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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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이건 사는 게 아냐.

 

…… 그는 자기에게 다른 의무가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 줄 기회를 얻어 기쁜 거야. 난 그것을 알아. 나도 그것에 동의한단 말이야. 하지만 왜 내게 그것을 증명해야 하지? 그는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내게 증명하고 싶어 해. 하지만 내게 증명 따윈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건 사랑이야. 그는 이곳 모스크바에서의 나의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이해했어야 해. 과연 내가 살아 있기나 한 걸까? 이건 사는 게 아냐. 그저 결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계속 지연되고 또 지연되는 결말을……. (32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일상 속의 틈새

 

그는 그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1년 전 현청 소재지의 어느 호텔에서 니콜라이 형의 임종 때 일어난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었고, 이것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슬픔이든, 이 기쁨이든 다 똑같이 삶의 일상적인 조건을 벗어나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숭고한 무언가가 엿보이는, 일상 속의 틈새와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똑같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영혼은 그 숭고한 것을 직관할 때와 똑같이 불가해한 방식으로 예전에는 결코 파악할 수 없었던 경지까지, 이미 이성이 쫓아갈 수 없는 곳까지 솟아올랐다.(34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하지만 아기는?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아기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348쪽)

 

(나의 생각)

자신의 분신이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났고, 새로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레빈이 겪는 '심리적인 혼란'을 묘사한 이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기도 하고, 짐짓 그런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이 전혀 문외한이라는 듯이 능청대는 것 같기도 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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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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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브론스키는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린 그 갈망, 즉 그에게 사랑받고자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그를 사랑의 올가미로 얽매려 애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올가미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그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다기보다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지 아닌지 더욱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만약 점점 더 강해져가는 이런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모임이나 경주를 위해 도시로 가야 할 때마다 법석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브론스키는 자신의 생활에 충분한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택한 역할, 러시아 귀족의 핵을 이루는 부유한 지주의 역할은 그의 취향에 아주 잘 맞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반년을 보낸 지금은 그에게 점점 더 커져 가는 만족을 주었다.(19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당신은 날 위협하는 것 같군. 좋아, 나도 당신과 떨어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브론스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 부드러운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에는 차가운 눈빛뿐 아니라 쫓기느라 잔혹해져 버린 인간의 사악한 눈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그 눈빛을 보았고, 그 의미를 올바로 짐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재앙이야!'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인상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았다.(24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

 

연주 내내 레빈은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귀머거리의 감정을 맛보았다. 곡이 끝났을 때, 그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팽팽하게 긴장된,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 집중으로 지독한 피로를 느꼈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놀랍군요!" 페스초프의 굵은 베이스 목소리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굉장히 생생하지요. 조형적이랄까요, 색채감도 풍부하더군요. 코델리아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 있잖습니까, 여성이, das ewig Weibliche가 운명과 싸우는 부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코델리아가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레빈은 그 환상곡이 광야의 리어왕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을 까맣게 잊고 머뭇머뭇 물었다.

 

"코델리아가 나오잖습니까……. 여기 보십시오!" 페스초프는 손에 들고 있던, 새틴처럼 매끄러운 프로그램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고 그것을 레빈에게 건넸다.

 

그제야 레빈은 환상곡의 제목을 기억해 내고 프로그램의 뒤쪽에 실린, 러시아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시를 서둘러 읽었다.

 

"이것이 없으면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페스초프는 레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말상대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283쪽)

 

주석) das ewig Weibliche : '영원한 여성, 혹은 영원한 여성성.'(독일어)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연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비유로 언급된다. 한편 괴테와 동시대인인 베토벤이 죽고 난 뒤, 그가 das ewig Weibliche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다. 베토벤의 편지 대상이 된 이 'das ewig Weibliche'은 우리나라에서 '불멸의 연인'이라는 호칭으로 번역되었다.

 

(나의 생각)

톨스토이는『광야의 리어왕』이라는 가공의 환상곡을 듣는 장면을 이용해서 인류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작품을 한꺼번에 여럿 등장시키고 있다. 『파우스트』에도 등장했고, 베토벤이 남긴 편지에도 등장했던 '불멸의 연인'을 셰익스피어와 코델리아(리어왕의 막내딸)에게까지 연결시킨 점도 몹시 흥미롭다. 기회가 닿는다면 톨스토이가 남긴 『예술이란 무엇인가?』도 꼭 한번 읽어 보고 싶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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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쉰 살과 마흔 살

 

그도 그녀를 사랑했다. 한 가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나이였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장수하는 가문이었고, 그에게는 흰 머리가 한 올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를 마흔 살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바렌카가 오직 러시아에서만 쉰 살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길 뿐, 프랑스에서는 쉰 살의 사람들이 자신을 dans la force de l'âge('한창때'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마흔 살의 사람들은 자신을 un jeune homme('청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여긴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20년 전과 다름없이 젊다고 느낀다면,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36∼37쪽)

 

(나의 생각)

'마흔 살'도 어떤 경계를 의미하는 나이지만, '쉰 살'이 지닌 '경계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뚜렷하면서도 무게감이 달라지는 듯하다. 요즘에야 물론 옛날보다 그 무게가 훨씬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문득 몽테뉴가 '오십 고개'를 두고 재미있게 늘어놓았던 특유의 익살이 생각난다.

 

오십 고개를 넘은 자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자연은 이 나이를 꼴사납게 만들 것 없이, 가련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주일에 세 번쯤 허약한 힘으로 일어나며, 뱃속에 당연히 해낼 어떤 위대한 힘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꼴이 보기도 싫다.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그리고 지금 둔중하게 얼어붙어서 볼이 꺼진 이 나이에 이렇게도 생기 있게 팔딱거리는 자극이 놀랍다. 이런 욕망은 청춘의 꽃다운 시절에나 가질 일이다. 이런 충동을 믿고, 그대에게 있는, 이 피로할 줄 모르게 꾸준하고 충만하고 장엄한 열기를 한번 거들어 보라. 좋은 꼴을 보게 될 것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는 청혼의 뜻을 밝히기 위해 하려고 했던 말을 자신에게 되풀이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 대신, 난데없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에 이끌려, 그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하얀 버섯은 자작나무 버섯과 어떻게 다릅니까?"

 

바렌카가 대답할 때, 그녀의 입술이 흥분으로 바르르 떨렸다.

 

"갓 모양에는 차이가 없고 뿌리 모양이 다르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그도 그녀도 그 문제가 종결됐다는 것, 입 밖으로 나왔어야 할 그 말이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바로 그 직전까지 절정에 달했던 그들의 흥분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버섯은 그 뿌리가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은 다갈색 수염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네. 정말 그래요." 바렌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무심결에 두 사람의 산책 방향이 바뀌었다. 그들은 아이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렌카는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이유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마리에 대한 추억을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

오래도록 마음 속으로 연습했던 말 대신 난데없이 ㅡ 미처 자신이 쏟아내는 말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ㅡ 전혀 엉뚱한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도 이렇게 중차대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그녀에게 당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그녀가 편지를 쓰게 만들어 주십시오. 난 이 문제에 대해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좋아요, 내가 말해 볼게요. 하지만 안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 순간 문득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어쩐 일인지 눈을 가늘게 뜨는 안나의 이상한 새로운 버릇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안나가 눈을 가늘게 든 것이 생활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미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돌리는 생각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꼭 그녀와 이야기를 해 볼게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이렇게 대답했다.(16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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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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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기에

 

안나는 자신이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관점에서 보아도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슬픔은 그것이 혼자만의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브론스키와 나눌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불행은 주로 브론스키 때문이었는데도 그 자신은 그녀와 아들이 만나는 문제를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여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심연을 그가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문제가 언급될 경우 그의 차가운 태도 때문에 자신이 그를 증오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기에 아들에 관한 모든 것을 그에게 숨겼다.(619∼620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처음에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그러한 것들이 그를 매혹했지만

 

브론스키가 객실에 돌아왔을 때, 안나는 그때까지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나가자마자 곧 어떤 부인이 찾아와 그녀와 함께 나갔다는 것이다. 그녀가 어디 가는지 말도 없이 나가 버린 것,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 아침에도 자기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다녀온 것, 이 모든 것들이 오늘 아침 이상할 만큼 흥분해 있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며, 야쉬빈 앞에서 그의 손에 든 아들의 사진을 거의 잡아채다시피 할 때의 그 적대적인 태도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그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응접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안나는 혼자 돌아오지 않고, 친척 아주머니인 노처녀 오블론스카야 공작 영애를 데리고 왔다. 그녀가 바로 아침에 와서 안나와 함께 쇼핑을 하러 나간 그 부인이었다. 안나는 마치 브론스키의 근심스러운, 뭔가 캐묻는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오늘 아침 그녀가 무엇을 샀는지 그에게 명랑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그녀 안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시선이 얼핏 그에게 머무를 때면, 그 빛나는 눈동자 속에 팽팽히 긴장된 주의가 엿보였고, 말과 동작 속에는 신경질적인 민첩함과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의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그러한 것들이 그를 매혹했지만, 이제는 그를 불안하게 하고 놀라게 만들었다.(640∼64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브론스키는 자신의 처지를 일부러 이해하지 않으려는 안나의 태도 때문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느꼈다. 그 감정은 그녀에게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표현할 수 없어 더욱 커졌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이랬을 것이다. '그런 차림으로 누구나 아는 공작 영애와 함께 극장에 간다는 것, 그것은 곧 타락한 여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교계에 도전하는 것, 즉 사교계와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는 것을 의미하오.'

 

그는 그녀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가 그것을 모를 수 있지? 도대체 그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에 대한 존경이 줄어드는 동시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645쪽)

 

(나의 생각)

브론스키와 안나 사이에 일어난 온갖 다양하고도 미세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들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내는 톨스토이의 능력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그가 작중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온갖 사건들에 대해서 얼마나 빈틈없고 주도면밀하게 그려내고자 애썼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놀랍기만 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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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카푸아적인 무언가가

 

지금 그의 생활에는 뭔가 부끄럽고 연약하고 그가 일컫는 대로 카푸아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좋지 않아. 이제 곧 석 달이 돼. 하지만 난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난 오늘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을 붙잡았지. 하지만 이게 뭐야? 겨우 시작만 하다 집어던지고 말았잖아. 평소에 하던 일마저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523∼524쪽)

 

주석) 카푸아적인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쓴 라마사에 따르면, 한니발의 군대는 2차 포에니 전쟁 중에 나폴리 부근의 카푸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유약해져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1870년대의 신문과 잡지는 나폴레옹 3세의 파리에 대해 '카푸아'라는 용어를 자주 인용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여기서 '카푸아'라는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자신의 무기력한 시기를 '카푸아적'이라고 언급했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아내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를 떠난 것과 거의 동시에, 관리로서 가장 쓰라린 사건이 발생했다. 즉 승진이 멈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었고,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자신은 아직도 그의 출세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스트레모프와의 충돌 때문이든, 아내와의 불행 때문이든, 아니면 단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그에게 예정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든, 그의 관리 경력이 끝났다는 사실은 올해 들어 모든 사람들의 눈에 분명해졌다. 그는 아직 요직을 맡고 있었고 수많은 위원회와 회의의 위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모해 버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가 무엇을 제안하든, 사람들은 마치 그가 제안하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듯한 태도로 들었다.(586∼587쪽)

 

(나의 생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언젠가는 닥치기 마련이다. 아무도 그런 느낌을 톨스토이처럼 리얼하게 표현할 수 없을 뿐.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고양이와 쥐 놀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자세를 바꾸는 것을 방해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리를 꼰 채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고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다리를 꼰 채 그렇게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그가 뻗고 싶어 하는 쪽으로 뒤틀릴 것이다. 바로 그것이 브론스키가 사교계에 대해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사교계가 그들에게 빗장을 걸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사교계가 변하지 않았는지 어떤지, 그들을 받아들일지 어떤지를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사교계가 그에게는 문을 열어 줄지라도 그녀에게는 굳게 닫아걸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고양이와 쥐 놀이처럼, 그를 위해서는 들린 손이 안나 앞에서는 곧바로 내려온 것이다.(612∼61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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