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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어떤 왕이 전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고도 자기만은 이것을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는 유익하지만 말하는 사람에게는 해롭다, 미움을 사기 때문에. 그런데 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왕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왕의 이익을 도모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이런 불행은 분명히 신분이 높을수록 더 크고 더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분이 낮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항상 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영원한 환각일 뿐이다. 서로를 속이고 피차 아첨하기만 한다. 우리에 대해 우리의 면전에서 마치 우리가 없을 때처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 사이의 결합이란 오직 이 상호 기만 위에 서 있을 뿐이다. 만약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친구가 자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설사 그가 진실되게 사사로운 감정 없이 말하였다 해도 존속할 우정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 안에서나 타인에게나 위장이고 기만이고 위선일 뿐이다. 그는 타인이 자기에게 진실을 말해 주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타인에게 진실을 말하기를 피한다. 정의와 이치에서 이토록 동떨어진 이 모든 성향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천성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71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에서

 

 

(나의 생각)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작년 여름에 뜬 블룸버그 통신의 그 기사마저도 여태까지 '보고'가 안 된 건 아닐까?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연설 덕분에(?) 이제는 삼척동자까지도 훤히 알게 된 그 유명한 뉴스 말이다.

또한 철 지난 외신 보도를 부각시킨 것만으로도 그토록 발끈한 게 다 '진실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던 걸까.

파스칼의 이토록 날카로운 글 한 대목을 읽으니 갑자기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 * *

 

 

진실에 대한 혐오에는 갖가지 정도가 있다. 그러나 이 혐오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확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애심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책망해야만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갖가지 우회적이고 부드러운 표현을 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그릇된 조심성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결함을 축소시켜야 하고 이것을 변명하는 척해야 하며 칭찬과 함께 사랑과 존경의 표시를 섞어야 한다. 이 모든 것으로도 이 약이 자애심에 쓰디쓴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자애심은 가능한 한 그 최소량을 취하되 항상 불쾌감을 가지며 또 왕왕 이 약을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해 남모를 원한을 품는다.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이익을 얻게 될 때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우리를 대해 준다. 진실을 혐오하기에 진실을 덮어주고 아첨받기를 바라기에 아첨하며 속임당하기를 바라기에 속인다.

 

출세의 길을 여는 행운의 각 단계마다 우리를 진실에서 더욱더 멀어지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면 유리해지고 반감을 사면 불리해지는 그런 인물들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을 더욱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70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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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5세와 35세 때의 내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미 몇 갑절이나 내가 아니게 되었던가!
 - 몽테뉴

 

 * * *

 

우리가 지나온 세월을 잊어버리기는 얼마나 쉬운가.

 

몽테뉴는 『수상록』을 쓰면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나이에 대한 흥미로운 단상들을 자주 내보였다. 그가 재치있는 말로 풀어 놓은 각각의 나이에 대한 느낌들은 음미할 때마다 새롭다. 그는 카메라와 같은 기막힌 물건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자신을 그려 놓은 옛 초상화를 보면서 자신의 변화를 깨닳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젊을 때의 한 순간을 붙들어 매는 작업이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었을까.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부터 찾아야 했고, 예약 날짜를 잡아야 했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꼼짝도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을 터이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울 지경이다. 더군다나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전파할 수도 있다. 수단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단체 카톡방,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페, 블로그, 인터넷 서재 등등 도처에 SNS는 넘쳐 나니까.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카메라는 대표적인 귀중품이었고, 사진을 찍는 데는 적잖은 돈이 들었다. 필름값 따로, 현상비 따로, 인화비 따로, 때로는 사진을 조금 더 크게 확대하는 데에도 별도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니 사진을 남기는 일은 아주 특별한 때에나 생각할 일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초상화나 사진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음악, 특정한 음식, 특정한 사물만 있어도 우리는 단숨에 과거로 뛰어들 수 있다. 그런 사물들 가운데 책이 빠질 수는 없다. 맞아, 맞아, 바로 그 무렵에 내가 그 책을 읽었었지, 하는 느낌이야말로 그 순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강력한 사다리가 아니고 무엇이랴. 더군다나 그 책을 읽은 기록까지 더불어 발견한다면!

 

그런 기록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물건 하나가 바로 일기장이다. 옛날엔 노트조차 귀한 물건이어서 일기장 따로, 독서 노트 따로, 하는 식으로 여유를 부릴 계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일기장에 담긴 독서 기록이야말로 특정한 사람들에겐 아날로그로 남겨진 최고의 기록 문화 유산이 아닐 수 없었다.

 

어제는 겨울호랑이 님의 글을 읽다가 홀연 '채근담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채근담을 내가 언제쯤 읽었더라,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게 너무 까마득한 과거였기 때문이다. 아마 30년은 족히 지났음에 틀림없었다. 찬찬히 따져보니 아직 40년은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채근담을 읽은 건 대학교 2학년 진학을 코앞에 둔 무렵이었다. 책 내용이 그 당시 내 마음에 얼마만큼 쏙 들어 왔던지, 한자 공부를 겸한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얼마씩이라도 꼬박꼬박 일기장에 옮겨 보자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런 마음이 아직까지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 그런데 저 책 속에 담긴 내용은 어느새 내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굳은 결심마저 느껴지는 한자 또한 까마득히 낯선 글자로만 느껴진다.

어느새 내가 이토록 그때의 나 자신과 멀어졌단 말인가.

 

 

 

 

두 번째 문장을 보니 더욱 기가 막힌다.

점염, 기계, 연달, 박로, 곡근, 소광 등등이 모두 딴 세상의 낱말 같다.

도대체 언제 내가 저런 한자를 쓴 일이 있기나 했던가 싶다.

 

 

 

 

아하, 옥온주장(玉韞珠藏)이라는 말도 있었구나!

 

 

 

 

이 대목은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다행인지!

 

 

 

 

만일 말마다 귀에 기쁘고, 일마다 귀에 쾌하면,

이는 곧 인생을 들어 짐독(鸩毒) 속에 묻음이니라.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짐독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낯설고 멀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짐새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새이길래 깃에 있는 독이 그토록 맹렬하단 말인가.

 

 

 

 

이날 하루는 진도가 꽤 나간 듯하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이날도 성과가 그리 나쁘진 않다. 아무튼 하루라도 건너뛰는 일은 없어야 옳다.

 

 

 

 

불궤라는 말도 다 있구나.

불궤(不匱) : 다함이 없음, 오래 지속됨.

 

 

 

 

여전히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구나.

 

 

 

 

그래도 꾸준히 여기까지 이어져 온 모습만은 좋아 보인다. 어쨌든 작심삼일과는 거리가 머니까.

 

 

 

 

이날 적은 기록은 아무래도 '채근담'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다.

고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한시 중에 암송하고 있는 시들을 한자로 그냥 한 번 써 본 듯하다.

 

 

 

 

이 무렵에 읽었던 소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도 있었다.(사진은 채근담을 기록한 일기장의 맨 뒷쪽 부분이다.) 목차 속에 천연덕스럽게 보이는 한자들이 지금은 영 낯설기만 하다.

 

아, 참. 채근담의 추억을 떠올려 준 겨울호랑이 님의 글 속엔 마침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도 끼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군복무 시절에 읽었었다. 대략 84년쯤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책의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때의 독서 기록은 아마도 PX에서 구입한 노트에 적었지 싶은데(유난히 볼펜똥이 많이 나오던 볼펜도! 그래서 글씨가 번져 보인다. 그에 비하면 일기장은 얼마나 품질이 좋은지!), 1,2년 사이에 글씨체가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제는 손글씨를 쓸 일조차 거의 없다. 이제는 글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쓴다!

 

 

"오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오오, 멋진 신세계여!"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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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으실땐 필사광이셨군요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굿뜨~☕️

oren 2019-02-09 20:46   좋아요 1 | URL
암튼 원문이 한자로 된 책을 베껴보기는 『채근담』이 처음이지 싶어요. ㅎㅎ

syo 2019-02-09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같은 자는 태어나기도 전에 oren님은 이미 벌써 오늘날의 저를 꿀떡 씹어드실 만큼의 소양을 갖추신 상태셨군요.....

oren 2019-02-09 22:36   좋아요 0 | URL
오, 오, 오십이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모름지기 옛말에 후생이 가외라 하였으니, 그저 후생이 두려울 뿐입니다...
* * *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막시무스 2019-02-09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체가 너무 부럽습니다! 힘차고 자신감이 강해 보이네요!

oren 2019-02-09 23:3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입대 이전에 쓴 글씨들은 어딘지 모르게 초딩스러워 보여서 별로 마음에 안 들고,
입대한 뒤로 조금씩 가다듬은 글씨체는 그나마 차분한 느낌이 들어 조금 나아졌다 싶기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9-02-15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십니다. 필체가 좋습니다. 볼 줄 모르지만 필체에서 꼿꼿한 정신이 느껴집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하는 형, 원칙을 중요시하는 형.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형 같습니다.
혹시 오렌 님은 의지의 사나이 이십니까? ㅋ

oren 2019-02-15 14:42   좋아요 1 | URL
그런데 페크 님께서는 아주 캐캐묵은 옛날에 써 놓은 글씨체 하나를 보고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시는 거 아닙니까? 거,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잖습니까. 지금 우린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 * *
지금 지금 우리는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 것
분명 네가 알고 있는 만큼 나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달라졌다고 먼저
말할 자신이 없을 뿐

농부 2019-12-20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채근담 읽어보고 싶어요 !

oren 2019-12-20 20:46   좋아요 0 | URL
네... 채근담 꼭 읽어보세요~~

ULYSSEZ 2020-06-19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상입니다..
지금도 알라딘에 글을 올리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했던 ‘채근담‘ 에서 멈춰서 다 읽고 감사한 마음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링크를 알게되었지만, 기억해 두었다 보고 싶을 때 또 오겠습니다.

2020-06-13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이라는 상품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첫 작품 출판에 얽힌 아픈 일화가 겹쳐 떠오릅니다. 소로우도 작가적 재능은 탁월했지만 (『월든』으로 대박이 나기 전까지는) 늘상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작가였고, 초판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작가님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실패를 겪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오로지 자신의 처녀작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일부러 월든 호숫가로 나가 오두막을 짓고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소로우는 자신의 처녀작을 인쇄해 줄 출판사마저 구하지 못했고,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간신히 돈을 빌려 자비로 출판한 초판 1,000권 중에서도 4년 동안에 팔린 책이 겨우 294권에 그쳤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기증본 75권이 포함된 수치라고 하고요. 그에 비하면 작가님의 첫 소설집은 정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작가님이 번역하신 책들은 워낙에 큰 출판사에서 밀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니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흥행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

 

 * * *

 

얼마 전에는 한 원주민 행상이 우리 동네에서 상당히 유명한 변호사의 집에 바구니를 팔려고 왔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사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아니요, 우리 집에는 바구니가 필요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원주민은 "뭐라고요! 우리를 굶겨죽일 생각입니까?" 라고 소리치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원주민은 주위 백인들이 열심히 일하면 잘사는 걸 보고, 특히 변호사가 변론을 잘 짜내기만 하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재물과 지위가 따르는 걸 보고 '나도 사업을 해야겠다. 바구니를 짜야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짜면 자기 일을 끝낸 것이 되고 그렇다면 백인들은 당연히 바구니를 사야 하는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 백인들이 살 만한 가치 있는 바구니를 만들거나, 적어도 백인들이 바구니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살 만한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나도 가늘게 쪼갠 나무로 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본 적이 있었지만, 백인에게 팔 만한 것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102 하지만 나는 바구니를 엮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남들이 살 만한 바구니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굳이 팔지 않아도 괜찮은 방법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는 삶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른 모든 방식의 삶을 짓밟아가며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할 이규가 어디에 있는가?(54∼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2. 소로우의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을 가리킨다.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소로우는 출판사에 빚진 290달러를 갚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소로우는 1853년 10월 27일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엉뚱하게 '출판업자'라 불리는, 내 책을 출간해준 출판사가 아직 팔리지 않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재고들을 어떻게 처분해야겠느냐고 묻는 편지를 지난 한두 해 동안 가끔 보내다가, 재고들이 차지한 공간을 그들이 급히 싸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내게 알려왔다. 그래서 나는 전부 여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그 책들이 속달로 오늘 도착했다. 짐마차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4년 전에 먼로에게 사서 그 이후로 조금씩 값을 치렀지만 아직 완납하지 못한 1,000권 중 남은 706권이었다. 그 책들이 마침내 내게 보내졌고 이제야 내 물건들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책들을 등에 짊어진 채 층계참을 돌고 두 계단을 올라, 그것들이 원래 있었을 곳과 비슷한 공간까지 옮겼다. 290권 남짓한 책들 중 75권은 기증하고 나머지가 겨우 팔린 것이었다. 이제 나는 거의 9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고를 갖게 됐지만, 그중 700권 이상이 내가 쓴 책이다. 저자가 자신이 기울인 노고의 열매를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들이 내 방 한 귀퉁이에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다. 내 오페라 옴니아(opera omnia, 모든 저작물-옮긴이)다. 내가 원작자고, 내가 머리를 짜내 빚어낸 작품이다.(일기 5:459)

 

 

 

자신의 처녀작 출판을 도와줄 곳을 찾지 못해 끝내 자비로 - 그것도 에머슨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 출판한 첫 책이 저토록 참담한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저런 내용을 남겨 놓는 여유를 즐겼다. 그런 내공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불후의 걸작인 『월든』이 탄생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월든』에서 방금 인용한 문장에 잇따라 이어지는 다음 대목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로 간 진정한 까닭'을 밝히는 부분이므로 덧붙여 인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뜻밖에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오해하기 때문이다.(물론 소로우가 직접적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대신에 일부러 다른 일에 빗대어 말장난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시민들이 내게 법원의 일자리나 목사 보조 등 그 밖의 먹고살 만한 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힘으로 먹고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여느 때보다 열심히 숲으로 얼굴을 돌렸다. 숲에서는 내가 그런대로 얼굴이 알려진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자본금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중에 있는 빈약한 수단을 사용해서 곧바로 내 사업103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에서 힘들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사업104을 하고, 상식도 없으며 계획을 해서 사업을 꾸려갈 만한 재능도 없어 어리석게는 보여도 그만큼 한심하게는 보이지 않을 일을 하는 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3. 여기에서 '사업하다'는 어떤 경제적 이득이나 생활의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관심 있는 일이나 신경 써야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힘쓰겠다는 뜻이다. 뒷 문장에 쓰인 '개인 사업'과 맞추어 말장난한 것이다. 

 

104. 개인 사업은 1842년 파상풍으로 사망한 형에게 바친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을 쓰는 것을 가리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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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신은 세부에 깃든다”란 말을 했는데 진짜 디테일에 강하신 오렌님^^ 굿밤하소서~

oren 2019-02-09 13:35   좋아요 1 | URL
시오노 나나미가 저런 고상한 말도 남겼군요.^^
저랑 그다지 큰 연관은 없는 얘기겠습니다만,
그래도 뜨거운 격려의 말씀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9 14:23   좋아요 1 | URL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오렌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oren 2019-02-09 14:27   좋아요 1 | URL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9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oren님께서 알려주신 소로우의 일화에 오늘 페이퍼의 글까지 읽으니 한결 이해가 깊어진 것 같습니다.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간 것이 개인 사업과 삶을 위한 것임을 알고나니, 깨달음을 위해 반드시 가톨릭의 ‘피정‘이나 불교의 ‘동안거‘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 2019-02-09 13:48   좋아요 2 | URL
아무리 그래도 하버드 졸업식때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할 정도로 탁월했던 젊은 청년이 ‘속세의 성공‘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호숫가에 외딴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면서‘ 불후의 작품을 쓰겠다고 한 걸 보면 대단한 결심과 비범한 실천력을 갖춘 인물임이 분명한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처녀작이 참담한 실패를 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월든』으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더 감동적이더군요.

처녀작을 에세이로 쓰기 전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으로부터 오랫동안 개인 과외 교습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작시(作詩) 훈련을 받았으나, 마침내 ‘자신의 시재(詩才)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수많은 자작시들을 단칼에 모조로 불태웠다고 하고, 그 시들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게 없다고도 합니다.
 

 

살다 보면 아주 가끔씩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아!

 

물론 대개는 그럴 때 죽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정녕 죽어도 좋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지, 결코 죽음으로 뛰어들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투심이라는 격정에 휩쓸려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이고야 만 오셀로에게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런 질문은 하나마나다. 격분에 사로잡힌 그가 아무런 죄도 없는 아내를 죽이고 난 직후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졌을 때다. 그는 곧장 자결한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직후 로도비코(베네치아 귀족)가 자신의 행적과 인간성을 베네치아 정부에 고할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라고 말한다.

 

무엇을 줄이거나

악의로 적지도 마시오. 그러면 당신은

분별없이 너무 많이 사랑했던 사람을

질투를 쉽게 하진 않지만 하도록 만들면

극도로 혼란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자기네 부족보다 더 값진 진주를 던져 버린

비천한 인도인 같은 자를, 차분한 두 눈은

기분 따라 쉬 녹진 않지만 아라비아 나무가

약용 진액 흘리듯 눈물을 줄줄 쏟는 사람을

말해야만 할 것이오.

 

 - 『오셀로』, 제5막 제2장 중에서

 

 

그는 함부로 질투심을 일으키는 시덥잖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갖춰야 할 용기와 위엄을 두루 지녔고, 정직성과 당당함뿐 아니라 다정다감한 감정까지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 중이던 베네치아는 키프로스 섬을 지키기 위해 용병대장 오셀로를 총독으로 파견한다. 베네치아 함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던 오셀로 일행은 도중에 격렬한 태풍을 만나 뿔뿔이 흩어진다. 뒤늦게 간신히 그 섬에 당도한 오셀로는 아내 데스데모나가 자신들보더 도리어 먼저 키프로스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 걸 알고는 좋아서 까무러칠 지경이다. 그때 오셀로가 느낀 황홀감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격정적인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오, 내 영혼의 기쁨이여,

폭풍 뒤에 언제나 이런 평온 깃든다면

바람은 죽음을 일으킬 때까지 불고 불어

고생하는 돛단배를 바다 언덕 저 위로

올림포스만큼 올렸다가 천국에서 지옥 가듯

다시 내리꽂아라. 난 지금 죽어도 지금이

가장 행복할 것이오, 왜냐하면 내 영혼은

절대 만족 맛봤기에 이 같은 안락이

미지의 운명 속에서도 이어질 것인지

염려하기 때문이오.

 

 - 『오셀로』, 제2막 1장 중에서

 

이 장면에서 오셀로가 느끼는 감정은 절정의 행복감이지만, 그 이면에는 벌써부터 미래에 심상찮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염려가 끼어든다. 이런 행복이 과연 '미지의 운명 속에서도 어어질 것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국, 오셀로는 이아고의 유혹 장면에서 너무 쉽게 질투심에 불타오르고, 전후 사정이나 자초지종을 자세히 살펴 보지도 않은 상태로, 이아고에게 휘둘린 끝에 아내인 데스데모나와 부하인 카시오 사이의 불륜을 갑자기(!) 확신한다.

 

물론 여기서 오셀로의 질투심이 빚은 비극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오셀로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가 오셀로의 질투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한 트릭이 너무나 교묘하고 그 효과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오셀로에게는 쉽게 파멸에 이르는 또 한 가지 약점을 더 지니고 있었다. 데스데모나와 자신의 결혼이 결코 탄탄한 바탕 위에 이뤄진 게 아니고, 갑작스런 유혹으로 이뤄진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그는 피부조차 검은 나이 많은 무어인이었고, 데스데모나는 베네치아에서도 소문난 미모를 갖춘 고관대작의 딸이었으니 말이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의 틈을 벌이기 위해 그런 점까지도 교묘히 파고든다.

 

"데스데모나가 이 무어인을 계속 오래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중략) 그도 마찬가지고. 그녀로선 격정적인 출발이었으니까 그에 걸맞은 결별을 보게 될 거야.(중략) 이 무어인들은 욕심이 변하는 자들인데(중략) 지금은 그에게 캐롭처럼 맛있는 음식도 머지 않아 땡감처럼 떫은 맛이 날 거야. 그녀는 그를 젊은 남자와 바꿔야 해. 그의 몸에 물리게 되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알 테고 사람을 바꿔야만 해. 반드시."

 

이아고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나쁜 악당이지만 그만큼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은 늘상 변하게 마련이고, 그 변화는 욕망이 좌우하며,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관계처럼 서로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결합은 그 열기가 식을 경우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이다. 이아고는 그걸 끊임없이 강조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여 마침내 스스로 파멸할 때까지. 이런 천하에 몹쓸 악당!!

 

 * * *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라리사는 런던에 사는 쉰두 살의 여성이다. 그녀는 유월 중순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에 꽃을 사러 집을 나선다. 그날 저녁에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날따라 그녀는 기분이 몹시 상쾌한 느낌을 받는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

 

그녀의 의식은 여기서 곧장 열여덟 소녀 시절로 날아간다.(소설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래 문장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소위 '의식의 흐름 기법' 때문이다. 문장 사이의 도약 덕분에 '과거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 부어턴에서 프랑스식 유리문을 열어 젖히고 ㅡ 그 문의 경첩이 약간 삐걱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ㅡ 활짝 열린 대기 속으로 뛰어들 때면 언제나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얼마나 신선하고, 얼마나 고요했던지. 물론 오늘 아침보다도 더 조용했었다. 파도의 찰싹임처럼, 파도의 입맞춤처럼, 싸늘하고 날카롭고 그러면서도 (당시 열여덟 살이던 소녀에게는) 엄숙했다. 거기 그렇게 열린 창문 앞에 서 있노라면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꽃들과, 나무들과, 나무들을 감돌아 지나가는 연기와, 갈까마귀들이 날아오르고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서 있노라면.(7∼8쪽)

 

 

유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에 꽃을 사러 집을 나선 클라리사가 맨 처음으로 떠올린 추억 속의 그 사람은 피터 월시였다. 한때 너무나 격정적으로 사랑했고, 벌써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와의 아픈 이별만 생각하면 가슴앓이를 겪어야만 하는 남자, 옥스퍼드를 중퇴하고 지금은 영락한 처지지만 늘 보고픈 남자가 피터였다. 

 

그가 곧 돌아온다지. 유월, 아니면 칠월? 잊어버렸다.

 

피터에 대한 추억들도 어느새 뇌리에서 사라지고 얼마쯤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클라리사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옛 친구는 샐리 시튼이었다. 그녀는 여러모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여자 친구였다. 클라리사에게서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재능과 개성들을 지닌 그녀. 샐리는 정말이지 사람들을 너무 자주 놀라게 했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 것은 샐리에 대한 감정의 순수함, 그 완전함이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과는 달랐다. 전혀 사심이 없고, 여자들, 막 사춘기를 지난 여자들 사이에나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 편에서는 다분히 보호자 같은 감정이기도 했다. 둘만의 연맹이라도 맺은 듯한 느낌, 자신들을 갈라 놓을 무엇인가에 대한 예감(그들은 결혼을 항상 파탄으로 이야기했다)에서 생겨난 이 기사도적인 감정은 샐리보다는 주로 그녀 편에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 시절 샐리는 정말이지 겁이 없어서, 허세를 부리느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감행하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테라스 난간 위를 달린다든가, 여송연을 피운다든가, 묘한, 아주 기묘한 애였어. 하지만 그 매력은 대단했지.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랬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밤에 자기 침실에서 더운물이 든 병을 손에 든 채로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이 지붕 아래 있어 ……. 그녀가 이 지붕 아래 있는 거야!> 하고 소리 내어 말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했다.(48∼49쪽)

 

 

그녀가 세월의 변천에 따라 얼마만큼 많이 그녀와 멀어지고, 그 모습조차 서로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는지는 새삼 물어볼 필요도 없다. 소설의 말미에서 클라리사는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찾아 온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쓰느라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나 마찬가지였던 옛 친구들인 피터 월시와 샐리 시튼과는 살가운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클라리사가 피터와 샐리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이런 말들 뿐이었다. 「하지만 가봐야 해.」 「나중에 올게. 기다려.」 이 모든 사람들이 가버릴 때까지...

 

클라리사와 샐리 사이에 언제나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그 옛날의 특별한 감정들이 언제 연기처럼 갑자기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다만 그 두 사람 사이에 언젠가 한 순간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라고 느꼈던 그런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아니, 그런 말들은 이제 아무 뜻도 없었다. 그 옛날 감정의 희미한 메아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흥분하여 몸이 떨리는 기분, 반쯤 취한 기분으로 머리를 빗던 것은 기억할 수 있었다(머리핀을 빼어 화장대 위에 놓고 머리를 빗기 시작하니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창밖의 분홍빛 저녁노을 속에서 갈까마귀들이 퍼덕이며 날던 것도.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홀을 가로지르면서 <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 하는 심정이 들었다. 그것이 그녀의 느낌 ㅡ 오셀로의 느낌이었고, 그녀는 셰익스피어가 오셀로에게 불어넣었던 만큼이나 강렬하게 그런 심정을 느끼고 있다고 확신했다. 오로지 새햐얀 드레스를 입고 샐리 시튼을 만나러 저녁 식탁에 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49쪽)

 

 

 * * *

  

『댈러웨이 부인』의 주인공 클라리사는 샐리 시튼과 남녀간의 애정 비슷한 감정을 느낄 만큼 특별한 사이였다. 싱그러운 꽃처럼 모든 게 향기롭게 피어나던 시절엔 그랬다. 그녀는 샐리 시튼 때문에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결혼까지 할 뻔했던 피터조차도 그럴 땐 그녀와 샐리 사이를 가로막는 훼방꾼일 뿐이었다.)

 

그 모든 것이 샐리를 위한 배경일 뿐이었다. 샐리는 벽난로 곁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음성은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정한 애무처럼 들리게 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빠도(그는 그녀에게 빌려 준 책이 테라스에서 푹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 후로 쉬이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있었는데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이런 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니!」 그래서 그들은 모두 테라스로 나가 이리저리 걸었다. 피터 월시와 조지프 브라이트코프는 줄곧 바그너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녀와 샐리는 조금 뒤에 처졌다. 그러고는 그녀의 평생 가장 황홀한 순간이 다가왔다. 꽃이 담긴 돌항아리 곁을 지날 때였다. 샐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꽃을 한 송이 꺾어 들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온 세상이 거꾸로 도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녀는 샐리와 단둘이 있었다. 선물을 받았는데, 꽁꽁 포장한 선물을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어,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이아몬드나 뭔가 무한히 소중한 것이 겹겹이 싸여 있었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동안 그녀는 살짝 그것을 열어 보았던가, 아니면 그 타는 듯한 광채가, 계시가, 종교적인 감정이, 뚫고 나왔던가! ㅡ 그때 조지프 노인과 피터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별을 보는 거야?」 피터가 말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화강암 벽에 얼굴을 찧은 것만 같았다! 난데 없고, 끔찍했다!(50∼51쪽)

 

 

그토록 소중한 친구였던 샐리가 언젠가부터 클라리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존재로, 또한 서로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의 표층 아래에 도사린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자 삶의 아이러니다.

 

「나중에 올게요.」 그녀는 서로 악수하고 있는 옛 친구 샐리와 피터를 보며 말했다. 샐리는 뭔가 옛날 기억이 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에는 그 옛날의 매혹적인 울림이 없었고, 그녀의 눈은 예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스펀지 백을 가지러 간다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복도를 내달리던 그 시절처럼. 앨렌 엣킨스는 말했었다. 「신사분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러나 모두들 그녀를 용서했다. (중략) 대담하고 무모하고 자기가 모든 일에 중심이 되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능히 그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클라리사는 뭔가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리라고, 때 아닌 죽음이라든가 순교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그녀는 결혼을 했고, 그것도 커다란 단춧구멍만큼 머리가 벗어진, 맨체스터의 방적 공장 주인과 결혼을 해서, 아들을 다섯이나 두었다고 한다!(236∼237쪽)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오셀로가 했던 말을 버지니아 울프가 클라리사에게 다시 부여한 것은 생각할수록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악당 이아고가 했던 "지금은 그에게 캐롭처럼 맛있는 음식도 머지 않아 땡감처럼 떫은 맛이 날 거야." 라는 말은 클라리사와 피터와 샐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절묘하게 들어맞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땡감처럼 떫은 맛은 알겠는데 캐롭은 도대체 무슨 맛이냐고? 글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 아닐까. 아무튼 기분이 너무 좋을 땐 꼭 '죽여준다'는 느낌이 들 테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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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2-02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아고의 이간질이 오셀로의 파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작품에서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아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가짜뉴스가 생각나네요... 시대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문호의 힘이라 생각됩니다. 글을 읽다보니, 오셀로가 향하는 곳이 베네치아에게는 비극적인 ‘파마구스타 함락‘의 아픔이 있는 키프로스라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베네치아의 아픔과 오셀로의 아픔을 같이 보이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oren님 항상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9-02-02 16:5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가 『오셀로』를 쓴 때가 1601∼1604년 무렵이었는데, 이때는 벌써 오스만 투르크가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로 세력을 떨칠 때였죠. 『오셀로』의 시대 배경이 1571년에 일어난 역대급 전쟁이었던 <레판토 해전> 직전의 어느 시기, 다시 말하자면 ‘파마구스타 함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조차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한창 전운이 감돌던 위태로운 시기의 어느 한 때였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키프로스 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던 <레판토 해전>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참전해서 왼팔을 잃는 바람에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쟁으로도 기억되는데, 문득 거기가 어디쯤인지 찾아보니 레판토는 그리스의 파트레 만 근처이며 현재는 나브팍토스라 불린다는군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7: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제가 알기로는 레판토 해전 직전에 파마구스타가 함락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 못 알았나 봅니다. oren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oren 2019-02-02 17:04   좋아요 1 | URL
제 댓글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군요.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순서는 겨울호랑이 말씀이 맞습니다. <레판토 해전>(1571년>이 있기 전에 ‘파마구스타 함락‘(1570년)이 일어났고, 그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어드메쯤이 『오셀로』의 시대 배경이 아닐까 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2 17:13   좋아요 1 | URL
^^:) 네 oren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시대적 배경에 몇 년의 차이는 작품의 생명력에 비한다면 소소한 문제라 여겨집니다. ^^:) 세익스피어 작품 여러 곳에서 베네치아가 언급된 것을 보면, 베네치아는 지금과는 달리 강대국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oren 2019-02-02 17:32   좋아요 1 | URL
베네치아는 딱 한 번 가봤는데, 이름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정말 환상적인 도시더군요. 수많은 작가들이 베네치아(혹은 베니스)를 무대로 작품을 썼던 것도 이해할 만하고요. 나폴레옹이 거길 차지하고 앉아서 ‘유럽의 응접실‘로 불렀던 것도 그럴 듯하다 싶고요. 전 가끔씩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도 한답니다. 어딜 가나 두루 아름답고, 한때 몹시 번창했고, 세련됐고, 매혹적이고, 역사적이고, 음악적이고, 종합적으로 너무 예술적인 도시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7:39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을 듣고보니 베네치아에 꼭 가보고 싶어 집니다. 괴테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베네치아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것을 보면 많은 것을 품은 도시라 여겨집니다^^:)

oren 2019-02-02 17:54   좋아요 1 | URL
문득 궁금해서 방금 알라딘 도서 검색에서 ‘베니스‘를 검색해 보니 189종의 책이 나오네요.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 말고도 아주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 보입니다.^^

<릴케의 베네치아 여행>도 있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작품도 보이고, 국내 작가가 쓴 <베니스에서 죽다>라는 작품도 보이네요. 심지어는 <책공장 베네치아>라는 책도 있고요.^^

겨울호랑이 2019-02-02 18:21   좋아요 1 | URL
^^:) 이런. 이 정도면 유럽 지식인들에게 베네치아는 관광지가 아니라 순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는 ‘유럽 문명의 성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oren 2019-02-02 19:20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베네치아는 ‘복식부기의 발상지‘로도 기억할 만하네요. 『1494 베니스 회계』라는 책을 보니 문득 그 책을 번역한 분이 제게도 한 권 선물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2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두 분 대화에 낄 수가 없네요 거장이란 고래 사이에 카알 새우 등 터지는 소리! 🎶

oren 2019-02-03 12:39   좋아요 1 | URL
카알 새우는 과연 어떤 맛을 지닌 새우일까요? 너무 궁금하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9-02-03 13:27   좋아요 1 | URL
카알 새우는 맛 옵써요 ㅋㅋ
 
190119Sat - 190121Mon

 

 

어제는 syo 님의 글을 읽다가 내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 하나를 발견하고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내가 발견한 문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눈이 마음의 모양을 결정하듯, 마음이 눈의 기능을 여닫는다. 우리의 눈은 그저 있는 것을 보는데 쓰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고, 당연히 보일 것이라 믿는 것을 보여주는 물건이다.

 

syo 님의 저런 멋진 표현을 읽는 동안에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자연』이라는 수필에서 언급했던 '투명한 눈알' 이었다.(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에는 마침 커다란 눈알을 그린 '삽화'까지 실려 있어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었다. 사람의 얼굴 전체가 눈알로만 묘사된 특이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에 딸린 부연 설명은 지금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크랜치가 1839년에 그린 「투명한 안구」 삽화.)

 

syo 님의 이토록 멋진 표현을 근사하게 뒷받침할 만한 '에머슨의 어록'이 어디 없을까 하고 얼른 뒤져 봤더니 마침 그럴싸한 인용문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얼른 '가위질'을 해서 댓글창에 오려붙였었다. 내가 좁디좁은 댓글창에 무람없이 우겨넣은 내용은 (구차스런 반복이지만)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염주처럼 기분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그 기분들을 하나씩 겪어나갈 때, 그들은 그 자신의 색깔로 세상을 칠하는 다채색 렌즈라는 것을 드러낸다. 기분은 각기 초점에 잡힌 것만을 현시하기 때문이다.(175쪽)
- 랄프 왈도 에머슨, 신문수 옮김,『자연』, <경험> 중에서

 

혹은,

 

인생이란 한 줄에 꿰인 염주와 같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연속인 것이다. 우리가 이들을 하나하나 통과하며 지나갈 때, 이들은 모두 각기 독특한 빛깔로 세상을 물들이고, 각기 자기의 초점 속에 들어오는 것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형형색색의 만화경의 렌즈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47쪽)

- 랄프 왈도 에머슨, 이창기 편역, 『자신감』, <경험> 중에서

 

 

이처럼 내가 다른 글에서 언젠가 한번쯤 인용했던 문장들을 다른 사람들의 댓글창에서 '얼른' 되살려 내는 건 내가 지닌 고약한 버릇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댓글창이 너무 좁다는 생각 때문에 '똑같은 원문의 다른 번역' 하나는 일부러 오려붙이기에서 생략했더랬다. 너무 크게 오려붙이면 어쨌든 흉해 보이니까 말이다. 그때 생략했던 부분을 여기에 마저 끌어오면 다음과 같다.

 

인생이란 유리구슬을 꿰듯 여러 감정mood을 줄줄이 엮어가는 것이다.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저마다 그만의 색조로 세상을 비추고 그만의 초점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빛깔의 렌즈와 같다. 우리는 구슬을 꿰듯 그 갖가지 감정들을 하나씩 통과해 간다.

 

에머슨의 에세이 <경험>에 나오는 글귀다. 그해 봄 일기에 이 에세이를 써내려가던 에머슨은 아들을 잃은 비통한 심정에 젖어 있었다. 전적으로 '정직하게만' 인생을 묘사하기로 맘먹고 예전과는 완전히 딴판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곡진하게 체험하면 어떤 확신을 갖게 되듯이, 인생무상의 세계관으로 삶을 바라보았다.(117쪽)

 

 - 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에머슨 가족의 한 사람이 되다> 중에서

 

syo 님의 글을 얼마쯤 장식해 줄 수도 있는 댓글창의 '부연 설명'으로는 어쩌면 이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한번 떠오른 '투명한 눈알'에 대한 이미지가 떠날 줄을 모르고 계속 눈에 밟혔다. 에머슨이 『자연』에서 '투명한 눈알'에 대해 남겼던 말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던가, 에머슨과 줄곧 한 동네에 살았던 평생의 절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그걸 또 어떻게 발전시켰던가, 그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각인된 '투명한 눈알'은 결국 어떤 책의 주석에서 그 비밀의 '연결 고리'를 드러냈던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 부지런히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로우의 책에 담긴 표현들은 아주 빠른 시간에 찾아낼 수 있었다. 우선, 그것부터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물들이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시선이 가는 경로에서 벗어나 있기보다는 우리의 정신과 눈을 그쪽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젤리(jelly)에도 보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우리 눈 자체에도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39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혹은 얼마나 가까이 좁게 보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자연현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이런 이유로 인해 사는 동안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는 단지 자신의 정원만 본다.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공급은 수요에 응한다.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40  풍경은 우리가 소중히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ㅡ한 티끌의 더도 아니라 ㅡ의 아름다움만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어떤 사람이 한 특정한 언덕 꼭대기에서 보게 될 실제 사물들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될 사물과는 바라보는 사람이 다른 것만큼 상이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 진홍참나무가 이미 당신 눈 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어떤 것을 볼 수 있다.ㅡ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만 본다. 풀 연구에 빠져 있는 사람은 가장 멋진 평원의 참나무들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는 말하자면 걸어다니다가 자신도 모르게 참나무들을 밟아 뭉개버리거나 기껏해야 그 나무들의 그림자만 본다. …… 그렇다면 지식의 다른 분과에 주목하려면 우리의 눈과 정신이 얼마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가! 시인과 자연주의자들은 얼마나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는가!(216∼218쪽)

 

주석)

39) 소로우는 여기서 사람의 안구가 젤리 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의 생각)

여기서 소로우가 '젤리'를 떠올린 까닭은 아마도 스승이자 친구였던 에머슨의 수필 속에 언급된 '투명한 안구'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야 그걸 알았지만, 이 글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40)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에서 나온 표현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6. 가을의 빛깔들> 중에서

 

 

소로우는 이런 문장을 쓰고 나서도 그게 다소 미진했던지 이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또다시 꺼낸다. 나는 영어 표현에서 '눈의 사과'라는 말이 있는 줄은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과나무는 구약성서에 적어도 세 군데에서 언급되고, 그 열매는 두세 번 더 나온다. 솔로몬은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노래한다. 또한 "나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라는 구절도 있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형상 중 가장 귀한 부분은 이 과실을 본떠서 "눈의 사과"7 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도 사과나무를 언급하고 있다. 율리시스는 알퀴노오스"8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배와 석류, 그리고 훌륭한 과실을 맺은 사과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호메로스에 따르면 탄탈로스가 딸 수 없었던 과일 중에 사과가 들어 있었는데 바람이 항상 불어 가지를 그에게서 멀어지도록 했다.(225쪽)

 

주석)

 

7) 눈의 사과(apple of the eye): 눈동자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다. 소로우는 시각을 인간이 가진 감각 중 가장 귀한 것으로 간주한다.

 

8) 알퀴노오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서 스케리아에 있는 파이아키아의 왕으로 나우시카의 아버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7. 야생사과> 중에서

 

 

이 정도면 소로우의 생각은 얼추 재확인된 셈이다. 이제는 에머슨의 문장을 찾아 옮길 때다. 이 작업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삽화가 담긴 페이지만 찾으면 되니까. 그렇게 해서 찾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헐벗은 대지 위에 서 있을 때 ㅡ 나의 머리는 쇠락한 공기로 멱감고 무한한 공간 속으로 들쳐올라간다 ㅡ 모든 천박한 자기 집착은 사라진다. 나는 하나의 투명한 안구 a transparents eyeball가 된다. 나는 무(無)이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적 존재의 흐름이 나를 관류한다. 나는 신의 일부가 된다. ……나는 억압되어 있지 않은 영원한 미의 애호자가 되어 있다. 미개지에서 나는 거리를 걷거나 마을에 있을 때보다 한층 소중하고 친밀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특히 먼 지평선상에서, 사람은 자신의 천성과 같은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21쪽)

 

 -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신문수 옮김, 『자연』, <자연> 중에서

 

 

그런데 '투명한 안구'가 담긴 문장들이 그리 쉽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에머슨의 문장들이 대체로 그렇다. 심지어 선문답 같은 문장들도 많다. 그렇다면 다른 책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싶어 또다른 책을 뒤져 봤다. 거기엔 이렇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하나의 투명한 눈알이 된다. 나는 무(無)로 된다. 나는 만물을 본다. 우주적 존재의 흐름이 나를 들고 잇따라 돈다. 나는 신의 일부분 또는 한 조각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친구 이름도 그때엔 아무 상관없는 바람 소리 같이 들린다. 형제나, 마음이 통하는 벗, 주인이나, 사내종이라 하는 것이 그때엔 아무런 가치 없는 귀찮은 것이 된다. 나는 끝없는 불멸의 아름다움의 애호가가 되어 있다.(314쪽)

 

 -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정광섭 옮김, 『위인이란 무엇인가/자기 신념의 철학』, <자연에 대하여> 중에서

 

 

사정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고 보니 소로우의 '젤리'와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 사이의 거리가 차츰 더 멀어지는 기분도 떨치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어떤 책에서 이 둘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가. 혹시 『주석 달린 월든』이라면 그런 내용이? 그 책엔 주석만 해도 무려 1,400여개가 붙어 있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수로 거기서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걸 찾아내기 전에 내 눈알부터 먼저 빠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혹시 모를 후일(?)을 대비해서 그 책의 여백에 일부러 '나만의 색인'을 별도로 만들어 두지 않았던가. 그걸 이용한다면 찾아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색인만 하더라도 '에머슨'이 무려 55쪽에 걸쳐, 다시 말하자면 『월든』의 거의 전 영역에 아주 골고루 분포되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일일이 해당 페이지를 뒤져볼 수밖에. 그렇게 해서 찾아낸 대목은 애석하게도(!) 그 책의 맨 끝에 있었다.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기다리는 날에야 비로소 새벽이 찾아온다.108  앞으로는 더 많은 날에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불과하다.(446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주석)

 

108. 가능성을 포착하려면 가능성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소로우는 「가을의 색깔」에서 "뭔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뭔가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기 십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일기에서는 "엽총을 갖고 다니는 사람, 즉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는 사냥감이 눈에 훨씬 잘 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하루 종일 숲을 배회하는 사람은 뭔가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숲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는 것을 우연히라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우드척을 사냥해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은 생전에 우드척을 한 번도 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산문집『비상시의 기도문』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씌어 있다. "종소리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들린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주석달린 월든』말미에 끄적여 놓은 나만의 색인. 『주석달린 월든』에서 에머슨이 등장하는 대목은 이 사진으로는 '21곳'인데, 틈날 때마다 보강한 덕분에 지금은 '55곳'에 이른다.)

 

그런데 정말 애석하게도(!) 여기까지 왔는데도 나의 궁금증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에서 시작되어 소로우의 '젤리'로 이어진 연결 고리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읽었단 말인가. 혹시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에서? 그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더이상 어디서 그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책에서는 소로우가 에머슨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얼마나 세세히 다루었던가.그래서 얼근 그 책을 펼쳐 들고 <찾아보기>를 통해 재빠르게 뒤져봤으나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과 소로우의 연결 고리를 기어이 찾아내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까지 다지면서. 그러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단지 희미한 흔적들만 여럿 발견했을 뿐.

 

 

『자연』이 전개하는 논점은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에드워드 헤일이 말한 바 있듯이 이 책의 대부분은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헨리 소로우의 반응은 달랐다. 소로우는 『자연』을 조심스럽게 읽어가며 그간 어떻게 표현할지 갈팡질팡하던 내적 방황을 끝낼 수 있어 매우 흡족했다. 그 책을 "과거의 권위를 모두 허무는 급진적인 아나키즘"의 한 표현으로 보고 좋아했다. "인간은 자연이 비추어주는 거울 속에서 자기 안에 있는 신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 에머슨의 주장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소로우는 '경험'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훗날 그는 『자연』이란 책을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노라고 고백했다.(20쪽)

 

 - 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첫 만남> 중에서 

 

 

 

여기까지 오고 나니 조금은 허탈하다. 내가 이틀 동안이나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과 소로우의 '젤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는데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미리부터 둘 사이의 연관관계를 너무 확신하거나 지레짐작했던 건 아닐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 * *

 

 

 

 

 

 

 

 

 

 

 

 

 

 

 

 

* 에머슨의 '투명한 눈알'과 소로우의 연결 고리를 찾느라 조금 무리했더니 결국 눈알이 아프다. '눈의 탐욕'이 문제다.

 

눈의 탐욕

호기심이라는 용어는 그 특징상 보는 것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독특하게 감지하며 만나게 하는 경향을 표현한다. 우리는 이 현상을 원칙적으로 실존론적-존재론적인 의도를 가지고 해석하지, 좁게 인식함에 방향을 잡지 않는다. 인식이 이미 일찍부터 그리스 철학에서 "보려는 욕망"에서부터 개념파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존재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을 모은 논문집의 첫번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 모든 인간은 본성상 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존재에는 본질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다.(234쪽)

"봄"의 기이한 우위를 누구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욕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본디 눈에 딸린 것이 보는 것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감관으로 무엇을 알려고 할 때에도 "보다"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 '들으라, 얼마나 번쩍이는지', '맡으라, 얼마나 빛나는지', '입을 대라, 얼마나 찬란한지', '만져라, 얼마나 눈부신지.' 그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보라고 말하고 이 모든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따라서 눈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을 '보라, 얼마나 빛나는지'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들어보라', '냄새를 맡아보라', '맛을 보라', '얼마나 단단한지 만져보라' 하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의 감각적 경험을 '눈의 탐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감관들도, 비슷한 점에서 인식함이 문제가 될 때면 눈이 윗자리를 차지하는 봄의 기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235쪽)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제36절 호기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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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24 0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책을 이런 식으로도 읽어낼 수 있군요.... 정말 oren님께는 끝없이 배웁니다.

많이 감탄하고 돌아섭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9-01-24 10:02   좋아요 2 | URL
‘기분은 각기 초점에 잡힌 것만을 현시한다‘는 생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알고 있던 내용일 뿐인데, syo 님이 때마침 그걸 좀 더 환하게 밝히기 위해 제게 ‘성냥불‘을 그었던 게 아니었나요? ㅎㅎ

syo 2019-01-24 10:08   좋아요 3 | URL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달지, 믿음이나 신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달지 하는 이야기는 oren님 말씀대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고, 딱히 저작권(?)이 없을만큼 공지의 사실이라 저는 더 무람없고 부담 없이 제가 느낀대로 한 줄 띡 쓸 수 있었지요.

그런데 oren님이 세밀한 관찰과 집요한 하이퍼링크를 통해 쓰신 글을 보니 비슷한 생각이라도 글로 표현되는 데서 깊이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그저 성냥만 그었는데 oren님께서 산불을 내셨어요ㅎㅎㅎㅎ

oren 2019-01-24 11:49   좋아요 2 | URL
산불이 났다손 치더라도 맨 처음 불을 낸 사람은 결국 ‘성냥을 그은 사람‘입니다. 곁에서 모박불을 좀 쬐려다가 결국 산불로 번졌다 한들 그 누가 보잘 것 없는 성냥개비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겠습니꽈!
* * *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 천부적 소질을 지니고 있고, 풍부하며 자유롭게 태어난 본성의 소유자들이 30대에 이미 ‘망쳐질 정도로 독서‘했던 것을.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서 ㅡ ‘생각‘을 주기 위해서 ㅡ 누군가가 그어주어야만 하는 성냥개비였던 것을. ㅡ 아침 일찍 날이 밝을 때, 모든 것이 신선할 때, 자기 자신의 힘이 아침놀을 맞을 때,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 ㅡ 이것을 나는 못된 습관이라고 부른다! ㅡ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카알벨루치 2019-01-24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불이야 불이야 산불이야 산불!!! 🔥 🔥 🔥

oren 2019-01-24 12:57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 님은 어째서 제 글에서 ‘산불‘을 보실 수 있다는 말입니꽈! 저는 단지 오손도손 모여 앉아 감자라도 함께 구워 먹을 따스한 모닥불이나마 피워봤으면 했는데 말입지요..
* * *
밝은 불꽃이여,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그대의 사랑스럽고 친근한 공감을 내게 거절하지 마소서.
내 희망이 아니면 무엇이 그처럼 밝게 치솟아 올라가겠는가?
내 운명이 아니면 무엇이 밤에 그처럼 낮게 가라앉았겠는가?

왜 그대는 우리의 벽난로와 응접실에서 추방당했는가?
모두에게 환영받고 사랑받던 그대였는데,
이제 우리 삶에서 흐릿하기 그지없는 흔한 빛에 비하면
당시 그대의 존재는 얼마나 환상적이었던가?
그대의 밝은 불빛은 우리 영혼과 마음에 맺는다고
신비로운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가?
너무나 대담하게 비밀까지도?
그래, 우리는 이제 희미한 그림자조차 흔들리지 않고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저 불기운이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난롯가에 앉아 있어 안전하고 안정되기는 했지만
더 큰 열망을 품지 못한다.
아담하고 실용적인 난로 옆에서
현재라는 시간은 자리 잡고 앉아
잠에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어둑한 과거에서 걸어나와 모닥불의 휘청대는 불꽃 옆에
우리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유령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카알벨루치 2019-01-24 13:3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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