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5부(98∼133)


98. 지크문트 프로이트, 1856∼1939,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3논문, 문명과 그 불만, 기타 작품들

















정신분석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주장한다. 하나는 정신분석이 과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심리 이론이고 노이로제 환자를 치료하는 특수한 기술이다. 이론과 기술은 몇 개의 근본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정신분석 이론들은 이제 진부한 것이 되었지만 1백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가령 인간의 정신에는 무의식이 있고, 억압의 메커니즘이 있으며, 유아 성욕은 나중의 인성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획기적 이론을 내놓았다.

사상의 증권거래소에 지난 20년 동안 그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99. 조지 버나드 쇼, 1856∼1950, 희곡 선집과 서문들
















버나드 쇼는 재치, 열정, 끈기, 명석함을 발휘하면서 1세기 가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고 광고했다. 쇼는 94세까지 살았다. 자궁 속은 아니더라도 요람에서부터 사색을 한 사람이고 방대한 편지, 서른네 권의 전집 속에 많은 희곡, 서문, 소설, 경제논문, 팸플릿, 문학평론, 연극평론, 음악평론, 시사평론 등을 남겼다. 그가 언제나 흠모했던 초인들과 마찬가지로 쇼도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을 내다보며 살았다, 이런 사람을 어떤 공식으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말했다. "경제 지식은 해부학 지식이 미켈란젤로에게 중요한 것처럼 내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105. 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것은 서양 언어로 씌어진 일급의소설들 중 가장 긴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만큼 보람도 크다. 만약 독자가 이 소설에 마음이 끌린다면(마음이 끌리지 않는 독자가 더 많을 것이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 그것을 독자의 내면세계에 흡수하면 좋을 것이다.

『율리시스』의 주인공은 더블린이라는 장소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시간이다. 예술에다 "시간의 형태"를 집어넣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변하는 것이 프루스트의 목표였다.

나는 결론으로 당대의 미국 1급 평론가였던 에드먼드 윌슨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프루스트에게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정신과 상상력을 만난다. 프루스트는 그 위력이나 영향력에 있어서, 니체[97], 톨스토이[88], 바그너, 입센[89] 같은 한 세기 전의 예술가들에게 버금가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이다. 그는 상대성의 관점에서 소설의 세계를 재창조했다. 그는 문학 분야에서 현대 물리학의 새 이론(양자 이론)에 버금가는 새로운 글쓰기 이론을 제공했다."

 

110. 제임스 조이스, 1882∼1941,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1. 이 작품은 『신곡』[30] 이래 가장 완벽하게 조직된 작품이다.

4.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견해로서, 이 작품은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강력한 정신이 포착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정신은 부분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자기 변명적인 것은 일체 배격한다.

5. 그 모태가 되는 『오디세이아』[3]와는 다르게,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112. 프란츠 카프카, 1883∼1924, 심판, 성, 단편선집

 
















서양의 경우만 생각한다면, 카프카의 이름은 가장 영향력이 큰 20세기 작가 다섯 명에 들어갈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은 조이스[110], 프루스트[105], 예이츠[103], T.S. 엘리엇[116]이다. 카프카 사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시인 W.H. 오든[126]은 이렇게 썼다. "각 시대를 대표했던 단테[30], 셰익스피어[39], 괴테[62]와 같은 작가를 20세기에 고르라고 한다면 카프카가 1순위일 것이다."

그는 1924년에 요절했지만, 그의 상징적 비전은 20세기를 미리 내다본 듯하다. 독일에 들어선 총체적 테러의 국가, 현대 정부의 본질적 구조인 관료주의적 미로, 길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현대의 영혼, 기계에 의한 인간 영혼의 침탈,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에 만연한 보편적 죄책감, 비인간화 등이 카프카가 예견한 것이다. 보르헤스[121]는 "카프카가 음울한 신화와 폭력적인 사회 제도를 고발한다"고 말했다.

113. D.H. 로렌스, 1885∼1930, 아들과 연인, 사랑하는 여인들

 



















로렌스가 폐결핵으로 사망했을 때 겨우 45세였다는 사실은 좀 믿기가 어렵다. 그의 첫 장편이 출간된 1911년부터 사망한 1930년까지 매해 그의 책이 한 권씩은 출간되었다. 1930년 한 해에만 무려 여섯 권이 출간되었고 그의 유작도 열두 권이 넘는다. 이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로렌스는 널리 여행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주었으며,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비타협적인 사상 때문에 벌어진 불운한 논쟁들에 말려들었다. 이 홀쭉하고 연약한 턱수염 난 사나이-소설가, 시인, 극작가, 수필가, 비평가, 화가, 예언가-는 내부에 생명의 에너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소설의 도움으로 독자는 생중사(生中死: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를 면할 수 있다"라고 로렌스는 말한다. 그는 독자를 변화시키고, 독자의 내부에 강렬한 느낌과 환희를 다시 일으켜 놓고 싶어 한다. 그는 인류가 이런 강력한 생의 감각을 현재 잃어버렸거나 잃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117. 올더스 헉슬리, 1894∼1963, 멋진 신세계

 
















20세기의 유토피아 문학은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르게 부정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는 그 문학에서 격려의 함성이 아니라 경고의 외침을 듣게 된다. 헉슬리가 인용한 러시아 철학자 베르쟈예프가 말했듯이,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유토피아에 도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유토피아를 피할 것인가이다. 헉슬리와 오웰[123]과 기타 수십 명의 현대 작가들에 의하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애쓰다가 비인간화의 지옥으로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6백 년 뒤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그 미래에는 동물들(여전히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물들)과 그의 관리자들이 살고 있다. 관리를 받는 동물들은 그들의 예속 상태를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은 행복하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에 적응되어 있다. 국가의 헌법은 공동체, 정체성, 안정성의 세 개 조항만 제시한다. 그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예술, 이론과학, 가족, 정서, 개인의 노력과 개인 간 차이 등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119.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1961, 단편소설 전집

 















그는 죽음, 열정, 패배, 인간 희망의 끈덕짐 등 궁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헤밍웨이의 문학세계는 실제에 있어서 그리 폭넓지 않다. 그보다 명성이 떨어지는 소설가들 중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더 깊이 더 넓게 탐구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위대한 작가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스탕달[67] 곁에 세워 놓으면 그는 청년처럼 보인다. 헨리 제임스[96] 옆에 서면 원시인처럼 보이고, 톨스토이[88] 옆에서는 미성년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적지 않다. 마크 트웨인[92]이 쌓아놓은 기초 위에다 그는 영어 문장을 문학적으로 개조했다. 그는 어떤 한 순간의 진실, 통찰, 체험을 단 한 단어의 낭비도 없이 간결하게 드러낸다. 그가 문학에 기여한 공로는 이런 테크닉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도덕적인 기여도 했다. 헤밍웨이는 언어의 정직성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123. 조지 오웰, 1903∼1950, 동물농장, 1984, 버마 시절


















오웰은 『동물농장』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걸리버 여행기』[52] 처럼, 이 소설은 아주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물 우화를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각색한 것이다. 캉디드[53]가 라이프니츠 낙관론에 대한 고전적 풍자라면, 『동물농장』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고전적 풍자이다. 비록 소련이 해체되기는 했지만 이 소설의 풍자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다. 그 생생한 움직임, 간결성, 직접성, 현장성, 재치 등은 볼테르의 뛰어난 특징을 연상시킨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오웰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물농장』은 내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최초의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하려 했다."

『1984』는 그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비교해 보면 1932년부터 1949년까지 17년 동안에 세상이 얼마나 더 암담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오웰의 소설이 더 암울하다.

127. 알베르 카뮈, 1913∼1960, 페스트,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와 『반항인』등으로 카뮈의 정치철학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그보다는 중편인 『이방인』과 본격 장편인 『페스트』를 통하여 카뮈의 멋진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무의미한 살인 행위를 다룬 『이방인』은 우리 시대의 징후라 할 수 있는, 뿌리 없는 비순응적 감수성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의 폭력 행위와 그에 대한 사회의 징벌권의 대비는, 주인공과 사회의 가치 사이에 심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 사회는 자신의 가치를 당연시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에 대하여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떻게 악과 선이 구분될 수 있으며 또 악과 선을 알아볼 수 있는가?

그렇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페스트의 효과가, 무심한 우주에 떨어진 고립된 인간들이 삶의 허무함을 초월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카뮈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대니얼 디포[51]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형태의 구속을 다른 형태의 구속으로 재현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실제로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일이다." 카뮈는 소설 속에서 우화나 알레고리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을 느낀다.

129.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1918∼2008, 제1원, 암병동
















『암병동』 또한 감동적인 소설이다. 솔제니친 자신이 1950년대 중반에 암 치료를 받은 바 있었다.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통하여, 토마스 만이 『마의 산』[107]으로 독일 문학에 기여한 것처럼, 러시아 문학에 기여했다. 『암병동』은 그의 장편소설들이 다 그렇듯이 병동을 다룬 것이 아니라 감옥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 전역을 감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종양이 생기면 죽는다. 강제수용소와 강제 유배가 암처럼 생겨나는 나라가 어떻게 부지할 수 있겠는가?" 외부적으로 병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나, 『암병동』은 카뮈의 『페스트』[127]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찬양한 작품이다.

130. 토머스 쿤, 1922∼1996, 과학 혁명의 구조

 















쿤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지도 않고 또 과학적 탐구가 벌어지는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면제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들어와 일부 과격한 과학 비평가들은 쿤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이런 주장을 펴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객관적 의미의 진실을 발견할 수가 없으며, 모든 과학적 결과는 문화적 전제조건의 표현일 뿐이다. 쿤은 이렇게 말한 적이 없고, 또 자신의 이론을 이런 식으로 왜곡 인용하는 사람들을 거부했다. 그는 물리학자답게 과학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어떤 특정 패러다임 아래에서 어던 진리는 발견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과학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은 우리 시대의 문화 전쟁에서 핵심적 주제가 되어 왔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진지한 저서이다. 하지만 진지한 주제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이 읽지 못할 내용은 없다. 문명이 세상을 인식해 온 방식과, 미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경정짓는 각종 요소들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획기적인 저서이다.

13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28∼ , 백 년 동안의 고독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부엔디아 가문의 한 역사가는 "사건들을 전통적인 연대기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1백 년간의 세월을 교묘하게 압축하여 그 동안에 벌어졌던 사건들이 한 순간에 공존하도록 배열했다." 소설 속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렇게 묘사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석하게 깨달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시간 또한 뒤로 넘어질 수가 있고 그리하여 우연들이 발생한다. 그 결과 시간은 깨어져서 그 영원한 파편 한 조각을 방 안에다 남긴다."

그 넘치는 힘, 유머(비록 음울하지만), 의도적인 과장, 언어의 왜곡, 인간 체험의 신화화 등에 있어서『백 년 동안의 고독』은 『평생 독서 계획』에 추천된 책들 중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35]에 가장 가깝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가장 위대한 남미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 가문의 고통, 광기, 망상, 근친상간적 사랑, 엄청난 열정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비극적인 삶과 꿈을 환기시킨다.

133. 치누아 아체베, 1930∼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새로 지어진 교회의 마법이었다. 그 교회는 괴상한 새로운 교리를 내세워서 그의 부족 사람들을 유혹했다. 게다가 식민 종주국 영국의 지역 행정관의 권세는 대단했다. 그는 마을 밖에서 경찰들을 동원해 왔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했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몰락하게 되는 오콩고의 비극은 이런 것이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전통 사회라면 그는 올바른 발언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며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사태는 일변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그가 권위를 내세울수록 그의 추락은 더욱 확실해졌다.

아체베는 이 소설을 통하여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 버금가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오이디푸스 혹은 리어왕이다. 운명에 의해서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목표의 고집스러운 추구와 외부 환경에 대한 무지에 의해 몰락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주 매력직인 소설이고 또 모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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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4부(62∼97)


6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파우스트


















그는 평생 동안 성장, 변화, 분투 노력, 활동, 세상에 대한 이해와 정복을 강조했다. 괴테는 파우스트적 인간이었고 현대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느낌들을 전형화하는 인물이었다.

제1부는 파우스트 개인의 영혼을 다룬다. 그의 지적인 환멸과 야망, 모든 것을 부정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파우스트 앞에 놓인 유혹, 파우스트의 마르가레테 유혹, 사랑을 통한 구원의 약속 등이 다루어진다. 2부는 개인 파우스트가 아니라 서구의 인간들이라는 "더 큰 세계"를 다룬다. 전설적 인물 헬렌이 등장하는 역사적 환상극이다. 우리가 호메로스[2,3]의 작품에서 만났던 헬렌은 여기서 서양 고전 세계를 상징하고, 파우스트는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서양 세계를 상징한다. 『신곡』[30]의 무대였던 천국, 지옥, 지상이 그대로 『파우스트』의 무대가 된다.

몰리에르[46]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괴테를 영역하면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번역 효과가 좀 미흡한들 어떠랴. 토마스 만[107] 등 위대한 현대 작가들을 포함하여 무수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이 유럽의 거인을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

66. 제인 오스틴, 1775∼1817, 오만과 편견, 엠마



















"개인 생활의 행복이 걸려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하는 특별한 작은 세계의 회전축이 고상한 사상, 강렬한 야망, 비극적 절망 등이 아니라 금전, 결혼(사랑 때문에 복잡하게 꼬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계급의 유지 등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을 하나의 코미디로 관찰하고 있다. 마치 대가족의 동정을 잘 살펴보는 똑똑하고, 눈 밝고, 의견 표명 잘하는 나이든 고모처럼 말이다.

71. 알렉시스 드 토크빌, 1805∼1859,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은 자유주의적인 귀족주의자, 높은 지성을 갖춘 라파예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목적을 겨냥한다. 하나는 미국의 민주적(그는 이것을 평등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제도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관찰과 분석을 유럽(특히 프랑스) 정치의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하나의 길잡이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 책이 미국을 분석한 가장 심오하고 현명하고 예견적인 저서라고 평가한다.

그의 예견이 모두 성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의 동정심, 이해력, 균형감각, 선견지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뛰어난 구조와 우아한 문제의식을 갖춘 걸작이다. 토크빌 당시에 미국의 근대적 자본주의 구조는 아직 초창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후대의 마르크스[82]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그 구조의 장래, 장점, 단점,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다. 이미 150년 전에 토크빌은 "과반수 독재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중의 시대를 내다보았다.

72.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자유론, 여성의 종속

 

 
















감정이 완전 배제된 영국적 방식으로 집필된『자유론』은 명석한 설득력과 인도주의적 주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그처럼 열렬하게 호소한 저서는 따로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자기 보존뿐이다. 그 이외에는 일체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73. 찰스 다윈, 1809∼1882, 비글호의 항해, 종의 기원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끝까지 읽는다면 충분한 보람을 안겨준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사용한 전략은 객관적 증거를 다량으로 제시하여 반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또 결정적 증거가 부족할 때에는 유추와 개연성 있는 추측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의 전략은 정밀한 논리보다 대담한 추론에 더 기대는 것이었다. 다윈은 남들이 전에 다 보았으되 관찰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위했다. 그리하여 『종의 기원』은 지적인 흥분으로 가득하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래, 다윈의 진화 이론에 대한 반발은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한 동안은 그런 반발이 통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다윈의 이론이 이겼다.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진행중인 과학 혁명을 관찰하는 것이며, 훌륭한 과학자 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79. 샬럿 브론테, 1816∼1855, 제인 에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날개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제인 에어』는 세계 문학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의 하나이다." 이 문장은 일반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은 열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열정은 너무나 팽팽하고 뜨거워서 그 뻣뻣하면서 무거운 문장을 뚫고 나올 정도이다.

나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발견했다. "여성들은 불완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성들로부터 기대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은 천재의 작품뿐이다."

80.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월든, 시민 불복종

 
















소로는 살아생전에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무수히 많은 독백을 했다. 그러나 사후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 어쩌면 수억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호소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아주 파괴적인 사람이다. 예수 못지않게 과격한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사회를 전복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명을 거부하는 마르크스의 국가는 다른 생명 거부의 국가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의 일반적 흐름에 온몸을 던져 반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한다."(이 말은 오늘날 널리 인용되는 명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소로는 철저히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 나가기로 결심했다. 적응하고, 동화하고, 합류하고, 개혁하고, 완성하는 대신에 삶 그 자체를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소로처럼 자연을 즐기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의 생활 방식은 별 호소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소로의 개인적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83. 허먼 멜빌, 1819∼1891, 모비딕, 필경사 바틀리

 

 
















상아 의족을 찬 복수심 가득한 노인이 자신의 적인 하얀 고래를 추적하다가 결국 노인도 고래도 둘 다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적 경험이 풍부한 성인들은 이 소설을 아주 광포한 예술 작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비극적 인식이 녹아 들어가 있어서, 어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동급으로 평가한다. 영어의 리듬에 민감한 독자들은 이 소설의 웅장한 문체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조는 마치 오르간의 마개를 모두 열어놓고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87.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1881,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작품은 서로 조응한다. 고통, 폭력, 정서적 위기, 과도한 행동이 생애와 작품에서 똑 같이 등장한다. 그의 장편소설들에서 발견되는 저 강력한 성실성은 저자의 생애를 평생 어둡게 만들었던 불안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독자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곧 지옥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그 소설들은 니체[97]와 프로이트[98]의 사상을 예고했다. 토마스 만[107], 카뮈[127], 포크너[118] 같은 러시아 이외 지역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 등을 연상케 하는 테러 이론과 실천을 극화했다. 도스토옙스키는 20세기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것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이런 비극적 인식이 그의 소설에서 매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 기이한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의 중심 주제는 신이었다. 신에 대한 탐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그의 스토리의 핵심 요소이다.

8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 전쟁과 평화
















여러 해 전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글을 썼을 때 나는 세 가지 특징을 칭찬했다. 첫째, 포괄성이고 둘째, 자연스러움이며 셋째, 무시간성이다. 15년이 지나 이 소설을 두 번째로 다시 읽고서 또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독자에게 드러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에 세 번째로 다시 읽고는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미덕 하나를 또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말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캔버스가 아주 좁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령 헤밍웨이는 투우에 대하여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주제이다.

91. 루이스 캐럴, 1832∼18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을 통하여
















루이스 캐럴은 두 권의 앨리스 책이 발간된 1860년대와 70년대보다 오늘날 오히려 더 생생하게 빛을 발한다. 그는 모든 나라의 보통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지식인들도 매혹시켰다. 가령 에드먼드 윌슨, W.H.오든[126], 버지니아 울프[111], 엘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버트런드 러셀, 아서 스탠리 에딩턴 같은 논리학자와 과학자들, 그 외에 무수한 철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앨리스를 사랑했다.

『앨리스』에서는 독자가 의식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네 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유년, 꿈, 난센스, 논리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세계들은 서로 합쳐지는가 하면 서로 벗어나기도 하고 서로 간에 어떤 변화를 겪기도 한다. 이 네 가지 세계의 기이한 상호 작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복잡성을, 보다 중요하게는 그 혼란스러운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성인 독자는 그 기발한 유머를 즐겁게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아동서적 이상의 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 의식의 어두운 구석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92. 마크 트웨인, 1835∼1910, 허클베리 핀

 

 


















어린 시절에 『허클베리 핀』을 읽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아동용 서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뛰어난 아동용 서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러한 생각을 뒤엎는다. "모든 미국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라는 책 하나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두 극단적 생각의 중간쯤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생각에 좀 더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마크 트웨인은 굉장히 고심하면서 『허클베리 핀』을 썼다. 그가 이 소설을 탈고했을 때 이 소설이 소로의 『월든』[80]과 함께 미국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2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트웨인은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이 소설을 써냈다. 그 무의식을 통하여 그의 초창기 상상력에 자양을 주었던 위대한 강이 흘러들었다. 이 소설 속에 그는 자신의 청춘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미합중국의 청춘을 함께 엮어 넣었다는 것을 그는 의식하지 못했으리라.

95. 윌리엄 제임스, 1842∼1910, 심리학 원리, 프래그머티즘, 진실의 의미 중 논문 4편,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
















제임스는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상태는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신경계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종교적 상태의 중요성은 그 근원이 아니라 그 결과적 가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종교는 '진리'라고 확정되었든 말았든, 개인과 인류에게 가치있는 것이다. 종교의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것이다. 사상은 도구로서만 타당한 것이며 그 도구성에 의하여 가치가 판단되어야 한다. 요약해 보자면, "사상은 우리의 생활에 유익하다고 믿어지는 한 '진리'이다."

그는 사상사에서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활기 넘치고, 체험의 세계를 중시하고, 정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정서적으로 아주 신선하다. 게다가 그는 아주 명쾌하고 신선한 문체의 소유자이다. 확정된 종교 체계나 도덕 체계를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실용주의적 검증에 대해서 반대할지 모르나, 그래도 그의 저서를 읽고 나면 독자는 전보다 더 생생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가능성의 철학자이다. 실용주의적 검증이라는 개념만으로도 그는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 인생을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97.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190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기타 작품들


















1879년부터 1888년까지 그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싸구려 하숙집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보낸 9년 동안 그는 자신의 대표작을 대부분 써냈다. 1888년 12월 그는 토리노의 거리에서 말(馬)의 목을 쓰다듬으며 울고 있는 광인狂人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정신이상에 빠진 것이었다. 그는 남은 생애 11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정신병은 매독성 전신마비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그는 기독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전통적인 미덕인 동정심, 관용, 상호 수용 등을 거부하고 "권력에의 의지"를 더 선호했다. 그는 밀의 자유민주적 인도주의를 거부하면서 밀을 "저 돌대가리"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 정신 속의 영웅적·디오니소스적·비합리적이면서 직관적인 요소들을 칭송했다. 그는 진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대신에 순환적인 영원 회귀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영웅적인 고통, 낙관적인 비관론, 비극적 체험의 긍정적 효과 등의 이율배반을 강조했다.

(제5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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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3부(39∼61)

39.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전집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그는 인간이었지 반신半神이 아니었다. 그는 콜리지[65]가 말한 것처럼 "일천 가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무오류의 인간도 아니었다. 인류가 낳은 많은 천재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극단에 소속된 장인이었고, 바쁜 배우였으며, 영리하여 점점 번영을 구가한 사업가였다. 천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고, 셰익스피어가 그 좋은 사례이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읽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70세를 산다고 보고 그 중에서 반년 정도의 시간을 투입하여 전집을 읽는 다면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37편 중에서 다음 12편을 필독서로 권한다. 한꺼번에 다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평생에 걸쳐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방법이 더 좋다.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4세』1부와 2부, 『햄릿』,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되에는 되로』, 『리어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오셀로』, 『태풍』.


41. 실명씨, 1618년 발간, 금병매














『금병매』가 오로지 에로틱한 소설로 그쳤더라면 그처럼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장이라고 해도 오늘날의 음란 소설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한결 순화되어 있다. 이 책이 세계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되는 이유는 그 탁월한 사회 풍자와 비판 때문이다. 이 소설은 쇠퇴, 냉소주의, 권력 남용, 부정부패에 사로잡힌 16세기 중국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42. 갈릴레오 갈릴레이, 1574∼1642,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














"이제 독자들은 이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모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천재가 번득이는 수사적 작품이고 1632년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설득력이 높다. 어떻게 이런 저서를 읽고서 납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로마의 교회 당국은 납득하지 않았다. 수사학은 도그마(교리) 앞에서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소환되었고 그의 이론은 취소하기를 강요당했다. 나이가 든 데다 피곤하고 병이 든 그는 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후에 평생을 피렌체의 집에서 가택 연금의 상태로 살았다. 비록 종교재판에 의해 분서형을 당했지만 그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는 계속 유통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의 학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델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이론이 결국 이길 것임을 알고 있었다.

43. 토머스 홉스, 1588∼1679, 리바이어던
















대부분의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은 홉스나 마키아벨리[34]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 제도는 그 인간관에 있어서 반反 홉스적이다. 민주 제도는 권력 분점을 그 바탕으로 한다.(하지만 홉스는 왕, 귀족, 하원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내전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의 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대의적 형태로 표현되는 일반 의지라는 효능 입증된 이론 등에 바탕을 둔다. 미국의 제도와 기타 권위주의적 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리아비어던』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는 아주 까다롭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한다. 난해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 때 홉스의 책을 집어 들도록 하라. 가능하면 『리바이어던』의 서문과 1부와 2부는 모두 읽도록 하라.


44.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방법서설

 
















젊은 시절에도 데카르트는 수학 이외에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의 근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심은 파리와 푸아티에에 체류하던 시절(1614∼18)에 몽테뉴[37]를 읽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마침내 공부를 걷어치우고 가벼운 군사적 모험과 여행의 길로 나섰다. "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이 세상의 위대한 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다른 학문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기타 학자들의 새로운 물리학과 천문학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 과학 정신은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45. 존 밀턴, 1608∼1674, 실낙원, 리시다스, 그리스도 탄생의 날 아침에, 소네트, 아레오파지티카

 
















밀턴을 읽기 위해서는 특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한다. 설사 박물관 진열품이라고 할지라도 밀턴의 시는 여전히 희귀하고 소중한 작품이다. 『실낙원』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그 엄청난 소리 효과, 그 정교한 이미지, 타락한 천사(밀턴은 이 천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인 사탄의 초상화 등을 따라가 보라. 그 어떤 작가도 앞으로 이렇게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밀턴의 웅장한 산문에서 발견되는 우뢰와 같은 미문美文을 구상하지 못할 것이다.

47. 블레즈 파스칼, 1623∼1662, 팡세

 


















이 책은 단편적인 미완성의 노트들인데, 원래는 좀 더 거대한 계획 아래 집필된 것이었다. 파스칼은 당대의 자유사상가들의 공격과 무기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작을 쓰기 위해 이 노트들을 준비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대작을 쓰지는 못했다. 이 노트들에서 파스칼은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와 전능에 비해볼 때 인간이란 너무나 덧없고 무의미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현대의 반 인간적 염세주의는 상당 부분 파스칼에서 유래한다. 종교 옹호자든 허무주의자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팡세』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아주 심오한 심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인간은 자신의 위력에 때로는 영광을 느끼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 자신을 가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상 분야의 파스칼은 그 문장 스타일과 강렬한 정서적 열정 때문에 평가를 받는다, 영혼의 심리학자인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때로는 고상하고 때로는 광적인 그의 경건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그 예리한 인간 심리의 통찰은 높이 평가한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인 파스칼의 두 명언은 아직도 기억된다, 첫 번째 것은 "이 무한한 우주의 침묵은 우리를 겁나게 한다"이고, 두 번째 것은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허약한 존재인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이다. 이 두 명언은 기독교 신자든, 불가지론자든, 무신론자든, 혹은 다른 사상을 가진 자든, 모든 선남선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실이다.

49. 존 로크, 1632∼1704, 통치론

 
















홉스의 "계약" 사상은 개인의 권력을 절대적 권한을 가진 군주 혹은 의회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사회 계약"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며 이 사람들은 "그 계약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 정부는 신의 뜻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권위는 권력 분산에 의해 제한을 받아야 마당하다. 권력은 나누어 가져야 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개인의 영속적인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로크가 볼 때 생명, 자유, 재산 등이 개인의 그런 양도 불가능한 권리이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에 대한 저항은 정당한 것이다.

50. 마쓰오 바쇼, 1644∼1694, 오쿠노 호소미치
















그는 험준한 오지인 산간 지역을 도보로 여행했다. 그런 만큼 바쇼의 여행담에는 비좁고 불확실한 길들을 걸어가야 하는 나날의 근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으며, 저자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질,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 모든 것이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하이쿠는 하나의 작은 경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작은 불꽃이 된다. 『오쿠노 호소미치』는 기술의 절정에 오른 천재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51. 대니얼 디포, 1660∼1731,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남자가 완전 자급자족이 되는 상태를 꿈꾼다. 자신이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자기만의 영지를 꿈꾼다. 외로움의 왕국을 혼자 견디다가 단 한 명의 노예를 발견하여 그에게 인자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꿈을 꾼다. 경쟁에 의해 위태로워지거나 사소해지지 않는 부와 권력의 축적을 꿈꾼다. 허약하고 시시하게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완력과 상식을 사용하여 성공하는 꿈을 꾼다.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훌쩍 벗어난 아주 외진 곳에서 이런 꿈들을 성취하길 바란다. 처자식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신의 힘으로 만든 1인 유토피아에서 살기를 꿈꾼다. 『로빈슨 크루소』와 『모비딕』[83]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탁월한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순전히 오락용 책자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이 들어 재독해 보면 이 소설이 왜 불후의 명작인지 깨닫게 된다.

 

53. 볼테르, 1694∼1778, 캉디드와 기타 작품들

 

 

 

















볼테르는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유럽 지성계의 왕관 없는 제왕이었고, 계몽 시대의 우뚝한 지도자였으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붕괴된 구체제의 기반을 가장 맹렬하게 파괴한 자로 평가되었다. 극작가, 시인, 역사가, 이야기꾼, 재담가, 신문사 특파원, 논쟁가, 화려한 성격의 소유자 등으로 엄청난 명성을 거두었다. 그의 창작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1만 4천 통의 편지와, 2천 건 이상의 책과 팸플릿을 남겼다. 하지만 사흘 만에 써냈다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가 써낸 무수한 냉소적 작품들도 이 단 한 편의 아이러니를 당하지 못한다.

『캉디드』는 후대의 소설들이 즐겨 취하는 성장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령 『적과 흑』[67]도 성장소설이며 『마의 산』[107]은 좀 더 심화되고 확대된 형태의 성장소설이다. 캉디드가 받은 교육은 아주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볼테르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최선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우리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위악적인 아이러니가 넘치는 걸작을 읽고서 볼테르가 조롱의 대가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버나드 쇼처럼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쇼처럼 인간의 정신의 해방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였다.

56. 조설근, 1715∼1763, 홍루몽

 












『홍루몽』은 중국어로 씌어진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 자서전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많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다. 『금병매』[41] 등 중국 고전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가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문학적 범위는 일찍이 중국 문학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다. 120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작품이며 30명의 주요 인물들과 400명의 보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러브 스토리인가 하면 풍속소설이고 사회 비평서이기도 하다.

57. 장 자크 루소, 1712∼1778, 고백록

 
















루소를 가리켜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하기는 쉽다. 또 자연과 인간의 착한 본성을 옹호하는 그의 태도는 조직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상-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그처럼 강력하게 표현된 적이 없었다-은 그의 시대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예언자 루소, 흄[54]이 "피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시기를 맞추어서 태어났다.

루소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하고, 때때로 자기 자신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선언 중 한 가지 사항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모방자가 없을, 그런 과업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는데 그건 틀린 예언이었다. 수천 명의 후배들이 그를 모방했다. 고백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현대의 자서전들은 모두 루소의 『고백록』을 흉내 내고 있다.

(제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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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2부 (22∼38)


22.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고백록
















이 책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책은 자기 고백의 걸작이고 진실한 인간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인간의 도시로부터 신의 도시로 나아가는지 보여 준다. 심리학자들에게,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95]가 말한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무한히 흥미로울 것이다.

28. 무라시키 시키부, 976년경∼1015년, 겐지 이야기
















독자가 『겐지 이야기』를 처음 집어 들면, 너무 두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책을 읽어나가면 소설의 속도가 너무 느리고 너무 기이하여 인간의 세계가 아닌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마르셀 프루스트[105]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마찬가지로 일단 다 읽고 나면 평생 되풀이하여 읽게 될 책임을 알게 된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기이함은 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된다. 무라사키의 산문은 너무나 세련되고 심리적으로 예리하여 독자를 상상력의 세계로 풍덩 빠트린다. 이것은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30. 단테 알리기에리 1265∼1321, 신곡


















이 작품은 버니언의 『천로역정』[48]처럼,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지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상상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지상에서의 상태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지상에서 사는 우리는 부분적으로 비참한 상태, 즉 지옥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연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이곳 지상에서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속죄를 할 수가 있다. 단테 자신이 그렇게 열렬히 믿었듯이, 우리는 이성-『신곡』에서 단테의 안내자로 나오는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의 상징이다-과 신앙의 힘을 통하여 '천국'이라는 지복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32. 제프리 초서, 1342∼1400, 캔터베리 이야기
















단테는 신을 사랑했고, 초서는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했다. 단테는 파멸, 정화, 지복에 이르는 길들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반면에 초서는 일상생활의 복잡한 고속도로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두 작가 모두 여행에 대해서 썼다. 단테의 여행은 세 가지 상징적 세계(지옥, 연옥, 천국)로의 여행이었고, 초서는 14세기에 30여 명의 선남선녀가 영국의 길 위로 떠난 실제의 여행을 묘사한다.

33. 실명씨, 1500년경, 천일야화













'무삭제'는 『천일야화』의 의미와 호소력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동화책에서 읽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과도하게 축약되고 편집된 어린이용 판본이 출판되어 왔다. 하지만 원래 이야기는 어린이용 디즈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원본은 음란한 유머가 가득하거나, 아주 노골적으로 성적이거나, 마음 약한 사람은 잘 소화하지 못하는 괴기한 모험의 요소가 많은 이야기들이다.

34.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군주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마키아벨리는 리버럴(자유주의자)이다. 하지만 그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상적 군주는,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안 되는, 도덕적 고려사항을 초월해야 한다."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무력을 갖춘 예언자들은 정복을 했지만, 무력이 없는 예언자들은 실패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 말을 수긍했을 것이다.

『군주론』은 하나의 매뉴얼이다. 야심 많은 통치자들에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35. 프랑수아 라블레, 1483∼1553,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그는 행복한 조너선 스위프트[52] 혹은 지성미 넘치는 월트 휘트먼[85]이다. 그의 특징적인 자세는 원만하게 포용하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과 술 취한 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었다. 그의 웃음은 아주 자유롭고 건강하다. 그의 투박한 태도,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영원한 코미디를 즐겨 바라보는 태도 등을 보고서 함께 웃지 않고 화를 내는 자는 위선적인 도덕군자들뿐이다.

그는 팡타그뤼엘의 사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운명을 조롱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즐거운 마음."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먼저 독자 자신이 팡타그뤼엘이 되어야 한다.

37. 미셸 에켐 드 몽테뉴, 1533∼1592, 수상록

 
















지난 4세기 동안 고전으로 읽혀 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자는 곧 몽테뉴의 매력, 지혜, 유머, 스타일, 정신적 경향에 호응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견인주의자로 시작했으나, 곧 인간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에 흥미가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의 모토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였다. 그의 상징은 한 쌍의 저울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 태어나 평생 카톨릭으로 살았고 죽을 때에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자유주의 사상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1457∼1616, 돈키호테

 


 











이 책은 성경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연구되는 대여섯 권의 책들 중 하나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훌륭한 이유들이 있다.

그런 이유들 중 하나는 아주 간단한데 세르반테스 자신이 제시했다. 그는 제2부의 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여윈 말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 로시난테가 간다.'" 달리 말해서, 그의 책에는 즉각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타입들이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는 인간보다 타입에 강조점이 놓인다. 누군가를 가리켜 '돈키호테 같다'거나, '그것은 풍차에 돌진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한다. 이처럼 영원히 살아 있는 문학 속의 인물은 몇 안 된다. 햄릿[39]이 그 중 하나이고, 돈키호테 또한 그 중 하나이다.

두 번째 이유 또한 간단하다. 독자가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면, 그것이 『오디세이아』에 버금가는 모험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책은 젊은이들을 위한 고전이 되었다. 몇 년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이것이 마음의 모험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이유도 간단해 보이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돈키호테』는 아주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스페인의 펠리페 3세가 지방 순찰을 나갔다가 길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떤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말했다. "저 남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큰 소리로 웃고, 어떤 독자는 빙그레 웃고, 어떤 독자는 겉으로 웃고, 또 어떤 독자는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 상태로 읽는다.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정의하기가 어렵다.

(제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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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1부 (1∼21)


2. 호메로스, 기원전 800년경, 일리아스
















『일리아스』는 인간의 가장 우둔한 행위인 전쟁을 아주 장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서사시의 주인공은 아킬레스이다. 이야기의 주된 라인은 그의 분노, 그의 시무룩함, 그의 야만 행위를 추적하다가 마지막에 그의 고상한 성품을 확인한다. 그는 서구 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영웅이다.

지금껏 호메로스의 수준에 육박한 또 다른 서사시는 있어 본 적이 없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읽고 얻게 되는 또 다른 소득은 예술과 과학의 차이점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예술은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상상력을 밑천으로 삼는 예술가는, 만약 그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현대인처럼 보인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다.


3. 호메로스, 기원전 800년경, 오디세이아
















『일리아스』를 읽고 나서 『오디세이아』를 집어 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작품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도 다르게 들린다. 『일리아스』에서는 무기의 충돌로 시끄러운 쇳소리가 나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에서는 수많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바다의 속삭임 또는 노호努號가 들려온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차이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일리아스』는 비극적이다. 그것은 서구 문학에서 되풀이 되어 온 주제, 우리의 마음속에서 늘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일지라도, 불변의 운명이 지배하는 세상과 맞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는 주제이다. 하지만 『오디세이아
』는 비극적이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 주제는 죽음과 맞선 용기가 아니라, 고난에 맞서는 지성이다. 그것은 지성의 힘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천명하는데, 우리 현대인은 이 주제에 즉각 반응한다. 오디세우스는 용감하지만 그의 영웅적 행위는 지성에서 나온다.

5. 아이스킬로스, 기원전 525∼456/5, 오레스테이아

 

















호메로스를 총칭하는 한 단어가 고상함이라면, 아이스킬로스를 총칭하는 단어는 장대함이다. 그의 드라마는 현대극을 읽듯 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언어는 고상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언어는 죄책감과 죄의식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엄청난 몸부림이다. 죄책감과 죄의식의 주제는 오늘날의 유진 오닐[115]과 윌리엄 포크너[118]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학의 핵심 주제가 되어 왔다.

6. 소포클레스, 기원전 496-406, 오이디푸스 왕,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 독자는 다음의 두 가지 심오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은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인간을 사로잡아온 질문이다. 첫째,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매인 존재인가? 둘째, 지식(지능)이 비극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느 정도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인가?

오이디푸스 사이클에서 소포클레스는 위대함의 몰락을 다룬다. 하지만 그는 위대함뿐만 아니라 몰락으로부터도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 소포클레스 드라마의 감동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그의 슬픈 인식과, 인간의 경이로운 힘에 대한 그의 존경심, 이 둘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나온다.

7. 에우리피데스, 기원전 484∼406, 알케스디스, 메데이아, 히폴리투스, 트로이의 여인들, 엘렉트라, 바카이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쟁의 영광을 모두 제거해 버렸고, 『메데이아』는 페미니스트 논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며, 다른 드라마들은 신들을 사기꾼 혹은 믿지 못할 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여 파이드라와 메데이아의 초상화는 여성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는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의 관계보다는 인간의 열정과 약점의 관계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심리학자로서 또 아이디어의 전파자로서 에우리피데스는 입센[89]과 쇼[99]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8. 헤로도토스, 기원전 484년 경∼425년 경, 역사
















헤로도토스는 그의 목적을 이렇게 기술했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을 망각으로부터 구해내고, 그리스인과 야만인의 위대하고 놀라운 행동들이 영광을 잃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한다. 이 역사의 아버지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거대한 쟁투를 아주 충실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군사적 '행동'과 관련하여 우리는 마라톤, 테르모필라이, 살라미스 같은 영광스런 이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전투의 결과 덕분에 서양은 오늘날 아시아 문화권이 아니라 서구 문화권에 살고 있는 것이다.

9. 투키디데스, 기원전 470/460년경∼400년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헤로도토스가 수다스럽고 산만하다면, 투키디데스는 근엄하고 통합적이다. 그는 문화사가라기보다 정치와 군사의 역사가이다. 그는 의심이 많은 데다 매력적이지 못하며, 그래서 읽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그의 책은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하여 읽으면 진국이 나오는 작가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권력(힘의) 정치의 내면을 파악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홉스[43], 마키아벨리[34], 마르크스[82]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그의 자식들이다.

11. 아리스토파네스, 기원전 448년∼388년, 리시스트라테, 구름, 새들

 
















코미디는 우습지 않으면 실패작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연극에 대해서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듯이, 코미디는 아주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로이트[98]가 지적했듯이, 유머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우리를 크게 괴롭히는 금기 사항들을 대면하여 그것들을 우회하게 만든다. 코미디는 불유쾌한 현실을 대낮의 환한 빛 속에다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12. 플라톤, 기원전 428∼348, 변명,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국가

 
















플라톤은 한 명의 사상가라기보다 사상의 세계라고 해야 옳다. 그는 서양 문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대여섯 명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작품에 붙인 일련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거니와, 약간의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독자는 플라톤의 핵심 사상 세 가지를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첫째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데, "탐구하지 않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상이 플라톤의 모든 저작에서 핵심을 이룬다. 두 번째는 지식은 미덕이라는 것이다. 충분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충분히 선량한 사람이다. 세 번째는 관념론이라는 가장 소중한 지식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믿었는데 이것은 사물, 행동, 특질의 원형 혹은 원래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13.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 윤리학, 정치학,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려면 고통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의 스승 플라톤[12]과는 다르게, 그는 매력이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분석한 책, 『시학』은 후대의 문학 평론에 엄청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쳤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가 인생에 접근하는 태도는 플라톤에 비하여 현실적이었고 덜 유토피아적이었으며 보통사람들의 성품과 능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17. 실명씨, 기원전 200년경,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는 짧은 작품으로 한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뜻이 우러나온다. 머리카락을 오싹 솟게 하는 힘과 장엄함을 가진 작품이다. 많은 서양인들이 이런 평가에 동의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의 식민 통치를 점점 강화하던 시절에, 『바가바드 기타』는 처음으로 영역된 고대 인도 고전의 하나였다. 에머슨[69]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소로[80]는 월든 호수에 칩거할 때 이 책을 곁에 두고 자주 읽었다. 서양인이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일 것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핵무기 폭발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를 관찰하고서 크리슈나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이제 나는 세상의 파괴자인 죽음이 되었다."

18. 사마천, 기원전 145∼86, 사기
















그 엄청난 규모만으로도 『사기』는 놀라운 저서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이 작품을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사마천이 뛰어난 문장가였고(이 때문에 그를 번역하려는 사람은 문학적 소양이 깊어야 한다), 또 그의 역사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투키디데스[9]와 함께 과학적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20. 베르길리우스, 기원전 70년∼19년, 아이네이스


















영국 시인 테니슨은 베르길리우스를 가리켜 "인간의 입술에서 나온 것 중 가장 장엄한 가락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어들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미묘한 가락이 울려 퍼지게 하는 데 있다. 단어들을 기이하게 배치하고, 병치하고, 연결시키고, 억제하여 강력한 리듬의 효과를 낸다. 바로 이 때문에 베르길리우스는 모든 시인들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시인이 되었다.

2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21∼ 180, 명상록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무수한 선남선녀들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황금의 책'을 읽었다. 그들은 이 책을 고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위로와 영감의 원천으로 보았다. 이 책은 선남선녀들에게 더 좋은 삶을 지향하고, 인간의 위엄을 인내와 용기로 지켜내라고 가르친 몇 안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13]를 머리를 싸매가며 공부한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의 마음 속에 새긴다.

(제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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