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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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병리학, 병에 관한 이론이며 육체의 고통을 강조하는 이 이론, 하지만 이것이 육체적인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쾌감을 강조하는 한에는, 병은 생명의 음탕한 형태였다. 그러면 생명 그 자신은? 어쩌면 생명은 물질의 전염성 질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물질의 우연 발생이라고 일컫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질환에 불과하고, 자극에 의해 비물질이 조직을 증식하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악과 쾌감, 죽음으로 가는 제일보는, 미지의 물질이 침투하고 간지럽게 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것의 밀도가 증대하는 바람에 병리학적으로 조직이 왕성하게 증식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게 분명했다. 즐거움과 거부감이 반반씩 섞인 이러한 증식은 물질적인 것이 생기기 직전의 단계이며, 비물질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이것이 말하자면 원죄였다. 유기체의 질병이란 자신의 육체성이 취한 듯이 고조되고 방종한 형태로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상이듯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나는 두 번째의 우연 발생도 물질성이 심히 고조됨에 따라 의식을 갖게 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생명이란 순결을 잃은 정신이 모험을 겪는 도상에서 그다음에 제일보를 내딛는 것이며, 순순히 자극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물질이 자극에 는뜨게 되자 부끄러워하며 열을 내는 것에 불과했다.(543∼544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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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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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모든 무지도 기억이라는 현상, 아니 더 나아가 놀랄 만한 기억인 획득 형질의 유전이라 불리는 기억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닌가? 세포 물질의 이러한 작용에 대해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아버지의 무수히 많고 복잡한 종의 속성과 개체의 속성을 난자에게 전달해 주는 정자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지만, 아무리 배율이 높은 현미경도 그것이 동질체라는 것밖에는 알아낼 수 없고 그것의 혈통은 규정할 수 없었다. 어떤 동물의 정자도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자의 조직 상태로 보아 세포는 그것이 구성하는 상위의 유기체와 조직이 다를 바 없었다. 그러므로 이미 세포 자체도 나름대로 살아 있는 분열체, 즉 개별적인 생명 단위로 구성된 상위의 유기체였다. 그리하여 소위 가장 작은 것에서 재차 더욱 작은 것으로 나아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원소를 하위 원소로 분해하게 되었다. 동물계가 다양한 종의 동물로 이루어져 있고, 동물과 인간의 유기체가 수많은 세포종의 동물계로 구성되어 있듯이, 세포라는 유기체도 기본적인 생명 단위의 새롭고도 다양한 동물계로 이루어져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그 생명 단위의 크기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크기보다 더 작았고, 모든 생명 단위는 같은 종류의 생물만을 낳을 수 있다는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번식하고, 분업의 원칙에 따라 공동으로 좀 더 상위의 생명 단계인 세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것이 유전인자이자 원생자이며 원형질이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추운 밤에 소위 이런 것들과 알게 디어 기뻤다. 그는 흥분한 상태에서 이런 원시적 자연물을 좀 더 자세하게 규명하면 어떤 해답이 나올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생명이란 조직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이것들도 생명을 지니는 이상 유기 조직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유기체는 원시적이지 않고 복합체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유기 조직체라면 원시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유전인자는 그것이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세포라는 생명 단위보다 하위의 생명 단위였다. 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스스로 '구성되어' 있음에, 그것도 생명의 하나의 단계로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생명 단위라는 개념은 좀 더 작은 하위의 생명 단위로, 즉 좀 더 상위의 생명을 조직하는 생명 단위로 구성된다는 개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분열해 가도 생명의 특성인 동화, 성장 및 번식의 능력을 지니는 유기적 단위가 존재하는 한에는 분열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생명 단위라는 말이 있는 한 원시 단위는 잘못된 말이다. 생명 단위라는 개념은 하위의 구성 단위라는 내재 개념을 무한히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시적 생명, 그러니까 이미 생명이면서 아직 원시적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어도 결국 이와 같은 것이 어떻게든 정말로 존재함에 틀림없었다. 우연 발생이라는 생각, 즉 무생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적 자연에서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허사로 끝난 저 심연, 즉 생명과 무생물 간의 심연이 자연의 유기적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메워지고 다리가 놓아져야 했다. 분열이 계속되면서 합성은 되었지만 아직 조직은 되지 않은 채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중개하고, 분자군의 상태로 생명 단계와 단순한 화학 사이의 과도 상태를 이루는 '생명 단위'가 언젠가는 생겨남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화학적 분자에 도달한 순간, 유기 자연과 무기 자연 사이의 심연보다 훨씬 더 신비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심연, 즉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심연 가까이에 이미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고 이 원자는 극히 작다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자는 극히 미소하며, 비물질적인 것, 아직은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과 비슷한 에너지가 조기(早期)에 잠시 모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물질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중간물이자 경계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유기물의 우연 발생보다 훨씬 더 수수께끼 같고 모험적인, 비물질에서 물질의 발생이라는 또 다른 우연 발생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실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심연을 메우는 것은 유기 자연과 무기 자연 사이의 심연을 메우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절실한 문제였다. 유기체가 비유기 화합물에서 생기는 것처럼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비물질 화합물, 즉 비물질의 화학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원자는 물질의 원충류와 단충류라는 성질로 보아 물질적이면서도 아직은 물질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작다고조차 말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아예 기준이 없어져 버려, 그 말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과 같아진다. 그리하여 원자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말해 극도로 불길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물질을 최후까지 쪼개고 나누는 순간 별안간 천문학적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원자는 에너지를 띤 우주 체계였다. 그 안에서는 천체가 태양과 같은 중심체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고, 중심체의 힘에 의해 중심을 벗어나려는 궤도에 묶여 있는 혜성은 천공을 광년의 속도로 날고 있었다. 다세포 생물의 신체를 '세포 국가'로 불렀을 때처럼 이는 그리 호락호락한 비유는 아니었다. 분업의 원칙에 의해 조직된 사회공동체인 도시와 국가는 유기 생명에 비유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유기적 생명의 반복이다. 이처럼 자연의 깊디깊은 내부에서는 대우주의 별세계가 아주 광범위하게 반영되며 되풀이되고 있었다. 숙달된 솜씨로 몸을 완전히 싸고 있는 젊은 연구자의 머리 위에는 이러한 별세계의 무리, 덩어리, 집단 및 형상이 차갑게 반짝거리는 골짜기 위에서 달빛에 창백하게 떠 있었다. 원자 같은 태양계의 어떤 행성들 ㅡ 물질을 구성하는 이러한 태양계의 대군과 은하계 ㅡ 그러므로 이런 내계적(內界的)인 천체들 중 어떤 천체가 지구에 생명이 서식하기 알맞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신경 중추가 얼큰히 취해 있고, 피부가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며, 금지된 영역에서 온갖 경험을 하고 있는 숙달된 젊은이에게는 그러한 생각이 황당무계한 공상이라기보다는 심지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쉽게 떠오르고, 논리적인 진실성을 띤 지극히 자명한 공상이기도 했다. 내계적인 천체가 '작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극히 작은' 질료 부분의 우주적 성격이 명백히 드러난 순간에는 크다든지 작다든지 하는 기준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안팎이라는 개념도 차츰 확고한 근거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세계도 외계라 할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유기적으로 고찰하면 깊은 내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탐구자는 꿈꾸듯이 대담하게도 '은하계 동물', 즉 살, 다리 및 뇌수가 태양계에서 구성되고 있는 우주 괴물에 관해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한스 카스토르프가 생각한 것처럼, 궁극에 도달했다고 확신한 순간 모든 것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쩌면 그의 본성의 깊디깊은 곳에 그 자신이, 또 다른 수백 명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따뜻하게 몸을 감싸고, 달 밝은 추운 밤에 고산 지역을 내려다보며 발코니에 누워 얼어붙은 손가락에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인문적이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인체의 생명을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537∼542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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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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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생명이 생기고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생명의 영역에서 우발적이거나 우연에 가까운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지만, 생명 그 자체는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생명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이 고도로 발달된 구조를 갖고 있어 무생물계에서는 이와 비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기적인 조직체가 없기 때문에 죽어 있다고 말할 가치조차 없는 자연물과 생명의 가장 단순한 현상을 비교하면 허족 아메바와 척추동물 사이의 거리는 아주 하찮은 것이라서 말할 가치도 없다. 죽음이란 생명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생명과 생명이 없는 자연물 사이에는 아무리 탐구해도 다리를 놓을 수 없는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론으로 심연을 메워 보려고 했지만 심연이 이것을 집어삼켜 버려 그것의 깊이와 넓이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기 위해, 모액 속에서 결정이 이루어지듯이 단백질 용액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구조가 없는 생명체, 비유기적인 유기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기적 분화야말로 모든 생명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표명이며, 동종 생식에 의해 생겨나지 않은 생물체란 아무것도 없었다. 심해의 밑바닥에서 원형질을 건져 내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원형질로 생각했던 것이 석고의 침전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 현상을 기적으로 치부하지 않기 위해 ㅡ 유기 자연물과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어, 동일한 물질로 분해되어 버리는 생명은 그것이 우발적으로 생긴 이상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ㅡ 자연 발생, 즉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것 또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중간 단계와 이행 과정을 생각해 내어, 알려진 모든 유기체보다 하등이긴 하지만 자연에서 좀 더 원시적인 생명 현상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기체의 존재를 가정하게 되었다. 현미경으로 아무리 확대해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원형 물질 같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원형 물질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시점보다 이전에 단백질 화합물의 합성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럼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열이었다. 형태를 유지하면서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내는 열의 산물이고,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단백질 분자가 끊임없이 분해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열이었다. 그것은 실은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을 띤 존재였고, 해체와 갱신이 교차하면서 이처럼 열을 내는 과정에 있을 때에만 감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게 존재의 접점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었다. 생명은 물질도 아닌 정신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것으로서, 마치 폭포수 위에 걸린 무지개나 불길처럼 물질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었다. 생명이 비록 물질은 아니지만 쾌감과 혐오감을 일으킬 정도로 관능적이고, 자기 자신을 느끼고 민감하게 된 물질의 후안무치(厚顔無恥)이며, 존재의 음탕한 형식이었다. 그것은 만물의 순결한 냉기 속에서 은밀하게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것이고, 음탕하고 불결하게 몰래 영양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것이며, 성분과 속성을 알 수 없는 나쁜 물질과 탄산가스를 내뿜으며 호흡하는 것이다. 생명은 물, 단백, 염분 및 지방으로 이루어진 것이 물컹물컹한 살로 부풀어 올라 자신의 불안정한 성질을 제어하고 본래의 형성 법칙에 따라 증식하고 자기 발전을 하며 형상을 이루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형태를 얻고 고귀한 모습을 띠어 아름다움이 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관능과 욕망의 화신이기도 했다. 이러한 형태와 아름다움은 문학과 음악 작품에서 나타나듯이 정신을 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작품의 형태나 아름다움처럼 중간적이고 정신을 소모케 하는 물질, 순결한 방식으로 정신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을 담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형태와 아름다움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육욕에 눈뜬 물질, 분해하면서 존재하는 물질인 냄새나는 살을 담고 그것에 의해 완성되어 있었다. (526∼528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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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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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그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더 옛적의 일이므로, 그 이야기의 곰삭은 나이는 일수(日數)로도 헤아릴 수 없으며, 이야기를 내리누르는 세월의 햇수는 태양 주위를 도는 혹성들의 수로도 헤아릴 수 없다.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토마스 만은 80세까지 사는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 『마의 산』, 『요셉과 그 형제들』, 『파우스트 박사』등이 유명하지만 정작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은 스물다섯 살에 완성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독일 철학자인 니체와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음악가인 바그너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였다. 그의 고향은 북독일 항구 도시인 뤼벡이었지만 10대 후반에 뮌헨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북부 독일과 남부 독일의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에 고루 영향을 받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민적 도덕률'을 중시하던 아버지와 '남국인의 예술적인 재능'을 지닌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으면서 '아폴론적인 성격'과 '디오니소스적인 성격'을 함께 타고났다는 점에서 남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는 평생 동안 이 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상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시켰다.

 

1901년에 발표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고뇌와 갈등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 초기의 작품이다. 『마의 산』으로 대표되는 중기(조화와 모색의 시기)의 작품이나 『요셉과 그 형제들』과 같은 말기(성숙의 시기)에 쓰인 작품들보다 훨씬 읽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에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작품이 되었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부덴브로크 일가의 4대(代)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작품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그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누구나 겪는 가족의 출생, 결혼, 이혼, 성공과 실패, 죽음 등이 아주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가족사의 저변을 흐르는 또다른 주제인 '가문의 흥망성쇠를 통한 시민 계급의 성장과 몰락'도 함께 다룬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가끔씩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른 장편 소설들인『까라마조프 형제들』이나 『전쟁과 평화』를 함께 떠올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두 편의 러시아 소설과 오버랩되는 부분은 그리 넓지 않다. 세 작품 모두 가족사를 다루고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다루는 이야기는 너무나 거창한 다른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부류의 소설이며, 그런 면에서 토마스 만의 소설이 훨씬 더 가족적이다.

 

부친 살해, 죄와 벌,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의 묵직한 주제가 심연처럼 끝모를 깊이로 독자를 끌고 내려가는『카라마조프 형제들』과, '거대한 조국 전쟁'을 배경으로 볼콘스키 가문의 사람들과 로스토프 가문의 사람들이 겪는 파란만장한 운명의 변천을 통해 '개인의 운명과 역사와의 관계'를 심오하게 고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드는『전쟁과 평화』에 비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의 분위기는 때로는 너무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이 넘치며, 때론 너무나 고요한 가운데서도 슬프고 우울하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는 외부 환경의 격변은 '가족 회사의 번영과 쇠퇴' 말고는 달리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문의 구성원들 각자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기 어떤 시기에 어떤 개성들을 발현시키면서 삶을 꾸려나가는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지가 주된 이야기 줄기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진지한 삶의 성찰' 같은 태도는『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세 작품 사이의 '연관'을 찾는다면 토마스 만과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 공히 '형제간의 갈등'이 소설의 전편을 오래도록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토마스 만과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공히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이처럼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해 하고 고요한 가운데 우울하고 슬픈 이유는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삶이 작품에 깊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설을 완성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소설 속의 분위기'와 아주 흡사한 삶을 살았다. 단적으로 토마스 만 가문의 선조들도 독일 북부의 부유한 상업 도시인 뤼벡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사업체를 운영했고, 작가의 아버지 역시 뤼벡의 시의회 의원이자 도시의 제2인자 였다. 그는 1890년 그의 나이 15세 때 <요한 지그문트 만 상회> 창립 백 주년 축하회를 생생히 목도했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상회는 해산되고 그 다음해인 1892년에는 어머니와 누이동생들과 함께 뮌헨으로 이주했다. 소설 속에서도 <부덴브로크 상사>는 100주년을 맞아 거창한 축하행사를 벌인다. 이 장면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독자들이 도리어 놀랄 정도다.

 

긴 이야기의 시작은 1835년부터다. 번창일로를 걷는 <부덴브로크 상사>의 리더인 일흔 살의 요한 부덴브로크(1세)는 멩 가의 대저택을 새로 구입하고, 온 가족들은 기쁨에 넘쳐 행복해 한다. 가문의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남달리 부지런하고 성실한 태도로 사업에 전념한 덕분에 '오늘날의 영광'에 이르렀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그만큼 남다른 근검절약과 절제와 근면성실이 뒷받침되었던 셈이다. 가죽표지에 싸인 두툼한 노트에는 '가문의 역사'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고, 구성원들은 모두 자부심이 넘친다. 사업을 돕는 직원들과 가사를 돕는 하인들까지도 모두 하나같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다. 쇠퇴의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덴브로크 가문의 가훈은 이렇다.

 

<나의 아들아, 낮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밤에는 조용히 쉴 수 있도록 해라.>

 

그로부터 6년 후 안토아네트 노부인이 사망하자 요한 부덴브로크(1세)도 급격히 몸이 쇠약해져 사업에서 손을 뗀 후 1842년에 사망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부덴브로크 영사는 현명하고 활동적인 장남 토마스 부덴브로크를 16세의 어린 나이에 회사일에 참여시킨다. 영사의 큰 딸인 토니는 고상한 척하나 허영심이 강하고, 셋째인 크리스찬은 끈질기지 못하고 어딘가 경솔하다. 막내딸인 클라라는 진지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 모두가 애정 어린 가족애로 결속된 데다가 풍족한 환경에서 별 탈 없이 자라난다. 뤼벡 시내에서 경쟁할 만한 새로운 신흥 가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지나치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토니는 '교육'을 위해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훗날까지 인연을 이어갈 귀족 가문의 귀엽고 아리따운 소녀들을 여럿 사귄다.

 

토니가 기숙학교를 마치고 다시 대저택으로 돌아온 어느 날, 집안에 낯선 손님이 명함을 들고 찾아온다. 부덴브로크 가문에 첫 번째 충격을 가할 인물인 그 사나이의 이름은 그륀리히였다. 그는 어딘가 마뜩찮은 언행으로 토니의 눈밖에 나지만 다른 가족들로부터 적잖은 호감을 얻고 돌아간다. 잦은 방문 끝에 그는 토니에게 청혼하기에 이르지만 토니는 언감생심이어서 결단코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예 드러눕는다. 심신이 쇠약해진 끝에 가족들의 여름 휴양지인 트라베뮌데로 홀로 요양을 떠나고, 한적한 바닷가 시골집에서 묵던 그녀는 진보적인 의대생 모르텐을 만나 첫사랑을 느끼고 행복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집요한 성격의 그륀리히가 시골까지 찾아와 둘 사이에 끼어 들어 훼방을 놓고, 끈질긴 청혼 공작 끝에 토니는 마지 못해 함부르크 사업가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스무 살에 함부르크로 시집을 간 토니는 딸 에리카를 낳고 행복해 하지만 어딘지 공허롭다. 머잖아 그륀리히가 오랫동안 저질러온 '분식회계'가 들통나고 파산위기에 몰린 그는 장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부덴브로크 영사(2세)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딸과 사위를 도와주려고 '그만한 금액을 빼내면 회사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결정적으로 문제였다. 여기서 부덴브로크 가문의 딸 토니가 아버지 앞에서 보여준 단호한 모습은 가히 영웅적이었다!

 

「좋아요! 됐어요! 절대 안 돼요!」그녀는 그륀리히에 대한 혐오감보다 <회사>라는 그 한마디에 훨씬 더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아빠까지도 파산하려고 그러세요? 됐어요! 절대 안 돼요!」 그륀리히는 장인에게 애원하고 나중엔 협박까지 하지만 부덴브로크 영사는 꿈쩍도 않는다. 사위와 냉정히 결별한 그는 딸과 손녀딸 에리카를 데리고 뤼벡으로 되돌아가고, 그륀리히는 이내 파산하고 만다. 사위가 잔뜩 기대했던 장인한테 들었던 말은 이랬다.「지불능력을 과시한답시고 돈을 인근에 있는 하수구에 던져 넣을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청혼 단계에서 세밀하게 진행되었던 그륀리히에 대한 '신용도 조사' 마저도 조작된 것이었음은 나중에 밝혀졌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은 장남 토마스는 모방하기 힘든 근면함과 정확하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부덴브로크 상사의 경영을 맡아 능숙하게 대처한다. 다만 차츰 성장할수록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경거망동하는 동생 크리스찬이 늘 말썽이었다. 동생을 회사 일에도 참여시켜 보지만 일처리가 너무나 미숙하고 부실하여 형과 갈등만 일으키다가 끝내 회사에서 쫓겨난다. 크리스찬은 이때부터 어느 한 군데 진득하니 적을 두지 못하고 평생을 부초처럼 떠돌며 생활한다. 멩 가의 저택에는 바깥 생활에 지쳤을 때만 잠깐씩 되돌아올 뿐이다. 

 

돌싱녀가 된 토니는 친정으로 되돌아온 이후 한참 동안이나 <과거사> 때문에 침울해 하지만, 이내 특유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저 불운했을 뿐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사기꾼 남편 그륀리히'를 들먹이고 욕을 하고 다닌다. 그러는 사이에 기숙학교 동창생이던 귀족 소녀들은 하나둘씩 명문가 귀족 집안으로 보기 좋게 시집을 가면서 토니를 자극한다.

 

1855년에는 요한 부덴브로크(2세)는 지나친 긴장으로 몸이 병약해져 어느날 심장발작을 일으켜 갑자기 죽고 만다. 이듬해에는 크리스찬 부덴브로크가 8년 만에 남아메리카에서 돌아온다. 그는 가족들이 기대했던 방향보다 훨씬 더 나쁜 쪽으로 변해서 돌아왔다. 반면, 젊은 나이에 커다란 무역 상사의 대표가 된 토마스는 어느새 진지한 위엄이 얼굴에 배어 들고 머잖아 <네덜란드 영사>의 직함까지 얻는다. 두 형제 사이의 성장 곡선이 완전히 정반대로 향한 지 오래지만 더이상 서로 용인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두 형제는 서로에 대해 잔뜩 쌓인 악감정들을 쏟아낸다. 다툼 끝에 퍼부운 막말이 서로의 감정을 더욱 부채질한 끝에 두 형제는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멀어진다. 이때 그들이 치고받은 대화에서는 아주 익숙한 표현도 빠지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

 

사업차 암스테르담에 체류중이던 토마스로부터 어느날 '열의에 찬 편지'가 영사 부인에게 날아든다. 기나긴 편지에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기쁨으로 가득했다. 상대는 마침 여동생 토니의 기숙학교 동창생인 게르다 아놀트선이었다. 그녀는 진품 스트라디바리를 켜는 부유한 음악가 집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훌륭한 가문, 탁월한 미모, 많은 지참금, 예술가라는 고상한 이미지끼지 어느 하나라도 만족스럽지 않은 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내 양가 가족들끼리 만나고 약혼과 결혼이 부유한 가문끼리의 혼사답게 화려하게 치러졌다. 뤼벡 시내에선 이구동성으로「극상이야」라는 소문이 쫙 퍼져나갔다. 그러나 훗날 밝혀지게 되지만 토마스에게 있어서나 부덴브로크 가문에게 있어서나 화려한 미모를 갖춘 여류 음악가와의 결혼이야말로 '명백한 몰락 징후의 시작'이었다.

 

토니는 어느 덧 30줄에 접어 들어 다시 '새로운 결혼'과 '화려한 부활'을 꿈꾸기 시작한다. 이대로 딸만 키우며 홀로 지내기엔 인생 자체가 너무 따분한 데다가 자신은 여전히 미모와 자신감을 조금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문에 오점으로 남긴 얼룩도 어서 말끔히 지우고 싶었다. 때마침 양조장 사장한테 시집을 간 동창생으로부터 '꼭 한 번 뮌헨으로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그녀는 열 일 제쳐두고 그곳으로 날라간다. 거기서 그는 외양은 그다지 볼품 없지만 돈깨나 있어 보이는 홉 무역상 페르마네더 씨를 알게 된다. 머잖아 '뮌헨에서의 행복한 재혼 생활'에 재빨리 뛰어든 그녀에게 남부 독일 생활은 어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못내 어색했다. 그러나 이제 막 새출발한 만큼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녀는 무진 애를 쓰며 살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이미 온갖 험악한 말도 들었던 터였는데도 말이다. 가령,「입 닥치고 가만 있지 못해!」등등.

 

남편은 결혼 후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사업체를 정리하고 '집세'만 받아 챙기는 한량으로 변신했다! 억장이 다 무너졌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허구헌 날 단골 호프집에서 카드놀이나 하고 매번 만취한 상태로 밤늦게 귀가하던 남편과 그녀는 마침내 어느 날 오밤중에 대판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불행한 사건과 마주했다. 그날 밤 남편으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폭언까지 들은 토니는 쌓인 불만과 암담한 미래와도 영영 결별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밤새 짐을 꾸리고 새벽에 득달같이 딸을 깨워 서둘러 친정으로 돌아오고 만다.

 

두 번째로 친정으로 되돌아온 딸과 외손녀를 영사 부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오빠인 토마스는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남편의 잘못에 대해 펄펄 뛰고 성을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소해하면서 그와 인간적으로 좀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논리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결국 나중엔 또다시 가문에 먹칠을 할 셈이냐는 심한 말까지 내뱉고 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토니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토마스! 추문이라고? 내 인격에 먹칠을 당하는 치욕적인 일을 당했는데도 추문을 일으키지 말라고 명령하는 거야? 그게 오빠로서 할 말이야? 그래, 이런 질문을 내가 꼭 해야겠느냐 말이야! 체면과 사리분별이 좋은 것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톰. 나도 오빠만큼은 인생을 알고 있어. 추문을 두려워하는 곳에는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야! 바보 멍청이에 불과한 내가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그녀는 도대체 남편한테 무슨 험한 꼴을 당했던 것일까. 만취한 상태로 오밤중에 귀가한 남편은 집안의 얼굴 반반한 요리사 처녀와 '불륜의 레슬링'을 벌였다. 잠결에 깨어나 현장까지 목도한 토니는 격분해서 남편과 극언을 퍼부우며 싸운 후에 거실 소파에서 자려고 방을 나오다가 그만 그녀의 뒤통수를 때리는 남편의 폭언 한마디에 모든 게 끝장났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엄청난 말'을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막노동자나 개한테도 퍼부울 수 없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입으로 남에게 옮길 수 있단 말인가,(토마스 만은 짖굿게도 수십 쪽이 지나서야 토니가 들었던 폭언을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알려 주지만 나는 토니를 위해서라도 그 말을 여기에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궁금한 독자들은 책을 직접 읽는 수밖에.)

 

두 번째 결혼에서도 실패했다고 좌절할 토니가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그륀리히를 닮아 가는 에리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마침내 교양은 없어 보이지만 우직하고 돈 잘 번다고 소문난 화재 보험 회사 사장 바인센크를 사위로 맞아들인다. 그렇지만 믿음직했던 사위는 어느 날 갑자기 횡령죄로 기소되고, 몇 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서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엄밀히 말하자면 '토니의 세 번째 결혼 생활'도 그렇게 파탄난 셈이었다.

 

토마스와 게르다 이놀트선 사이에는 병약한 기질의 요한 부덴브로크가 태어난다. 산모까지도 극도로 위험한 난산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토마스는 시의원에 선출되고 어부 골목에 화려한 새 집을 지어 이사한다. 회사는 창사 100주년을 맞아 뤼벡 시내가 들석거릴 정도로 성황을 이루지만 어린 하노에게는 그저 모든 게 낯설고 이상하게만 비친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생활하며 집안의 어른역을 도맡았던 영사 부인도 마침내 기나긴 사투 끝에 눈을 감고, 유산의 적지 않은 부분이 '상속 과정'에서 가문 밖으로 '유출'된다. 부덴브로크 상사의 사업은 예전처럼 좋은 수익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매출은 정체를 넘어 차츰 부진으로 빠져든다. 마침내 멩 가의 대저택마저 신흥 가문으로 떠오른 하겐슈트룀한테 '억울한 값'에 넘어간다. 크리스찬은 클럽이나 들락거리다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식을 둘씩이나 둔 과부 알리네 푸보겔과 결혼하지만, 도리어 그녀는 크리스찬의 정신 질환을 이유로 정신 병원에 수용시키고 만다.

 

시의원 토마스는 신체적으로도 병약하고 정신적으로도 음악에나 빠져드는 심약한 아들이 갈수록 걱정이다. 사업 부진, 음악 속에서만 살고 바깥 세계와는 소원하게 지내는 아내, 사업가의 자질은 찾아보기도 힘든 아들 등으로 갈수록 걱정과 괴로움에 번민하던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어느 날 격심한 치통 때문에 이를 악다물고 치과를 찾아간 끝에 수술을 받지만 치료가 잘못되는 바람에 도리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정신을 잃고 길거리에 처박혀 쓰러지는 바람에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왔을 때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는 평생 동안 몸에 먼지 하나 안 묻혔지 …… 아, 마지막을 그런 꼴로 장식해야 한다는 것은 치욕이요, 수치야!

 

졸지에 미망인이 된 게르다가 시누이이자 동창생인 토니에게 한 말이 그랬다. 그로부터 2년 후 어린 하노는 열네 살의 나이에 티푸스로 죽고, 부덴브로크 상사는 마침내 문을 닫는다. 남편과 사별한 뒤로 어부 골목에 새로 지었던 집마저 처분하고 아들과 함께 아답한 집으로 새로 이사해 살던 미망인 게르다는 이제 아들마저 잃자 홀로 아버지가 사는 암스테르담으로 쓸쓸히 떠난다.

 

부덴브로크 일가의 몰락은 경제적 실패 때문이라기 보다는 병약한 하노의 죽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더 멀게는 바이올리니스트와의 결혼이 몰락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문의 몰락의 원인을 길고 짧은 다양한 연원에서 찾는데, 대표적인 것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 약화된 시민적 경향'과 '후손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난 바다와 종교와 음악에 심취하는 경향'들이다. 이런 성향들이 '몰락에의 의지'의 표출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작가가 니체와 쇼펜하우어로부터 받은 직접적인 영향이다. 오랫동안 부덴브로크 가문 사람들에겐 '음악'에는 도무지 취미가 없었다. 하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그 성질상 도취와 망아, 몰락에의 욕구와 방종에 다름아니었고, 현실보다 음악으로의 도피 자체가 '일상적인 시민적 의무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였다.

 

무한정 향유하고 이용하면서 절제를 잃고 끊임없이 갈증을 호소하는 가운데 무언가 방탕한 요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탐욕 속에서 무언가 냉소적인 절망감과 아울러 열락과 몰락에의 의지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최후의 감미로움까지 빨아들임으로써 기진맥진하고 구역질과 넌더리가 나게 되었다. 급기야는 모든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후 맥이 풀려 오랫동안 나지막한 소리로 단조의 아르페지오로 졸졸 흘러갔다. 그러다가 한 음이 솟아올라 장조로 녹아내리더니 슬픈 듯 머뭇거리다가 소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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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8-1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oren님.그의 형인 하인리히만의 ‘충복‘이나 ‘작은 도시‘보셨으면 독후감 올려 주심 안될까요?

oren 2017-08-13 00:08   좋아요 0 | URL
하인리히 만도 뛰어난 작가라는 건 알지만 <충복>이나 <작은 도시>는 제목조차 금시초문이네요. 토마스 만의 작품도 이번이 처음이고요. 진작부터 읽고 싶었던 『마의 산』도 이제사 읽기 시작했는데, 은근히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서 왠지 푹 빠져들 것 같은 예감도 드네요.^^

bgkim 2017-08-1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그러셨군요.절판된지 오래라 저도 몇년 전에 겨우 헌책으로 구해놓고 읽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네요.oren님!마의산 다 보심 꼭 독후감올리세요.많이 궁금해요.시간 나심 요셉과 그의형제들도 보시길 감히 추천해요.무더웠던 이번여름 수고하셨어요.

oren 2017-08-13 14:52   좋아요 0 | URL
『마의 산』도 읽고 나면 독후감을 남겨보겠습니다. 불끈.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몇십 분 동안 살펴봤더랬습니다. 토마스 만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더군요. 과연 저도 그 책을 읽을 날이 있을까 잘은 모르겠는데 하여튼 bgkim 님께서 추천해 주시니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bgkim 2017-08-1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응원 할께요.

oren 2017-08-13 14:59   좋아요 0 | URL
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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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의 신비, 산문의 아름다움을 향한 소설의 길 위에서, 플로베르는 거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 밀란 쿤데라, 『배신 당한 유언들』중에서

 

 * * *

 

오늘날 압도적인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 문학 장르는 단연 소설이다. 기나긴 문학의 역사 위에서 보면 가장 오랫동안 명함도 제대로 못 내민 장르가 바로 소설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소설의 홍수 시대'는 분명 문학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옛날 옛적에도 '이야기'는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거북이 등껍질이나 양피 가죽 혹은 파피루스 종이 위로도 끊임없이 옮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형식은 주로 시(詩)였다. 그게 설화시(說話詩)가 되었든 서사시(敍事詩)가 되었든 서정시(敍情詩)가 되었든. 어쨌든 시로 노래하듯 '이야기'를 전달했던 것이다.

 

영원한 인류의 고향으로 대접받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숱한 신화들이 음유시인들의 암송으로 '노래처럼' 불려졌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퀼로스가 지어낸 '오이디푸스 왕'이나 '아가멤논 왕'의 비극도 모두 시였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조차도 모두 시로 불렸다. 중세의 이름난 문학 작품들 가운데 시(詩)로 쓰인 작품이 많았던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단테가 100곡에 걸쳐 노래한 Divina commedia는 말 그대로 신곡(神曲)이다.

 

이런 전통은 셰익스피어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문학장르 상으로는「희곡」을 많이 썼지만, 작품들마다 상당 부분을 '노래처럼' 운율을 갖춘 시(詩)로 썼다. 대략 4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처럼 '노래하듯이' 전달되어 왔던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겐지 이야기』나『천일야화』같은 작품들은 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문학'은 꽤나 오랫동안 소수의 천재들이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하는 능력은 시인이 아니라면 결코 아무나 쉽게 창작할 있는 기술이 아니었으니까.

 

숱한 이야기를 시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학 형태인 '소설'을 제쳐 주고 왜 옛날 사람들은 그토록 어려운 '시의 형식'을 택했을까. 오랜 문학적 전통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중세의 암흑 시대를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 말고는 달리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듯이 말이다. 이런 답답한 문학적 전통에 반기를 들고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새로운 문학 형식이 바로 소설이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기폭제 역할을 떠맡았다.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제약이 갑자기 사라진다. 주제든, 형태든, 구성이든, 화자(話者)든, 시점(視點)이든, 길이든. 라블레와 세르반테스가 근대소설의 서막을 열었다면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로 현대소설의 등장을 알렸다. 결국 이들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은 후세의 작가들은 온갖 형태와 구성을 갖춘 다양한 소설을 쏟아냈다. 이제 와서는 '소설의 형식' 마저도 무너진 소설을 쓰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어떤가? 보르헤스는? 밀란 쿤데라의 몇몇 소설은 에세이와 구분하기 어렵다. 소설 속에 문득 작가 자신이 불쑥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 작품들은 탁월한 소설로 대접받는다. 모름지기 소설은 '이야기'일 뿐이고, 이제 '이야기의 전달 방식'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설『마담 보바리』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걸작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 살 걱정이 별로 없었던 플로베르는 아버지의 끈질긴 권유로 '법학도'가 되지만 결국 '발작'을 일으킨 끝에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에겐 법학 공부가 몸에 너무나 맞지 않는 옷이었던 셈이다. 어릴 때부터 『돈키호테』에 심취했었고, 이미 여러 차례 습작을 썼던 플로베르는 작심하고 완성한 첫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보였지만 혹독한 비판에 직면한다. 그가 문단에 몸담은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평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원고를 불에 태우고 다시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

 

<루앙 옆, 크루아세 지방의 센 강가> 샤를 알베르 르부르(1849∼1928,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그는 『마담 보바리』에도 자주 등장하는 '루앙'은 제쳐 두고, 그 근처 센 강가의 크루아세에 거처를 마련하고 은둔에 들어갔다. 무려 4년 반을 절치부심 문장과 싸운 끝에 내놓은 소설이 '현대 소설'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제친 『마담 보바리』였다.

 

“나는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세르반테스를 다 암송했다”고 뻥(?)을 쳤던 플로베르가 '통속 소설'이나 다름없는 진부한 소재와 주제의 소설을 썼음에도 그토록 높은 '문학적 가치'를 획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두고 "나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돈키호테 이야기"라고 고백한 데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야기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담는 그릇에 하나의 혁명을 시도했다. 문학에서 언제나 중요한 건 둘 중의 하나다. '이야기' 이거나 '이야기의 전달 방식' 이거나. 플로베르는 바로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서 '새로운 이상'을 꿈꿨고 그 꿈을 이뤄냈다. 그는 어찌보면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한 '간통 소설'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불어넣기 위해 '단말마적 고통'을 겪었다. 돈키호테가 늙은 로시난테를 타고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모험에 나서는 동안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숱한 고통을 겪었듯이.

 

"이 빌어먹을 보바리 때문에 나는 괴롭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 나는 지겹고 절망적이다 …… 기진맥진한 상태다 …… 보바리가 나를 때려눕힌다 …… 태산을 굴리는 듯 지겹다 …… 정말이지 보바리는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 1852년 6월에 쓴 <편지> 중에서

 

그는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깊숙히 내려갔다. 친구들로부터 '작가로서의 파산 선고'를 받았던 그가 바닥까지 추락한 뒤에 마침내 발견한 탈출구가 바로 그 질문 속에서 희미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던 셈이다. '소설의 형식과 내용은 어떻게 다른가?' 그가 『마담 보바리』를 쓰면서 천착했던 질문이 바로 그런 데로 모아졌다. 그는 궁극적으로 '외부 세계와 의 접착점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쯤에서 소설 속 보바리 부인이 살았던 동네 근방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마담 보바리』에서 '사건들'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엠마의 이야기 속에서도 숱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등장 인물들은 격렬한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그런 '격변' 조차 소설 속에서는 '음악적 고조' 이상으로는 격앙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많은 장면들에서 마치 '세밀화'를 들여다 보는 듯한 이미지 묘사로 가득하지만, 그 저변을 잔잔히 흐르는 선율은 도리어 '음악'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번갈아 등장했다가 차츰 사라지고, 일정한 변주가 울리고, 빠르게 흐르던 주제에서 벗어나 잔잔한 안단테의 평화롭고도 고요한 악장이 연주되고, 그런 장면들이 다 끝나면 어느새 다시 '격렬하게'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숨가쁘게 빠른 속도로 치솟듯 연주되다가, 마침내 피날레에 이르고 난 뒤의 긴 침묵과 잔잔한 여운으로 끝나는, 그런 음악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루앙 근처 시골에서 평범하게 자란 샤를르 보바리는 간신히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동네 근처 시골에서 '의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60리나 떨어진 마을 베르토로 급히 왕진을 떠나게 된다. 시골에서 제법 번듯한 농가를 꾸리고 사는 루오 영감이 다리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 영감은 '문학적 낭만'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찬 꿈 많고 아름다운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왕진이 거듭 되자 샤를르는 환자의 딸인 이 시골 처녀에게 점점 이끌리지만 부모의 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다행히(?) 돈은 별로 없고 나이만 많았던 과부가 일찍 죽는 바람에 샤를르는 운 좋게도(?) 루오 영감의 딸 엠마에게 청혼할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고, 엠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시골 의사의 부인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엠마 보바리는 '꿈 많은 처녀'에서 '시골 의사 부인'으로 바뀐 자신의 처지에 차츰 실망한다.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아내 엠마는 어느새 '병든 닭'처럼 시들어 간다. 이 원인 모를 병세를 치유하기 위해 샤를르는 조금 더 큰 마을인 '용빌'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그녀는 읍내 공증인 사무실의 서기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레옹에게 끌린다. 갑자기 반한 엠마는 그와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 둘의 관계는 그야말로 싱겁게 끝나고 만다. 새로 이사를 온 의사 마누라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풍문을 들은 홀로 사는 돈 많은 후작이 어느 날 하인을 데리고 의사 보바리에게 '진찰'을 받으러 온다. 엠마를 직접 한 번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엠마는 이내 로돌프의 노련한 공작에 넘어가고 둘은 '불륜'에 빠진다. 시골 의사 샤를르는 그런 사정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 도리어 어느 날 갑자기 활기를 되찾고 행복에 겨워 하는 아내의 모습 때문에 자신마저도 행복에 젖는다.

 

보바리와 로돌프의 '밀회'는 갈수록 대담해 지고, 엠마는 정부(情夫)에게 '둘 만의 머나먼 여행'을 제안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환상'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보바리슴' 환자이다. 점덤 더 부담으로 다가오는 유부녀의 도발을 견디다 못한 로돌프는 '이별 편지'를 보내고 갑자기 도망치듯 사라진다. 엠마는 비탄에 빠져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오랜 실의를 딛고 간신히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엠마를 결정적으로 되살린 사람은 '루앙 시내 극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레옹이었다. 3년 동안 '파리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는 어느새 '유부녀를 농락할 정도'의 세련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날이 갈수록 보바리 부인과 레옹의 밀회는 잦아지고 대담해 진다. 엠마는 차츰 '외박'까지 일삼는다. 시골 의사는 걱정이 태산이지만 '아내의 부정'을 결코 의심하는 법이 없다. 오로지 '그녀의 안위'만 걱정한다.

 

레옹과의 밀회가 거듭될수록 모든 게 거꾸로 뒤바뀐다. 남편과 어린 딸아이는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점점 더 엉망이 된다. 불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엠마의 씀씀이도 갈수록 헤퍼진다. 노련한 마을 포목상 뢰르가 엠마의 허영과 사치에 부채질을 한다. 마침내 엠마는 자신의 주체하기 힘든 소비욕 때문에 밀린 결제대금을  '어음'으로 돌려 막기에 이른다. 시골 의사의 보잘 것 없는 수입에 의존하는 그녀는 남편 몰래 환자의 '외상 진료비'까지 당겨 받아 쓴다. 마침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상환할 의욕마저 포기한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던 중 법원의 '차압 명령'이 들이닥친다. 절망 끝에 사방팔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고, 레옹은 물론이고 이미 헤어진 옛 애인 로돌프까지 찾아가지만 도움을 거절당한 그녀에게 더 이상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침내 맞닥뜨린 '절망'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음독 자살하고 만다.

 

보바리 부인이 느끼는 일상에 대한 권태는 한편으로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하나일 수 있다. 일상이 따분하지 않고 늘 새롭고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구나 때로 극심한 권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보바리 부인이 지닌 결정적인 문제다. 그녀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현실' 보다 '소설 속 이야기'를 더 갈망한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탈출구는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 뿐이다. 그녀가 선택한 남편 이외의 남자와의 외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 외도가 결국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 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많은 자유! 희망! 얼마나 풍성한 환상에 차 있었던가! 지금은 이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녀는 처녀 시절, 결혼, 연애, 이렇게 차례로 모든 환경들을 거치면서 갖가지 영혼의 모험들에 그걸 다 소비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제2부 제10장)

 

이 소설을 쓴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무척이나 다의적이다. 작가 자신이 결코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가 그만큼 소설 창작에 있어서 '낭만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고, 거기서 부단히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말이기도 하고, 바로 그런 결과가『마담 보바리』라는 작품이 되었다는 뜻기이도 하다.

 

『마담 보바리』는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엠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온갖 희망에 들뜬, 모든 가능성에 온전히 열려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이내 '시골 의사 부인'으로 한정되고, 집안의 가구 하나,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남편의 출퇴근 시간에 구속받는 존재로 지극히 한정된다. 그녀는 '외출'할 기회도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점점 자신의 방으로 틀어박힌 채 '소설 읽기'에 빠진다.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기만 한("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남편에게 실망한 끝에 곧 태어날 '사내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사내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은 지난날의 모든 무력함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제2부 제3장)

 

이 소설 속에는 독자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우리들'로부터 시작했다가 '샤를르 보바리'에게로 건너가고 다시 '엠마 보바리'로 건너가는 시점(視點)의 변화는 마치 '영화 카메라'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멋진 풍경화를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듯한 장면 묘사에서도 어디선가 자연스레 들려오는 온갖 '음향들'은 끊임없이 독자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로돌프가 엠마를 유혹하는 '농업 공진회 장면'에서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참사관의 연설과 로돌프의 유혹하는 대사에 끼어드는 온갖 주변의 잡다한 소음들은 마치 독자들이 바로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다. 루앙의 대성당 앞에서 질주하는 마차의 행진은 또 어떻고.

 

오늘날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마담 보바리』가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에서도 발견되는 '오래된 진부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언급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가운데 하나는 분명 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온갖 '소설이 지닌 놀라운 가능성과 탁월한 예술성'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사실주의'로 불리든,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로 불리든, 혹은 작품 전부에 짙게 깔린 '음악성이'나 '미술성'이나 심지어 '아이러니'로 불리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의 소설들이 단순히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 또한 연원을 따지고 보면 플로베르가 최초였다. 비록 그는 이 소설을 발표하자 말자 '도덕과 종교를 문란하게 한 혐의'로 곧장 재판정에 불려 나가 자신을 변호하기에 바빴지만 말이다. 하필 보들레르도 똑같은 해에 똑같은 일을 당했다. 『악의 꽃』으로.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 1857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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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7-2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이네요. 저는‘성 앙뚜안느의 유혹‘을 재밌게 봤어요.

oren 2017-07-22 23:28   좋아요 0 | URL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무려 32 시간에 걸쳐 친구들에게 낭독해 줬다가 저 끔찍한 평을 들었다는 바로 그 작품을 재밌게 읽으셨군요!

bgkim 2017-07-23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분들이 부럽군요.귀한 친구를 가졌으니까요.

oren 2017-07-23 13:05   좋아요 0 | URL
친구가 쓴 작품을 들어줄 만한 ‘귀‘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친구들이죠.

bgkim 2017-07-2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친구들 바쁘다고 전화도 씹어요 언감생심 문학얘기 꺼냈다간 귀퉁배기 돌아 갈걸요?
너 요새 시간이 남아도냐면서요

oren 2017-07-23 23: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암튼 재미있는 친구분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