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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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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金秀映)

 

 

 

스무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득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금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리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 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 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이고 이제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신이 최초의 일주일 동안 창조한 것은 빛이 아니라 여행이었다"고 말한 이는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 풀러스이다. 한 인간은 한 생애 동안 하나의 여행가방을 지닌다. 길 위에서 여행가방은 점점 낡아가며 때로는 쓸모없는 욕망의 꿈들로 부푼다. 점점 누추해져 가는, 점점 비릿해져 가는 여행가방이 아닌, 꽃향기가 솔솔 풍겨 나오는 여행가방, 구름이나 바람이 한참 머물다 가고 싶은 여행가방, 지혜와 신념과 헌신의 시간들이 묵은 때 속에 반질반질 드러나는 여행가방··· 길 위에서 오래 아파하며 그 여행가방의 주인이 된 이의 영혼이여, 축복 있으라.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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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줄에는

 

 

김영남

 

 

 

내복의 검정 고무줄을

잡아 당겨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고무줄에는 고무줄 이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이상의 무얼 끌어안은 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무엇을 묶어본 사람이면 또 알 겁니다

어머니란 늘어났다 줄더들었다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람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어머니일수록 그런 신축성을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고무줄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어머니란 리어카 바퀴처럼 둥근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둥근 등을 굴려 우리들을 큰 세상으로 실어낸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지상 모든 고무줄를 비교해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고무줄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어머니가 내복의 검정 고무줄 속에 앉아 계신다.

검정 고무줄 속의 어머니는 환히 웃으시며 새벽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굽은 등으로 삶의 리어카 바퀴를 끝없이 굴려가면서 한 줄 검정 고무줄로 삭아 가는 어머니.

지신이 지닌 모든 피와 땀과 뼈를 기꺼이 내주고 한 줄 검정 고무줄로 남은 어머니.

다음 생에도 또 다음 생에도 고무줄의 삶을 살아갈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고무줄인 아, 우리들의 어머니!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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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얼과 말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백석의 시에 김이 나온다.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 백석, 「통영統營」

 

백석의 시에서 천희라는 여성은 통영이라는 지리적 공간과 겹쳐져서 형상화되고 있다. 시인은 어촌의 풍경을 그리듯 천희를 그린다.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는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여성의 외모를 보여 주는 동시에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통제사가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강탈당한 모국을 떠올리면서 슬픔의 정서를 낳는다. 그래서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껍데기 같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등불 빛 아래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비는 통제사와 나라를 잃어버린 통영의 울음이기도 하고, 순정을 저버리지 못하는 천희의 울음이기도 하고, 통영과 천희와 잃어버린 나라를 겹쳐서 생각하는 시인의 울음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기서 이 비를 "김 냄새 나는 비"라고 했다. 김 냄새가 묻어나는 비, 어쩌면 이 특별한 이미지는 마루방에 둥글게 모여 앉아 김에 밥을 싸서 먹던 가족들에 대한 향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시는 민족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가 깨어져 버린 시대에 대한 비애를 한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천희'를 비유하고 있는 시어 중의 하나가 미역이다. 김처럼 미역은 우리 민족의 밥상을 장식하는 친숙한 해조류이다. 이 친숙함이 천희를 보다 살갑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미역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길이는 열 자 정도로서 한 뿌리에서 잎이 나오고

그 뿌리 가운데에서 한 줄기가 나온다.

또한 그 줄기 양쪽에서 날개가 나오는데,

날개 안은 단단하고 바깥쪽은 부드럽다.

주름이 쌓여 있는 부분은 도장을 찍은 것과 같다.

그 잎은 옥수수 잎과 비슷하다. 1∼2월에 뿌리가 나고

6∼7월에 따서 말린다. 뿌리의 맛은 달고 잎의 맛은 담박하다.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모자반과 같은 지대에서 자란다.

 

 

『초학기』라는 옛 문헌에 보면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미역은 정약전이 말한 대로 아기를 낳은 고통을 달래 주는 산후 최고의 건강식으로 통한다. 생일날 우리는 싫든 좋든 상에 오르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 생일 밥상에 미역국이 오르는 것은 나의 생일이 어머니의 출산일이기도 함을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 미역국을 먹으며 우리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먹는다.(199∼202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김과 미역과 어머니> 중에서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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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같은 부리, 칼날 같은 이빨, 까마득한 절벽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는 담력 ······. 정약전은 가무우지를 '물고기의 매'라고 표현했다. 매처럼 가마우지는 실제로 한번 노린 먹잇감을 웬만해선 잘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감탄스런 낚시 솜씨가 자신에게 노예의 올가미를 씌우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메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순간 깜박 잊어버리고

다만 물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 이동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가마우지의 뺴어난 물고기잡이 광경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가마우지 낚시'를 고안해 냈다.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는 이 낚시 법을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중국의 구이린(桂林)과 일본의 이누야마(犬山) 지방의 낚시 장면을 보고 쓴 시이다.

 

(······)

 

가마우지 똥이라니 좀 머쓱했지만, 가마우지 똥은 한약재로도 쓰고 외국에선 양질의 질소 비료로도 쓴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가마우지 똥이 나온다.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 어떤 새들은 아직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새들이었다. 그들은 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바다의 섬들은 새똥으로 덮여 있었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평생 만들어 내는 새똥으로 같은 기간 동안 사람의 일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수지 맞는 사업이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

 

 

가마우지는 죽음조차 남다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똥까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한 뒤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가마우지들이 죽음을 맞는 해변을 그리고 있다. 이 해변이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는 지상의 가난한 영혼들이 쉴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을 창조한다. 이 해변은 그런 점에서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을 위해 평생 낚시를 하고, 자신의 분뇨마저 질소 비료로 쓸 수 있게 만든 다음 외롭게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바닷가 묘지가 우리들 마음 어닌가에도 있을지 모르곘다. 조용히 죽어 가는 가마우지를 가슴에 안고, 내 심장 박동 소리로나마 그를 위로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중국 구이린 지방에서는 가마우지들이 숨을 거둘 시간이 오면 어부들이 술잔을 들고 가마우지들의 마지막을 지킨다고 한다. 가마우지와 어부는 그들이 함께 한 강물을 내려다보며 함께 술을 마신다. 가마우지가 없었다면 어부의 삶은 곤궁을 면치 못했으리라. 이 가난한 어부를 위해 가마우지는 고통스러운 노예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노역을 통해 어부의 집안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부가 부어 준 마지막 술을 마시며 가마우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어부의 눈에선 비로소 눈물이 떨어진다.(185∼190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가마우지, 페루에 가서 죽다> 중에서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서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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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성공할 수 있겠지

 

연금술사의 인내심으로 나는 언제나 또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고 시도해 왔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만족과 자만심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그 옛날 연금술사들이 걸작을 만들어 낼 용광로의 불을 지피기 위해 가구와 지붕의 대들보를 쏘시개로 사용했듯이 말이다. 걸작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렵군. 그저 몇 권으로 된 책인지, 구성이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그야말로 책다운 책인지, 수시로 떠오르는 영감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것을 그저 모아 놓은 것은 아닐테고 ······. 친구여, 그러고 나니 내가 천 번도 더 거부했던 악덕의 적나라한 고백만이 남는구려. 하지만 그 악덕은 나를 지배하고 있고 그래도 나는 성공할 수 있곘지. 전체로서(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은 하느님만이 아신다는 태도를 취해야 해!) 이 작품의 완성에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한 부분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한다는 뜻이다 ······. 완성된 일부분들을 입증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완수하지 못할 것들을 잘 알고 있음을 입증하면서.

 

 

스테판 말라르메

폴 발레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1869년 11월 16일

 

(441쪽)

 

 

언젠가는 읽고 싶었던 책 중에는-『독서의 역사』가 있다.

 

내가 쓰지 않은 책 중에는-지금까지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읽고 싶었던 책 중에는-『독서의 역사』가 있다. 그 책을 나는 바로 거기, 말하자면 도서관의 이쪽 구획을 비추는 불빛이 끝나고 다음 구획의 어둠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똑똑히 볼 수 있다. 그 책이 어떤 모습인지 나는 정확히 안다. 표지를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크림빛 각 책장의 부드러운 감촉까지 상상할 수 있다. 호색가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나는 책 커버 밑에 숨은 감각적인 짙은 색의 천 장정과 금박을 입힌 글자도 짐작할 수 있다. 책 제목이 씌어 있는 속표지, 재치 넘치는 인용구, 그리고 감동적인 헌사도 잘 안다. 또 나는 그 책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툼한 인덱스도 곁들여 있다는 것까지도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사실이야말로 내게는 대단한 기쁨을 안겨다 준다.(442쪽)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인간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각 장(章)을 넘기는 나는 아득한 옛날에 존재했던 독서가의 조상들을, 그 중 일부만 유명할 뿐 대다수는 눈길 한번 끌지 못했던, 그리고 어쨌든 나 또한 속하게 될 독서가라는 가족의 조상들을 소개받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관습과 그 관습의 변화상, 그리고 옛날의 동방 박사처럼 죽어 있는 기호를 살아 숨쉬는 기억으로 변형시키는 힘을 확보할 때까지 그들이 겪어야 했던 변모를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승리와 박해와 은밀한 발견들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독서가인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인간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444쪽)

 

(나의 생각)

이 대목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지막 대목'을 불현듯 떠올리게 만든다. 알베르토 망겔이 찰스 다윈의 그 문장을 약간이라도 모방할 의도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찰스 다윈이 쓴 그 유명한 문장 또한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어느 유명한 지질학자'의 논문에서 베낀(혹은 흉내낸) 것이라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유명한 고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는 뉴턴과 동시대의 인물인 '그 유명한 지질학자'의 방대한 논문에 완전히 매료되어 무려 '여섯 번을 되풀이하여 읽어 본 다음에야' 비로소 '새로운 시각으로' 그 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책에서 솔직히 고백한 적이 있었다.

 

 * * *

 

온갖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숲속에서는 새가 노래하고 곤충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축축한 땅속을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번잡스러운 땅을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한 개개의 생물은 제각기 기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서로 매우 다르며 매우 복잡한 연쇄를 통해 서로 의지하고 있지만, 그런 생물이 모두 지금 우리 주위에서 수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한 법칙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말한다면, '생식'을 수반하는 '성장', 거의 생식 속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는 '유전', 생활의 외적 조건의 직접 또는 간접적인 작용에 의한, 또 용불용에 의한 '변이성', 생존경쟁과 나아가서는 '자연선택'을 초래하고, 마침내 '형질의 분기'와 열등한 생물을 '멸종'시키는 높은 '증가율' 등이다. 그리하여 직접적으로 자연계의 싸움에서, 또 기아와 죽음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사항, 즉 고등동물의 산출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생명은 최초의 창조자에 의해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함께 불어 넣어졌다고 보는 견해, 그리고 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 이렇게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경탄스러운 무한의 형태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는 이 견해에서는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1859년), <제14장 요약과 결론 中에서

 

우리는 사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고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물이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여름철에 잎이 무성한데다 꽃이 활짝 피었거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으며 여러 갈래로 뻗은 수많은 가지가 쾌적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모든 구성 요소를 갖춘 이런 나무가 보잘것없는 씨앗에서 발아하여 자연의 손길로 나날이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자라나서 마침내 이처럼 멋지고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을 생각해보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또 다른 즐거움으로 생각된다. ······ 마찬가지로 이 지구를 오늘날 완결된 형태, 곧 지구가 여러 층으로 구분되며 각 층이 그 자체로 완벽한 놀라운 모습을 갖추었음을 알아보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고 마음에 아주 흡족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맹아기의 지구에서 이 모든 모습을 알아보고 그런 자연의 틈을 낱낱이 관찰하여 자연의 제일원리로 융합한 다음, 하느님의 지혜가 어떻게 혼란에서 사물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단순한 것에서 오늘날 우리가 깨닫는 바와 같은 아름다운 구조를 이끌어냈는지 관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더 큰 만족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 토머스 버넷, 『지구신성론』(1680∼1690년) 중에서



마치 논리적인 인과 관계나 역사적인 일관성을 무시하려는 듯


······ 하지만 『독서의 역사』에 기록된 역사는 포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말하자면 '독서의 역사'의 본가지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이야기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의 주제는 또 다른 주제를 끌어들이고, 하나의 일화는 보기에 따라 전혀 관계 없을 듯한 이야기까지 내 마음 속에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마치 논리적인 인과 관계나 역사적인 일관성을 무시하려는 듯, 그리고 독서가의 자유에 대해서는 바로 그 독서라는 기교에 대한 글에서 정의를 내리려는 듯 방향 감각 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444쪽)

 


책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드 베리는 아주 열정적으로 책을 수집했다. 그가 소장한 책은 영국의 다른 주교들의 책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그 책들을 침대 주변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책을 밟지 않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행운을 감사하게 여겼던 드 베리는 학자는 아니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 아닌 것을 그의 것이라 이야기했고 형편없는 시구를 인용하면서도 마치 오비디우스의 시구인 양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책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예견한다. 책에는 전쟁을 암시하는 전조들이 설명되며 평화의 법도 나온다. 모든 존재들은 결국에는 부패하고 썩게 마련이다.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삼키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신이 인간에게 책이라는 치유법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은 망각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버지니아 울프도 학교에서 낭독한 한 과제물에서 드 베리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간혹 이런 꿈을 꿀 때가 있다. 최후의 심판일이 동터 오고 위대한 정복자들과 변호사들과 정치인들이 각자의 대가-불멸의 대리석에 지워지지 않게 새겨진 그들의 왕관과 월계수와 이름-를 받게 된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베드로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우리가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오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그런 질투심으로 '이봐, 이들에게는 포상이 필요없어. 그들에겐 줄 것이 없어. 그들은 책 읽기를 사랑하잖아' 라고 말할 것이다.") (446쪽)



책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 그녀는 385년경에 태어나 439년 베들레헴에서 죽었다. 그녀는 책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수중에 넣을 수 있었던 책은 모조리 필사를 해서 귀중한 서재를 만들었다. 한 학자는 5세기 그녀에 대한 어느 글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며 책 읽기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 그리스도교 초기 저술가들의 삶을 마치 후식을 먹듯이 탐독하곤 했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돈을 주고 산 책뿐만 아니라 어쩌다 접하게 되는 책까지도 어찌나 꼼꼼하게 읽었던지 이 세상에 그녀가 모르는 단어나 사상은 하나도 없었다. 배움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너무나 진지해서, 그녀가 라틴어로 쓰인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사람들은 그녀가 그리스어는 하나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반대로 그리스어로 쓰인 책을 읽고 있을 때면 라틴어는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447쪽)



오스카 와일드의 충고

 

와일드에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을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했다. 신문 『폴 몰 가제트』지의 정기 구독자들을 위해 그는 1886년 2월 8일에 '어떤 것은 읽지 말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 이런 충고의 말을 전했다.

 

절대로 읽지 않아야 할 책은 이런 것들이다. 톰슨의 『사계절』, 로저스의 『이탈리아』, 페일리의 『증거들』,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외한 모든 교부(敎父)들의 저술, 『자유론』을 제외한 존 스튜어트 밀의 모든 책들,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볼테르가 남긴 희곡 전부, 버틀러의 『유추』, 그랜트의『아리스토텔레스』, 흄의『잉글랜드』, 루이스의『철학의 역사』, 논쟁적인 모든 책들, 그리고 무언가를 입증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든 책들 ······.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읽으라고 충고하는 행위는 대체로 무익하거나 해로운데, 왜냐하면 문학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가르치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詩)에는 입문서가 없고,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 중에는 항구적으로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읽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 주는 것은 크게 다른 문제여서 나는 감히 그것을 대학교육보급운동의 임무로 추천하고자 한다.

 

(448쪽)



나에게 그렇게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어떻게 항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장(章)이 아니라 세 개의 장에 걸쳐 우리의 저자는 '독서가의 발견'을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모든 텍스트는 한 삶의 독서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첫 부분을 '한가한 독서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할 때, 그 첫머리에서부터 등장하는 인물은 이제 곧 시작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충분한 독서가인 바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나에게 그 책을 이야기하고, 그 작품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그 책의 결함을 고백한다. 어느 친구의 충고를 좇아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직접 책을 추천하는 내용의 시를 몇 편 썼다(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돈키호테』는 보통 유명 인사들로부터 받은 칭송을 책 표지에 담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그 책을 읽고 있는 나는 방어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바로 그런 행동으로 인해 독서가인 나는 오히려 무장 해제를 당하는 셈이다. 나에게 그렇게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어떻게 항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게임에 가담하기로 동의한다. 그 허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그 책을 덮지 못하고 만다.(450쪽)



하이퍼텍스트

 

(우리의 저자에 따르면) 하이퍼텍스트란 용어는 1970년대 컴퓨터 전문가인 테드 넬슨이 컴퓨터 기술로 가능해진 비연속적인 이야기 공간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 꼭대기도 없고 바닥도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어떠한 위계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저자는 소설가 로버트 쿠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쿠버는 『뉴욕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하이퍼텍스트를 묘사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락, 장, 그리고 다른 전통적인 텍스트 분할이 이제는 위임받은 권한도 서로 똑같고, 수명도 똑같은 창문 크기의 텍스트와 그래픽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의 독자는 거의 모든 지점에서 텍스트로 들어갈 수 있고 언제든지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거나 삽입, 수정, 확장, 삭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독서가(아니면 작가)는 언제나 하나의 텍스트를 계속 파고들거나 다른 이야기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들 텍스트 또한 종말이 없는 셈이다. "모든 것이 중도에 놓여 있다면, 독서가나 작가나 언제 일을 마무리지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고 쿠버는 묻는다. "만약 저자가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시작하고, 또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이제는 그렇게 함이 의무가 아닐까?" (458쪽)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밤, 그것도 아니면 모레 밤에

 

다행히도 『독서의 역사』에는 끝이 없다. 우리의 저자는 이 책 말미에 독자 여러분들이 아직 미래에 일어날 독서 행위와 놓쳐 버린 주제, 적절한 인용, 사건과 등장 인물에 대한 더 많은 사색을 덧붙일 수 있도록 백지 여러 장을 남겨 두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위안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책을 내 침대 곁에 놓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밤, 그것도 아니면 모레 밤에 그 책을 펼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도 그려 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라고.(4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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