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이룬 불후의 업적

우리는 인식이 원래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을 고려하는 것을, 오직 의지에 봉사하도록 정해진 것을, 따라서 완전히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방식으로, 실로 마치 자극 대신 동물성의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된 단순한 동기 작용의 조건으로서 단지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 때 나타나는, 공간과 시간 안에 있는 세계의 형상은 설계도일 뿐이다. 그 설계도에서 동기는 목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 형상은 직관된 객관 상호 간의 공간적·인과적 관계를 제약하지만, 그럼에도 동기와 의지작용 간의 매개일 뿐이다. 그러면 그런 방식에 의해 우연적으로 지성에서, 즉 동물적 존재의 뇌 기능에서 그 기능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동물에게 나타나고, 그렇게 해서 그처럼 덧없는 것들에게 그들 행성에서의 길을 밝혀줌으로써 발생하는 세계의 이 형상을, 말하자면 이 단순한 뇌 현상을 사물(사물 자체)의 참된 마지막 본질이라고, 그리고 그 부분들의 연결을 절대적 세계질서(사물 자체의 관계들)라고 간주하고 그 모든 것이 또한 뇌로부터 독립적으로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떤 비약일 것인가! 이 가정은 여기서 우리에게 극도로 경솔하고 주제넘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 가정을 근거이자 토대로 삼아 칸트 이전의 모든 독단주의 체계가 세워졌다. 그 가정은 그들의 모든 존재론, 우주론, 신학론의 암묵적 전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가정은, 이들이 증거로 끌어대는 모든 영원한 진리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비약은 언제나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비약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 것이 바로 칸트가 이룬 불후의 업적이다.(141쪽∼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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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中에서

 

 

 

데카르트 이래로 철학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핵심 물음이 해결될 것

이로써 쇼펜하우어는 데카르트 이래로 철학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핵심 물음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상의 본질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진 의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지가 있는 곳에 더 이상 인과성이 없고, 인과성이 있는 곳에 의지가 없다"라는 오류를 정정하여 쇼펜하우어는 "인과성이 있는 모든 곳에 의지가 있다. 그리고 어떤 의지도 인과성 없이 행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인과성은 세계의 한 측면인 표상의 본질이고, 의지는 세계의 다른 측면 즉 물자체라는 것이다. 인과성이 더 분명히 나타날수록 의지가 적게 표명되듯이 반대로 우리 자신에게서는 의지가 더 직접적으로 의식되고 인과성은 더 먼 것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인과성과 의지는 언제나 함께 성립한다는 말이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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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中 '옮긴이 해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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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위대한 칸트에게서 배운 것

우리가 위대한 '칸트'에게서 배운 것은 '시간과 공간과 인과성'이 그 모든 합법칙성이나 형식의 가능성으로 보아 객관 속에 나타나며,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객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과 인과성은 객관으로부터 출발하든 주관으로부터 출발하든 발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객관의 객관(칸트는 현상이라 함)', 즉 '표상'인 이들은 똑같은 이유로 주관의 직관 방법 또는 객관의 상태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 이 형식들은 객관과 주관 사이에 있는 불가분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 모든 객관은 이들 형식 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주관은 객관으로부터는 독립하여 이들 형식을 완전히 소유하고 개관한다. 만일 이들 형식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객관이 공허한 환영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들 객관은 객관이 아닌 그 무엇을 의미하며, 그 무엇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다시 이들 객관, 즉 표상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주관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본질적인 제약으로서 주관에 대립하는 것과 그 형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 즉 '표상이 아니라 물자체'가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게 된다. 이들 '표상'이나 '객관'은 주관의 표상이며, 주관의 객관이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그 무엇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의미의 것인가? 이들 객관이 갖고 있는 것으로 표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란 무엇인가? 물자체는 무엇인가? '의지'. (639쪽∼640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1고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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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혼동

데카르트는 《제일 철학에 관한 성찰》의 ' 두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 공리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에게조차 이 물음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이 존재하기 위해 어떤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본성인 무한성이 곧 원인 혹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기 위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무한성을 신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출하는 인식이유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섞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가 원인과 인식이유 사이에 놓여 있는 큰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이 둘을 혼동한 것은 원래 그 자신이 의도한 바이다. 말하자면 그는 인과법칙이 원인을 요구하는 여기서 원인 대신에 인식이유를 슬쩍 써넣는다. 왜냐하면 인식이유는 원인이 그렇듯이 또다시 계속 찾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바로 이 공리를 통해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길을 개척한다. (25쪽∼26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스피노자의 기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은 존재하는 사물의 고유한 본성과 정의 안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원인은 그 사물이 존재하려는 본질 자체에 속하므로) 사물의 외부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에티카》1부 정리8 주석2). 후자의 경우에서 스피노자는 다음에 밝혀지듯이 하나의 작용하는 원인을 의미한다. 반면 전자의 경우에서 그는 단지 하나의 인식이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동일시하고 이를 통해 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위한 사전작업을 한다. 하나의 주어진 개념의 내부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인식이유를 외부에서 작용하는 원인과 혼동하고 이 원인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스피노자의 기교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교를 데카르트에게서 배웠다. (29쪽∼30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오직 관념적으로, 오직 주관적으로, 즉 오직 우리를 위해, 오직 인식을 목적으로, 즉 신의 현존에 대한 증명을 목적으로 제시한 것을 스피노자는 실재적이고 객관적으로 신과 세계의 현실적인 관계로서 받아들였다. 데카르트에 있어서는 신의 개념 안에 존재가 놓여 있고, 따라서 이것이 신의 현실적인 현존을 위한 논증이 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신은 그 자체로 세계 안에 숨어 있다. 그에 따라 데카르트에 있어서 단순한 인식이유였던 것을 스피노자는 실재이유로 만든다. 데카르트는 존재론적 증명에서 신의 본질로부터 신의 존재가 도출된다고 가르쳤고, 스피노자는 그것으로부터 자기원인을 만들고 그와 함께 대담하게 자신의 윤리학을 시작한다. "'자기원인'으로서 나는 그것의 본질이 현존을 자신 안에 포함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는 "존재는 사물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소리쳐 경고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인식이유와 원인에 대한 가장 명백한 혼동을 본다. 그리고 신스피노자주의자들(셸링주의자, 헤겔주의자 등등)이 언어를 사유로 보는 것에 익숙하여 이 자기원인에 대한 경건한 경탄에 자주 몰입한다면, 나로서는 '자기원인'에서 단지 형용모순을, 이후의 것인 이전의 것을, 무한한 인과 고리를 절단하는 거만한 권력의 명령을 볼 뿐이다. 자기원인은 끈으로 고정시킨 자기 머리 위의 모자에 브로치를 달기에는 손이 충분히 높이 닿지 않아서 의자 위로 올라간 그 오스트리아인과 유사하다. 자기원인의 적절한 상징은 바로 뮌히하우젠이다. 그는 물에 가라앉는 자신의 말을 다리로 꼭 껴안고 머리 위에서 앞으로 향한 자신의 땋은 머리로 자신의 말과 함께 공중으로 끌어 당기면서 그 밑에 "자기원인 Causa sui"이라고 서명했다. (31쪽∼32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이미 홉스, 스피노자, 프리스틀리, 볼테르, 그리고 칸트도 같은 것을 가르쳤다.

의지의 자유는 (철학교수들의 쓸데없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특정의 사람에게,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두 가지 상이한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 완전히 불합리하다는 것은 분명하고 명백히 증명된 진리다. 이것은 마치 순수 수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진리가 불합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위에 언급된 진리는 노르웨이 왕립학술원으로부터 수상한, 의지의 자유에 관한 나의 수상논문에 가장 명백하고 체계적이며 근본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이 논문에서는 문외한들로 하여금 위에 언급된 불합리를 착각하여 받아들이게 하는 의식의 사실이 특별히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안점에 있어서는 이미 홉스, 스피노자,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ey, 볼테르 Voltaire, 그리고 칸트도 같은 것을 가르쳤다. (71쪽∼72쪽)



"사람들이 형이상학적인 목적 안에서 의지자유의 개념을 무엇으로 삼든지 간에 의지의 현상인 인간의 행위는 자연에서의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자연법칙에 따라 규정된다"(〈세계시민의 의도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첫 문장).

"현상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경험적 성격과 자연질서에 따라 공동작용하는 다른 원인들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인간의 자의에 의한 모든 현상을 그 근거에까지 탐구할 수 있다면, 우리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거나 그것의 선행조건에 의해 필연적인 것으로서 인식할 수 없는 행위는 전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험적 성격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가 없다. 우리가 단순히 관찰하려 한다면, 그리고 인간학에서 하듯이 인간의 행위들로부터 그 동인을 생리학적으로 탐구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경험적 성격에 따라 인간을 고찰할 수 있을 뿐이다"(《순수이성비판》, 1판, 548 / 5판, 577쪽).

"그러므로, 내적 외적 행위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이 행위를 일으키는 모든, 최소한의 동기 조차도, 그리고 동시에 이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외적 유인(誘因)들도 알아내는 깊은 통찰을 갖는 일이 우리에게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태도를 월식이나 일식처럼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실천이성비판》, 로젠크란츠판, 230쪽, 4판 177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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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르그송이 말했던 '어떤 과감한 소설가'는 결국 프루스트가 아니었을까?
    from Value Investing 2012-11-20 10:25 
    최근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된 문제 하나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정 한쪽 방향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은 마치 레코드판이 돌듯이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순환하기만 할 뿐이고 모든 '존재'들은 어쩌면 인식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계속 흐르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셀 수도 없을만큼 오래전부터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사유해 왔던 그 '시간'에 대해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머리를 싸매
 
 
겨울호랑이 2017-03-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덕분에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와 그의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의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3-27 18:35   좋아요 1 | URL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계승자이자, 니체의 (철학적) 스승이라는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여서, 서양 철학을 공부할수록 피해가기 힘든 사람이지요. 쇼펜하우어 철학이 너무 염세적이라는 일부의 비판도 있지만, 깊이 피고들수록 그의 천재성에 놀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언젠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었던 ‘보르헤스의 말‘은 제게도 정말 깊이 공감이 되는 말이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6545208

* * *

 ······ 나는 스위스에서 머물던 시절 쇼펜하우어를 읽기 시작했다. 만일 나에게 한 명의 철학자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그를 택할 것이다. 만일 우주의 수수께끼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언어가 그의 책 속에 쓰여져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의 책을 독일어로 읽었고 나중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것도 읽고 또 읽었다. ······
 
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332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이 그들의 과도함에 대한 대가로 치르게 되는 고통을 즐기는 것-또는 "파괴의 기쁨(schadenfreude)"-이다; 어느 정도 청교도적인 이 시각은 지옥의 불을 지나치게 탐욕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환영한다. 다른 요소는 패닉을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하는 폭풍우로 본다. "패닉은 상업과 금융세계의 독소들을 정화해 활력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무역과 건전한 진보, 영구적인 번영으로 이끈다."


오직 돈을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만이 문제 334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패닉이 대중을 장악했다: 모든 사람이 돈, 돈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타임스」가 전하는 상황에 따르면, '담보나 보증이 어떤 것이냐는 사람들의 안중에 아예 없었고, 오직 돈을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궁극적 대여자 339

만약 효과적인 학습 과정이 존재한다면-합리성 가정은 이것을 필요로 한다-지금까지의 경험에서 학습되었어야 할 교훈은 시장의 경쟁 작용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궁극적 대여자가 더 바람직하고 또 비용도 적게 든다는 사실이다.


경기가 수그러들 때 362

은행의 관리부실은 위기가 드러나기 전에는 감지하기 어렵다; 경기가 확장되는 동안 규제와 감독 과정에서 불어나는 엔트로피가 시스템의 곳곳에 발생시키는 위험구역들은 경기가 수그러들 때 갑자기 표면화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결국 문제는 청산, 시간 지연, 보증, 구제, 인수합병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혹은 그 밖의 궁극적 대여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카도 367

배젓은 1875년에 발권은행과 관련한 의회의 특별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궁극적 대여자 학설의 기원을 베어링이나 손톤이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에서 찾았다: "리카도가 수립한 정통 학설은 패닉 중에는 법정통화의 발행 제한이 철폐돼야 하는 국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칙과 전례 368

"원칙과 전례가 깨지면 안 되는 시기들이 있는 한편, 원칙과 전례를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때도 있다."


오늘이 내일에 우선한다는 것이 딜레마 369

이 같은 역설은 죄인의 딜레마와 똑같다. 중앙은행은 패닉을 중지시키기 위해 돈을 제한 없이 빌려줘야 하지만, 앞으로 패닉이 일어날 개연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을 시장 자체의 장치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있을지도 모르는 개연성을 눈앞의 현실이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오늘이 내일에 우선한다는 것이 딜레마다.


최적의 조건 380

책임이 오직 하나의 주체에게만 주어진다면, 행동을 요구하는 압력을 버텨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최적의 조건은 비슷한 지성을 보유한 소수의 행위자들이 서로 긴밀히 조율되는 과두체제식의 관계를 형성하고, 부정행위자들과 무임승차자들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결국에는 최종적인 책임을 떠맡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시점 선택의 문제 391

시점 선택은 특수한 문제를 제기한다. 경기 확장이 점점 더 세게 그 강도를 높여 가면, 패닉이 촉발되지 않도록 하면서 확장의 강도를 늦추어야 한다. 붕괴가 발생한 후에는, 채무지불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파산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채무지불 능력은 있지만 단지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에게까지 위기가 확산될 정도로 오래 기다리지-클랩햄의 표현을 따르면 "뛰어난 수영선수들마저 익사할 때까지 시간을 끌지"-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점 선택은 예술 392

시점 선택은 예술이다. 이 말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 존재하는 문제 393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는 일국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국가별 통화와 국가별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한, 환율의 변동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394

외환시장에서 어느 나라 통화의 가격이 장기균형 가치에 비해 상승함에 따라 해당국 통화가 '오버슈팅' 국면에 진입하면 이 나라의 대외무역 부문은 거의 예외없이 디플레이션 충격을 받았다. 반대로 어느 나라 통화의 가격이 장기균형 가치에 비해 하락함에 따라 통화가 '언더슈팅' 국면에 진입하면 물가상승률의 급등이 유발될 수 있다. 더욱이 실질 외환가치의 급격한 하락이 기업과 은행들의 광범위한 파산을 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나의 생각)
오버슈팅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일본, 언더슈팅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중국을 떠올리게 한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vs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394∼395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 책임은, 국내 유동성의 부족이 채무지불 능력의 문제로 확대됨으로써 투매와 경계 매도(precautionary selling)가 없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파산을 야기하게 될 개연성을 줄이는 일이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위태로운 투자와 부실한 사업 결정으로 인해 이미 파산 상태에 들어선 금융기관의 구제를 피하는 일, 그리고 이들보다 건실한 경쟁자들을 물가 수준의 하락과 디플레이션 충격이 유발하는 채무지불 능력의 상실 사태로부터 구제하는 일, 이 양자 사이에 걸린 팽팽한 밧줄 위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필요한 환율 변동의 범위를 개선하고 경제적 펀더멘털 측면에서 불필요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통화의 평가절하와 무역수지 적자 감소 396

한 나라 통화의 평가절하는 거의 예외없이 그 나라 제품의 국제경쟁력 향상과 무역수지 적자의 감소를 가져오게 돼있다. 이 개선 효과의 정도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해당국 기업들의 수출 역량과 수입대체품의 생산 능력이 커질수록 이 효과는 장기적으로 더 증대된다.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398

금융의 역사에서 추론해 본다면,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융위기에 뒤따르는 경기침체가 1873년, 1890년, 1930년대 초반의 경우처럼,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이라는 고통 398∼399

1930년대의 부채 디플레이션은 기업 파산, 은행 파산, 물가수준의 하락이 반복되는 되먹임 과정을 동반했다. 기업체들이 파산하면 그들의 재고가 매각됐고, 재고의 매각이 물가수준을 내리눌렀기 때문에, 같은 산업 내의 다른 업체들의 순자산도 줄어들었다, 기업 파산으로 인한 은행의 대출손실이 늘어남에 따라 은행의 여신 의욕이 줄어든다. 은행들은 차입자들이 미끄러운 비탈에 들어섰다고 믿고,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가운데 일부를 갱신해주지 않았다. 상품가격 수준이 하락한다는 것은 명목 금리가 낮더라도 실질 금리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투자지출이 억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본은 1990년대 말에 물가수준이 연 1%씩 하락하면서, 기업체 파산 빈도가 이례적으로 높아졌고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이라는 고통에 빠졌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중국으로의 주권 회귀 이후 5년 동안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에 빠져 있었다. 이 때 홍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 통화의 외환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홍콩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국제적 금융위기는 통화가치의 과대평가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나라들의 환율 변동과 함께 나타났다. 문제는 '펀더멘털의 불균형'-브레튼우즈 체제의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했을 때 IMF가 대중화한 용어다-으로 인해 자국 통화의 외환가치가 변경돼야만 하는 나라가 언제 외환가치 변경을 실행해야 하는지, 그 시점을 결정하는 일이다. 해당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 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이 불가피한 나라가 필요한 환율 변동을 국제적인 궁극적 대여자의 지원 자금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 또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이 불필요한 나라가 이 지원 자금의 혜택으로 무익한 환율 변동을 막을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생각)
2010년에 발생한 유럽의 위기(PIGS, 즉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보면 '위기발생' 이후 대처하기는 늘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 401

지난 35년 동안 발생한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은 엄청난 것이었다. 국제적 차원의 효과적인 궁극적 대여자가 있었다면, 금융시장의 혼란은 경감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이 책이 출판된 이후-그리고 곧이어 저자도 더 이상 이 세계를 관찰할 수 없게 된 이후-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은 더욱 더 거세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정부를 부동자세로 만든 은행가들 422

이어서 8월 24일 노동당 정부의 실각이 이어졌다. 나흘 후 다시 맥도널드 총리와 스나우던 재무부 장관이 이끄는 새로운 '거국 내각'이 수립되고 나서, 제이피 모건이 이끄는 뉴욕의 신디케이트에서 2억 달러를, 그리고 파리의 신디케이트에서 2억 달러를 차입했다. 한 차례의 전시성 발언을 하는 자리에서 이 은행가들은 영국 정부를 부동자세로 만들었다; 그들은 1920년대에 제이피 모건이 프랑스인들에게 안정화 차관을 제공할 때 언급한 말을 되뇌기라도 하듯, 자신들은 정치적인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예금자들의 돈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에 임하여 정당성이 갖추어져 있다고 그들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한계 426

1930년대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원 수단으로서 국제적 신용기관을 설립한다는 동기에도 불구하고, IMF는 그 자체의 통화가 없기 때문에 궁극적 대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구조였다. 대신 IMF는 회원국들이 미미한 한도 내의 경상수지 적자 대금을 조달하는 일을 돕기 위해 여신을 제공할 수 있었다.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의 평가 유지 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자본흐름을 제한하기 위해 외환통제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다. IMF로부터의 차관은 다시 갚아야 했다. 궁극적 대여자의 필요성에 대한 1931년의 교훈은 습득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에서는 다만 경상수지 적자를 소소한 한도 이내에서 융통해 주기 위해 IMF를 창설한 것이었다.


바젤 협정 429

1960년대에 있었던 국제금융의 대표적인 혁신 가운데 하나는 스왑 연계망을 만들어 낸 바젤 협정이었다. 미국이 스왑 연계망-각국의 중앙은행이 일정액의 외국 통화를 자산으로 기록하고 이에 대응하는 동등한 금액의 외환을 부채로 기록하는 두 개 중앙은행 쌍방간의 신용한도 설정의 연계망-을 넓혀 가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변동하는 다수의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431

환차손에 대한 공포가 자본흐름을 억제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임이 증명됐다; 다수의 은행들은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변동하는 다수의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익 창출을 위해 매매할 수 있는 새로운 자산군이 생긴 것으로 취급했다.


'대여의 조건' 434

IMF가 신흥시장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선택폭을 너무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것이 대중지향적인 시각이다. 국내의 대여자든 국제적인 대여자든, 대부분의 대여자들은 자금 대여의 조건을 약정한다. 프랑스가 1924년 안정화 차관을 지원받을 때, 몇몇 프랑스 분석가들은 제이피 모건이 내놓은 요구 조건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물론 대여자들의 표준적인 대응은 대여 자금이 반제될 수 있음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예금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1931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에게 프랑스가 대여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정치적이었다. 이보다 좀 늦은 그해 여름 미국과 프랑스가 영국에 제공한 차관의 경우는, 재정수지의 균형과 실업 보조금의 삭감을 주장한 영국 메이 위원회의 권고가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 대여자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노동당은 이 차관을 "은행가들의 사기"(bankers' ramp 미국식 영어로는 'racket')로 간주했다.


한도 돌파에 대한 기대 436

월터 배젓은 낮은 한도는 한도 돌파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기 때문에, 궁극적 대여자는 제한 없이 대여해야 한다는 처방을 천명했다. 잠재적 필요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규모의 신용을 공급하는 것은 제한 없이 대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양자가 만들어낸 합작품 436∼437

1997년 7월에 시작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풍요감에 젖어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변화에 매료돼 있던 선진국의 대여자들과,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며 투자와 성장률 증대를 추진하는 한편 서방의 금융시장 규제완화 압력에 놓여 있던 차입국들, 이 양자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이 밖의 다른 요인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정실 자본주의, 태국의 약체 정부, 한국의 거대 기업집단(재벌), 그리고 모든 나라에 만연했던 은행의 부실 대출이었다.


철칙 437

유럽의 은행들도 이 지역에서 거액의 대출 자금을 공급했다. 이 같은 자본유입에 따라 이들 나라의 통화 대부분이 과대평가됐는데, 경상수지 적자가 크고 통화가 과대평가된 나라들은 자본 유입의 감소를 유발하는 그 어떤 충격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이 철칙이다.


주권의 지표 438

세계의 중앙은행이 IMF보다 더욱 효율적인 궁극적 대여자일 것이지만, 이런 기관이 생길 개연성은 없다. 유럽통화동맹을 결성한 나라들 말고는, 규모가 큰 대다수 국가들은 통화의 발행과 통제 권한을 주권의 징표로 간주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통화 발행 및 통제 기능은 헌법에 명기돼 있는 사항이다.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439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커다란 충격 가운데 하나는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미국은 100년 넘게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해왔다. 1980년경에 시작된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는 국제금융에서 미국의 위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 국가였고, 부채를 제외한 미국의 순채권액이 나머지 순채권 국가들의 순채권액 합계보다 많았다. 2000년 시점에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 됐고, 그 순채무액이 나머지 순채무국의 순채무액 합계보다 컸다. 미국의 순채무액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의 생각)
미국이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대 440

미국은 1990년대에 낮은 물가상승률, 낮은 실업률, 흑자로 돌아서고 있는 재정수지, 기술진보와 함께 경기순환은 약화됐고 FRB의 신속한 문제 대처로 금융위기가 둔화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몇몇 경제분석가들이 제시한 바와 같이, 미국은 가장 성공적인 경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탄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번영은 미국 소비자의 지출 증가와 가계 저축률의 하락에 따른 것이었다. 신용카드 부채의 신고점 갱신이 이어졌고, 가계 파산도 마찬가지였다.


정상회담의 주된 메뉴 440∼441

몇몇 정치학자들은 그들이 '체제(regimes)'-즉, 리더십(leadership; '헤게모니(hegemony)'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발휘되는 기간 동안 구축된 습관적인 협력-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협력이 1980년대에는 괄목할 만하게 잘 기능했고,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와 1987년 1월의 루브르 합의를 이끌어낸 당시 미 재무부 장관 제임스 베이커가 주도할 때 특히 그랬다. 선진 7개국의 정상회담 시스템에 대해 큰 신뢰를 두는 관측가들은 별로 없다. 이 정상회담의 주된 메뉴는 예식에 수반되는 강한 음조와 자세잡기다.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될 경우 441∼442

IMF와 세계은행이 저하되는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레튼우즈에서 설립된 이 기관들이 작동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몇 주가 아니라 몇 시간 내의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는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장애 요소다. 게다가 재갈물린 야생마처럼 날뛰는 오늘날의 시장에 대처하기에 이 기관들의 자금은 여전히 너무 빈약한 것으로 확인될 공산이 크고, G7 중앙은행들의 자금 보총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는 만약 달러권보다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엔화, 리라화, 프랑화 등이 아니라, 바로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달러화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교환수단으로서의 사용 규모는 줄겠지만, 적합한 대체 통화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계산 단위로서의 기능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은 내부적으로 문제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로 인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독일은 아직 구동독과의 경제적 통합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일본과 독일은 미국의 선도에 잘 따라주는 나라들이었지만, 사실 미국의 선도에 대한 도전을 억제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드골 대통령하에서 큰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미국의 정책과 달러화의 지배에 대한 도전 태세를 멈추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크 시락 대통령하에서 국내외적인 난제들에 매달려 있다. 유럽 연합이 경제력과 금융력을 키워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세계가 미국의 지도력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정치 경제적 난제들에 여념이 없고, 국제적 공공재의 제공에 따르는 비용의 지불을 꺼리며 주춤거리는 중이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체제가 잘 작동하지만, 위기 때는 지휘력의 방식에 뭔가 더 결정적인 것이 요청된다. 앞으로 다가올 몇 년 동안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는 확률은 낮아 보인다.

(나의 생각)
2008년의 금융위기를 '훤히 내다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마침 2011년 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인 프랑스는 지금 현재도 '달러화의 지배'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국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통화위기의 연홰작용 444

1929년 4분기의 주가 붕괴는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를 촉발했고, 대다수 나라들이 수출 소득의 감소와 자국 통화에 대한 투기 압력으로 인해 통화의 금태환을 정지시켰다. 1930년대에 가장 특징적이었던 현상은 오스트리아 실링화를 시작으로 독일 마르크화, 영국 파운드화에 이어 미국 달러화로 퍼진 통화 위기의 연쇄 작용이었는데, 마침내는 투기 압력이 금블록 통화인 프랑스 프랑화, 스위스 프랑화, 네덜란드 길더화로 번져갔다. 1930년대 말 시점에는 각국 통화가치의 배열이 1920년대 말과 유사한 구조로 돌아갔고, 미 달러화나 다른 대다수 통화로 표시되는 금의 가격은 75%나 올랐다.


납세자들이 지불한 비용 446

1960년대 중반 이래 자산가격의 변화, 통화가치의 변화, 그리고 은행 위기의 빈도와 심각성이라는 측면에서 추론해 볼 때, 역사가 준 교훈들이 망각되고 무시되는 일들이 계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위기의 빈도 및 그 파장의 폭과 혹독함 면에서, 이 기간은 통화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와 동일한 기간을 두고 볼 때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국가 차원의 은행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레가 많았다; 일본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두 번 발행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은행의 대출 손실은 은행 자산의 20∼50%대에 달했다. 몇몇 나라들의 경우 암묵적 혹은 명시적인 예금 보장을 위해 납세자들이 지불한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5∼20%에 육박했다. 이들 나라 대부분이 겪은 대출손실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미국이 경험한 대출손실보다 훨씬 컸다.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 448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변동 가능한 평가에 따라 각국 통화를 준고정시키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일어난 외환위기는 이 시기와 물리적 시간이 맞먹는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 많았다. 1971년 8월 미국은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핵심인 금 1온스 당 35달러로 설정된 미 달러화의 평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통화간 교환비율을 정해놓는 각 통화의 상대가치 체계가 1972년 1월의 스미소니언 합의에서 새로 확립됐지만, 약 1년간 유지되다가 1973년 2월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 이어서 대부분의 선진국 통화들이 시장의 변동환율에 맡겨졌다.

1980년과 2000년 사이에는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자산가격 거품이 많이 발생했다. 1980년대 말 일본은 "모든 자산가격 거품의 어머니"격인 엄청난 거품을 경험했다. 부동산가격은 9배 상승했고 주가는 6배 상승해, 일본의 금융자산이 급증했다. 일본경제는 호황 가도를 달렸다.

(나의 생각)
오래된 역사책 속에서는 '금과 은의 가치는 14대 1이었다'는 대목도 참고할 만하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54쪽)



체계적 관련성 450

은행 파산과 장기균형 가치에서 이탈하는 환율의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은 체계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간 자금흐름의 규모와 방향에 큰 변화를 야기하는 다양한 충격의 결과로 나타났다. 은행 파산-주로 세 개의 파동을 거치며 일어났다-은 해당국 통화의 급격한 외환가치 하락으로 인해 발생하거나,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붕괴 국면에서 나타나는 부동산가격과 주가의 폭락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 같은 붕괴는 경제가 활발한 성과를 내고 있는 나라들로 유입되는 거액의 국가간 자금흐름을 초래하는 투기적 광기 현상에 뒤이어 나타났다; 거액의 자금유입으로 인해 이들 나라 통화의 외환가치가 상승했고, 부동산가격과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헀다.


예측 가능한 충격들 450

이런 충격 가운데 몇 가지는 정말로 뜻밖의 것들도 있었지만, "예측가능한" 충격들도 여럿 있었다. 정의상 충격이란 예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충격"은 모순 어법처럼 들린다. 1970년대와 1990년대 멕시코와 1990년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에서 진행된 경기 확장기의 광기 국면 동안 대외채무 잔고가 늘어났고, 그 이자의 지급을 신규 해외투자로 유입되는 현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누적 채무가 증가하는 차입자에게는 대여자가 제공하는 신용의 증가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은-비록 이 변화의 세부 징후와 시점의 예측은 불가능했어도-불가피한 일이었다.


지속 불가능한 자금흐름의 유형 451

한 나라로 유입되는 자금흐름의 증가는 외환시장에서 이 나라 통화의 가격 상승과 함께, 해당국 내의 투자 가능한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의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경기 확장의 광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자산가격의 상승은 장기균형 가치 이상으로 시장가격을 상승시켰다. 이런 충격들 가운데 어떤 충격은 차입자에게 주어지는 대여자의 자금이 무한정으로 이어져야 하는 지속 불가능한 자금흐름의 유형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금흐름의 감소는 거의 예외 없이 해당국 통화의 외환가치 하락을 초래했고, 어떤 경우에는 통화가치의 하락이 50∼60%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자산가격의 붕괴를 촉발했다.


뉴욕과 도쿄 455

금융 규제완화를 통해 도쿄와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은행들은 일본 내 부동산 대출을 늘릴 수 있었고, 해외의 자회사와 지점을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로 유입되는 일본 저축자금의 흐름이 급증했다; "일본이 미국 국채의 매수를 중단한다면 미 재무부는 재정적자 조달 자금을 어디에서 얻을까?"라는 것이 뉴욕과 도쿄, 양쪽의 이야기거리였다.

(나의 생각)
2010년 현재 뉴욕과 베이징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투자자들의 선호에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 459

통화와 주식의 가격 상승이 계속되는 한, 해당 유가증권과 통화의 소유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더욱 상승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경제적 장래에 대한 낙관론이 확대된다. 그리고 나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충격이 국가간 자금흐름의 역전을 촉발했고, 그 결과는 통화, 유가증권, 기타 자산의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금융위기였다.

이 같은 투기적 광기를 동반하는 충격들은 여러 가지 통화로 표시된 유가증권과 기타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에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데 기인한다. 1970년대에 미국의 물가상승률 증가를 우려하게된 투자자들은 독일 마르크화, 스위스 프랑화, 영국 파운드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의 매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 달러화 유가증권을 매도했다; 미 달러화의 외환가치는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미국의 물가상승률 격차에서 산출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462

투자자들이 특정 통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의 보유를 늘리거나 줄이고자 할 때마다, 이 통화의 외환가치에 오버슈팅이나 언더슈팅이 유발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시장 환율이 국가별 물가상승률 격차에 부합하는 환율로부터 큰 폭으로 빠르게 괴리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전의 속설-"악순환 및 선순환", 그리고 시장의 균형점 이탈을 유발하는 "교란적 투기"-은 국가간 자금흐름의 급격한 변화에 뒤따르는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기대 물가상승률의 변화-보다 정확히는 국가별 물가상승률 차이의 변화-는 현물 시장환율 기대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환가치에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초래한다.


저축률 감소는 적응과정의 필연적인 결과 463∼464

변동환율제하에서는 특정 통화의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수요 증가는 같은 크기로 발생할 경우, 해외에서 유입되는 저축액의 증가에 대응하는 규모로 이 나라의 무역수지를 변화시키는 적응 과정이 시작된다. 다른 나라에서 유입되는 저축액 증가가-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을 통해-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자본비용의 하락을 통해 국내 투자지출이 확대되고, 가계 부의 증가에 따라 가계의 소비지출이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국가에서 소비지출이 투자지출에 비해 3∼4배 더 크기 때문에, 총지출의 증가는 대부분 가계지출의 증대로 구성된다. 소비지출의 확대는 곧 가계 저축률의 하락을 의미한다.(반면, 고정환율제하에서 해외 저축의 유입 증대가 낳는 결과는 중앙은행의 대외준비자산 보유액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변동환율제의 경우에 필적할 만한 저축과 투자 관계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국가간 저축흐름의 유입이 늘어나는 나라에서 국내 투자에 비해 국내 저축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이 같은 적응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 464∼465

보이지 않는 손은 해외 저축의 유입이 증가하는 나라에서 GDP 성장률의 상승을 가져왔다. 이것은 그 나라의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가격이 상승함에 따른 가계 부의 증대가 소비지출을 확대시킨 결과였다.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일부 투자자들의 부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부에 대한 목표수준"이 달성됐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의 소득에서 저축하는 비중을 줄였다.

즉, GDP에서 무역수지가 차지하는 비율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것은, 일단 한 나라로 유입되는 해외 저축이 증가하면 그 나라에서 투자 가능한 유가증권과 기타 자산의 수익률을 상승시키는 적응 과정의 변화가 유발됐기 때문이다. 부의 증가는 경제 호황에 기여했다. 실제로 일반 해외 저축의 유입이 늘어나 수익률이 상승하게 되면, 다시 해외 자금의 추가적인 유입을 유발하는 되먹임 효과가 발생햇다. 경제 호황이 지속되고 확산됐다; 이 같은 국가간 현금흐름의 유형이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왜 대여자들이 결국에는 조정이 일어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요인 466

자료에 나타난 유형 가운데 하나는 한 나라로 해외 저축이 유입되면 경제 호황이 동반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1970년대 멕시코와 기타 개발도상국, 1990년대 전반기 중 멕시코, 태국 및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 나라들에서 발생한 통화의 외환가치 상승은 탄탄한 경제 확대에 더해 인플레이션 압력의 축소를 가져왔고, 수입 단가와 비교한 수출 단가의 상대적인 상승은 경제섲앙률의 상승도 가져왔다. 또한 해당국 내 일정 수의 차입자들이 이자를 갚기 위한 현금을 다시 채권자들로부터 차입하는 현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해외 자금의 유입은 지속 불가능한 현금흐름의 유형과 결부됐다. 경제 호황의 지속은 왜 대여자들-적어도 이들 중 다수-이 결국에는 조정이 일어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 466∼467

일국 차원에서 본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차원의 역할이 존재한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경우에 따라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 혹은 다른 시장에서 비이성적 과열의 출현을 지적해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가지는 역할은 하나 또는 여러 나라에서 지속 불가능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대외채무의 누적을 지적해야 하고,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조정에 뒤따를 큰 비용과 함께 불가피하게 혼란스러울 후속 파장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
2011년 1둴 '한국의 사례'가 떠오른다.(그런 비이성적 과열의 출현을 지적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궁극적 대여자의 존재 의의 467

국제적 차원에서 이런 목적에 대응하는 궁극적 대여자의 존재 의의는, 임의로 국가로 유입되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거대한 자금흐름을 유발하는 투기적 광기 국면이 끝날 때, 해당국 통화의 급격한 외환가치 하락을 완화하는 것이다. 광기 국면이 진행중일 때는 자금 유입의 증가에 대응해 해당국 통화의 외환가치가 상승하게 되지만, 자본 유입이 감소하는 시점이 되면 통화의 외환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업자들이 통화가치의 하락에 따른 상대가격의 변화와 국제경쟁 조건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의 하락이 증폭되는 해당국 통화의 언더슈팅 현상은 불가피하다; 즉, 수출업자들이 수출할 수 있는 상품의 생산을 늘리고 해외 고객을 발굴해 거래 체결을 진행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1994년 말 멕시코 경제위기의 사례 468

미 재무부는 멕시코가 1994년 말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궁극적 대여자로 행동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멕시코에 제공된 신용에는 IMF의 자금과 함께 미국 정부의 자금도 포함됐다. 이 같은 자금 조성 계획이 발표되자 페소화의 추가적인 외환가치 하락이 억제됐다. 이런 대응이 한 주 혹은 몇 주만 일찍 취해졌다면, 페소화의 언더슈팅 폭은 더 작아졌을 것이고, 페소화의 외환가치 하락이 멕시코 경제에 끼친 악영향도 덜 심각했을 것이다.

(나의 생각)
2008년 원화가치 폭락때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파산지경까지 몰아갔던 '키코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IMF의 한계 468∼469

IMF는 1945년에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로 행동하기 위해 설립됐다. IMF의 설립 동기는 국제적인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했을 경우 1920년대, 그리고 특히 1930년대에 겪었던 금융 불안정에서 큰 부분을 막아냈거나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IMF 인력은 매년 두 차례 각 회원국을 방문해 해당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IMF가 어느 회원국의 국제적 차입이 지속 불가능한-경상수지 적자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수준으로 지나치게 확대되는-양상에 접어들었으며, 경상수지 적자가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경제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연착률'보다는 '경착률'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경고를 울린 적은 거의 없다. 더욱이 붕괴가 발생한 시점에서 해당국 통화가치의 폭락과 그 폐해를 위해 신용을 공급할 능력도 없었다.

(나의 생각)
IMF는 최근의 남유럽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그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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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축축한 숲속 270

부패 발생 건수는 신용 공급과 아주 유사하게 경기순환의 파동이 올라가면 함께 증가한다. 경기가 후퇴하면 대여자들은 개별 차입자들이 채무 상태와 자신들의 신용 노출에 대해 보다 신중해지므로, 곧이어 기업의 성장에 연료를 부어 주던 대출이 감소한다.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 오른다.



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 272

아더 앤더슨 같은 회계법인들은 기업체들이 보고할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수치의 계산 착오로부터 투자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그들이 제시하는 재무제표의 아주 작은 수치까지 검증하는 일을 맡았다. 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은 그들이 회계감사를 맡은 기업체들-회계법인에게 수임료를 지불하는 회사들-에게 장악 당했고, 투자자들을 속이는 일을 함께 공모했다. 엔론과 MCI월드컴에 법률 자문을 제공한 법무법인들은 과연 투자자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삶의 일부 272

사기, 부정행위, 자금 유용, 정교한 사취 수법은 시장경제에서 삶의 일부이고, 어떤 나라들은 다른 다라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국가들의 부패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핀란드가 청렴도에서 굳건히 1위를 지키고 있고, 아이슬랜드가 근소한 차이로 다음 순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방글라데시, 콩고, 나이지리아가 부패 공급의 선두 그룹 위치를 굳혀 왔다. 미국은 비록 1990년대 주가 거품 기간 동안 주식회사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광범한 부정과 사기로 인해 순위가 서너 단계 밀리기는 했지만, 순위표에서 바닥보다는 정상에 훨씬 가까운 위치에 있다.

(나의 생각)
MB의 경우도 떠오른다. 2008년 대선 직전 당내 경쟁자이게 끝까지 시달렸던 문제 가운데 하나가 BBK 문제였다.



재고의 과대포장 272

사기의 전통적인 형태로는 재고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 가치의 과대포장을 꼽을 수 있다. 1930년대 말 맥케슨 로빈스 스캔들에서는 위조한 창고보관증이 대출 담보로 사용됐다. 1960년대 텍사스의 무모한 투기꾼 빌리 솔 에스테스는 그가 리스로 쓰고 있던 비료탱크의 숫자를 조작해 가공으로 부풀린 재고자산을 토대로 자금을 차입했다. 1960년대 '샐러드 오일' 탱크를 대출 담보로 사용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게 피해를 입힌 티노 데 안젤리스는 물보다 기름의 비중이 낮다는 점을 이용, 20피트 높이로 채운 물 위에 6인치 두께의 샐러드 오일을 얹는 속임수를 썼다.

(나의 생각)
한국의 경우 한 때 의류업체들이 재고자산 분식회계가 특히 심했다. 없는 CD를 대규모로 허위계상해 왔던 터보테크, 매출과 수익을 엄청나게 부풀렸다가 퇴출당한 네오세미테크 등의 사례도 떠오른다.



투자보고서 271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사기에는 기업이익의 증가나 개별 기업 주식의 목표가격에 대한 투자보고서 등이 이용될 수 있다. 투자보고서의 전형적인 내용은 "아마존 주식의 가격이 7월 4일까지 주당 400달러로 오를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 표현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목표주가는 주당 400달러다." 또 다른 투자보고서는 "기업이익은 향후 5년 동안 연15%의 성장률로 증가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금융시장에 등장하는 사기에는 이런 투자보고서를 내는 사람들조차 실현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업이익과 미래 주가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을 동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생각)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증권업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졌던 D증권의 전기전자업종을 담당했던 정** 애널리스트가 작전세력에게 매수되어 돈을 받고 기업분석보고서를 우호적으로 작성한 사실이 발각되어 구속된 사례가 떠오른다.



바람잡이들 273

월 스트리트는 주식을 판매해 많은 돈을 벌고, 개별 기업 주가의 상승 효과를 발휘하는 투자보고서 발표를 그 주된 임무로 하는 일군의 고액 연봉 소득자들과 함께 번영을 누리는 곳이다. 이들은 축제가 열리면 관람객들이 표를 사서 칼을 삼키는 묘기를 구경하도록 만드는 바람잡이들과 비슷하다.


시장전략가 274

주가는 보통 통계적으로 한 번 떨어지면 두 번 오르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더라도 '시장전략가들'은 틀릴 확률보다 맞을 확률이 더 높다. 시장전략가들은 주가지수가 하락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를 꺼려하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고, 개별 종목에 대해서도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일은 매우 드물다.(왜냐하면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분개해 시장전략가가 속해있는 투자은행에 증권발행 인수 업무를 맡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쓸 만큼 쓴 소모품일 뿐 274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강력한 매수 권고가 막 나갔는데 주가가 떨어져 이 호객꾼들이 고용주에게 골칫거리가 되면,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그들에게 돈도 많이 준 데다 그들은 쓸 만큼 쓴 소모품일 뿐이다: "이보게, 이건 비즈니스라 어쩔 수 없네. 그동안 수고 많았네." 교체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의 생각)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집스럽게 약세 마인드를 굽히지 않았던 국내의 대표적인 증권사였던 S증권의 호객꾼이 생각난다. 그는 결국 짤렸다.



훨씬 더 빨리 275

부패 행위는 거의 모든 경제에서 그 일부 요소다. 도덕적인 규범과 법률적 규범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거래 건수는 1990년대처럼 풍요로운 호황기에 증가한다. 역설적이지만 주가와 부동산가격, 상품가격이 서너 해 동안 연 30∼40%씩 상승하면서 개인적인 부가 증가할 때, 훨씬 더 빨리 부를 늘리고자 하는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부정행위의 증가가 유발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자신도 존스 집안처럼 풍족하게 누리고 싶어지고, 그래서 그를 위해 진실을 가리고 원칙을 벗어난 지름길을 만들어내는 일이 일어난다.


붙잡히더라도 275

일부 기업가와 관리자들은 보상 대 위험 비율이 현격하게 커 보이기 때문에 부정행위의 경계선 끝에 바짝 붙어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 원칙을 벗어난 지름길을 건너고, 규칙을 어기고 대중을 속임으로써 늘릴 수 있는 재산이 체포, 벌금, 탄로의 위험에 비해 극히 커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규정 위반이 발각되지만 않으면 큰 부를 챙길 수 있다고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붙잡히더라도 그 절반은 챙길 가능성도 있다. 감옥에 갈 확률은 낮으며, 화이트컬러 범죄자가 갇히는 감옥은 우중충한 복장으로 지내는 조악한 컨트리클럽과 비슷하다.


재주껏 도망쳐야 한다 275

패닉과 붕괴로 인해 "재주껏 도망쳐야 한다(sauve qui peut)"는 좌우명에 짓눌릴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산이나 재정파탄을 피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오늘의 조그만 부정으로 내일의 파국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황이 끝나고 손실이 명백해질 때, 거꾸로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더 큰 도박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긴다.


'닉 리슨'의 경우 275

런던의 유서 깊은 상업은행인 베어링 브라더스의 싱가포르 지점 소속 5∼6명의 직원 가운데 닉 리슨은 평범한 트레이더였다. ······ 리슨이 속한 부서의 어느 담당자가 명백한 거래상의 오류를 저질러 리슨의 거래계정에 큰 손실이 발생했다. 리슨은 런던의 베어링 본사에 이 같은 오류를 보고하지 않았고, 닛케이 주가 풋옵션을 추가로 매도했다; 그의 계산은 풋옵션의 추가 매도로 버는 프리미엄 수입으로 거래 오류로 인한 손실을 메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베 지진이 발행하면서 도쿄 주가가 폭락하자 그의 풋옵션 매도는 프리미엄 수입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야기했고, 거래계정의 손실은 더욱 불어났다. 이 때 그는 거래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두 번째 내기도 실패했다. 그의 신규 포지션이 손실을 보탤 때마다 이번에는 그가 성공할 차례라는 희망으로 매번 판돈을 두 배로 늘리는 "두 배 걸기:를 했다. 이런 사태가 이어져 마침내 리슨의 거래계정에 누적된 손실은 베어링의 자본금 총액에 맞먹을 정도로 불어났다.


샤브샤브 레스토랑 280

오사카의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여성은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온 스미토모 은행 지점에서 빌렸다. 은행의 부동산 가치 감정인들 중에는, 별 위험 없이 은행을 터는 방법이 담보로 설정할 부동산의 평가가치를 부풀려서 대출을 받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야쿠자들에게 뇌물-혹은 협박-을 받았던 이들도 있었다. 서너 개 대형 지방은행의 고위급 임원들은 은행 경영진이 소유한 토지를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매수하도록 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주었다. 젊잖은 재무부의 고위공직자 서너 명은 바닥에 거울이 설치된 "속옷까지 벗은 샤브샤브 레스토랑"에서 향응을 즐겼다.(해당 공직자들이 향응 제공자들에게 임박한 금융규제 변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흘려주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나의 생각)
최근에 상영되었던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돈 만드는 기계 284

밀켄은 돈 만드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드렉셀은 고객 기업이 신규 정크본드를 발행할 때 받는 인수수수료, 이 채권을 뮤추얼펀드에 매도할 때 받는 거래수수료, 뮤추얼펀드의 지분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때 받는 판매수수료, 그리고 뮤추얼펀드 운용으로 받는 운용수수료를 벌었다.

메릴린치-소위 "천지 사방에 손길이 뻗어있는 메릴"-가 저축기관들에게 예금계좌를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사우스웨스트의 저축기관들이 아주 높은 금리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메릴의 중개인 부대가 미국 전역의 자금을 밀켄의 친구들이 통제하는 이 저축기관들로 이동시켰다. 이 저축기관들이 판매하는 예금계좌는 미 재무부가 보장하는 것이었고, 이 점이 이들 계좌를 매수하는 예금자들이 확인하고자 하는 전부였다.

(나의 생각)
2007년의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인사이트 펀드 판매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샘 아저씨'의 돈 285

밀켄이 자금을 조달해 준 기업사냥꾼 가운데 실제 현업 경험이 많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샘 아저씨'의 돈-미국 정부가 보장하는 예금계좌의 판매로 확보한 자금-을 5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들은 이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종종 "비싼 가격"을 지불했지만, 그 때 그들이 지불한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 샘 아저씨의 돈이었다.

엔론의 두 날개가 급속히 확장하는 데는 시설과 장비, 유통 거점,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막대한 금액의 투자가 필요했다. 엔론은 거액의 채권을 판매해 투자은행들인 메릴린치와 살로몬 스미스 바니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 주었다. 그 절정기에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과 채권의 시가총액은 2500억 달러에 달했다; 엔론 주가가 사상 최고치인 주당 100달러를 기록했을 때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가 넘었으며, 일반투자자들이 보유한 채권의 시장가치는 400억 달러 규모였다. 제네럴 일렉트릭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나의 생각)
2011년 1월 현재 애플의 시총은 3000억불, 엑손모빌이 약 3500억불로 뉴욕증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엔론의 위상이 짐작이 간다.


'갈 데까지 가는' 전략 290

엔론은 SFV의 차입으로 확보한 현금을 자사 주식의 주가를 떠받치는 데 사용했다. 이것은 닉 리슨이 썼던 "갈 데까지 가는" 전략의 일종이다; 만약 엔론의 주가가 하락한다면, 이 합자회사의 가치도 하락할 것이고, 그들은 "물에 잠기게" 된다.


아더 앤더슨의 종말 290

엔론의 붕괴는 과거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곳이었던-지난 수 년간 아리조나 침례병원과 웨이스트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아더 앤더슨의 회계감사 고객업체들 중 결딴난 회사의 채권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시달리기는 했지만-아더 앤더슨의 종말을 가져왔다. 엔론의 자금조달 과정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가 시작된 뒤 앤더슨은 서류 폐기 혐의로 피소됐다.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형국 292

에버스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월드컴의 주가를 높게 유지하려면 주가가 낮은 다른 회사들을 계속 인수해야 했다. 여러 차레에 걸친 인수의 결과로 월드컴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순이익이 증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갈수록 더 규모가 큰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기업인수를 통해 주당 순이익을 증가시키는 회사들의 공통된 문제-는 월드컴의 덩치가 커져 가면서, 매력적인 인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통신업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295

2000억 달러 규모의 기업집단인 타이코의 대표 데니스 코즐로프스키와 재무담당 최고 임원 마크 슈와츠는 연방 정부에 의해 수억 달러의 회사 자금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사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취 방식의 하나는 타이코 이사회의 승인 없이 타이코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자신들에게 부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비를 쓰기 위해 타이코의 공금을 유용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에서 코즐로프스키의 두 번째 부인을 위한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과 200만 달러어치의 생일잔치를 벌이는 일까지 저질렀다. 타이코가 이 잔치 비용의 50%를 부담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파티에서 연출된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조각상의 중요한 신체 부위로부터 보드카를 받아 마실 수 있도록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얼음조각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나의 생각)
최근 검찰에 의해서 기소당한 후 결국 유죄판결을 받은 태광그룹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뮤추얼펀드 스캔들 298

2003년에 대형 뮤추얼펀드 집단의 다수-아마도 20대 뮤추얼펀드 운용사 중 절반 정도-가 몇몇 헤지펀드에게 이례적인 거래 특혜를 제공해 뮤추얼펀드 지분 소유자(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해당 헤지펀드가 거액의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헤지펀드와의 거래 가운데 일부는 합법적이었으나 대부분은 불법이었다; 또 뮤추얼펀드 지분 소유자 모두를 동등하게 처우한다는 뮤추얼펀드와 그 주주 간의 암묵적 계약은 헤지펀드와의 모든 거래에서 무시됐다. 미국의 모든 뮤추얼펀드는 자신의 거래 규칙을 명시한 계약서-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기술한 문서-를 SEC에 제출해야 한다. ······ 펀드 판매계약서의 또 다른 표준적인 문구는 뮤추얼펀드가 어느 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경우, 펀드 운용사의 임원들은 해당 주식을 매수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펀드 임원들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경우에도 임원들은 '선취매(front-run)'-뮤추얼펀드가 동일한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기 이전에 임원들이 그들의 사적인 이해를 위해 그 기업의 주식을 미리 매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펀드들의 공통적인 관행은 각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유가증권에 대한 정보를 매 분기 말에만 공개하며, 분기 도중에는 개개 유가증권의 매매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CD 사기 301

이탈리아의 파르마에 본사를 둔 유제품 및 식품 제조업체인 파르말랏(Parmlat)-파르마(Parma) 시와 우유란 뜻의 라떼(latte)의 합성어-은 자신의 자산을 40억 달러 규모로 과대 포장하기 위해 위조된 예금증서(CD)를 이용했다; 위조된 CD는 복사기를 사용해 한 문서가 다른 문서에 겹쳐지도록 하는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기-일반투자자와 투자은행에 대한 속임수-는 10년이 넘도록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각)
CD 사기는 우리나라에서도 '터보테크'라는 회사가 저지른 수법이었다. 허위계상을 지속했던 기간이 꽤나 이어졌고 회계학을 전공한 내 친구도 이 회사에 투자한 이후 분식회계가 드러나는 바람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의 오너였던 장흥순 회장은 벤쳐기업협회의 회장을 지낸 인물로도 유명하였다.


깔끔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식 301

보일러샵(boiler shop)은 사기 형태의 하나다. 퍼스트 저지 시큐리티즈의 로버트 브레넌은 고단수의 보일러샵 운영자였다. 보일러샵의 중개인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에게 난데없이 어떤 주식-이를테면 샤잠 로켓트 주식이 있다고 하자-에 관한 혹하는 얘기를 꺼내는 전문가들이다. 샤잠 주식은 보통 주당 2∼5달러에 거래되는 저가 주식이고, 애당초 이 주식 물량의 다수는 보일러샵을 소유한 내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내부자는 자기들끼리 주식을 사고 팔아서, 예컨대 주가를 2달러에서 3달러로 올리며 주가 상승을 관리한다. 주가를 올려 놓고 나서 안면부지의 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6주 동안 샤잠 주식의 50%에 달하는 주가 상승에 대해 얘기한다; 이들은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급등 주식을 매수하려는 욕구가 훨씬 크다는 것을 배웠고, 또한 깔끔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저가 주식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생각)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방송과 증권 카페 등에서 너무나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감독당국의 보다 엄격하고 철저한 감시와 감독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노상강도보다 1만 배 더 나쁜 죄 301

사기는 신뢰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절도와 다르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는 주식사기꾼은 아는 사람들-종종 그 친구나 친척-을 등치면서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식매매 사기를 노상강도보다 1만 배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사기는 정부 공직자의 뇌물수수나 한 업체 직원이 다른 업체 직원에게서 받는 뇌물수수와 구분돼야 한다. 이들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거래는 특정 집단간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신뢰를 악용하고, 또 침해하는 것이다.


후진성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 303

도덕적인 행동과 비도덕적인 행동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옛날보다 지금이 덜 희미하다. 현대성이 후진성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은 도덕성이다. 사회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규율이 가문 안에서만 존중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이런 여건하에서 이방인이라는 존재는 절도면허증을 가진 사람과 진배 없기 때문에 제 식구를 감싸는 인사가 효율적이었다.

(나의 생각)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라는 책에서도 '신뢰의 가치'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 30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나의 생각)
통렬한 풍자이다.




사기가 호황기에 증가하는 이유 306

사기가 호황기에 증가하는 것은 마치 부의 증가가 탐욕의 증가를 촉발하는 것인 양, 탐욕이 부보다 더 급속히 커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코즐로프스키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과 그의 아파트에 비치한 여러 장식물들의 매입 자금을 그의 회사 타이코에서-회사 임원진이 모르는 사이에-빼냈다. 사기는 자산가격의 하락을 유발하는 신용 시스템의 긴장으로 인한 금융 불안 국면에서도 증가한다; 이 단게에서는 재정 파탄을 피하기 위해 부정행위가 감행된다.


폰지의 사기수법 309

폰지는 예금이자로 45일 동안 40%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할인된 시장가치로 매수한 해외 통화로 국제우편연합의 쿠폰을 사고 공식환율로 이 쿠폰을 미국 우표로 교환한 다음, 이 우표를 액면가치로 다시 파는 방법으로 파격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폰지가 이런 유형의 차익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장식용에 불과했다; 1922년 8월 체포됐을 때 그는 이미 790만 달러를 챙긴 상태였는데, 그의 사무실 안에 우표와 우편쿠폰은 61달러어치밖에 없었다.


부도덕의 극치 312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돈 맛에 물든 언론 314

투기에는 일반적으로 언론도 일조한다. 언론계 구성원 가운데 일부는 장사치고, 일부는 비판적이며, 일부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다니엘 디포는 남해회사 주식이 120파운드에 거래되던 1719년 11월에는 주식중개인들을 통렬히 비난했는데, 1720년 8월 주가가 1000파운드를 기록하며 정점에 도달했을 때는 입장을 바꿔 그들을 두둔했다.


투자자 칼럼 316

투자자 칼럼을 통해 주가를 띄우기 전에, 친구에게 귀띔해 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진 수법이지만, 오늘날에는 내부자 정보에 기초한 주식매매를 포함해 이런 불법적인 행위는 보다 쉽게 발각된다. 어떤 종목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가 나오기 전에 행해진 해당 주식과 그 주식의 콜옵션과 풋옵션에 대한 수상한 거래들은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된다. 이 기법 덕분에 친구에게 사전 정보를 제공한 『월스트리트저널』의 투자평론가 포스터 위넌스와 자신이 이사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게 닥칠 일을 친구에게 일러준 전직 국방부 차관보 테이어(ThYER)가 체포됐다.(테이어의 친구는 이 정보에 따라 주식에 투기했고, 위넌스는 1986년 세인트마틴 출판사가 발간한 『거래의 비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의 유혹과 스캔들』을 써서 자신의 경험을 또 다른 기회로 활용했다.)


17세 소년 317

아주 최근에는 인터넷이 주가 조작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됐다. 17세 소년 조나단 레벡은 자신이 보유한 거래량이 극히 적은 종목들에 대한 '뉴스'를 인터넷 대화방에 올렸다. 해당종목의 주가는 상승했고 조나단은 자신의 보유 물량을 매도했다. sec는 조나단에게 벌금 50만 달러를 부과했다.

MSNBC는 비즈니스 뉴스 전문 TV 방송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다수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추천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성적표를 보자. 1980년대에 이 회사는 엉터리 저축기관들에게 예금을 알선해 주는 일에 깊숙이 관여했다. 헨리 블로짓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는 정보를 오히려 부추겼고, 메릴린치는 엔론의 나이지리아 소재 발전 선박에 시장가격 이상을 지불해 엔론의 재무제표 조작을 도왔다.

(나의 생각)
메릴린치는 결국 2009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수많은 전조들이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밀켄의 경우 327

마이클 밀켄이 석방됐을 때 밀켄의 가족은 은행에 20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얼마의 재산이 밀켄의 금융혁신을 통해 합법적으로 번 것이며, 또 얼마가 불법적인 행위로 번 것인지 계산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 재산의 절반이 불법적 거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밀켄은 이런 지적에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1000일 동안 교도소에 있었고 10억 달러를 챙겨서 교도소를 나왔다. 따라서 당신은 교도소에 있으면서 매일 100만 달러를 지급받은 셈이다."

(나의 생각)
최근에 개봉된『월스트리트2-Money never sleeps』라는 영화에서 주가조작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마이클 더글러스가 출옥후 결국 '숨겨둔 거액의 재산'을 바탕으로 보란듯이 재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존속살해급의 유죄 328

경제학자들은 화이트칼라의 금융사기 범죄에 대해 처벌의 적정성 여부를 논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다. 남해회사 거품 때 하원의원이었던 모울스워스(Molesworth)는 의회가 남해회사의 경영진을 존속살해급의 유죄로 선언해야 하며, 이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고대 로마에서 집행했던 가혹한 처형방식-이들 각각을 원숭이와 뱀 한 마리씩을 집어넣은 마대 주머니에 함께 넣어 물에 던져버리는-에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드라이저의 소설 『거인The Titan』에 반향을 남겼다: "이제 먼저 교살한 뒤 동반자 없이 자루에 넣고 꿰맨 다음 보스포러스 해협에 던지는, 여자친구를 기만한 자들에 대한 처형을 집행한다." 25년 후에 쓰여진 『모든 나라의 상회』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이슬람의 술탄이 부도덕한 부인에 대한 처벌로 그녀를 묶어 살쾡이 두 마리와 함께 자루에 처넣고 보스포러스 해협에 빠뜨렸던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처형방식은 지나칠 정도로 무자비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가뿐하게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 대부분은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의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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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과도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용어들 164


풍요감에 들뜬 시기가 끝나고, 고전파 저술가들이 급반전과 신용경색(즉, 붕괴와 패닉)이라고 불렀던 사태가 시작되기까지의 과도 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다른 용어들은 불안, 걱정, 긴장, 절박, 압박, 불확실, 불길한 상황, 취약성이다. 보다 다채로운 표현으로는 "끔찍한 시장의 추락" 같은 것도 있고, "천둥이 칠 듯한 날씨" "폭풍 전야의 숨막힐 듯한 답답함이 다시 느껴진다"는 표현 같이 날씨에 비유한 것들도 자주 사용됐다.


부러지려는 활과 같은 형상 164


미셸 슈발리에는 제2차 합중국은행을 겨냥한 잭슨 대통령의 전쟁 선언에 대한 미국발 서신에서 "신용이 총체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은 아무리 그 기간이 짧아도 가장 끔찍한 지진보다 더 무섭다"고 썼다. 또 다른 프랑스인 저술가는 "재앙의 예감"이라고 적었고, 독일의 어느 비유에서는 "1782년 가을은 너무 휘어져 이제 막 부러지려는 활과 같은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GDP 대비 대외채무비율 165


어느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의 경우, 60%라는 경계선을 불길한 지표로 간주하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 비율이 60%를 훨씬 초과할 경우 그 나라는 살얼음판이 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GDP 대비 정부채무의 비율이 60%를 크게 초과하면 과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국면 전환의 신호 166


불안의 원인이자 또 그 증상으로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동시에 발생한다: 자본시장의 일부 또는 모든 영역에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우량 등급의 차입자가 지불하는 금리에 비해 우량 등급 이하 차입자가 지불하는 차등금리가 상승한다;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가 급락한다; 파산 건수가 증가한다; 상품과 부동산,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이 멈춘다. 이런 상황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전개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여자들의 여신이 이미 과도하게 확장된 상태여서, 대여자들이 위험의 노출, 특히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나의 생각)
여러차례 위기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맞게 주식 포지션을 과감하게 줄이지 못했던 것이 나의 과거 경험의 '늘상 반복되는 실수'였다. 2011년이나 2012년중 이번 상승랠리의 끝이 도래하고, '국면전환' 포인트가 다가올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새삼 다짐해본다.



패닉이 아니라 조정 170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의 주가 폭락은 패닉이 아니라 조정이어던 것으로 판명났다; 다른 대다수 국가들(당시 일본은 예외였다)의 주식시장에서도 거의 동시에 주가 폭락이 있기는 했지만, 미국의 다른 시장으로는 폭락이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가 폭락이 다른 자산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인지 여부에 대해 투자자들이 관망하는 동안 불안 국면이 몇 주간 지속되었다.


LTCM 파산 171


1998년 여름의 LTCM 대란은 러시아 금융시장의 붕괴와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임박한 러시아의 재앙이 유발한 금리와 수익률 관계의 변동이 사실 LTCM을 붕괴시킨 결정타로 작용했다. LTCM은 헤지펀드로 여겨졌지만, 사실상 규제를 벗어난 은행이나 마찬가지였다. LTCM은 최고 경영진 가운데 두 명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다는 점에서 "매우 똑똑한" 금융기관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본금은 50억 달러였고 부채는 1250억 달러에 달해, LTCM은 일반 은행이나 대부분의 헤지펀드에 비해 자본금 대비 차입금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더욱이 LTCM은 이 자산과 부채를 활용해 선물과 옵션 같은 파생상품 계약에서 수백 억 달러의 포지션을 움직였다. 사업 초기의 여러 해 동안 LTCM은 돈 버는 기계로 여겨졌고, 매우 유사한 금융자산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가격 편차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일에 극도로 영리했다.


일본 구조조정 실패의 원인 175

일본에서의 불안 국면은 1990년대의 출발과 함께 시작해 10년 넘게 지속됐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회사의 비용을 그들의 경상적인 수익 아래로 낮추는 데 필요한 기업 규모의 축소와 구조조정을 극도로 기피했다; 이것은 지난 40년 동안 일본 기업들이 영업수지 적자를 메우고, 투자자금을 조달할 때면 언제든 은행에 의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심지어는 그 어떤 '시가평가' 기준에서도 파산 상태로 간주되는 기업들에 대해서까지 마찬가지였다; 또한 감독당국은 파산 상태로 간주되는 은행들의 폐쇄를 피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금융 손실의 위험을 "사회가 떠 안았다"; 파산한 기업의 폐쇄에 수반되는 구조조정 비용을 이들 기업의 피고용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보다는, 그 손실을 납세자 집단에게 분담시키는 편을 사회가 선호한 것이다.

(나의 생각)
일본 구조조정 실패의 원인을 명백히 알 수 있는 훌륭한 지적이다.


경제 성장과 고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 때문에 178


그린스펀 의장은 1996년 12월 "비이성적으로 과열된" 주가에 대해 그의 유명한 논평을 하면서, 미국의 주가가 너무 높고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고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 대문에 FRB가 주가 상승을 제어하기 위한 금리 인상을 회피한 것으로 나중에 판명됐다. 1999년 FRB는 "2000년도 컴퓨터 연도표시(Y2K) 문제"-많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2000년으로의 날짜 전환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아 미국의 컴퓨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를 우려했다. 1999년 마지막 수개월 동안 FRB는 일천 년 마지막 날의 날짜 전환에 수반될지 모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동성을 통화시스템에 공급했다. 그 사이 어디론가는 가야만 했던 자금이 주식시장의 투기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원인과 근인 178


어떤 위기라도 그 원인(遠因)은 신용의 팽창과 투기인 반면, 근인(近因)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투자자들이 상품이나 주식, 부동산, 환어음, 또는 약속어음 등을 매도하고 현금 보유액을 확대하도록 유인하는 무슨 사건이다. 파산, 자살, 도주, 사기의 폭로, 어떤 차입자들에 대한 여신 거부, 혹은 거액의 포지션을 보유한 시장 참여자의 매도를 부추기는 모종의 관점 변화 등 근인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일본 거품의 파열 계기 183

거품의 속성은 결국 언젠가는 구멍이 나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풍선처럼 순식간에 바람이 빠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가격과 주가 거품은 1990년 초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대출총액의 증가율(연 5∼6%로 예상됐다)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한 신임 일본은행 총재의 명령에 의해 구멍이 났다. 부동산 대출의 증가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부동산 매수를 위해 신용을 끌어 쓰던 개인과 기업의 일부가 예전의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기 위한 신규대출 자금을 충분히 얻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들은 취득한 부동산의 일부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명령이 없었다 하더라도 무언가 다른 사건이 거품을 파열시켰을 것이다.


돈 구할 데가 없다는 말 189

패닉이 절정에 달할 즈음에는 돈 구할 데가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묘사는 과장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1825년의 상황은 조금도 그렇지 않다:

지방은행들의 패닉이 12월 12일 폴, 손턴 회사(Pole, Thornton & Co.)에 파급된 후 일요일에 영란은행 총재를 방문한 런던 롬바드 가의 은행장들은 47개 지방은행의 지불 청구가 걸려 있는 그런 회사의 영업이 정지된다면, 런던의 모든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쇄도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 회사의 영업은 정지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패닉이 대중을 장악했다: 모든 사람이 돈, 돈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돈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 타임스」가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담보나 보증이 어떤 것인가는 사람들의 안중에 아에 없었고, 오직 돈을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나의 생각)
2008년 12월에 겪었던 상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장 지독한 일 190

허스킨슨에 따르면 당시 73개 은행의 파산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24시간 동안 물물교환이 행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웰링턴 경이 워털루 전투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제군들이 살아생전에 겪은 가장 짧은 시간에 벌어진 가장 지독한 일"이었다."


연 60 ∼100%의 금리 190

1857년 철도회사인 뉴욕 센트럴의 주가는 93달러에서 61달러로 내려갔고, 레딩의 주가도 96달러에서 36달러로 떨어졌다. 돼지고기의 가격은 배럴 당 24달러에서 13달러로, 밀가루는 10달러에서 5∼6달러로 떨어졌다. 9월에는 펜실베이니아와 매릴랜드, 로드아일랜드, 버지니아 주의 150개 은행이 월말의 나흘 동안 파산함에 따라 금리가 15%에서 24%로 급등했다. 이 때의 패닉은 10월에 절정에 이르러 미국 전역에서 1415개 은행이 파산했고, 금리는 연 60∼100%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며칠간 빌려 쓰는 자금에 대한 금리였다.


되먹임의 고리 두 가지 193

부동산 가격과 주가의 상승이 국민소득의 성장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되먹임의 고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계의 부의 증가가 가계 지출의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다. 가계는 저축과 부에 대한 목표 수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산가격의 급등 덕분에 그들의 부가 증가하면 기존의 소득 가운데 저축하는 부분은 줄어들고 소비지출은 늘어난다. 두 번째 고리는 주가 상승이 투자지출의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다.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기업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기존 투자자와 신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이익률이 좀 낮더라도 신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어느 한 기업이 부담하는 '자본비용'은 주가 수준과 반대로 움직인다: 이들 기업의 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을수록 자본비용은 낮아진다. 기업의 자본비용이 낮아질수록 기업의 설비투자는 증가한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기업이 이전보다 낮은 영업이익률로도 꽤 괜찮은 채산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튤립 광기 197

역사가 사이먼 샤마(Simon Schama)가 제공한 사례 하나를 보면, 화이트크라운 1파운드(네덜란드어로 'Witte Croon'이며 일반적인 품종이어서 무게 단위로 매매되었다)에 525플로린을 양도 시점(가령 돌아오는 6월)에 완납하고, 소 네 마리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선불 계약금 지불에 쓰인 여타 현물로는 토지, 주택, 가구, 금은제 그릇, 회화작품, 양복과 코트, 마차, 회색 점박이 말 한 쌍 등이 있었다; 그리고 희귀종 튤립인 비체로이(Viceroy) 한 그루의 가치는 양도 시점의 완납 대금 2500플로린과 함께 현물 선불금으로 밀 2라스트, 돼지 네 마리, 양 열두 마리, 포도주 2옥스헤드, 버터 4톤, 치즈 수천 파운드, 침대 한 개, 몇 가지 의류, 큼지막한 은제 컵 하나였다.


대출에 부과되는 세금과 이자는 계속된다 200

경기가 하락세로 반전하면 부동산 수요와 건축 수요의 고갈이 초래된다. 하지만 대출에 부과되는 세금과 이자는 중단없이 계속된다. 호이트는 부동산 투기자들이 서서히 그러나 어김없이 넘어지게 된다고 썼다. 1933년에 200개에 달하는 시카고의 은행들 가운데 163개가 지불 불능 상태에 빠졌다. 1930년에서 1933년까지 4800개 파산은행의 손실액 가운데 개별 항목으로 가장 컸던 손실 요인은 파산한 주식중개인 계정이 아니라 채무 불이행 상태의 부동산 대출계정이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202

해에 따라 연간 상승률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부동산가격은 꾸준하게 상승했다. 금융규제로 인해 은행예금과 채권 같은 고정가격 자산의 실질 수익률은 1950∼70년대에 걸쳐 계속 마이너스였다. 명목 금리가 연간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6개 대도시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지수는 1955년의 기준값을 100으로 할 때, 1970년대 중반에는 4100, 1980년에는 5800에 달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소유자들은 플러스의 실질 수익률을 챙긴 매우 드문 집단 중의 하나였다. 1980년대 기간 중 부동산가격은 9배나 상승했다. 그 최정점에 이른 시점의 일본 부동산 가치는 미국 부동산 가치의 두 배에 달했고, GDP 대비 부동산 가치의 비율은 미국의 4배나 됐다.


중앙은행 책임자들 206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전통적으로 물가상승률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금리 인상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반면 그들은 자산가격 거품에 대처하기 위한 시도는 극히 꺼려한다: 심지어 사실에 기초해 거품의 존재가 인정되는 것 같아도, 거품이 존재한다거나 과거에 존재했을 가능성마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216


프랑스 투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은행가 마르탱이 있었는데,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그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내야 한다"는 말과 함께 500파운드를 주식 청약 대금으로 지불했다고 찰스 맥케이의 기록은 전하고 있다.


최초의 전세계적 위기
(1857년) 227

오하이오 생명보험 사태가 8월 24일 밝혀지고, 런던에서 은행법의 효력이 정지된 11월 12일에 이어 함부르크에 오스트리아의 긴급차관(은화열차, Silberzug)이 제공된 12월 10일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위기가 집중된 것이 인상적이다. 클랩햄은 위기가 미국, 영국, 중부 유럽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고, 남미와 남아프리카, 극동에도 그 파장이 미쳤다고 기술했다. 로젠베르그는 이 사태를 "최초의 전세계적 위기라고 부르고 있다.


최초의 의미있는 국제적 위기
230

맥카트니(McCartney)는 1873년이 최초의 의미 있는 국제적 위기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위기는 5월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폭발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로 퍼진 뒤 9월에 미국으로 파급됐으며, 영국과 프랑스, 러이사에는 나중에 충격이 미쳤다. 게다가 두 번째 패닉이 11월 1일 빈을 강타했지만 짧게 끝났다.


글래스-스티걸법 234


1932년 2월 글래스-스티걸법의 통과로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통화 공급량 확대가 가능해졌으나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연이은 은행 파산이 되먹임 강화 작용을 동반하며 상품가격의 하락, 기업 파산, 은행 파산의 연쇄를 유발하는 부채 디플레이션 과정을 확산시켰다. 1933년 3월에 시작된 전면적인 은행 업무정지와 그해 봄의 달러화 외환가치 하락으로 경제가 그 바닥을 찾게 됐다.


조지 소로스 236


나라들간에 차이점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태국 정부는 정직했지만 위약하고 우유부단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강력했지만 부패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정책 역시 달랐다. 태국은 투기세력으로부터 바트화를 방어하느라 24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상실하고는 결국 바트화의 외환가치 하락을 용인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투기 압력이 증폭되자 곧이어 루피아화를 변동환율제에 맡겼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링기크화의 공매도 사실을 부인한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해외 투기세력을 비난했고, 대외채무에 대해 제한적 지불유예를 결정했다.


떠도는 유동성 238

 
태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의 거품은 일본의 자산가격 거품 붕괴 이후 수 년 동안 도쿄로부터 유입된 자금에 의해 형성되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및 그 이웃 국가들의 거품이 1997년 하반기에 붕괴하고, 이 붕괴로 인해 아시아 국가를 이탈하는 자금이 미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1990년대 중반에 형성되기 시작한 미국의 주식 거품이 더욱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1998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이 촉발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고, 1999년에는 세기 전환과 관련된 2000년도 컴퓨터 연도표기(Y2K) 문제를 염두에 두고 다시 추가적인 유동성을 공급했다.

(나의 생각)
2009년과 2010년에 걸처 한국 등 아시아로 대거 유입되는 달러 자금들은 1997년 흐름의 대칭적 현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자본 유입 국가'
 239

자금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며,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와 자금이 이탈하는 나라 모두에서 자동적인 조정을 일으킨다. 자본 유입 국가에 일어나는 하나의 조정은 외환시장에서 통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고, 또 다른 조정은 거의 예외 없이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자금 유입은 경제 호황을 동반하며 증가하는 것이 다반사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약간은 있다: 즉, 활발한 경제 활동이 해외 자금을 유인하기도 하는 한편, 해외 자금의 유입은 기업 투자의 증가를 가져온다; 주가의 상승으로 국내 기업의 자본비용이 감소하면 투자 수익률이 개선되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가계의 부가 증가하면 소비의 증가가 유발되거나, 혹은 똑같은 것이지만-자산가격의 상승은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가계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저축률의 하락이 유발된다.


모멘텀 투자자 241


일본, 태국,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의 자산가격 거품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유사성은 시장 참여자들이 최근의 가격 상승에서 나타나는 추세를 미래 시점으로 비례 배분하는 방식에 의해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을 예측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체로 자산과 유가증권의 가격은 이들의 수익 창출 능력-업무용 빌딩의 가격은 그 건물의 임대소득을 토대로 추산되고, 소니와 제네럴 일렉트릭의 주가는 이들 회사의 기대 수익률을 반영한다-에 기초한다. 경우에 따라 일부 타자자들은 이 자산가격의 최근 상승 추이를 비례 적용해 미래의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추정하기 시작한다. 이런 투자자들-이들은 어떤 때는 주가 관찰자, 어느 경우에는 모멘텀 투자자 혹은 데이트레이더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은 개별 유가증권들의 최근 가격 변화를 가까운 미래 시점의 가격 예측을 위한 기준 비율로 활용한다.


일본 황국 대지의 땅값 242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일본 황궁이 들어서 있는 대지의 시장가치가 캘리포니아 전체의 부동산 가치보다 크다는 것이 1980년대 말 도쿄의 이야기거리가 될 정도였다.


일본의 육지 면적 243


일본의 육지 면적이 미국의 5%에 불과하고 일본에서 육지의 80%가 산악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부동산 시장가치는 미국의 부동산 시장가치의 두 배에 달했다. 일본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60∼70%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인구 일인당 토지의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일본은 미국의 4배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244


일본의 소비지출이 급증했다. 일본인들은 또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한 예술작품 경매회사가 개최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작품의 경매에 참여했다. 이미 살펴 보았듯이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화'는 오사카 지역의 경마회사 사장에게 단일 예술작품 가격으로는 사상 최고가에 팔렸다.


일본인들의 모방 사례 245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19세기 후반에 산업화를 시작했다.(왜냐하면 서구 열강들이 중국 해안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경우 이 나라들이 일본에도 전초기지를 세울지 몰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은 미국, 독일, 영국, 벨기에, 그리고 서구의 여러 나라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해 정부와 공공서비스, 은행 시스템, 중앙은행, 그리고 경제 전반을 일본이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그 모델들을 배워오도록 했다. 도쿄의 중앙 기차역은 암스테르담의 센트럴 스테이션을 모델로 삼았고, 일본은행은 벨기에 국립은행 모델에 기초한 것이었고, 공공서비스는 프랑스의 모델을 따랐고, 도로와 철도 시스템은 영국 모델의 유형을 채용했다.(일본인들이 영국처럼 도로의 왼편에서 운전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산업경제는 봉건 가문들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그래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같은 고전적인 이름들이 오늘날까지 은행, 상사, 제조업체의 일부에 남아 있다. 이 가문들 각각은 하나의 은행지주회사가 상사, 조선소, 제철소 등 계열회사의 지분을 대량으로 소유하면서 이들에게 장기자본 출자와 단기대출을 통해 운영자본을 공급해주는 체제였다, 이처럼 산하 기업들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기업집단, 즉 재벌을 형성했으며, 이는 독일식 모델과 다소 유사한 것이다.


경제적 천민, 경멸적 조소 246


1945년 여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40여 년간 일본이 달성한 경제적 성과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 나라의 산업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수 년 동안 황량한 폐허로 벼했다. 일본은 한국, 대만, 만주의 경제적 식민지를 상실했고, 다른 나라들과의 상업적 관계에서도 배제됐다. 이 나라는 경제적 천민으로 간주되었고, 수출품들은 조악한 품질에다 미국과 유럽 기업의 디자인과 기술을 도용한 것이어서 경멸적인 조소를 받았다.


일본:최초의 초국가 246


일본은 1950∼60년대에 걸쳐 따라붙기 시작했고, 연간 10%를 초과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고성장을 이룩한 이 20년의 기간이 허먼 칸으로 하여금 그의 1971년 저서 『일본: 최초의 초국가』를 쓰게 했다. 칸의 산술은 단순명료하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미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기타 산업 국가의 경제성장률을 매년 2∼4% 포인트 상회한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일본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 나라들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능가하리라는 것이다.


일본의 눈과 일본인들의 위장
 247

일본의 복잡한 규제 절차로 인해 해외 기업들은 일본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거나 일본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어려웠다. 미국 및 유럽 기업들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권을 사기는 무척 어려웠다. 일본인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제조된 스키가 일본의 눈(雪)에는 적합하지 않고, 일본인들의 위장은 캘리포니아에서 수확한 쌀을 소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호출자 구조 249


상호출자 구조로 인해 주가 상승이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자동차, 전자제품, 철강의 생산으로 얻는 수익률보다 부동산가격과 주가의 상승에 따른 수익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부동산과 다른 회사 주식의 매수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차입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 속설의 붕괴 250


일본 부동산가격의 거품은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됐다. 하나는 30년이 넘도록 다른 대부분의 유가증권이 마이너스 실질 수익률을 보일 때, 부동산의 실질 수익률은 플러스였다는 점이다. 금융계의 대표적인 속설 가운데 하나가 "땅은 좋은 투자 대상이다. 땅값은 항상 오른다"는 것이고, 이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속설은 "땅은 좋은 투자 대상이다. 땅은 당장 더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두 가지 속설을 다 믿었고, 1940년대 말부터 이어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그들의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


시장에 의해
저절로 252

일본의 관행에서는 대출에 부동산 담보가 설정됐고, 전통적으로 은행은 부동산 담보 가치의 70%까지 자금을 대여했다. 주센이 제공한 대출 자금의 일부는 조직폭력 집단인 야쿠자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이 폭력 집단은 그들의 인맥을 동원해 부동산에 이례적으로 높은 감정가를 얻어냈다. 부동산가격의 상승률이 연 30%의 속도로 진행된 덕분에 감정인이 부동산에 너무 높은 가치를 매김으로써 발생하는 웬만한 '오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 가격으로 실현되므로 시장에 의해 저절로 교정됐다.


너무 비싸서 253


일본의 거품은 1989년 말 점차 강화되는 국면에 도달했다. 부동산가격이 너무 높아 보였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된 바 있는 "너무 비싸서 아무도 거기에 거주할 엄두를 낼 수 없다"는 야구 스타 요기 베라의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은행들은 100년, 3세대나 이어지는 부동산저당증서를 개발했다. 신임 일본은행 총재는 너무 높은 주택가격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것을 우려했다.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대출총액 증가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부동산 대출의 증가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이 도입됐다.

(나의 생각)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타워팰리스를 두고 하는 말과 닮았다.



땅값은 항상 오른다는 속설 254

일단 은행 대출의 증가율이 둔화되자, 최근에 부동산을 매입한 일부 매수자들이 현금 동결 상태에 빠졌다; 이들의 임대소득은 부동산담보 차입 이자에 여전히 모자랐지만, 예전처럼 채무잔고의 이자를 지불하는 데 필요한 현금을 신규 은행대출로 마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투자자들 가운데 높은 유지비용으로 인해 보유 부동산의 투매자로 변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부동산 신용 성장률의 급락에 따른 신규 매수세의 실종과 동시에 이들 투매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옴으로써 부동산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땅값은 항상 오른다는 속설이 비로소 시험대에 올랐고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다.


영구작동기계 254

이제 영구작동 기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매도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초래했다. 부동산가격과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은행 자본이 계속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은행은 자금을 대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의 주식 가치가 상승하는 시기에 일본 주식의 가치 하락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글로벌 인덱스펀드들은 일본 주식을 매도하고 미국 주식을 매수했다.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다. 255

엄청난 파산 건수와 은행이 입은 거액의 대출손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예금자들은 그들의 돈을 인출하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인 예금보험제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예금자들을 보전해 줄 것이라고 개인과 기업 둘 다 확신했다. 대출 자산의 시장가치가 예금부채보다 적어서 은행의 순자산이 마이너스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은행 주식의 가격이 영보다 큰 값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은행들은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외국 자본 유입의 결과이자 이유 258

중국, 태국 및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숙한 내수시장용으로 보다 저렴한 공급처를 원하는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의 외주생산 기지였다. 빠른 경제성장은 외국 자본(특히 일본 자본) 유입의 결과이자 이유였다. 당초 일본의 투자는 보다 저렴한 노동비용을 활용하기 위해 제조공장을 건설하는 형태를 취했다; 고부가가치 부품은 일본에서 생산된 후 같은 계열의 해외 공장으로 선적돼 그 곳에서 조립되었다. 그 곳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제품은 미국, 일본, 그리고 제3국에 각각 일정 양씩 수출되었다. 일본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납품업체와 은행을 일본에서 함께 끌고 나갔다. 당시 최신 유행어는 수출 주도형 성장이었고, 이 개념은 통상적으로 해당 국가 통화의 낮은 외환가치를 근저에 깔고 있었다. 이 같은 수출 제품의 다수는 미국, 일본, 대만에 본사를 둔 주력 기업들에 의해 생산됐다.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도 국내 임금에 비해 단위 임금이 엄청나게 저렴한 중국와 인도네시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연극대본처럼 259

위기가 터지자 앞서 일본에서 벌어진 유사한 사건들이 연극대본처럼 재연됐다. 동아시아의 기적에 대한 얘기는 사라지고, 정실 자본주의와 자발적 사유화, 교란적 투기 같은 새로운 유행어들이 등장했다.


미국 주식의 시가총액 260

1982년에서 1999년 사이에 미국의 주가는 13배의 상승을 시현했다. 미합중국의 200년 역사상 연간 상승률로는 가장 괄목할 만한 상승 행진이었다. 장기간을 놓고 보면, 미국의 주가는 매 3년에 한 번씩은 하락했지만, 지난 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에는 단지 한 해 동안만, 그것도 5%에 불과한 주가 하락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주식의 시가총액은 1982년 미국 GDP의 60%에서 1999년에는 300%로 증가했다.


부정적 요소 두 가지 261

미국의 경제적 성과 면에서 나타난 "부정적 요소"가운데 하나는 연간 무역수지 적자가 5000억 달러로 급증했다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가계의 저축률이 새로운 저점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운좋은 사람들 262

로드쇼의 마지막에 투자은행가들은 그들이 IPO 시점에 판매하게 될 주식의 금액을 산출하고, 주가와 주식 수량을 결정했다. 99.46%의 경우에서 해당 주식의 최초 거래일 종가는 IPO 가격(공모가격)을 크게 상회했기 때문에, 이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은 큰 자본이득을 실현했다.


막대한 부와 큰 이익에 매료 262

이 같은 가격 뻥튀기의 한 가지 효과는 공모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하려고 아우성치는 투자자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것이었다. 두 번째 효과는 그런 매수세가 과시됨에 따라 이 연출 과정의 한 꼭지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성공적인 혁신으로 그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막대한 부에 매료됐고, 벤처자본가들은 성공 확률이 높은 기업가들을 찾아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이익에 매료됐으며, 투자은행가들은 일반투자자들에게 다수의 기업을 공개해서 얻는 수수료를 원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공모가격과 이 주식의 첫 거래일 종가, 첫 거래주간 종가, 첫 거래월 종가 간의 주가 뻥튀기에서 얻는 큰 자본이득을 원했다. 이 같은 가격 뻥튀기의 규모는 다이너마이트나 니트로글리세린, 혹은 아마도 이 둘의 화합물과 같은 폭발력에 비유할 수 있다.


영구작동 기계 263

미국에도 수십 만 가정의 재산을 불리도록 설계된 그 나름의 영구작동 기계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첫 거래일의 가격 뻥튀기가 클수록 IPO에 몰려드는 투자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IPO에 대한 수요가 강할수록 창업자들을 밀어주려는 벤처자본가들의 수가 늘었다. 창업자들이 이 작업에 투입하려는 자본이 커질수록 기존 기업에서 이탈해 그들 자신의 운명을 모색하려는 창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시점 264

1996년 12월 그린스펀 FRB 의장은 처음으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때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는 6300이었고, 나스닥 지수는 1300이었다. 그린스펀은 신중하고 자료에 대해 세심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당시 주가가 최소한 15∼20% 정도 과대평가돼 있다고 믿지 않았다면 그가 주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2000년 초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는 11700, 나스닥 지수는 5400이었고, 나스닥 주식의 시가총액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주식 시가총액의 80%에 달했다.


'신경제 주식의 특징 자체가 미래에 대한 열광' 264

1990년대 말 나스닥시장에서 거래된 신경제를 대표하는 주식들-닷컴, 전자상거래, 광섬유, 컴퓨터서버, 반도체, 소프트웨어, 정보기술, 통신분야의 주식-의 주가는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AT&T, 타임라이프 등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구경제 주식들의 주가에 비해 매우 빠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파급 효과 이상의 것이 작용했는데, 왜냐하면 신경제 주식의 특징 자체가 미래에 대한 열광이었고, 그 전염성은 구경제 주식의 주가 상승도 유발했다.



'거품이 시작된 첫날' 265

합리적 활력이 언제 비이성적 과열로 변이를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쉬운 대답은 없다. 미국의 주식에 자산가격 거품이 발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서로 다른 날에 서로 다른 투자자들에게 생겼다. 미국 주식에 거품이 시작된 첫 날은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하기 18개월 혹은 20개월 전인 1995년 봄의 어느 날이다. 주가는 1995년 연간 34% 상승했고, 1996년 1∼11월 사이 연율로 25% 상승했다; 그 이전의 1994년에는 반대로 2% 하락했었다.


불가피한 결과 267

이 저축의 유입이 가져온 반작용으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증가했다. 미국으로 유입된 해외 저축은 미 달러화의 외환가치 상승을 야기했고, 이로 인해 수입품의 미 달러화 기준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미국의 물가승상을 상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미국으로 자금을 이동시킨 사람들은 미 달러화 표시 유가증권을 매수했고, 따라서 유가증권의 가격을 상승시켰다; 보유 유가증권의 일정량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도한 미국인들은 매도로 얻은 자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이 자금의 대부분을 다른 미국인들로부터 더 많은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추구하던 부의 목표 수준이 달성됨에 따라 미국 상품의 매입도 확대했다. 미국의 저축률 하락과 무역적자의 확대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저축의 증가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였다.


80% 268

새로운 천 년의 도래와 함께 FRB는 유동성을 거둬 들이기 시작했다.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 전체의 하락 규모는 40%였고, 나스닥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은 80%나 줄어들었다.


더 대단한 바보들이 많이 공급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도박 269

동일한 방식으로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주식 매수자들은 보유 주식을 되팔 수 있도록 매도 대상이 되어줄 더 대단한 바보들이 많이 공급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도박을 벌였다. 더 대단한 바보들은 존재했지만, 다른 때는 합리적이며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그 투자자들이 주가가 무너졌을 때 큰 손실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바보들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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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5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아담 스미스, 『도덕심성론The Theory Moral Sentiments』 가운데
 
(나의 생각)
찰스 P. 킨들버거의 다른 책에서도 발견했던 문장이다. 이 문장 덕분에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참 고마운' 인용문이다.


눈먼 자본 5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 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븐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가운데


눈에 익은 단계들 5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있든 없든, 파탄을 몰고 올 새로운 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익히 눈에 익은 단계들을 밟아가며 다가오고 있다; 핵심 우량주가 붐을 일으킨 다음, 이류 종목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이어서 장외시장에서도 투기판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 상장된 주식을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끝물 장세가 지나가면, 마침내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찾아올 것이다. 이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빌어먹을 일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버나드 J. 라스커(1970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으로 재직)
그가 1972년에 했던 말 가운데, 존 브룩스가 쓴『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에서 인용


경제학과 역사 19


"경제학은 역사가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를 필요로 한다."


상품가격의 극적인 변동 25


이 기간 동안 상품가격의 변동이 극적인 경우도 꽤 있었다. 금의 미 달러화 표시 가격은 1970년대 초에는 온스 당 40달러였는데, 1970년대 말에는 온스 당 1000달러 가까이까지 상승했고, 1980년대 말에는 450달러, 1990년대 말에는 283달러를 기록했다. 원유가격은 1970년대 초 배럴 당 2.5달러에서 1970년대 말에는 40달러로 올랐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배럴 달 12달러였다가 1980년대 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다시 40달러에 거래됐다.

(나의 생각)
2011년 2월 22일 현재 금의 가격은 온스 당 1,409.70달러, 원유 가격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00.36달러를 넘었다.


쳬계적인 관련 33

이 책이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및 주식시장 거품과 이와 유사한 1990년대 중반 태국 방콕과 인근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중심지에서 형성된 거품,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 이들 세 가지 거품이 체계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 이야기 33

해외로부터 어느 나라로 자금 유입이 증가하면 거의 예외 없이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했다. 왜냐하면 외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들은 매도한 금액 중 많은 부분을 다른 내국인이 보유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고, 또 내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도 마찬가지로 이 매도 금액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가증권 거래는 더 높은 가격을 유발하며 계속 이루어졌다. 이것은 마치 속담에 나오는 '뜨거운 감자' 이야기와 유사하다. 외국인에게 매도한 유가증권 매도 자금이 한 집단의 투자자에서 다른 투자자 집단으로 옮겨갈 때는 항상 더 높은 가격을 붙이며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광기의 매커니즘 36

일반적으로 광기 현상은 경기순환의 확장 국면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광기에 동반하는 풍요로운 감정이 지출 증대를 야기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광기 국면에서 부동산가격이나 주가, 상품가격의 상승은 소비지출 및 투자지출의 증가에 기여하고, 이것은 다시 경제성장을 가속화한다.


광기의 작동원리 36

광기, 특히 거시적 차원의 광기는 경제적 풍요감과 함께 나타난다; 더 많은 기업들이 희망에 휩싸여 기대에 부풀고, 신용이 넘쳐나므로 투자 지출은 급증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도쿄와 오사카의 안면이 있는 은행가들에게서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돈이 '공짜'인 것처럼 보였고(돈은 광기 국면에서는 언제나 공짜처럼 보인다), 일본인들은 흥겨운 소비 잔치와 투자 잔치를 계속했다. 일본인들은 수만 점의 프랑스 예술작품을 구입했다. 반 고흐의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화'를 매입한 오사카 출신의 경마장 사업가는 당시 미술품 가격으로는 사상 최고가인 9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미쓰이 부동산은 최초 호가가 3억 1000만 달러였던 뉴욕의 액손 빌딩을 구입하는 데 6억 2500만 달러를 지불해, 업무용 빌딩 매입가격으로는 당시 최고 가격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붕괴의 첫신호 37

이어서 하나의 사건이 터지는데, 정부정책의 변화나 어제까지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던 회사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파산하는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자산가격은 상승 행진을 중단한다. 자산의 매입을 대부분 차입금으로 조달했던 일군의 투자자들은 결국 대출자금에 대한 이자 지불액이 자산에서 나오는 투자소득보다 커지게 되는 순간,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이나 주식의 투매자로 돌변한다. 이들 자산의 가격이 매수한 가격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매수자들은 "물속으로 잠겨버린다"; 자산 매입을 위해 조달한 대출자금의 원리금이 자산의 현재 시장가격보다 커지고, 급기야 덫에 걸려들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투매는 자산가격의 급락을 초래하게 되고, 패닉과 붕괴가 뒤따를 수도 있다.


광기 현상들의 한 가지 유사한 유형 38

이 같은 광기 현상들의 특징은 전부 똑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유사한 유형을 갖는다. 경제적 풍요감에 동반해 부동산과 주식, 상품가격의 상승이 나타난다. 가계의 부가 증가하고, 따라서 지출도 늘어난다.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그러는 사이 자산가격이 그 정점으로 치솟고, 곧이어 하락이 시작된다. 거품의 파열은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의 하락과 동반해 나타났으며, 이런 가격 하락은 종종 붕괴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일부 금융위기 현상에서는 그보다 앞서 특정한 자산이나 유가증권 가격의 급등이 나타났다기보다 하나 혹은 몇몇 차입자 집단의 채무규모가 먼저 급증했던 경우도 있다.


애매함과 딜레마 43

패닉과 붕괴에 대처하는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은 애매함과 딜레마에 싸여 있다. 1825년의 위기 당시 영란은행의 행동에 대해 토마스 조플린은 "원칙과 전례가 깨지면 안 되는 시기가 있는 반면, 원칙과 전례를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때도 있다"고 논평했다.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공식적 경고 48

한가지 문제는 광기가 공식적 경고-도의적 권고나 설득-에 의해 중지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경험적 증거가 말해 주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광기를 멈출 수없으며, 위기를 막고자 의도했던 경고 후에 많은 위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널리 지적되는 사례는 미국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일 정도로 과열돼있다고 지적한 앨런 그린스펀 당시 FRB의장의 1996년 12월 6일자 논평이었다. 이 때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는 6600이었으나 그 후 계속 상승해 1만 1700까지 치솟았다. 나스닥 지수는 그런스펀의 논평 시점에 1300이었는데 4년 후 5000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이와 유사한 경고가 1929년 2월 민간 은행가로 미국 연방분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의 창설자 중 하나였던 폴 워버그에 의해 제기됐지만, 주식시장의 상승 행진을 그리 오래 늦추지는 못했다.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56

금융 질서는 자산가격 붕괴에 따르는 패닉의 확산을 막기 위해 궁극적 대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궁극적 대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채무 과다 상태에 빠지게 될 개별 차입자들이 '구제'될 것이라는 견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뉴욕 시가 지원을 받게 될 것인지, 또 누가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유지했던 것은, 종국적으로는 지원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원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옳은 대응이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신용공급의 순환 58

민스키는 경기가 확장할 때 늘어났다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의 파동과 함께 오르내리는 신용 공급의 순환에 주목했다. 경기 확장 국면에는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증폭되고, 이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에 대한 수익성 추정치를 상향 조정한다. 따라서 이들이 자금을 차입하려는 의욕이 늘어난다. 동시에 대여자들은 개별적인 투자에 대한 위험 평가를 낮추고, 이들의 위험 회피 성향도 줄어들어 자연히 돈을 빌려주려는 의욕이 증가하고, 이전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투자가 긍정적인 여신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겨난다.

제반 경제 여건들이 둔화될 때는 투자자들의 낙관론은 줄어들고 신중론이 고개를 든다, 동시에 대출손실이 늘어나게 되므로 대여자들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민스키는 이처럼 호경기 때 늘어나고 경제의 탄력이 약화될 때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가 금융 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믿었다.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 59

이 모델은 신용 공급의 불안정성에 주목한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샬, 넛 빅셀, 어빙 피셔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민스키는 피셔의 노선에 따라 과도한 채무를 진 차입자들, 특히 경기 확장기에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상품의 매수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했다. 이들이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해당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매수 자금으로 조달한 차입금의 금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면 이들이 매수한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이들 차입자 가운데 일부는 실망하게 되고, 이들 중 다수는 투매자로 돌변한다.


충격의 성격 60

충격의 성격은 투기붐이 일어나는 국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1920년대 미국에서의 충격은 전국적인 전력 보급과 전화를 보유한 가정의 급속한 확산, 자동차 생산의 급증 및 이에 동반한 고속도로의 건설이었다. 1980년대 일본에서의 충격은 금융자유화와 엔화의 외환가치 급등이었다. 1980년대 노르딕 3개국에서의 충격은 금융자유화였다.

1990년대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충격은 일본 자산가격 거품의 붕괴, 엔화 가치의 상승에 따른 도쿄로부터의 자금 유입 증가, 각국의 금융자유화였다. 1990년대 미국에서의 충격은 정보기술 혁명과 컴퓨터, 무선통신, 전자우편을 통한 새롭고 값싼 방식의 통신 및 제어기술이었다. 때로는 전쟁의 발발이나 종전, 풍작 혹은 흉작, 운하나 철도 같은 파급효과가 엄청난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광범위한 보급이 충격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통화 정책의 변화도 주된 충격이었다.


바람에 휘둘리도록 61

민스키는 은행 여신의 성장이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띠며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은행들은 자금 대여자로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 없이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


경제적인 풍요감 61

민스키는 이 단게에서 경제적인 '풍요감(euphoria)'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상품과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자본이득에서 나오는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상품과 유가증권을 매입한다. 관련 당국은 경제에 무언가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이전에 있었던 광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이들은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점에 대한 광범한 설명 요인들을 찾아낸다.


'폰지금융'의 유래 62

'폰지금융'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초 보스턴 교외 지역에서 소규모 융자업체를 운영한 카를로스 폰지(Carlos Ponzi)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폰지는 자금 예탁자들에게 한 달에 30%의 이자를 지불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의 금융거래는 3개월 동안 무난하게 굴러갔다. 그러나 네 번째 달에 이르자 신규 에탁자들에게서 얻는 현금 유입액이 기존 예탁자들에게 지불할 이자 지급액보다 작아지게 됐고, 결국 폰지는 교도소로 가야 했다.

폰지금융이라는 용어는 이제 '지속 불가능한 자금조달 유형'을 가리키는 범주적 용어의 하나가 되었다.


킨들버거式 '투기의 정의' 63

투기란 어느 상품을 사용해서 얻는 이익이 아니라, 예상되는 가격 상승으로 발생하는 자본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상품을 매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유가증권의 경우에도, 유가증권이라는 상품에서 발생하는 투자소득이 아니라, 다시 매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수하면 투기의 대상이 된다.


친구가 부자되는 것 64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 64

예전에는 투기적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과 개인들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소란스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본이득을 위한 투기는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에서 일탈시켜 '광기'나 '거품'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끈다.


가격 상승과 하락 매커니즘 68

투자자들은 열차가 정거장을 떠나 속도를 올리기 전에 열차에 올라타려고 몰려든다. 외부자들의 매수 열망이 내부자들의 매도 욕구보다 강하면 해당 자산이나 유가증권의 가격은 상승 행진을 계속한다. 반대로 매도자들의 욕구가 매수자들보다 강해지면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매수 세력의 의욕이 약해지고 매도 세력의 의욕이 강해지면, '금융불안'이라는 불안정한 시기가 뒤따른다; '금융불안'은 기업 금융에서 쓰이는 용어로 기업이 채무 원리금 상환을 지킬 수 없는 사태를 의미한다. 경제 전반에 적용하면 기업과 개인투자자들 모두 지금은 유동성 비중을 늘려야 할 때라고 인식하는 사태를 나타낸다. 상품과 유가증권의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자산가격이 급락해 자산 매입을 위해 빌린 차입금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일부 투자자들이 파산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가격 하락이 일시적이며 딸꾹질처럼 잠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믿음으로, 가격이 하락해도 자산을 계속 보유한다.


위기를 격발하는 특수한 신호 69

위기를 격발하는 특수한 신호로서 은행이나 기업의 파산,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 곤란에서 벗어나려 했던 어느 투자자의 사기나 횡령, 혹은 상품가격이나 주가의 가파른 하락이 등장할 수 있다. 쇄도가 시작된다. 가격은 하락하고 파산이 늘어난다. 청산 과정에 질서가 유지될 때도 있지만, 비교적 소수의 투자자들만 정점의 최고가에서 심각하게 폭락하지 않은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이런 청산 과정은 패닉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19세기에는 이같은 행태를 '급반전'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상품 또는 유가증권을 담보로 대출하는 은행의 조심스러움이 확연히 커진다. 19세기 초 이런 상황은 '신용경색'으로 일컬어졌다.


동질성은 더욱 강화된다 71

각각의 위기에는 그 자체에 고유한 개별적인 특징들이 있다; 충격의 성격, 투기의 대상, 신용 팽창의 형태, 사기범의 독창성, 급반전을 격발시킨 사건의 성격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격언을 하나 빌린다면,
"무언가의 사물에 변화가 계속될수록 그 사물의 동질성은 더욱 강화된다." 세세한 것들은 증식하지만 구조는 유지되는 것이다.


네거티브 캐리, 거품 붕괴의 시작 75

1980년대 기간 중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0배 상승했고, 주가는 지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6∼7배 상승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전후 최고의 경기붐을 만끽했다. 부동산 투자자들이 벌어들인 수익률은 대략 연 30%에 달했다. 기업들은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철강이나 자동차, 혹은 TV 제조에서 얻는 수익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자 은행 차입금을 이용한 거액의 부동산 투자자로 변신했다. 부동산가격은 임대료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이르자 순 임대소득이 부동산 매입에 동원된 차입금의 이자 지급액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차입자들이 "네거티브 캐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제 차입자들이 이자를 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보유 중인 부동산의 일부를 담보로 차입금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일본은행의 신임 총재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은행의 대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규제함으로써 신규 부동산 대출을 제한했다.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연 30%에서 5∼6%로 줄어들자,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위해 신규 대출이 필요했던 기업과 투자자들 가운데 일부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됐다. 이들이 부동산을 매도하면서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위치 76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국제금융상의 위치는 1970년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유사하다. 당시 이들 나라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속 불가능할 정도였고, 해외 채권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를 다시 해외 채권자들에게 빌려서 갚았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미국의 국제수지상태가 이대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금융의 역사에 대한 연구이지 경제 에측에 대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을 배우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생각)
이 책의 저자가 일찌기 2005년에 지적한 내용이 2010년이 되어서야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논평 81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논평을 고려해 보라;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투자자들에게서 얻은 막대한 금액의 자본금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사업 전반에 걸쳐 어리석고 부실한 관리와 낭비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마땅히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 임직원들의 부주의와 낭비, 부정부패가 그렇듯이, 그들이 벌인 부정직하고 무절제한 주식매매도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83

군중심리나 히스테리는 종종 발생하는 합리적 행동으로부터의 일탈 현상으로서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 몇 가지 경제 모델은 스미스 집안 사람들이 존스 집안을 쫓아가려다가 소득수준 이상으로-적어도 당분간은-소비하는 현상을 초래하는 전시 효과(demonstration effect)를 부각시킨다. 또 다른 모델은 스미스 집안과 존스 집안 모두 소득이 늘 때 소비지출을 늘리지만, 소득이 줄 때는 소비지출의 축소를 기피한다는 듀젠베리 효과(Duesenberry effect)다. 정치 세계에는 유권자들이 가장 승산 있는 후보를 밀어 주는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가 있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이 패자에게 등을 돌릴 때의 모습은 마치 "쥐들이 가라앉을 배를 버리고 탈출하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구스타브 르봉은 이 주제로 『군중The Crowd』을 썼다. 찰스 맥케이는 남해회사 거품을 거론하면서, 1720년 8월 남해회사의 제3차 주식 청약 당시 어느 은행가가 500파운드라는 거액의 주식을 매입하며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내야 한다"고 말한 사례를 언급했다.


투기의 전개 단계 87


투기는 보통 두 단계로 전개된다. 들뜨지 않은 첫 번째 단계에서는 가계와 기업, 투자자들은 충격에 대해 절제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면, 자본이득에 대한 예상이 이들의 거래를 좌우하는 지배력이 갈수록 증폭된다. "처음의 입맛은 고금리지만 이 입맛은 조만간 부차적인 것으로 변하고, 매수한 투자 대상 자체를 매도해 챙길 수 있는 큰 이득에 대한 두 번째 욕구가 생겨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않았다 88


본질적으로 목표와 과정이 뒤바뀌었고, 마침내는 목표는 사라지고 과정만 남았다. 대여자들은 이 과정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게임의 끝내기 여건을 평가하지 못했다. 즉, 대여자들이 차입자들에게 신규 대출 형태의 현금 공급을 중단할 경우 차입자들이 이자 지급을 위한 현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않았다. 정크본드 시장도 당초에는 합리적일 수 있었지만, 곧이어 정크본드의 공급 물량이 급증하고 차입자들의 신용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나의 생각)
현재 한국경제에서 커다란 골칫거리의 하나로 자리잡은 부실 부동산PF를 생각나게 한다.


또다른 판돈을 저축하기 위해 89

투기 세력으로서의 전문적 내부자들은 처음에 상승 파동과 하락 파동을 과다하게 증폭시킴으로써 균형점 이탈을 유발한다. 이 내부자들은 "추세는 내 친구"라는 마법의 주문을 따른다. 이런 투자자들은 예전에 테이프 워처(tape watcher)로 알려졌고, 보다 최근에는 '모멘텀 투자자'로 불렸다. 고점에서 매수해 저점에서 매도하는 비전문가인 외부자들은 뒤는게 그들을 끌어들이는 풍요감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돈을 잃고 난 뒤 앞으로 5∼10년 후에 쓸 또 다른 판돈을 저축하기 위해 다시 일상의 직접으로 돌아간다.

(나의 생각)
한국 증시에도 유독 '모멘텀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득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시장의 단기변동성이 커지고 '투기적 매수세'를 유발하는 주범들은 늘 '모멘텀 투자자들'인 것 같다.



아이작 뉴턴의 이야기 91

균형점 이탈 유형의 교란적 투기에 가담해 고점에 사서 저점에서 팔았던 외부자 사례를 하나 더 찾는다면, 왕립조폐국 장관이자 위대한 과학자였던 이아작 뉴턴(Isaac Newton)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1720년 봄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뉴턴은 그해 4월 20일 보유하고 있던 남해회사 주식을 매각해 수익률 100%에 달하는 7000파운드의 이익을 실현했다. 하지만 그 뒤 그해 봄과 여름에 세상을 휘몰아친 광기에 그도 같이 휩쓸려 더 많은 물량의 주식을 거의 최고점에서 매입해 2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다. 재정 파탄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태에 마음이 상한 그는 그렇게 말했고, 남은 생애 내내 남해(South Sea)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 했다.


패닉에 대한 처방들 92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채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들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쇄 과정의 초반에 참가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나의 생각)
Devil take the hindmost는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유사한 대응이 발휘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 93


물리학자나 수학자 혹은 교사가 부족하다고 알려지면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그들이 학위를 마칠 때쯤이면 이 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훈련 받은 개인들의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 공급이 뒤늦게 급증함에 따라 취업 기회가 갑자기 귀해진다. 그러나 과잉 공급은 학교에서의 훈련 기간이 끝난 후에야 알려진다. 커피, 설탕, 면화, 또는 다른 상품의 부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잉이 나타날 수 있다. 공급 부족 초기에는 수요의 급증으로 인해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지만, 그 후 오랜 동안의 투자 기간이 지나고 신규 공급 물량이 들어올 때는 더욱 가파른 양상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나의 생각)
근래의 회계사, 변호사 혹은 한의사들의 형편과 너무나 닮았다.



1880년대 양조회사 주식 발행 붐 94

약간 지나치게 추론을 확장하자면, 포도나무뿌리진디(phylloxera)라는 해충이 프랑스에서 포도 농장을 망치고 포도주 생산에 피해를 입힌 사태가 1880년대 영국에서 양조회사 주식 발행의 붐으로 이어지는 파급 효과를 낳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주식공개 광기가 불어 사설 양조회사들이 줄지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았다. 이들 양조회사 가운데 아서 기네스 회사(Arthur Guineess and Co.)의 주식은 170만 파운드에 인수돼 320만 파운드에 팔렸다. "신규상장 주식의 성공은 쏜살같이 이루어졌고, 1890년 11월에는 다른 양조회사 86개사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 주식을 공개했다."



이것저것 다 참을 수 있지만 96


노동의 공급 측면에서는, 실제 작업량은 임금이 높아진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며, 작업량을 증대시키는 방법은 단위시간 당 임금을 낮추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후방굴절 공급곡선'으로 나타난다. 경제사를 다룬 책에서는 이 원리를 "존 불은 이것저것 다 참을 수 있지만 2%는 참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합리적 투기로 시작해 상업위기에 이르는 출렁거림은 여태까지 지켜본 바로는 자본이 성장하고 산업이 확장되면서 그 빈도가 줄어들거나 강도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경쟁의 격화가 그 원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낮은 이익률과 이자율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이로 인해 자본가들이 안전한 상업 이익을 취하는 평범한 경로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FRB가 보다 확장적인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미 달러화 표시 유가증권의 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뒤따라 제3세계에 대한 은행의 신디케이트론이 불어났다. 당시 은행들은 유동성이 매우 풍부했으며 매력적인 차입자를 찾고 있던 차에,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제3세계 정부와 국유기업들을 그 상대로 삼았다. 1960년대는 미국 주력 은행들의 국제화가 가속화한 시기로 이들은 해외 지사망을 빠르게 확장했다. 1차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멕시코와 브라질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명목 소득과 실질 소독은 감소했다. 1차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당연히 미국 은행들은 예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의 생각)
지금 현재 국제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머지 않아 가격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예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거나 곰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은 97


1928년에 미국의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선회하고 채권 매입을 중단하면서 독일에 대한 미국의 장기 대여가 중단되었을 때, 뉴욕의 은행과 투자회사들은 독일의 차입자들에게 단기 여신을 계속해주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거나 곰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은-적어도 당분간은-그대로 가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눈먼 사람과 다를 바 없다 98


합리성의 경계선상에 걸쳐있는 세 번째 사례는 머리 속에는 합리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다른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는-비합리적 기대라기보다는 느끼지 못하는 지체(undistributed lag)의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마지노선(maginot Line)의 심리"다. 폰지는 "한 사람의 시야가 어느 하나의 사물에 고정돼 있을 때 그 역시 눈먼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이와 유사한 지적으로 월터 배젓은 맬서스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생각을 좀처럼 없애지 못한다."


"다우 36000" "다우 40000" "다우 100000" 109


1999년 한 해 동안 세 권의 서적이 거의 똑같은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책들의 주제는 거의 같았다: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기업 순이익이 계속 증가한다면, 다우존스 평균주가는 과거 최고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신고가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는 충분히 큰 지렛대만 있다면 이 세계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어느 정도 연장한 물리학의 원리처럼 논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주가의 수준은 세 가지 요인을 방영한다: GDP 성장률, GDP에서 차지하는 기업이익의 비중, 기업 순이익과 주가의 관계, 즉 주가수익비율(price-earnings ratio: PER)이다. 미국의 GDP에서 기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장기적으로 8% 수준을 유지해왔고, 주가수익비율은 평균적으로 18을 이어왔다.


아폴론적 기질의 문화와 디오니소스적 기질의 문화 113


어느 나라의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보다 투기 성향이 더 높다는 의견이 있다. 루스 베네틱트는 아폴론적(균형 잡힌) 기질의 문화와 디오니소스적(향략적) 기질의 문화를 구분하기는 했지만, 이 명제는 다소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미심쩍은 구석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 사이에는 16세기 브라반트인은 강한 도박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1576년 11월의 안트워프 약탈과 1586년의 파괴적인 포위 후에 그들 가운데 유나이티드 프로빈스(지금의 네덜란드)로 이주한 수만 명이 그 기질도 함께 가져갔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에서는 은행가, 투기자, 심지어 평범한 서민들도 도박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캘빈교와 루터교의 근검절약과는 갈등 관계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거래비용과 보유비용, 두 가지 모두를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 121


신용의 팽창은 우연한 사건들의 연쇄작용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체계적인 발전 과정으로서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이 거래비용과 유동성 및 현금잔고의 보유비용, 두 가지 모두를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정적인 문제 126


결정적인 문제는 통화를 정의하기는 쉬워도, 유효 통화 공급량을 계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월터 배젓은 이렇게 기술했다: "잉글랜드 사업가들은 ······ 통화 문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을 난감해 한다: 그들은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무엇을' 계산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어느 개인의 구매력 128


존 스튜어트 밀은 이 논쟁을 깔끔하게 요약했다.

우리가 화폐, 즉 돈을 귀금속으로 정의하든 아니면 은행권도 함께 포함시키든, 일정 시점에서 어느 개인의 구매력은 실제로 그의 지갑에 들어있는 돈으로 계측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구매력을 구성하는 것은 첫째, 그가 소유하고 있는 돈이고, 둘째 그의 은행 예치금과 그가 요구하면 지급받을 수 있는 다른 곳에 빌려 준 모든 돈이다. 셋째는 그가 어떻게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신용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132


민스키는 신용 구조의 취약성을 측정하기 위한 채무의 '질'을 강조했다; '투기'와 '폰지'라는 용어가 이 취약성을 부각시켜 준다. '폰지금융'이라는 용어가 함축하는 내용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해당 기업이 약정 일정에 맞추어 채무 원리금 상환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에약된 채무라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것이다.


환어음 135


환어음(bills of exchange)은 미래 지불을 위해 상품의 판매자가 만든 청구권으로, 당초 주화의 공급이 비탄력적이었기 때문에 개발됐다; 환어음은 판매자금융의 한 형태다. 상품 판매자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매자에게 신용을 제공했고, 구매자는 채무상환 의무를 90일이나 120일 이내에 이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나의 생각)

증권사가 주식투자자에게 주식매입자금대출을 해주는 것도 환어음과 매우 닮았다.


대공황에 대한 통화주의적 시각 147


대공황에 대한 통화주의적 시각은 밀튼 프리드만과 안나 슈워츠의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개진되었다; 그들은 1930년대 전반에 있었던 경제 활동의 급격한 위축은 FRB가 수행한 통화정책의 오류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주로 1929년 8월에서 1933년 3월 사이의 통화 공급량 감소에 주목했다.


대공황 초기 단계의 사태들을 설명해 주는 요인들 150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즈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신용의 불안정성과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 또 다수의 상품가격과 제품가격의 하락에 따른 차입자들의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신용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때 야기되는 생산과 물가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무시하고 있지만, 1929년 대공황 초기 단계의 사태들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요인들이다. 이 같은 시각은 하이먼 민스키와 헨리 시몬스-시몬스는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로 기업 신뢰감의 위축이 불안정한 신용 시스템을 매개로 유동성 변화를 야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통화 공급량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대공황이 초래되었다고 생각했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시했다.

보다 기억할 만한 것은 쿤, 로브 회사(Kuhnm Loeb & Co.)의 공동 설립자이자 연방준비제도(FRS)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폴 워버그의 카산드라식 발언이었다: 그는 1929년 2월에 미국의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고, 1907년의 패닉을 연상케 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미국 대중에게 경고했다; 이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유사한 성명을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이어 주가는 다시 상승했다. 미국의 주가 수준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됐다"고지적한 1996년 12월의 그린스펀 FRB 의장의 언급 역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다. 1999년 8월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한 뒤 그린스펀 의장은 앞으로 FRB가 금리를 결정할 때 주가 수준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식시장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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