 열렬하게 동의합니다.
교육이란 인간의 사회화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도 너무나 많다고 봅니다.
또한 많은 부모는 자신의 아픔을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경향이 있고,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경향도 있다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분야인데, 꼭 맞게 감사드립니다.

oren 2010-10-06 14:22   좋아요 1 | URL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이 먼저 나왔고, 책의 내용도 훨씬 흥미롭더라구요. 심리학의 대가인 저자가 '사람의 마음속'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며 저자 자신이 '본 것들'을 독자들에게 말해주는 책이니까요.

'빈 서판'은 '마음이....'에 비하면 범위를 너무 넓힌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나서 전 세계를 향해 눈을 돌려 '사람이다보니 떠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책이니까요. ㅎㅎ

oren 2010-10-07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정재승님이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한 글이 있어서 덧붙여 봅니다.
2만여 권의 책을 가지고 계시다는 정재승님이 '내 인생의 책' 5권 가운데 이 책을 꼽았다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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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가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는 책이에요. 이 책이 꼭 진실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어서 많이 권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스티븐 핑커라는 교수가 쓴 책인데요. 우리는 흔히 사회생물학자들이나 생물학적 결정주의자들의 생각 - 우리는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고,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은 별로 없다 - 은 너무 과격한 주장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반대로, 사실은 인문사회과학자들 또한 굉장히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라는 주장처럼, 인간이 완전히 하얀 백지/빈 서판이라는 것 또한 과격한 주장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저도 사회생물학이라든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결정되어있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결국 자신이 속한 문화/사회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과격한 이야기라는 것을 예전에는 좀처럼 하지 못했거든요. <결국엔 그 모든 것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인간 하나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주장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저는 좀 두껍긴 하지만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물리학자 정재승의 서재,《정재승의 서재는 일요일 오후의 공동묘지이다》中에서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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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빈 서판>,<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언어본능>,<사이언스 북>



















스티븐 핑커의 이 두툼한 책(962쪽)에 담겨진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말했다.

리뷰를 쓰기엔 너무 벅찬 일인 것 같아 포토리뷰의 형식을 빌어,
일부러 찍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밑줄친 스티븐 핑커의 '생각들'을 뽑아서,
임의대로 붙인 소제목과 해당 쪽수를 덧붙여 정리하여 옮겨 놓는다.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임의로 ① ② ③ ④로 나누어 정리)





 - 우리 눈에 예쁘게 보이는 이유(8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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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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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 버튼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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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 757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권위, 찬성, 존엄, 우월, 명성, 존경, 체면, 지위, 탁월함, 위신, 지위, 존중, 평판, 신분, 고매함 등으로 불리는 그림자 같은 실체를 거머쥐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리본과 한 조각의 금속을 목에 걸기 위해 굶주리고, 목숨을 걸고, 재산을 탕진한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배블런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너무 많은 생활필수품을 희생하기 때문에 마치 '고상한 정신적 필요'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위와 미덕이 매우 밀접하다는 것은 다음의 단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사도 정신이 있는 chivalrous, 귀족적인classy, 품격이 있는courtly, 신사다운gentlemanly, 명예로운honorable, 고귀한noble, 위엄 있는princely. 정반대의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버릇없이 자란ill-bred, 비천한low-class, 천한low-rent, 비열한mean, 역겨운nasty, 무례한rude, 인색한shabby, 천한shoddy. 개인의 사소한 외양에 대해서도 우리는 옳은right, 선량한good, 예절에 맞는correct, 흠잡을 데 없는faultless 같은 도덕적 비유로 그 멋을 표현하고, 볼품없이 입은 자를 비난할 때에는 대개 죄악을 가리키는 어조를 동원하여 초라한tack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술사가 쿠엔틴 벨은 그런 태도를 '의복 도덕성sartorial morality'이라고 칭했다.


해치거나 돕는 능력 758


혹시 이것은 지적 유기체를 건조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이 강력한 동기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동물들이 무의미한 장식과 제식에 의해 감동을 받으며, 그 선택 요인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다. 그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다. 생물들은 다른 생물을 해치거나 돕는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것들은 더 강하거나 더 사납거나 더 독하고, 어떤 것들은 더 좋은 유전자나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 그 강력한 생물들은 자신의 강력함을 모두가 알아 주기를 원하고, 그들과 마주치는 생물들 역시 누가 강력한지 알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다른 모든 생물의 DNA, 근육의 양, 생화학적 구성, 사나움 등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잘난 생물들은 자신의 가치를 저마다 특정한 신호로 광고한다. 애석하게도, 잘나지 못한 생물들은 그 신호를 위조하고 이득을 수확하여 그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면 잘난 생물들은 위조하기 어려운 광고물을 만들어 내고, 잘나지 못한 생물들은 더 정교한 위조물을 만들어 내고, 제3자들은 분별 능력을 강화하는 경쟁이 벌어진다. 지폐의 경우처럼 그 표시들은 비길 데 없이 번드르르하고 본질적으로 무가치하지만, 마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취급되고 또 그렇게 취급되기 때문에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런 광고물들 뒤에 숨겨진 귀중한 내용물은 우위(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와 신분(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으로 나뉠 수 있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두 능력은 종종 결합한다.


서투른 전략 759

모든 다툼에서 비참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것은 서투른 전략이다. 상대방도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진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은 패자에게 타격이 크다. 싸움을 하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애초에 상금을 포기했을 때보다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싸움은 또한 승자에게도 타격이 클 수 있다. 승자도 싸움의 과정에서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당사자가 사전에 누가 이길 확률이 높은지를 사정하고 약자가 깨끗하게 물러난다면,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누가 더 큰지를 보기 위해 서로 크기를 재거나, 누구의 무기가 더 센지를 보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누가 더 강한지를 확인할 때까지 씨름을 한다. 승자는 한 쪽이지만 둘 다 살아서 돌아간다.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면 다른 곳에서 승리의 길을 찾거나 상황이 더 좋아질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크기를 재는 동물들은 크기를 과장하는 방법을 진화시킨다. 목둘레 깃털, 가죽 부풀리기, 갈기, 강모, 뒷다리로 서기, 큰 소리로 울기(낮은 음은 체내의 공명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가 그것이다. 싸움의 비용이 크고 승자를 예측할 수 없으면, 마치 경쟁하는 두 사람이 동전 던지기로 다툼을 결말짓는 것처럼, 누가 먼저 그곳에 도착했는가와 같은 임의적인 차이로 승부를 낼 수도 있다. 만일 동물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판돈이 충분히 높으면(예를 들면 첩처럼), 전면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일부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서열과 지위 761

인간에겐 엄격한 서열이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 사이에 일종의 서열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서열이 높은 사람은 의견의 우선권이 있고, 공동의 결정에서 발언권이 크고, 대개 공동의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고, 아내와 애인을 더 많이 거느리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더 많이 성관계를 맺는다. 남자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동물학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들과 인간에게 고유한 방법들을 이용해 지위를 획득한다. 싸움을 잘하는 남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외모가 매력적인 남자들도 높은 서열을 얻는다. 자칭 이성적 동물이라는 종 사이에서도 큰 키는 의외로 강력하다. 대부분의 식량수집사회에서 '지도자'라는 단어는 '큰 사람'을 의미하고, 실제로 지도자들은 대개 큰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키가 큰 사람들은 고용이 더 잘 되고, 승진이 더 잘 되고, 더 많이 벌고(1인치당 연봉600달러), 대통령으로 더 많이 선출된다. 1904년부터 1996년 사이의 대통령 선거에서 키가 큰 후보가 스물네 번 중 스무 번이나 당선되었다. 신문의 개인 광고란에서 여자들은 키 큰 남자를 원한다. 수컷들이 경쟁을 하는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남성이 여성보다 크고, 낮은 목소리나 턱수염처럼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 만드는 방식들을 진화시켰다.(턱수염은 머리를 더 커 보이게 만든다. 턱수염은 사자와 원숭이에게도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눈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디서나 남자들은 머리(모자, 투구, 머리 장식, 왕관)와 어깨(어깨심, 보드, 견장, 깃털 장식)의 크기를 과장하고, 몇몇 사회에서는 성기의 크기를 과장하기도 한다.(불룩한 바지 앞덮개나 성기 씌우개를 착용하는데, 어떤 씌우개는 길이가 1야드나 된다.)



평판 762

인간은 언어와 함께, 우위에 대한 정보를 전파하는 새로운 방법을 진화시켰다. 바로 평판이다. 사회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당혹스럽게 생각해 온 사실은, 미국 도시에서 발생하는 살인의 동기들을 분류했을 때 가장 큰 범주는 강도, 불량한 마약의 거래, 또는 그 밖의 명백한 동기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욕, 욕설, 부딪힘 같은 비교적 사소한 원인에서 시작된 언쟁"이다.
두 젊은이가 술집에서 누가 당구대를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그들은 서로를 떠밀면서 욕설과 무례한 말을 교환한다. 패자는 구경꾼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뛰쳐나간 후 총을 갖고 돌아온다. 살인사건은 '무분별한 폭력'의 축소판이고, 살인자들은 종종 미친 사람이나 동물로 간주된다.


댈리와 윌슨은 두 젊은이가 마치 당구대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 걸려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엄청난 것이 걸려 있다.

남자들은 같은 남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함부로 해도 되는 부류'와 '함부로 하면 큰코다치는 부류', 말이 곧 행동을 의미하는 사람들과 허풍이 전부인 사람들,
여자친구와 농담을 해도 별 탈 없이 넘어가는 녀석과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녀석으로 인식한다.

대부분의 사회적 환경에서 남자의 평판은 부분적으로, 언제든 확실하게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해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며, 한 사람의 이익은 경쟁자들을 미리 억제하지 않으면 언제든 침해당할 수 있다. 효과적인 억제책은,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이득을 보려 한다면 반드시 가혹하게 응징할 것이고 그래서 장기판의 졸 따위를 희생하더라도 도전자에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것이라는 확신을 경쟁자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명예(honor) 763

자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칼로 찌르는 빈민가의 폭력배는 특정한 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에서 비슷한 유형이 발견되는 보편적 인물이다. (영어를 포함하여) 많은 언어에서 명예honor라는 말은 불가피할 때는 피를 보더라도 모욕에는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많은 식량수집 사회에서 소년은 살인을 한 후에야 남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한 남자의 존경은 살인을 입증하는 증거의 수에 비례하고, 그에 따라 머리 가죽 벗기기나 머리 사냥 같은 관습이 탄생한다. '명예로운 남자들'의 결투는 미국 남부의 전통이었고, 많은 남자들이 결투를 통해 지도자의 지위에 올랐다.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은 아론 버 부통령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2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앤드로 잭슨 대통령은 두 번의 결투에서 승리했고 그 밖에도 여러 번 결투를 도발했다.



폭력을 야기하는 가장 큰 위험 인자 764

남성성은 폭력을 야기하는 가장 큰 위험 인자다. 댈리와 윌슨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식량수집 사회들과 13세기의 영국을 포함한 14개 나라로부터 35개의 살인 통계 샘플을 분석했다. 모든 샘플에서 여자가 여자를 죽인 경우보다 남자가 남자를 죽인 경우가 월등히 많았는데, 그 수치는 평균 26배였다.



유전적 낭떠러지 764

또한 당구장의 살인자들과 그 희생자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미혼이고, 종종 직업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일부다처로 사는 포유동물 사이에서 번식 성공률은 수컷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가장 치열한 경쟁은 성공 가능치가 0명에서 1명 사이를 오가는 수컷들이 몰려 있는 밑바닥에서 벌어진다. 남자들은 부와 지위로 여자를 유혹하기 때문에, 부와 지위가 없어서 여자를 얻을 방도가 없는 남자는 유전적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위험한 영토로 뛰어 들어가는 새들이나, 1점 차이로 지고 있고 1분 후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골키퍼를 빼고 공격 선수를 집어넣은 아이스하키 감독처럼, 미래가 없는 미혼 남자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이다. 밥 딜런이 노래했듯이,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지위 766

지위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런 자산에는 아름다움, 독보적인 재능이나 전문성, 유력자들의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부가 포함된다.
지위를 뒷받침하는 자산들은 대용이 가능하다. 부는 인맥을 만들고, 인맥은 부를 만든다. 아름다움은 (선물과 결혼을 통해) 부로 전환되거나, 중요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구혼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자산 소유자는 단지 자산 소유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후광이나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총애를 받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총애를 원하게 만들면 항상 편리하므로, 지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간절히 원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첨꾼들은 누구에게 빌붙을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지위는 어디까지나 한정된 자원이다. A의 지위가 높으면 B의 지위는 낮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한다.


심지어 족장의 지위를 다투는 동족상잔의 세계에서도 신체적 우위가 전부는 아니다. 샤농의 보고에 따르면 야노마뫼 족장들 중에는 드센 골목대장도 있지만 영리함과 분별력으로 족장에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카오바웨라는 이름의 남자는 물론 겁쟁이는 아니었지만 형제들과 사촌들의 도움, 그리고 아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동맹을 맺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거머쥐었다.


위신의 심리 768

베블런은 위신의 심리에는 세 가지 '취미의 금전적 표준'이 작용한다고 제안했다. 뚜렷한 여가, 뚜렷한 소비, 뚜렷한 낭비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지위 상징물들을 과시하거나 탐내는 것은 그것들이 반드시 유용하거나 매력적이라서가 아니라, 종종 그것들이 너무 희귀하거나 사치스럽거나 무의미해서 부유하지 않으면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의 예로는, 지나치게 얇거나 크거나 꽉 죄거나 때가 잘 타서 입고 일하기가 불가능한 의류,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약하거나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만든 물건, 막대한 노동이 들어간 무용지물,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식물, 평민들이 밭에서 일하는 지역에서의 창백한 피부, 평민들이 실내에서 일하는 지역에서의 선탠 등이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숨어 있다. 당신들은 내가 가진 모든 부와 수익 능력(내 은행 계좌와 토지, 나의 모든 동맹자들과 추종자들)을 볼 수는 없지만, 내 욕실의 황금 장식은 볼 수 있다. 재산이 많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것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부유하다.


뚜렷한 소비 769

뚜렷한 소비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이 사치를 누릴 수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계층구조가 느슨해지거나, 사치품(혹은 훌륭한 모조품)이 널리 유통되면, 중상 계층은 상류층을 따라하고 중간 계층은 중상 계층을 따라하는 식으로 각 계층은 한 단계 위의 계층을 모방한다. 서민들이 상류층을 닮기 시작하고 상류층이 돋보이지 않게 되면 상류층은 새로운 외관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중상 계층은 그 외관을 또다시 모방하고, 상류층은 또 다른 외관으로 변화를 꾀한다. 이것이 유행이다. 유행의 무질서한 순환, 즉 10년 동안의 세련된 모습이 다음 10년에는 초라하고 촌스럽게 보이는 현상을 지금까지는 의류 회사들의 공모, 민족성의 표현, 경제의 번영 등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쿠엔틴 벨은 유행을 분석한 권위 있는 저서 《인간의 장식에 대하여 On Human Finery》에서, 단지 하나의 설명만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간은 다음과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당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라. 만일 정상에 있다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하라."


나비가 화려한 색을 진화시킨 이유 770

동물계의 또 다른 멋쟁이인 나비가 화려한 색을 진화시킨 것은 암컷을 감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몇몇 종들은 유독하거나 맛이 없게 진화했고, 그것을 화려한 색으로 포식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다른 유독한 종류들도 그 색을 모방하여 기존에 유포된 두려움을 이용했다. 그런데 유독하지 않은 몇몇 나비들까지도 그 색을 모방하여 자신을 보호한 동시에 스스로 맛이 없는 나비가 되는 비용을 절약했다. 흉내쟁이들이 너무 많아지자 그 색은 더 이상 효과적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고 포식자들을 막아 내지도 못했다. 맛없는 나비들은 새로운 색을 진화시켰고, 먹을 수 있는 나비들은 또다시 그 색을 모방했다.


뚜렷한 위반 770

부 외에도 사람들이 과시하고 갈망하는 자산들이 있다.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리그전에서 경쟁을 벌이는데, 모든 리그가 금권 정치가의 손아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벨은 베블런의 목록에 네 번째 표준을 추가했다. 뚜렷한 위반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승인에 의존한다. 살아가는 데에는 상사, 선생, 부모, 의뢰인, 고객, 장래의 배우자 가족 등의 지지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일정 정도의 존경과 겸손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거부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자기 자신의 지위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광고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나는 대단히 재능이 있고, 부유하고, 인기가 있고, 인맥이 좋아서 당신을 성나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에 조르주 상드라는 남작 부인은 바지를 입고 시가를 피웠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긴 머리에 짧은 바지를 입고 단춧구멍에 해바라기를 꽂았다. 20세기 후반에 뚜렷한 위반은 관습이 되어 반항아, 야만인, 보헤미안, 변태, 불량배, 무례한, 성정체성 파괴자, 마우마우, 나쁜 녀석들, 갱스터, 섹스디바, 비치가디스, 요부, 방랑자, 머터리얼 걸 등이 장황한 퍼레이드를 벌이고 지나갔다. 유행의 원동력이 고급스러움에서 최신 정보의 추구로 바뀌었지만, 기초에 깔린 지위 심리는 동일하다.


우애적 사랑 778∼779

친구 관계에서는 호혜주의가 거짓말처럼 들린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이 지갑을 꺼내 주인 부부에게 저녁 값을 지불한다면 꽤나 의심스런 취미의 소유자로 취급당할 것이다. 바로 다음날 그 부부를 초대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맞대응은 우정을 굳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금이 가게 만든다. 친한 친구 사이에 차를 사고파는 등의 거래를 하는 것보다 더 어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배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부부는 가장 불행한 부부일 것이다.

친밀한 우정과 지속적인 결혼의 기초를 이루는 감정(낭만적이거나 성적이지 않은 사랑)인 우애적 사랑에는 독자적인 심리가 존재한다. 친구나 부부는 마치 서로에게 빚을 진 것처럼 느끼지만 그 빚은 계산하기가 불가능하고 변제의 의무는 부담스럽기는 커녕 대단히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친구나 배우자를 도울 때 보답을 기대하거나, 보답이 없다고 자신의 호의를 후회하지 않고 자발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그 호의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새겨지는데 장부상의 기록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호의를 베푼 쪽은 빚을 회수하거나 더 이상의 신용거래, 즉 친구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 기간은 길고 변제 조건은 관대하다. 따라서 우애적 사랑은 기본적으로 호혜적 이타주의와 모순된다기보다는 호혜를 보증하는 감정들-좋아함, 동정, 감사, 신뢰-이 최대한 연장된 탄력성이 강한 이타주의라 할 수 있다.


은행의 역설 779

우애적 사랑의 증거는 분명하지만 우애적 사랑이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투비와 코즈미디스는 우정의 심리학을 역설계하려는 시도로 '은행의 역설 Banker's Paradox'이라는 교환 논리의 한 측면을 지적한다.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간 많은 사람들이 정작 필요하지 않다고 입증할 수 있는 액수까지만 빌려 준다는 사실을 알고는 좌절감을 맛본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표현한 것처럼, "은행은 맑은 날 우산을 빌려 주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곳이다." 은행들은 단지 투자할 돈밖에 없으며 대출은 모두 도박이라고 말한다. 은행은 수익을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업계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고객들의 신용 리스크(변제 불능의 위험성)를 평가하고 잡초를 솎아 낸다.


'신용'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 780

불행이 당신을 위협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이 보험으로서 어떤 종류의 생각과 감정이 진화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전략은 나 자신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구 제작, 길 찾기, 분쟁 해결처럼 집단 내에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전문 기술을 계발한다면 나는 위급한 때를 위해 따돌릴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모두가 내게 의존한다면 위기가 닥쳐도 나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 있는 재능을 널리 알리거나 자신만의 재능을 독보적이고 가치 있다고 인정해 주는 집단을 찾는 일에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지위 추구는 자신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동기들 중 하나다.

두 번째 전략은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동지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지 당신의 삶에 힘쓰고 당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결혼이 가장 분명한 예다. 남편과 아내는 자식들의 안녕으로 이익을 공유한다. 두 번째 예는, 마오쩌둥의 어록에 담긴 "나의 적의 적은 나의 동지"다. 세 번째 예는 이를테면 집으로 가는 길 찾기에 능숙한 것처럼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동시에 남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기술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 밖의 예로는 나와 같은 온도의 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다. 이 모든 예에서 우리는, 비용이 발생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보답이 요구되는 생물학적 의미의 이타주의와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우정 781

일단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만들면 그 사람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내가 그(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그녀)도 내가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에 이해관계가(비록 이기적인 이해관계이지만)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들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나의 재능이나 습관 때문에 그들에게 소중할 뿐만 아니라, 궂은 날에 그들을 곤경에서 구하는 일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내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 여길수록 그 사람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이렇게 계속되는 과정을 우리는 우정이라 부른다. 만일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왜 친구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같고, 서로를 위해 항상 옆에 있어 줄 것임을 안다."


'좋은 날만의 친구fair-weather friend'라는 특별한 이름 781∼782

다른 종류의 이타주의처럼 친구 관계도 사기에 취약하다. 우리는 그 사기꾼들을 '좋은 날만의 친구 fair-weather friend'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사이비 친구들은 가치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거둬 가고, 그들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온정의 표시를 흉내 낸다. 그러나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사람들에겐 좋은 날만의 친구를 솎아내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감정 반응이 있다.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의 손길은 대단히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뭉클한 감동을 느끼고, 그 관대함을 결코 잊지 못하고, 또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우정의 요점은 곤경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외와 외로움의 원천 782

투비와 코즈미디스는 더 나아가, 마음에 설계된 우정의 감정들이 수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소외와 외로움의 원천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눈에 보이는 교환과 주고받기식 호혜는 우정이 없고 신뢰가 낮을 때 의존하는 낮은 차원의 이타주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경제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낯선 사람들과 호의를 교환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물리적 편안함을 주는 환경이 정서적으로는 우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는 위기가 최소화되어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호전적 애국주의 789

싸워서 얻을 희귀한 자원이 없는 경우에도 호전적 애국주의는 무서우리만큼 쉽게 촉발된다. 사회심리학자 앙리 타즈펠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수많은 실험에서, 사람들은 예컨대 화면에 뜬 점들의 수를 과대평가하는지 과소평가하는지, 또는 클레의 그림을 좋아하는지 칸딘스키의 그림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우연하고 표면적이고 사소한 기준에 따라 두 패로 나뉜다. 각 패에 속한 사람들은 즉시 상대편 사람들을 싫어하고 더 나쁘게 생각하며, 자기 집단에 손해가 될 경우에도 그들에게 보상이 돌아가지 않게끔 행동한다. 이 즉흥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는 심지어 실험자들이 점이나 그림으로 하는 촌극의 막을 내리고 그들의 면전에서 동전을 던져 패를 나눌 때에도 발생한다! 그로부터 나오는 행동상의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 권위있는 실험에서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중산층 출신의 착실한 미국 소년들을 신중하게 선발해 여름 캠프를 연 다음 소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스포츠와 촌극으로 경쟁을 붙였다. 며칠 내에 양 집단은 막대기, 방망이, 돌을 넣은 양말 등으로 상대방 집단을 습격하고 폭행하여 결국 소년들의 안전을 위해 실험자들이 개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생의 의미 799


예술의 기능이 베일에 싸인 이유 800

모든 대학에는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진이 있고, 그들은 수적으로나 대중의 눈으로나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수만 명의 학자와 수백만 장의 논문은 '왜 인간은 예술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거의 어떤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예술의 기능이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예술은 미적 심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지위 심리를 반영한다. 진화생물학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예술의 무용성이 경제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너무 잘 이해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면, 배를 채워 주거나 비를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값비싼 재료, 오랜 세월의 훈련, 불명료한 텍스트에 대한 능숙한 이해, 또는 엘리트 계층과의 친분을 요구하는 장식품과 묘기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가 무엇이겠는가?

소스타인 베블런과 쿠엔틴 벨은 취미와 유행에 대한 분석에서 소비, 여가, 위반을 통한 엘리트 계층의 광고물들이 하층 계급에 의해 모방되면 엘리트 계층은 모방하기 어려운 새 광고물을 찾아 나선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한편, 이 이론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기이한 특성들을 적절하게 설명했다. 연대기적 호칭인 동시에 비판적인 용어이기도 한 단어들(고딕,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세기에 호화로웠던 양식들이 다음 세기에는 낡은 것이 된다. 예술의 확고부동한 후원자들은 귀족과 귀족 계층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무익한 생활의 증거들 801∼802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문화의 욕심쟁이들이다. 오늘날 엘리트 계층의 모임에서, 개인의 건강이나 공공 정책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려면 과학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데도 당신이 시인을 위한 물리학 강좌나 지질학 개론을 간신히 통과했고, 그 후로는 과학이라는 것을 접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저 웃고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거나 모차르트를 들어 보려고 했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더 낫더라고 말하면, 그것은 당신이 옷소매로 코를 풀거나 당신의 세탁소에 어린아이들을 고용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예술, 지위, 미덕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7장에서 보았던 벨의 '의복 도덕성'과 일맥상통한다. 즉 사람들은 모든 비천한 필수품으로부터 해방된 존경스러울 정도로 무익한 생활의 증거들 속에서 품위를 발견하는 것이다.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 802∼803

마음속의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형태와 색과 소리와 농담과 이야기와 신화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가? 이 질문에는 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예술 전반에 대한 질문들은 답을 할 수가 없다. 예술 이론들은 자신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씨앗을 품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CD와 그림, 소설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예술가들이 출세를 하려면 낡은 것을 피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존의 지식(그리고 예술을 정의하려는 수십 년에 걸친 헛된 시도들)을 조롱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동역학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떤 논의도 생산적인 결론을 내지 못한다. 그런 논의에서는 '음악'의 정의에 무조의 재즈, 반음계의 곡들, 지적인 연습곡들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왜 음악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유머를 오스카 와일드의 교묘한 재치로 정의하기 때문에 음탕한 웃음과 가벼운 조롱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예술적 탁월성과 아방가르드는 세련된 취미를 위해 창조되고, 한 장르에 오랫동안 몰입하고 그 장르의 관습과 상투적 표현에 익숙해질 때 나온다. 그것들은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머리, 불가해한 암시, 특수한 감식안에 의존한다. 아무리 매혹적이고 훌륭해 보여도 그것들은 미적 심리를 밝혀 주기는커녕 오히려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즐거움 중추를 자극하는 방법들 804

마음의 어떤 부분들은 우리에게 즐거운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적응도의 증가를 기록한다. 또 어떤 부분들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목표들을 산출한다. 이것들을 결합하면 생물학적으로 무의미한 과제(즉 혹독한 세계로부터 진정한 적응도 향상을 얻어 내는 불편함을 겪지 않고 뇌의 즐거움 회로에 도달하여 순간적인 즐거움들을 얻어 내는 방법)에 도전하는 마음이 탄생한다. 쥐의 내측전뇌다발에 전극을 심고 그곳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레버를 쥐 가까이 두면 쥐는 음식, 물, 섹스의 기회를 마다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맹렬하게 그 레버를 누른다. 지금까지 인간의 즐거움 중추에 전극을 심는 신경외과 수술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수단들을 통해 즐거움 중추를 자극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분 전환용 약물인데, 이런 약물들은 즐거움 회로의 화학적 접점에 스며든다.


즐거움 테크놀로지 804∼805

즐거움 중추에 도달하는 또 다른 경로는 감각을 경유한다. 감각은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서 적응도를 높여 주었을 환경에 처하면 즐거움 회로들을 자극한다. 물론 적응도를 높이는 환경이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그런 환경은 감각들이 등록할 소리, 광경, 냄새, 맛, 감촉의 패턴들을 발산한다. 이제 지적 기능들이 그 즐거움 패턴들을 알아보고, 깨끗이 다듬고, 농축시킬 수 있다면, 뇌는 성가신 전극이나 약물 없이도 스스로를 자극할 것이다. 뇌는 보통 건강에 좋은 환경들로부터 발산되는 광경과 소리와 냄새의 충분한 분량을 인위적으로 생성할 것이다. 우리가 딸기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딸기치즈케이크를 위한 미각을 진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진화시킨 것은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한 맛으로부터 소량의 기쁨을, 견과류와 고기로부터 지방과 기름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을, 신선한 물로부터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회로들이다. 치즈케이크에는 자연계의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 감각적 충격이 압축되어 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즐거움 버튼을 누르려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합한 과다한 양의 유쾌한 자극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 테크놀로지다. 이 장에서 나는 예술도 그와 같은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종교와 철학 805

마음의 설계로부터 매력적이지만 생물학적으로 무익한 활동들이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지성은 자연적·사회적 대상들의 방어망을 깨기 위해 진화했다. 지성은 사물, 인공물, 생물, 동물,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추론하는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세계에는 그 외의 다른 문제들이 있다. 세계는 무엇으로부터 생겨났는가, 유형의 육체로부터 어떻게 무형의 마음이 나올 수 있는가,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가, 죽으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어떻게 되는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마음은 그런 의문들을 품을 수 있지만, 심지어 질문 자체에 답이 있는 경우에도 그런 답들을 구하는 장비를 구비하진 못한 것 같다. 마음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면 모든 진리에 접근하는 기적 같은 능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마음은 단지 우리 조상들의 세속석인 생존 과제들과 충분히 비슷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만을 가져야 한다. 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온 세상이 못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만일 어떤 생물종이 기계학, 생물학, 심리학의 기초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세상은 온통 기계가 되고 정글이 되고 사회가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와 철학은 어떤 면에서 마음의 도구들이 애초의 설계 목적에서 벗어나는 문제들에 적용된 결과라는 것이다.


음악은 순수한 즐거움 테크놀로지 810

음악은 순수한 즐거움 테크놀로지, 즉 우리가 대량의 즐거움 회로들을 일시에 자극하기 위해 귀로 섭취하는 기분 전환용 약물들의 칵테일일 것이다.


음악 언어 814

음계에는 또한 감정적 색채를 가미하는 음들이 포함될 수 있다, C장조에서 미가 반음 내려와 미플랫이 되고, 으뜸음인 도와 단3도 간격을 이루면 장3도와 비교하여 슬픔, 고통, 비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단7도 역시 '블루 노트'로, 부드러운 슬픔이나 애처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밖의 음정들은 냉철하고, 간절하고, 긴요하고, 위엄 있고, 불협화적이고, 당당하고, 무섭고, 결함이 있고, 단호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감정들을 발산한다. 이 감정들은 음들이 선율의 일부로서 연속해서 연주될 때에도 촉발된다. 한 음악 언어에 익숙해지려면 각 음정에 내포된 감정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정확히 보편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것은 또한 자의적이지도 않다. 4개월 된 어린 아기들조차도 단2도 같은 불협화음보다는 장3도 같은 협화음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한 정취를 배우기 위해, 기쁘거나 우울한 가사와 함께 화음을 듣거나 기쁘거나 우울한 기분에 맞춰 화음을 듣는 등의 파블로프식 조건화를 거칠 필요도 없다. 단지 충분한 시간에 걸쳐 특정한 음악 언어의 선율들을 들으면서 음정 간의 패턴과 대비를 습득하면, 그 속에 내포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허구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강화하기 위해 824∼825

텔레비전 방송국에는 악한 역을 맡은 배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시청자들의 우편물, 실연한 등장인물에게 충고를 하는 편지, 아기 출연자들에게 보내는 선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멕시코 영화 관객들은 스크린을 향해 총을 난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배우들은 팬들이 그들과 그들의 배역을 혼동한다고 불평한다. 《스타트렉》에 출현했던 레너드 니모이는《나는 스폭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썼다가 해명을 포기하고 《나는 스폭이다》라는 회고록을 썼다. 이 일화들은 종종 신문에 오르내리면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공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 준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정말로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강화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그 동기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기쁨과 교육 825

호라티우스는 문학의 목적은 "기쁨과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 썼고, 몇 세기 후에 존 드라이든도 연극을 "인간 본성의 정열과 유머를 표현하고 인간 본성을 지배하는 운명의 변화를 표현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그 목적은 인간의 기쁨과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즐거움 버튼을 누르는 무익한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기쁨과 인지적 적응의 산물인 교육을 구별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 = 왜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가? 825

착각이 효력을 발휘할 때,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왜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책이나 영화에 빠졌을 때 우리는 숨이 멎을 듯한 경치를 관람하고, 중요한 사람들과 허물없이 사귀고, 매혹적인 남녀들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고, 불가능한 목표를 성취하고, 사악한 적을 물리친다. 7달러 50센트치고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최루성 영화는 비극에 대한 승리감을 고취한다 826∼827

그렇다면 착각에 이끌려 슬픔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관객들을 위한 최루성 영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폴 로진은 최루성 영화를 흡연, 롤러코스터, 매운 고추, 사우나 같은 양성 마조히즘의 다른 예들과 한 부류로 묶는다. 양성 마조히즘은 한계를 시험하는 시험 비행사의 운항과 같다. 그것은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재난의 가장자리까지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가를 조금씩 시험함으로써 삶의 선택사양을 넓히려는 노력이다. 물론 만일 이 이론으로 불가해한 모든 행동들을 유창하게 설명하려 한다면 공허함에 빠질 것이고, 만일 그 이론으로 사람들은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고 예측하려 한다면 그 또한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은 좀 더 섬세하다. 양성 마조히스트들은 그들이 심각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을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를 제어하고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최루성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그런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과 무사히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주인공은 심장마비에 걸리거나 핫도그가 목에 걸려 죽는 것이 아니라 진행성 질병에 걸려 생을 마치기 때문에 우리는 다가올 비극에 대해 감정의 준비를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여주인공이 죽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전제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쾌한 세부 묘사는 안 봐도 그만이다. 그리고 관객은 주인공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노력에 공감하고, 주인공이 죽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확신을 느껴야 한다. 최루성 영화는 비극에 대한 승리감을 고취한다.


모임을 갖고 소문을 퍼트리는 이유 827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보여 주는 약점들을 추적하는 것도 즐거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른바 '가십'이 그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가십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사랑받는 오락이다. 누가 호의를 필요로 하고 누가 호의를 베풀 위치에 있는지, 누가 믿을 만하고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누가 솔로이고(혹은 곧 솔로가 되고) 누가 질투심 많은 배우자나 가족에게 사로잡혀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인생의 게임에서 명백한 전략상의 이익을 제공한다. 특히 그 정보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아서 마치 내부자 거래처럼 듣는 사람이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이용할 수 있을 때 전략상의 이익은 더욱 명백하다. 우리의 마음이 진화한 소규모 집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알았고 그래서 모든 가십이 유용했다. 오늘날 우리는 꾸며 낸 인물들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같은 종류의 가십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체스 게임보다 수가 많은 인생 831

인생의 수는 체스보다 훨씬 더 많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갈등을 겪고, 그래서 사람들의 수와 대응 수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상호작용으로 늘어난다. 가상의 딜레마에 빠진 죄수들처럼 파트너들은 현재의 수와 다음 수에서 협조를 할 수도 있고 변절을 할 수도 있다. 부모, 자식, 형제들은 유전자의 부분적 중복 때문에 공통의 이해와 대립적 이해를 모두 갖고 있으며, 한쪽이 상대방에게 행하는 어떤 행동이든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일 수 있고 또는 둘의 결합일 수도 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날 때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 상대방을 배우자로 보거나 하룻밤 상대로 보거나 무의미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배우자는 충실할 수도 있고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 친구는 미덥지 못한 친구일 수 있다. 동맹자는 공평하게 분담한 위험보다 적은 양만을 떠안거나, 운명의 화살이 그에게 향하는 순간 변절을 할 수가 있다. 낯선 사람은 경쟁자일 수도 있고 완전한 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 사기의 가능성이 더해지면 게임들은 더 높은 차원으로 확대되어, 모든 말과 행동이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자기기만일 수 있고, 자기기만일 때에는 진지한 말과 행동조차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여기에 역설적 전술과 대응 전술이 더해지면 게임들은 더욱 높은 차원으로 확대되어, 개인의 평범한 목표들-통제, 이성, 지식-은 본인에 의해 무효화되고 단지 그를 협박할 수 없는 사람, 믿을 가치가 있는 사람, 또는 도전하기에 너무 위험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이 된다.


예술의 기능 832

갈등에 빠진 사람들의 음모는 너무나 많은 측면들과 결합하면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마음의 눈으로 모든 행동의 결과를 펼쳐볼 수가 없다. 허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언젠가 직면할 수 있는 운명의 수수께끼들과, 그 속에서 전개할 수 있는 전략들의 결과를 요목별로 정리해 준다. 만일 나의 삼촌이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자리를 빼앗고 내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사양은 무엇인가? 만일 나의 불행한 형이 가족 내에서 전혀 대접받지 못한다면 형이 나를 배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까? 아내와 딸이 주말여행을 떠났을 때 어느 의뢰인이 나를 유혹했다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나의 지루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오늘 당장 내 땅을 빼앗으려는 악당들에게 무모한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내일 넘겨주겠다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들은 어느 서점이나 비디오가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진부한 표현은 사실이다. 예술의 기능은 인생이 그것을 모방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위엄의 격하 839

위엄의 격하는 또한 성적이고 외설적인 유머의 보편적인 매력을 뒷받침하는 기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위트는 알공킨 원탁모임보다는《애니멀 하우스》에 더 가깝다. 샤농은 야노마뫼족의 가계조사를 시작할 때, 저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터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농은 피조사자들에게 저명한 개인의 이름과 그 친척들의 이름을 귀에다 속삭이라고 요청했고, 그 때문에 어색한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 후에야 이름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샤농을 노려보고 구경꾼들이 킥킥대고 웃으면 샤농은 안심하고 그의 진짜 이름을 기록했다. 몇 달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계를 정리한 후 이웃 부락을 방문하던 중에 샤농은 자랑삼아 그곳 추장 부인의 이름을 불쑥 꺼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온 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에 빠졌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비사시테리의 추장이 "털 많은 성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나는 추장을 '기다란 음경'으로, 그의 형제를 '독수리 똥'으로, 그의 한 아들을 '병신 같은 놈'으로, 그의 딸을 '방귀 냄새'로 부르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계조사를 한 결과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관자놀이에 피가 솟구쳤다.


관계의 기초 847

우위와 지위의 논리는 암묵적인 위협과 뇌물에 기초하고, 윗사람이 그것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우정의 논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돕겠다는 약속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지위와 우위를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친구를 원한다. 지위와 우위는 시들 수 있지만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양립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신호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이든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거나, 영리하거나, 부유하거나, 잘생겼거나, 인맥이 좋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항상 지배-복종, 또는 유명인-팬의 계기들이 존재하지만, 친구 사이라면 어느 쪽도 관계가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친구 위에 군림할 수 있거나 친구가 당신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속성들을 나쁘게 말한다면, 적어도 당신에게는 관계의 기초가 지위나 우위가 아니라는 점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셈이 된다. 만일 그 신호가 무의식적이고 그래서 조작하기 힘든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만일 이 이론이 옳다면 그것은 성인의 웃음과, 모의 공격 및 간지럼에 대한 아이들과 침팬지의 반응 간의 상동성을 설명해 준다. 웃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해치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우리 둘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중이야.' 위의 이론은 또한 왜 농담이 두 사람의 관계를 평가하는 정밀기계인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윗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놀리지 않는다. 물론 한 사람이 시험적으로 재치 있는 농담을 날리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우정이 싹틀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놀림이 달갑지 않은 웃음이나 냉랭한 침묵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친구 간에도 한쪽이 우위를 점하게 만드는 유혹들이 상존하지만, 좋은 친구들이 끊임없이 킥킥거리는 것은 관계의 기초가 여전히 우정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행위다.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일까? 848∼849

"모든 어리석음 중에 가장 흔한 것이 명백한 거짓을 열정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주업이다"라고 H.L. 멩켄은 썼다. 모든 문화에서 사람들은 영혼은 죽지 않고, 질병과 불행은 혼령, 유령, 성인, 요정, 천사, 악마, 신령, 악령, 신이 주거나 가져간다고 믿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의 25퍼센트가 마녀를 믿고, 거의 절반이 유령을 믿고, 절반이 악마를 믿고, 절반이 창세기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고, 69퍼센트가 천사를 믿고, 87퍼센트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믿고, 96퍼센트가 신이나 만유의 영을 믿는다고 한다. 종교는 어떻게 명백한 거짓을 거부하도록 설계되었을 것만 같은 인간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비로운 목자, 우주의 설계, 사후 세계 등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다는 일반적인 설명은 불만족스럽다. 그래 봤자, "왜 인간의 마음은 명백한 거짓으로 보이는 믿음에서 위안을 찾도록 진화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얼어붙고 있는 사람은 자기 몸이 따뜻하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사자와 마주친 사람은 그것을 토끼라고 믿음으로써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기도하다' 850

이제 종교의 심리학을 구성하는 정말로 특별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자.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모든 문화의 종교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최초로 지적했다. 즉, 종교는 성공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기도하다'를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단 한 명의 기원자를 위해 세계의 법칙들을 폐기시켜 달라고 요청함'으로 정의했다.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병의 쾌유를 위해, 사랑이나 전쟁에서의 성공을 위해, 좋은 날씨를 위해 신들과 혼령들에게 기도한다. 종교는 판돈이 크고 성공의 인과관계에 유효한 일반적인 기술(의료, 전략, 구애, 그러나 날씨의 경우는 속수무책이다)이 소진되었을 때 사람들이 의존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호모사피엔스의 마음 859

철학적 문제들이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신성하거나 환원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거나 현실적인 과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마음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인지적 장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유기체이고, 우리의 마음은 진리로 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관이다. 우리의 마음은 조상들의 생사를 좌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지, 정확함을 벗삼기 위해서나 온갖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기 기억에 1만 단어를 담지 못한다. 인간은 자외선을 보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물체를 4차원으로 회전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나 감각력 같은 수수께끼도 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인지 기능의 수가 우리보다 적은 생물체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개에게는 우리의 언어가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로 들리고, 쥐는 먹이 가지의 개수가 소수인 미로를 학습하지 못하고, 자폐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들은 섹스 때문에 왜 그런 법석을 피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신경계 환자들은 얼굴의 모든 부분을 알아보면서 정작 누구의 얼굴인지는 식별하지 못하고, 입체맹시인 사람들은 입체그림을 기하학상의 문제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깊이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3차원 영상을 기적이라 부르거나, 그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므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을 일종의 속임수로 치부해 버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지 기능이 우리보다 '더 많은' 생물체나, 인지 기능이 우리와 '다른' 생물체는 없을까? 그런 생물체가 있다면 그들은 자유의지와 의식이 어떻게 뇌로부터 생겨나는지, 의미와 도덕성이 어떻게 객관세계와 맞아떨어지는지를 쉽게 알아낼 것이고, 그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시도하는 종교적·철학적 물구나무서기를 보고 재미있어 할 것이다. 그들이라면 우리에게 답을 설명해 줄 수 있겠지만, 막상 우리는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계의 훌륭한 고안품 862

수학에서 정수는 덧셈에 대해 닫혀 있다고 말한다. 두 정수를 더하면 정수가 나오고, 절대로 분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수의 집합이 유한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생각은 우리의 인지 기능에 대해 닫혀 있기 때문에, 철학의 수수께끼들에 대한 정답을 알아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도달 가능한 생각의 집합은 무한할 수 있다.

인지적 닫힘은 비관적인 결론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것이 아주 고무적이며, 마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거둔 대단한 진보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이 책의 목표, 즉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 자신의 마음 밖으로 걸아 나와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유일한 존재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계의 훌륭한 고안품으로 보게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첫째, 마음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기관들의 체계라면, 왜 우리는 마음이 모든 신비를 이해하고 모든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학적 문제들이 식량수집 조상들의 문제에 대해 구조상 충분히 닫혀 있어서 우리가 이 정도의 진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마음을 자연의 산물로 바라보는 과학적 세계관을 문제시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힘 863

어떤 문제들이 왜 우리의 이해력을 벗어나는지를 얼핏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한결 다행스런 일이다. 이 책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는, 마음의 복잡한 생각들은 좀 더 간단한 생각들의 조합물이고,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 및 부분과 전체를 연결하는 관계(전체의 부분, 범주 속의 사례, 한 장소에 존재하는 사물, 힘을 가하는 행위자, 결과의 원인, 믿음을 품는 마음)의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이 논리적이고 법칙적인 관계들은 일상적 언어를 구성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공하고, 유추와 은유를 통해 과학과 수학의 내밀한 내용에 자신의 구조를 빌려 주면 과학과 수학에서는 그것들을 결합하여 점점 더 큰 이론적 구조물들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물질을 분자·원자·쿼크로 이해하고, 생명을 DNA·유전자·계통나무로 이해하며, 변화를 위치·운동량·힘으로 이해하고 수학을 기호와 연산으로 이해한다. 이 모두가 법칙에 따라 구성된 요소들의 결합물이고, 그래서 전체의 특성은 부분들의 특성과 그 결합 방식으로부터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865

'나'는 신체 부위들이나 뇌 상태들이나 정보 단위들의 조합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자아의 통합체이며 구체적인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 단일한 궤적이다. 자유의지는 사건들과 상태들의 인과적 연쇄가 아닌 것이 자명하다. 의미의 조합적 측면(말이나 생각이 어떻게 결합하여 문장이나 명제의 의미가 되는가)은 밝혀졌지만 의미의 핵심, 즉 어떤 것을 지시하는 단순한 행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지시된 대상과 지시하는 개인 간의 어떤 인과관계와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식 역시 인식자가 한 번도 부딪혀 본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모순을 던져 준다. 우리가 의식, 자아, 의지, 지식의 수수께끼들에 속수무책인 것은 그 문제들의 본질과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갖춰 준 계산 장치들 간의 불일치 때문일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우리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괴롭힘을 선사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정하기 힘든 존재인 우리의 의식은 영원히 우리의 개념적 이해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그것은 기대할 만하고 심지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연계는 생물체들과 그 부분들의 특화된 설계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독수리가 땅 위에서 어색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을 놀리지 않고, 눈이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하나의 설계는 다른 과제들과 타협할 때에만 자신의 과제를 탁월하게 해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불가사의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좌절감은 인간의 마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즉 단어와 문장, 이론과 방정식, 시와 선율, 농담과 이야기의 세계를 열었던 조합적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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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24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랩 글귀를 보다보니, 얼마 전에 읽은 <집단 정신의 진화>라는 책이 떠올려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의 글귀를 열심히 읽어보는 중입니다.
가끔 우리는 사물이나 세상을 너무 조각내어 다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자연의 일부인데 말이죠. 동양의 사상처럼, 인디언의 종교처럼 자연스러운 합치가 가장 좋겠지만, 참 어려워요.
제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종종 모르겠다고 느낀답니다. ^^

oren 2010-09-24 13:42   좋아요 0 | URL
마고님의 댓글 끝부분을 보니, 문득 yamoo님이 소개해주셨던 '악마의 사전'이 생각납니다.
스티븐 핑커의 또 다른 책《빈 서판》에 나오는 내용인데 옮겨봅니다.
이 대목이 나오는 책의 여백에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적어놨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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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수께끼들 422

우리의 조합적 지능으로 최선을 다해 분석해 봐도 그 이상한 실체들을 낚아 올릴 만한 낚싯바늘을 얻어낼 수가 없어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비주의로 빠지게 된다. 좋건 궂건 우리의 세계는 항상 약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 후손들은 끝없이 종교와 철학의 오래된 수수께끼들을 숙고할 것인데, 그 수수께끼들은 결국 물질과 마음의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 앰브로즈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서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음 [명] 뇌에서 분비되는 신비한 물질 형태. 주요 작용은 자신의 본질을 확인하려는 노력에 있으나, 그 시도가 무익한 것은 자신의 본질을 알기 위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마녀고양이 2010-09-26 16:10   좋아요 0 | URL
어머! 전 야무님의 리뷰를 헛읽었나봐요!
<악마의 사전>이 앰브로즈 비어스의 저서군요... ^^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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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핑커
<빈 서판>,<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언어본능>,<사이언스 북>



















스티븐 핑커의 이 두툼한 책(962쪽)에 담겨진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말했다.

리뷰를 쓰기엔 너무 벅찬 일인 것 같아 포토리뷰의 형식을 빌어,
일부러 찍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밑줄친 스티븐 핑커의 '생각들'을 뽑아서,
임의대로 붙인 소제목과 해당 쪽수를 덧붙여 정리하여 옮겨 놓는다.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임의로 ① ② ③ ④로 나누어 정리)



(이미지를 크게 볼려면 사진 위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 쿨리지 효과 (723쪽)


(이미지를 크게 볼려면 사진 위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 짝이 가져야할 자질들 (740쪽)


(이미지를 크게 볼려면 사진 위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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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진실 702

형제자매와의 섹스에 대한 강한 반감은 인간뿐만 아니라 장수하고 이동하는 대부분의 척추동물에게서 확실하게 발견되기 때문에 적응특성의 좋은 후보자라 할 수 있다. 그 기능은 근친교배의 비용-자손의 유전적 적응도가 감소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근친상간은 "피를 탁하게 한다'는 민간 속설과, 고립된 산골과 왕가의 심신장애자들이 자주 태어나는 현상 뒤에는 일말의 생물학적 진실이 숨어 있다. 유전자 풀에는 해로운 돌연변이들이 꾸준히 유입된다. 어떤 것들은 우성이 되어 주인을 불구로 만들고는 곧 도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열성이어서 개체군에 누적되기 전까지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가까운 친족들은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서로 짝을 맺으면 해로운 열성 유전자의 두 사본이 결합하여 자손에게 갈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우리 모두는 치명적인 열성 유전자를 한두 개쯤 갖고 있기 때문에 남매가 짝을 맺으면 이론상으로나 위험도를 측정한 연구에서나 손상 자식이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것은 모자간, 그리고 부녀간 교배(그리고 정도는 약하지만 더 먼 친족들 간의 교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간(그리고 다른 많은 동물들)은 가족 구성원과의 섹스에 대한 생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을 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 707

19세기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웨스터마크는 유년에 한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서 성장하면 뇌는 그 사람을 '형제' 범주에 넣는다고 추측했다. 웨스터마크 효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근친상간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설명해 준다.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는 자신이 아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아들을 낳자 라이오스는 아기의 발목에 쇠못을 박아서 산중에 내다 버린다. 오이디푸스는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길러진 다음 코린트의 왕에게 입양되어 왕자가 된다. 델포이를 방문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임을 알게 되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코린트를 떠난다. 테베로 가는 길에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만나 사소한 말다툼 끝에 그를 죽인다. 그런 다음 그는 수수께끼를 풀고 스핑크스를 죽인 후 그에 대한 상으로 테베의 왕위와 홀로된 왕비를 얻는다. 그녀는 오이디푸스가 성장하는 동안 그와 떨어져 지낸 생물학적 어머니, 이오카스테였다. 두 사람은 네 자녀를 둔 다음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다.



또 다른 티켓 709

양성 간의 전투는 단지 비친족 개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전초전일 뿐만 아니라 그와는 다른 무대에서 펼쳐지는 싸움이다. 그 기초에는 도널드 시먼스가 최초로 설명한 이유들이 있다. "인간의 성에는 여성적인 본성과 남성적인 본성이 있으며, 두 본성은 서로 다르다. ‥‥‥ 남자와 여자의 성적 본성이 다른 이유는 인류의 진화사 중 대단히 길었던 수렵채집 기간 내내 양성에게 적응력을 주는 성적 욕구와 성벽이 무의식적인 번식에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성이란 710

체스터필드 경은 성에 대해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자세는 우스꽝스럽고, 비용은 지독하다"고 말했다.


유성생식의 이유 711

유기체가 무성생식을 한다면, 일단 신체의 금고를 따는 데 성공한 미생물들은 유기체의 자식들과 형제들의 금고도 쉽게 딸 것이다. 유성생식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금고의 열쇠를 바꾸는 방법이다. 유전자의 절반을 다른 유전자로 교체함으로써 유기체는 자식들에게 현지 미생물들과의 경쟁에 유리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자식들의 분자 자물쇠는 새로운 조합을 갖게 되고, 그래서 미생물들은 새 열쇠를 처음부터 진화시켜야 한다. 심술궂은 미생물은 변화를 위한 변화에 상을 주는 미생물이다.


자식에 대한 기초 투자액의 차이 712

트리버스는 암수 간의 모든 현저한 차이들이 자식에 대한 기초 투자액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투자란 부모가 미래의 번식 능력을 감소시키는 대가로 현재 자식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모든 것이다. 투자는 에너지, 영양분, 시간, 또는 위험일 수 있다. 정의상 암컷은 초기 투자액이 더 많으며(더 큰 성세포),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생물종은 암컷이 훨씬 더 많이 헌신한다. 수컷은 보잘것없는 유전자 꾸러미만 던져 놓고 대개 등을 돌린다. 모든 자식은 암수의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암컷의 헌신은 자신이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에 대해 제한적이다. 암컷은 기껏해야 난자당 한 자식만을 생산하고 양육한다. 이 차이로부터 2개의 결과가 단계적으로 파생한다.

첫째, 하나의 수컷은 여러 암컷을 수정시킬 수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수컷들을 총각으로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컷들 사이에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한 경쟁이 형성된다. 한 수컷은 다른 수컷들을 공격해 암컷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거나, 짝짓기에 필요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거나, 암컷의 환심을 사서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수컷들의 성공 방법은 다양하다. 승자는 많은 자식을 낳고 패자는 하나도 낳지 못한다.

둘째, 수컷의 번식 성공은 얼마나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암컷의 번식 성공은 얼마나 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하느냐와 무관하다. 이것은 암컷을 더 차별적이고 까다롭게 만든다. 수컷은 암컷들에게 구애를 하고 허락이 떨어지면 어느 암컷과도 짝을 짓는다. 암컷은 수컷들을 면밀히 조사한 다음 최고의 수컷, 즉 최고의 유전자를 갖고 있거나, 자식을 먹이고 보호할 의지와 능력이 가장 강하거나, 다른 암컷들이 좋아할 만한 수컷하고만 짝을 짓는다.


투자의 차이가 성차이의 원인 713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은 동물계 전체에 보편적이다. 다윈은 이 두 장관을 지적하고 성선택이란 명칭을 붙였지만, 왜 경쟁이 수컷의 몫이고 선택이 암컷의 몫인지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워했다.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부모 투자 이론이다. 많이 투자하는 성이 선택을 하고 적게 투자하는 성이 경쟁을 한다. 결국 투자의 차이가 성차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모든 것-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음경, 질, Y염색체, X염색체-은 부차적이다. 수컷들이 경쟁을 하고 암컷들이 선택을 하는 것은, 암컷임을 규정하는 난자에 아주 조금 더 투자한 분량이 그 동물의 나머지 번식 습관들과 곱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동물종은 난자와 정자의 초기 투자분의 차이가 역전되어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암컷들이 경쟁을 하고 수컷들이 선택을 한다. 물론 이런 예외들도 투자 이론의 법칙을 입증한다. 몇몇 물고기들은 수컷이 육아낭 속에 새끼를 품는다. 몇몇 새들도 수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먹인다. 그런 종들의 경우에는 암컷이 공격적이고 수컷에게 구애를 하며, 수컷이 파트너를 신중하게 고른다.


고환의 크기 715

정자는 질 속에서 며칠 동안 생존할 수 있으므로, 난잡한 암컷은 몸 속에서 난자를 수정시킬 기회를 노리며 경쟁하는 여러 수컷의 정자들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수컷이 생산한 정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정자가 1등으로 골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왜 침팬지들이 신체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큰 고환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고환이 크면 정자를 많이 생산하고, 정자가 많으면 암컷의 몸속에서 수정할 확률이 높아진다. 고릴라는 체격이 침팬지보다 네 배나 크지만 거꾸로 고환은 네 배나 작다. 그의 암컷들은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의 정자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일부일처인 긴팔원숭이 역시 고환이 작다.


결혼이란 관습 719

호모사피엔스는 어떤 종류의 동물인가? 우선 포유동물이므로 여자의 최소 투자분이 남자의 최소 투자보다 훨씬 많다. 여자는 아홉 달의 임신과 (자연 환경에서)2∼4년의 수유를 투자한다. 남자는 몇 분의 섹스와 소량의 정액을 투자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약 1.15배 크다. 이것은 남자들이 진화 과정에서 몇 명의 남자는 몇 명의 여자와 짝을 짓고 몇 명의 남자는 아무와도 짝을 짓지 못하는 식으로 경쟁을 벌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단독생활을 하고, 일부일처제이고, 비교적 섹스가 적은 긴팔원숭이와는 달리 인간은 다수의 남녀가 큰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끊임없이 짝짓기를 할 기회를 만난다. 남자는 신체 대비 고환의 크기가 침팬지보다는 작지만 고릴라와 긴팔원숭이보다는 크다. 그것은 조상의 여성들이 터무니없이 난잡하진 않았지만 항상 일부일처로 지낸 것도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무력하게 태어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어른에게 의존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활방식에 지식과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데, 남자들은 사냥으로부터 고기를 얻고 그 밖의 자원들을 얻기 때문에 투자 여력을 갖고 있다. 남자들은 신체 구조가 허락하는 최소 투자분을 훨씬 초과하여 자식들을 먹이고, 보호하고, 가르친다. 이 때문에 남자에겐 배우자의 서방질이 관심사가 되고 여자에겐 남자의 투자 의지와 능력이 관심사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침팬지들처럼 큰 집단을 이루고 살지만 새들처럼 남자도 자식에게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번식을 위한 동맹을 맺고 제3자의 성적 접근과 투자를 제한하는 결혼이란 관습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진화사 중 99퍼센트의 기간 동안 720

최근까지도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을 했다. 여자는 사춘기를 넘긴 직후에 결혼했다. 피임이나 비친족의 제도적 입양, 인공수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섹스는 번식을, 번식은 섹스를 의미했다. 농사와 목축으로부터 얻는 식량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분유나 이유식도 없었다. 아기들은 어머니나 그 밖의 여자들에게 매달려 지냈다. 이 조건들은 인간의 진화사 중 99퍼센트의 기간 동안 지속되면서 우리의 성성을 형성해 왔다. 우리의 성적 사고와 감정은 현대인이 아기를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섹스가 아기로 이어지는 세게에 적응해 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한다', '최고', '최적'과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말들은 그 세계에서 번식 성공을 이끌어 냈을 전략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거나, 현대세계에서 통용되거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쿨리지 효과, 매번 같은 암탉 723

새 파트너를 만나면 남성의 성적 욕구가 깨어나는 현상은 유명한 일화 덕분에 쿨리지 효과라고 불린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와 그의 아내가 한 농장을 방문하던 중 따로 시찰을 하게 되었다. 닭장을 둘러보던 쿨리지 여사는 수탉이 하루에 몇 번이나 암탉과 관계를 하는지 물었다. "몇 십 번 합니다"라고 안내원이 대답했다. 이번엔 대통령이 닭장을 보고 수탉에 관해 물었다. "매번 같은 암탉과 합니까?" "아닙니다. 각하. 매번 다른 암탉과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영부인에게도 그 말을 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많은 수컷 포유동물들이 교미를 할 때마다 암컷이 바뀌면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한다. 실험자가 이전 파트너에게 가면을 씌우거나 냄새를 없애도 속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이것은 수컷의 욕망이 '무차별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수컷들은 어떤 부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가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어느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가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이것은 내가 2장에서 관념연합론을 비판할 때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개인과 범주 간의 논리적 구별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다.

남자들은 수탉 같은 정력을 갖고 있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의 욕망에서도 쿨리지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문화를 포함하여 많은 문화에서 남자들은 아내에 대한 성적 열망이 결혼 후 몇 년 내에 시든다고 보고한다. 남성의 성욕 감퇴를 촉발하는 것은 아내의 외모나 그 밖의 특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개념이다. 새 파트너에 구미가 당기는 것은, 딸기에 질리면 초콜릿 케이크에 끌리는 경우처럼 다양성이 인생의 양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예가 아니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소설〈불운한 녀석 먼저〉에서, 첼름이라는 가상의 마을 출신인 한 숙맥이 여행을 떠나지만 길을 잘못 들어 뜻하지 않게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고향 마을과 똑같이 생긴 다른 마을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겹기만 했던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나 매력을 느끼고 황홀해한다.


쉽게 흥분하는 능력 724∼725

수컷의 성적 욕구에 숨겨진 또 다른 부분은 잠재적인 성적 파트너를 보면 쉽게 흥분하는 능력이다. 사실, 성적 파트너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즉시 흥분을 한다. 동물학자들은 많은 종의 수컷들이 암컷과 막연하게 닮은 다양한 물체들-다른 수컷, 다른 종의 암컷, 같은 종이지만 박제가 되어 받침대 위에 고정된 암컷, 박제된 암컷의 일부분(예컨데, 허공에 매달린 머리), 심지어 눈이나 입처럼 중요한 특징이 제거된 박제 암컷의 일부분-에게 구애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견했다. 인간 남성은 여성의 나체를 실물뿐만 아니라 영화, 사진, 그림, 엽서, 인형, 비트맵 방식의 음극선관 영상으로 볼 때에도 흥분을 한다. 남자들은 이 모조품들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면서 미국에서만 연간 100억 달러의 총수익을 올리는 포르노 산업을 먹여 살린다. 이것은 관중 스포츠와 영화 산업이 수익을 합한 액수다. 식량수집 문화에서 젊은 남자들은 여성의 젖가슴과 음부를 돌출된 바위에 숯으로 그리고, 나무 몸통에 칼로 새기고,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그린다. 포르노는 세계적으로 비슷하고 1세기 전과도 아주 비슷하다. 포르노는 일시적이고 몰개성적인 섹스를 갈망하는 익명의 나체 여성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 726

성적 다양성에 대한 욕구는 만족을 모른다는 점에서 특이한 적응특성이다. 대부분의 적응 품목들은 효용 체감이나 최적 수준을 보인다. 사람들은 공기, 음식, 물을 대량으로 구하지 않고, 날씨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고 적당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자는 많은 수의 여자와 섹스를 할수록 많은 자식을 남긴다.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 이 때문에 남자들은 일시적인 파트너에 대해(그리고 조상의 환경에서 파트너의 수를 늘리게 해주었던 품목들, 예컨대 권력과 부에 대해) 무한한 욕구를 갖는다. 일상생활에서 남자들은 욕망의 바닥을 확인해 볼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지만, 극소수의 남자들은 가끔씩 부, 인기, 외모, 무도덕을 이용해 그럴 기회를 시험해 본다. 조르주 시므농과 휴 헤프너는 수천 명의 파트너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윌트 체임벌린은 2만 명의 여자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허풍을 관대하게 받아들여, 체임벌린이 실제 추정치를 10배 부풀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1999명의 섹스 파트너로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리뷰어의 생각)
타이거 우즈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말없이 떠나 주니까 729

아무리 매력적인 남자라도 매춘부처럼 돈을 받고 몸을 팔진 않는다. 오히려 돈을 주고 매춘부를 사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인 미남 배우라고 알려져 있는 휴 그랜트는 1995년에 자신의 승용차 앞좌석에서 매춘부와 오럴섹스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여기에 단순한 경제학적 분석이 통하지 않는 것은, 돈과 섹스가 완벽하게 대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뒤에서 보겠지만 남자의 매력 중 일부분은 그 남자의 부에서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매력적인 남자들은 돈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바라는 '대가'는 돈이 아니라 장기적인 헌신인데, 그것이야말로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에게는 희소한 자원이다. 휴 그랜트 사건의 경제학은 할리우드의 마담뚜, 하이디 플라이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속의 거래에 잘 요약되어 있다. 한 콜걸이 친구에게, 잘생긴 손님들이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친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손님들은 섹스 때문에 돈을 주는 게 아니야. 섹스한 후에 말없이 떠나 주니까 돈을 주는 거지."


다수의 아내 731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단기적인 간통을 하는 남자는 자신의 아이가 알아서 생존해 줄 가능성에 운을 걸거나, 상대방 남편이 그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워 줄 것을 기대하는 셈이다. 능력이 있는 남자의 경우 자손을 최대로 늘릴 수 있는 더 확실한 방법은, 여러 명의 아내를 구하고 모든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남자들은 다수의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다수의 아내를 원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문화들 중 80퍼센트 이상에서 권력자들은 일부다처를 허용해 왔다.


막역한 친구와 성적 파트너 731

일부다처가 허용되면 남자들은 새 아내와 아내를 구할 수단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부유하고 존경받는 남자들은 1명 이상의 아내를 얻고, 변변치 못한 남자들은 1명도 얻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결혼을 한 남자는 더 어린 아내를 얻는다. 손위 아내는 남편의 막역한 친구이자 파트너로 남고 가사를 주관한다. 손아래 아내는 남편의 성적 파트너가 된다.


남성의 마지막 판타지 732

식량수집 사회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소수의 흉포한 남자들, 능숙한 지도자들, 훌륭한 사냥꾼들은 2∼10명의 아내를 거느린다. 농업과 대규모 불평등의 출현으로 일부다처제는 우스운 지경으로까지 이르곤 한다. 로라 베치히는 문명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독재자들이 남성의 마지막 판타지를 실현했다고 기록했다. 혼기에 찬 수백 명의 후궁들을 거느리면서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종종 환관들에 의해) 경호한 것이다. 인도, 중국, 이슬람 세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에서 이런 제도가 출현했다. 솔로몬 왕은 1000명의 첩을 거느렸다. 로마 황제들은 후궁을 노예로 취급했고, 중세 유럽의 왕들은 하녀로 취급했다.


첫째 아내 vs 셋째 아내 733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더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여자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화상의 이유로 여자는 빈민의 조강지처가 되기보다는 부유한 남편을 공유하는 편이 나을 수 있고, 심지어 감정적 이유에서도 후자를 더 선호할 수 있다. 로라 베치히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시골뜨기 촌닭의 첫째 아내가 되는 것이 나을까, 존 F. 케네디의 셋째 아내가 되는 것이 나을까?


불평등과 일부다처 735

오늘날에도 불평등은 일부다처의 번성을 허락한다. 부유한 남자들은 아내와 첩을 동시에 부양하거나, 20년 간격으로 아내와 이혼을 하고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를 대고 젊은 여자와 결혼을 한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라이트는 공공연한 일부다처처럼 쉬운 이혼과 재혼도 폭력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한다. 부유한 남자들이 출산 연령대의 여자들을 독점하여 하층 계급의 남자들에게 돌아갈 아내감이 부족해지면, 최하층의 젊은 남자들은 무모한 수단에 의존한다.


간통 파트너와 결혼 파트너 735

이 모든 이야기는 단 하나의 성차이, 즉 남자들이 다수의 파트너를 더 많이 원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남자라고 해서 완전히 무차별적인 것은 아니고, 제아무리 독재적인 사회라도 여성의 발언권을 완전히 억압하지는 못한다. 양성은 각자 간통 파트너와 결혼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을 갖고 있다. 인간의 다른 견고한 취향들처럼 그 기준들도 적응특성일 것이다.

양성은 모두 배우자를 원하고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간통을 더 많이 원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이 간통을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일 여자들이 간통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여자를 희롱하는 남성 충동은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고(혼인을 빙자하는 경우에는 보상을 받겠지만, 그렇다 해도 결혼한 여자는 남자를 희롱하거나 희롱의 목표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진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의 정액은 수적으로 불리해질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므로, 고환은 고릴라의 신체 대비 크기보다 더 크게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를 향한 질투 감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남편들의 질투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민족지학의 기록을 보면 모든 사회에서 양성 모두 간통을 저지르고, 그때마다 여자들이 항상 비소를 먹거나 상트페테르부르크 5시 2분발 열차에 몸을 던지지도 않는다.


선물 공세가 중요한 기준 736∼737

인간 조상의 여자들은 은밀한 욕구의 진화를 허용했던 성관계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첫 번째 보상은 자원이다. 남자들이 섹스를 위한 섹스를 원한다면 여자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얻어 낼 수 있다. 식량수집 사회에서 여자들은 연인들에게 선물-주로 고기-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당신은 우리의 먼 어머니들이 스테이크 식사에 몸을 팔았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양질의 단백질이 부족한 식량수집 사회에서 고기는 대단히 중요한 물품이다. 멀리서 보면 매춘 같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일상적인 에티켓에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양쪽 다 응분의 보상 같은 것을 부인한다 해도 부유한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외식을 가지 않거나 돈을 쓰지 않는다면 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설문지에서 여자 대학생들은 비록 남편을 고를 때는 아니지만 단기적인 애인을 고를 때 사치스런 생활방식과 선물 공세를 중요한 기준으로 꼽는다고 보고한다.


간통의 심리 737

여자들은 남편보다 애인을 고를 때 외모와 힘을 더 중시한다고 보고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외모는 유전자의 품질을 보여 주는 지표다. 그리고 여자들은 불륜 관계를 맺을 때 일반적으로 남편보다 지위가 높은 남자를 고르는데, 지위를 뒷받침해 주는 자질들은 거의 틀림없이 유전이 되는 것들이다.(명망 있는 애인에 대한 안목은 첫 번째 동기인 자원 얻어내기에도 도움이 된다.) 우수한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여자는 또한 결혼 시장에서의 거래 능력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이것은 차후에 직면할 그런 거래의 전주곡이 되거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입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이먼은 성관계와 관련된 성차이에 대해, 여자는 남자가 어떤 면에서 우수하거나 남편을 보완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관계를 하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간통을 한다고 요약한다.


손쉬운 사냥감 738

남자들은 여성을 양분하여 손쉬운 사냥감이 될 수 있는 헤픈 여자와 잠재적 아내가 될 수 있는 수줍은 여자로 나누는 악명 높은 마돈나-창녀 이분법을 보여 준다. 이 사고방식은 종종 여성 혐오라는 증상으로 불리지만, 실은 자식에게 투자하는 모든 종의 수컷에게서 볼 수 있는 최적의 유전적 전략이다. 요약하자면 자신은 어떤 암컷과도 찍짓기를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는 다른 어떤 수컷과도 짝짓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남편의 조건 738∼739

식량수집 사회에서 여자가 임신을 하고 젖을 먹이고 양육을 하면, 그녀와 자식들은 위험, 단백질 결핍, 약탈, 강간, 납치, 살해에 쉽게 노출된다. 자식들의 아버지는 급식과 보호에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의 관점에서 그는 그것만 잘하면 되지만, 그의 관점에서 보면 그에겐 다른 일이 있다. 다른 여자들을 얻기 위해 구애하고 경쟁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식에게 투자하는 능력과 의지의 정도가 다양하므로 여자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여자는 부와 지위에 감동하거나, 남자가 그런 것을 갖기에 너무 젊을 경우에는 야심이나 부지런함처럼 그런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잠재 요인들을 보고 감동해야 한다.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 남자가 옆에 붙어 있지 않으면 이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진심이든 아니든 여자 옆에 붙어 있겠다고 말하는 것에 이해가 걸려 있다. 셰익스피어는 "남자가 맹세하면 여자는 배신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안정과 진실성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 남편에게는 보디가드로서의 소질도 있어야 한다.


아내의 조건 739

남자들은 아내의 조건으로 무엇을 찾을까? 아내로서 정절(남편의 부성을 이끌어 낸다)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 여자는 가능한 한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항상 그렇듯이, 이것도 우리의 취향이 어떻게 설계되었는가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남자가 말 그대로 수많은 아기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생식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건강하고 사춘기를 넘겼지만 폐경기에 도달하진 않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생식 능력은 평생에 걸친 결혼보다는 하룻밤의 관계에 더 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남편이 장기간에 걸쳐 기대할 수 있는 자식의 수다. 여자는 몇 년마다 한 명씩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고 자식을 양육할 수 있는 기간도 한정되어 있으므로, 신부가 어리면 어릴수록 가족의 미래 규모는 더욱 커진다. 10대를 벗어나지 못한 너무 어린 신부라면 20대 초반의 여자보다 생식 능력이 떨어지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위의 기준이 적용된다. 남자는 쓰레기라는 이론과는 정반대로 결혼 적령기의 여성을 보는 눈은 하룻밤의 관계가 아니라 결혼과 부권을 위해 진화한 것 같다. 아버지의 역할이 교미에서 끝나는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주름이 많고 축 처진 암컷들 중 일부가 가장 섹시한 암컷으로 통한다.


짝이 가져야할 자질들 739∼740

버스는 짝이 가져야 할 18개 자질들의 중요성을 묻는 설문지를 고안하여, 6개 대륙과 5개 섬에 거주하는 37개 나라-일부일처와 일부다처, 전통적 성향과 자유주의적 성향,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1만 명을 조사했다. 지역과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지능과 친절함, 이해심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겼다. 그러나 다른 자질들에 대해서는 모든 나라의 남녀가 다르게 평가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돈 버는 능력을 더 중시했다. 편차의 크기는 3분의 1 이상부터 1.5배 이상까지 다양했지만, 남녀 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사실상 모든 나라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지위와 야망, 근면함을 더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신뢰성과 안정성을 더 높이 평가했다. 모든 나라에서 남자들은 젊음과 외모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평균적으로 남자들은 자기보다 2.66세 어린 신부를 원했고, 여자들은 자기보다 3.42세 많은 신랑을 원했다. 이 결과는 여러 번에 걸쳐 재확인되었다.

사람들의 행동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인 광고란을 보면, 여자를 찾는 남자들은 나이와 외모를 따지고, 남자를 찾는 여자들은 경제적 안정, 키, 진실성을 따진다, 한 중매 업체의 사장은 "여자들은 인물 정보를 꼼꼼하게 읽고, 남자들은 사진만 본다"고 말한다. 기혼 부부들을 보면 마치 선호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듯이 남편이 아내보다 2.99세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식량수집 문화에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보다 더 섹시한 사람이 있다고 인정하는데, 그 범주는 주로 젊은 여자들과 명망 있는 남자들로 채워진다. 예를 들어 야노마뫼족 사람들은 가장 호감이 가는 여자를 '모코두데이'라고 부르는데, 과일을 가리킬 때에는 잘 익었다는 뜻이고, 여자를 가리킬 때에는 15∼17세라는 뜻이다. 서양의 남녀들에게 슬라이드를 보여 주면, 그들도 모코두데이 여자들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야노마뫼족 사람들의 평가에 동의한다.


남편의 부 740∼741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부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아내의 외모이고, 여자의 외모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남편의 부다. 헨리 키신저와 존 타워처럼 볼품없이 생긴 장관들이 섹스심벌이나 바람둥이로 불린다. J. 폴 게티와 J. 하워드 마셜처럼 여든 살을 넘긴 석유 재벌들도 모델인 애나 니콜 스미스처럼 증손녀뻘 되는 젊은 여자들과 결혼한다. 빌리 조엘, 로드 스튜어트, 라일 로벳, 릭 오케이섹, 링고 스타, 빌 와이먼처럼 평범하게 생긴 록 스타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배우들이나 슈퍼모델들과 결혼한다. 그러나 전직 국회의원인 퍼트리샤 슈뢰더는, 중년의 여성 국회의이원은 중년의 남성 국회의원들처럼 이성에게 동물적인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돈이 있는 남자 741

여자들이 부유하고 유력한 남자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부와 권력이 남자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성차별 사회에서 여자들이 부와 권력을 얻으려면 결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안은 실험을 통해 오류임이 입증되었다. 연봉이 높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명망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많은 존경을 받는 여자들이 오히려 보통 여자들보다 남편감의 부와 지위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심지어 여권운동 단체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 똑같이 아내감의 부나 돈 버는 능력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지 않았다. 카메룬의 바퀘리족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부유하고 유력하지만, 그곳 여자들도 돈이 있는 남자를 고집한다.


예쁜 얼굴 742∼743

우리는 정말로 아름다움을 보는 선천적인 눈을 구비하고 있을까? 이를 줄로 갈고, 둥근 고리를 끼워 목을 길게 늘이고, 뺨에 화상 자국을 내고, 입술에 원반을 끼우는《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원주민들은 어떠한가? 루벤스의 그림에 나오는 뚱뚱한 여자들과 1960년대의 트위기는 어떠한가? 그들은 미의 기준이 자의적이고 변덕스럽게 변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모든' 치장이 섹시하게 보이려는 시도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주장 뒤에는 그런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지만, 그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신체를 장식한다. 예를 들어 부유하게 보이기 위해, 연줄이 좋게 보이기 위해, 강인하게 보이기 위해, 유행에 뒤처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고통스런 성인식으로 정예 집단의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신체를 장식한다. 성적 매력은 다르다. 다른 문화 출신의 이방인들도 누가 아름답고 누가 아름답지 않은지에 대해 현지인들과 의견이 같고, 어느 문화권의 사람이든 잘생긴 파트너를 원한다. 심지어 3개월 된 아기들도 예쁜 얼굴에 눈길을 준다.


섹시함은 무엇일까? 743

섹시함은 무엇일까? 양성은 모두 감염이 없고 정상적으로 성장한 배우자를 원한다. 건강한 배우자는 원기 왕성하고, 전염병이 없고, 생식 능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기생충에 대한 유전적 저항력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우리는 청진기와 압설자(혀를 누르는 기구)를 진화시키진 못했지만, 미를 보는 눈이 얼마간 그런 역할을 한다. 대칭, 기형의 부재, 청결함, 깨끗한 피부, 맑은 눈, 온전한 치아는 모든 문화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통한다. 치열교정의들은 잘생긴 얼굴에는 씹기에 적합한 배열을 갖춘 치아와 턱이 있음을 발견했다. 풍부한 모발은 항상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런 모발이 현재의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의 건강 기록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와 질병은 머리 가죽에서 돋아나는 모발을 손상시켜 줄기에 허약한 부분을 남긴다. 긴 머리는 장기간의 건강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의 조건 746

과거에는 미적 구조가 젊음과 건강, 비임신 상태를 보여 주는 증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 여자들은 조상들보다 아이를 더 적게 낳고 늦게 낳으며, 비바람에 덜 노출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질병에 덜 시달린다. 현대 여성은 중년에 들어서도 조상들의 10대처럼 보일 수 있다. 여자들은 또한 젊음과 여성성, 건강의 단서들을 모방하고 과장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눈 화장(눈을 커 보이게 한다), 립스틱, 눈썹제거(남성적인 눈두덩을 축소시킨다), 화장(4장에서 설명한 명암으로부터 형태를 파악하는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모발의 윤기·굵기·색채감을 높여 주는 제품들, 젊은 젖가슴처럼 보이게 해주는 브래지어와 의류, 피부를 젊어 보이게 해준다고 외치는 수백 종의 약물이 그런 예다. 보디스, 코르셋, 후프, 크리놀린, 버슬, 거들, 주름치마, 테이퍼링, 넓은 벨트를 이용하면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성 패션은 단 한 번도 부피가 큰 허리띠를 채택한 적이 없다.


여자들의 외모 748∼749

아름다움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들이 여성을 객관화하고 억압하기 위해 꾸며 낸 공모가 아니다. 정말로 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여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도르로 감싼다. 역사상 모든 시대에 아름다움에 대한 비판은 권력을 가진 남자, 종교 지도자, 때때로 나이 많은 여자, 의사들처럼 최근의 미용 열풍 때문에 여자들의 건강이 위험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미를 광신하는 쪽은 정작 여자들이었다. 이것은 간단한 경제학과 정치학으로 설명된다.(정통 페미니즘의 분석은 그것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게 모욕을 줄 수 있다. 여자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끔 세뇌당한 얼뜨기가 되기 때문이다.) 개방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예쁘게 보이기를 원한다. 남편, 지위, 유력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사회에서 남자들은 아름다움을 싫어한다. 아내와 딸들이 아무 남자에게나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고, 여자들이 그들의 성성에서 나오는 이익을 남자들에게서(딸의 경우는 어머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경제적 원리 때문에 남자들도 멋있게 보이기를 원하지만, 시장의 힘은 더 약하거나 다르다. 여자들의 외모가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만큼 남자들의 외모는 여자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어책의 진화(성적 질투) 750

양성 모두 자신의 짝이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에 강한 질투심을 느낄 수 있지만, 남녀의 감정은 두 측면에서 다르다. 여자의 질투는 더욱 정교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들은 상황을 평가하고, 남자의 행동이 자신의 궁극적인 이익에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한다. 남자의 질투는 더 노골적이고 더 쉽게 촉발한다.(그러나 일단 촉발하면 남자보다 여자의 질투가 더 강하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일부 여자들은 기꺼이 1명의 남편을 공유하지만, 남자들이 1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사회는 없다.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여성은 항상 남편의 유전적 이익에 위협을 준다. 남편을 속여서 경쟁자의 유전자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남자는 반드시 아내의 유전적 이익에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 그의 사생아는 다른 여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남자가 아내와 아내의 자식들에게 투자해야 할 자원을,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다른 여자와 그녀의 자식들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정말로 위협이 된다.


질투의 이유 750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것에 질투심을 느껴야 한다. 남자는 아내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여자는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시간과 자원, 관심, 애정을 쏟는다는 생각에 괴로워해야 한다. 물론 어느 쪽도 자신의 짝이 다른 누군가에게 성이나 애정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때에도 그 이유는 각기 다르다. 남자들이 애정에 동요하는 것은 애정이 섹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고, 여자들이 섹스에 동요하는 것은 섹스가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사람들의 신체에 전극봉을 붙인 다음 두 종류의 배신을 상상해 보라고 요구했다. 남자들은 성적 배신을 상상할 때 더 많이 땀을 흘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가슴이 두근거린 반면에, 여자들은 감정적 배신을 상상할 때 더 많이 그런 증상을 보였다. 유럽과 여러 나라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산출되었다.


노골적인 이전 753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한 여자에 대한 소유권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넘어가는 노골적인 이전이다. 우리 문화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버지는 "딸을 준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딸을 파는 경우가 더 흔하다. 70퍼센트의 사회에서 신랑이나 신랑 가족은 신부의 가족에게 때로는 현금이나 딸로, 때로는 신랑이 일정 기간 동안 신부의 아버지를 위해 일을 하는 신부용역으로 대가를 지불한다.(성경에서 야곱은 라반의 딸인 라헬과 결혼할 권리를 얻기 위해 라반 밑에서 7년 동안 일을 하지만, 라반은 결혼식 날 신부를 레아로 바꾸고, 그로 인해 야곱은 라헬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또다시 라반 밑에서 7년 동안 일을 한다.) 윌에겐 신부의 지참금이 더 익숙하지만, 그것은 신부나 신랑의 부모가 아니라 신혼부부에게 가는 돈이기 때문에 신부값과는 같지 않다. 오늘날에도 많은 부부들이 따르는 관습들 중에는 남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관습이 있다. 남자가 아닌 여자가 약혼반지를 끼고, 배우자의 성을 따르고, 새로운 호칭인 Mrs.로 불린다. 예를 들어 Mrs.Brown은 'mistress of Brown(브라운의 부인)'이란 뜻이다.


부정행위 754

간통adultery이란 단어는 섞음질adulterate이란 단어와 관련이 있고, 부적절한 물질을 삽입하여 여자를 불결하게 만드는 행위를 가리킨다. 기혼 여자의 연애를 기혼 남자의 연애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는 악명 높은 이중적 기준은 모든 사회의 법률과 도덕에 공통적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제임스 보즈웰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했다. "남자의 부정행위와 아내의 부정행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자 새뮤얼 존슨은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그 차이는 무한하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어떤 놈도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한 여자와 그녀의 정부는 대개 벌을 받지만(종종 죽음으로), 여기에서 좌우 비례는 착각이다. 그것이 범죄, 구체적으로 남편에 대한 범죄가 되는 것은 남자가 기혼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기혼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전 세계 대부분의 법률 제도에서는 간통을 사유재산 침해로 취급했다. 남편에게는 배상금 청구, 신부값 환불, 이혼, 폭력럭인 보복의 권리가 부여되었다. 강간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남편에 대한 범죄였다. 딸의 가출은 아버지로부터의 유괴로 간주되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남편에 의한 강간은 범죄가 아니거나, 이치가 닿는 개념조차 아니었다. 남편에겐 아내와 섹스를 할 권리가 부여되었다.

영어권 전역의 관습법에서는 살인을 고살(우발적 살인)로 받아들이는 세 종류의 상황을 인정한다. 자기 방어, 가까운 친족 방어, 아내에 대한 성적인 신체 접촉이 그것이다.(윌슨과 댈리는 그것이 다윈주의적 적응도를 훼손하는 세 가지 주된 위협이라고 말한다.) 텍사스주는 비교적 최근인 1974년에도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남자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곳에서 그런 살인을 처벌하지 않거나 살인범을 관대하게 취급한다. 아내의 간통을 목격한 남편의 질투와 격노를 '합리적인 남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행동 방식 중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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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은 yamoo님 서재에서 많이 봐서 낯설지가 않네요~^^

oren 2010-09-2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yamoo님의 서재에서 너무 자주 인용해서 민망할 지경이었지요.

비로그인 2010-09-2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빈서판, 언어본능 요로케 있는데..
oren님 올리신 내용 보면서 함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
참참 깜빡할뻔했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라는 말씀을요~

oren 2010-09-20 20:29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빈서판 → 마음은 어떻게.. → 언어본능' 순으로 사서 읽는 중인데('언어본능'은 몇 달 전에 사두고 아직 못 읽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살펴보니 저자가 책을 저술한 순서(=미국에서 책이 출판된 순서)와는 맞지 않더군요.(먼저 출판된 순서 : 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 빈 서판)

최근에 '빈 서판'을 다시 읽어보니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언급한 내용에 '이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이 꽤 발견되더군요.

이만 각설하구요.
바람결님도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