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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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꺾어 시들어 버린 꽃

 

최근에 그녀에게서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런 질투의 발작은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식게 만들었다. 물론 그도 질투가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녀의 사랑이 곧 행복이라고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안나는 사랑을 인생의 모든 행복보다 소중히 여기는 여인만이 할 수 있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안나를 좇아 모스크바를 떠날 때보다 행복으로부터 훨씬 멀어졌다. 그때 그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미래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최고의 행복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녀는 추한 모습으로 변했다. 안나의 몸은 옆으로 푹 퍼져 버렸고, 그녀가 여배우에 대해 말하는 순간에는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표독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꺾어 시들어 버린 꽃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자신으로 하여금 그 쫓을 꺾어 망치게 만들도록 유혹한 그 아름다움을 애써 찾아보려는 남자처럼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사랑이 지금보다 더 뜨거웠을 때 그렇게 하려는 마음만 강했다면 자신의 가슴속에서 그 사랑을 뽑아낼 수도 있었을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이런 때에는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262∼26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비겁하다는 것은 정부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서도 남편의 빵을 먹는 것

 

"남편이 단지 예의를 지켜 달라는 조건으로 아내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가문의 명예로운 보호를 베풀었는데, 당신은 그걸 잔인함이라고 부르는군. 그것이 잔인한 건가?"

 

"그건 잔인함보다 더 나빠요. 당신이 굳이 알고 싶다면 말하죠. 그건 비겁한 짓이에요."

 

안나는 증오를 폭발시키며 이렇게 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안 돼!" 그는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높은 음을 띠었다. 그는 커다란 손가락으로 팔찌의 자국이 빨갛게 남을 만큼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고는 그녀를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비겁하다고? 당신이 굳이 그 말을 사용하고 싶다면 말해 주지. 비겁하다는 것은 정부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서도 남편의 빵을 먹는 것, 그걸 두고 하는 말이오!"(274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아주 작은 혹성에 핀 작은 곰팡이

 

"그게 어때서? 난 지금도 계속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야. 이 모든 게 다 무의미하다는 것도. 자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난 나의 사상과 일을 어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어. 하지만 자네도 한번 생각해 봐.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전체는 아주 작은 혹성에 핀 작은 곰팡이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상이나 일 같은 것 말이지! 이 모든 건 모래알에 불과해." 레빈이 말했다.(2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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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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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몰라

 

'그가 옳아! 그가 옳아!' 그녀는 같은 말을 되뇌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옳았어.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이고 관대한 사람이지! 그래,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 같으니! 나 말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 앞으로도 그렇겠지. 나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어. 사람들은 말하지. 그가 신앙심이 두텁고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총명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본 것을 보지 못해. 그들은 그가 지난 8년 동안 내 삶을 얼마나 숨 막히게 했는지, 내 안에 살아 있던 모든 것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몰라. 그들은 몰라. 그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이 필요한 살아 있는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들은 그가 항상 날 모욕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했다는 것을 모르지. 내가 노력하지 않았나? 온 힘을 다해 내 삶의 정당성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는 아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때가 온 거야. 난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난 살아 있는 여자야. 내게는 죄가 없어. 하느님은 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여자로 만드셨어. 이제야 그걸 알겠어. 그런데 지금 도대체 이게 뭐야? 남편이 날 죽이거나 그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난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냐, 그는…….' (121∼12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이 거짓의 거미줄을 찢어 놓고 말거야

 

'우리의 생활은 예전처럼 계속되어야 하오.' 그녀는 편지에 있던 다른 문구를 떠올렸다. '그 생활은 전에도 고통스러웠어. 최근에는 끔찍할 정도였지. 이제 어떻게 될까? 그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어. 난 숨을 쉬었고 사랑했어. 난 그것에 대해 후회따윈 할 수 없어. 그는 그 점을 잘 알아. 그는 거짓과 기만 외에 여기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그는 날 계속 괴롭혀야만 하지. 난 그를 알아! 난 그가 물속의 물고기처럼 거짓 속을 헤엄치며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안 돼. 난 그에게 그런 기쁨을 허락할 수 없어. 난 그가 내 주위에 휘감고 싶어 하는 이 거짓의 거미줄을 찢어 놓고 말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것이든 거짓과 기만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어떻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나처럼 불행한 여자가 또 있었을까? …….'

 

"아냐, 찢어 놓겠어, 찢어 놓을 거야." 그녀는 벌떡 일어나 눈물을 참으려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 또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아무 것도 찢어 놓지 못할 거라는 것, 아무리 위선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 해도 자신이 그러한 예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었다.(12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남편을 버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긴 것

 

남편에 대한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명백했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사랑한 그 순간부터,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권리만은 절대적인 것으로 여겼다. 남편은 단지 불필요한 방해꾼일 뿐이었다. 남편이 불쌍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남편이 가진 유일한 권리는 손에 무기를 쥐고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다. 브론스키는 그것에 대해 처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사이 그와 그녀 사이에 새롭게 내적인 관계가 타나났고, 이 관계의 불분명함이 그를 위협했다. 바로 어제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그 소식이나 안나가 자기에게 기대하는 것이 자기가 삶의 지침으로 삼은 법전에 충분히 규정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임신을 알린 처음 순간, 불시의 습격을 받은 그의 마음이 그로 하여금 그녀에게 남편을 버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긴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지금 다시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며 그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나쁜 짓이 아닐까?'(150∼15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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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배신한 아내들의 예가 많아질수록

 

'멸시받아 마땅한 여자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지. 내가 할 일은 오직 그녀가 내게 지운 이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가장 좋은 출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을 찾아낼 것이다.' 그는 얼굴을 더욱더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자 역사적인 예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아름다운 헬레네」로 인해 모든 사람의 기억에 새롭게 떠오른 메넬라오스를 비롯하여 부정한 아내를 둔 오늘날 상류사회의 남편들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머리속에 차례차례 떠올랐다. '다리얄로프, 폴타프스키, 카리바노프 공작, 파스쿠진 백작, 드람……, 그래, 드람……, 그토록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이……. 세묘노프, 챠긴, 시고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가령 그 사람들에게 어떤 불합리한 ridicule이 쏟아진다고 하자. 하지만 난 그 속에서 불행 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언제나 그들을 동정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그런 종류의 불행에 동정을 보낸 적이 없으며, 남편을 배신한 아내들의 예가 많아질수록 스스로를 더욱더 높이 평가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행이 나에게 닥쳤다. 문제는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냐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세세하게 떠올리기 시작했다.(96∼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래, 시간이 흐르면

 

세부적인 것들을 좀 더 생각하는 동안,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기와 아내의 관계가 왜 예전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없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결코 그녀를 다시 존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그녀가 품행이 나쁘고 부정한 아내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활을 망치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또한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간이 흐르면, 관계도 예전처럼 회복되겠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활하면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는 회복될 것이다. 그녀는 불행해져야만 해. 하지만 난 죄를 짓지 않았으니 절대로 불행해질 수 없어.'(102∼10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래, 모스크바로 가자. 밤 기차를 타고 가는 거야.

 

그녀는 가만히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의 우듬지와 차가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말간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 저 하늘과 저 푸른 잎들처럼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지금의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녀는 또다시 자신의 영혼 속에서 사물이 이중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생각해서는 안 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해. 어디로 가지? 언제? 누구를 데리고? 그래, 모스크바로 가자. 밤 기차를 타고 가는 거야. 안누슈카와 세료자를 데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하지만 먼저 그 두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해.'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테이블 앞에 앉아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11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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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여름이 저무는 때

 

바야흐로 1년 중 여름이 저무는 때였다. 올해의 수확량이 이미 결정된 시기, 이듬해의 파종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고 풀베기가 다가오는 시기, 호밀마다 이삭이 패고 바람이 불 때마다 회색빛 도는 초록색 호밀이 채 영글지 않은 가벼운 이삭을 흔들며 물결치는 시기, 초록색 귀리와 그 사이에 점점이 흩어져 덤불을 이룬 누런 풀이 늦갈이 밭을 따라 들쑥날쑥 펼쳐져 있는 시기, 철 이른 메밀이 무성하게 자라 땅을 뒤덮은 시기, 가축들에게 짓밟혀 쟁기 날도 들지 않는 길이 난 휴한지를 절반가량 갈아엎어 놓은 시기, 밭으로 옮긴 꾸덕꾸덕한 거름 더미의 냄새가 달콤한 풀 냄새와 어우러져 노을 속으로 퍼지는 시기, 아래쪽의 무성한 풀받이 낫을 기다리며 끝없는 바다를 이루고 그 사이로 땅에서 뽑힌 쾡이밥 줄기의 거무스름한 무더기가 군데군데 쌓여 있는 시기였다.(18쪽)

 

(나의 생각)

바야흐로 코앞에 닥칠 8월 하순쯤이 그런 계절이 아닐까 싶은데, 올 여름은 도대체 저물 기미조차 보이지 않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가장 덜떨어진 아이조차 위선자를 알아보고

 

아이들은 레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언제 그를 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대할 때 수줍음과 혐오가 뒤섞인 기묘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위선적인 어른을 대할 때면 흔히 그런 감정을 드러냈는데, 그 때문에 걸핏하면 호된 벌을 받곤 했다. 위선은 통찰력이 뛰어난 가장 현명한 사람까지도 어떻게든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에는 가장 덜떨어진 아이조차 위선자를 알아보고 외면해 버린다. 설사 그 사람이 아무리 교묘하게 위장한다 해도 말이다. 레빈의 결점이 어떤 것이든, 그에게는 위선의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발견한 그런 다정함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7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삶의 수수께끼가 풀릴 가능성

 

마차의 한구석에서는 노파가 졸고 있었고, 창가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젊은 아가씨가 두 손으로 하얀 두건에 달린 작은 리본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맑은 얼굴의 그녀, 레빈과는 거리가 먼 우아하고 복잡한 내적인 삶으로 꽉 찬 듯한 그녀, 그녀가 그의 너머로 아침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이 사라진 바로 그 순간, 진실한 두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빛냈다.

 

그가 착각했을 리 없다. 그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삶의 모든 빛과 의미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에서 예르구쇼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 불면의 밤에 레빈의 마음을 휘저어 놓은 모든 것, 그가 내린 모든 결심,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농사꾼의 딸과 결혼을 하려 했던 자신의 공상을 떠올리며 혐오감을 느꼈다. 요사이 그를 그토록 괴롭게 짓누르던 삶의 수수께끼가 풀릴 가능성은 오직 그곳에, 맞은편 길로 빠르게 멀어져 가는 그 마차 안에 있었던 것이다.(91∼9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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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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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날 용서해 주세요.

 

거의 1년 동안 브론스키의 삶에서 이전의 모든 욕망을 대신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 안나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끔찍한 것, 하지만 그만큼 더 황홀한 행복의 꿈이었던 것, 그 희망이 마침내 실현되었다. 그녀 앞에 선 그는 창백한 얼굴로 아래턱을 덜덜 떨며 그녀에게 안심하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안나! 안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나, 제발!"

 

……

 

"하느님! 날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흐느껴 울며 그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댔다.(32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나중에, 나중에.

 

"다 끝났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에겐 이제 아무것도 없어. 당신뿐이야. 잊지 말아요."

 

"나의 생명인 당신을 어떻게 잊겠어? 이 행복한 순간을 위해……."

 

"행복이라니?" 그녀는 증오와 공포를 드러냈다. 그리고 공포는 어느새 그에게로 전해졌다. "제발, 아무 말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그에게서 물러났다.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말아요."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그에게 낯선 차가운 절망의 표정으로 그를 떠났다. 그녀는 이 순간 새로운 삶으로 가는 이 입구 앞에서 자신이 느낀 수치와 기쁨과 공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고, 부정확한 말로 그 감정들을 저속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도,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녀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고, 자신의 영혼에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깊이 숙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생각도 찾지 못했다.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아냐, 지금은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없어. 나중에, 내 마음이 좀 더 진정된 다음에.'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한 마음의 평화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공포가 엄습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곤 했다.

 

"나중에, 나중에." 그녀는 말했다. "내 마음이 좀 더 진정된 다음에."(32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그녀나 나나 모든 걸 버리고

 

'그래, 예전에 그녀는 불행하지만 당당하고 침착했어. 그런데 지금 그녀는 비록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침착함과 품위를 잃었어. 그래, 이런 건 이제 그만 끝내야 해.'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자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이런 거짓을 끝내야 할 뿐 아니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나 나나 모든 걸 버리고 우리의 사랑만을 간직한 채 어딘가로 숨어 버려야 해.'(399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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