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그는 그들처럼 무심한 타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서 훌륭한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경에서 빌라도의 성난 얼굴과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얼굴을, 배경에서 빌라도의 종들의 모습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시하는 요한의 얼굴을 보았다. 그토록 무수한 탐구, 그토록 무수한 실패와 수정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간직한 채로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인물들, 그에게 그토록 많은 고통과 기쁨을 준 각각의 인물들,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재배치한 그 인물들, 그가 그토록 힘들게 성취한 색채와 명암의 음영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수천 번이나 되풀이된 진부한 것으로 보였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이, 그 그림의 중심이자 그가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토록 환희를 불러일으켰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들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티치아노, 라파엘, 루벤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병사들과 빌라도의 휼륭한 모사가 보였다. 모든 것이 진부하고 허술하고 구태의연하게, 그들이 화가 앞에서 거짓으로 정중한 말들을 늘어놓다가 자기들끼리 남았을 때 그를 불쌍히 여기고 조롱한다 해도, 그는 그들을 탓할 수 없을 것 같았다.(496∼4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레빈이 결혼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그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걸음걸음마다 예전의 공상에 대한 환멸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레빈은 행복했다. 그러나 일단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행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걸음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보트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것을 경험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시도 잊지 말고, 발 아래에 물이 있다는 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하면 아프다는 점, 보고만 있을 때는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을 직접 해 보면 무척 즐겁기는 해도 굉장히 힘들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51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독신일 땐 남들의 결혼 생활, 그들의 자질구레한 걱정과 다툼과 질투를 보며 그저 속으로 그들을 업신여기듯 비웃기만 했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장차 그의 결혼 생활에는 그와 비슷한 문제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형식까지도 모든 면에서 남들의 생활과 완전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와 아내의 생활은 별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예전에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하지만 이제는 그의 의지에 반하여 대단히 확고한 중요성을 띠게 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레빈도 그 사소한 것들을 정돈하는 일이 결코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빈은 자신이 가정생활에 대해 가장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모르게 가정생활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고 사소한 걱정거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될 사랑의 쾌락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일을 해야 했고 사랑의 행복 속에서 휴식을 얻어야 했다. 그녀는 사랑받아야만 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그 시적이고 아름다운 키티가 어떻게 가정생활의 첫 주가 아니라 첫날부터 테이블보에 대해, 가구에 대해, 손님용 매트리스에 대해, 요리사와 식사 등등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살필 수 있는지 놀라웠다. …… (51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결혼식 후 그녀를 교회에서 데리고 나올 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던 것을 그제야 비로소 분명히 이해했다. 그는 그녀가 그에게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제는 어디까지가 그녀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인지 모르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 순간 경험한 둘로 나뉘는 괴로움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화를 냈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곧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그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후 화가 나서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자신이 무심코 자신을 친 것일 뿐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고 그저 아픔을 참으며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516∼5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영광과 위험이 따르는 타슈켄트로의 부임을 거절한다는 것, 그것은 브론스키의 예전 사고방식에 따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를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상급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전역해 버렸다.

 

한 달 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들과 함께 집에 남았고, 안나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브론스키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418∼41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너무나 기묘해

 

그녀는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지인들을 비롯해 그녀가 알고 지낸 모든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에게 단 한 번뿐인 그 엄숙한 순간에 그들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때 그들은 키티와 똑같이 마음속에 사랑과 희망과 두려움을 품은 채 관을 쓰고서 과거를 버리고 신비한 미래로 들어섰다. 그녀는 기억 속에 떠오른 그 신부들 가운데 사랑하는 안나도 떠올렸다. 그녀는 얼마 전 안나가 이혼할 것 같다는 소식을 세세히 전해 들었다. 그녀도 똑같이 오렌지 꽃과 베일에 싸인 순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너무나 기묘해." 그녀는 중얼거렸다.(46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들러붙는 사람을 떨쳐 버렸을 때 느꼈음직한

 

남편에게 불행을 준 사악함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마음속에 혐오와 비슷한 감정,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들러붙는 사람을 떨쳐 버렸을 때 느꼈음직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다. 물론 그것은 나쁜 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었고, 그런 무서운 일들은 세세히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때 불화의 첫 순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위안이 될 만한 한 가지 생각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과거의 모든 일들을 떠올릴 때면 그 생각을 기억해 냈다. '내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난 그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 나 역시 괴로워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난 내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었어. 난 명예와 아들을 잃었단 말이야. 난 나쁜 짓을 했어. 그들과의 이별로 괴로워할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는 아무리 진심으로 괴로워하려 해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수치심도 전혀 없었다.(478∼47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


사교계의 눈에 그의 태도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 그에 대한 아내의 증오,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그의 삶을 지배하며 자신의 의지를 수행할 것과 그와 아내의 관계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그 광폭하고 신비로운 힘의 위력이 그의 앞에 지금처럼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는 사교계 전체와 아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평온과 헌신적 행위의 모든 공로를 파괴하는 적대감이 마음속에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안나를 위해서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기꺼이 그들의 관계를 다시 허락할 생각이었다. 단 아이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아이들을 잃거나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녀를 절망적이고 치욕스러운 처지에 몰아넣고 그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이혼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선하게 보이는 것들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일인데도 그들의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을 강요하리라는 것을.(398쪽)

 

(나의 생각)

이것이야말로 '오쟁이진 남편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처지'를 몽테뉴만큼 재치있게 묘사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마담 보바리』를 읽을 때 찾아봤던 대목을 다시 또 읽게 된다.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여자들이 사람을 그 사람의 악덕 때문에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안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난 그를 그의 미덕 때문에 증오해요. 난 그와 살 수 없어요. 알겠어요? 그의 생김새가 내게 육체적인 영향을 미쳐요. 난 냉정을 잃고 말죠. 난 도저히, 도저히 그와 살 수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난 불행했고,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에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상상도 못했어요. 믿을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의 손톱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그를 증오하죠.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그녀는 죽음을 입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못하도록 말을 가로막았다.(40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안나는 이미 이런 만남을 각오하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열정이 그녀를 삼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그를 진정시키고 자신도 진정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그의 감정이 그녀에게 옮겨 갔다. 그녀는 입술이 너무나 떨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요. 당신이 날 차지했어요. 그러니 난 당신의 것이에요." 마침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대혀 이렇게 말했다.

 

"진작 이렇게 됐어야 해!"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렇게 돼야만 해. 이제야 그걸 알겠어."

 

"당신 말이 맞아요." 그녀는 점차 창백해져 가는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뒤이어 이 속에도 뭔가 끔찍한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갈 거야. 모든 게 끝나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해질 거야.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속에 무언가 끔찍한 것이 있기 때문이지." 그는 고개를 들고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4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키티는 백묵을 손에 쥔 채 수줍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레빈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구부리고서 빛나는 눈으로 테이블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글자의 뜻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그때 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묻는 듯한 눈길로 머뭇머뭇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때만 그랬나요?"

 

"네." 그녀의 미소가 답했다.

 

"그럼, 지…… 그럼 지금은요? 그가 물었다.

 

"저, 여기, 이걸 보세요.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할게요. 간절히 바라는 것을!" 그녀는 머리글자를 썼다. 당, 지, 일, 잊, 용,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당신이 지난날의 일을 잊고 용서해 주기를.'

 

그는 긴장하여 떨리는 손가락으로 백묵을 쥐었다. 그러고는 백묵을 부러뜨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의 머리글자를 썼다. '내게는 잊고 용서할 것이 없습니다. 난 줄곧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그를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34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카프탄과 루바슈카

 

"…… 당신에게 고백하지요. 난 당신과 아내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전보를 받은 후, 난 여전히 똑같은 감정을 품고서 이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더 자세히 말할까요. 난 그녀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 그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까 말까 망설이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난 아내를 본 후 그녀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행복이 내게 나의 의무를 보여 주었습니다. 난 완전히 용서했습니다. 나는 다른 뺨까지 내밀고 싶습니다. 내게서 카프탄을 앗아 가는 사람에게 루바슈카까지 건네주고 싶습니다. 난 하느님에게 그저 그분이 내게서 용서와 행복을 빼앗지 않기만 기도할 뿐입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맑고 평온한 시선이 브론스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당신은 나를 진흙탕 속에 짓밟을 수 있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난 아내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당신에게도 결코 비난의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내 의무는 내 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습니다. 난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면, 당신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떠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376∼37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죽음의 임박이 그녀 안에 불러일으킨 부드러움이 사라졌을 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안나가 그를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는 무언가를 바라면서도 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 것처럼 보였다.(38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그녀는 어떨까? 어떨까? 예전의 모습 그대로일까, 아니면 마차에 있을 때의 모습일까? 만일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지만 사실이 아닐 이유가 뭐야?' 그는 생각했다.

 

"아, 그래, 카레닌을 소개해 줘." 그는 간신히 말을 내뱉고는 필사적이고 결연한 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예전의 그녀도, 마차에 있던 그녀도 아니었다. 그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는 놀라고 머뭇대고 부끄러워했으나, 그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다. 그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녀가 그를 보았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뻤다. 그리고 그가 안주인에게 다가와 그녀를 향해 다시 눈길을 던진 순간, 그녀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그녀 자신도, 레빈도, 그들을 지켜본 돌리도 그녀가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생각할 만큼 당황해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창백해지고 다시 또 붉어지다가 얼어붙었다. 그녀는 입술을 희미하게 떨며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만일 입술의 희미한 떨림, 눈동자에 어린 촉촉함과 그로 인한 반짝임이 없었다면, 그녀가 말하면서 보인 미소는 평온에 가까워 보였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필사적이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차가운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당신은 날 보지 못했지만, 난 당신을 보았습니다." 레빈은 행복한 미소를 빛내며 말했다. "당신이 기차역에서 예르구쇼보로 가는 것을 보았죠."(311∼312쪽)

 

(나의 생각)

이토록 긴장되고 가슴 떨리는 '레빈과 키티의 재회 장면'이 또 있을까? 이런 묘사는 특별히 나보코프의 『롤리타』에서 몰래 계승된 듯한 느낌도 든다. 나만의 생각일까?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녀의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과 눈동자와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울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는 용서를 구하는 마음, 그에 대한 신뢰, 애무, 부드러우면서도 수줍은 애무, 약속, 희망, 그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랑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랑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31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안나와 타락

 

"아내 스스로 남편에게 그 일을 대 놓고 말하는 데야 오해를 하기도 어렵죠. 아내는 8년 동안의 생활도, 아들도, 이 모든 게 다 실수라며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답니다." 그는 코를 식식거리며 성난 어조로 말했다.

 

"안나와 타락……. 나로서는 이 두 가지를 하나로 연결시킬 수가 없어요. 믿어지지 않아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그는 이제 동정과 흥분이 뒤섞인 돌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혀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직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의심하는 동안에는 괴롭기는 했지만 지금보다 나았습니다. 의심할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어요. 심지어 난 이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아들을 증오하고, 어떨 때는 이 아이가 내 아들인지도 의심합니다. 난 너무나 불행합니다."(33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