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여러모로 놀라운 책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어떤 식으로 이 책에 대해 막연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이 책은 내게 실로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좀 더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문예' 일반에 대해 예전에는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깨우쳐 주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에 대해 뚜렷한 선입관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가 고대 그리스 철학이 활짝 피어나 '만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던 시기, 다시 말해서 인류가 미망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던 무렵을 대표하던 세 사람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계보의 맨 마지막 주자(走者)로서 막중한 임무를 분에 넘치게 수행했던 인물이었으며,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만학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까지 부여받았지만, 그 모든 위대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정적으로 '너무 무미건조하고 흥미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나 역시 그에 대한 그런 '폭넓게 지지받는 인물평'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의 책을 쉽사리 집어들 수 없었음을 나 스스로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왔었고, 그의 이름이 숱한 고전에서 아무리 자주 언급되더라도 그건 '철학자'들이나 연구할 몫이지 나는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더구나 어떤 책에서 읽은 다음 대목은 그에 대한 흥미를 더욱 떨어뜨렸음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려면 고통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의 스승 플라톤과는 다르게, 그는 매력이 없다. ······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그런데 위의 책을 조금만 더 인용하면 우리는 금세 생각이 좀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쓴『시학』을 무작정 못본 채 외면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고 그에게 붙잡히고 만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분석한 책, 『시학』은 후대의 문학 평론에 엄청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쳤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가 인생에 접근하는 태도는 플라톤에 비하여 현실적이었고 덜 유토피아적이었으며 보통사람들의 성품과 능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 책은 역사상 최초의 '문예 비평'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이다. 그러니 문학과 예술 일반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은 언젠가 한번쯤은 이 책을 꼭 읽어야만 될 듯한 까닭모를 의무감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 책을 좀 더 흥미롭게 읽기 위해 필요한 '사전 지식'은 얼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나는 이 책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시(詩)'를 다룬 책인 줄로만 알았다. 실로 엄청난 착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도대체 어느 시대의 사람인가. 그의 생몰연대는 정확히 BC384∼BC322년이다. 출생으로만 따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2,398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가 쓴 이 책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기는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놀랐던 사실은 이 책이 쓰여질 당시만 하더라도 '문학'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의 '시'란 일반적으로 비극시와 서사시를 말하는 것이었고, 현대시의 주류를 이루는 서정시는 그 무렵에는 아예 싹도 제대로 트지 못했던 듯하다. 글쎄, 그땐 '문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어쨌든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비극을 분석한 책이다. 이 사실만 미리 제대로 알고 접근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억측들을 물리칠 수 있으며, 이 책을 읽고 나면 혹시라도 그 어려운 '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앞으로는 더욱 좋은 시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까지도 슬그머니 거둬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고대 그리스 비극'을 여태까지 단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는데도 우리가 이 책을 굳이 읽어야만 할까? 아니면 우리의 그런 딱한 처지를 고려해서라도 이 책을 읽는 시도를 일찌감치 포기해야만 옳은 일일까? 이 책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도 아직까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비극작가들의 이름과 제목과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가끔씩 들어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내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이해'로까지 나의 얘기를 끌어올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무미건조한 글쓰기'를 통해 고대 그리스 비극을 논한 '시학'을 읽어 보면 우리는 비극시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발원된 온갖 형태의 '문화예술'이 어떻게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오면서 우리의 삶에 얼마만큼 뿌리깊게 영향을 미쳐온 것인지에 대해 그 '연원'과 '원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 비극으로부터 출발한 공연 예술이 세월을 더해감에 따라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연극작품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수많은 공연 예술인 오페라와 뮤지컬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영화와 드라마로까지 이어져 왔음을 그 누가 자신있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스 비극이 인간의 모방 본능에서 비롯되었으며, 인간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뜻에서 그것이 '드라마'로 불렸다는 사실과, 고대 그리스 비극의 목적이 감정의 순화와 배출을 의미하는 카타르시스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은 흔히 문학에서 다루는 이론의 골격이라고도 부를 만한데 그런 내용들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다루는 핵심이다.

그런데 '모방'이란 얼마나 놀라운 성질인가.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발전을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추동력을 인간의 '모방하는 놀라운 힘'에서 찾았다. '모방'에 관해서는『역사의 연구』에서만 그 힘을 새삼 강조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몽테뉴기 이미 옛 시인의 입을 빌어 '흉내의 귀재'인 원숭이를 보고 우리 인간을 떠올리며 감탄해 마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다윈은 마침내『인간의 유래』를 통해 인류의 가장 가까운 조상이 영장류 가운데서도 특히 협비류(狹鼻類) 긴꼬리원숭이임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가장 못난 짐승인 저 원숭이, 어찌도 그리 우리를 닮았는가!     (엔니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中에서

결국 시(詩)란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예술이고,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고 통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시의 탄생'을 연역한 것은 옳았다. 그런데 그의 스승인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국가》를 통해 진실재인 '이데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상을 화가처럼 '모방'하기만 하는 '모방자'에 불과한 시인을 명쾌한 논리로 비판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이 바로 이 책에 담긴 플라톤의 시론(詩論)이다.
 
플라톤 스스로 '시의 매력'에 한없이 이끌리면서도 결국 '이데아'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흠모하는 호메로스를 비롯한 '시인'을 비판해야 하는 서글픈 처지를 지켜보노라면 솔직히 기분이 좀 묘하다. 플라톤의 이 유명한 '시인에 대한 비판적 철학 이론'은 나중에 결국 쇼펜하우어에 의해 '플라톤의 결함'으로 비판받게 되고, 니체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까지 불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시'에 대해 서로 확연히 다른 철학적 입장 차이를 보인 점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시학』이 작시술(作詩術)을 다룬 책이라기보다 '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다룬 책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이 일반 독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가 이 부분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파고들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플라톤은 '자제해야 마땅할 감정에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하는 시인을 못마땅히 여겨 '이상국가'에서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달리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스승인 플라톤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공박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결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 관계와 개연성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함으로써 결국 '보편적인 진리'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작품만 실려 실려 있는 게 아니다. 이 두 명의 철학자를 제외하고도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 호라티우스와 롱기누스가 나머지 저자들인데 그들이 쓴 글은 아무래도 철학자의 작품보다는 훨씬 더 쉽게 읽힌다.

호라티우스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인물인데 그가 남긴 《시학》은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몹시 알차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젊은 시인들을 위한 작시 기법을 탁월하게 설명한다. 이 책 역시 서양 문학 이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는 비록 그리스 고대의 비극 작품과 서사시(특히 호메로스의 두 작품)라는 한정된 소재를 중심으로 쓴 책이긴 하지만, '훌륭한 글쓰기'에 대해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예시가 풍성하게 들어 있어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실용적 조언들'이 가득하다. 가령 어떤 글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고 어떤 글이 유치한 글인지, 혹은 접속사와 은유는 어떻게 다뤄야 좋은지 등에 대한 설명은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들이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시를 잘 읽고 쓰기 위해 『시학』을 펼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더 나아가 문예 비평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으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문예 창작에는 무관심한 나조차도 이 책에 반했다. 나는 이 책을 순식간에 두 번 읽었다. 처음엔 눈으로 읽었고 두 번째는 손으로 쓰면서 읽었다. 베끼면서 읽을 때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만큼 즐겁게 읽었다.

나는 이제껏 글쓰기에 관한 책을 몇 권 산 적은 있으나 여태껏 그런 책들을 붙들고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따분한 책들을 읽을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에 훌륭한 작가가 쓴 훌륭한 책을 단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아직까지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글쓰기'는 분명히 특별한 재능과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이 꼭 훌륭한 작품을 쓰고 싶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글, 더 훌륭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글솜씨를 꾸준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 왔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역할을 기꺼이 떠맡을 책이다. 2,000년 이상 전해져 내려온 이 책의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 * *


접힌 부분 펼치기 ▼

 

아리스토텔레스 / 詩學

플라톤의 입장

예술에 대한 그의 주된 공격은 『국가』제10권에서 전개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예술가들은 진실재(眞實在)인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상(模像) 또는 영상(影像)을 모방하는 데 불과하므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가 시를 공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는 우리의 자제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의 고삐를 풀어줌으로써 '우리가 마땅히 시들어지게 해야 할 것에다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에게는 감정은 제거되어야 할 잡초와 같은 것이었다.(11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


시인이 모방하는 것은 진실재인 이데아가 아니라 그 모상 또는 영상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견해에 관하여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변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플라톤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공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하는 데, 다시 말해서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플라톤이 말하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인 것이다. (13쪽)


카타르시스의 기능

시는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플라톤의 견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억압될 경우 언젠가는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는 감정을 안전하게, 관례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출케 하는 도덕적 기능, 즉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드라마에 부여함으로써 간접적인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13쪽)


비극의 목적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적은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사실이 뚜렷하게 지적된 적이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문학에 심미적 가치를 부여한 최초의 문예 비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비극이 제공하는 특정한 쾌감은 우리의 감정을 좋은 의미에서 구제해주는 선한 활동에 수반되는 쾌감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감정은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위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고 얻는 경험의 쾌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에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판 위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14∼15쪽)


『시학』의 명백한 결점 하나

『시학』의 명백한 결점 하나는 내용상 '시학'이라기보다는 '드라마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만큼 거의 드라마에 관해서만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서사시조차 드라마와 비교하여 간단하게 논한 다음, 서사시는 비극보다 열등한 예술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서정시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가 서정시를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은 그가 별로 관심을 느끼지 못한 소수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19쪽)

모방의 대상

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데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다. 인간의 성격이 거의 언제나 이 두 범주에 속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덕과 부덕에 의하여 그 성격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우리들 이상의 선인이거나, 또는 우리들 이하의 악인이거나, 또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다. (31∼32쪽)


모방한다는 것

시는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실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

그럴 것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비단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 비록 그들의 배움의 능력이 적다고 하더라도 - 최상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건 그 사람을 그린 것이로구나' 하는 식으로 각 사물이 무엇인가를 추지(推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실물을 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기교라든가 색채라든가 그 밖에 그와 유사한 원인에 의하여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방한다는 것과 화성과 율동에 대한 감각은(운율은 율동의 일종임이 명백하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바 인간은 이와 같은 본성에서 출발하여 이를 점진적으로 개량함으로써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37∼38쪽)


고상한 시인들과 저속한 시인들

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고상한 시인들은 고상한 행동과 고상한 인물들의 행동을 모방한 반면 저속한 시인들은 비열한 자들의 행동을 모방했는데, 전자가 찬가(讚歌, hymnos)와 찬사(讚詞, enkomion)를 쓴 것처럼 후자는 처음에는 풍자시를 썼다. (38쪽)


비극의 본질

우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 비극의 본질을 정의해보자.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란 말은 율동과 화성을 가진 언어 또는 노래를 의미하고,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는 말은 어떤 부분은 운문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해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배우가 스토리를 실연(實演)하기 때문에, 첫째 장경(場景, 또는 배우의 분장)이 불가피하게 비극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다음은 노래와 조사(措辭)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모방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란 다름 아니라 운문의 작성을 의미하며,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의 원인은 자연히 두 가지인데 사상과 성격이 그것이며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이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행동의 모방은 플롯이다.

······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이 여섯 가지 요소에 의하여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과 성격과 조사와 사상과 장경과 노래가 곧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한 가지는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세 가지는 모방의 대상에 속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49∼51쪽)


플롯

이 여섯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모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여 드라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52쪽)


비극의 제1원리

그러므로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라도 아무렇게나 칠한 것은 흑백의 초상화만큼도 쾌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53쪽)


플롯의 구성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생물이든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물이든 간에 그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56∼57쪽)


전체와 부분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 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61쪽)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다시 말해 이러저러한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가 등장 인물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62∼63쪽)


삽화적 플롯

단순한 플롯과 행동 중에서 최악의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삽화들이 상호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도 없이 잇달아 일어날 때 이를 삽화적 플롯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종류의 행동을 졸렬한 시인들은 자신들의 무능으로 인해 구성하고, 우수한 시인들은 배우에 대한 고려에서 구성한다. 경연을 위하여 작품을 쓰다 보면 우수한 시인들도 종종 무리하게 플롯을 연장하여 사건의 전후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6쪽)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이러한 사건은 불의에, 그리고 상호간의 인과 관계 속에서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 사건은 이와 같이 발생할 때 저절로 또는 우연히 발생할 때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의도에 의하여 일어난 것 같이 보일 때 가장 놀랍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66쪽)


'인하여' '이어서'

급전이나 발견은 플롯의 구성 자체로부터 발생해야만 하므로 선행 사건의 필연적 또는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68쪽)


훌륭한 비극

가장 훌륭한 비극이 되려면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종류의 모방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77쪽)


비극의 쾌감

비극의 쾌감은 연민과 공포에서 오는 쾌감인 바 시인은 이러한 쾌감을 모방에 의하여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시인이 모방하는 사건에는 이러한 쾌감의 원인이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85쪽)


플롯의 구성과 표현 방식

시인은 플롯을 구성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1) 되도록이면 실제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시인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모순된 점을 간과하는 일이 가장 적을 것이다. ······

2) 또한 시인은 되도록이면 작중 인물의 제스처로 스토리를 실연(實演)해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재능이 같을 경우에는 표현되어야 할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쪽이 더 설득력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3) 스토리에 관하여 말하자면, 기존의 것이든 시인 자신의 창작이든 간에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잡은 다음 삽화를 삽입하여 늘여야 한다. ······

4) 모든 비극은 '분규' 부분과 '해결' 부분으로 양분된다. 드라마 밖의 사건과 그리고 종종 드라마 안의 사건 가운데 일부가 '분규'를 구성하고 나머지는 해결을 구성한다. 나는 스토리의 시초부터 주인공의 운명에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를 '분규'라 부르고, 운명의 전환이 시작된 뒤부터 마지막까지를 '해결'이라 부른다. ······ (104∼108쪽)


조사의 특징

조사(措辭)는 무엇보다도 명료하면서 저속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어로 된 조사는 가장 명료하기는 하나 저속하다. 클레오폰과 스테넬로스의 시가 그 예다. 이에 반해 생소한 말을 사용하는 조사는 고상하고 비범하다. 생소한 말이란 방언과 은유와 연장어와 일상어가 아닌 모든 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부가 이러한 말들로만 된 시는 수수께끼나 야만족의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즉 은유로만 되었다면 수수께끼가 될 것이고 방언으로만 되었다면 야만족의 말이 되고 말 것이다. (129쪽)


비극과 서사시

따라서 비극이 이러한 모든 점에서 그리고 또 시적 효과를 산출함에 있어(왜냐하면 비극과 서사시는 임의의 쾌감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우수하다면 서사시보다 시의 목적을 더 훌륭하게 달성하므로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임이 명백하다. (162쪽)




호라티우스 / 詩學

호라티우스의 시학

호라티우스의 『시학』은 경험적 사실을 분석하여 시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해보려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는 달리, 호라티우스 자신의 경험과 당시의 라틴 문학을 토대로 하여 젊은 시인들을 위한 작시 기법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67쪽)

위대한 시인이 쓴 라틴 문학의 유일한 시론인 호라티우스의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시론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18세기까지만 해도 서양 문학 이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서양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읽어야 할 이론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괴상한 그림

가령 어떤 화가가 사람의 머리에다 말의 목을 이어 붙이고 몸통은 다채로운 깃털로 장식하는 등 온갖 동물에서 그 지체(肢體)를 빌려온 결과 위쪽은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맨 아래쪽은 보기 흉한 잿빛 물고기가 되어버린 괴상한 그림을 그려놓고 그대들을 자신의 화실로 불렀다고 한다면,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과연 이런 그림을 보고도 폭소를 금할 수 있을까요? (171쪽)


단일성과 통일성

이거야말로 도공이 손잡이가 둘 달린 큰 항아리를 만들고자 녹로(轆轤)를 돌렸지만 겨우 조그마한 단지 하나가 만들어진 경우와 뭐가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그대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단일성과 통일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173쪽)


과오를 피한다는 것이 오히려 실수의 원인

우리들 시인들은 대개 올바른 것의 겉모양만 보고 거기에 현혹되고 맙니다. 간결함을 추구하다 보면 모호해지고, 유려함을 추구하다 보면 박력과 불길이 꺼져버립니다. 장엄함을 찾다보면 부자연스러워지고, 너무 소심하게 감정의 비약을 피하다 보면 땅바닥 위를 기는 꼴이 되고 맙니다. 단일한 소재에다 대담한 변화를 통하여 생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이는 숲에다 돌고래를 그려 넣고 파도에다 멧돼지를 그려 넣습니다. 그러나 예술 감각이 결여된 경우에는 과오를 피한다는 것이 오히려 실수의 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173쪽)


능력에 맞는 소재

작가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시라. 그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며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시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소재를 선택한 작가는 조사(措辭)와 언어의 명쾌한 배열 때문에 곤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명쾌한 배열의 장점과 매력은 내가 알기로는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뒤로 미루어 지금은 말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174쪽)


사멸을 면치 못하는 법

계절이 바뀌면 나뭇잎도 바뀌어 옛 것은 떨어지고 새 것이 돋아나듯 단어도 낡은 것은 시들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들처럼 생을 구가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생존과 행적은 사멸을 면치 못하는 법입니다. 어떤 왕이 큰 공사를 일으켜 해신 넵투누스를 육지에 가두어놓고 그로 하여금 함대를 북충으로부터 지키게 하든, 오랫동안 배 없이는 다닐 수 없던 불모의 늪이 인근 도시를 부양하고 쟁기의 무게를 느끼게 되든, 곡식을 위협하던 강물이 진로를 바꾸어 보다 순탄한 길로 흘러가게 되든, 인간이 해놓은 일은 언젠가는 퇴락하게 마련이거늘 어찌 언어만이 유독 변함없는 효력과 영광을 누려야 한단 말입니까? 이미 사멸했던 많은 것들이 다시 태어나고 지금 영광을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소멸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 필요에 의한 것인즉 필요야말로 언어의 법칙과 규범을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176∼177쪽)

(나의 생각)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불멸의 고전' 속에서 발견했던 '호라티우스의 말'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몹시 반갑다.

 * * *
또한, 세월은 수많은 변화와 반전을 불러온다. 여기서 권두에 실은 호라티우스의 인용문을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원래 시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기업의 일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Multa renascenyur quae cecidere, cadentque Quae nunc sunt in honore.
"지금은 실패했지만 회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지금은 축하받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호라티우스Horace <시론 Ars Poetica>



시는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는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는 물론 감미로워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의 얼굴은 웃는 자와 더불어 웃고, 우는 자와 더불어 우는 법입니다. 그대가 나를 울리고자 한다면 먼저 그대 자신이 고통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텔레포스여 그리고 펠레우스여, 그대의 불행이 나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대가 남이 시키는 말만 서투르게 늘어놓는다면 나는 하품과 웃음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비장한 말은 슬픈 얼굴에 어울리고, 위협적인 말은 성난 얼굴에 어울립니다. 그리고 변덕스런 말은 익살스런 얼굴에 어울리고, 진지한 말은 엄숙한 얼굴에 어울립니다. 자연은 그때그때의 경험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즐겁게 해주기도 하고, 격동시키키도 하며, 무거운 근심으로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하고, 불안으로 마음 조이게도 합니다. 그런 연후에 영혼의 감동을 바깥으로 표출시키는데 이때 혀가 그 통역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이때 화자의 말이 그의 체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든 로마 인들은 교양의 유무를 막론하고 폭소를 터뜨릴 것입니다. (180쪽)


만인의 공유물

소재가 만인의 공유물인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그대의 소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이하게 처리하거나, 통역관처럼 글자를 한 자 한 자 그대로 옮긴다거나, 모방자로서 궁지에 빠진 나머지 원전에 대한 외경심과 원전의 특이성으로 인하여 거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82쪽)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바란다면

만일 그대가 공연이 끝난 뒤 다시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배우가 박수를 청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관객들의 갈채를 바란다면 나와 더불어 모든 관객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으시라. ······ 보호인으로부터 갓 해방된 아직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이는 말이나 개나 양지바른 연병장의 잔디밭을 좋아합니다. 이 시절에는 밀랍처럼 유연하기 때문에 쉽사리 나쁜 길로 유혹되며, 좋게 타일러도 잘 듣지 않으며, 이해 타산에 어둡고 금전 낭비가 심합니다. 그리고 포부가 크며, 사랑하던 것을 금세 단념해버립니다. 그러나 장년이 되면 성향이 달라져서 권력과 명예를 중시하고 세도가와 친분을 맺고 싶어하며 차후에 애써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될 모험은 조심스레 피합니다. 노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법입니다. 고생을 하면서도 저축한 것이 아까워 감히 쓰지 못합니다. 만사를 냉정하고 소심하게 처리하되 시간이 지나면 다소 나아지리라는 생각에서 뒤로 미루기가 일쑤고, 무기력하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며, 성미가 까다롭고 괴팍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년이었던 시대를 찬양하며 젊은이들을 꾸짖고 훈계합니다. 오는 세월은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지만 가는 세월은 많은 것을 빼앗아가버립니다. ······ 우리는 연령별로 그 특성을 잘 알아서 거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185∼186쪽)


그리스인들의 작품

그대들은 그리스인들의 작품을 본보기로 삼으시오. 그대들의 선조들은 플라우투스의 시구와 재치를 듣고 감단해 마지않았습니다. (193쪽)


물리치시라

그대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손질하면서 잘 깎은 손톱으로 열 번씩 음미해보지 않은 시일랑 물리치시라.
(195쪽)


만인의 갈채를 받을 작가

시인은 이익을 주려 하거나 또는 쾌감을 주려 하거나 또는 쾌감과 인생에 유익한 것을 동시에 주려 합니다. 그대의 교훈은 간결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혼이 재빨리 포착하여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은 일단 충만하게 되면 나머지는 모두 흘려버리게 마련입니다. ······ 투표권이 있는 나이 지긋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무익한 작품을 비난하고, 거만한 젊은 기사들은 도덕적으로 엄격한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익한 것에 달콤한 것을 가미하여 쾌감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작가는 만인의 갈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책은 소시우스 형제들에게 돈을 벌게 해줄 뿐 아니라 해외로 나가 작가에게 불멸의 명성을 보장해줄 것입니다. (198쪽)


열 번을 거듭해서 보아야만

시는 그림과도 같습니다. 어떤 것은 가까이서 볼 때 더 감동적이고 어떤 것은 멀리서 볼 때 그렇습니다. 어떤 것은 어두운 장소를 좋아하는가 하면 어떤 것은 비평가의 형안(炯眼)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은 장소에서 관람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것은 한 번만 보아도 마음에 들지만 어떤 것은 열 번을 거듭해서 보아야만 마음에 듭니다. (199∼200쪽)


범용한 시인들에 관하여

그러나 범용한 시인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인간도 신도 서점(書店)의 진열창도 그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향연에 듣기 싫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진한 향유가 나오거나, 사르디니아산(産) 꿀을 친 양귀비 종자가 나오면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 없이도 향연을 베풀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원래 영혼에 쾌감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도 정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격검(擊劍)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연병장에서 무기에 손대지 않으며, 구기나 원반 던지기나 굴렁쇠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관중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하여 뒤로 물러섭니다. 그런데도 시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이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용감하게 시를 씁니다. 하긴 왜 못 쓰겠습니까? 그는 완전한 자유민일 뿐 아니라 재산상으로도 기사 등급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품행에 있어서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니 말입니다. (200∼201쪽)

(나의 생각)
쇼펜하우어가 그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예술'을 논하는 부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에 대하여>에서 '플라톤의 詩論'을 비판함과 동시에 시인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호라티우스의 시학'을 인용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사람도 신도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 호라티우스, 《시론》

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이 자기들과 타인의 시간과 종이를 얼마나 망쳐 놓으며, 또 그 영향이 얼마나 해로운가 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을 참다운 걸작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러한 작품들로 대중의 교양을 억제한다. 따라서 천재의 좋은 영향을 정면으로 방해하고,좋은 취미를 점점 해쳐서 시대의 진로에 역행한다. 그러므로 비평이나 풍자를 할 때는 용서나 동정을 하지 말고, 평범한 시인들에게 혹평을 가해서, 그들이 졸작을 쓰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읽는 데에 여가를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시인들의 졸렬한 작품은 온화한 시신인 아폴론까지도 마르시아스의 껍질을 벗기게 할 정도로 격노하게 한다. 나는 평범한 시가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알 수 없다.
(776쪽)



9년 동안

그대는 언행에 있어서 결코 미네르바의 정신을 거역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대에게는 그만한 판단력과 분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언젠가 무엇을 쓰게 되면 그대의 부친과 나의 면전에서 비평가 마이키우스에게 낭독해주시오. 그리고 그 원고를 9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두시오. 발표하지 않은 것은 없애버릴 수 있지만 일단 입 밖에 나온 말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쪽)


여우껍질을 뒤집어쓴 거짓 친구

그대가 누구에게 선물을 주었거나 주려고 한다면 그가 환희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에는 그대의 시를 내놓지 마시오. 그는 감격하여 '오, 얼마나 아름답고 섬세하고 정확합니까!' 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지기도 하고, 우정의 눈물로 시구를 적시기도 하고, 기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할 것입니다. 마치 장레식 때 돈 받고 곡하는 자들이 진심으로 애도하는 자들보다 더 애절한 말을 하고 더 슬픈 표정을 짓듯이 마음속으로 조소하는 자일수록 진심으로 찬양하는 자보다 더 감격한 체하는 법입니다. 왕들은 자신들의 총애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고 싶으면 괴로울 정도로 술을 많이 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시를 쓴다면 여우 껍질을 뒤집어쓴 거짓 친구가 그대를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204쪽)


정직하고 유능한 비평가라면

퀸틸리우스에게 무엇을 낭독해주면 그는 '이것은 더 손질하시오. 그리고 이것도'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는 전부 다 지워버리고 그 잘못된 시구를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시정하는 대신 옹호하려고 들면 그는 그대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도취될 수 있도록 일언반구의 헛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고 유능한 비평가라면 비예술적인 시구는 지적하고, 딱딱한 것은 나무라고, 무미건조한 것은 새까만 횡선을 치고, 지나친 장식은 잘라내고, 어두은 것은 밝게 하고, 모호한 것은 분명하게 하고, 고칠 것은 고치도록 할 것입니다. 그는 그대의 아리스타르코스가 될 것이며, '사소한 일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게 뭐람?' 하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일로 말하자면 언젠가 그가 관객들로부터 조소와 비난을 받게 되는 날 그에게 심한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205쪽)


시켈리아 시인의 최후에 관하여

나병이나 황달이나 무도병(舞跳炳)이나 월야방황증(月夜彷徨症)에 걸린 사람을 보면 모두들 피하듯이 현명한 사람은 광기에 사로잡힌 시인을 보면 무서워 달아납니다. 아이들만이 야유하며 멋모르고 따라다닙니다. 그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시구를 토하다가 실족하여 지빠귀 사냥꾼처럼 우물이나 구덩이 속에 빠지는 날에는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고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보았자 그를 구해줄 사람은 좀처럼 없을 것입니다. 누가 그를 구하려고 새끼줄을 내려보낸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 이 자가 고의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시오. 그는 어쩌면 구조를 원치 않을는지도 모르오.' 나는 그에게 시켈리아 시인의 최후에 관하여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신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서 냉정하게 아이트네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소. 사람들은 시인들에게 자살할 권리와 자유를 허용해야 하오. 삶에 지친 자들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살인이나 다름없소. 이런 짓은 여기 이 자가 처음이 아니오. 그리고 그를 끄집어내보았자 그는 다른 사람들 같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죽음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할 것이오. 게다가 그가 어떻게 해서 시를 짓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않소?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해를 모독했거나 아니면 신성불가침한 낙뢰(落雷) 자리를 제거했기 때문에 부정을 탔을지도 모를 일이오. 아무튼 그는 제정신이 아니오. 이 지긋지긋한 시인은 우리의 창살을 부수고 뛰쳐나온 곰처럼 무시한 사람이건 유식한 사람이건 모두 쫓아버립니다. 그러다가 혹시 누구라도 붙잡는 날에는 꼭 붙들어놓고 자신의 시를 낭송함으로써 지루해 죽게 만듭니다. 거머리는 피를 잔뜩 빨아먹기 전에는 피부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이거든요.' (206∼207쪽)




플라톤 / 詩論

시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플라톤

플라톤은 시와 예술에 관해 따로 책을 쓴 적이 없고 주로 『이온 Ion』과 『파이드로스 Phaidros』와 『국가』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고 있다. 시와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복잡하다. 먼저 나온 두 대화편에서 그는 시인들을 칭찬하고 있으나 『국가』에서는 매우 위험한 자들이라며 가차없이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고 있다. 시인들에 대한 그의 칭찬은 모호하고 유보적인 반면 비판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니체는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불렀다. (211쪽)


모방의 종류

모방의 문제는 특히 『국가』제10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거기서 플라톤은 모방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침대의 경우 첫째로 이데아(idea)의 세계에 있는 신이 만든 불변의 침대 또는 침대 그 자체가 있고, 둘쨰로 이것을 모방하여 목수가 만든 개개의 침대가 있고, 셋째로 화가 또는 시인이 목수가 만든 침대를 모방하여 그린 침대, 즉 이데아 또는 진리로부터 세 단계나 떨어져 떨어져 있는 가상의 모상(模像)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 또는 예술은 모방술(模倣術)이며 "모방술은 그 자신 열등한 것으로서 열등한 것과 결합하여 열등한 것을 낳는 만큼" 시인들은 당연히 이상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12쪽)


호메로스에 대한 존경심

플라톤 자신도 가끔 호메로스에 대한 존경심과 시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을 내비친다. 그리고 그의 대화편들이 고대 그리스를 넘어 서양 산문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시공을 초월한 숭고한 주제들뿐만 아니라 신화와 비유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그것을 풀어나가는 표현 방법, 즉 시적 요소들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해야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13쪽)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 즉 전쟁이나 원정이나 국가의 통치나 인간의 교육에 대해서는 물어서 알 권리를 갖고 있네. (228쪽)


시인들은 가장 진정한 의미의 모방자들

"그렇다면 이런 점들에 관하여 우리의 의견이 꽤 일치된 셈이네. 즉 모방자는 자기가 모방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모방은 일종의 유희이며 진지한 것이 못 된다는 점, 그리고 비극 시인들은 단장격 운율로 작시하든 서사시 운율로 작시하든 간에 가장 진정한 의미의 모방자들이라는 점에 관해서 말일세." (236쪽)


화가를 닮은 시인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붙들어다가 화가의 한짝으로서 그와 나란히 세워도 좋을 것이네. 왜냐하면 그는 진리에 비해 열등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나 혼의 열등한 부분과 교제하고 가장 훌륭한 부분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를 닮았기 때문이네. 따라서 훌륭한 제도를 가져야 할 국가 안으로 우리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네. 그것은 그가 혼의 열등한 부분을 일깨워서 가꾸어주고 강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이성적인 부분을 손상하기 때문이네. 그것은 마치 어떤 국가에서 어떤 사람이 악당들을 권력자로 만들어 그들에게 국가를 맡기고 보다 선량한 자들은 파멸케 하는 것과도 같네." (244∼245쪽)


플라톤이 시인을 비판하는 이유

"그러면 내 말을 듣고 잘 생각해보게나. 자네도 알다시피, 어떤 영웅이 비탄에 빠져 장탄식을 늘어놓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괴로워서 가슴을 치는 장면을 호메로스나 다른 비극시인이 모방할 때면 우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들조차도 이에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자신을 잊고 공감하면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시인일수록 훌륭한 시인이라고 진지한 태도로 칭찬하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면, 자네도 알다시피, 그와는 반대로 침착하게 잘 견뎌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네. 그것이 남자다운 행동이고 우리가 방금 칭찬했던 것은 여자다운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말일세."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칭찬은 과연 옳은 것인가?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워하게 될 그런 인간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는 대신 기뻐서 칭찬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제우스 신에 맹세고,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246∼247쪽)


억압되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부분

"본래는 실컷 울고불고 탄식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에는 억압되어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부분, 바로 이 부분이 시인들로부터 만족과 쾌감을 얻는 부분이네. 한편 우리 안에 있는 본성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이성과 습관에 의하여 충분히 교육되어 있지 못하므로 눈물이 많은 부분에 대한 감시를 늦춰버리네. 왜냐하면 그것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남의 고통이고 또 선량한 인간으로 자처하는 어떤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슬퍼할 때 그 자를 칭찬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그에게는 조금도 수치스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네. 오히려 그는 거기서 얻는 쾌감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네. 왜냐하면 남의 것을 즐기면 그 중 일부는 필연적으로 자기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말일세." (247∼248쪽)


시의 모방은 시들어 없어져야 하는데도 이런 것들에게 물을 주어 가꾸는 일

"또한 애욕과 분노에 관해서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 수반되는 욕망과 고통과 쾌락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시의 모방은 이런 것들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시들어 없어져야 하는데도 시는 이런 것들에게 물을 주어 가꾸고 있으며, 사악하고 비참하게 되는 대신 선량하고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지배해야 하는데도 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의 지배자로 만들고 있으니까 말일세." (249쪽)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우리는 시로부터 완고하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하여 철학과 시는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다는 사실을 시에게 말해주기로 하세. 왜냐하면 '주인을 향하여 깽깽 짖어대는 개'라든가, '바보들의 쓸데없는 잡담 속에서나 위대한 자'라든가, '지나치게 영리한 머리의 오합지졸'이라든가, '어떻게 하다가 결국 거지가 되고 말았는지에 관하여 세심하게 사색하는 자들'이라든가 그 밖에 다른 많은 험담들이 철학과 시 사이의 오래된 불화를 입증해주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세.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시나 모방이 훌륭하게 통치되고 있는 국가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증거만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들의 귀국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 자신도 시의 매력에 이끌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배반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 될 것이다'라고 말일세. 그런데 여보게,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특히 호메로스를 통해서 시를 볼 때 말일세." (251∼252쪽)




숭고에 관하여 / 롱기누스

이 책의 저작 시기

오늘날에는 대체로 이 비평서가 기원후 1세기 또는 2세기 초에 쓰여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58쪽)


유럽의 문예 비평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 책

······ 사이에 논쟁이 벌어져 각각 근대인과 고대인의 우수성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이 비평서를 내세운 뒤로 이 비평서는 유럽 여러 나라들, 특히 영국의 문예 비평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비평서가 흠 없는 범용보다는 흠 있는 천재를, 이를테면 아폴로니오스(Apollonios)보다는 호메로스(Homeros)를,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보다는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를, 박퀼리데스(Bakchylides)보다는 핀다로스(Pindaros)를, 이온(Ion)보다는 소포클레스(Sophokles)를 택하겠다며 그리스 문학의 걸작들인 호메로스, 삽포(Sappho), 핀다로스, 아이스퀼로스(Aischylos),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Euripides), 플라톤(Platon),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의 작품들을 자주 인용하고 이를 정확히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259쪽)


숭고

숭고는 일종의 완벽함 또는 탁월한 표현이고 가장 위대한 시인들과 산문작가들도 다름 아닌 이것을 통하여 일인자들이 되고 자신들을 위하여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라고 장황하게 서론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웅대한 것은 듣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황홀하게 하기 때문이오. 우리를 경탄케 하는 것이 단순히 설득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 언제 어디서나 더 우세한 것은 그것의 놀라게 하는 힘 때문이오. 왜냐하면 우리가 설득되느냐의 여부는 대체로 우리에게 달려 있지만 경탄케 하는 것과 놀라게 하는 것은 대항할 수 없는 권세와 힘을 행사하여 듣는 이를 모두 제압하기 때문이오. 숙달된 창작의 재능과 소재를 정돈하고 배열하는 능력은 한두 구절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전체적인 맥락을 볼 때만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오. 그에 반해 숭고는 제때에 출현하기만 하면 마치 벼락처럼 모든 것을 흩어버리고 단번에 연설가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오. (266∼267쪽)


행운과 좋은 판단

데모스테네스는 인생 일반에 관하여 논하며 가장 큰 행복은 행운이고 그 다음이 좋은 판단인데 이것이 결여되면 행운도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이것도 행운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소. (269쪽)


어린애 장난

그들은 가끔 자신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영감이 아니라 어린애 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오. (273쪽)


과장

과장은 대체로 가장 피하기 어려운 실수 가운데 하나인 것 같소.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하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장대한 것을 좇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바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니까요. 그들은 '큰 목표에 못 미치는 것은 역시 고상한 실수이다'라는 명제를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학의 경우에도 부종(浮腫)은 나쁜 것으로서, 이 공허하게 부어오른 불성실은 아마도 의도했던 것과 상반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오.


유치함, 무의미한 감정 또는 무절제한 감정

과장은 숭고를 능가하려고 하는 반면에 유치함은 장대함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오. 그것은 모든 점에서 저열하고 편협하고 정말이지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이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유치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나치게 공들이다가 냉담함으로 끝나고 마는 현학적 사고가 아닐까요? 비범하고 정교하고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값싸고 야한 겉치레라는 암초에 걸리게 되는 법이오. 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 감정의 분야에서 볼 수 있는 세 번째 실수인데, 이것을 테오도로스는 가짜 주신제(酒神祭)라고 부르고 있소. 그것은 감정이 불필요한 곳에서의 때아닌 무의미한 감정 또는 절제된 감정이 필요한 곳에서의 무절제한 감정을 말하오. 어떤 사람들은 가끔 마치 술 취한 것처럼 주제와 무관한, 순전히 개인적이라서 따분하기만 한 감정을 터뜨리곤 하오. 그럴 경우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청중에게 그들의 태도는 부적절해 보이지요. 그럴 것이 그들 자신은 황홀하지만 청중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오. (274쪽)


가장 심한 유치함

냉담함은 티마이오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소. 그는 다른 점에서는 재능 있는 작가이고 가끔은 장대한 표현을 쓰는 데 성공하기도 하고 박식하고 독창적이지만, 남의 실수는 꼬치꼬치 따지기 좋아하면서 자기 실수는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언제나 기발한 착상을 좇다가 가장 심한 유치함에 빠지곤 하지요. (275쪽)


부적절한 표현의 원인

이 모든 품위 없는 것들은 문학의 경우 단 한 가지 원인에서, 말하자면 새로운 발상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오. 우리의 미덕과 악덕은 같은 바탕에서 생겨나곤 하기 때문이오. 그래서 미려한 문체와 숭고한 표현들과 여러 가지 매력들은 모두 성공적인 글쓰기에 기여하지만 바로 이것들이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의 원인과 토대가 되는 것이오. (280쪽)


경탄의 대상

친구여,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경멸하는 것이 위대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오. 예컨대, 부와 명예와 명성과 권력과 기타 겉보기에 매우 화려한 것들이 그렇소.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큰 선(善)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오. 그런 것들을 경시하는 것 자체가 적잖은 선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들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가질 수 있는데도 경멸할 수 있을 만큼 고결한 사람들이 더 경탄의 대상이 되는 법이오. (282쪽)


진실로 위대한 것

사려 깊고 문학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떤 구절을 몇 번이나 들어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 어떤 고양감을 주지 않거나 아무리 숙고해 보아도 말해진 것 이상을 그의 마음에 남기지 않는다면, 아니 오히려 유심히 살펴볼수록 아래로 처지고 진부해진다면, 그것은 진실로 숭고한 것일 수 없소. 그것은 귀에 들리는 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오. 진실로 위대한 것은 거듭된 검토도 견뎌내고, 그 호소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강력하고도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마음속에 남기기 때문이오. 간단히 말해서, 그대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진실로 그리고 아름답게 숭고하다고 생각하시오. 직업과 생활 방식과 취미와 나이와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작품들에 대하여 똑같은 의견을 갖는다면 그토록 목소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치된 판단은 그들의 경탄이 정당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하고 논박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법이오. (283쪽)


숭고의 다섯 가지 원천

숭고한 문체의 가장 생산적인 원천은 다섯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이 다섯 가지의 공통된 토대는 언어 구사력이고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소.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크세노폰에 관한 나의 저서에서 설명했듯이, 위대한 구상 능력이오. 두 번째는 강력하고도 열광적인 감정이오. 숭고의 이 두 가지 원천은 대체로 타고나는 것이오. 나머지 세 가지는 예술에 의하여 습득될 수 있으니, 문채의 - 여기에는 사상의 문채와 언어의 문채 두 가지가 있소 - 적절한 구성과 이에 덧붙여 고상한 표현법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또 어휘의 선택, 은유의 사용, 언어의 조탁이 포함되오. 위대함의 다섯 번째 원인은 앞서 말한 것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품위 있고 고상한 조사(措辭)가 그것이오. (284쪽)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생각건대, 그는 같은 이유에서 그의 재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쓴 『일리아스』는 작품 전체를 극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가득 채운 반면, 『오뒷세이아』는 대부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년기의 특징이오. 따라서 사람들은 『오뒷세이아』에서의 호메로스를 크기는 그대로지만 힘이 없는 지는 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오. 『오뒷세이아』에서는 그는 이미 『일리아스』의 노래들에서와 같은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니, 그곳에는 결코 범용으로 떨어지지 않는 숭고도 곤두박질치며 쏟아지는 격정도, 다재다능함도, 현실성도,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풍부한 심상도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마치 오케아노스가 자신 속으로 도로 흘러들어 자신의 경계 안에 조용히 머무는 것과도 같소. (295쪽)


구멍과 틈

······ 이들 작가들이 한 것은 말하자면 가장 탁월한 것만을 갈고 닦아 함께 이어붙이되 과장되고 품위 없고 현학적인 것은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소. 이런 것들은 전체를 망쳐놓게 마련인데, 그것은 이런 것들이 상호 관계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는 조화롭고 인상적인 건축물들에 말하자면 구멍과 틈을 만들기 때문이오. (301쪽)


숭고와 확장

대체로 깍아지른 듯한 숭고가 데모스테네스의 특징이라면 키케로의 그것은 확산이오. 우리 동향인은 자신의 힘과 속도와 기세로 자기 앞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말하자면 한꺼번에 불태우며 흩어버릴 수 있소. 그래서 그는 번개와 벼락에 비유될 수 있소. 키케로는, 내가 보기에, 사방으로 번지며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요원의 불길과도 같소. 그의 내면에는 지칠 줄 모르는 불이 활활 타며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번지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소. (305쪽)


'소리 없는 강물'처럼 숭고에 도달하는 플라톤

플라톤으로 되돌아가, 그는 그렇게 '소리 없는 강물'처럼 흐르는데도 숭고에 도달하고 있소. 그대는 그의 『국가』를 읽었으니 그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오. "따라서" 하고 그는 말하고 있소. "지혜와 덕을 모르고 언제나 연회 같은 것에 열중해 있는 자들은 아마도 아래를 향하여 움직이며 그곳에서 평생 동안 헤매게 될 것이네. 그들은 진리를 쳐다본 적도 없고 위를 향하여 움직인 적도 없으며 확실하고 순수한 쾌락을 맛본 적이 없다네. 그들은 가축처럼 언제나 아래만 내려다보며 대지와 식탁 위로 머리를 숙이고는 먹이를 먹고 교미한다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것들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하여 무쇠의 뿔과 발굽으로 서로 차고 서로 떠받다가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서로 죽인다네." (307쪽)

(나의 생각)
이 부분은 플라톤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다. 『평생독서계획』의 저자 클리프턴 패디먼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 * *
"독자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 세 가지를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첫째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데, "탐구하지 않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상이 플라톤의 모든 저작에서 핵심을 이룬다. 두 번째는 지식은 미덕이라는 것이다. 충분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충분히 선량한 사람이다."


숭고에 이르는 다른 길

이 작가는,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면, 앞서 언급했던 것들 외에도 숭고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소. 그것은 대체 어떻게 생긴 어떤 종류의 길일까요? 그것은 과거의 위대한 산문 작가들과 시인들을 열심히 모방하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친구여, 이 목표를 부단히 추구하도록 합시다. 많은 작가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김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이오. (308쪽)


경쟁자와 싸우듯이 호메로스와 상을 다툰 플라톤

헤로도토스만이 가장 호메로스적이었을까요? 천만에 그 이전에 스테시코로스와 아르킬로코스가 있었고 어느 누구보다도 플라톤이 있었소. 그는 호메로스라는 샘으로부터 그 자신이 사용하기 위하여 수많은 실개천을 냈던 것이오. 나는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요. 암모니오스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들을 간추려 기록해두지 않았더라면 말이오. 그런 것은 표절이 아니오. 그것은 조각이나 그 밖에 다른 예술에 의하여 아름다운 형상들을 재현하는 것과도 같소. 그리고 생각건대, 플라톤은 마치 젊은 전사가 만인이 경탄하는 경쟁자와 싸우듯이 호메로스와, 제우스 신께 맹세코, 온 마음을 다해 상을 다투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철학 이론들을 그렇게까지 꽃비우지 못했을 것이고, 시의 주제와 언어에 그렇게 자주 함께 승선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는 아마도 경쟁심에서 지나치게 투지에 넘쳐 있지만, 그런 다툼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었소. 헤이오도스에 따르면, "그런 불화는 인간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선배들에게 지더라도 그것이 불명예가 아닌 곳에서는 명성을 위한 투쟁과 승리의 영관은 정말이지 그 무엇보다도 다투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309쪽)


실용적 조언

따라서 우리도 숭고한 표현과 고매한 사상을 요구하는 구절을 쓸 때는, 호메로스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나 또는 역사에서 투퀴디데스는 이것을 어떻게 숭고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좋소. 왜냐하면 경쟁심은 이 위대한 분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줄 것이고, 그러면 그 분들이 우리의 생각들을 우리가 정해놓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것이기 때문이오. 나아가 호메로스나 데모스테네스가 여기 있었다면 나의 이 구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또는 나의 이 구절이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본다면 그것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오. 우리가 그러한 배심원들과 청중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영웅적인 심사원들과 증인들에게 우리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경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대가 "내가 이렇게 쓰면 후세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더 고무적일 것이오. 누군가가 자신의 생애와 시대보다 오래 지속될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의 마음속 구상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발육이 부전하여 유산되고 말 것이며, 후세의 명성의 날을 위하여 결코 완전하게 태어나지 못할 것이오. (310∼311쪽)


문채와 숭고

회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요. 빛과 그림자가 색채로 재현되어 같은 화면 위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도 빛이 먼저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빛이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훨씬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오. 그와 같이 문학에 있어서도 감정과 숭고는 우리의 마음에 더 가깝소. 그리고 그것은 타고난 친화력과 광채 때문에 언제나 문채에 앞서 우리의 주의를 끌어 문채의 기교를 가림으로써, 말하자면 그것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오. (325쪽)


접속사의 몇 가지 불리한 점

그대가 이렇듯 접속사를 계속해서 삽입할 경우 감정의 긴박함과 울퉁불퉁함이 접속사의 사용으로 매끈하고 평탄해져서 찌르는 맛이 없어지고 금세 열기를 잃게 되오. 달리는 사람이 몸이 묶이면 속력을 빼앗기듯이, 마찬가지로 감정도 접속사와 다른 군더더기에 의하여 방해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소. 그럴 경우 그것은 운동의 자유를 잃게 되어 나는 무기가 발사된 듯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오. (332쪽)


인칭 바꾸기

친구여, 그대는 보이지 않으시오. 어떻게 그가 마음속으로 그대를 데리고 그곳을 통과하며 그대가 들은 것을 눈으로 보게 해주는지 말이오? 그런 구절들은 실제 인물에게 직접 말을 건넴으로써 듣는 이를 사건의 현장으로 데려다주는 것이오. (343쪽)


우회적 표현

음악의 경우 이른바 반주에 의하여 주선율이 더 감미로워지듯이, 우회적 표현은 가끔 직접적 표현과 조화를 이루며 그것이 더 아름답게 들리게 해주는데, 우회적 표현이 과장되거나 몰취미하지 않고 쾌적하게 섞일 때에는 특히 그러하오. (347쪽)


적절하고 장대한 말들의 선택

사상과 표현법은 대체로 밀접한 관계가 있소. 따라서 우리는 표현법의 영역에서 아직도 고찰되어야 할 요소들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오. 적절하고 장대한 말들의 선택은 놀랄 만큼 청중을 유인하고 매료하며, 연설가들과 산문 작가들은 모두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소.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써 우리의 말들에 마치 가장 아름다운 조각에게처럼 대번에 장대함과 아름다움과 매력과 무게와 기운과 힘을 주기 때문이오. 그것은 말하자면 사물들에 생명과 목소리를 불어넣는 것이오. (351쪽)


은유

앞서 문채들에 관해서도 말했듯이, 강력하고 시의에 맞는 감정과 진정한 숭고야말로 중첩된 또는 대담한 은유에 대한 특효약이라는 것이오. 그것들은 급한 물살로 모든 것을 휩쓸어가거나 앞으로 내모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오. 아니, 그것들은 필수적으로 대담한 심상들을 요구하오. 그것들은 청중에게 은유의 수를 세어볼 여유를 주지 않소. 청중도 연설가의 열광에 참여하기 때문이오. (356쪽)


자신들의 위대성 때문에

내가 알기로 가장 위대한 천재들은 흠 없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오. 완벽한 정확성은 진부해질 위험이 있으나, 위대한 저술에서는 큰 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가 간과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오. 아마도 저급하고 평범한 재능들은 모험하지 않고 높은 곳을 노리지 않는 까닭에 대체로 실수로부터 안전할 수밖에 없는 반면, 위대한 재능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위대성 때문에 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오. 내가 알고 있는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무엇이든 그 본성상 언제나 더 나쁜 측면이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오. 실수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남지만, 탁월성에 대한 기억은 금세 녹아 없어지는 법이오. (360∼361쪽)


정신의 위대성 때문에

나 자신도 호메로스와 다른 위대한 작가들의 적잖은 실수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는 이들 실수들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흐뭇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의도적인 실수라기보다는 천재의 부주의와 소홀함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일어난 간과(看過)라고 보기 때문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탁월성들이야말로 설사 그것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언제나 상을 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오. 다른 이유가 없다면 그것들이 보여주는 정신의 위대성 때문에라도 말이오. (362쪽)


데모스테네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건대, 휘페레이데스의 아름다움들에는 비록 그 수는 많지만 위대성이 결여되어 있소. 그것은 정신이 맑은 사람의 태작(駄作)으로서 청중을 감동시키지 못하오. 휘페레이데스를 읽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러나 데모스테네스는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천재의 탁월성들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여주니, 숭고한 말의 긴장감, 생동감 넘치는 감정, 충만, 준비성, 필요한 곳에서의 속도 그리고 그 자신의 접근하기 어려운 맹렬함과 힘이 곧 그것이오. 내 말하노니, 그는 신이 보낸 이 모든 재능들을 - 그것들을 인간적인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경한 짓일 테니까요. - 자신 안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들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도 자신이 가진 장점들로 경쟁자들을 모두 이기며 말하자면 천둥과 번개로 모든 시대의 연설가들을 무색케 하는 것이오. 그래서 그의 지속적인 감정의 분출을 태연히 지켜보느니 차라리 떨어지는 벼락을 향하여 눈을 뜨는 편이 더 수월할 것이오. (365쪽)


신들과 같은 작가들이 의도했던 것

그렇다면 문학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것을 추구하고 세세한 정확성을 경멸했던 저 신과 같은 작가들이 의도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은 열등하고 품위 없는 동물이 되도록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의 관람객이자 명예를 사랑하는 경쟁자가 되도록 마치 큰 축제에 초대하듯 우리를 생명의 세계와 전 우주 속으로 데려다 주었으며, 그래서 자연은 처음부터 무엇이든 위대하고 우리 자신보다 더 신적인 것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욕구를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았다는 인식이오. 따라서 전 우주도 인간의 고찰과 사고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우리의 사고는 때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오. 그리고 인생을 두루 살펴보고 만물 속에서 비범한 것과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우세한지 보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금세 알게 될 것이오. (366∼367쪽)


문장 구조

말해진 것에 장대함을 부여하는 데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의 결합보다 중요한 것은 없소. 그것은 신체의 경우와 같소. 개개의 사지는 다른 것과 분리되면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나 전체가 결합하면 완전한 통일체를 이루오. 마찬가지로 장대함의 효과들도 서로 분리되면 그것들 자체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숭고의 효과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지만, 하나의 전체로 결합되고 화음의 띠들로 둘러싸이면 하나의 완전문(完全文)으로 완결되는 것 자체에 의하여 살아 있는 목소리를 얻게 되는 것이오. (381쪽)


숭고를 저해하는 것들 : 젠체하는 저질 리듬

나약하고 흥분된 리듬만큼 숭고한 구절을 해치는 것은 없소. 이것들은 순수한 무도 리듬으로 변질되고 마오. 지나치게 리듬화된 것은 무엇이든 가장 미세한 감정적 효과도 없이 단조로이 반복됨으로써 금세 부자연스럽고 싸구려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오. 그러나 가장 나쁜 점은, 마치 노래가 청중의 주의를 드라마의 줄거리로부터 억지로 자기에게로 끌듯이, 지나치게 리듬화된 산문도 청중에게 말의 효과가 아니라 리듬의 효과만을 전달한다는 것이오. 그리하여 청중은 가끔 끊어지게 되어 있는 부분들을 미리 알고는 무용에서처럼 연설가보다 한발 앞서 그를 위하여 발로 박자를 맞춰주는 것이오. 난도질해놓은 문체 마찬가지로 너무 촘촘하거나 작은 단편들과 짧은 음절들로 잘라놓은 구절들도 장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소. 그런 구절들은 말하자면 군데군데 나무못으로 거칠고 울퉁불퉁하게 이어 붙여놓은 듯한 인상을 주게 마련이오. (384∼385쪽)


간결과 장황

지나치게 간결한 표현도 숭고를 저해하오. 숭고는 너무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되면 손상되기 때문이오. 이 말은 적절한 압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것을 작은 조각들로 절단하는 것을 의미하오. 절단은 의미를 저해하지만 간결은 곧장 핵심으로 나아가기 때문이오. 반대로 장황한 표현은 때 아니게 늘이는 까닭에 생기가 없소. (386쪽)


여담 : 문학 쇠퇴의 여러 가지 원인

······ 호메로스의 말처럼, "예속의 날은 미덕의 반을 앗아가버리기 때문이오. 그래서" 하고 그는 말을 이었소.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퓌그마이오이 족 또는 난쟁이족을 가두어두는 새장들이 그 안에 갇힌 자들의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을 옭아매는 사슬들로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예속도 설사 그것이 정당화된다 하더라도 영혼의 새장과 공동의 감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대답했소. "친구여, 언제나 현재 상황을 헐뜯는 것은 쉬운 일이며 또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위대한 인물들을 망쳐 놓는 것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욕망들을 움켜잡고 있는 이 끝없는 전쟁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점거하여 이를 뿌리째 파괴하고 있는 열정들일 것이오.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탐욕스런 병인 금전욕과 향락욕은 우리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소. 아니, 그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익사시킨다고 해야겠지요. 금전욕은 우리를 시들게 하는 병이고, 향락욕은 가장 비열한 것이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무한한 부를 그렇게 존중하고도, 아니 신격화하고도 어떻게 거기에 수반되는 악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소. 제어되지 않은 무한한 부에는 사치가 가까이서 사람들 말마따나 보조를 맞추며 뒤따르기 때문이오. 부가 도시들이나 집들의 문을 여는 순간 사치도 함께 들어가 그 안에서 살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생활 속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면 철학자들 말마따나 그곳에 둥지를 틀고는 곧 새끼를 치기 시작하는데, 탐욕과 교만과 허영이 곧 그것이오. 이것들은 서자가 아니라 그것들의 적자들이오. 그리고 이들 부의 자식들은 성년이 되면 곧 우리 마음속에 사정없는 폭군들인 오만과 무법과 파렴치를 낳게 되지요. 이것은 불가피한 과정이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이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의 명성에 유념하지도 않을 것이오. 이러한 악덕들이 순환하는 가운데 인간들의 삶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의 위대성은 이울다가 사라지며 더 이상 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인간들은 자신들에게서 필멸의 부분은 존중하고 불사의 부분은 개발하기를 게을리하기 때문이오. (393∼394쪽)

 

펼친 부분 접기 ▲



 




  1. 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from Value Investing 2014-01-10 17:58 
    올해 초에 문득 집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나니 그 책 속의 작가들과 작품 속 인물들이 자꾸만 나를 '고대의 영웅들이 숨을 헐떡이며 분주히 돌아다니던' 어느 영광스러운 과거의 순간들로 끌어당기는 듯하다. 성난 바람을 안고 잔뜩 부풀어 오른 돛을 단 날쌘 함선이 갑자기 나타나 거센 바다 한복판으로 미끄러지며 내달리는 풍경이 어느새 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벌써 나는 대략 2,500년 전쯤의 고대 그리스의 바닷가 어느 해안까지 한 순간에 훅
  2. 참을 수 없는 글읽기의 '가려움'
    from Value Investing 2014-01-13 14:51 
    어떤 글을 읽다가 어떤 '가려움'을 느꼈다면 그 원인은 필시 다음의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글 속에 자체적으로 '가려움'이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스스로 '가려움'을 느꼈거나.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떤 글을 읽다가 어떤 '가려움'을 느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가려움'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옳을까. 이런 선택이 특히 어려운 경우는 그 '가려움'을 어떤 강도로 긁든지 관계없이 긁는 대상이
  3. 모방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4-02-01 00:16 
    (밑줄긋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발견한 구절들 모방한다는 것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실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37쪽) 고상한 시인들과 저속한 시인들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고상한 시인들은 고상
 
 
함께살기 2014-01-10 19:07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생각하고 돌아볼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이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으면서
아름다운 새 이야기를 환하게 빚을 수 있겠지요.

oren 2014-01-10 19:36   URL
아주 오래 전에 쓰여진 옛날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어서 더욱 놀라운 책이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옛 시인이 쓴 책들을 읽어볼 생각을 하니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 들려달라고 조를 때의 심정을 새삼 알 것 같기도 하구요. ㅎㅎ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10. 자기 의지의 아낌에 대하여


소란스럽게 꿈틀거리지 않으면 1116

어떤 일에 흥분해서 거기 잡혀 끌려 드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그들에게 상관 있는 일이거나 없는 일이거나, 어디를 가도 그 모양이다. 그들은 일이 있는 데서나 의무를 진 데서나 무차별하게 끼어들어 간섭한다. 그리고 소란스럽게 꿈틀거리지 않으면 산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위해서 일을 찾는다."(세네카)


이런 것만이 우리가 인색해야 유익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 1116

아무도 남에게 자기 돈은 나눠 주지 않으나 각자는 남에게 자기 생명과 시간을 나눠 준다. 이런 것만이 우리가 인색해야 유익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이보다 우리가 더 낭비하고 있는 것도 없다.


초조는 시간을 늦춘다 1121


철학은 우리가 받은 모욕에 대한 징벌에서, 거기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흩뜨리기를 바란다. 그것은 복수를 덜 하라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더한층 확실하고 준엄한 일격을 가하기 위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것은 지장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분노는 마음을 혼란시킬 뿐 아니라, 그 자체로써 징벌하는 자들의 힘을 피로하게 한다. 그 열기가 그들의 힘을 마비시키고 소모시켜 버린다. 초조하게 굴면 "초조는 시간을 늦춘다"(퀸투스 쿠르티우스) 조금합이 다리를 내밀며 거기 걸려서 멈추게 한다. "조급은 오히려 얽혀들게 한다."(세네카) 예를 들면, 내가 보통의 습관에서 보는 것처럼, 탐욕에는 그 자체보다 더 큰 장애가 없는 것이다. 탐욕이 더 긴장되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소득은 더욱 적어진다. 일반적으로 탐욕은 후덕함이라는 가면을 쓸 때에 더 빠르게 재물을 얻는다.


결국 어떠한 부유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122

인간이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안다면
그는 상당히 풍부할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못한 바에,
결국 어떠한 부유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루킬리우스)

소크라테스는 어떤 자가 많은 재물과 보패와 값비싼 가구 등으로 화려한 행렬을 차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물들을 나는 욕심내지 않은 것인가!" 하고 말했다. 메트로도로스는 하루에 콩 12온스로 살아갔다. 에피쿠로스는 그것도 들지 않았다. 메트로클레스는 겨울에는 양 떼들과 같이 자고, 여름에는 사원의 울 안에서 잤다.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세네카) 클레안테스는 자기 손으로 살아가며, 할 수 있다면 다른 클레안테스 하나쯤은 더 살리겠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1133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다. 내 습관에 부족한 것은 내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온 생활 상태를 축소시키고 줄여 놓는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복이 터진들 무엇하리 1123

나는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거나 길들지 않은 새로운 방식에 몸을 던져 볼 나이는 이미 지났다.

재산이 느는 것도 귀찮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 될 때는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큰 복이 내 손에 굴러떨어진다면, 왜 내가 그것을 누릴 수 있던 때에 오지 않았던가 하고 슬퍼할 것처럼

내가 향락지 못한다면 복이 터진들 무엇하리.      (호라티우스)


울화만 터지게 하는 선물 1123


이제 떠나려는 나의 일이니, 사람들과의 교섭에 필요하다고 배우는 예지 같은 것은 아무나 오는 사람에게 쉽사리 넘겨 주었다. 그것은 식사가 끝난 뒤의 겨자 격이다. 나에게 쓸모없는 보배는 소용이 없다. 이미 머리가 없는데, 학문이 무슨 소용이랴? 제때에 오지 않고 철 늦게 와서 울화만 터지게 하는 선물은 오히려 운이 나에게 주는 모욕이고 총애를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다. 나를 지도하기는 이제 그만두라. 나는 더 길이 없다. 그 많은 종류의 능력들 중에 참을성 만으로 충분하다. 폐가 썩어 가는 가수에게 탁월한 최고음의 능력을 주어 보라. 또 아라비아 사막으로 보내져 숨어 사는 사람에게 웅변술을 주어 보라.


출발점에서 멈추지 않는 자는 그 진행을 정지시킬 마음이 없는 것이다 1131

나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내 감정의 흥분을 그 시초에 막으며, 힘이 들기 시작하는 문제는 열중하기 전에 포기해 버린다. 출발점에서 멈추지 않는 자는 그 진행을 정지시킬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정열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문을 닫지 않는 자는 들어오고 나서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을 잘 처리하지 못한 자는 끝처리도 못할 것이다. 흔들리는 것을 떠받치지 못한 자는 쓰러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바시락거리는 것 1131

나는 폭풍의 시작을 알리는 잔 바람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만지작거리며 바시락거리는 것을 때맞게 느낀다. "심령은 압도되기 오래 전에 동요된다."(세네카)


일이 진행되면 1133


일을 시작할 때에는 우리는 일을 이끌어 가며 마음대로 해 나간다. 그러나 다음에 일이 진행되면, 일이 우리를 이끌며 흥분시켜서 우리가 그 뒤를 쫓아가야만 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의 경우 1137

누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당신 부친은 평화롭고 통치하기 쉬운 커다란 영토를 남겨 줄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 소년은 그 부친이 많은
승리를 거두고 정치를 올바르게 해 가는 것을 보고 시기하였다. 그는 유약하고 부드럽게 세계 제국을 누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에 가서 알아볼 수 있는 이 영광이란 대체 무엇인가? 1138


의식해서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적어도 야심을 가지고 야심을 배격하자. 모든 종류의 인간들에게 굽실거리며 구걸하게 하는 그런 비속하고 거지 같은 명성과 영광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을 경멸하자. 무슨 더러운 방법이건 어떠한 천한 값으로라도, "시장에 가서 알아볼 수 있는 이 영광이란 대체 무엇인가?"(키케로) 이렇게 영광을 얻는 것은 불명예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영광을 탐하지 말자. 모든 유익하고 순진한 행동을 가지고 뽐내는 일은, 이런 일을 심상치 않고 희귀하게 보는 자들이 할 일이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에게 힘이 든 가치로 올려놓는 것이다.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1139


선한 행동의 명성이 높아 감에 따라 나는 그 선한 점이 선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도 명성을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을 억누른다.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그것을 성취한 자들의 손에서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거나, 점잖은 사람들이 다음에 그것을 택하여 세상에 묻혀 있는 것을 드러내고 그 자체가 좋으므로 세상에 알려지고 드러날 때에, 한층 더 운치가 나는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성취된 행적이 훨씬 더 찬양할 만하다고 본다"(케케로)고 세상에서 가장 허영스런 인물은 말한다.



11. 절음발이에 대하여


자기 사상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생각 1144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사상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생각보다 더 강한 욕구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 보통 수단으로 부족하면 우리는 명령과 폭력과 화형까지도 사용한다. 진리에 관한 최선의 감식이 광신자의 수가 현자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신도들에게 맡겨지도록 일이 되면 큰 불행이다. "판단력의 모자람이 없는 것만큼 범상한 일은 없다는 격이다."(키케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권위 1144


다음에는 이것이 증거와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권위와 그 증언에 세월의 관록이 붙어서 더 지각 있는 자들에게 전파되어 간다. 나로서는 나 하나가 믿지 않는 일은 믿는 자가 백이 되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사상을 햇수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나의 생각)

주식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누구누구도 샀다고 하더라. 누구누구도 좋게 본다고 하더라'는 식이다.


나 자신보다 더 확실한 괴물이나 기적은 본 일이 없다 1145


나는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확실한 괴물이나 기적은 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피곤한 일도 습관이 되어서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찾아보고 알아보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나의 기형적인 꼴에 놀라며, 더욱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것 같다 1146


우리는 모든 사물들을 규범을 세워서 단정적으로 말한다. 로마에서 하던 재판소의 어법으로는, 한 증인이 자기 눈으로 보았다고 진술하고 재판관이 가장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판결할 때에도, "이런 것 같다"라는 어법을 쓰기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확실하다고 단정해서 말하면, 나는 그것을 진실된 일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진다. 나는 우리 말투 중에 말의 의미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혹시, 어쩌면, 어떤 사람들 말이, 내 생각에는" 식의 어법을 좋아한다.



12. 인상에 대하여



비밀스러운 광명을 발견하기에는, 소크라테스의 경우 1153∼1154


우리는 톡 쏘고 부풀어올리고 기교로 팽창된 것밖에 우아한 맛을 보지 못한다. 순박성과 단순성 밑에 흐르는 우아미는 우리와 같은 천하고 상스런 취미에는 걸려 오지 않는다. 그런 것에는 미묘한 미가 숨어있다. 이런 숨겨진 비밀스러운 광명을 발견하기에는 깨끗이 씻어진 명철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 순박이라는 것은 우리들로 보면 우둔의 사촌뻘이며 비난받을 소질이 아니던가? 소크라테스는 타고난 범상한 동작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여 간다. 농사꾼도 그렇게 하며 여자라도 그렇게들 한다. 그는 마부·농담꾼·나막신장이·토역장이의 말투밖에 입에 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범속한 행동들에서 끌어 낸 귀납이며 유추이다. 아무라도 그것을 이해한다. 우리 따위, 어려운 학설로 명성을 떨치지 않은 모든 것은 평범하고 비속한 것으로 보며, 겉모양과 허식으로 꾸며 보이지 않으면 풍부성을 알아 주지 않는 우리들은 그렇게 비속한 형태로는 그의 고상하고도 찬란하고 감탄할 만한 사상들을 결코 식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겉치장으로만 꾸며져 있다. 사람들은 바람으로만 속을 채우고 고무풍선처럼 둥실둥실 떠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헛된 생각을 내놓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인생에 더 밀접하게 필요한 사묻들과 교훈을 찾아 주는 데 있다.

그는 또 항상 변함 없고 한결같았다. 그리고 몸을 솟구쳐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기질로 자기 정력의 궁극에까지 올라갔다. 더 자세히 말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올려놓은 것이 아니고, 도리어 자기를 끌어 내려서 그 근원의 본성으로 돌려 놓으며, 정력과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 나갔다. 카토의 경우는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긴장의 자세이며, 그의 생애와 죽음의 고매한 행적에서는 늘 위풍있게 말을 타고 있던 그의 풍모가 명백하게 느껴진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땅으로 기며 유연하고 평범한 보조로 가장 유용한 사상을 다루고, 그의 죽음에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역경에 처해서도 인간다운 삶의 길을 밟아 갔다.


멈출 줄 모른다 1155

사람은 어떤 일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멈출 줄 모른다. 탐락이건 재산이건 권력이건, 그는 자기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의 탐욕은 절제가 불가능하다. 알고자 하는 욕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가 해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스스로를 위해 끌어 내며, 지식의 유용성을 그 재료가 있는 한 확대시킨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연구에도 무절제 때문에 고생한다."(세네카)

아그리콜라의 모친이 그 아들의 맹렬한 학문 연구 의욕을 억제하였다고 타키투스가 칭찬한 것은 옳은 일이다. 확고한 눈으로 보면, 학문은 다른 재물과 같이 인간이 타고난 고유의 약점과 허영이 많이 섞여 있는 값비싼 것이다.


학식의 사용 1155


학식의 사용은, 다른 식량이나 음료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대체로 우리가 사들인 물건은 그릇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며, 거기서 그 가치를 우리 마음대로 심사해 보고, 어느 시간에 얼마나 가져다 쓸까를 정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학문은 우리 심령밖에는 당장 다른 그릇에 담아 둘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지식들을 사들일 때에 그것을 삼켜 버리며, 장터에서 나올 때에 벌써 몸이 그 해독을 입었거나 그 때문에 개선되었거나 한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심령에 장애와 부담밖에 안 되며 우리를 치유해 준다는 핑계로 해를 끼치는 것도 있다.


책은 나를 훈련은 시켜 주었을망정 가르쳐 준 것은 별로 없다 1156

내가 키케로의 《투스쿨라나에》(키케로의 대표적 작품)를 못 읽어 보았더라면 죽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진실로 죽음을 마주 대하고 보니, 말재주는 좀 늘었으나 마음에는 별로 얻은 것이 없다고 느낀다. 마음은 내 본성이 만들어 준 그대로이며, 사람들과 공통의 보조로 싸움을 위해서 무장하고 있다. 책은 나를 훈련은 시켜주었을망정 가르쳐 준 것은 별로 없다.

뭐라고? 학문이 새로운 방어책을 가지고 우리가 타고난 불운에 대항해서 새로운 방비로 무장해 주려고 시도하다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이치와 묘책을 지닌 것 이상으로 이 인생이라는 불운이 바로 거창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인상을 우리의 사상 속에 깊이 새겨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학문이 우리를 쓸데없이 깨우치는 묘책이다. 속이 가장 짜이고 현명한 작가들을 두고 보아라. 그들은 옳은 논법을 둘러서 얼마나 경박한 다른 논법들을,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이 빈 논법들을 뿌려 놓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언어만의 헛된 말재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유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달리 쓸데없이 너저분한 이론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 서적 속에도 빌려 왔거나 모방했거나 해서, 이런 식의 문장이 상당히 여러 군데에 끼여 있다. 그러므로 좀 묘한 구절을 힘차다고, 날카로운 점을 견고하다고, '마시기보다도 맛보기에 더 좋은 것'(키케로)을 가지고 잘되었다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재치가 아니라 심령이 문제될 때에'(세네카) 마음에 드는 것 모두가 배불려 주는 것이 아니다.


세네카 vs 풀루타르크 1157

세네카가 죽음을 준비하는 데 들인 노력을 본다면, 그가 마음을 단단히 잡고 안심하려고 진땀 흘리며, 이 외나무다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죽을 애를 써 가며 허우적거리던 꼴을 본다면, 만일 그가 죽을 때에 아주 씩씩하게 체면을 유지하지 못했던들, 나는 그에 대한 평판을 뒤집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고민이 그렇게까지 자주 일어난 것은, 그 자신이 열정적이고 괄괄한 성격이었던 것을 보여 준다. 위대한 심령은 더 고요하고 침착한 태도로 표현된다. "정신은 한 색채를 가졌고 심령은 그보다 다른 색채를 가진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는 그의 논법으로 설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점에서 그의 적수인 죽음에서 몰려 지낸 것을 보이고 있다.

플르타르크의 태도는 한층 더 경멸조이고 풀려 있던 만큼, 내가 보기에 그만큼 더 씩씩하고 사람을 설복시키는 힘이 있다. 나는 그의 심령이 더 침착하고 절제된 동작을 가졌다고 쉽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전자는 한층 더 생기 있어서 우리를 자극하고 놀라 일어나게 하며 정신에 더욱 감명을 준다. 후자는 더 태연하여 꾸준하게 우리를 만들어 주고 세워 주고 힘돋워 주며, 우리의 이해력을 더욱 감동시킨다. 전자는 우리의 판단을 앗아간다. 후자는 그것을 얻게 한다.


대지 위를 내다보자 1157


우리가 이런 학문의 노력으로 자기를 무장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대지 위를 내다보자. 거기 퍼져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가엾은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니 카토니 모범이니 교훈 등은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본성은 그들에게서 날마나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강직한 지조와 인내의 효과를 끌어 낸다. 그들 중에 가난을 가난으로 알지 않고, 죽음을 자진해서 바라거나, 또는 죽음의 고비를 놀라지도 괴로워하지도 않고 넘기는 자들을 얼마나 예사로 보는가?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 1161


플라톤은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병폐를 고치려고 폭력으로 평화를 문란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민을 살육하고 피를 흘려 가며 하는 개혁을 용인하지 않았다. ······ 나는 이 방면에는 플라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플라톤주의자였다. ······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이런 가장 못된 사태를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를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택하며, 아주 확실하게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가장 명백한 원칙을 가지고 자기 영혼의 구제를 찾고, 하느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정부와 관리와 법률을 둘러엎고, 어머니(조국)의 사지를 찢어서 옛날의 적에게 갉아먹게 던져 주고, 동포애를 골육상쟁의 증오심으로 채우고, 마귀와 광귀들을 원군으로 청하면서, 하나님의 법의 거룩한 평화와 정의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이해력이 우둔한 수작을 본 자가 하나라도 있을까 자주 의심을 품어 본다.


야심과 탐욕과 잔인성과 복수심은 그 자체로서 본연의 기세를 충분히 갖지 않았다. 그런 것을 정의와 신앙의 영광스런 자격으로 뜨겁게 해 주고 부채질해 주자. 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함이 합법적으로 되고,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도덕의 망토를 입는 꼴보다 더 괴악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신보다 더 심한 기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을 구실 삼아 범죄를 은폐한다."(티투스 리비우스) 플라톤에 의하면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이다.


상상한 고통 1170


"불행으로 겪는 고통은 상상한 고통보다 덜 느껴진다"(퀸틸리아누스)고 한 말은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한 작가에게서 실제로 나온 말이다.


죽음과 삶에 대한 걱정 1170


우리는 죽음의 근심으로 삶을 방해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을 방해한다. 하나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죽어 갈 때밖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1171


나는 내 이웃에 사는 농민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본성은 그에게 죽어 갈 때밖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더 점잖게 해치운다. 이 철학자는 죽음과 죽음에 관한 오랜 예측 때문에 두 번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의견에 따르면, 가장 예측하지 않은 죽음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가벼운 죽음이다. "필요하기 전에 고민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는 일이다."(세네카)

사상에서 생기는 이 괴로운 심정은 우리의 호기심에서 나온다. 우리는 미리 내다본다고 하며, 본성이 정해 준 일을 앞질러서 지배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장애만 끼친다. 아주 건강할 때에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식사할 때에 입맛마저 잃는 수작은 의사들이나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1172∼1175


"여러분, 내가 당신들에게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청한다면, 그것은 내가 이 세상의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사물들에 관한 더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다른 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는 내 고발자들의 밀고에 걸리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는 죽음과 사귄 것도 아니고, 죽음을 아는 것도 아니며, 아무도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자기 소질을 시험해 본 자를 본 일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죽음을 알고 있다고 미리 추측합니다. 나로서는 죽음이 무엇인지, 저승에서는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죽음은 무관심한 일이고, 어찌 보면 죽음은 바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 가는 일이라면, 그렇게 많은 작고한 위인들과 같이 살러 찾아가서, 이승에서의 불공평하고 부패한 재판관들과 상관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소멸이라면, 그런 오래고 평화로운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좋은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고요한 휴식과 꿈도 갖지 못하는 깊은 잠보다 더 감미로운 일은 느껴 볼 수 없습니다."

······

죽음은 삶과 똑같이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이다. 죽음이 대자연에게 그의 작품들의 계승과 변천을 가꾸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이 우주 공동체에서 죽음이 손실과 파멸보다도 출생과 증식에 더 봉사하고 있는 이상, 무엇 때문에 본성이 죽음에 대해 증오심과 공포심을 조성하게 할 필요가 있는가?

이와 같이 만물이 새롭게 된다.      (루크레티우스)

많은 생명들은 죽음에서 출생한다.      (오비디우스)

한 생명의 쇠잔은 다른 생명으로의 통과이다.


인용으로 내 책을 장식한다면 1176


어떤 자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하고도 플라톤과 호메로스를 인용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원본에서보다도 상당히 다른 곳에서 따왔다. 힘도 안 들이고 능력도 없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자리 주위에 있는 수천 권의 책들 속에서, 생각만 있다면 나의 이 인상론(人相論)을 장식하기 위해서 들추어 보지도 않은 어느 표절자들 열두엇에서 즉각에 빌려 올 것이다. 인용으로 내 책을 장식한다면 한 독일 작가의 권두사(券頭辭)를 따오기만 해도 된다. 그것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속이며, 욕심나는 영광을 구걸하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1177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연구의 노력을 아껴 두고 상투어로 잡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부한 소재 외에는 소용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지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아주 재미나게 에우티데모스를 질책하던 식으로, 학문의 우스운 성과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데 소용된다. 나는 작가가 여러 박학한 친구들에게 이것을 조사해 달라고 하고, 이 다른 재료로 저것을 꾸며 달라고 당부하며, 자기로서는 연구하지도 않고 들어 본 일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이 알지 못하는 재료의 묶음을 기교있게 엮어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책을 꾸며 놓는 것을 보았다. 잉크와 종이만이 자기 것일 뿐이다. 그것은 솔직히 말한다면 어떤 책을 사거나 빌려 오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책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알림이 아니고,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는 바, 그가 책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나는 그 많은 빌려 온 것으로부터 어떤 것은 태평하게 표절하며, 그것을 가장하고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용도에 사용한다. 그 글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거기에 내 손으로 다른 특수한 의미를 주어 가며, 그것을 그만큼 아주 순수하게 남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도둑질한 것을 드러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들은 법 앞에서는 나보다 신용이 있다. 우리 따위의 본성론자(本性論者)들은 인용하는 명예보다도 창작의 명예를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게 평가한다.


60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1177∼1178


내가 학문을 가지고 말하고 싶었더라면 더 일찍이 말했을 것이다. 즉, 내가 재치도 있고 기억력도 더 좋았고 공부하던 때에 가깝던 시절에 써 보았을 것이다. 그때에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들, 그때의 젊은 패기에 지금보다는 더 자신을 가졌을 것이다. 게다가 운이 이 작품을 통해서 내게 베풀어 주는 이런 우아한 혜택이, 그때에는 더 유리했을 것이다. 이 소질을 크게 가진 내 친지들 중의 두 사람은 60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40대에는 글 쓸 생각을 않고 있다가, 재질의 반은 잃었다고 나는 본다. 성숙기에는 청춘기처럼 그때의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이 더 심해진다. 그리고 노년기가 이런 일에는 다른 어느 시절보다도 나쁘다. 아무라도 자기 노쇠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 내보이며, 그가 나이의 은총을 잃은 자이고 몽상가이며 정신이 잠든 자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 기분으로 표현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미친 수작이다. 우리 정신은 늙어 가면서 변비증에 걸리고 오그라든다.


미모, 자연의 특권 1179

미모가 얼마나 강력하고 유쾌한 소질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아무리 자주 말해 보아도 부족하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짧은 시기의 폭군이라고 불렀고, 플라톤은 그것을 자연의 특권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미모보다 더 신용을 얻는 특권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교제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미모는 앞으로 나타나며, 경이로운 인상으로 지대한 권위를 가지고 우리의 판단력을 유혹하며 독점한다. 프리네가 만일 그녀 옷깃을 슬쩍 벌리며 미모로 재판관을 유혹하지 않았던들, 탁월한 변호사에게 걸려서 소송 사전에 패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의 주인이던 키로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가 이 미모를 끝까지 중시했다고 본다. 그리고 대 스키피오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 말로는 '좋다'와 '아름답다'에 같은 낱말이 쓰인다. 그리고 성경에는 자주 아름답다는 말을 '좋다'는 말로 표현한다. 나는 플라톤이 야비하다고 말했지만, 옛날 시인에게서 따온 노래에 따라 건강·미모·부유를 선(善)의 범주에 넣은 것에 찬성하고 싶다.

 Phryne. 그리스의 창녀로 오만과 탐욕의 전형. 프락시텔레스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소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 1179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휘하는 권한이 미의 부류에 속한다고 하였고, 사람의 미가 신들의 모습에 접근할 때는 그는 당연히 똑같이 숭배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누가 그에게 어째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물에게 더 오래  더 자주 따르며 친하게 지내느냐고 물어 보자, 그는 "이 질문은 소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은 그들의 미모 덕택으로 수업료를 치렀고 예지를 얻었다.


미는 선과 두 치 상관으로 아주 가깝다 1179

내가 부리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역시 미는 선과 두 치 상관으로 아주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얼굴의 특징이나 모양,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으로 어떤 내적인 기질과 장차 올 운을 점치는 얼굴의 금들은 직접적으로 미와 추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좋은 향기와 명랑한 공기가 그것만으로 늘 건강을 약속하지 못하는 식이며, 둔하고 후덕하지 않은 것이 반드시 고치기 힘든 병이 유행할 때의 열병을 앓게 하는 나쁜 기운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용모라는 것은 증거가 박약한 보증이다 1180

용모라는 것은 증거가 박약한 보증이다. 그렇지만 용모에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만일 내가 사람들을 매질해야 할 처지라면, 약속을 어기고 배반할 인물이라는 것이 뚜렷이 이마에 박혀 있는 악인들을 더 혹독하게 다룰 것이다. 어떤 얼굴들은 다행히 호의를 얻고, 다른 얼굴들은 운 나쁘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덕한 얼굴과 바보 얼굴, 엄격한 얼굴과 가혹한 얼굴, 심술궂은 얼굴과 고민하는 얼굴, 경멸조의 얼굴과 우울한 얼굴, 또 서로 다른 비슷한 소질의 얼굴들을 분간하는 기술이 있을 것 같다. 오만하고도 쓰디쓴 미모가 있고, 또 다른 상냥한 얼굴, 그리고 더 넘어서 멋쩍은 얼굴들도 있다. 이런 인상으로 미래의 사건들을 예언한다는 일은 불확실한 것으로 남겨 둔다.


우리가 우리 권한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1182

우리는 일을 충분히 하늘에 맡기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이 아닌 것을 우리 멋대로 하다가 실패하는 수가 많은 듯하다. 어떻든 우리의 계획은 너무나 자주 잘못된 길로 간다. 하늘은 각기 특권에 대항해서 인간의 예지가 그의 권한의 폭을 넓히는 것을 시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권한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더욱 좁혀 버린다.


13. 경험에 대하여


헤엄 잘 치는 선수라야 한다
1190


사람들은 그들의 타고난 정신적 병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의 정신은 고치 짓는 누에처럼, 뒤져보며 찾아보며 끊임없이 뺑뺑이를 돌아 꾸며 가고, 자기 일로 자기를 틀어막아서 그 속에 질식한다. '끈끈이통에 빠진 생쥐'(라틴 속담)이다. 정신은 멀리 무엇인지 모르는 공상 속의 광명과 진리 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쪽으로 달려가는 동안, 그는 길에서 많은 장애와 곤란에 부딪히며 새 길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길도 정신도 잊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이솝의 개들과 똑같은 격이다. 이 개들은 바다 위에 무엇인지 죽은 시체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접근할 수가 없자, 이 물을 들이켜서 가는 길목을 말리려고 하다가 질식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크라테스라는 자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이 학문의 깊이와 무게 속에 빠져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독자가 "헤엄 잘 치는 선수라야 한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진짜 작가는 드물다 1191

우리는 사물을 해석하기보다도 해석을 해석하는 데 더 일이 많으며, 책을 놓고 쓴 책이 다른 제목을 두고 쓴 것보다 더 많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주석하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주석으로 웅성거린다. 진짜 작가는 드물다.

우리 세기의 주요한, 그리고 가장 평판 높은 학문은 학자들을 이해할 줄 아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모든 연구의 공통적이고 마지막 목표가 아닌가?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 1191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내 책을 늘려 간 것인가! 어리석고말고,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자들을 두고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자기 작품에 그렇게도 자주 곁눈질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작품을 위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이고,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를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흔히 똑같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다른 점에서보다도 이 점에서 내가 더 자유로워야 하지만, 내가 나의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 하는 식으로 나와 내 문장에 관해서 쓰고 있는 이상 내 제목은 그 자체로 뒤집히는 터이니, 모두가 이 변명을 받아 줄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너무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1195

감옥은 밖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불쾌하다. 나는 너무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내가 서인도의 한구석에 가는 것을 누가 금지한다는 말만 들어도 어느 점에선 살아가기가 전보다 불쾌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른 곳에서 더 개방된 땅이나 공기를 발견하는 한, 나는 숨어 지낼 곳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다 1195

나는 다른 주제보다도 나 자신을 더 연구한다. 이것이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다.


무지와 호기심 없음 1197

오오, 무지와 호기심 없음은 잘생긴 머리를 얹어 놓기에 얼마나 기분좋고 폭신하고, 그리고 몸에 유익한 베개인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통고 1198

저마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통고는 매우 중대한 효과를 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저 학문과 태양의 신(델포이 신전에 있는 아폴론)은 그가 우리에게 충고해야 할 일을 모두 포함시킨 듯, 이 말을 자기 신전의 장면에 새겨 놓게 했던 것이다. 플라톤도 역시 예지는 이 명령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의 문장에서 자세히 이것을 증명한다.


자신을 안다는 문제 1198∼1199

어느 학문에서나 이해하기 어려운 성질과 어둡고 어려운 성질은 그 학문을 닦는 사람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까지에는, 역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문을 밀어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아는 자는 알기 때문에 물어 볼 필요가 없고, 모르는 자는 무엇을 물어 보아야 할까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물어 볼 거리가 없다는 플라톤식의 묘한 논법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을 안다는 문제에서, 각자가 자기를 만나고 혼자 단정하고 만족하는 것, 각자가 자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고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의 문장에서 에우티데모스에게 가르친다.


이 자아 속에 너무나 무한한 깊이와 다양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1199

나는 이 일밖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이 자아 속에 너무나 무한한 깊이와 다양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이제껏 내가 배운 것에는 내가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 것인가를 알게 된 일밖에 다른 성과가 없다. 내 판단력이 약하다는 것을 너무 자주 깨달아 온 까닭에 나는 겸양해지고, 내가 명령받은 신앙에 복종하고, 사상은 항상 냉철하게 절도를 지키는 경향을 갖게 되고, 그리고 자기 역량에 자신을 가지고 수양과 진리의 적인 방약무인하게 투쟁조로 나서는 오만한 태도에는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명령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들이 내놓는 천치와 같은 수작은 종교와 법률을 세우는 문체에 있다. "확언과 증명을 지각과 인식에 선행시키기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키케로)


확언과 고집 1199

아리스타르코스는 옛날에는 현자가 겨우 일곱 사람 있을까 말까 했고, 그의 시대에는 무식자가 겨우 일곱이나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지금의 우리 시대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닐까? 확언과 고집은 명백하게 어리석은 표징이다.


지금까지 생존했던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따라서 1200

나는 내 경험으로 인간의 무지를 강조한다. 그것은 인간의 학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식이다. 내 의견이나 자기들 의견과 같은 허망한 사례들을 가지고 이 무지의 사상을 품고 싶지 않은 자들은, 신들과 인간들의 증명으로 지금까지 생존했던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따라서 이 말을 인정해야 한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 그대들이나 나나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으러 가자. 거기서는 나도 그대들과 함꼐 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 본다 1200

내가 이렇게 오래 주의하여 나를 고찰하는 노력은, 남의 일도 어지간히 판단할 수 있게 나를 수련시켜 준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일보다 더 적절하고 용납될 수 있게 말하는 일도 드물다. 나는 내 친구들보다도 더 정확하게 그들의 사정을 보고 식별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는 내가 하는 말의 적절함에 경탄하며 그 말로 자기 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비춰 보는 수련을 쌓아서, 이 점에 몰두해 연구하는 소질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생각해 볼 때에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일들 중에 필요한 것은 용모·기질·사상 등 거의 다 놓치지 않고 주목한다. 나는 피해야 할 일, 좇아야 할 일 등 모든 것을 연구한다. 이렇게 해서 친구들이 밖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강인한 귀, 특별한 우정의 표시 1201

우리는 자기를 솔직하게 비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강인한 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이 쓰리다고 느끼지 않고 남의 비판을 참고 듣는 자는 드문 까닭에, 우리에게 감히 비평을 시도하는 자는 특별한 우정의 표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좋게 해 주려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모욕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전하게 사랑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못된 소질이 착한 소질보다 강한 자를 비판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플라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자에게 지식과 호의와 과감성이라는 세 가지 소질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대단히 중요한 연구 과제 1204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건강을 대단히 중요한 연구 과제로 하라고 충고하며, 이해성 있는 사람은 자기 몸을 단련하고 음식은 가리는 데 조심하며, 무엇이 자기에게 좋고 나쁜가를 의사보다도 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습관이 가진 전능한 힘 1205

습관은 우리의 생명에 하고 싶은 대로 형체를 만들어 준다. 습관은 전능한 힘을 갖는다.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 1208


자기의 팔 힘만으로 살아가는 내 하인들과 나와의 차이를 보라. 스키타이 족들과 서인도 사람들은 형체나 힘으로는 나와 별로 다른 점이 없다. 거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부려 보았더니, 얼마 안 가서 그들은 그전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밥 잘 먹고 옷 잘 입으며 지내던 내 집에서 떠나버렸다. 그 중의 하나가 그 뒤에 돌아다니며 쓰레기더미에서 조개나 주워 먹고 끼니를 때우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아무리 달래고 위협해 보아도 그는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거지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위풍과 탐락이 있으며, 그들에게도 직책이나 직무와 정치적 질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버릇의 성과이다. 버릇은 우리를 자기 멋대로의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현자들은 그 때문에 부리는 습관이 즉시 우리를 좋은 형태로 만들어 주기 쉽도록 가장 좋은 형태 속에 박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변화와 변종으로 만들어 간다.


곰팡이가 끼어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1208

어떤 젊은이는 자기 정력을 일깨워서 거기에 곰팡이가 끼어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방어하기 위해서는 규칙들을 문란시켜야 한다. 세상의 명령과 훈련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만큼 어리석고 허약한 생활 태도는 없는 것이다.

점잖은 사람에게 가장 반대되는 태도는 어떤 특수한 방식에 너무 마음을 쓰며 매여 지내는 일이다. 생활 태도는 부드러운 융통성이 없으면 특수한 것이 되고 만다. 친구들이 하는 일을 기력이 없어서 못하거나, 또는 감히 할 생각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부엌이나 지키게 하라! 다른 곳에 가면 어디서도 점잖지 못하다.


규칙이 괴롭힌다 1212∼1213

한편에서는 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편에서는 규칙이 괴롭힌다. 아무리 해도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쾌락을 좇으며 저지를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힘들지 않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쉬운 것이 수상하게 보인다.

여러 사물들에 대한 나의 욕망은, 그 자체가 상당히 묘하게 조화하여 내 위장의 건강에 적응해 주었다. 소스의 신맛과 쏘는 맛은 젊었을 때에는 구미에 맞았었다. 그 후에는 내 위가 그런 것을 받지 않으니 내 입맛도 바로 변해 버렸다. 포도주는 병자에게 해롭다. 그것은 맨 먼저 내 구미에서 벗어나 억지로 권해도 싫어졌다. 내가 받아서 불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 몸에 해롭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는 것은 아무것도 해로운 것이 없다. 나는 기분에 맞는 행동으로 해를 입어 본 일이 없다. 그래서 모든 의료법이 결정한 것을 아주 대폭적으로 내 쾌락 앞에 양보시켰다. 그리고 젋었을 적에는,

사랑이 붉은 옷자락을 날리며
내 주위를 이러저리 즐겁게 돌아다닐 때,      (카툴루스)

나는 누구만큼이나 방자하게 정욕에 사로잡혀 지냈으며,

나는 싸울 때마다 상당한 영광도 거두었다.      (호라티우스)

돌격보다도 차라리 끈덕지게 오래 끌었으며,

여섯 번까지 지탱했던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오비디우스)

내가 얼마나 어린 나이에 처음 애정의 압제에 부딪혔는지 고백해 보면, 실은 불운도 있고 기적도 있었다. 그것은 정말 부딪힌 일이었다. 그때는 선택이라는 지각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너무 오랜 이야기라서 내 일이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기가 처녀였던 시절의 생각이 안난다던 카르틸라(Cuartilla, 페트로니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여자)의 기억에 비겨 볼 수 있는 일이다.


질병 1215

질병은 생길 때부터 제한된 운명과 지속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그것을 강제로 단축시키라고 하다가는 연장시키고 키워 가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병을 진정시키는 대신에 자극한다. 나는 고집세워서 병에 대항하여도 안 되고, 또 얼빠져서 약하게 병에 넘어가도 안 되며, 그 반대로 병의 상태와 우리의 조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 크란토스의 의견을 좇는다. 병에게 지나갈 통로를 주어야 한다. 병을 제대로 두면 그것이 덜 오래 몸에 머무르는 것임을 보았다.


군대 생활 1225

군대 생활보다 더 재미나는 것은 없다. 맡아 보고 집행하기가 고상하며(왜냐하면 도덕 중에 가장 강하고 너그럽고 숭고한 것은 용덕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고상하다. 자기 나라의 안전과 위대성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보편적으로 정당하게 유익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모두가 귀족이고 젊으며 활동적이고, 그렇게 많은 비극적인 풍경을 예사롭게 관망하며, 기교 없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격식 없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나, 수많은 행동의 다양한 변화, 듣기에 경쾌하고 가슴에 열정이 좋게 하는 군악의 웅장한 화음, 이 직업을 실천하는 명예, 그 벅차고 힘든 일까지도 내 마음에 드는데, 플라톤은 이것을 너무 천하게 보고 그의 《국가론》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도 참여시키고 있다.


50세 1226

나는 지난번에 50세를 넘어섰다. 50세란, 어떤 국민들은 이 나이를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인생의 아주 적당한 종점으로 정해 놓았던 나이로, 이것은 이유 없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불확실하고 짧기는 하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이 나이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젋었을 떄의 건강과 안일을 못 가졌다고 불평할 거리는 거의 없다. 나는 정력과 쾌활성은 말하지 않는다. 정력이 이 한계 너머까지 나를 따라올 이유는 없다.

이제부터는 애인의 집 문턱에서
궂은 날을 무릅쓰고 기다려 볼 기운조차 없다.      (호라티우스)


팔자가 좋은 소리 1228

세상에는 메추리고기를 두고도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없으면 괴로운 환자와 같이 구는 사람들도 있다. 팔자가 좋은 소리이다. 그것은 괴벽 중에서도 괴벽한 취미이다. 그것은 팔자가 편해서 보통 모두가 먹는 것에는 염증이 나는 취미이다. "그것으로 사치가 부유의 권태를 면하려고 한다."(세네카) 남이 즐기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고,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고,

간소한 식사로 마련한 채소 요리로 만족하지 않으면, (호라티우스)

그것은 악덕이 본질이다.


올라가게 하기 보다는 1229

어린아이들은 평민답고 자연스런 법칙으로 운에 맡겨 제대로 되어 가게 두라.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에 단련되는 습관에 맡겨 두라. 그들을 다음에 험난한 생활로 올라가게 하기보다는 내려오게 할 일이다.


레오니다스의 딸 1230


나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이며 딸인 켈로니스의 아름다운 마음을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지. 그의 남편 클레옴브로토스가 혼란의 틈에 부친 레오니다스에게 대항해서 우세하던 동안,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추방당한 부친의 어려움 속에 그의 편을 들며 승리자에게 반대했다. 그런데 운이 뒤집힌 다음 이 여자는 행운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 남편의 편을 들며 그가 패하여 달아나는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자기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자기가 가련하게 보아 주는 편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선택의 길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세도가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약한 자들에게는 거만하게 굴던 피로스보다는 당연히 플라미니우스의 본을 더 좇고 싶다. 그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온 채로 죽는 것으로 느낀다면 1231

하느님은 사람들의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 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내리는 혜택이다. 이것은 노령의 단 하나의 소득이다. 마지막에 죽는 것은 그만큼 온전한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며, 그만큼 고통도 덜 받을 것이다. 이런 죽음은 사람의 반이나 반의 반쪽밖에 죽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내 이 하나가 아프지도 않고 힘도 안 들이고 빠졌다. 그것은 이 이의 상태로서 자연스런 한계였다. 그리고 내 존재의 이 부분과 다른 부분들은 이미 죽었고, 내가 정력이 왕성하던 시기에 가장 생기 있던 다른 부분들은 이미 반은 죽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무너져 가며 나로부터 빠져 나간다. 죽음으로의 뜀박질이 이렇게까지 진척되어 있는 것을, 내가 이제 온 채로 죽는 것으로 느낀다면 내 오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나는 오성이 그렇게 어리석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수명의 한계는 70 1231


내 죽음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이제부터는 운명에게 혜택을 요구하거나 바란다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내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며, 여기서 위안을 느낀다. 사람들은 옛날에는 인간이 키가 컸던 만큼 더 오래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옛날 사람이던 솔론은 인간 수명의 한계를 70으로 잡고 있다. 옛날의 그 '탁월한 중용'을 그렇게도 찬양하며, 중용의 절도를 가장 완벽한 것으로 간주하던 내가, 어이없게도 내 수명은 터무니없이 높게 요구해야 할 일인가? 자신의 흐름에 거꾸로 되어 가는 것은 모두 불쾌해야 할 일이며, 자연대로 되어 가는 것은 항상 유쾌해야 할 일이다. "자연과 합치하여 생성하는 사물과 형상은 모두 선(善)이라는 수(數) 중에서 계산되어야 한다."(키케로) 그 때문에 플라톤은 부상이나 질병이 가져오는 죽음은 횡사라고 불러도 좋으며, 노령이 우리들을 그리로 인도해서 닥쳐오는 죽음은 모든 것 중에 가장 가볍고 어느 점에서 감미로운 죽음이라고도 하였다. "청년에게는 난폭이, 노년에게는 성숙이 생명을 빼앗아 간다."(키케로)


지난 날의 내 그림에서 얼마나 더 멀어진 것인가! 1232


죽음은 사방에 우리의 생명과 섞이며 혼동된다. 쇠퇴가 그 시간에 앞서 오며, 바로 우리가 나아가는 길 속에 섞여 든다. 나는 25세와 35세 때의 내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미 몇 갑절이나 내가 아니게 되었던가! 지금의 내 그림은 나의 죽음의 그림자보다도 지난날의 내 그림에서 얼마나 더 멀어진 것인가!


누구와 같이 먹는가를 1233


나는 에피쿠로스가 하던 식으로 무엇을 먹는가보다도 누구와 같이 먹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킬론이 페리안드로스의 초청을 받고 그 향연에 참석하는 것 같이 식사할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전에는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일을 칭찬한다. 나는 사람과의 교제에서 얻는 취미보다 더 맛좋은 조미료는 없다고 본다.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재미 1236


우리의 쾌락들 사이에도 질투와 시기가 있다. 이런 것들끼리는 서로 상극이며 서로 방해를 놓는다. 진수성찬을 잘먹기로 유명한 알키비아데스는 이야기하는 재미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식탁에서는 악사들도 내보냈다. 플라톤은 그 이유를, 연회석에 악사들과 가수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예지로운 인사들이 그런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즐기는 좋은 말과 재미나는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평민들이나 하는 버릇이라고 하였다.


크세르크세세스의 경우
1237

나는 자연스런 쾌락을 너무 탐하는 것도, 그런 취미에 반대하는 것도 똑같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본다. 크세르크세스가 모든 인간적인 탐락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탐락을 찾아오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포고하더니, 그는 맹추같은 자였다. 그러나 본성이 자기에게 주는 탐락을 단절해 버리는 자도 그에 못지않은 천치이다. 쾌락은 추구해서도 피해서도 안 된다. 쾌락은 받아야 한다. 나는 쾌락을 좀 걸쭉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며, 기꺼이 본성의 영향을 향해 이끌려 간다. 쾌락의 헛됨을 과장해 보아도 소용없다. 그것은 충분히 느껴지며 충분히 드러나보인다. 우리의 정신과 아울러 쾌락에 싫증이 나게 하며, 흥을 깨트리는 구실을 하는 병든 정신의 간섭을 거부하자, 정신은 그 만족할 줄 모르며 변하기 쉬우며 변덕스런 성질에 따라서, 그 자체와 그것이 받아들이는 사물들을 어느 때는 지나치게, 어느 때 늘 모자라게 다루고 있다.


일상생활은 정상적인 직무 1239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는 똑같이 자기들의 가장 위대한 사업을 수행하는 중대한 시기에도 본성의 쾌락, 따라서 필요하고도 정당한 쾌락을 아주 충만하게 누리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정신의 풀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런 격렬한 직무와 힘든 사색을 그들 마음의 정신으로 일상 생활의 실천에 굴복시켜서, 심령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은 정상적인 직무이고, 다른 것을 비정상적인 직무라고 보았다면 그들이 현명하였다.


뭐? 당신은 살아보지 않았단 말이오? 1239


우리는 대단한 바보들이다. "저 사람은 그의 일생을 한가롭게 보냈지.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한 일이 없네"라고 우리들은 말한다. "뭐? 당신은 살아보지 않았단 말이오? 그것이 당신의 직무들 중의 기본적일 뿐 아니라, 가장 훌륭한 일이오." "사람들이 내게 중대한 일을 다루어 볼 처지에 두었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완을 보여 주었을 것이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생각해서 조종할 줄을 알았소? 당신은 모든 일 중의 가장 위대한 일을 수행한 것이오."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 1239∼1240

본성이 자기를 나타내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운수 따위는 상대할 거리도 안 된다. 본성은 모든 층계에서 똑같이, 마치 장막이 없는 것처럼 그 뒷면까지도 나타내 보인다. 계락을 꾸밀 것이 아니라, 행동 습관을 꾸미는 것이 우리가 할 업무이다.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행실에 질서와 안정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걸작은 우리가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지배한다, 재물을 모은다, 건설한다는 따위의 모든 일들은 기껏했자 부수적이며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 군대의 장군이 방금 공격하려고 하는 돌격구(突擊口)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마음을 터놓고 한가로이 담소하는 장면이나, 천지가 자기와 로마의 자유에 반대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때에 브루투스가 순회 근무에서 물러나와 밤의 몇 시간을 안심하고 사학자 폴리비오스를 읽으며 주(註)를 달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하찮은 심령들이나 자기 일의 무거운 부담에 눌려 지내며, 그런 일에서 완전히 풀려나와 채워 두었다가 다시 잡아서 처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오오, 나와 함께 가장 독한 시련을 겪어 온 용감한 전사여,
오늘은 그대 근심을 술잔에 담그라.
내일 우리는 망망한 대해로 배 띄워 나가리라.
                                                                       (호라티우스)

농담으로건 진담으로건, 소르본 대학의 신학주(神學酒)와 향연은 속담에도 오르지만, 그들이 오전은 유익하고 근직하게 학문의 단련에 보낸 만큼, 저녁 만찬은 태평하고 더 유쾌하게 든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라고 본다. 다른 시간들을 잘 사용했다는 생각은 식탁에서 더 정당하고 맛있는 향미가 된다. 현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저 두 카토가 도덕을 위해서 남이 모방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놀라는 바이지만, 그들의 그 어색할 만큼 엄격한 심정은 그들 학파의 교훈을 따라서 인간 조건의 법칙과 비너스와 바쿠스의 법칙에도 유순하게 복종하며 그 법칙들을 즐겼던 것이다. 그들 학파는 완벽한 현자에게, 인생의 다른 모든 의무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탐락의 습성에도 똑같이 기술이 있고 이해가 깊기를 요구하고 있다. "미묘한 판단력을 가졌으면, 미묘한 구미도 가져야 한다."(키케로)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가짐 1240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넉넉함과 편안함은 강력하고 후덕한 심령에 경이롭게 영광을 주며, 그들에게 더 적합한 일로 보인다. 에파미논다스는 자기 도시(테베시를 말함)의 청년들의 무도회에 참가하여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자기와 같은 혁혁한 군공(軍功)을 세우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풍속 개혁을 성취한 자의 명예에 손상을 주는 일로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소문을 받은 늙은 스키피오는 감탄스러운 많은 행동을 했다. 그중에, 그가 유치하게도 능청하게 라엘리우스와 바닷가를 따라 거닐며 조개껍데기를 골라 줍기에 흥겨워하며, 공기놀이 장난을 즐기고, 날씨가 나쁜 때에는 방 안에 들어앉아 가장 평민적인 비속한 행동을 묘사하여 희극을 꾸미는 일로 재미삼으며, 머리는 한니발에 관한 대책과 아프리카 원정 계획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그가 시칠리아에 가서는 로마에 있는 그의 적들이 이를 박박 갈며 시기할 정도로 여러 학교를 찾아가 철학강의를 들었던 일보다 더 그 인물에 매력을 주는 일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1240∼1241

소크라테스가 아주 노령에 이르러서도 시간을 내어 댄스와 악기 연주를 배워 가며, 이것으로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 인물이 그리스 군대 전체 앞에서 심오한 사상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고 황홀해서 하루 종일, 그리고 하룻밤을 서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가 적에게 압도당한 것을 보고 군대의 많은 용감한 사람들 중에서 맨 먼저 구원하러 달려가 자기 몸으로 그를 가리며, 무기를 휘둘러 적군을 흩어져 달아나게 한 일이 있었다. 또 30명의 폭군들이 괴뢰들이 테라메네스를 처형하려고 할 때에, 이 부당한 처사에 그와 함께 분노한 전 아테네 시민들 중에서 맨 먼저 그를 구원하려고 나섰다가, 테라메네스가 직접, 겨우 시종 두 명밖에 데리고 있지 않았는데도 굳이 말렸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의 대담한 기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미소년의 구애를 받고 강요당했을 떄에도 엄격하게 욕심을 억제한 일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완벽한 형태의 본보기 1241

그는 27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굶주림과 추위와 말 안 듣는 어린아이들의 보챔과 아내의 바가지 등쌀에 시달렸고, 마침내는 고발과 포학과 투옥과 쇠사슬과 독배형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인물은 교제의 의무로 술마시기 내기에 초청되면, 군대 중에서도 역시 승자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공기놀이와 목마타기를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에도 우아한 품이 있었다. 왜냐하면 철학에 말하기를, 현자에게는 모든 행동이 똑같이 적합하며, 똑같이 영광을 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형태의 본보기를 이 인물의 모습에서 찾아볼 일이며, 그리고 그 모습을 귀감으로 삼기에 결코 물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인생의 충만하고 순결한 사례들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가르쳐 준답시고 좋은 점이라고는 단 한 주름 있을까 말까 하며, 우리를 도리어 뒤로 퇴보시키고, 고쳐 주기는 고사하고 타락시키는 어리석고 못나고 부족한 자들을 날마나 우리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 노릇을 잘 하는 것 1241

세인은 잘 속는다. 사람들은 넓게 열린 큰길을 취하기보다도, 그 끝이 도로 표시와 경계선이 되는 언저리를 따라 가기가 쉽다. 또한 본성보다도 기교를 따르기가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상한 품이 훨씬 적고 권장할 것이 못 되는 일이다. 심령의 위대성은 높이 올라가고 앞으로 나가는 일보다는 한계를 정하여 조절할 줄 아는 데 있다. 심령은 넉넉한 것은 모두 위대하다고 보며, 탁월한 것보다는 중용이 되는 사물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높이를 보인다. 사람 노릇을 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정당한 일은 없으며, 이 인생을 자연스럽게 잘사는 길을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든 학문은 없다. 그리고 질병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병폐는 우리의 존재를 경멸하는 일이다.


절제를 지키게 할 일 1242

신체가 병들었을 때에, 전염되지 않게 영혼을 떼어 내고 싶은 자는 할 수만 있으면 용감하게 해 보라. 다른 데서는 그 반대로 영혼이 신체를 도와서 애호하고, 그 본연의 쾌락에 참여하여 즐기기를 거절하지 말 일이며, 영혼이 더 현명하다면 분수 없이 하다가 불쾌한 일을 섞지 않도록 절제를 지키게 할 일이다. 무절제는 탐락이 주는 고치기 힘든 병이다. 그리고 절제는 결코 탐락의 징벌은 아니다. 그것은 쾌락에 맛을 더한다. 탐락을 최고선으로 세우던 에우독소스와 탐락을 대단히 높은 가치로 올려 놓던 그의 동료들은, 그 둘 사이에 특별히 모범적으로 지켜 오던 절제의 방법으로 이 탐락을 가장 우아하고 감미로운 진수로 맛보았던 것이다.


고통과 탐락 1242

고통은 그 연약한 시초에는 무엇인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탐락은 그 과도한 끝장에서 피해야 할 무엇이 있다. 플라톤은 이 둘을 짝지으며, 고통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똑같이 강인함이 맡은 역할이라고 보려 한다. 이들은 두 줄기 샘물이다. 거기서 국가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때맞춰서 길어 낼 때에 그는 행복하다. 첫번 것은 필요에 따라 약으로 써야 하며, 또 하나는 목마른 때에 마시되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된다. 고통· 쾌락·사랑·미움 등은 어린아이가 맨 먼저 느끼는 일들이다. 만일 거기 이성이 솟아나서 그런 사물들이 이 이성에 적용되면 그것이 도덕이다.


나는 시간을 어루만지며 매달린다 1242

나는 나 혼자 쓰는 어휘를 가졌다. 나는 날씨가 나쁘고 불편할 때에는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좋으면 시간을 보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시간을 어루만지며 매달린다. 나쁜 날씨는 달음질쳐 보내고, 좋은 날씨는 주저앉게 하고 싶다. 이 '소일(消日, passe temps)'과 '시간을 보냄(passer le temps)'이라는 평범한 말투는, 인생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이 인생을 흘려서 놓쳐 보내고 모면해 가며, 자기들이 알 수 있는 한 이 일생을 어떤 귀찮은 경멸할 거리인 것처럼 무시하고 도피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습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다르게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갑절은 인생을 즐긴다 1243

"깨닫지 못하는 자의 인생은 희열이 없고 혼돈스러우며 미래의 일만을 생각한다."(세네카) 그 때문에 나는 인생을 잃어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잃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며, 그렇다고 귀찮고 괴로운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가 재미나는 자들만이 죽는 것도 불쾌해지지 않는다고 해야만 격에 맞는 일이다. 인생을 즐기는 데는 그 법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갑절은 인생을 즐긴다. 왜냐하면 즐기는 정도는 어느 정도 노력하는 열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내 생명을 시간적으로 아주 짧게 보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나는 인생의 무게로 늘려 놓고 싶다.

나는 인생이 빨리 달아나는 것을 재빨리 잡아서 멈추게 하고 싶다. 그리고 생명을 정력 있게 사용함으로써 그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충하며, 삶의 소유가 더 짧아짐에 따라 인생을 더 심오하고 충만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겠다.


희망의 노예 1244

그들은 현재 가진 것은 제쳐 두고, 희망의 노예가 되어서 환상이 그들 앞에 그려 보이는 그림자들과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며,

죽은 뒤에도 춤을 춘다고 하는 유령들과도 같이,
또는 수면 속에 우리 감각을 기만하는 헛된 꿈과도 같이,      (베르길리우스)

이런 헛된 생각들은 사람이 그것을 좇아가면 그들도 발걸음을 멀리 떼어 급하게 달아난다. 알렉산드로스가 자기 사업의 목적은 오직 일하는 데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이, 인간들이 추구하는 성과와 목적은,

무엇이건 할 거리가 남아 있으면
아무것도 해 놓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루카누스)

그저 추구하는 데 있다.


인간적인 것, 참으로 유치한 수작 1245


헐학 사상들 중에서 나는 가장 견실한 것, 다시 말하면 가장 우리의 것인 인간적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내가 생각하는 바는 내 행동 습관에 맞게 낮고 천하고 하찮은 것이다. 철학자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을 속세적인 것에, 합리적인 것을 비합리적인 것에, 엄격성을 관대성에, 정직을 부정의에 결합시키는 일은 야만적인 결합이라고 하며, 탐락은 현자가 맛볼 가치가 없는 짐승들의 소질이고, 그가 젊고 예쁜 아내에게서 얻은 단 하나의 쾌락을 말을 탈 필요가 있을 때에 장화를 신는 식으로 올바른 일을 행하는 양심적 쾌락이라고 맹렬한 기세로 설교하는 것은 참으로 유치한 수작이다. 마치 그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이 아니면 그들 아내의 처녀성을 빼앗을 권한도 정력도 생기도 없다는 말투다!


본성은 상냥한 안내자이다 1245


본성은 상냥한 안내자이다. 그러나 상냥하기보다도 더 현명하고 올바르다. "우리는 사물들의 본성에 침투하여 그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키케로) 나는 사방으로 이 본성의 자취를 찾는다. 우리는 그것을 인공적인 기이하고 묘한 자취와 혼동하여 왔다. 그리고 아카데미(플라톤) 학파와 페리파토스(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최고선은 이 본성을 따라서 살아감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정의하여 표현하기가 힘들다. 이와 가까우며 본성에 동의함을 말하는 스토아 학파의 최고선도 역시 그렇다.


신성한 진리 vs 인간적 허영, 이 둘을 서로 봉사하도록 내어줄 일 1246

어떤 행동들이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덜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신들은 항상 이 필연성과 공모한다고 옛 사람(시모니데스를 가리킴)은 말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 보아도 그들은 쾌락과 필연성의 결합이 대단히 적절한 일이라는 생각을 내 머리에서 말끔히 떨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처럼 서로 통하게 결합되어 짜여진 구조를 갈라서 분리시켜려는 것인가? 그 반대로, 이 둘을 서로 봉사하도록 매어 줄 일이다. 정신은 그 둔중한 신체를 잠 깨워서 활기를 줄 것이며, 신체는 정신의 경솔함을 붙들어서 잡아매어 둘 일이다. "누구라도 영혼의 본성을 최고선으로 앙양하고 육체의 본성을 악이라고 처단한다면, 그는 확실히 영혼을 육체적으로 총애하고 육체적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적 허영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선물에는 우리가 보살펴 줄 가치가 없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 머리털 하나하나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그 조건에 따라 인도하는 일은 형식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이 사명은 명확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조물주는 우리에게 이 사명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수여했다. 권위만이 오로지 오성 위에 지배력을 가지며, 그리고 외국어로 말할 때에 더욱 무게를 가진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공격하자. "인간이 행해야 할 것은 저주해 가며 비굴하게 행하고, 육체적 영혼은 각각 다른 방면으로 밀려, 자신을 이렇게도 반대되는 동작들로 분열시키는 일이 바로 천치의 수작임을 부인할 길이 있는가?"(세네카)


글쎄, 좀 보라 1246


글쎄, 좀 보라. 자기 머릿속에 처넣은 사상 때문에 맛있는 식사도 돌아다 볼 생각을 않으며, 이런 먹는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서야 되느냐고 불평하는 자의 잡념과 허상을 마음놓고 그대에게 말하도록 해 보라. 그대는 식탁의 모든 반찬들 중에 그의 영혼이 말하는 그 훌륭한 이야기보다 더 멋쩍은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대개의 경우 우리가 지켜보는 것은, 지켜보기보다는 잠자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과 의향은 그대의 스튜 요리만한 가치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르키메데스의 황홀경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존경할 만한 심령들이나 하는 연구 1247

나는 여기서 저 신앙과 종교의 열성을 가지고 항구적이며 의식적으로 거룩한 사물들을 명상하도록 길러진 자들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다. 또 생기 있고 새로우며 강렬한 희망의 노력으로 썩지 않는 단 하나의 영원한 쾌락으로서 기독교적 욕망의 종국적 목표이며 궁극적 한계인 영원한 양식을 미리 맛보며, 우리의 활동적이고 애매하고 궁색한 안락에 기대하기를 경멸하며,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양식의 사용을 쉽사리 육체에게 맡겨 버리는 것은 존경할 만한 심령들이나 하는 연구이다.


시간을 아끼자 1247

나는 항상 평범한 사이에서도 가장 천상적(天上的)인 사상과 가장 현세적 행위가 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았다. 저 위대한 인물 이솝은 그 주인이 걸어가며 오줌을 깔기는 것을 보고, "이거 어디 되겠습니까? 다음에는 달음질치며 똥을 싸야 할 일이 아니오?" 하였다. 시간을 아끼자. 우리에게는 아직도 너무 한가롭고 잘못 사용되는 시간이 많다. 우리 정신은 자기의 필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이 조그만한 공간에서 아마도 신체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고는 일하기 위한 다른 시간들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모양이다.


치명적으로 천한 것 1247

우리의 학문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이 가장 비천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에서, 자기를 신격화하는 생각보다 더 치명적으로 천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필로타스는 이 대답으로 그를 재미나게 풍자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를 신들 축에 넣어 준 주피터 신 암몬의 신탁 편지를 가지고 그와 함께 즐기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서 내 마음은 대단히 기쁘오. 그러나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의 척도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살며, 그에게 복종해야 할 자들을 가련히 생각하오." "그대는 신들에게 굴함으로써 세상에 군림하는 것이다."(호라티우스) 아테네 인들이 자기들의 도시에 폼페이우스가 왕림하는 것을 환영하는 얌전한 글귀는 내 뜻에 맞는다.

그대는 자기를 인간으로 인정하니,
그만큼 그대는 신이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아미오 역)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 1248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인 완벽이며, 신성함과 같은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죽마(竹馬)를 타고 높이 올라 보아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죽마 위에서도 우리는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 위에서도 역시 우리 궁둥이는 자리에 앉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 1248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내 생각으로는 터무니없는 기적 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로 질서 있게 처신하는 인생이다.


노년의 축원 1248

그런데 노령기는 좀더 부드럽게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건강과 예지의 수호자이면서 유쾌하고 사귐성이 있는 이 신(아폴론 신을 말함)에게 노년기의 축원을 바치자.

라토나의 아들이여,
내가 받은 재산을 굳건한 건강과 아울러 내게 주도록 간청하노라.
그리고 나의 지적 소질이 온전히 머무르도록 기도하노라.
내 노년기로 하여금 추악한 꼴이 되지 말고,
아직도 칠현금을 탈 수 있게 해 다오.      (호라티우스)

(끝)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6. 역마차에 대하여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
997

이것은 날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우리가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보다 더 위험한 경지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 위대한 장수의 증언이다. "대개 공포심이 덜할수록 위험을 덜 당한다."(티투스 리비우스)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 1001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후하게 내려줌은 이미 더 많이 실시하였을수록 다음에는 그만큼 더 못하게 된다. 기분좋게 하는 일을 오래 두고 할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처사가 어디 있는가?"(키케로)


받아버린 것 1002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채워 줄수록 커 가는 욕심을 어떻게 만족시킨단 말인가? 가질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탐욕은 배은망덕하기에 꼭 알맞은 소질이다.


무(無)만도 못한 일 1006

아가멤논 이전에도 영웅은 많았건만
오랜 어둠의 망각 속에 묻혀졌다.      (호라티우스)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의 멸망 전에도
많은 다른 시인들이 다른 사물들을 노래하였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이집트의 제관(祭官)들이 그들 국가의 오랜 운명과 외국의 역사를 알아서 보존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한 바를 듣고 솔론이 한 이야기에, "우리의 정신이 시간과 공간 속에 사방으로 뛰어들어 뿜어져 나가며, 두루 돌아다녀 보아도 자기의 진행을 저지하는 어떤 한계도 발견되지 않는 이 시간과 공간의 한도 없는 무한대를 관찰할 수 있다면, 이 무한 속에 우리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사물의 형체들을 발견할 것이다"(키케로)라고 전하는 것은, 이 고찰에 대한 반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 온 모든 것이 진실이고 그것을 어느 누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비하면 무(無)만도 못한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흘러가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을 두고 말해도, 우리 중의 가장 호기심 많은 자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짧은 소견의 일들뿐인가!


그곳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세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007∼1012

(맥시코, 페루가 스페인 군대에게 잔인하게 정복된 역사의 묘사)


진주와 후추 무역 1009

우리는 그들의 무지와 무경험을 이용해서 우리의 풍습 사례와 배신과 음탕과 탐욕과 모든 종류의 비인간적인 잔인성의 방향으로 그들을 보다 손쉽게 휘어 갔다. 누가 도대체 상업과 교역의 업무에 이렇게도 가치를 주었던 것인가? 그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어 쓰러져 아주 없어지고, 그 많은 국가들이 멸망되고 수백만의 국민들이 칼끝에 꿰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부분이 진주와 후추 무역을 위해서 뒤집히다니! 기계적인 승리이다. 이다지도 야심이, 이다지도 적의가 인간들 서로의 무서운 적개심과 비참한 재난을 이루어 놓은 일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무장한 외국인들의 정직성과 설교를 좋게 보지 않는 풍습이 있다 1010


이것이 그들의 정의감이나 종교에 대한 열성의 증거란 말인가? 1012


7.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모험과 곤란에 참여하지 않는 자 1018

모험과 곤란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위험한 행동 뒤에 따라오는 명예와 쾌감의 혜택을 요구할 수 없다. 모든 일이 자기 앞에 양보할 만큼 대단한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 1019

우리가 명예에 관한 모든 장점을 그들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결함과 악덕까지도 옳은 일이라고 인정할 뿐 아니라, 모방까지 해가며 그런 일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주고 옹호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은 모두가 그를 본떠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이고 다녔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의 아첨꾼들은 그와 같이 근시안인 체하느라고, 그의 앞에서 잘 부딪치고 발끝에 걸리는 것을 차고 둘러엎곤 했다. 탈장(脫腸)까지도 때로는 으스대며 자랑할 거리가 되었다. 나는 귀먹은 것도 뽐낼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플루타르크는 왕이 왕비를 미워하자, 궁신들도 덩달아 사랑하는 아내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

더 심한 것은 음탕한 버릇이 모든 버릇과 아울러 유행하고, 불충·모독·잔인성도 그렇고, 사교가 그렇고, 미신·무신앙·태만이 그렇다. 더 나쁜 일로, 도대체 더 나쁜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트리다테스의 아첨꾼들은 그들의 왕이 명의(名醫)라는 영광을 얻고 싶어하자 자기들 몸을 째고 지지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본보기로 다른 자들은 몸의 가장 미묘하고 고귀한 부분인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1019

내가 시작한 이야기로 끝맺자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어떤 문자의 해석을 가지고 철학자 파브리누스와 토론하던 때에, 파브리누스는 바로 승리를 황제에게 양보하였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그런 말 마시오. 그래 30군단을 지휘하는 그가 나보다 박학하지 못하단 말이오?"라고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아시니우스 폴리오를 공격하는 시를 썼다. 그러자 폴리오는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나를 추방할 수 있는 자에게 대항해서 글쓴다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오." 그의 말이 옳았다. 왜냐하면 디오니시우스는 시로는 필로크세노스를, 산문으로는 플라톤을 당해 내지 못하자, 하나는 채석광으로 중노동형을, 하나는 노예로 팔아 아이기나 섬으로 쫓아냈다.


8. 논변의 기술에 대하여


토론의 훈련 1021

우리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 있는 훈련법은, 내 생각으로는 사람과 논변(論辯)하는 일이다. 나는 이 방법이 인생의 어느 다른 행동보다도 더 감미로운 일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에서 만일 내가 이제부터 무언가를 택해야만 한다면, 듣기와 말하기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보기를 버리는 편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테네 인들은, 더욱이 로마 인들은 이 토론의 훈련을 숭상했다.


병적인 저속한 정신들과 교섭하는 일 1022

우리의 정신은 힘차고 조절된 정신과의 의사 소통에서 강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적인 저속한 정신들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자주 상종함으로써 얼마나 타락하며 손해를 보는 것인지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보다 더 잘 전염하여 퍼지는 것은 없다. 나는 경험으로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알고 있다. 나는 토론과 변론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과 하며, 나 자신을 위해서 한다. 왜냐하면 세도가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며, 서로 다투어 자기 재치와 말주변을 펼쳐 보이는 일은 점잖은 사람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팔을 내밀기는 커녕 1023

어떤 반대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정당한가를 보지 않고, 옳건 그르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가만을 생각한다. 우리는 팔을 내밀기는커녕 발톱을 내민다.


너무 명령조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1024

나는 진리가 어느 누구의 손에서 발견되었다 해도 기꺼이 환영하며, 그것이 아무리 멀리서 오는 것일지라도 마음 편하게 항복하고 무기를 그 앞에 내놓는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식으로 너무 명령조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내 문장에 대해서 하는 비평에 한 팔 빈다. 글을 고쳐야 할 필요에서가 아니라 예절상의 필요에서 고쳐 본 일도 흔히 있다. 쉽사리 양보해서 남에게 좋은 일도 해 주어, 아무라도 내게 알려 주고 싶은 일을 자유로이 알려 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히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그렇게 하도록 끌어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생각을 고쳐 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남을 고쳐 줄 용기도 갖지 못하고 서로 늘 숨겨 가며 말한다. 나는 남의 판단을 받아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기 때문에, 내 판단이 두 형태 중의 어느 편에 있어도 무방하다. 내 생각 자체가 나의 생각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남이 반대하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하기는 나는 그의 책망에 대해서 내가 주고 싶은 권위밖에는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 의견을 좇아 주지 않으면 모욕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믿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일을 공연히 알려 주었다고 후회하는 자들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너무 고압적으로 나오는 자와는 인연을 끊는다.


자기의 우월감과 상대편에 대한 경멸감보다 더 우리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1024

소크라테스가 자기 논거에 대한 반대를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는 것은, 그의 역량이 대단히 컸으며 확실히 장점이 자기 편에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대를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기의 우월감과 상대편에 대한 경멸감보다 더 우리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없고, 이치로 보아서 약한 편이 도리어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를 바로 세워 주는 반대 의견들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본다. 사실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자들보다도 나를 거칠게 다루는 자들과 더 자주 사귀려고 한다. 우리를 숭배하고, 우리들 앞에 자리를 물려주는 자들과 상종하는 쾌락은 멋쩍고 해롭다. 안티스테네스는 어린아이들에게 자기를 추어주는 자들을 결코 고맙게 여기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할 때의 나 자신에 대해서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

 

참을성 없음 1029

그런데 웬말인가? 내가 사물들을 사실보다 다르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나는 참을성 없음을 한탄한다. 무엇보다도 이 참을성 없음은 옳은 자에게서건 그릇된 자에게서건 매한가지로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바와 다른 형태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은 속 좁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 항상 있는 어리석은 수작을 가지고 짜증내며 분개하는 것보다 더 심하고 고질적이며 괴퍅한 일도 없다. 이런 심정은 주로 우리 자신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 철학자(헤라클레이토스를 말함)는 자기를 고찰하는 동안 눈물을 흘릴 기회가 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7현(七賢)의 하나인 뮈손은 티몬이나 데모크리토스에 지지 않는 기분으로 있었는데, 누가 왜 혼자서 웃고 있느냐고 묻자, "내가 혼자 웃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라고 대답하였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 1029-1030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수작을 나는 날마다 말하고 대답하는 것인가! 그러니 남의 생각을 따라서는 얼마나 더 자주 할까! 내가 그 때문에 꿍꿍 앓고 있다면 다른 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며, 냇물은 우리가 걱정할 것 없이 또는 적어도 우리를 휩쓸어 가게 하지 말고, 다리 밑으로 흘려 보내야만 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몸이 비틀어졌거나 못생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충격을 받지 않으면서, 어째서 정신이 비뚠 사람에게는 화내지 않고 볼 수가 없단 말인가? 이런 악덕스런 거친 마음씨는 잘못 자체보다도 판단하는 자에 매여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 말을 항상 입에 담아 두자. "내가 무엇을 불건전하게 보는 것은 나 자신이 불건전한 까닭이 아닌가?"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가? 남의 잘못을 알려 준다는 것이 도리어 내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던가? 정히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잘못을 힐책하는 것은 현명하고도 거룩한 훈계이다. 우리가 서로 맞대놓고 하는 책망뿐 아니라 모순된 일에 관해서 따져 보는 이치와 논법까지도 대개는 우리에게 되걸어 올 수 있으며, 우리는 칼로 자신을 찌른다. 이런 일에 관해서 옛 사람은 무게 있는 예를 상당히 남겨 주었다. 다음 어구를 생각한 사람은, 여기에 들어맞게 아주 묘한 말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                                                                       (에라스무스)

우리 눈은 뒤의 것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에 백 번은 이웃 사람들의 문제로 자신을 비웃으며, 우리 속에서 더 분명히 보이는 결함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보며 미워한다. 그리고 뻔뻔스럽고 부끄럼이 없는 그들의 일에 놀란다.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1030∼1031

나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누구건 비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는 아무도 비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 말은 우리의 판단력이 당장 문제에 오른 자를 공격해 본다고 해서, 그것이 내적 비판으로 우리 자신의 잘못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속의 악덕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자가, 다른 사람의 악덕에는 그 근본이 덜 모질고 덜 악질이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없애 주려고 애쓰는 일은 자비로운 봉사이다.

그런데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그도 역시 그 결함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격에 맞는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하여튼 알려 준 일은 진실하고 유익하다. 우리 코가 멀쩡하다면 우리 은 그것이 우리 것인 만큼 더 구려야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와 자기 아들과 다른 한 사람이 어떤 폭력이나 부정 행위로 죄를 지었을 경우, 자기가 맨 먼저 재판소에 가서 형 집행인의 손으로 자기 죄를 씻어 달라고 간청할 것이고, 둘째는 자기 아들을 내보내고, 마지막에 다른 사람을 내보내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이 교훈은 그 어조가 매우 고매한 것으로서, 적어도 자기 양심이 하는 처벌에는 자기가 먼저 나서야 할 일이다.



경험 1032

경험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것들이 지니는 이유과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달아 보고 비교해 보며 소화하고 증류시켜야만 한다.


결과로서 의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1034


"결과로써 의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 격언은 용인되어 왔다. 카르타고 인들은 지휘관들이 그릇된 의견을 냈을 경우, 요행히 일이 잘 수습되었을 때라도 그들을 처벌했다. 그리고 로마 국민들은 지휘관의 행위가 그의 행운과 부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위대한 승전에서도 개선 행진을 거절하는 수가 흔히 있었다. 대개 세상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 운이 모든 일에 대해 그 지배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우리의 오만함을 꺾어 버리는 데 재미를 들이고, 서투른 자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니, 도덕에 대항해서 그런 자들에게 행운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순전히 운으로 꾸며지는 일에 참여해서 옹호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중에 가장 단순한 머리를 가진 자들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매우 큰 사업을 해치우는 예를 날마다 본다. 마치 페르시아 인 시람네스가 그의 계획은 대단히 현명한데 일의 성사는 늘 실패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기를, 일의 계획은 자기 뜻대로 꾸미지만 일의 진행은 운이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말을 거꾸로 돌려서 대답할 수 있다.

이 세상사의 대부분은 제대로 되어 간다.

운명은 그들의 길을 헤쳐 나간다.      (베르길리우스)


우리는 거의 판에 박힌 습관으로 참여하는 것에 불과 1035

결과는 흔히 극히 서투른 행위에도 권위를 준다. 우리는 거의 판에 박힌 습관으로 참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개는 머리를 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남이 한 일을 본받아서 한다. 그 성취한 사업이 위대한 데 놀라서, 나는 전에 그런 일을 끝까지 성취했던 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동기와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평범한 의견밖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가장 속되고 늘 쓰이는 의견이 본때는 나지 않지만 실천에는 가장 확실하고 유리한 것이다.


행운과 불운 1035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보며, 자기 손으로 자기 사업의 진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의 기도는 허황된 일이다. 특히 전략의 고찰에 있어서 허황되다. 우리들 사이에 가끔 보이는 군사상의 예보다도 더 용의주도한 신중성은 없었다. 그것은 이 대도박의 마지막 결판에 대비해서 중도에 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예지와 사고력 자체가 대부분은 우연에 매여 있다. 내 의지와 사유는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움직이며, 그 중에도 많은 움직임은 나 없이도 되어 간다. 내 이성에는 매일 돌발적인 충동과 동요가 있다.

심령의 모양은 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은 이때는 이 생각,
한 가닥 회오리바람이 구름을 밀고 가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베르길리우스)

(나의 생각)

베르그손과 프루스트가 끊임없이 탐구하던 대상인 '자아', 그리고 프로이트가 마침내 과학적으로 찾아낸 '무의식'을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참으로 인간 내면을 너무나 잘 들여다 본 정말 놀라운 인물이다.


가장 약지 못한 자들 1036

도시에서 가장 권세 있고 사업이 융성해 가는 자들을 보라. 대개는 그들이 가장 약지 못한 자들이다. 여자나 어린아이나 미친 사람들도 능력있는 제왕들과 맞설 정도로 큰 나라들을 다스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꾀 있는 자들보다 우둔한 자들이 대개 더 성공한다고 투키디데스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행운의 결과를 총명의 탓으로 돌린다.

사람이 성공함은 단지 행운의 덕택이다.
그런데 그의 득세를 보고서
우리는 그 수완을 칭찬한다.      (플라우투스)

그 때문에 어떻게 보건 사건의 결과는 우리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는 내 말은 옳은 것이다.

(나의 생각)

내가 종사하는 '업계'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득세'를 보고 '그의 수완'을 칭찬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1036∼1037

그런데 나는 마침 권세 있는 자리에 올라앉았을 때에만 보아야 한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렀다. 사흘 전에는 그를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다음에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생각 속으로 위대성과 능력의 모습이 흘러들며, 그의 지위와 권위가 증대했으니 그의 인품도 훌륭해 졌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그를 그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숫자판을 보고 하는 식으로, 그의 직위의 특권에 따라서 인물을 판단한다. 다음에 운이 틀려서 그가 보잘것없이 되어 다시 일반 사람들 속에 섞여들었다고 하자. 저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높이 추어올렸던 것인가 그 원인을 따지며 놀라서 물어 본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그는 거기 있을 때 다른 능력은 없었는가? 제왕들은 그런 애매한 능력에 만족했었나? 우리는 정말 잘난 사람에게 걸렸군! 하며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생각)

내 주변에도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을 수 있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내 이성은 그들 앞에 굽혀 숙이게 되어 있지 않다. 굽어지는 것은 나의 무릎이다."라는 몽테뉴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말과 다르게 말하는 자는 1038


파격적인 운을 타고난 인물이 자기 식탁에서 경솔한 말들이 주책없이 오가는 자리에 한 몫 거들어 간섭하며, 바로 "이 말과 다르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 아니면 무식꾼이지만······" 하고 말을 시작했다. 손에 단도를 들고 하는 이 철학적인 날카로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위험한 수법,
기초가 박약한 자들, 자기 무식을 탄로시키는 것 1039

그들이 어구에 윤곽을 지어서 의미를 수습하며 "어찌어찌해서 이렇다. 이러니까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내가 그렇게도 평범한 일로 보는 이런 보편적인 판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들은 온 국민들을 뭉쳐서 전체로서 보고 인사하는 자들이다. 이 국민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사람을 따로따로 지적하며 이름을 불러서 인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수법이다. 그런 데서 나는 날마다 더 자주 지식의 기초가 박약한 자들이 똑똑한 체하며, 어떤 작품을 읽고 그 아름다운 점을 지적하려다가 당치 않은 곳에 탄복하는 꼴로 그 작가의 탁월한 점을 알려 주기는커녕 자기 무식을 탄로시키는 것을 보았다.

베르길리우스의 시 한 쪽 전체를 듣고 나서, "그것 참 좋군!" 하며 탄성을 올리면 그것은 확실하다. 약은 자들은 이렇게 해서 면한다. 그러나 시 한 구절씩을 따라가며, 명확하게 추려 낸 판단으로 한 훌륭한 작가가 어떤 난점을 극복하고 어떤 점에 가치를 높이는가를 지적하려고 하며, 낱말과 어구와 착상을 하나하나 저울질해 보는 일에서는 어서 물러나라! "각자의 어법을 검토할 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그 사상의 근거를 파고들어 알아보아야 한다."


음악가 1040

어리석음과 지각의 혼란은 잠깐 가르쳐 주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을 교정하는 문제에는, 막 전투하려는 마당에 군대의 사기를 북돋워 달라고 재촉하던 자에게, "사람들은 훌륭한 연설 한마디로 당장에 용감해지거나 잘 싸우게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좋은 노래를 듣고, 바로 음악가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키로스가 대답한 말이 바로 적용된다. 그것은 미리 오래 두고 꾸준한 훈련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풋내기들의 상대 1040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지식을 열심으로 교정하며 깨우쳐 가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나 지나가는 자를 붙들고 설교하며, 그의 서투르고 무식한 점을 교정하려는 버릇을 나는 매우 언짢게 본다. 나는 말을 주고받는 상대가 그러해도 교정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 무슨 선생이나 된 것처럼 초보부터 깨우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두 버려 둔다. 내 기분은 글 쓰는 데나 말하는 데나 풋내기들의 상대로는 맞지 않는다. 어느 모임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가지고는 그릇되고 어리석은 말이라고 판단해도, 나는 말로건 몸짓으로건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그뿐더러 어리석은 자가 어떠한 이치에 만족하기보다도 자기 어리석음에 더 만족하고 있는 것을 보는 일보다 울화가 터지게 하는 일은 없다.


당나귀보다 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1040∼1041

완고하거나 주책없는 논법이 그 주인들의 마음을 안심과 유쾌한 기분으로 채우는 자리에서, 자기는 총명하기 때문에 만족이나 자신을 갖지 못하며, 늘 불만을 품고 자리를 떠야 하는 경우는 불행한 일이다. 이런 때에는 가장 서투른 자들이 남을 경멸하고 어깨 너머로 넘겨다 보며, 토론에서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거두고 돌아간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오만한 말투와 유쾌한 얼굴이 좌중에서 우위를 차지하는데, 이 좌중이란 대개 이해력이 약하고 판단력이 없으며, 진실한 장점을 식별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자기 사상을 열렬하게 고집 세우는 것은 어리석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그래, 확고하고 결단적이며, 경멸조이고 명상적이며, 장중하고 근직한 것으로 당나귀보다 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격에 맞지 않는 분노 1041


사람들은 대개 힘이 부족하면 얼굴빛과 목소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격에 맞지 않는 분노는 앙갚음보다 자기 약점과 참을성 없음을 한꺼번에 폭로한다. 우리는 가끔 침착한 기분으로 모욕을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이라도, 이 흔쾌한 잡담에서 상대편의 불완전하고 숨겨진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피차 유익하게 우리의 결함을 서로 알려 준다.


자기 작품에는 1042


나는 사람들이 남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도 판단할 눈이 없는 것을 본다. 자기 작품에는 애정이 섞일 뿐 아니라, 그것을 깨닫고 식별해 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 자체의 힘과 운의 힘으로써 직공(작가)의 착상과 지식 이외에 그를 도와주며 직공의 역량을 넘는 수가 있다. 나로서는 남의 작품 가치를 내 것보다 더 흐리멍덩하게 판단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 《에세이》도 때로는 얕게, 때로는 높게 아주 줏대 없이 평가한다.


축소판 1042


한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모두 어리석은 축소판이다.


선행과 보답 1042


"선행은 그 부채를 보답할 수 있는 한도에서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너무 초과하면 감사 대신에 우리는 증오로 이것을 갚는다."(타키투스) 그리고 세네카는 힘차게 말한다. "보답할 수 없음을 수치로 여기는 자는 보답해 줄 자가 없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더 비굴하게 둘러서 말한다. "그대에게 부채를 다 갚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대의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타키투스에 대한 서평 1043∼1046

나는 요즈음 타키투스를 단숨에 읽었다. (그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20년 전부터는 한 시간을 계속해서 읽은 적이 없었다.) 나는 용덕이 높을 뿐더러 그 능력과 착한 마음으로 지조가 견고하며, 그 형제들 역시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 전부가 그의 인격을 지극히 존경하는 한 귀인의 권고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작가로서 이 작가만큼 공적 사건의 기록에 개인적 행동 습관과 경향에 관한 고찰을 섞어 넣는 예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행적들 뿐 아니라, 특히 신하들에 대한 잔인한 처사까지, 그 모든 종류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잡다하던 제왕들의 생애를 좇아 보게 되었다. 그는 온 세상의 전쟁과 동란에 관한 것보다도 이런 면을 고찰하고 진술하기에 더 강력하고 흥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저 아름다운 죽음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지루해질까 염려하는 듯 대강 넘겨 버렸기 때문에, 나는 늘 그를 거칠다고 보고 있다.

이런 형태의 역사는 한층 더 유익한 것이다. 공사(公事)의 움직임은 운의 지도에 더 매여 있고, 개인적인 일은 우리들의 지도에 달려 있다. 이것은 역사의 서술이라기보다도 차라리 하나의 판결이다. 여기는 이야기보다 교훈이 더 많다. 이것은 읽을 책이 아니라 연구하고 배워 갈 책이다. 옳은 일에 관한 교훈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세계를 다루는 지위를 잡은 인물들의 준비와 장식을 위한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고찰의 기초이다. 그는 자기 시대의 수식적인 문체를 좇아서 예리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견고하고 강력한 이치로 변론한다. 당대의 사람들은 너무 과장된 표현을 즐기며, 일 자체에 첨단적이고 기묘한 것을 찾아보지 못하면 언어에서 그런 표현을 빌려 오는 것이었다. 그의 문장은 적잖이 세네카와 닮아 있다. 그의 글은 더 풍요하고, 세네카의 문장은 더 날카로운 것 같다. 그의 저작은 현재의 우리 상태와 같은 혼란되고 병든 국가를 섬기기에 더 적합하다. 우리는 자주 그가 우리를 묘사하고 비판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문장이 자기 사정에 관해서 진술한 것을 보면, 그는 진실하고 강작하고 용감하며, 미신적인 도덕이 아니라 철학적인 너그러운 도덕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증언하는 데 과감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 한 병사가 나뭇짐을 지고 가다가 추위로 손이 그 짐에 얼어붙었는데, 어찌나 심했던지 손이 들러붙어 팔이 떨어져 죽어 있더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일에는 이만큼 위대한 증인의 권위에 굴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다.



9. 허영에 대하여



도끼가 빠지면
1049


나로 말하면, 덧신 하나를 비뚤게 신으면 셔츠도 망토도 거꾸로 입는 식의 못된 버릇을 가졌다. 나는 반만 바로 갖기를 경멸한다. 나쁜 상태에 있을 때에는 나쁜 편으로 가려고 악을 쓴다. 절망으로 자포자기하며, 타락의 방향으로 멀어지게 두고, 사람들 말처럼 도끼가 빠지면 자루까지 내던진다.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은 남이 보지 못한다 1050

옛말에 나오듯,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⑵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대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를 꾸며 보이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마도 그 살림을 유지하기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⑵ 플루타르크의 이야기, 한 로마 인이 예쁜 아이까지 낳아 준 미모의 아내를 내쫓았다고 친구들이 책망하자 "이 구두는 새롭고 예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발이 벗겨진 것을 그대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대답하였다.



수입의 계산에서가 아니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교양으로 1051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거든, 빈곤에 앞장서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 줄곧 달음질쳐 보라. 이것이, 그리고 빈궁에 쪼들리기 전에 내 행실을 고치는 일이 그것에 대비하는 방책이다. 게다가 나는 가진 것보다도 적은 것으로 지낼 수 있는 상태를 여러 한계로 마음속에 세워 보았다. 만족하고 지내는 상태 말이다. "수입의 계산에서가 아니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교양으로 그대의 부는 측정되어야 한다."(키케로)


  

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1051

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그것은 힘겨울 만큼 무거운 부담이다. 수행원을 데리고 가는 습관은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체면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한을 짧게, 그리고 횟수를 뜨게 해야 하며, 저축해 놓은 여윳돈만을 사용하는 까닭에, 여유가 생기기까지 연기하며 때를 기다린다. 나는 돌아다니는 쾌락 때문에 휴식의 쾌락을 제쳐놓고 싶지는 않다. 그 반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거들고 가꾸어 주도록 하고 싶다.



잔글씨, 가시들 1052

가장 자잘하고 드러나지 않는 피해가 가장 괴롭다. 잔글씨가 눈을 아프게 하고 피로시키는 것처럼, 자디잔 일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 아무리 크고 맹렬한 불행보다도 수많은 자잘한 불행들의 뭉치가 더 사람을 해친다. 가정 생활의 이런 가시들은 엉겁결에 닥쳐오며 가늘고 빽빽하게 돋아나면서 위협도 없이 우리를 더 날카롭게 물어뜯는다.


한 방울의 물 1053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루크레티우스)


남의 집 것 1053


디오게네스는 내 생각과 같이, 어떤 종류의 포도주가 가장 맛 좋더냐고 누가 물어 보자, "남의 집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집 짓는 재미 1054


사람들이 대단한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 집짓는 재미도, 사냥도, 정원가꾸기도, 은퇴 생활의 다른 취미들도 내게 그렇게 큰 흥미를 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내게 불편한 다른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안이하고 내 인생에 적합하기만 바라고, 그것을 강력하고 박식한 것으로 가지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자루에 쑤셔 넣으면 1059


어떻든 나는 우리의 예로, 인간 사회는 무슨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서로 매이고 얽혀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마치 잘 결합되지 않은 물체들을 질서 없이 자루에 쑤셔 넣으면 그들끼리 서로 자기들 속에 얽매이는 방식을 찾아가며, 때로는 기술적으로 정리해 넣은 것보다 더 잘 자리잡는 식으로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갖다 놓아도 움직이며 서로 덮치다가 서로 쌓이며 정돈되어 간다.


불행의 더미 1064


자기보다 못한 예를 보면 마음이 좋고 자기보다 나은 자들을 보면 마음이 언짢아지는 것은 우리들 악덕의 소치이다. "만일 여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한데 뭉쳐 쌓아놓고 이 불행의 더미를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면, 그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가졌던 불행을 택하지 않을 자가 하나도 없다"고 솔론은 말하고 있다.


되풀이해서 하는 말 1066


되풀이해서 하는 말은 호메로스에 나오더라도 지루해진다. 일시적이며 피상적이고 외관뿐인 것은 더욱이 질색이다.

세네카의 문장에서와 같은 유익한 사상이라도 교훈조로 된 것은 내게는 정말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스토아 학파의 버릇으로, 모든 제목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먼저 내세우는 것들을 이모저모로 글을 쓸데없이 길게 되풀이하며,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이치와 논법을 늘 다시 인용하는 수작이 비위에 거슬린다.


과중한 기대 1067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자기에게 과중한 기대를 걸게 하기보다 더 불리한 일은 없다."(키케로)


확실히 둘 1069


지금의 나와 조금 전의 나는 확실히 둘이다.

(나의 생각)

철학자 베르그손의 생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 1071

그런데 사람은 권한으로 살아야 하지, 어떤 보답이나 혜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의협적인 인물들이 은혜를 입고 살기보다는 죽기를 원했던 것인가!) 나는 무슨 종류이건 부채를 지는 일은 피한다. 그 중에서 특히 명예에 대한 부채는 싫어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무엇이건 받고 그 때문에 내 의지가 감사라는 자격에 저당잡혀지는 것보다 더 값비싼 것을 알지 못한다. 그보다는 돈을 받고 해 주는 봉사를 받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 진정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자들에게 돈밖에는 내놓지 않는데, 다른 자들에게는 나 자신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굴복의 신세 1074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야심적이고 특권적인 신분인 만큼 남의 것을 받는다는 일은 굴복의 신세이다.


신세지는 일 1075


늘 친숙하게 보는 것처럼, 아무나 무턱대고 일을 시키고 그 신세를 지는 자들은 이 신세지는 일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가를 어느 현자가 한 만큼 조심스레 헤아려 본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신세는 때로는 갚아 주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신세진 일이 결코 풀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 팔꿈치를 사방으로 휘두를 자유를 찾는 자에게는 그 얼마나 구속인가!

 

여행을 즐기는 이유 1078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부터 찾아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파리를 찬양함 1078∼1079 

 

파리는 어릴 적부터 내 마음을 차지해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는 훌륭한 일들도 더러 있었고, 아름다운 도시들을 많이 보아 갈수록 이 도시의 아룸다움에 정이 들게 되었다. 나는 이 도시 자체를 사랑한다. 외국의 화려한 장식을 뒤집어쓰는 것보다도 있는 그대로가 더 좋다. 나는 이 도시의 흠이나 오점까지도 마음에 들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한다. 나는 이 위대한 도시에 의해서만 프랑스 사람이다. 인구도 위대하고 그 자리잡은 품위도 위대하며, 특히 가지 각색의 물품이 풍부한 것이 비길 수 없이 위대하다. 프랑스의 영광이며 이 세상의 가장 고상한 장식들 중의 하나이다.

 

여행은 유익한 수양 1080

이런 이유들 외에도 내게는 여행이 유익한 수양으로 보인다. 심령은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물들을 주목하느라고 계속적으로 훈련 받는다. 그리고 내가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사람에게 끊임없이 다른 나라의 색다른 생활과 사상과 습관 등을 제시해 주며, 우리들의 천성인 끊임없이 변해 가는 형태를 음미시키는 것보다 인생을 형성하는 데 더 효과적인 학문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하는 말 1081


여러분들은 내가 처자가 있는 늙은 몸으로 이런 수고를 즐겨 계속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자기 없이도 집안일이 잘 되어 가고, 그 전의 형태가 뒤집히는 일이 없게 살림에 질서를 세워 놓았을 때에는, 가정을 버려 두고 떠나기에 알맞는 때이다. 자기 집에 충실치 못한 집지기를 남겨 두고 궁핍에 대비해 놓을 생각도 없이 떠나는 것은 철부지보다 더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집을 비우면 문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부 간의 애정적 의무로 말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오래 한데 붙어 있으면, 너무 끈적해서 도리어 애정이 손상되고 냉각될 우려가 있다. 남의 여자는 모두가 점잖은 여자로 보인다. 그리고 계속해서 늘 쳐다보고 있으면 서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 때에 느끼는 쾌감을 알아볼 수 없는 것도 누구나 다 경험해 보는 일이다. 이런 이별은 내 식구들에 대한 새로운 사랑으로 나를 채워 주며, 내 집 살림에 더 정다운 맛을 다시 돌려 준다. 생활을 이렇게 바꾸어 주면 내 욕망을 한때는 이 편으로,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편으로 일깨워 준다.


이집트에 있는 친구의 배가 불러진다 1082


나는 우정이라는 것의 손이 무척 길어서,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 다른 구석까지라도 뻗쳐 서로 잡을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특히 서로 염려해 주는 편지를 꾸준히 주고받으며, 우정의 의무와 추억을 잠 깨워 주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스토아 학파들이 말하듯 현자들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친밀해서, 하나가 프랑스에서 식사하면 이집트에 있는 친구의 배가 불러진다고 하며, 아무 데서라도 하나가 손가락을 뻗치기만 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위의 모든 현자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한 말은 옳다.


상상력 1082


소유와 향락은 주로 상상력의 소관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우리가 손에 잡은 것보다도 더 열렬하고 계속적으로 품어 갖는다. 그대의 나날의 명상을 검토해 보라. 친구와 같이 있을 때가 친구와 가장 같이 있지 않을 때임을 알 것이다. 그가 자리에 있으면 그대의 주의력이 해이해져서 어느 시각에나 기회에, 그대 생각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자유를 갖게 한다.


먼가? 가까운가? 1083


만일 우리가 손에 잡히는 것밖에 누리지 못한다면, 돈도 금고 속에 있으면 내 것이 아니고, 아이들도 사냥 나갔으면 내 아이들이 아니겠지? 우리는 이런 것을 더 가까이하기를 원한다. 들에 있으면 먼 것인가? 반나절쯤의 거리라면? 뭐? 40km 떨어져 있으면 먼가? 가까운가? 그것이 가깝다면 44km는? 48km는? 52km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 보자. 아내가 남편에게 "몇 걸음에서 가까움이 끝나고, 몇몇 걸음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고 결정해 준다면, 내 의견으로는 그녀가 남편을 그 중간쯤에서 잡아 둘 일이다.

돌아감이 늦으면,
당신의 아내는 애인이 있다든가,
다른 여자의 사랑을 받는다든가,
음주나 방탕으로 좋은 일을 당신 혼자만 보고
나쁜 일은 자기의 차지라고 생각한다.      (테렌티우스)

(나의 생각)

몽테뉴의 이 책에서 테렌티우스가 너무 자주 나온다.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도 '테렌티우스'를 만났다. 그의 대표작은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인 듯한데, 몽테뉴 때문에『테렌티우스 희곡선』(범우문고판)까지 사 봤으나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라는 작품은 없었다.


진실한 우정 1084


진실한 우정에서는, 나는 이 부문의 전문가이지만, 친구를 내게로 끌어오기보다 나 자신을 친구에게 내준다. 나는 그가 내게 해 주는 것보다도 내가 그에게 더 잘해 주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자기에게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란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며, 떨어져 있는 것이 그에게 유리하고 필요하다면 여기 있는 것보다도 나에게 더욱 마땅하다. 그리고 서로 소식을 통할 방법이 있는 동안은 진실한 부재(不在)가 아니다.


40이나 50세 전에 1085

청춘이 정열을 추구하는 것은 용서하고, 노년이 쾌락을 찾는 일은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불타는 정열을 조심성으로 은폐했다. 이제 늙어서는 음산한 심정을 방종으로 풀어 준다. 그 때문에 플라톤의 법칙은 편력을 더 유익하고 교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40이나 50세 전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바로 이 규칙의 제2항으로 60세가 넘어서는 편력을 금지하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이에 길을 떠나다가는 그 먼 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아니오?"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여행을 완수하려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움직이는 것이 기분 좋은 동안은 움직여 보려고 하는 것이다. 바람을 쏘이기 위해서 나는 바람을 쐰다. 이득이나 토끼를 보고 달려가는 자는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오, 친구 하나! 1089


오, 친구 하나! 이 말의 사용은 물과 불 같은 요소들보다도 더 감미롭다고 한 옛말은 얼마나 진실한가!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1096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것을 나 혼자 지어냈고 아무에게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면 화가 난다. "예지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진다는 조건으로 하기라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세네카) 또 한 사람은 그것을 더 심한 어조로 말하였다. "만일 한 현자가 모든 필요한 사건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알아 둘 가치 있는 사항을 자유로이 관찰하며 한가롭고 여유있게 연구하는 생활을 가졌다면, 그리고도 외롭고 쓸쓸함이 어느 인간도 결코 만나 볼 수 없을 정도라면 그는 인생에서 물러날 일이다."(키케로) 아르키타스의 말에,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택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한 말은 내 성미에 맞는다. 그러나 어색하고 서투른 동행과 여행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하는 편이 낫다.

(나의 생각)

미국에서 홀로 골프를 치다가 이글을 하고 "야호!"하고 소리쳤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골프채를 부러뜨리고 말았다'는 어느 선배의 얘기가 떠오른다.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가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철학 강의 1099

철학 강의를 들어 보라. 착상과 웅변과 지당한 말은 당장에 그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대를 감동시킨다. 그대의 양심을 건드리거나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양심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닌가? 그래서 이리스톤은 "목욕이나 공부는 몸을 닦아서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껍데기에 구애되는 것은 좋지마는, 그것은 속의 골수를 뽑아 낸 다음이라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잔에 가득한 좋은 술을 마시고 나서, 판에 새겨진 그림을 감상하는 격으로 말이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잘못인가? 1101

우리는 하느님 뜻대로의 착한 사람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리 식으로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예지는 스스로에게 정해준 의무를 결코 완수해 본 일이 없다. 그것을 수행하였다 해도, 인간 예지는 더한층 어려운 의무를 정해 놓고 그것을 갈망하고 주장할 것이리라. 그만큼 우리 심정은 자기 지조를 지키지 못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잘못을 범하라고 자신에게 명령한다. 자기와는 다른 존재의 이치를 가지고 자기 의무를 결정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누구에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인가?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잘못인가?


'로마'라는 장소 1108

나는 나 자신을 이 세기에는 쓸모 없는 인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기로 뛰어들며, 그들에게 완전히 반해서 옛날의 그 자유롭고 정의롭고 융성하던 로마에(나는 로마의 시초나 노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를 느끼며 열중한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 거리와 옛 집터와 세상의 양극까지 이르는 그들의 깊은 폐허를 그렇게 자주 찾아 보아도 흥미를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것을 기억해 두는 일, 권장되는 인물들이 자주 찾아다니고 살고 하던 곳인 줄을 알아 방문할 때에, 그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듣거나 작품을 읽는 것보다도 어느 점에서 더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우리들의 본성이 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 공상의 속임수에 의한 것인가?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키케로) 나는 그들의 용모와 자세와 의복을 고찰해 보기가 재미난다. "나는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내 입에 올려 보며, 그것을 내 귀에 울려 오게 한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면 이런 위대한 이름들 앞에 일어선다."(세네카) 그 어떤 부분들도 위대하고 감탄할 만한 이런 사물들 중에, 나는 바로 그 평범한 부분들에 감탄한다. 나는 그들이 잡담하며 산책하며 식사하는 것을 보았으면 한다. 그들의 살아가고 죽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들을 좇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시범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그 많은 훌륭하고 용감한 인물들의 유적과 모습들을 경멸한다는 것은 배은망덕이 될 일이다.

우리가 보는 저 로마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자격으로 우리나라의 왕실과도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하다. 그것은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유일한 도시이다. 그 곳에서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수도이며 스페인 사람이건 프랑스 사람이건 그 곳에서는 자기 나라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나라의 제왕이 되려면 어느 나라이건 기독교 국가의 국민이면 충분하다. 이 아래 세상에 이 도시만큼 하늘이 많은 은총을 내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주는 고장은 없다. 그 폐허까지도 영광스럽고 당당하다.


나 자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1112

나는 어느 시의 백성도 못 되는데,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고 이후까지라도 가장 고귀한 도시의 시민이 된 일에 대단히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식으로 주의해서 자기를 관찰한다면, 나와 함께 허황함과 부질없음으로 충만해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내가 그런 부질없는 것을 벗어던지기는 나 자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편이나 다른 편이나 모두가 다 거기 절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는 자들은 좀 나은 축일는지, 그 역시 모르겠다.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3. 세가지 사귐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 vs 사는 것
900

우리는 자기 성격과 기질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요 능력은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할 줄 아는 일이다. 필요에 몰려서 한 가지 길에 매여 지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지 사는 것은 아니다. 가장 훌륭한 심령들은 가장 변화가 많고 적응력이 있는 심령들이다.

내 식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 내게 달린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한 조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게 거기에 매여 지내기를 원할 정도로 좋은 방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인생은 고르지 못하고 불규칙하고, 여러 가지 형태인 움직임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좇으며, 너무 자기 경향에만 매여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비틀어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친구로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주인 노릇은 더 못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자신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독서는 판단력을 일하게 하는 데 쓰인다 901

심령의 됨새에 따라서 자기 사상을 다루는 일보다 더 약한 일도 더 강한 일도 없다. 위대한 인물들은 이것을 천직으로 삼는다. "그들의 삶은 사색함이다."(키케로) 그런 만큼 자연은 심령에게 우리가 이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도, 이보다 더 심상하고 손쉽게 몰두할 수 있는 행동도 없도록 하는 특권을 베풀어 주었다. "이것은 신들의 직무이며, 거기서 동시에 신들의 복지와 아울러 우리의 복지가 나온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독서는 특히 여러 가지 소재로 내 사색을 잠 깨우며, 기억력이 아니라 판단력을 일하게 하는 데 쓰인다.

그러므로 김 빠지고 노력이 없는 대화는 내 주의를 멈추는 일이 드물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중후함과 심오함만큼, 또는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채우며 사로잡는 게 진실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교제에서 내 마음은 잠들며, 거기에 내 주의력의 껍데기밖에 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힘빠진 비굴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어린아이가 하기에도 유치한 꼴사나운 군말이나 천치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든가, 또는 더 서투르고 무례한 수작으로 고집하며 곧잘 침묵을 지킨다.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902

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902

나는 유약한 행동 습관에서 오는 거칠고 쓴 일은 상대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게서 적의나 시기심 같은 것은 쉽사리 벗어 던진다. 사랑받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미움 받지 않기로는 나만큼 기회를 얻은 자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람과의 교제에 냉담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잃었고, 그 사람들이 나의 이러한 태도를 나쁜 의미로 해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힘과 꾀는 따로 간직해 두라 904


그대와 함께 있는 자들의 수준으로 몸을 좀 낮춰서 때로는 무식한 체도 해야 한다. 힘과 꾀는 따로 간직해 두라. 보통의 만남에는 거기에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들이 좋아하거든 그 동안 땅을 기어라.

학자들은 흔히 이 돌에 잘 채인다. 그들은 항상 학자 투를 뽐내며 책에서 얻은 지식을 사방에다 뿌리고 다닌다. 요즈음 그들은 이런 것을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과 귀에 너무 심하게 쏟아 넣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 실질은 파악하지 못했을망정 적으나마 그런 인상을 풍긴다. 모든 종류의 제목과 재료에, 그녀들은 아무리 변변찮고 평범한 일이라도 새롭고 박식한 말투와 문장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말투로 그녀들은 무서움과
분노, 기쁨, 걱정, 마음의 비밀 모두를 쏟아 놓는다.
이 밖에 또 무엇을?
그녀들은 사랑의 고백까지도 박식하게 한다.                                                                           (주베날리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증언해 줄 사물들을 가지고, 구태여 플라톤과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인용해서 말한다. 그녀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지 못한 학설은 그녀들의 혀끝에 머물러 있다.


점잖은 여인들이 내 말을 믿는다면 904∼905


점잖은 여인들이 내 말을 믿는다면, 그녀들은 그 고유의 자연스런 보배들을 빛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녀들은 밖에서 들여온 미(美)로 자기들의 미를 덮어 감춘다. 빌려 온 광채로 빛나기 위해서 자기의 광채를 없애는 일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녀들은 기교 속에 덮여서 묻혀 있다.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얼굴이다."(세네카)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녀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녀들이 기술에 영광을 주며, 백분으로 분칠해 주는 것이다. 그녀들은 사랑받고 숭배받고 살아가는 것 외에 무엇이 또 필요할까? 그녀들은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가졌고,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있는 소질들을 잠 깨워 일으켜 주는 것밖에 다른 필요가 없다. 그녀들이 수사학이나 법학이나 논리학이나 이와 비슷한, 그녀들에게 아무 필요가 없는 헛된 처방전에 매여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을 충고하고 있는 남자들이 이런 핑계로 여자들을 지배할 권한을 가지려고 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진다. 과연 거기에 다른 변명이 있을 것인가? 그녀들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우아한 눈을 유쾌하고 엄격하게 또는 상냥하게 굴리며, 거절할 때도 쌀쌀하고 은근하게, 그리고 호의를 지닌 눈초리를 곁들여 줄 줄 알면 충분하고, 그녀들에게 봉사하려고 하는 말에 통역을 붙여 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지식만 가지면, 그녀들은 회초리를 손에 든 것이고, 선생들과 학교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남자에게 무엇이건 양보하기가 싫고 호기심으로 서적 등과 사귀고 싶어진다면, 시는 그 필요에 맞는 취미이다. 그것은 여자와 같이 촐랑이고 미묘하고 장식적인 말재간이며, 재미 있고 화려한 예술이다. 역사에서도 역시 여러 가지 편익을 얻을 것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에 소용되는 면에서, 남자들의 심경과 조건을 판단하고 남자들의 배반에서 몸을 지키며, 자신의 벅찬 정욕을 조절하고, 그녀들의 자유를 아끼고, 인생의 쾌락을 누리며, 하인의 하는 일이 믿음성이 없다든다, 남편이 혹독하게 대한다든가, 나이 들어 주름살이 잡히는 걱정 등등, 이와 같은 일들을 인간적으로 참아 내게 하는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자들에게 학문에 관해서 지정해 주고 싶은 부문들이다.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 905∼906

사람들 중에는 은둔적이고 내향적인 특수한 성질도 있다. 나의 본질적인 형태는 나를 표현하고 사람과 교제하는 데 적합하다. 나는 천성이 사교와 우정을 즐기며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보여 준다. 나는 외롭고 쓸쓸함을 즐기고 권유하지만, 그것은 주로 내 심정과 사상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데 그치며, 내 생활이 아니라 욕망과 근심을 제한하여 압축하기 위함이며, 외부의 일이 되어 가는 형세로 외로워지는 것도 단념하고, 굴종과 부담을 극도로 피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다. 내 사는 자리가 외롭고 쓸쓸한 것은,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나를 뻗쳐서 밖으로 키워 준다. 나는 혼자 있을 때에 더 즐겨서 국가와 우주의 일에 열중한다.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 906

내가 친분을 가지고 교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점잖고 재능이 있다고 알려진 위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자들은 싫증이 난다.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우리 중의 가장 희귀한 전형이며, 주로 본성에서 받아 온 전형이다. 이 교제의 목적은 단지 친분과 우의와 이야기 친구를 갖는 것이다. 즉, 심령의 단련일 뿐이고, 다른 성과는 없다.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무슨 제목이든지 똑같다. 무게나 깊이가 없어도 상관없다. 거기에는 늘 아담한 풍치와 온당성이 있다. 모든 것이 거기서는 성숙한 지조 있는 판단으로 물들어 있고, 호의와 솔직성, 쾌활미와 우정이 섞여 있다.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 907∼908

예쁘고 우아한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도 내게는 포근한 재미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 점에 박식한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키케로) 그렇다. 심령은 이 점에는 먼젓것만큼 누릴 거리를 갖지 못한다 해도, 이 편에 더 많이 참여하는 육체적 감각은, 내 생각으로는 그 비중이 서로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와의 교제는 전자에 가까운 정도의 무게를 준다. 하나 이 방면의 교제에는 미리 경계하며 다가서야 한다. 특히 나와 같이 육체 생활의 비중이 큰 자에게는 그렇다. 나는 젊었을 적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의 절도없이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자들이 당한다는 식으로, 이런 일에 뜨거운 거동을 보고, 모든 광분의 고통을 겪었다. 이 호된 매를 맞은 것이 다음에 내게 교훈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르고의 함선을 타고
카팔레아의 암초를 피해 온 자는 누구든지,
항상 에우보이아의 수로(水路)에서 이물을 돌린다.                                                    (오비디우스)

우리의 모든 생각을 거기에 매어 두고 무분별하고 맹렬한 정열로 덤벼드는 것은 철부지 같은 짓이다.


연극배우처럼 908


그러나 한편에는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연극배우처럼 풍습과 나이가 모두 하는 버릇이라고 거기에 달려들며, 말로만 하고 마음을 주지 않는 일은 사실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지마는, 그 비굴한 꼴은 마치 위험이 무서워서 명예도 이익도 쾌락도 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교제를 실천하는 자는 아름다운 심령을 감동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아무런 성과도 바랄 수 없다. 진심으로 누려 보았으면 하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야만 한다. 운이 부당하게 그들 가면의 사랑을 유리하게 꾸며 준 때에도 말이다. 이런 일은 여자들이 아무리 팔자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해도, 자기가 아주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나이로나 그 웃는 모습으로나 그 동작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여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하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예쁜 여자가 없듯이 전체가 못생긴 여자도 없다. 그래서 브라만 교도의 처녀들은 다른 장점이 없으면 장터로 나가서 이런 취지로 소리질러 광고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에 여자의 부분을 들춰 보이는데, 적어도 그것만으로도 남편을 얻을 값어지차 있나 없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믿음직하고 착실하게 섬기겠다고 하는 첫번 맹세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남자들이 여자를 예사로 배반하는 결과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피하려고 서로 단결해서 스스로 뒤로 물러서거나 자기들끼리 놀게 되었다. 또는 어느 때는 우리가 보여 주는 본을 떠서 그녀들도 연극을 꾸미면서 정열도 생각도 사랑도 없이 교제해 온다. "자기에게서 오건, 타인에게서 오건, 정열에 무감각하며"(타키투스), 플라톤에 나오는 리시아스가 설복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여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을수록 그만큼 그녀들은 우리에게 유리하고 편리하게 몸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극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연극 배우들만큼의, 또는 더 많은 재미를 볼 것이다.

나로 말하면 어린애 없는 모성애를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큐피드 없는 비너스를 생각해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을 서로 빌려 주고 서로 부채를 지고 하는 사물들이다. 그러므로 이 속임수는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에게 부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대신 그는 쓸모 있는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다. 비너스를 여신으로 만든 자들은 그녀의 미(美)를 비육체적이며 정신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이 찾는 여자는 인간적인 것도 아닐 뿐더라 짐승과 같은 욕정을 지닌 것도 아니다. 짐승들도 그렇게 둔중하고 속된 것은 원치 않는다. 짐승들은 무리 속에서 이성(異性) 간에 그들의 애정에 쓸 것을 쓰고 버릴 것은 버리며, 그들 사이에 오랜 호의의 교분 있는 것을 본다.

늙어서 체력이 다한 놈들도 아직도 몸을 치떨며 사랑으로 이히잉거리며 울부짖고 전율한다. 우리는 이 짐승들이 일에 앞서 희망과 열성으로 충만함을 본다. 그리고 육체가 할 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추억의 달콤한 맛에 취하며, 거기서부터 의기양양해서 뽐내며, 피로하고 포만하면서도 경축과 승리의 노래를 불러 대는 것을 본다. 신체를 생리적 욕구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밖에 없는 자는 그렇게 복잡한 마음씨를 준비하여 남에게 바쁘게 굴 필요는 없다. 그것은 무례하고 수준 낮은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음식은 아니다.


책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 한층 우리의 차지이다 910

 

······ 이 두 가지(우정과 사랑) 교제는 우연적이며 다른 자에 매여 있다. 하나는 얻기가 드문 것이 흠이고, 또 하나는 나이와 더불어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내 인생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였다. 세 번째 것으로서 책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 한층 우리의 차지이다. 이것은 다른 장점에서는 먼저 것들만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제 몫으로 언제나 꾸준하며, 그 봉사를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으며 어디서나 나를 도와 준다. 그것은 노년기에, 그리고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 나를 위로해 준다. 그것은 내가 한가로울 때 권태의 무게를 덜어 준다. 그리고 어느 시간에라도 내게서 귀찮은 동무들을 떼어 준다. 또 내 번민이 극도로 심하지 않을 때에는 고통을 덜어 준다. 불쾌한 생각을 덜어 보려면 책의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책은 쉽사리 그런 생각을 흩어 주며 빼앗아 간다. 그렇지만 서적들은 그보다 더 실제적이고 생생한 자연의 쾌락인 이런 다른 편익을 얻지 못하는 때에만 그들을 찾는 것을 보고도 불평을 하지 않고 늘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 준다.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910∼911

 

병자는 그 치유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 가련하게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내가 서적들에서 끌어내는 모든 성과는 이런 어구의 실천과 적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책을 모르는 자들만큼이나 책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책을 가지고 즐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때에 언제든지 그것을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이것을 소유하는 권리에 포만하도록 만족을 느낀다. 




내가 인생 행로에 갖추고 있는 최상의 장비  911

 

나는 평화시나 전시나 책 없이는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이건 몇 달이건 책을 들추어 보지 않고 보내는 수도 있다. "조금 있다가 하거나 내일 하거나 아무 때라도 생각날 때에 하지" 하고 나는 말한다. 세월은 달음질쳐 흘러간다. 그렇다고 그 동안에 마음이 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책이 내 옆에 있으며, 내가 읽고 싶은 시간에 언제든지 쾌락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내 마음이 안심하여 가벼워지며, 얼마나 이 책들이 내게 도움을 주는가를 이루 다 인정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인생 행로에 갖추고 있는 최상의 장비이다. 그리고 이해력 있는 사람으로 이런 준비가 없는 자들을 지극히 가련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것만은 내게 결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오락은 아무리 변변찮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911∼912


집에 있을 때에는 나는 좀더 자주 서재에 들며, 거기서 집안일도 손쉽게 보살펴 간다. 나는 입구에 자리잡고, 내 아레에 정원과 양계장, 안마당 그리고 내 집안의 대부분을 내려다본다. 거기서 나는 이때에는 이 책, 저때에는 저 책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들춰 보며, 때로는 몽상도 하고 때로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기에 보듯이 내 생각하는 바를 불러 주며 적어 가게도 한다.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2층은 나의 예배실이고, 3층은 거처하는 방과 그 부속실이며, 혼자 있고 싶은 때에는 거기서 자는 일이 많다. 위에는 커다란 의장실이 있다. 그것은 지난날 내 집에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이었다. 나는 이 서재에서 내 생애의 대부분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밤에는 결코 거기에 있는 일이 없다.
 
······ 이 탑은 삼면으로 풍부하고 끝없는 조망이 내다보이며 실내에는 직경 16보의 공간이 있다.

겨울에는 나는 줄곧 거기 있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 집은 그 이름이 말하듯 언덕 위에 올라앉아 있어서, 여기보다 더 바람 타는 곳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떨어진 곳이라 찾아오기도 힘들어서 사람들의 소란도 물리쳐 주고 글을 읽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든다. 여기가 내 자리이다. 나는 이 장소를 내 지배하에 두고, 이 구석 하나만은 아내이건 자식이건 일반 사람들이건 공동 생활에서 구애받지 않고 간직하려고 한다. 다른 데는 나는 모두 본질상으로 확실치 못한 명목상의 권위밖에 갖지 않았다. 자기 집에 있으며 자기대로 있을 곳도, 자기만의 궁전을 차릴 곳도, 몸을 감출 곳도 없는 자들은 내 생각으로는 아주 가련한 신세들인 것 같다!

 


큰 재산 912

"큰 재산이란 큰 노예 생활이다."(세네카) 그들은 물러나 들어앉을 편안한 자리 하나 없다.
 

 

책은 그것을 택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많은 유쾌한 소질을 가졌다 912∼913


나는 그날 그날을 살아간다. 그리고 좀 말하기가 거북하지만 나를 위해서만 살아간다. 내 의도는 거기서 그친다. 나는 젊어서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공부했다. 다음에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였다. 지금 이 시간에는 재미로 한다. 결코 소득을 위해서 한 일은 없다. 이런 종류의 가구(책을 말함)를 가지고 내 필요에 충당할 뿐 아니라, 서너 걸음 더 나가서 나를 덮어 치장하려던 낭비적인 헛된 심정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책은 그것을 택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많은 유쾌한 소질을 가졌다. 그러나 좋은 일로 수고가 들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다. 이것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순수한 쾌락은 아니다. 거기에도 상당히 힘든 그 자체의 불편이 있다. 심령은 거기서 훈련받는다. 그러나(그것도 나는 보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신체는 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며 힘빠지고 우울해진다. 나는 이렇게 노쇠해 가는 나이에 이것을 과도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내게 해롭고 피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총애하는 내 개인의 세 가지 직무이다. 나는 국민의 의무로 세상에 대해서 부담하는 직무를 말하지 않는다.




4. 기분 전환에 대하여


여자들의 비탄 914

여자들의 비탄은 그 반대로, 거들어 주고 권장해 주며 그것이 어느 점에서 지당한 일이라고 증명해 주고 변명해 주어야 한다.


자주 장소를 옮겨서 요양시켜야 한다 916

의사들은 카타르(염증)를 씻어 낼 수 없을 때에는 그 방향을 전환시켜서, 위험이 적은 다른 부분으로 돌려 놓는다. 나는 이것이 심령의 질병에도 무난한 치료법이라고 본다. "때로는 정신을 다른 취미·생각으로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 결국 정신은 기력을 차리지 못하는 병자와도 같이 자주 장소를 옮겨서 요양시켜야 한다."(키케로) 정신의 고통에는 직접 충격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 상처는 부추기거나 꺽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기율여서 세력이 빗나가게 한다.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 918

크세노폰은 화관을 쓰고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아들 그릴로스가 만티네아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이 소식을 들은 첫 충격으로 화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대단히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화관을 다시 집어서 머리에 썼다.

에피쿠로스도 역시 그의 종말에는 자기 문장의 영원성과 유용성에 위안을 느꼈다. "영예와 명성이 수반하는 모든 노고는 견디기가 수월하다."(키케로) 똑같은 상처이며 똑같이 처지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군대의 장수는 병사만큼 그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크세노폰은 말하였다. 에파미논다스는 승리가 자기 편으로 넘어 왔다는 소식을 받고,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어 갔다. "이것이 진실로 가장 심한 고난에 대한 위안이며 진정제이다."(키케로) 그리고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사물 자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빗나가며 헷갈려진다.


우리 정열의 고민을 고쳐 주는 가장 좋은 치료법 920

어떤 괴로운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그것을 억제하기보다는 바꾸는 편이 간단하다고 본다. 그 반대의 일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다른 것을 거기에 바꿔 넣는다. 언제든지 변화는 덜어 주고 풀어 주고 흩어 준다. 싸워서 그것을 이길 수 없으면, 나는 빠져 나가며 그것을 피하려고 비켜 선다. 나는 계략을 쓴다. 장소와 일과 친구를 바꾸고 다른 직무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달아난다. 그러면 그 속에 휩쓸려서, 나는 그만 내 자취를 잃는다.

본성은 이렇게 절개와 지조 없이 혜택을 입으며 진척한다. 본성은 우리 정열의 고민을 고쳐 주는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우리에게 세월을 주었다. 세월은 주로 우리가 생각할 거리로 다른 일을 연달아 대어 주어서, 처음 우리를 사로잡은 심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것을 풀어서 흩어 버리며 삭여 버린다.


가짜 애인 때문에 921

나는 여자들이 사람들의 평판과 추측을 전환시키고 쑥덕공론을 빗나가게 할 목적으로, 가짜 연애를 꾸며서 진짜를 숨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떤 여자가 이렇게 꾸며 보다가 정통으로 걸려서 가짜 애인 때문에 진짜 애인을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자기가 진짜라고 안심하며 이런 가짜 수작을 묵인하는 것은 바보짓임을 이 여자로 인해 알았다. 사람들 앞에 터놓고 응수하며 이야기하는 역할이 이 꾸며 댄 심부름꾼에게 맡겨졌을 때에, 결국 그 자가 그대 자리를 빼앗고 그대를 자기 자리로 밀어내지 못한다면, 그는 약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그것은 마치 남에게 신어 달라고 구두를 재단하고 꿰매는 수작이다.


얼마나 더할 수 없이 적은 일이 922

나의 담석증은 특히 남근에 완고하게 붙어, 어느 때는 사나흘 동안이나 소변을 못 보게 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처지이니, 이런 상태에서 오는 고통이 아주 잔학하다고 그것을 피하기를 바라거나 요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 오, 저 착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죄인들의 남근을 잡아매게 하여 소변을 못 보게 하여 죽게 했으니, 그 얼마나 잔인한 사형 집행이던가! 내 사정이 그렇게 되고 보니, 나는 얼마나 미미한 원인과 목적으로 상상력이 인생에 대한 애석감을 가꾸어 주는 것이며, 얼마나 더할 수 없이 적은 일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무겁고 힘드는 길로 만들어 주는 것이며, 이렇게도 중대한 사건에서 얼마나 변변찮은 생각에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개 한 마리, 말 한 필, 책 한 권, 유리잔 하나, 또 다른 무엇들이 내 죽음에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리석게 그들의 야심에 찬 희망이나 금전·학문·지식 따위로 속을 썩이고 있다.


얼굴이 창백해진 것 923

퀸틸리아누스는 어떤 배우들이 초상당한 자의 역할에 너무 열중해서 자기 집에 가서도 울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자기도 남이 받은 마음의 충격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져서 눈물을 흘렸을 뿐 아니라, 진짜로 비탄에 잠긴 사람의 태도로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들켰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뭐? 이유? 우리 마음을 흔드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924

뭐? 이유? 우리 마음을 흔드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 형체도 명목도 없는 공상이 지배하며 뒤흔든다.

내가 공중누각을 쌓아 보면, 공상은 거기에 온갖 호화판을 꾸며 내 마음은 그것을 흡족히 느끼며 즐거워진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이런 그림자 때문에 정신이 비애와 분노로 혼미해지며, 광상적인 격정에 쏠려서 심신이 변질되는 것인가! 이런 몽상은 얼마나 우리 얼굴의 상을 비틀며, 웃음 같은 혼돈된 표정을 일게 하는 것인가! 얼마나 우리의 팔다리와 목소리를 뒤흔들며 격발시키는 것인가! 이 자는 혼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내심의 악마에게 박해당하는 헛된 환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 변화를 일으키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보라. 도대체 대자연 속에는 무(無)로 양육되며 무의 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들밖에 또 무엇이 있는가?

캄비세스 왕은 자기 동생이 페르시아 왕이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자기가 믿어 왔고 사랑하던 그를 죽여 버렸다. 메세니아의 왕 아리스토데모스는 자기 개가 짖는 소리를 나쁜 징조로 잘못 생각하고 자살하였다. 그리고 미다스 왕은 그가 꾼 불쾌한 꿈을 가지고 속을 썩이다가 똑같은 짓을 하였다. 꿈 때문에 생명을 버리다니, 그것은 생명을 바로 그 가치대로 평가한 증거다.


5.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노령기의 상태
925∼926

노령기의 상태는 너무나 내 정신을 경계하여 타이르고 나를 사리 분별을 할 능력이 있게 만들고, 내게 설교한다. 과도한 쾌활성을 가졌던 나는 이제 반갑지 않게 지나친 근엄성에 빠져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은 일부러 좀 방자하게 생각을 바꿔 본다. 그리고 때로는 경박한 젊은 생각에 마음을 쓰며, 마음만은 거기에 머문다. 나는 이제 너무 침착하고 둔중하고 노숙해졌다. 나이는 날마나 내게 냉철과 절제를 가지고 훈계한다. 이 몸은 무절제한 생활을 피하며 두려워한다. 이번에는 육체가 정신을 개선하도록 지도할 차례이다. 신체는 제 차례로 더한층 혹독하게 강압적으로 지배한다. 신체는 자나깨나 죽음과 인내와 금욕을 가르치기에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옛날에 탐락에 대해 하던 식으로 지금은 절제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 절제는 얼떨떨해질 정도로 나를 뒤로 끌어당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의미로서나 내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에지에도 지나침이 있어서 어리석음 못지않게 절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연에서 이탈한다 927

나는 빨리 늙는 것보다는 노년이 짧은 편이 낫다. 쾌락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장 조그만 쾌락의 기회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여러 가지 신중하고 강력하고 영광스런 쾌락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문 때문에 여간해서 나는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한다. 나는 이런 쾌락이 광대하고 장엄하고 호화롭기보다는, 달콤하고도 바로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것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연에서 이탈한다. 우리는 어느 점으로도 좋은 지도자가 못 되는 세상 사람들의 의견을 좇는다."(세네카)


전에는 긁힌 자국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 928

나는 가장 가벼운 상처도 피한다. 전에는 긁힌 자국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 지금은 나를 꿰뚫는다. 그런데도 내 버릇은 이제 어떠한 불행과도 기꺼이 사귀기 시작하다니! "허약한 신체는 가장 가벼운 부상도 견디지 못한다."(키케로)


금이 간 물건 928

금이 간 물건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깨진다.      (오비디우스)
 


재미있게 사는 것 928∼929 

나는 재미있게 사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으므로 쾌활하고 고요한 생활을 1년 동안 얻을 수 있다면, 세상의 저 끝까지라도 달려가 보겠다. 우울하고 우둔한 안정은 내게도 넉넉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혼미하고 완고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만족할 수 없다.

전원에나 도시에나, 프랑스이건 다른 곳이건, 가만히 있는 성미이거나 싸다니는 성미이거나, 어느 인물이나 어느 패가 있어 내 기분이 그들에게 맞고 그들 기분이 내게 맞는다면, 손바닥으로 휘파람만 불어다오. 난 그들에게 가서 살과 뼈로 내 《에세이》를 제공하련다.


건강에도 한몫을 주지 않는 것은 잘못 929

우리 스승들이 정신의 경탄할 만한 비약에 관해서 그 원인을 찾아볼 적에, 이것을 거룩한 황홀감이나 사랑이나 전투에서 맹렬히 분개함이나 시의 영감이나 술의 탓으로 돌리는 이외에 건강에도 한몫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옛날에 젊음과 안정된 생활이 그 융성한 발육으로 내게 공급하던 것과 같은, 부글부글 긇고 힘차고 충만하고 한가롭던 그 건강 말이다. 이 쾌활성의 불길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타고난 역량에 넘치며, 정신을 잃은 정도는 아니나마 유쾌한 열성 속에, 맑고도 생기 있는 정신의 섬광을 일으킨다.

그러니 내 정신이 이와 반대되는 상태에 억눌리고 못박혀 지내며, 그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거슬린다 930

자기 생각이 방자한 데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자들은 내 문장의 방자함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을 것임을 나는 잘 안다. 내 글은 그들의 심정에는 잘 맞지만, 그들의 눈에는 거슬린다.


불행에만 집착하는 마음씨를 혐오한다 930

나는 음침하고 울적해서 자기 인생의 쾌락은 넘겨치우고 불행에만 집착하는 마음씨를 혐오한다. 그것은 마치 파리 떼와 같이 반반하고 매끈매끈한 물체에는 붙어 있지 못하고 더럽고 거친 곳에만 앉는 식이며, 마치 거머리가 나쁜 피만 찾아 빨아먹는 격이다.


몽테뉴의 소원 931

어떻든 나는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말하기로 작정했다. 공표할 수 없는 생각이 있다는 것까지도 불쾌하다. 내 행동이나 상태들 중의 가장 나쁜 것도, 그것을 감히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추하고 비굴한 일이라고 보는 정도로, 그렇게 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고백하는 데는 조심스럽다. 행동에 있어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당돌하게 실수하는 일은 그것을 당돌하게 고백하는 일로 어느 면에서 보상되고 억제된다. 모두 말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자는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의무를 질 것이다. 내 지나친 방자함이 우리의 결함에서 생겨난 저 겉모양만 꾸미는 비겁한 도덕을 벗어 나서 사람들을 자유 속으로 끌어내고, 내 무절제한 행위의 부담으로 그들을 사리에 맞는 점까지 끌어 온다면, 그것이 바로 내 소원이다!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려면 931

"어떤 악한도 자기의 악덕을 고백하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그것은 그가 아직도 악덕의 노예인 까닭이다.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려면, 잠에서 깨어야 한다."(세네카)


오입과 거짓말 931∼932

나는 거짓을 꾸미기에 몹시 힘이 든다.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나는 남의 비밀을 맡아 두기를 피한다. 침묵을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을 부인하기는 괴롭고 속이 상한다. 정말 비밀이 되려면 그 본성으로 그래야 되지, 의무로 그래서는 안 된다. 왕을 섬기려면, 덮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고는 비밀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가 오입한 일을 엄숙하게 부인해야 할 것이냐고 밀레토스의 탈레스에게 문의했던 자가 내게도 물어 보았더라면, 나는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오입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탈레스는 아주 다르게 충고하며, 작은 잘못으로 큰 잘못을 막기 위해서 맹세하며 부인하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 충고는 악덕을 골라 내는 일이 아니고 늘려 가는 것이다.


곱사등이를 보고 933

모든 일을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하는 자가, 자기의 진실한 존재는 사람들에게 감춰 두고 가면을 씌워서 보여 준다면, 그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곱사등이를 보고 체격이 잘생겼다고 추어올려 주어 보라. 그는 그것을 욕으로 들을 것이다. 그대가 겁보인데 사람들이 용감한 사람이라고 숭배한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대일까? 그대를 딴 사람으로 본 것이다. 누가 수행원 중의 가장 변변찮은 한 병사를 장수로 잘못 알고 올리는 인사를 그가 만족하게 받는다면, 나는 그 꼴을 똑같이 귀엽게 보아 줄 것이다.

(나의 생각)
장렬하게 전사한 어느 '호위무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아, 그는 내게 물을 끼얹은 것이 아니야 933

마케도니아 왕 아르케실라오스가 거리를 지나는데, 누가 그에게 물을 끼얹었다. 그의 부관이 그 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이 사람아, 그는 내게 물을 끼얹은 것이 아니고, 나를 다른 누구로 오인하고 그 사람에게 끼얹은 것일세" 하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누가 그에게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자, "그 자가 말하는 것은 내게 관한 일이 아니고" 하고 말했다.


성적(性的) 행동 933∼934

성적(性的) 행동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도 자연스럽고 필요하고 정당한 일을 사람들은 수치를 느끼지 않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며, 신중하고 점잖은 어법에서 제외하는 것일까? 우리는 "죽인다, 훔친다, 배반한다"라는 말은 과감하게 입 밖에 낸다. 그런데 그 일은 입 속에서만 우물거릴 뿐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단 말인가? 우리가 그것을 말로 적게 내뱉을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 생각을 키워 갈 권리가 생긴다는 말인가?

과연 가장 덜 사용되고, 덜 적히고, 가장 잘 침묵이 지켜진 말이 가장 잘 알려지고 보편적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어느 나이에도, 어느 풍습에서도 빵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없다. 이 말들은 표현도 되지 않고 소리도 없고 형태가 없어도 각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침묵의 권한 아래에 둔 행동이며, 그것을 비난하기 위해서라도 침묵에서 끌어내면 범죄가 된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새장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939

우리는 결혼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혼을 천하게 다루며 살아간다. 그래서 새장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 밖에 있는 새들은 그 속에 못 들어가서 발버둥치고, 속에 갇힌 것들은 어떡해서든 밖으로 나가려고 똑같은 수작을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내를 얻는 편이 좋으냐, 얻지 않는 편이 좋으냐고 누가 묻자 "둘 중에 어느 편을 취하건 사람은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신(神)이 아니면 승냥이나 이리지"(베르길리우스)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이 관계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손 저손 전해져 온 아름다운 규칙 940

한번 걸려든 뒤에는 발버퉁쳐 보아도 때가 늦었다. 자기 자유는 조심스레 아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의무에 복종한 다음에는 공동의 책임과 법칙을 지켜야 하며, 적어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다음에 증오와 경멸을 품고 살아갈 생각으로 이 흥정을 체결하는 자는, 부당하고 난처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신성한 신탁(神託)처럼 여자들 사이에 이손 저손 전해져 온 아름다운 규칙-

상전처럼 네 남편을 섬겨라.
그리고 배신자같이 그를 경계하라.      (원전 미상의 옛 시)

이 말은 "강제되고 적대하며, 경계하는 존경심으로 그를 대하라"는 뜻이니, 전투와 도전의 외침 같아서 똑같이 부당하고 곤란한 일이다. 그러한 가시 돋친 심정을 품기에는 나는 너무 연약하다. 진실을 말하면, 내 정신은 사리와 정의롭지 못함을 혼동하고, 내 욕망에 맞지 않는 질서와 규칙을 우스개로 넘길 정도로 교묘한 민첩함과 세련된 재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랑의 기초 942

사랑은 오로지 쾌락에만 기초를 둔다. 그리고 더 도발적이고 강렬하며 더 흥분시키는 쾌락이다. 얻기가 힘드니 더 불길이 일어나는 쾌락이다. 찌르고 지지는 맛이 필요하다. 살이 없고 불길이 없으면 이미 사랑이 아니다. 부인들은 너무 너그러워서 결혼 생활을 후하게 해 주기 때문에, 애정과 정욕의 자극을 둔하게 만든다. 이 폐단을 피하려고 리쿠르고스와 플라톤이 법을 만들 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라.


하루에 여섯 번, 한 달에 세 번 942∼943

카탈로냐에서 한 여자가 자기 남편이 너무도 끈덕지게 요구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도, 내 생각으로는 그 여인이 불편을 느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 여인은 결혼 생활의 기초적 행동인 이 점에서 이것을 구실로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권한을 삭감하여 억제하고, 남편의 심술궂게 행패하는 성질이 결혼의 잠자리를 넘어서 비너스의 상냥한 우아미까지도 짓밟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이 남편을 고발한 것이다.

이 소송 사건에서 그 남편은 참으로 변태적이고 짐승 같은 남자로, 그는 단식일까지도 열 번을 않고는 못 배긴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 아라공 여왕은 회의를 열고 충분히 토의한 끝에, 정당한 결혼 생활에 요구되는 절도와 겸양의 본이 될 규칙을 모든 시대에 내어 주기 위해서 합법적이며 필요한 한도로 하루에 여섯 번을 명령하였다. 여왕은 이것으로 자기 쪽 정욕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서 완화시켜 주며, 실행하기 쉽고 따라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규칙을 세워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박사들은 "우리의 정욕에 관해 이렇게까지 서로 다른 판단, 그리고 법률학파의 시조 솔론이 결혼 생활에서의 동침에 실수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한 달에 세 번밖에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여자들의 이성과 지혜와 도덕이 이런 비율로 제정되는 이상, 그 정욕과 음란은 얼마만한 것인가?" 하고 개탄했다. 이런 말을 믿고, 설교하고 나서 우리는 여자들에게 최후의 극형까지 과해 가며, 특별히 정조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자들의 전생은 난봉꾼 남자였다고 하는 플라톤의 말 945

여자들이 격식을 집어치우고 아무 말이나 마음대로 하게 두어 보라. 우리는 여자들에 비해서 이 학문에는 아직 어린아이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쫓아다니며 수작하는 것을 여자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들어 보라. 가르쳐 준 일이 없지만, 여자들은 모두 알고 있으며,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여자들의 전생은 난봉꾼 남자였다고 하는 플라톤의 말은 이런 뜻일까? 어느 날 내 귀는 우연히 여자들끼리 한 자리에서 거침 없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왜 이런 말은 못할 것인가? "성모님, 맙소사!" 라고 나는 말했다. 자, 지금 바로 아마디스의 문장과 보카치오와 아레티노의 이야기 책을 공부해서, 좀 약아져 보자. 우리는 참 시간을 잘 이용해 오는군! 말이건, 본보기이건, 일처리이건 여자들이 우리 책보다 더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여자들의 핏줄 속에서 훈련되어 나온다.

비너스가 직접 여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베르길리우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다 이 음양의 결합으로 귀결된다 946

세상의 눈을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여자들의 본성이 이 맹렬한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치스러운 꼴을 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다 이 음양의 결합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모든 곳에 배어든 동기이며, 모든 사물들이 향하는 중심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옛날 현명했던 로마에서 행한 사랑의 봉사를 위한 가르침과 소크라테스가 창녀들을 깨우쳤던 교훈을 알고 있다.

스토아 학파의 소책자들도 비단이불 위에 굴러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호라티우스)


포악한 기관 948

신들은 우리에게 말을 안 듣는 포악한 기관을 제공하였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것은 맹수와도 같이 그 맹렬한 정욕으로 모든 것을 굴복시키려고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는 극성맞게도 탐욕스런 한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은 때맞추어 먹이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늦게 주는 데 조바심이 나서, 제자리를 박차고 나와 여자들의 몸에 광증(狂症)을 불어넣고, 목구멍을 틀어막아 숨을 못 쉬게 하고, 결국 갈증나게 한 목적물을 들이마셔서 자궁 속에다 풍성하게 물을 주어 씨를 뿌려 주기까지는 가지 각색의 병폐를 일으킨다.


동정과 처녀 951

나는 동정을 지키키보다는 한평생 갑옷을 입고 있는 편이 더 쉽다고 본다. 그리고 처녀를 지키는 서약은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서약보다 더 고상하다고 본다. "마귀의 힘이 신(腎)에 있다"고 성 히에로니무스는 말한다.


승리의 대가는 겪은 고난으로 계산된다. 여자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것 952

승리의 대가는 겪은 고난으로 계산된다. 그대의 봉사와 그대의 공로가 여자의 마음에 어떠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여자의 몸가짐에 비춰서 재어 보라.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았는데 많이 준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도 있다. 받은 혜택에 대한 의리는 전적으로 그것을 허락하여 주는 자의 의사에 관련된다. 소득이 될 다른 사정들은 말할 거리가 못 되고, 생명이 없고 우연적이다. 여자의 남자 친구가 그가 가진 경우를 여자에게 주는 것보다 여자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것을 그에게 주기가 더 힘들다. 어떤 일의 희귀함이 가치가 된다면, 그것은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작은 일인가를 보지 말고 얻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를 보라. 돈의 가치는 그 주형과 장소의 표지에 따라서 다르다.


사랑의 증오만큼 억누를 수 없는 일은 없다 955

질투심이 이 허약하고 저항력 없는 가엾은 심령들을 사로잡을 때에, 그 때문에 여자들의 마음이 가혹하게 끌리며 찢기는 모양은 보기에도 가련하다. 질투는 애정의 가면을 쓰고 스며든다. 그러나 이 격정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애정의 기초가 된 이유가 원수간의 증오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질환이며, 많은 사물들이 그것을 북돋아 주는 반면에 진정시켜 주는 일은 드물다. 남편의 도덕과 건강과 인격과 명성은 여자들의 증오와 광분의 불쏘시개가 된다. 


사랑의 증오만큼 억누를 수 없는 일은 없다.
      (프로페르티우스)

이 열병은 여자들이 다른 면에서 가진 아름답고 좋은 점을 모두 경직시키고 부패시킨다. 그리고 질투가 심한 여자는 아무리 정숙하고 살림을 잘해도, 그 행동 모두가 불쾌하고 어색하게 되지 않는 것이란 없다. 질투는 광분한 격동 상태이며, 행동을 그 목적의 전혀 반대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로마의 옥타비우스는 재미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폰티아포스투미아와 자고 난 다음, 그 쾌감에 애정이 더욱 솟구쳐서 결혼하자고 끈덕지게 졸라대다가 끝내 여자를 설복할 수가 없자, 이 극도의 사랑은 그를 가장 잔학하고 치명적인 적의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 여자를 죽인 것이다.


상대할 여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956

여자들은 여성인 이상, 음욕과 정욕을 억제하기란 정숙한 여자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여자들의 의지만을 상대한다면 우리는 어찌될 것인가? 만일 한 남자가 날개가 돋아서 새처럼 날아다니며, 눈이 없어 보지 않고, 혀가 없어 말을 않으며, 그를 맞아 줄 여자 하나하나의 품에 들어갈 특권을 가진다면, 상대할 여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만일 우리가 여자들의 공상을 억누를 수 없다면, 달리 무엇을 구속할 수 있을 것인가? 행동을? 사람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행위를 얼마든지 하고 있으니, 그런 것으로 순진성은 얼마든지 타락될 수 있다.

여자는 곧잘 증인 없는 일을 한다.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아마도 가장 위험한 인물일 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없는 죄악이 가장 악질적이다.


이놈아. 내가 마에케나스를 위해서만 잠들고 있는 것을 못 보느냐? 959

그러나 이런 곳에서 밝혀도 좋을 더 속된 예로는, 오로지 자기 남편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시키는 명령과 중매로 자기 몸을 빌려 주는 여자들을 우리는 날마다 보지 않는가? 옛날에 아르고스 사람 파울리오스는 야심을 품고 자기 아내를 필리포스 왕에게 제공하였고, 마찬가지로 갈바는 마에케나스를 식사에 초대했을 때에, 자기 아내와 그가 곁눈질하며 수작하는 것을 보고 잠이 와서 못 견디는 체하고 방석 위에 쓰러져 그들이 일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거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을 기분좋게 고백하고 있다. 마침 이때에 하인이 들어와서 당돌하게도 탁자 위의 음식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그는 "이놈아. 내가 마에케나스를 위해서만 잠들고 있는 것을 못 보느냐?" 하며 소리쳤다.


여자란 지혜롭다 960

자기 재간으로 여자들을 묶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자물쇠로 잠가 두라, 감금하라, 문지기를 두어 보라.
그러나 문지기는 누가 감시하지?
여자란 지혜롭다.
여자들은 문지기부터 손을 댄다.     (주베날리스)


호기심은 어디서나 악덕스럽다 960

호기심은 어디서나 악덕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는 해독을 끼친다. 처방전을 써 보아도 더 악화시키고 더 키워가기밖에는 못할 질병의 속을 밝혀 보려고 하는 것은 미친 수작이다. 그 불행의 수치는 주로 질투 때문에 더욱 불어가며 세상에 알려진다. 여기에 대해서 복수해 보아도 우리 마음을 덜어 주기보다는 우리 자녀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대는 속을 알 수 없는 일을 밝히려다가 바싹 말라 죽어 갈 것이다.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960∼961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961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바가지 962∼963

마르세유의 원로원이 자기 아내의 바가지를 면하기 위해서 자살하겠다는 자의 소청을 들어 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몸뚱이를 없애지 않으면 없앨 방법이 없는 재앙이며, 그 일은 양편이 모두 매우 어렵지만 피하든가 당하는 일밖에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잠든 귀머거리를 건드렸다가는 크게 코를 다친다 963∼964

메살리나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 올리는 것이다 965


그들의 언어는 지조 있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충만하며 벅차다. 그들은 꼬리뿐만 아니라 머리와 배와 다리 전부가 풍자시이다. 거기에는 억지가 없고 길게 잡아 늘린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태세로 진행된다. "그들의 사상은 남성적 미의 상징이다. 그들은 단지 말을 꾸며서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것은 가시 없는 무른 웅변이 아니고, 힘줄이 박히고 담담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보다는 채워서 황홀하게 하며 가장 강력한 정신들을 감복시킨다. 이러한 훌륭한 문체가 그렇게 생기있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말이 잘됐다고 하지 않고 생각이 잘됐다고 말한다.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올리는 것이다. "웅변을 만드는 것은 흉금이다."(뮌틸리아누스) 우리네는 속이 찬 개념들을 판단력이니 언어니 아름다운 문장이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묘사는 숙련된 문장력으로써 되는 일이 아니고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받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다. 갈루스는 단순하게 말한다. 그것은 그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까닭이다. 호라티우스는 피상적인 표현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가 마음먹은 것을 말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물을 더 명확하게 더 멀리 내다본다. 그의 정신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말과 모양의 곳간 전체를 뒤져서 옭아내 온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예사로움을 벗어나므로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언어가 필요하다. 그는 사물들을 통해서 라틴 말을 본 것이라고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재간 있는 작가들 966

재간 있는 작가들이 조종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언어를 개혁한다기보다는 더 힘차고 다양한 수단으로 채우며, 그것을 늘이고 휘고 해서 언어에 가치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새 낱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낱말을 풍부하게 갖추며 언어의 의미와 용법에 무게와 깊이를 주고, 보통 쓰이지 않는 표현법을 쓴다. 그러나 조심스럽고 묘하게 언어를 표현해 준 작가들 중에 그런 재치를 가진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는, 이 세기의 많은 프랑스 작가들을 두고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보통의 표현법은 경멸하며 쓰지 않을 정도로 매우 과감하다. 그러나 그들은 착상과 사리분별이 결핍되어서 실패한다. 거기에는 괴이한 문투로 가련하게 뽐내는 표현법과 멋쩍고 어리석은 거짓꾸밈밖에 없기 때문에, 재료의 품위를 높이기는커녕 도리어 못쓰게 만들어 놓는다. 새 멋으로 자기 속을 채우기만 하면 문장의 효과는 어찌되건 상관없다. 새로운 낱말 하나 잡기 위해서 흔히 그보다 더 힘줄이 박히고 강력한 보통의 표현법을 버린다.


좋은 작가들 967

내가 글을 쓸 때에는 책을 동무삼거나 읽은 것들을 회상하는 일은 없다. 실로 좋은 작가들은 너무 나를 억눌러서 용기를 꺾어 버리기 때문이다.

 

플루타르크의 저서 967∼968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내 글의 주요 목표와 완성은 968

내 글의 주요 목표와 완성은 남의 것이 아닌 정확한 내 글이 되는 데에 있다. 나는 서투르게 써 나가기 때문에 문장에 오류가 가득 차 있는데, 우연히 저지르는 오류는 고쳐 가겠다. 그러나 내 글에 흔한 일이고 버릇으로 된 불완전한 점을 제거한다는 것은, 내 글에 대한 배반이 될 것이다.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 968

나는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시를 써 본다는 수작을 했을 때엔(라틴어로 밖에는 써 보지 않았다), 그 시는 당시 최근에 읽은 시인의 티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내 최초의 시도 중의 어떤 것은 외국풍의 냄새를 풍겼다. 나는 파리에서는 어딘가 몽테뉴에서와는 다른 말을 쓴다. 누구이건 내가 주목해서 관찰해 본 다음에는 무엇인지 그의 티가 내게 박힌다. 바보 같은 모습이건, 불쾌하게 웃는 꼴이건, 우스꽝스런 말투이건, 내가 유심히 본 것을 나는 몰래 빼앗아 온다. 그것이 악덕이면 더하다. 그것은 나를 찌르기 때문에 더 잘 내게 걸린다. 그리고 뒤흔들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나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남을 본떠서 욕질하는 것을 본다.

마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끔찍하게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무서운 원숭이의 수작만큼이나 몸을 잡치는 모방이다. 이 원숭이들은 달리면 잡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본뜨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들을 잡는 방법을 빌려 주고 있는 셈이다. 사냥꾼들은 그것들이 보는 데서 끈이 많이 달린 구두를 꼭꼭 묶어 신고, 머리에 올가미가 달린 두건을 뒤집어 쓰고, 눈에 끈끈이로 바르는 체한다. 이렇게 하면 이 가련한 짐승들은 멋모르고 흉내를 낸다는 것이 제 눈에 끈끈이 칠을 하고 끈으로 몸을 묶어 얽어 놓는 것이다.


'폐하'나 '전하' 소리를 사흘 동안 계속하고 나면 969

나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이런 피상적인 인상을 쉽사리 받아 들이기 때문에, '폐하'나 '전하' 소리를 사흘 동안 계속하고 나면 여드레 뒤에는 이런 입버릇이 '대감'이나 '영감'이라고 할 자리에서도 튀어 나온다.

(나의 생각)
여러 친척분들을 앞에 모셔 놓고 간단한 인사말을 한다는 것이, 느닷없이 "고객님~"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 미리 막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술에도 많이 취했고 밤이 매우 늦은 시각이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자리'였다고는 하나 '내심'으로는 많이 놀라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970


그러니 어떻든 책은 치워 두고 더 단순하게 말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한 욕망의 대상에 대한 향락의 갈증밖에 다른 것이 아니며, 비너스라는 것은 자기 기관에 찬 것을 비우는 쾌감에 불과한데, 이것이 절제가 없거나 근신하지 않을 때에는 악덕이 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사랑은 미(美)의 중개에 의한 생식의 욕망이다. 그리고 이 쾌감의 꼴같잖은 근질거림, 그것으로 제논과 크라티포스의 마음도 뒤흔들던, 어리석게도 정신 없고 열빠진 동작과 조심성 없는 광증과 사랑의 달콤한 성미에 광분과 잔인성으로 불타는 얼굴, 그리고 아주 미치광이 같은 행동에 있는 장중하고 엄숙하고 황홀한 점잖은 표정, 우리의 탐락과 오물을 한데 뒤섞어 놓았다는 것, 이 지극한 탐락이 고통과 같이 기절하며 신음하는 면을 가진 것 등을 여러 번 고찰해 보면, 플라톤이 말하는 바 인간은 신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 무슨 잔인한 희롱인가!      (클라우디아누스)

자연은 인간을 우롱하느라고 우리에게 가장 혼란되고도 평범한 행동을 주어서 우리를 모두 동등하게 만들었고, 미치광이와 현자들을, 그리고 우리와 짐승들을 대등하게 만들었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들을 만들어 내는 동작 971

우리는 짐승과 같이 잘 먹고 마신다. 그러나 행동이 우리 심령의 작용을 막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행동에 관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행동(성욕)은 모든 다른 상념에 굴레를 씌우며, 강제적인 권위를 가지고 플라톤에 나오는 신학과 철학을 학대하며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데서는 그대는 어느 정도 점잖은 태도를 지킬 수 있다. 다른 모든 행동에는 점잖음의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행동은 악덕과 꼴사나움밖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좀 보게, 거기 현명하고 조심스러운 방법을 찾아보게.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주로 이 행동과 수면에서 자기를 없애는 존재임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수면은  우리 영혼의 소질을 질식기켜서 말살해 버린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영혼의 소질을 흡수해서 흩어 버린다. 진실로 이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부피의 표지일 뿐 아니라, 우리가 무력한 불구자라는 표지이기도 하다.

한편 본성은 이 욕망에 그의 동작 중의 가장 고귀하고 유용하고 재미있는 작용을 결부시켜서 우리를 밀어넣는다. 다른 면에서는 본성은 이 동작을 무례하고 점잖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피하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금욕 생활을 권한다.

우리들을 만들어 내는 동작을 금수와 같다고 하는 우리가, 정말 금수와 같은 것은 아닐까?


인간이란 얼마나 괴상한 동물인가? 972

사람은 제각기 출생을 보는 것은 피하며, 죽는 것은 서로 찾아가서 본다.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대낮에 광막한 벌판(전쟁터)을 찾아가며,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좁고 컴컴한 구석에서 흥겨워한다. 아기를 만드는 데는 부끄러워서 숨는 것이 의무이고, 파괴할(죽일) 줄 아는 것은 영광이며, 거기서 여러 가지 도덕도 나온다. 하나는 욕되며, 하나는 혜택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어느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하기란 그를 죽이는 일이라고 한 것이 그 나라의 어떤 말에 있다고 하였다.

아테네 인들은 이 두 가지 행동이 상서롭지 못함을 대등하게 보고, 델로스 섬을 정화하고 아폴론 신에게 자기들의 결백을 변명하게 되었을 때에, 이 섬의 경내에서 사람을 낳거나 묻는 일을 금지했다.

어느 나라에서는 밥을 먹을 때에 몸을 가린다. 내가 아는 분으로 대단한 가문의 한 귀부인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씹을 때의 용모를 불쾌하게 여기며, 그것이 우아로운 미모를 몹시 천하게 만든다고 여기고, 남의 앞에서 밥먹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분은 남이 밥먹는 것도, 자기가 밥먹는 장면을 남이 보는 것도 참아 내지 못하며, 배 속을 채울 때나 비워 낼 때나 똑같이 사람을 피한다.

터키 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해지기 위해서 밥먹을 때에 남이 보지 못하게 하는 자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밖에 밥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 얼굴과 사지를 찢고 째는 자도 있고, 아무한테나 전혀 말을 않는 자도 있으며, 자기 본성을 못쓰게 만들면서 본성에 영광을 준다고 행각하고, 자기들을 경멸함으로써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신체를 악화시킴으로써 자기 신체를 보완하고 있다는 광신적 인간들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징그럽게 여기고, 쾌락을 고통으로 느끼며, 불행에 의지해서 지내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괴상한 동물인가!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감추는 자들도 있다.

주거와 따사로운 가정도 버리고 도피의 길로 떠나다니!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자기 몸을 숨겨 두는 자도 있고, 건강과 쾌활한 상태를 인간성에 적대되는 해로운 소질이라고 구태여 피하는 자들도 있다.

여러 종파들뿐 아니라 여러 국민들은 자기 출생을 저주하며 죽음을 축복하고 있다. 태양을 파기하고 암흑을 숭배하는 국민도 있다.

우리는 우리를 학대하는 일 외에는 재간이 없다. 그것은 실로 우리 정신력의 노리갯감이다. 정신력이란 인생을 혼란시키는 위험한 연장이 아닌가!

불행한 자여! 자기의 쾌락을 죄로 삼다니.   (프세우스 가르스)

이보게! 가련한 인간이여, 그대는 일부러 꾸며내서 늘리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앙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불행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대는 인간 조건 자체로 너무나 불행하다. 그대는 공상으로 그런 것을 꾸며내지 않아도 본질적으로 추악한 것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 그대는 편안한 것이 불쾌하게 되어 주지 않으면 편안이 너무 지나치다고 보는가? 그대는 자연이 그대에게 맡겨 주는 모든 필요한 직무를 완수하였고, 그대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서 갖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할 일이 없고 한가롭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의심해선 안 될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을 모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파당적이며 광신적인 그대의 법에 집착한다. 그 법이 특수한 것이고 불확실하고 더 모순됨으로 그만큼 그대는 더 애를 쓴다. 그대가 꾸민 실천적인 규칙에 잡혀서 매여 지내며, 그때 교구(敎區)의 규칙, 즉 법칙과 우주의 법칙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고찰을 입증하는 실례를 좀 섭렵해 보라. 그런 것으로 그대의 온 인생이 이루어져 있다.


반사한 때 974

태양 광선이나 바람을 쏘이는 것은 직접 닿는 것보다 한번 부딪쳐서 반사한 때에 더 세차다고 한다.


더듬더듬 974


마르티알리스는 아무리 비너스의 치마폭을 들추어 보아도, 그를 통째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모두 털어서 말하는 자는 바로 물려서 싫증이 나게 한다. 더듬더듬 잘 말해 주지 않는 자는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종류의 겸손에는, 특히 이런 작가들처럼 반쯤 열어 보이며 우리들 공상의 큰 길을 터놓은 겸손에는 배신이 있다. 그리고 그 내용과 묘사는 동시에 좀도둑질하는 수법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


층계와 계단 975


층계와 계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지막 자리는 더 높고 명예롭다.


갑자기 & 이미 975

여자들이 갑자기 우리들 것이 되면, 우리는 이미 그녀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변덕스런 정욕을 충족하고 나면 바로
약속이건 맹세이건 모두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한다.      (카툴루스)

그래서 그리스 청년 트라소니데스는 자기의 사랑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애인의 마음을 얻고 난 다음에는 그가 영광으로 품고 키우던 그 불안스런 정열이 향락 때문에 없어지고 넘쳐나서 해이해 지지 않게 하려고 사랑을 즐기기를 거절하였다. 



그런 여자들은 단지 한쪽 궁둥이만을 가지고 있다 977


나는 상대편의 동의와 욕망 없이 한 육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이나 감정이 없는 몸뚱이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모든 향락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윤리적이며 기운 빠진 향락도 있다. 호의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유로 우리는 부인들의 이 선물을 얻을 수가 있다. 그것은 애정의 충분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다른 일에서와 같이 배신도 거기 굴러들 수가 있다. 그런 여자들은 단지 한쪽 궁둥이만을 가지고 있다.

냉랭하기가 마치 신에게 분향과 제삿술을 준비하듯
여자는 그곳에 없거나 대리석으로 된 것 같으니라.      (마르티알리스)

나는 자기의 마차보다도 그것을 더 쉽게 빌려 주고, 그것으로만 교제하는 예를 알고 있다. 그대가 같이 있어 주는 것이 여자들에게는 다른 목적으로 마음에 드는지, 또는 마구간의 뚱뚱보 하인처럼 단지 그 일만으로 상대하는지, 어떤 지위나 가치로 그대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녀가 그대에게만 허용하는 것인지
또는 흰 분필로 이 날짜를 표해 두는 것인지.      (카툴루스)

뭐라고? 그녀가 그대의 빵을 더 기분좋은 공상의 소스에 적셔서 만든다면?

그녀는 그대를 껴안고 있으면서
지금은 없는 다른 애인을 위해 한숨 짓는다.      (티불루스)


그녀들의 역할
979

나는 여자의 총애를 얻으려면 오랜 시일과 단계를 두라고 권한다. 플라톤은 모든 종류의 사랑에서, 용이성과 신속성은 당사자들에게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여준다. 주책없이 소란스럽게 통째로 넘어가는 일은 색을 탐하는 특징이 되는 것이니, 여자들은 모든 꾀를 부려서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 여자들은 몸가짐에 절도를 지키고 질서 있게 처신하면, 우리의 정욕을 더 잘 속여 넘기고 자기의 정욕도 또한 감출 수 있다. 여자들은 항상 우리들 앞을 피해야 한다. 붙잡히기를 바라는 여자들이라도 그래야 한다. 그녀들은 스키타이 족들처럼 달아날 때 우리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진실로 그녀들이 본성으로 타고난 법칙에 따라서 여자들이 나서서 남자를 욕심내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다. 그녀들의 역할은 당하고, 복종하고, 동의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그녀들은 계속적인 능력을 본성으로 타고난 것이다. 그 능력은 우선 남자들에게는 드물고도 불확실한 것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우리들의 시간에 대비해서 수동적인 역할을 타고났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의 욕망을 뛰어나게 드러내어서 선언하게 하는 반면에, 여자들의 것은 은밀하게 안으로 들어가며 내보이기에는 부적당하며 방어 태세를 가지게 해 주었다.


사랑의 본성,
영원한 포만이나 그 종식(終息)을 명령할 수도 없다 980

사랑은 어떻든 맹렬하지 않으면 사랑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고, 사랑이 지조를 지킨다면 그 맹렬하다는 본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리고 놀라서 떠들어대며 그것이 믿을 수 없이 타락한 일이라고, 그 병폐의 원인이 여자 속에 있다고 보는 자들은 어째서 그들이 이 병폐를 자신들 속에 가지며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놀라지도 않는 것인가! 아마도 사랑에 지조를 발견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정열이 아니다. 탐욕과 야심에도 그 끝이 없다면 음욕에도 끝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음욕은 포만시킨 다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영원한 포만이나 그 종식(終息)을 명령할 수도 없다. 이 음욕은 항상 그 소유한 것의 밖으로 나간다.


오십 고개를 넘은 자,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982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자연은 이 나이를 꼴사납게 만들 것 없이, 가련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주일에 세 번쯤 허약한 힘으로 일어나며, 뱃속에 당연히 해낼 어떤 위대한 힘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꼴이 보기도 싫다.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그리고 지금 둔중하게 얼어붙어서 볼이 꺼진 이 나이에 이렇게도 생기 있게 팔딱거리는 자극이 놀랍다. 이런 욕망은 청춘의 꽃다운 시절에나 가질 일이다. 이런 충동을 믿고, 그대에게 있는, 이 피로할 줄 모르게 꾸준하고 충만하고 장엄한 열기를 한번 거들어 보라. 좋은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만큼의 미련이 있는 동안에는 985


나는 여자들에게 느끼고 있는 실질적인 애정 이상을 보여 주지는 않았고, 애정의 쇠퇴·왕성함·시작·발작·정체 등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그 일은 늘 고르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약속해 주는 일에는 인색했고, 내가 의무를 진 것이나 약속한 것보다는 더 지켜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자기들의 변절에 대해서까지 내가 진실하게 처신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터놓은 변절 행위를 때로는 몇 번이고 거듭하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편에게 실오라기 하나 만큼의 미련이 있는 동안에는 결코 관계를 끊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들이 아무리 절교하여 마땅할 구실을 만들어도 경멸이나 증오를 받을 정도로 그녀들과의 사이를 끊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비밀 관계가 가장 수치스러운 조건으로 기회를 얻은 것이라 해도, 나는 그 여자들에게 어떤 호의를 가져야 할 의무를 느낀다.


예상 외의 힘든 방법 986

나는 할 수 있는 한 여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밀회의 위험을 나 혼자만의 책임으로 맡았다. 그리고 의심을 덜 받으려고 예상 외의 힘든 방법을 쓰며, 뿐만 아니라 내 의견을 따라서 더 성공하기 쉬운 길로 사랑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응당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소는 가장 들키기 쉬운 곳이다. 사람들이 덜 두려워하는 일은 발각의 위험이 더 많고 더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그대가 감히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일을 그대는 더 쉽게 감행할 수가 있다. 그 일은 어렵기 때문에 더 쉬워진다.


사랑은 미치는 자들에게밖에는 해롭지 않다 987


나는 거칠고 일에 힘들게 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가롭게 오그라져 잠드는 생활도 혐오한다. 하나는 나를 꼬집어뜯는다. 하나는 나를 졸게 한다. 나는 뼈가 부러지는 부상만큼의 파열상도, 멍들게 하는 타격만큼 터뜨리는 타격도 좋아한다. 나는 이 흥정에서 제법 그런 일을 할 만하던 무렵에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을 택했다. 사랑은 개운하고 생기 있고 유쾌한 격동이다. 나는 번민도 고통도 받지 않았다. 그보다도 열이 올라서 갈증을 느꼈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 사랑은 미치는 자들에게밖에는 해롭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988

한 청년이 철학자 파나이티오스에게, 현자도 사랑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 보자, "현자는 치워 두라. 그러나 자네와 나는 현자가 아니니까, 우리를 타인의 노예로 만들고, 자신을 경멸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마음 뒤집히는 강렬한 일에는 걸려들지 말자"고 대답하였다. 이런 사태의 충격을 지탱할 수 없는 심령에게는, 그 자체로 격정을 일으키는 일에 몸을 맡길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진실이며, 예지와 연애는 병행할 수 없다고 한 아게실라오스의 말을 압도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헛되고 부적절하고 수치스럽고 옳지 못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둔중한 육체와 정신을 잠 깨워 주기에 적당하고 건전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내가 의사라면, 나와 같은 기질과 조건을 가진 인물에게는 나이가 지긋하기까지 생기를 돋우고 정력을 일으키며 늙음에 잡히는 일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다른 어느 처방보다도 이 처방전을 적어 줄 것이다. 우리가 아닌 그 주변에 머무르는 동안, 맥박이 아직 뛰는 동안,

처음으로 흰 머리칼 겨우 생기며
노령(老齡)은 아직 강건하고 몸을 가눌 수 있는 동안
운명의 여신 라케시스에게 뽑을 실이 남아 있는 동안
아직도 내가 다리를 쓰며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좋을 동안,       (주베날리스)

우리는 이런 따위의 몸이 찌르르 울리는 정열로 초대받고 애무받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저 현명한 아나크레온에게 젊음과 정력과 쾌활성을 얼마나 돌려 준 것인가를 보라.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보다도 훨씬 더 늙어서 사랑의 대상을 두고 말했다. "내 어깨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내 머리를 그의 머리에 가까이 하며, 우리가 같이 책을 들여다보노라니, 거짓말 아니라, 내 어깨는 무슨 짐승이 무는 듯 찌르르하더니, 그 뒤 닷새 동안을 두고 근질거리며, 나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저린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 어깨를 접촉한 것만으로도, 나이 탓에 식어 쇠약해져 가는 심령을 덥게 하다니! 그리고 인간 심령 중의 제1의 심령을 개혁해 주다니, 그럼 왜 못할까?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아무것도 되려거나 닮으려고 하지 않았다.


두 가지로 쪼개 놓는 것 989

우리가 이 지상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은 순전히 육체적인 것도 순전히 정신적인 것도 없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이 두 가지로 쪼개 놓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노년의 사랑 990


나는 숨가쁘게 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어떠한 다른 정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면 나처럼 일정한 직업이 없을 경우, 탐욕·야심·싸움·소송 사건 같은 일에 마음이 잘 매여 지내지만, 나로서는 사랑에 매여 지내는 편이 더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은 다시금 내게 주의력과 소박성과 우아미와, 내 인품에 대한 생각을 가꾸게 하고, 이 늙음의 얼굴 찌푸림이, 이 측은할 만큼 비뚤어진 찌푸림이 나의 용모를 타락시키지 않게 보장해 주고, 나에게 다시 건전하고 현명한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그래서 내 정신이 자신과 자신의 쓸모에 관해서 절망하는 심정을 없애고, 자신에게 다시 정이 붙게 하여 더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게 해 줄 것이고, 할 일은 없고 건강 상태는 나빠지기 쉬운 이런 나이의 수천 가지 불쾌한 생각과 우울한 번뇌를 흝어 준다. 또 적어도 공상으로라도 대자연에 버림받기 시작하는 이 피에 다시 따스함을 넣어 주며, 이제 마지막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가련한 인간에게 턱을 괴어 주고, 근육과 심령의 정력과 쾌활성을 조금은 연장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간해서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몸은 허약해지고, 오랜 경험으로 우리 취미는 한층 더 연약하고 꾀까다로워져서, 내놓는 것도 별로 없이 요구만 많아지며, 용납될 만한 가치가 아주 없는 터에 가장 좋은 상대만 고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젊었을 적만큼 과감하지도 못하며, 사람을 더 믿어 주지도 못한다. 우리 조건과 여자들의 조건을 알고 있는 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사랑받을 자신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저 피끓는 새파란 청춘들 사이에 끼여 있기가 부끄럽다.


사랑은 같은 종류의 돈으로밖에는 치르지를 못한다 991


사랑은 같은 종류의 돈으로밖에는 치르지를 못한다. 진실로 이렇게 기뻐하여 즐김에서는 내가 주는 쾌감은 받는 것보다 내 공상을 더 달콤하게 애무해 준다. 그런데 자기가 쾌락을 주지 못하며 남의 쾌락을 받는 자는 조금도 떳떳한 것이 못 된다. 모든 일에 남의 덕만 보려고 하며, 상대편에게 부담이 되게 교제하고, 남의 신세만 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마음이 비굴한 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건 아담한 취미이건 친밀성이건, 활달한 대장부가 이런 대가를 치르고 바라야 할 만큼 정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들이 겨우 측은한 마음으로밖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없는 것이라면, 남이 시주한 재물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훨씬 낫겠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하는 식으로 "당신을 위해서 내가 좋은 일을 하였다"고 라든가, 키로스가 자기 군대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고 하던 식으로 여자들에게 사랑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싶다.

"그대와 같은 조건의 여자들과 맺으라. 팔자가 같은 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오, 그 얼마나 멋쩍고 어리석은 타협인가!

나는 죽은 사자의 수염을 뽑고 싶지는 않다.      (마르티알리스)


억지로 손질하여 꾸민 미모 992

나는 제1급의 추악으로서 억지로 손질하여 꾸민 미모를 든다. 키오 섬의 소년 에모네즈가 타고나지 못한 미모를 장식품으로 꾸미고, 철학자 아르게실라오스에게 가서 현자도 사랑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철학자는 대답했다. "하고말고, 다만 너처럼 가짜로 꾸며서 만든 미모가 아니면 말이다." 나는 칠하고 닦아 놓은 것보다는 드러내 놓은 못난이나 늙은 모습이 덜 추하다고 생각한다.


장년기와 노년기 993

나는 장년기에는 미모가 이미 자리를 떴다고 본다. 더욱이 노년기이면 말할 거리도 없다. 993


서른 살 993

나바르의 여장 마르그리트는 여자이니 여자의 장점을 한껏 연장시키며, 서른 살에 이르면 그 칭호를 '예쁜'에서 '착한'으로 바꾸라고 명령한다.


풋내기들이 스승이다 993


우리 인생의 지배력을 사랑에게 짧게 줄수록 우리는 그 만큼 더 가치가 생긴다. 사랑의 자태를 보라. 그것은 젖내나는 모습이다. 사랑의 학파에서는 모든 처사가 질서에 역행하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공부나 훈련이나, 행동 습관이 무능력으로 향하는 방도로 된다. 거기서는 풋내기들이 스승이다.


비틀거리며 촐랑대며 가는 사랑 993


사랑이 얼마나 비틀거리며 부딪치고 촐랑대며 가는가를 보라. 그것은 현명하게 기술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칼을 씌우는 일이다. 사랑을 더부룩하고 덕적덕적한 손에 맡긴다는 것은 그의 신성한 자유를 속박하는 일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귀한 교환 993


나는 우리가 여자들의 육체적 미를 고려해서 늘 여자들의 정신적 허약성을 용서해 주는 것은 보았으나, 여자들의 정신이 아무리 현명하고 성숙했다고 해도 그 정신의 미를 위해서 다소나마 쇠잔해 가는 육체를 여자들이 변호해 주려고 하는 것은 아직 본 일이 없다. 여자들 중의 어느 누구라도 저 소크라테스식의 육체와 정신의 고귀한 교환으로 자기 엉덩이의 가치를 가장 비싸게 올릴 수 있도록 그 엉덩이의 대가로 철학적이며 정신적인 지성과 생산을 사들일 생각은 어째서 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같은 틀 994


나는 수컷이나 암컷이나 같은 틀에 부어 냈다고 말한다. 교육과 풍습을 제외하고는 그 사이에 그리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부지깽이가 냄비 바닥의 껌정을 비웃는다고 하는 말 994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에서 공부나 경기나 부담이나 전쟁 직무나 평화 직무나 모든 모임에, 양편을 다 무차별하게 불러들인다. 그리고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는 여자들의 도덕과 우리의 도덕 사이의 모든 구별을 철폐해 버렸다. 한편의 성(性)을 비난하기는 다른 편의 성을 변명하기보다도 훨씬 더 쉽다. 부지깽이가 냄비 바닥의 껌정을 비웃는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18. 반증에 대하여


자랑으로 보여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734


이것은 서재의 한구석에 꽂아 두고, 이웃이나 친척이나 친구로 이 영상 속에 나와 사귀고, 나를 알아보고 싶은 이에게 심심풀이로 주기 위한 것이다. 남들은 당당하고 풍부한 재료를 자기들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기의 말을 할 생각이 났다. 나는 반대로 내 재료가 너무 가늘고 얇으며 빈약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여기에 자랑으로 보여 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
734

내가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는 기껏해야 그들의 인쇄 기계를 빌린다는 일뿐이다. 그것이 더 신속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책의 낱장은 아마도 장터에서 버터 한 귀퉁이가 녹아 떨어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다랑어나 올리브를 마음껏 싸는 포장지가 되어 주자.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나는 자주 고등어에게 편하게 들어 있을 옷을 제공하련다.                                 (카툴루스)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735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내가 그 많은 한가한 시간을 그렇게도 유용하고 즐거운 사색으로 보낸 것이 시간의 낭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내 자신의 틀에 이런 그림을 판박아 내며, 나를 뽑아 내기 위해서 그렇게도 여러 번 손질하고 꾸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라는 원형이 어느 점에서 굳어지고 만들어져 갔다. 남을 위해서 나를 그려 가다가, 나는 첫 빛깔보다도 더 뚜렷한 색채로 내 속에 나를 색칠해 간 것이다. 내가 내 작품을 만들었는지 내 작품이 나를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 작품은 작가와 동체이며 작가 자신만이 취급되고, 내 생명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서적들처럼 제3의 외부적인 목적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도 끊임없이, 그렇게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보고해 온 것은 단지 시간 낭비뿐이었을까? 오로지 공상으로, 그리고 말로만 몇 시간 동안 자기를 더듬어 보는 자들은, 그것으로 자기 연구와 자기 작품, 그리고 자기 직업을 삼으며 성심껏 전력을 다해서 꾸준히 기록해 가는 일에 전념하는 자만큼 본심으로 자기를 살피지도 자기 속에 침투하지도 못한다.

가장 감미로운 쾌락은 그것이 내부적으로 소화되면 그 흔적을 남기기를 피하고,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린다.

얼마나 여러 번 이 일이 내게서 울적한 상념을 흩어지게 해 줬는가! 모든 부질없는 상념들은 울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외따로 반성하는 소질을 풍부하게 선사하였고,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사회의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 최대 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스스로 반성해 보도록 자주 권고한다. 내 공상에도 어떤 질서와 계획을 세워서 몽상해 가도록 정리하여 그것이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공상에 떠오르는 하고많은 자디잔 생각들에 형체를 주어서 기록해 두는 수밖에 없다. 나는 몽상들을 기록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몽상들을 주의해서 듣는다. 내가 얼마나 여러 번 어떤 행동에 관해서 예법과 이성이 드러내 놓고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데 마음속에 화가 북받쳤는가, 그것을 대중에게 알려 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서 여기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참으로---

저 잡놈의 눈깔 위에 탁!
배때기에 탁! 등때기에 탁!                                                                                              (마로)

이 시의 채찍은 몸뚱이에 때릴 때보다 종잇장 위에 매질할 때에 자국이 더 잘 박힌다. 뭐? 내가 다른 책들에서 무엇이건 도둑질해 작품을 장식하거나, 보강할 수 있을까 하고 엿보아 온 것에, 좀더 책들의 말에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면 어떠냐고? 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고,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얼마쯤 공부하였다. 적어도 이때는 이 작가, 저때는 저 작가의 머리나 다리를 스쳐 보고 꼬집어 보는 것이 공부라면 말이다. 결코 내 사상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벌써 오래 전에 형태가 잡힌 사상들을 보충하고 거들어 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거짓말 737


거짓말이라는 것은 천한 악덕이다. 그리고 옛 사람(플루타르트를 말함)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묘사하며, 그것은 신을 경멸하고 동시에 인간을 두려워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악덕의 흉칙스럽고 비굴하고 난잡스러움을 이보다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에 대하여 비굴하고 신에 대해서 용감하다는 것보다 더 비굴한 일을 달리 상상해 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상호 양해는 오로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말을 그릇하는 자는 공공 사회를 배반하는 것이다. 말은 그 방법으로 우리의 의지와 사상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연장이다. 그것은 우리들 심령의 통역이다. 말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 없으며, 알아보지도 못한다. 말이 우리를 속인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를 부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연락을 무너뜨린다.

(나의 생각)

'신뢰의 가치'를 역설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트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19.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20. 우리는 순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다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 743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쾌락의 샘 복판에 쓴 것이 솟아나와
꽃처럼 피어나는 연인들을 괴롭힌다.                                                                                   (루크레티우스)

우리의 탐락은 극도에 도달하면 어느 점에서 신음과 오열의 풍이 있다. 이 탐락이 고민 속에 사라진다고 말하지 못할 일인가? 진실로 우리가 그 모습을 절정 상태에 꾸며 볼 때에, 우리는 그것을 오뇌·유연·허약·실신·병태 등 병적이며 고통스런 소질의 접두사로 매흙질한다. 그들이 혈연성과 동질성으로 되었다는 두드러진 증거이다.

심각한 기쁨은 쾌활성보다 더 엄격함을 지닌다. 극도로 충만한 만족감에는 유쾌미보다도 한층 안정감이 있다. "절제 없는 행복감은 그 자체를 파괴한다." 안일은 우리들을 찢어발긴다.

그리스의 한 시구 첫머리가 바로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다. "신들은 우리에게 주는 모든 일들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어떠한 좋은 일도 순수하고 완벽하게 주지 않으며, 그것을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산다는 말이다. 노고와 쾌락은 기본 성질상 대단히 다르지만,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자연스런 결합으로 서로 협력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이 고통과 쾌락을 뭉쳐서 뒤섞어 놓으려고 했다가 그것을 잘 해낼 수 없자, 이들을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하였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 744

대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혼돈을 드러내 보인다. 화가들은 울 때에 사용하는 얼굴 움직임과 주름살이 웃을 때에도 역시 쓰인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표현이 완수되기 전에 화가가 그려가는 모습을 살펴보라. 어느 쪽으로 그려 가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그리고 웃음의 절정에는 울음이 섞인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세네카) 인간이 소원대로의 편익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신체의 모든 부분이 늘 생식 행동(生殖行動)의 쾌감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의 것과 같은 쾌감으로 잡혀 있을 경우를 들어 보면), 나는 그가 쾌감의 무게 밑에 쓰러져서, 그렇게도 순수하고 견실하고 보편적인 탐락을 전혀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경지에 있으면 그는 마치 발을 단단히 디딜 수 없어 빠져 들어갈까 두려워하는 것같이 조급해져서 달아난다.


표본적 처벌 745

"모든 표본적 처벌은 개인들에 대하여 비공정성을 지니되, 그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보상된다"고 타키투스는 말한다.


25. 병자를 흉내내지 말 것에 대하여


상상력의 작용 758


플리니우스는 어떤 자가 전에는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자다가 시각장애인이 된 꿈을 꾸고 나서 다음 날 바로 시각장애인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내가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상상력은 그런 작용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플리니우스도 같은 의견인 것 같다. 그러나 의사들이 그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으면 발견했을 일이지만, 그에게서 시각을 앗아 가고 있던 증상을 신체는 그 내부에 느끼고 있었으며, 이 증상이 꿈을 꾸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우리의 병폐 759

"우리의 병폐는 우리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우리들 속에 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병들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병을 고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일찍부터 자신을 보살피지 않으면 언제 가서 그 많은 상처와 병폐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때문에 우리는 철학이라는 대단히 감미로운 약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약들은 치료되고 난 뒤에 밖에는 유쾌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 약은 쓸 데에도 유쾌하며, 동시에 병을 고쳐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네카가 편지글에서 한 말이다.


27.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760

나는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저 악의에 찬 비인간적인 마음씨의 악랄함과 가혹함은 대개 여성적인 유약한 성격에 수반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중에도 가장 잔인한 자들이 변변찮은 이유로 쉽사리 우는 것을 보았다.


가장 비겁한 부류들, 겁 많은 똥개들 761


승냥이나 곰 같은 짐승들 중에도
가장 비겁한 부류들이 죽어 가는 사람을
집요하게 습격한다.      (오비디우스)

마치 겁 많은 똥개들이 들판에서는 공격할 엄두도 못 내던 야수들의 껍질을 집에 가지고 와서는 찢고 물어 뜯는 식이다.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761


적의 숨길을 끊기보다는 패배시키는 것에, 그를 죽이기보다는 굴복시키는 데에 더 큰 용맹과 멸시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뿐더러 복수의 욕망은 이것으로 더 만족한다. 복수는 자기 실력을 뼈저리도록 느끼게 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짐승이나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보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데서라면 763


한 문장을 공격하려고 그 작가가 죽기를 기다리는 자는 약한 자이며 싸움꾼이라는 것밖에 무엇을 뜻하는가? 누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떤 자가 당신을 나쁘게 말하더라고 하자 그는,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하게 하오. 내가 없는 데서라면 아무리 내게 매질해도 좋소"라고 말했다.


28. 모든 일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772

젊은이는 자기 준비를 해야 하고, 늙은이는 그것을 누려야 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천성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가장 큰 결함은, 우리의 욕망이 끊임없이 다시 젊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늘 살기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의 공부와 욕망은 때로는 늙음을 느껴야 할 일이다. 우리는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욕망과 추구는 출생만 하고 있다.

그대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무덤 생각은 않고,
대리석을 깎으며 가옥을 건축한다.      (호라티우스)

내 계획은 가장 긴 것이라 해도 일 년의 폭을 넘지 않는다. 나는 이제부터는 마지막을 장식할 생각밖에 않는다. 나는 내게서 모든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벗어던진다. 나는 이제 두고 떠나려는 모든 장소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날마나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 간다.

"오래 전부터 나는 잃지도 따지도 않는다. 내게는 갈 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남아 있다."(세네카)


30. 한 기형아에 대하여



전에 본 일이 없는 것 783

"그가 빈번히 보는 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를 그가 알지 못할 때라도 그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 일어나면, 그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키케로)


31. 분노에 대하여


격정이 지배하는 것 785


우리의 맥이 극도로 뛰며 흥분을 느끼는 동안은 일을 중지할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가라앉아 냉철해질 때에는 사물들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때에는 격정이 지배하고 격정이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격정을 통해서 보면, 마치 안개를 통하여 보는 물체와 같이 잘못들이 우리에게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배고픈 자는 음식을 찾는다. 그러나 징계를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벌 주고 싶은 생각에 굶주리고 목이 말라서는 안 된다.


키케로와 브루투스 786

나는 옛 사람들의 문장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쓰는 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체하고 말하는 자보다 더 강한 감명을 주는 것에 주목한다. 키케로가 자유애(自由愛)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브루투스가 같은 제목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 문장에서, 이 후자는 생명을 내걸고 자유를 살 인물이라는 것이 울려 온다.


키케로와 세네카 786


웅변의 시조인 키케로에게 죽음의 경멸을 말하게 해 놓고, 세네카에게 같은 문제를 다루게 해 보라. 전자는 기운 없이 끌어간다. 그리고 자기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그대에게 결단내리게 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대에게 조금도 용기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후자는 그대에게 활기를 주고 불을 지른다. 나는 작가들, 특히 도덕과 의무를 취급하는 작가들은 그가 어느 종류의 인물인가를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는 그 작품을 읽지 않는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788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옛날의 한 경이로운 예를 기억하고 있다.

피소는 탁월한 도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부하 병사 하나가 꼴을 베러 갔다가 혼자 돌아왔고 같이 갔던 동료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 자가 그를 죽인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하고 당장에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래서 그를 사형대에 올려놓았을 때에 마침 길을 잃었던 동료가 돌아왔다. 군대 전체는 이것을 큰 경사로 여기고, 두 병사는 한참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면서 반가워했다. 그 다음 거기 와 있던 피소에게도 이 일은 대단히 기쁘리라고 기대하고, 사형 집행인이 이 두 병사를 그의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사정은 거꾸로였다. 피소는 수치와 울분으로 아직도 속에서 치밀어오르던 화가 배로 터지며, 그의 격정이 갑자기 꾸며 댄 궤변으로, 홧김에 이 셋에게 죄를 씌우며 모두 형장으로 보내게 하였다. 첫번 병사는 그가 선고를 받았으니 유죄이고, 길을 잃었던 둘째 병사는 그의 동료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니 그렇고, 사형 집행인은 그가 받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까닭에 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것 789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가장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789∼790


사람들은 분노를 숨기다가 그것이 몸에 배어들게 한다. 그것은 마치 데모스테네스가 주막집에서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디오게네스가 "속으로 물러나 들어갈수록 더욱 그대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식이다. 나는 점잖은 외모를 보이느라고 속으로만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리라 격에 맞지 않게 하인의 뺨을 한 대 치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고생하며 울화통을 덮어두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밖으로 터뜨려 내보낼 것이다. 격정은 새어 나가서 밖으로 표현되면 힘이 약해진다. 격정의 화살을 안으로 향하게 해서 우리를 해치게 하는 것보다는 밖으로 작용시키는 편이 낫다. "모두 드러내 보이는 악덕은 비교적 가볍다. 그것은 가장(假裝)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가장 나쁘다."(세네타)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790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 꾸지람이 자기가 불평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도달하도록 잘 보아서 해야 한다. 어떤 자는 꾸지람 받을 자가 앞에 나오기도 전에 고함지르며, 그가 가 버린 뒤에도 한 세기를 두고 계속해서 소리지른다.


누가 어떻게 밀건 791


불행한 일로 사람이 낭떠러지에 서게 되면, 누가 어떻게 밀건 늘 바닥까지 떨어지게 마련이다. 추락은 그 자체가 돌진과 격앙과 촉진력을 제공한다.


분노라고 하는 무기 792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32. 세네카와 플루타르크의 변호



얼마나 바보같은 우둔성인가? 796∼797


가능한 일과 가능하지 않은 일은, 내가 다른 데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지각으로 믿을 수 있거나 믿을 수 없는 것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기들이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는 것이라고, 남이 하는 것을 여간해서 믿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며 사람들 대부분이 거기에 잘 빠진다. 각자에게는 자연이 주장하는 형태가 자기에게 있는 것같이 보이며, 이 형태를 시금석으로 모든 다른 형태들을 여기에 관련시켜 본다. 자기 태도에 맞추지 않은 자세는 꾸며 낸 것이고 인공적인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우둔성인가!

나로서는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아주 위에 있다고 보는데, 특히 옛 사람들이 그렇다. 내 걸음으로 그들을 뒤따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도 나는 그들을 눈으로 뒤따르며 그들을 그렇게 높이 올려놓는 원동력을 판단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어느 점에서 그 힘의 씨앗이 내게도 있음을 알아본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 어느 심정이 극도로 비천한 것을 알아 보고, 거기에 놀라지도 않으며 그것을 믿는다. 나는 이런 인물들이 자기를 높이 올리려고 사용하는 법을 잘 고찰해 보며, 그들의 위대성에 감탄하고, 내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보는 이런 비상(飛翔)을 내 속에 품어 보며, 비록 내 힘이 도달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내 판단력은 기꺼이 노력한다.


33. 스푸리나의 이야기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800

크세노크라테스는 여기에 더 가혹한 방법을 썼다. 제자들이 그의 절조를 시험해 보려고, 저 유명한 예쁜 창녀 라이스를 벌거벗겨 그녀의 미모와 아양떠는 매력의 무기를 발휘하도록 그가 자는 침대 속에 밀어 넣었더니, 그는 자기 사상과 규칙에도 불구하고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거역하기 시작하자, 이 반역에 귀를 기울인 부분들을 불로 태워 버렸다.


34.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 809

이 가련한 자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하게 시간을 아껴 쓸 줄 아는 자인가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때맞추어 기회를 잡아 번개같이 집행하는 것이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으며, 이 재간이 사람의 일로 믿어지지않는 전대미문의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35. 세 현숙한 부인에 대하여


때늦은 표시로다! 817

화목한 결혼의 기준과 진실한 증거는 그 교합이 얼마나 지속되며, 이 교합이 꾸준히 조용하고 성실하고 유쾌했던가에 달려 있다. 우리 시대에는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선량한 봉사와 맹렬한 애정을 남편이 죽은 뒤에 표시하려고 보류해 두고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그 선의의 증거를 보여주려고 한다. 때늦은 표시로다! 여자들은 도리어 이것으로 남편들을 죽어서밖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전엔 다툼으로 가득하고, 사후엔 사랑과 예절로 가득하다. 부친들이 그들 자녀에 대한 애정을 감추고 있듯, 그녀들은 점잖은 존경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즐겨 남편에 대한 애정을 감춘다. 이런 신비는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녀들이 아무리 머리털을 쥐어뜯고 자기 몸을 할퀴고 해 보아도 소용 없다. 나는 바로 침모(針母)나 서기의 귀에 대고, "그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이들은 어떻게 살았지?" 하고 물어 본다.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 817


나는 늘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타키투스)라는 좋은 말이 생각난다. 그녀들의 찌푸린 상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흉하고, 죽은 자들에게는 소용없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웃어 준다면 죽은 뒤에 웃는 것을 기꺼이 면제해 줄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코에 대고 침뱉던 자가, 이제 죽어 갈 때에 와서 발을 문질러 본다면, 울화가 터져서라도 다시 살아날 일이 아닌가? 남편의 죽음을 울어 주는 데 무슨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웃어 준 여자들만의 차지가 된다. 살아서 울어 준 여자들은 죽어서는 속으로나 겉으로나 웃어 댈 일이다.

그러므로 그 축축한 눈과 가엾은 목소리를 보지 말고, 저 요란스러운 베일 밑의 저 거동, 저 안색, 저 오동통한 볼을 보라. 그녀는 이런 것으로나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 다음에 건강이 더 좋아지지 않는 예는 드물다. 이 소질만은 속이지 못한다. 이런 격식을 차리는 자태는 앞이나 꾸밀까, 자기 뒤는 그다지 가다듬어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밖에서 빌려 온 것이고, 자기 속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에, 지금도 살아 있지만, 한 점잖고 대단히 예쁜 귀부인이 왕공의 과부 신분으로는 우리의 관습이 허용하는 이상의 몸치장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책망하자 그녀는 "그건 내가 새로운 친교를 맺지 못한 까닭이오. 그리고 나는 재가할 뜻이 없소" 하고 말하였다.

사례 1. 이탈리아에서 젊은 플리니우스의 집 옆에 살던 한 이웃(p818∼819)
사례 2. 파에투스 케킨나의 아내 아리아 (p 819∼821)
사례 3. 폼페이아 파울리나. 세네카의 부인 (p821∼823)


36.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 825∼828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바로가 그만큼 박식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고, 예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 한편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단지 내가 아는 한도로 시신(詩神)들까지도 이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도 베르길리우스가 그 재질을 주로 호메로스에게서 배워 온 것이었으며, 이 시인이 그의 안내자이며 스승이었고, 《일리아드》의 단 한 줄이 저 위대하고 거룩한 《아에네이스》에 본체와 재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고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 이 인물을 감탄스럽고 거의 인간 조건 이상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을 섞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대성 828∼829

또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계획을 시작한 나이, 그가 그렇게도 영광스런 계획을 완수하는 데 쓴 방법이라는 것이 대단치 않다는 것, 그가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험 많은 장수들 사이에 권위를 세워서 그들을 따라오게 한 일, 그 모험적이며 거의 철없다고 할 만한 하고많은 그의 업적을 운이 품어 주고 밀어 준, 예사로움을 넘어선 하늘의 은총 등을 고려해 보면,

그의 무한한 욕구에 장애되는 모든 것을 부수어 가며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혈로를 여는 기쁨을 맛보며      (루카누스)

이 위대성은 33세의 나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전체를 승리자로서 거쳐 갔고, 반생 동안에 인간의 천성이 성취할 수 있는 궁극에 도달했으며, 그래서 인간을 초월한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명의 폭을 가지고는 용덕으로, 그리고 운으로 그의 정당한 지속 기한과 성장을 상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된 일, 그의 군사들 속에서 여러 왕실들이 가지를 쳐 나가게 하고, 죽은 뒤에도 군대의 부대장들인 네 명의 상속자에게 세계를 분할하여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이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계속 된 일, 정의·절제·관후성·약속을 지키는 신의, 자기 가족들에 대한 사랑, 피정복자에 대한 인간성 등 하고많은 탁월한 덕성들을 가지고 있던 일.

아울러 그의 부지런함·예측·참을성·훈련·책략·호방·결단성 그리고 한니발의 권위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사람들 중의 제일인자였던 행운 등의 하고많은 군사적 덕성, 기적이라고까지 보고 싶은 인물의 희미한 미모와 성품, 그렇게도 불그레하니 화색이 도는 젊은 얼굴 밑의 그 자태와 그 존경할 만한 몸가짐.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오랜 영광의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왕이나 왕공들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왕들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트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하는 사실들을 고찰해 본 자이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보다도 내가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카이사르의 공훈에는 그 자신의 힘이 더 많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공훈에는 운의 힘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여러 면에서 대등하였고, 카이사르가 어느 점에는 아마도 더 위대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여러 군데에서 황폐시켜 나간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였다.

소리내며 타는 마른 숲과 월계수 숲 속에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번지는 화염과도 같고
신속히 고산 준령에서 떨어져 내려
물거품 던지는 급류가 소란스레 대해로 달려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 통로를 터 나가듯.      (베르길리우스)

그러나 카이사르의 야심엔 더 많은 절제가 있었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나라의 궤멸과 세계의 전반적인 악화에 그의 낮고 추한 목적을 두었던 만큼, 너무 심한 불행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모든 점을 종합해 저울질해 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37. 자손들이 조상을 닮음에 대하여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834

세월이 그들과 오래 교제하는 자들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여러 선물들 중에도 내가 수락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골라 주었더라면 좋았을 성싶다. 그들은 내가 어릴 적부터 가장 흉측하게 생각하던 것을 줄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것은 노년기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들 중에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이렇게 먼 길을 가다가는 결국 어떤 불쾌한 일에 걸리고 말 것이라고 혼자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이미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외과의들이 신체의 어느 부분을 끊어 낼 때의 규칙을 따라서 이 인생을 생짜로 그 알맹이에서 잘라 내야 하는 것이고,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대자연은 아주 호된 높은 이자를 물리는 습관이 있다고 어지간히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함쳐 볼 일 836∼837


극단적인 재앙을 당한 자에게 점잖게 차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행동만 떳떳이 해 나간다면 언짢은 얼굴을 해도 좋다. 신체가 비탄함으로써 괴로움이 좀 멀어진다면 그렇게 할 일이다. 몸을 흔드는 것이 기분에 좋다면, 멋대로 곤두박질이건 수선이건 떨어 볼 일이다. 만일 소리를 힘껏 맹렬하게 밖으로 내질러서(여자들이 해산할 때에는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어떤 의사들이 말하듯), 아픔이 어느 정도 풀어지는 듯하다면, 또는 그것으로 아픈 생각이 헛갈린다면, 악을 써서 고함쳐 볼 일이다. 이 소리에게 나오라고 명령은 하지 말자. 그러나 나오는 것은 허가하자. 에피쿠로스는 현자에게 아플 때에 소리지르는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권하기까지 한다. "역사(力士)들도 역시 그들 적수를 강타할 때에 철장갑을 내휘두르며 소리지른다. 심오한 발성으로 전신이 단단해지고 타격이 더 맹렬히 내리쳐지기 때문이다."(키케로) 우리는 이런 쓸데없는 규칙으로 애쓰지 않아도 고통만으로 할 일이 많다.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 839

우리가 여느 때 보고 있는 사물들 중에도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들이 많다고 본다.


도대체 이 정액 한 방울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이기에 거기서 우리가 생겨나며, 거기에 우리 조상들의 육체적 형태뿐 아니라, 그 사상과 경향의 흔적까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 물방울은 어디다 이 무한한 수의 형태를 깃들이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물방울들은 종잡을 수 없게 혼란된 추이로, 증손자가 증조부를 닮고 조카가 삼촌을 닮는 이런 유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 내가 이 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친에게서 받은 것이라 믿을 만하다. ······
 
어디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 결함의 성향은 부화되고 있었던 것일까? 부친이 이 병에 걸리기까지에는 아직도 시일이 멀던 시절에 그가 나를 이뤄 낸 그 실체의 변변찮은 한 조각이, 어떻게 이렇게도 굉장한 사태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 많은 형제들과 자매들 중에 지금까지 나 혼자만 40년이 지난 뒤에 내가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정도로 어떻게 그토록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인가? 누가 내게 이 추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나는 그만큼 다른 기적들도 그가 바라는 대로 믿어 줄 것이다.



건강 841

건강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며, 사실 그것을 추구하여 시간뿐 아니라 땀과 수고와 재산과 생명까지도 사용할 만한 단 하나의 것이다. 더욱이 건강 없이는 생명은 우리들에게 괴롭고 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락도 예지도 지식도 도덕도 건강 없이는 흐려지고 사라진다.


의약을 몰라서 844

누가 라케데모니아 인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오래 살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자, "의약을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죽어 가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죽였다고 끊임없이 소리질렀다. 못난 역사(力士)가 의사가 되었다. "잘해라" 하며 디오게네스가 그에게 말했다. "너 참 잘했다. 전에 너를 쓰러뜨리던 자들을 이번에는 네가 쓰러뜨릴 것이다."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859


나는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타서 이득을 올린다고 크게 책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보다 값어치가 못하거나 더 대접받는 많은 직업들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밖에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의 생각)

증권회사 영업사원들이 하는 일이 떠오른다. '그들의 기술'이 고객들의 어리석음을 틈타서 이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862∼863

나는 살아서보다 죽은 뒤에 내가 더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심정은 우습습니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는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좋게 보이려는 생각보다는 장래에 명성을 연장시킬 걱정이 더 컸으니까요.

내가, 세상이 칭찬해 주어야 할 의무를 질 수 있는 사람들의 축에 든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당겨서 치러 주기를 요구하고, 다음의 의무는 말소해 주겠습니다. 그 칭찬은 길게 끄는 것보다는 속이 차고, 지속하기보다는 더 충만하게 서둘러서 내 주위에 뭉쳐 쌓아 줄 일입니다. 그리고 내 지각이 사라지고 동시에 그 달콤한 음성이 내 귀에 울려 오지 않을 때에는 이 칭찬도 과감하게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과의 교섭을 포기하려는 이 시간에, 새로 나를 추천해서 그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심정일 것입니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이건, 나는 종잇장으로 된 일보다는 다른 일로 받고 싶습니다. 내 기술과 기교는 나 자신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내 공부는 행할 줄 알기 위한 것이지, 글 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만드는 데 온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입니다. 나는 다른 일꾼은 되어도 책 만드는 일꾼은 아닙니다. 나는 현재의 본질적인 편익에 소용되기 위해서 능력을 바란 것이지, 내 후계자들에게 저축과 예비 재산을 쌓아 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장점을 가진 자는 그것을 자기 행동 습관에, 여느 때의 말과 행동에, 사랑하거나 싸우는 행동에, 놀음에, 잠자리에, 식탁에, 자기 일처리에, 자기 집 세간살이에 드러낼 것입니다. 내가 보는 바 추레한 잠방이를 만들어 입고 좋은 책을 지어 내는 자들은, 내 말을 믿었더라면 먼저 잠방이를 만들어 입었을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에게 훌륭한 군인보다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고 싶은가를 물어 보십시오. 나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내게 밥을 차려 주는 자가 없다면 차라리 익숙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인, 글 쓰는 데는 유능한 인간이고, 다른 데서는 쓸모없는 바보 인간이라는 따위의 칭찬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요.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할 자리를 그렇게 못나게 골라잡았다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저기서 바보로 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은 수작으로 어떤 새로운 명예를 얻으려고 기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865


나는 건강과 같은 그 견실하고 살 붙고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쾌락을 공상적이고 정신적인, 바람과 같은 쾌락과 바꾸려고 할 정도로 내 마음이 부풀어올랐거나 바람이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영광은 에이몽의 네 아들들의 영광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담석증을 세 번이나 심하게 겪어야 한다면, 내 기분과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비싸게 사들이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865


나는 나와 반대되는 사상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판단력이 남의 것들과 합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고 겁을 내거나, 그리고 사람들의 방향과 파당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교제에 서로 통하지 않고 지낼 생각은 가져본 일이 없다. 그 반대로 다양성이라는 것은 자연이 좇고 있는 가장 전반적인 방식이며, 정신은 더 부드럽고 더 많은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 이 다양성은 육체보다 정신에 더 많기 때문에 나는 우리 기분과 의도가 합치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드물다고 본다. 그래서 세상에 두 의견이 똑같아 본 일이 결코 없었던 것은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견의 가장 보편적인 소질, 그것은 다양성이다.


제 3 권

1. 유용성과 정직성에 대하여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
870


나라가 동란에 빠지고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마당에 박쥐같이 휘뚝거리며 마음이 어느 편으로 움직이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훌륭하다거나 명예롭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를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길도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운의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이다."(티투스 리비우스)


배신이라는 사명 876

이러한 사명에는 우리에게 수치와 처벌을 주는 명백한 표징이 있다. 이런 사명을 그대에게 주는 자는 그대를 비난하는 것이며, 그대가 잘 이해한다면 그는 그것을 부담과 형벌로서 그대에게 주는 것이다. 공공의 사무가 그대의 공로로 덕을 보는 만큼 일은 나빠지는 것이다. 그대가 거기서 잘하는 만큼 손해가 된다. 그리고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긴 자가 그것으로 그대를 벌 준다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며, 아마도 어떤 정의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 배신은 어느 경우에는 용서될 수 있다. 다만 배신을 배반해서 처벌하는 데에 사용될 뿐이다.

배신 행위들 중 상당수는 그 행위의 혜택을 받을 자들에 의해서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처벌당한 일이 있다. 피로스의 의사에 대한 파브리키우스의 고발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배신 행위를 시켜 이용하고 난 뒤, 비열하게 자기 자신을 포기하여 노예같이 복종해 준 자를 무시하고, 열렬히 바라던 권한과 세력은 거절하며 엄격하게 그 배신 행위를 벌준 경우도 있다.


제일차적인 신의 877


자기 주인 술피키우스를 배반하고 그 숨은 곳을 가르쳐 준 노예는 필라와의 약속에 따라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공적인 이유의 약속에 따라서 자유인이 된 그를 실라는 타르페이아의 바위 위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들은 약속한 상금이 든 지갑을 이런 자들의 목에 달아 주고는 교살해 버린다. 이것으로 제이차적인 개인에 대한 신의를 지켜 준 다음, 제일차적인 일반적 신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명예롭지 못한 정도로 그만큼 유용한 직책 877∼878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를 어떤 악덕스런 행동에 이용하고 나서, 그 다음엔 마치 양심적인 보상과 장난을 행하듯, 아주 얌전하게 선심과 정의의 행위를 거기에 결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뿐더러 그들은 이런 끔찍한 범죄를 맡아 행하는 자들을, 자기들을 향해 문책하는 자로 보고 있다. 그들을 죽임으로써 이러한 일처리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그 증거까지 인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그대가 타기해야 할 극한의 방법으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해 준 공로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대에게 상을 준다 해도, 그렇게 해 주는 자는 그 자신이 그런 인물이 아니라면 그대를 타기해야 할 저주받은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며, 그는 그대에게서 배신을 당한 당사자보다도 더 그대를 배신자로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인도 반박도 할 수 없는 그대가 실천한 행위에서 그대의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를 잡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는 마치 누가 '높은 정의의 집행자'로서 사회의 한 쓰레기 같은 인간을 이용하듯, 명예롭지 못한 정도로 그만큼 유용한 직책에 ㄱ대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은 비굴할 뿐 아니라 양심의 타락이다.


2. 후회에 대하여



항상 변하지 않는 성질도 더 느린 흔들림일 뿐이다
884


내가 묘사하는 글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해 간다 해도 그릇되게 그리지는 않는다. 세상은 영원한 움직임에 불과하다. 거기서는 모든 일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땅이나 코카서스의 바윗돌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모두가 다 같이 흔들리며 하나하나 흔들린다. 항상 변하지 않는 성질도 더 느린 흔들림일 뿐이다.

(나의 생각)

'돌'조차 일 초에도 몇 조 번을 진동하고 있음을 지적한 앙리 베르그손의 책『창조적 진화』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 재료를 다루어 본 자는 없었다 885

작가들은 자기를 특수하고 외부적인 표징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나는 맨 먼저 미셸 드 몽테뉴로서의 내 보편적 존재인 나를 전해 주는 것이지, 문법학자나 시인이나 법률가로서의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들이 내가 너무 내 말을 많이 한다고 꾸짖는다면, 나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불평하겠다. 그러나 행동 습관이 이렇게 다른데도 나를 널리 알려 준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에서는 모양을 내고 기교를 부리는 일이 신용을 얻고 권위를 가지는 터에, 나 같은 생소하고 단순한 본성, 그것도 아직 극히 허약한 내 본성의 소산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학문도 기교도 없이 책을 짓는다는 것은 돌 없이 담을 쌓거나, 그와 비슷한 수작을 하는 길이 아닐까? 음악가의 환상은 예술에 의해서 지도된다. 내 망상은 운으로 지도된다.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여 행하는 일에 관해서는,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 재료를 다루어 본 자는 없었으며, 이 제재에 관해서 나는 어느 누구도 못 당할 만한 학자이며, 둘째로 어느 누구도 나만큼 자기 재료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 보지 못했고, 더 특수한 그런 부분들도 없다는 것이 내 나름으로 얻은 바이다.

이 목적을 완수하려고 나는 충실성밖에 가져 볼 거리가 없다. 충실성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성실하고 순수한 것으로 있다. 나는 진실을 말한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지는 못하지만, 감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말한다. 그리고 늙어 가며 좀더 과감해진다. 나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를 자주 보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악의 886


악의는 그 자체의 독을 대부분 들이마시고 제 독에 중독된다. 악덕은 몸의 종기와 같이 영혼에 후회를 남긴다. 이 후회는 항상 제 상처를 긁어서 피를 흘린다.


지난날의 악덕 887

남이 칭찬해 주는 것이 도덕적 행동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근거가 불확실하고 어지럽다. 특히 지금처럼 부패하고 무지한 시대에는 사람들이 좋게 보아 주는 것이 도리어 모욕이 된다. 누구의 말을 믿고 칭찬할 만한 일을 볼 줄 안다고 할 것인가? 내가 날마다 보는 것처럼, 각자가 이것이 명예스런 일이라고 자기를 추어올려서 말하는 식의 착한 사람이 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의 악덕은 오늘날에는 풍습이 되었다."(세네카)

 

우리 따위 887∼888

우리의 개인 생활을 자신에게밖에 보여 줄 데가 없이 살고 있는 우리 따위는, 주로 우리들의 행동을 검열하기 위해서 우리들 속에 모범을 세우고, 그것으로 행동을 심사하며, 거기에 따라서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고 정제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제거한다면 전부가 와해된다 888

나는 나를 판결하기 위해서 내 법률과 재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데보다도 거기에 호소한다. 나는 남의 의견을 잘 따라서 내 행동을 억제한다. 그러나 내 의견에 의해서밖에는 행동을 확대시키지 않는다. 그대가 비굴한지 잔인한지, 믿음직하고 착실한지 신앙이 깊은지, 아는 것은 그대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불확실한 추측으로 그대를 짐작한다. 그들은 그대의 기교를 보는 만큼 그대의 본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판결에 매이지 마라. 그대 자신의 판결에 매여라. "그대가 자신에게 하는 판단을 그대는 사용해야 한다."(키케로) - "양심이 자신에게 해 주는 악덕과 도덕의 증명은 한층 더 막중하다. 이것을 제거한다면 전부가 와해된다."(키케로)

 


후회 888

후회는 우리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며, 우리를 아무 데로나 되는 대로 끌고 돌아다니는 미친 생각에 대한 반대 심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 자에게 지난 날의 도덕과 순결성을 부정하게 한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888∼889

자기의 개인 생활에까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인생에서 보는 일이다. 저마다 광대놀이에 참가하여, 무대 위에서는 점잖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허용되고 모든 것을 감추어 두고 있는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 보는 일이다. 그 다음 단계는 아무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고, 연구도 기교도 없이 살아가는 자기 집에서 평소의 행동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그 때문에 비아스는 가정 생활에서의 훌륭한 태도를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가정의 주인은, 그가 밖에서 나라의 법과 사람들의 평판이 두려워서 처신하는 식으로 집안에서도 그대로 행해야 한다." 줄리우스 드루수스가 장인(匠人)들에게 한 말은 점잖은 말이었다. 장인들이 그에게 3천 에퀴만 내면 그의 집을 전과 같이 이웃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6천 에퀴를 주겠으니, 누그든 어느 기둥이나 주춧돌을 들여다보아도 좋게 만들어 놓으라." 아게실라오스가 여행할 때에 항상 그의 숙소를 사원 안에 정하며, 사람들이나 신들이 모두 그의 개인적인 행동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칭송할 만한 일로 주목된다. 자기 아내와 하인이 보아도 별로 눈에 띌 일이 없게 살아간 자는 세상에서도 놀라운 인물이다. 집안 사람들에게 숭배받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공적 행동으로는 황공해서 저자를 그의 집 문 앞까지 바래다 준다. 그 자는 그의 옷과 더불어 역할도 벗어 놓는다. 그는 높게 올라갔던 정도로 낮게 내려온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는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다. 질서가 서 있다고 해도 이런 변변찮은 행동 속에 그것을 알아보려면 예민하게 식별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뿐더러 질서는 침침하고 희미한 덕성이다.

성벽을 무찌른다, 외국으로 사절단을 데려 간다, 한 국민을 다스린다 하는 것은 혁혁한 행동들이다. 자기 집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부드럽고 올바르게 꾸지람하고 웃으며, 팔고 사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교섭하고 되는 대로 일하지 않고, 자기 말을 어기지 않는 것 등은 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더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알렉산드로스 VS 소크라테스 890


개인은 관직에 있는 자들보다도 더 힘들고 고매한 도덕을 섬긴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우리는 양심보다도 명예욕으로 영예로운 자리에 채비하고 나선다. 영광에 도달하는 가장 가까운 길은 우리가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을 양심으로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활동 무대에서 보여 준 덕성은, 소크라테스가 그 변변찮고 희미한 행동에서 보여 준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드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소크라테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자리에 있었다면 훌륭히 해 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소크라테스가 한 일을 해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전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어 보면, 그는 '세상을 정복하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후자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면, 그는 '타고난 조건에 맞게 인생을 살아가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보다 더 일반적이며, 더 중하고 정당한 지식이다. 심령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에 있지 않고, 질서 있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변경되고 극복되지 않는다 891

타고난 경향은 교육의 도움을 받아서 강화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변경되고 극복되지 않는다.

야수들은 숲 속의 습관을 잃고 포로 생활에 젖어
위협하는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지배가 습관화되어도
만일 한 방울의 붉은 피가 그들의 타오르는 입술에 닿기만 하면,
광분과 용맹성이 되살아나와 피의 단맛에
코끝이 벌려져 살기가 끓어오른다.
이런 광분은 무서워 떠는 주인을 발기발기 찢지 않고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루카누스)


고유한 형체 892


우리의 경험에 본성이 어떻게 비치는가를 좀 보라. 자기 말을 들어 보고, 자기가 받은 교육에 대항해서, 마음에 반대되는 격정의 폭풍에 대항해서 싸우는 고유한 형체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나로 말하면, 무슨 충격으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일은 결코 없다. 나는 몸이 무겁고 묵직한 사람들이 하듯, 거의 늘 내 자리에 있다. 자리에 있지 않는다 해도, 나는 늘 가까이에 있다. 나는 방자하게 놀아도 심하게 탈선하지는 않는다. 아주 극단적인 것이나 괴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적으나마 나는 건전하고 힘찬 회복력을 갖는다.


비로소 잠 깨어 생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조건들 895

인간의 본성에는 드러나지 않게 잠겨 있고, 때로는 그 사람 자신도 모르며, 어느 사정에 부닥쳐서 비로소 잠 깨어 생겨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조건들이 있다. 내 예지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불평하지는 않는다. 이 예지의 책임은 그 능력의 한도 안에 있다. 사건이 나를 억누른다. 사건이 내가 거절한 편을 든다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내 탓이 아닌 운을 비난한다. 그것은 후회라고 부를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일은 우주의 큰 흐름 속에 있다 896

모든 일이 지나간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되었건 나는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일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면서 번민할 것을 면한다. 즉, 일은 우주의 큰 흐름 속에 있으며,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원인들의 연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대의 사상은 과거나 미래를 통틀어, 모든 사물들의 질서가 뒤집혀지지 않고는, 소원으로나 사상으로나 그 속의 점 하나라도 움직여 놓을 수 없다.


나이 탓 897

나는 나이 탓으로 일어나는 우발적인 후회감을 혐오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나이 탓으로 탐락에 끌릴 필요도 없어졌다고 고마워하던 사고방식은 내 의견과는 다르다. 나는 결코 나이 때문에 좋은 일을 누릴 수 없음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약점까지도 최선의 사물들의 열(列)에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의 뜻은 그 피조물에 적대적이 아니다."(퀸틸리아누스) 우리의 정욕도 노년기에는 희박해진다. 끝난 다음에는 심한 포만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점에서 양심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침울과 허약은 우리에게 류머티즘에 걸린 비굴한 덕성밖에는 남겨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판단력을 변질시킬 정도로 자연적인 변화(늙음)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지금 힘주어서 이성을 조심스레 진작시키고 있는 나는, 이제 늙어 가며 약화하여 못 쓰게 된 것이 아니라면, 내 이성은 더 방자하던 시절과 같은 상태로 있다고 본다. 신체의 건강에 해로울까를 고려해서 이성이 나를 이 탐락의 도가니 속에 집어넣기를 거절하는 것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정신 건강을 위해도 그런 짓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성이 전투력을 잃었다고 해서 더 용감해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나의 유혹받은 마음은, 너무 시달리고 부서졌기 때문에 이성으로 대항할 거리가 못 된다. 나는 오히려 손을 앞으로 내밀며, 이런 유혹을 간청할 뿐이다. 누가 그 옛날의 색욕을 내 이성 앞에 내어 준다면, 나는 이 이성이 옛날에 가졌던 만큼 거기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는 이성이 그때 판단하던 것을 벗어나서 달리 판단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것이 어떤 새로운 광명을 얻었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거기에 무슨 회복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나빠지게 된 회복이다.

(나의 생각)

'옛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은 아마도 소포클레스의 대답을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中에서




나는 내 계절의 풀과 꽃과 열매를 보았다 898

내 육체 상태의 경과가 모든 일을 그 계절에 맞추어 이끌어갔다는 것은, 내가 운명에게 고맙게 여기는 중요한 사항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내 계절의 풀과 꽃과 열매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말라가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되어 온 노릇이니 다행한 일이다. 나의 질병들은 모두 제철에 왔으며, 그들은 지난 날의 오랜 행복을 더 쉽게 회상시키는 만큼, 이 불행들을 더 수월하게 참아 넘긴다.


노년의 주름살 899

우리의 심령은 노년기에는 젊은 시절보다 더 번거로운 폐단, 불완전과 질병에 매이기 쉬운 것 같다. 어리석고 노쇠한 자존심과 진력이 나는 잔소리, 사귈 수 없는 가시 돋친 성미, 미신, 그리고 사용할 기회도 없는데 재간에 관한 꼴같잖은 걱정 따위 말고도 더 많은 시기심과 부정과 악의를 발견한다. 노년은 우리의 이마보다도 정신에 더 주름살을 붙여 준다. 그리고 늙어 가며 시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심령이란 없으며, 있다 해도 매우 드물다. 사람은 그 전체가 성장과 쇠퇴로 향해 간다.


저절로 흘러드는 강력한 질병 899

나는 노년기가 수많은 내 친지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보았던가! 노년이란 자연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저절로 흘러드는 강력한 질병이다. 노년이 우리에게 짋어지우는 결함을 피하려면, 적어도 그 진전을 막으려면, 대단히 많은 연구와 조심스러운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아무리 몸을 아껴도 이 노년이 한걸음 한걸음 나를 이겨감을 느낀다. 나는 힘 닿는 대로 버티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