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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지 쪽들에 호메로스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뒷세우스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 마르티알리스

 

 * * *

 

어떤 작가나 작품이 품을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있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찬찬히 다시 읽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 하나를 쓰면서 등장시켰던 그토록 많은 인물들과 대규모의 전투씬들과 작가가 전달하려고 애썼던 사상에 비하면 호메로스의 작품은 그보다 얼마나 더 드넓고 방대했던가. 우선, 이 작품 속엔 고대의 숱한 전설적인 영웅들뿐 아니라 그 당시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온갖 신들이 총망라하다시피 등장한다. 트로이아 전쟁은 따지고 보면 신들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유명한 헬레네 납치 사건만 하더라도 신들의 사소한 불화 때문에 빚어졌던 일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신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그녀를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펠레우스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다.) 바로 이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초대를 받지 못했다. 거기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결혼 잔치에 참석한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를 새긴 황금 사과를 던지는 묘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사과 한 알이 어머어마한 사건으로 발전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 여자들의 질투심이야말로 한번 타오르게 되면 끝장을 보기 전까지는 결코 꺼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여신들임에랴. 이 사과를 본 여신들은 그 사과를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트로이아의 왕자였던 파리스에게 심판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를 찾아간 여신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어울릴 만한 달콤한 반대급부로 파리스를 유혹한다. 헤라는 '아시아에 대한 통치권'을,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아내로 주겠다면서 자신을 찍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파리스는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파리스는 여신의 도움을 받아 다른 남자의 부인이었던 헬레네를 데려가고, 트로이아와 그리스 연합군은 파멸적인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이토록 사소한 사건 하나가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째로 뒤바꿀 정도의 대사건으로 비화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를 두고 고대의 여러 작품들에 특별히 탐닉했던 몽테뉴는 특유의 입심으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파리스의 심판(우테웰 작)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잔칫상에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 중에 제일 미남자인 파리스에게 심판받자며 그를 찾아간다. 파리스는 절세미인 헬레네를 품에 안겨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다. (천병희 옮김,『에우리피테스 비극전집1』에서 인용)

 

 

인류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전쟁이 있다면 그건 바로 트로이아 전쟁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전쟁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결국 '신들의 집안 싸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싸움의 원인 제공자인 헬레네는 족보로 따지자면 엄연히 제우스의 딸이다. 스파르테 왕 튄다레오스와 그의 아내 레다 사이에는 2남 2녀가 태어났는데, 클뤼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와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그들이다. 그런데 제우스가 백조의 모습을 하고 레다에게 접근한 까닭에 흔히 헬레네와 쌍동이 남자 형제들은 '제우스의 자식들'로 인정받는다. 헬레네의 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아내였고, 헬레네는 아가멤논의 아우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그러니 제우스의 입장에서 살펴보자면 자신의 딸이 자신의 사위를 배신하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멀리 트로이아까지 도망친 사건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빠진 셈이었다. 또한 자신이 사랑했던 여신인 테티스의 간절한 호소 때문에라도 자신이 그 전쟁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티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낳았다. 그러니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이후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으로부터 부당한 처사를 당한 끝에 분노로 들끓고 있던 아킬레우스를 어머니인 테티스가 그냥 못 본 체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붙잡고 간청한다. 전쟁터에서 죽을 운명을 타고난 명 짧은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어떡하든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드높여 달라고. 그렇게 일이 되도록 우선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 트로이아 군대가 분발해서 그리스 군대를 단단히 혼쭐내 달라고. 그렇게 해서 트로이아 전쟁은 내내 수세에 몰려 있던 트로이아 군대를 한껏 분발시켰고, 그리스 군대는 자신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 모조리 불타기 직전에 내몰릴 정도로 궁지에 빠진다.

 

제우스와 테티스 말고도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신들은 여럿 더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두 여신들은 이미 파리스의 심판에서 아프로디테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테네는 전쟁의 여신이니 전쟁에서의 고비때마다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제우스와 형제 사이인 포세이돈 역시 그리스 편이다. 대지를 흔드는 신인 포세이돈은 과거에 한때 트로이아의 성벽을 쌓아준 일이 있었다. 트로이아의 왕이었던 라오메돈의 부탁으로 성의껏 도와줬지만, 그때 라오메돈은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고 포세이돈을 몹시 박대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포세이돈의 하소연을 잠시 들어 보자.

 

이번에는 아폴론을 향해 대지를 흔드는 통치자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생각이 모자라구려. 그대는 여러 신들 중에

우리 둘만이 일리오스에서 고생하던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가!

그때 우리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오만한 라오메돈에게 가서

정해진 보수를 받기로 하고 만 일 년 동안 그자를 위해

봉사했고 그자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었지.

나는 트로이이인들을 위해 그들의 도시가 함락되지 않도록

도시 주위에 넓고 더없이 아름다운 성벽을 쌓아주었고

포이보스여! 그대는 숲이 우거지고 주름이 많은 이데 산의

계곡에서 걸음이 느리고 뿔이 굽은 소 떼를 먹였지.

하지만 즐거운 계절들이 보수의 기한을 다 채웠을 때

무서운 라오메돈은 우리에게서 보수를 전부 빼앗고는

협박하며 우리를 내쫓았지.

그는 우리의 손과 발을 함께 묶어

멀리 떨어진 섬에 갖다 팔겠다고 위협했지.

그리고 그는 우리 둘의 귀를 청동으로 자르겠다고 공언했지."

 

 - 『일리아스』, 제21권 441행∼455행

 

 

라오메돈 왕은 요즘으로 치자면 악덕 임금체불업자나 다름없었다. 더군다가 그가 실컷 부려먹었던 사람들이 막강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이었으니 라오메돈은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친 셈이었다. 라오메돈의 아버지는 일로스(이 이름에서 '일리아스'가 생겨났다.)였고, 할아버지는 트로스(이 이름에서 '트로이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였다. 라오메돈 왕의 '약속 불이행'은 비단 이때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바다괴물에게 붙잡히자 딸을 구해주면 자기 명마들을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때 사기를 당한 인물은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였다. 열이 잔뜩 받은 헤라클레스는 '약간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트로이아를 손쉽게 함락하고 라오메돈과 그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인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트로이아 전쟁때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 대왕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때 바다괴물로부터 구한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를 부하 장수 텔라몬에게 주었고, 그녀는 그리스군의 명궁이자 '큰 아이아스'의 이복동생인 테우크로스를 낳았다. 트로이아 전쟁에는 텔라몬의 두 아들인 큰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는 물론이고, 헤라클레스의 아들까지도 전쟁 영웅으로 활약하는데, 포세이돈과 아폴론은 이들 영웅들의 아버지가 팔팔하던 젊은 시절부터 이처럼 다양한 사건들로 이래저래 엮여 있었던 셈이다.

 

다시 '신들의 전쟁' 이야기로 되돌아 오자. 방금 『일리아스』에서 인용한 싯구에서 보듯이,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한때 트로이아의 튼튼한 성벽을 함께 쌓아준 인연이 있었다. 그런데도 왜 아폴론은 트로이아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도리어 트로이아를 편들고 있는 걸까? 그건 바로 아폴론의 사제였던 크뤼세스 때문이었다. 그가 전쟁통에 붙잡혀 간 자신의 딸을 구하려고 아가멤논을 찾아갔지만 거기서 난폭하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자신을 위해 신전을 짓고 제물을 바친 사제의 간청을 들어준다. 자신의 주특기인 날카로운 화살들로 그리스인들을 괴롭히고 그리스 군대에 역병이 돌게 만드는 역할도 아폴론이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아폴론은 '신들의 계보'에서는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 낳은 자식이다. 헤라와 아테네에게 한 방 먹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역시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잉태된 딸이었다.

 

여기에 더해, 전쟁이라면 아무런 계획도 절제도 없이 마구 뛰어드는 '전쟁의 신' 아레스까지 트로이아 전쟁에 뛰어든다. 그는 만용이 지나쳐 그리스군 장수 디오메데스의 창에 부상당하기도 하고,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에게 13개월 동안 포로로 붙잡히기도 한다.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체통이 말이 아니다. 아레스는 또한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밀애를 즐기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고안한 교묘한 그물에 갇혀 신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레스가 아프로디테와 함께 트로이아 군대를 편들고, 오쟁이 진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그들에 맞서 그리스 군대를 편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헤파이스토스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긴다. 무구(武具)마저 잃어버린 아킬레우스를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창과 방패와 투구와 정강이받이 등 제구일급(諸襲)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전에 아킬레우스는 절친인 피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몽땅 빌려 줬는데, 그가 헥토르와 싸우다가 자신의 목숨과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한꺼번에 다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트로이아 전쟁은 외견상으로는 '한 남자의 오입질' 때문에 빚어진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지만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들의 뜻이었노라고 노래한다. 한낱 필멸의 인간들이 어찌 감히 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면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넌지시 충고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비록 필멸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언제나 최고의 미덕이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나 제우스의 아들로 인정(?) 받았던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 또한 자신들의 운명을 미리 알고도 불굴의 인내와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 싶은 지난한 과업들을 이룩해 냈다. 참혹한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을 더 방황한 끝에 고향 이타케에 당도한 오뒷세우스나 불구덩이 속에서도 아버지를 등에 업고 트로이아를 빠져나와 간난신고 끝에 로마를 건국한 아이네이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난이 없는 영웅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런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방대한 등장 인물들은 물론이고 온갖 상세한 지명과 사건들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 등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서 이 이야기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아니면 눈 먼 음유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전승된 이야기에 자신의 창작 솜씨를 덧붙여 꾸며낸 이야기인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하다. 그 유명한 <함선 목록>만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이토록 구체적인 연합군의 함선 목록이 실제적인 사실의 뒷받침 없이 어떻게 꾸며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그 목록이나 함선의 숫자들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어디서 누가 몇십 척씩 이끌고 왔다는 설명이 그리스 군대에서만 29차례에 걸쳐 낱낱이 소개되고, 함선들의 숫자는 3척, 7척, 9척까지도 일일이 따로 소개한 끝에 도합 1,186척에 이른다. 척당 80명씩만 잡아도 무려 10만에 가까운 군대가 트로이아 땅에 집결한 셈인데, 그토록 많은 군대와 말들을 먹일 식량이 10년 동안에 어떻게 조달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실제와 허구와 상상이 이처럼 한꺼번에 절묘하게 녹아 있는 고대의 문학 작품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그토록 훌륭하고 완벽한 고대의 영웅 서사시라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마저 뛰어넘을 수는 없다. 비록 호메로스가 아무리 교묘한 솜씨로 이들 영웅들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자주 엿보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일리아스』를 아무리 거듭해서 읽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트로아이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일부분밖에는 알지 못한다. 가령, 파리스의 심판으로부터 비롯된 전쟁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불화 때문에 그리스 군대의 패전 위기로 내몰렸다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의 참전으로 다시 재역전되고,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마저 죽이겠다고 덤벼들다가 전사하고, 절친을 잃고 비탄과 분노에 휩싸인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이아 군대의 핵심이자 가장 사랑했던 아들인 헥토르를 잃고 비탄과 절망에 빠진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홀홀단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고, 아킬레우스의 막사에서 극적으로 회동한 두 사람이 '동병상련'을 느끼며 함께 꺼이꺼이 울고 난 뒤에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잠정적인 휴전 상태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른다는 얘기 말이다. 딱 여기까지다.

 

그러니 독자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아무리 열심히 읽더라도 궁극적으로 영웅 아킬레우스가 과연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고, 그때 그토록 훌륭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테티스의 비탄과 고통이 얼마만큼 컸고, 10년 동안이나 함락하지 못한 트로이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트로이의 목마'가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트로이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함락된 끝에 비참하게 무너졌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대가 어떤 방식으로 전리품들을 나눠 가진 끝에 각자의 귀향길에 올랐으며, 또 각자 귀향길과 자신의 궁궐에서 어떤 비참한 운명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모든 나머지 이야기들은 호메로스의 관심 영역 밖이었던가?

 

그래서 우리는 『일리아스』가 훨씬 더 방대한 전체 이야기의 자그마한 일부라는 사실을 한번쯤 고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 서사시가 얼마만큼 많이 존재했는지, 고대의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인류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를 '거대한 전체 속의 일부'로서 들여다볼 때 보다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서사시권(敍事詩卷)'이라는 큰 전체의 일부분이다.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서사시들은 모두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을 차례로 하나씩 살펴 보자.

 

그 첫 번째는 『퀴프리아』다. 여기서는 이른바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한다. 우리가 『일리아스』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그 전말을 알고 있는 '황금의 사과' 이야기 또한 『퀴프리아』에 자세히 담겨 있으리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두 번째가 바로 『일리아스』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일리아스의 다음 이야기가 제일 궁금하다. 그 내용이 바로 세 번째인 『아이티오피스』에서 이어진다. 여기에는 아킬레우스가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와 아이티오페스족의 왕 멤논을 죽이고 나서 자신도 아폴론 또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죽는 장면이 담겨 있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멤논이라는 인물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고, 고대 이집트의 도시인 테베(오이디푸스 왕이 다스렸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바이도 여기서 이름을 따왔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도 이 고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로, 옛날부터 유명한 도시였다.)에도 그의 거대한 석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데, 『일리아스』에서는 이 인물의 이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 암포라의 그림 부분, BC 525년경, 런던 대영박물관

 

 

나는 10여 년 전에 이집트의 고대 도시 테베에 갔을 때 '멤논의 거상'을 직접 본 일이 있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무척 자주 등장한다는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더 이상은 자세히 몰랐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헥토르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그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었고, 나중에는 제우스의 배려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일리아스』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거대한 전체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일부를 장식하는 핵심 인물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인물을 기리기 위한 거대한 석상이 이집트 고대 문명의 중심이었던 테베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트로이아 서사시권'이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류 문명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삼 반증하는 셈이다.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巫具)들을 놓고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야기인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의 목마 작전'에 따라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영웅이 벌였을 엄청난 경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에서 너무나 상세히 묘사된 덕분에 후세에 널리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숱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담긴 '아이아스의 자결'을 형상화한 모습을 담은 도자기

 

 

또한 『일리오스의 함락』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야말로 트로이아 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희귀한 창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트로이아의 목마에 얽힌 이야기가 온전히 전해지는 문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토록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낸 꾀많은 오뒷세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뒷세이아』에서도 그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옛 이야기 중에서 희미하게 잠깐씩 비칠 뿐이다. 숱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들도 트로이의 목마를 핵심 포인트로 삼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토록 대중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사물이 온전한 텍스트도 없이 3,000년이 넘도록 인류의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례도 찾기 어렵지 싶다. 어쩌면 트로이아의 목마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에서 드문드문 엿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로마 건국 신화를 담은 그 이야기 속엔 '트로이아가 얼마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몰락했는지를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에 '트로이의 목마'가 결코 빠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때 라오코온이 수많은 무리가 뒤따르는 가운데

앞장서서 성채 위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려오며

멀리서 외쳤습니다. '오! 가련한 동포들이여,

그대들은 그토록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들은 적군이

배를 타고 떠난 줄 아시오? 일찍이 다나이족의 선물에

음모가 없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보시오.

그대들은 울릭세스(=오뒷세우스)를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었소?

이 목조물 안에 아키비족(=아카이오이족)이 숨어 있거나,

우리의 집들을 들여다보고 위에서 시내로 내려와

우리의 성벽들을 공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계략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소. 말(馬)을 믿지 마시오,

테우케르 백성들이여.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다나이족이 선물을 가져올 때에도 두렵소.'

이렇게 말하고 그는 짐승의 옆구리에, 널빤지들을 둥그스름하게

이어붙인 복부에 힘껏 큰 창을 던졌습니다. 창은 떨면서 그곳에 꽂혔고,

충격이 가해지자, 텅 빈 뱃속이 공허하게 울리며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뒤틀리지만 않았더라면,

신들께서 내리신 운명대로 우리는 아르골리스인들의 은신처를

칼로 열어젖혔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트로이야는

아직도 서 있을 것이고, 프리아무스의 높은 성채여, 너도 남아 있겠지.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2권 40∼56행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섯 편이 전쟁을 노래하는 데 반해 나머지 세 권에서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여섯 번째인 『귀향』은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다른 그리스군 장수들의 귀국을 노래하며, 일곱 번째가 바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다. 여덟 번째는 『텔레고노스 이야기』인데, 고향 이타케 섬으로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또다시 여행에 나서는 이야기와 그의 아들 텔레고노스에 의해 오뒷세우스가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말고도 여섯 편에 더 담겨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벅차고 충분히 놀라운데 그리스인들은 이것 말고도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테바이 서사시권' 이야기까지 남겼다. 그나마 '테바이 서사시권'은 규모가 훨씬 단촐하기는 하다. 이것은 오이디푸스 왕의 놀라운 운명을 노래한 『오이디푸스 이야기』(Oidipodeia)와 오이디푸스 왕의 추방된 아들 폴뤼네이케스를 중심으로 모두 일곱 장수들이 테바이를 공격한 이야기를 노래한 『테바이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테바이 공략에 실패한 뒤에 그의 아들들이 결국 테바이 공격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은 『후예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무리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결국 '트로이아 서사시권'과 '테바이 서사시권'을 아우르는 방대한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은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에도 실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하는 무수히 많은 영웅호걸들 가운데에는 '테바이 서사시권'에 속하는 이야기인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후손들까지도 자주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튀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다. 그는 힙폴로코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와의 일전을 앞두고 서로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다면 그대는 먼 옛날 부조(父祖) 때부터 나의 빈객(賓客)이오'라는 말을 건네면서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의 손을 잡고 우정을 다짐한다. 그리고는 서로의 무구들을 교환한다. 이때 글라우코스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는지는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인용될 정도였다. 그는 황소 백 마리의 값어치가 있는 자신의 황금 무구들을 황소 아홉 마리의 갑어치밖에 안 되는 디오메데스의 청동무구들과 맞바꾸고 말았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거대한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이다. 흔히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모두 305편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작품들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작품들은 불과 33편에 불과하다. 그 33편 가운데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그 절반인 16편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시간으로 따져보면 『일리아스』와 겹치는 작품은 『레소스』 밖에 없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란 뜻으로,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신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비극 3부작이다.)만 하더라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사건들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된다. 아가멤논이 살해될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오레스테스는 훗날 청년이 되어 누이동생 엘렉트라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벗어나면 이토록 비극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또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셈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 개요>


 (트로이아 전쟁과 헬레네의 행방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인용)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필록테테스』도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시기를 벗어난다. 그의 이름은 <함선 목록>에도 당당히 올라 있을 정도로 트로이아 전쟁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인물이었지만 『일리아스』에서는 딱 한 번만 언급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메로스가 이 희귀한 인물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까지 몰랐던 건 결코 아니었다. 『일리아스』에서 잠깐이나마 그의 운명을 넌지시 암시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인물에 대한 회화와 조각작품들이 도처에 널려 있을 정도인데, 『일리아스』에서만큼은 그저 잠깐 스쳐가는 인물일 뿐이다. 그가 서양예술의 온갖 분야에서 오랫동안 비중있는 인물로 기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로빈슨 크루소의 진정한 원조(元祖)여서? 아니면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신궁(神弓)을 물려받은 인물이어서? 아니면 그가 전쟁의 원흉인 파리스를 쏘아 죽여서? 아무튼 그는 『일리아스』를 벗어나면 꽤나 유명한 인물로 돌변하는 인물임엔 틀림없다. ☞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메토네와 타우마키에에 사는 자들과,

멜리보이아와 울퉁불퉁한 올리존을 차지한 자들,

이들의 함선 일곱 척은 궁술에 능한 필록테테스가 지휘했다.

배마다 선원들이 쉰 명씩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궁술에 능한 용감한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휘자는

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신성한 렘노스섬에 누워 있었다.

파멸을 꾀하는 물뱀에게 심하게 물려 괴로워하던 그를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이 그곳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 괴로워하며 누워 있지만, 아르고스인들은 머지않아

함선들 옆에서 바로 그 필록테테스 왕을 생각해야 할 운명이었다.

 

 - 『일리아스』, 제2권, 716∼725행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들은 트로이아가 함락된 이후에 '트로이아 여인들'이 겪는 끔찍한 참상들을 낱낱이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일리아스』 이후의 사정들을 파악하는데 더없이 요긴하다. 한때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던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가 전쟁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딸과 막내 아들을 어떻게 비통하게 잃었으며, 헥토르의 아내였다가 패전 후에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옵톨레모스의 첩으로 전락한 안드로마케가 어떤 기구한 운명들은 두루 겪었는지는 『일리아스』에서 예고편으로 슬쩍 엿보여준 내용들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구를 번쩍이는 위대한 헥토르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난들 어찌 그런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

(…)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해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누군가 눈믈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당신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당신이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

그때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말하겠지요.

'저 여자가 헥토르의 아내야. 사람들이 일리오스를 둘러싸고 싸울 때

그는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 중에서 으뜸가는 전사였었지.'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굴종의 날에서

당신을 구해줄 그러한 남편이 없음을 새삼스레 슬퍼하게 될 것이오.

당신이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주었으면!"

 

 - 『일리아스』, 제6권 440∼465행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일리아스』의 밖에서 또다시 차고 넘치도록 쏟아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가 지니는 불후의 위상이 낮아지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트로이아 서사시권'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그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는 '플롯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  그리고 『소(小) 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주석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만 하더라도 '너무나 방대해서' 좀처럼 완독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더해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나머지 6편까지도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졌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벅찬 독서과제였을 게 틀림없다. 물론 몽테뉴와 같은 인물들은 우리와는 정반대로 두 팔을 들고 환호작약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까지를 포함하면 더욱 심해진다.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만 하더라도 무려 305편에 이르는데 그 작품들이 온전히 다 전해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이 고작 33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도리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일리아스』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트로이아 서사시권'을 거쳐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들로 확장되다 보니 이 페이퍼가 다루는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진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제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되돌아 가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벗어난 고대의 작품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일리아스』라는 단 하나의 작품이 품고 있는 방대함과 탁월함은 그 어떤 다른 문학작품들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모두 24권으로 된 『일리아스』 하나만 하더라도 '트로이아 서사시권'의 다른 4개의 전쟁 서시사를 모두 합친 것(22권)보다 길며,  24권으로 된 『오뒷세이아』 또한 다른 영웅들의 귀국을 노래한 것(5권)보다 훨씬 더 방대하니 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함선 목록>처럼 단지 물질적인 요소들만 방대하게 수록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지닌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등장인물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롭게 담겨 있다. 그토록 등장 인물들도 많고, 각각의 인물들마다 사연도 많고, 전투에서 적과 맞닥뜨려 싸우다가 다치고 죽는 모습들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일 터인데, 호메로스는 10년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던 그 유명한 전쟁 이야기를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줬던가.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안에서 진행된 9년 동안의 일들을 단지 50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놀랍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가운데서도 역병이 만연하던 9일, 올륌포스의 신들이 아이티오페스족의 잔치에 가 있던 12일,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던 12일, 헥토르의 화장을 위해 장작을 준비하던 9일을 빼고 나면 실제로 '실시간 생중계 화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된 날들은 불과 며칠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일리아스』를 읽고 나면 마치 온갖 무기들이 격렬하게 맞부딪쳐 굉음을 내고, 전차와 말들이 순식간에 주인을 잃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두개골이 박살난 시신들이 처참하게 벌판을 가득 채운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갖는다. 호메로스의 묘사가 그만큼 탁월하고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를 이야기하자면 그를 흠모했던 숱한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물론 그런 인물들 모두가 호메로스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플라톤만 하더라도 『국가』에서 호메로스의 문장들을 얼마나 심하게 타박했던가. 수많은 문장들을 일일이 적시하면서까지 말이다. 그의 비판 요지는 간단했다. 시인은 진실재인 '이데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상을 화가처럼 '모방'하기만 하는 모방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스스로 '시의 매력'에 한없이 이끌리면서도 결국 '이데아'를 추구하는 자신의 철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시인'을 비판해야만 했다. 플라톤의 '시인에 대한 비판적 철학 이론'은 나중에 결국 쇼펜하우어에 의해 '플라톤의 결함'으로 비판받게 되고, 니체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까지 부르기에 이르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시'에 대해 서로 확연히 다른 철학적 입장을 보인 점은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제자가 무작정 스승의 입장만을 옹호했더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결코 쓰여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호메로스를 사랑했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으뜸으로 내세우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몽테뉴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입심좋은 그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지나친 너스레가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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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부끄럽지도 않소? 아르고스인들이여, 풋내기들이여! 그래도

나는 그대들이 분전하여 우리 함선들을 구해주리라 믿었소.

만약 그대들이 참혹한 전쟁을 그만두려 한다면 이제야말로

우리가 트로이아인들에게 쓰러질 날이 다가왔소이다.

아아, 나는 이 두 눈으로 큰 기적을 보고 있소이다!

트로이아인들이 우리 함선들을 향해 진격해오다니,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그들은 전에는 날랜 암사슴 떼와도 같았소. 숲 속에서

승냥이나 표범이나 이리 떼의 먹이가 될 뿐 아무런 전의도 없이

공연히 떠돌아다니는 허약한 암사슴 떼 말이오.

꼭 그처럼 트로이아인들은 전에는 감히 아카이오이족의

용기와 팔에 잠시도 맞서려 하지 않았소. 하나 지금

그들은 도시에서 멀리 나와 속이 빈 함선들 옆에서

싸우고 있소. 이는 모두 지도자의 무능과 백성들의 태만 탓인즉,

백성들은 지도자에게 불만을 품고 빨리 달리는 함선들을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옆에서 죽어가고 있소.

설사 넓은 땅을 통치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영웅

아가멤논이 준족인 펠레우스의 아들을 모욕하여

이 모든 불행을 초래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전쟁을 그만두어서는 아니 되오. 자, 어서

바로잡읍시다! 고상한 자의 마음은 바로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대들은 모두 진중에서 가장 용감한 자들이거늘 그대들이

열화 같은 투지를 늦춘다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오.

나는 약골이기에 전쟁을 포기하려는 그런 사람과는 다투고 싶지도

않소이다. 하나 그대들에게는 진심으로 화내지 않을 수 없소.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태만으로 머지않아 더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각자 마음속에 수치심과 의분을

느끼도록 하시오! 진실로 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오.

목청 좋은 강력한 헥토르는 함선들 옆에서 싸우고 있고,

그는 이미 문과 긴 가로장을 부숴버렸소."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13권 95행 - 124행

 

(나의 생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찬찬히 다시 읽는 동안에, 이 방대한 서사시에 담긴 온갖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만한 교훈들이 너무나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위에서 짧게 인용한 대목만 하더라도 그렇다.  여기서 아르고스인들(그리스인들)을 격려하는 인물은 '대지를 떠받치는 신'으로 불리는 포세이돈이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동안에) 트로이아 군대가 용기백배하여 그리스인들의 방벽을 무너뜨리고 함대 근처까지 쳐들어와 그리스 군대를 마구 도륙하는 상황을 보다 못해 기어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그리스 군대를 격려하기 위해. 이때 포세이돈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이 그저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한낱 신화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포세이돈의 연설 속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과 '제재 완화'를 둘러싸고 동맹국 사이에 불거진 심각한 입장 차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관 후보들의 자질 검증을 위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인물들이 저지른 온갖 편법들이나 청와대 대변인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부동산 투기에 대한 변'을 떠올리는 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포세이돈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 말들이 어쩌면 이토록 오늘날의 상황에 적확하게 들어맞는지 그게 놀라울 뿐이다.

 

부끄럽지도 않소?

지도자의 무능

머지않아 더 큰 재앙

수치심과 의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을 때마다 이 작품에 바친 숱한 인물들의 놀라운 찬사를 다시금 음미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은 주로 몽테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이다. 호메로스에 대해 그가 남긴 다음 문장들은 인류 최고의 시인에게 바친 몽테뉴의 엄청난 헌사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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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 파스칼

 

 

파스칼(1623∼1662)

 

파스칼은 인류 역사상 아주 기이한 천재였다. 수학과 과학의 천재였으면서도 산문의 대가였고, 비범한 심리학자이면서도 신에 목말라 했던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일종의 실패한 성인에 가까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수학보다 신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훨씬 더 위대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삶을 망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기독교를 옹호할 목적으로 쓴 방대한 노트들은 오늘날 인간의 존재 조건을 갈파한 철학책으로만 유용할 뿐 기독교도들의 바이블로는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열두 살 때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32번 명제를 풀어냈다. 혼자 원과 선을 그리며 놀다가 찾아낸 것이었고, 수학을 배운 적도 없을 때였다. 열일곱 살에는 아르키메데스 이래의 대업적이라고 격찬받은 『원추곡선론』을 발표했고, 열여덟 살에는 계산기를 발명하여 오늘날 컴퓨터로 이어지는 원천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또 노름꾼들의 주사위 던지기를 보면서 거기서 자극을 받아 확률 이론을 만들어냈다.

 

순수 기하학에서부터 실용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탐구심을 보였던 파스칼에게는 두 개의 큰 장애가 있었다. 건강 문제와 회심(回心)이 그것이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파스칼은 열여덟 살에 이름 모를 중병을 앓은 이후로 평생 동안 평안한 날이 없었다. 건강 문제가 외적 장애였다면 그의 회심은 내적 장애에 가까웠다. 신의 부름에 더 충실한 삶을 위해 억누를 길 없었던 학문과 연구를 포기하고 종교에 맹렬하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 대한 혐오와 신의 침묵에 고뇌하던 파스칼은 1654년 11월의 어느 밤에 뜨거운 감격과 환희 속에서 신의 은총을 느낀다. 이날 밤 그가 양피지에 적어 넣은 기록은 이랬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복종……>. 파스칼은 이듬해 수도원인 포르루아얄을 찾아가 2주 동안 기도와 명상에 잠기지만 <고독한 은사(隱士)>로 숨어들지는 않았다.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포르루아얄에 머물 때 그곳에서 숨어 지내던 아르노를 만나면서 그는 장세니스트들의 변호를 위해 논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파스칼은 교회에 소속된 성직자나 신학자도 아니면서 당대의 첨예한 신학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 계기는 1656년에 『한 공작에게 부친 아르노의 두 번째 편지』가 불신앙, 이단, 교황과 사제들에 대한 모욕 등으로 이단 선고를 받은 때문이었다. 이때 파스칼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아르노와 장세니스트들을 옹호하기 위한 일련의 글을 발표한다. 이 편지들이 『팡세』에 담겨 있는 『프로뱅시알』(한 지방인에게 부치는 편지)이다. 당시 장세니즘(얀센주의)은 로마 교황청에 밀착한 예수회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얀센주의는 카톨릭 내에서도 일종의 청교도적인 입장에서 신의 은총과 예정설과 금욕주의를 강조한 데 비해 예수회는 지나치게 이완된 교리를 주장한 때문이었다.

 

예수회와 장세니스트와의 대립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좁은 의미의 교리적인 대립이라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있어온 상이한 두 경향 사이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예수회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좀 더 근대화된 유연한 입장을 표방한 데 반해 장세니스트들은 초기 신앙의 순수성과 엄격성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들의 갈등은 1640년에 출판된 얀센의 유작 『아우구스티누스』 때문에 폭발했다. 이 책에 담겼다는 <다섯 명제>가 교황에 의해서 이단선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얀센의 친구였던 생 시랑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반발했고, 그 중심 인물은 소르본의 신학 교수 아르노였다. 파스칼은 바로 이들 장세니스트들과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방대한 편지를 썼던 것이다.

 

『팡세』에 합본된 『프로뱅시알』은 60쪽 분량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파스칼이 1년여에 걸쳐 무려 18편의 서한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에 등장하는 황제파 수도사들과 교황파 수도사들의 불꽃 튀는 이단 논쟁을 연상시킬 정도의 격렬함과 치밀한 논리들이 담겨 있으며,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을 당할지도 모를 위험 속에서도 끝끝내 낡은 우주 체계를 무너뜨리고 지동설을 외칠 때의 옹골차면서도 결연한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파스칼이 남긴 최고의 명문장들은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한 방대한 저작의 준비 노트들의 묶음인) 『팡세』보다는 『프로뱅시알』을 더 우위로 꼽는다.

 

문제 제기의 교묘한 방식, 적의 허위와 기만을 파헤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치밀한 논리, 일격에 위장된 권위와 허세를 무너뜨리는 신랄한 풍자와 야유, 그런가 하면 진지하고 심도 있는 신학적 논의 등, 『프로뱅시알』은 가히 사상과 문학과 설득술의 보고이다.(539쪽)

 

 - 블레즈 파스칼, 이환 번역, 『팡세』, <인간 실존의 위대한 증언> 중에서

 

 

예수회와의 격렬한 신학 논쟁 싸움의 선두에 섰던 파스칼은 보다 큰 싸움을 준비한다.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을 깨닫게 하고 신의 은총과 함께 하는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거대한 저작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파스칼이 장세니스트들의 총본산이 된 포르루아얄에 은거하지 않은 진정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건강이 악화될수록 파스칼은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에 집중하면서 <기독교 호교론>을 위한 준비에 몰두한다. 그러나 파스칼이 구상했던 대작은 미완에 그치고 만다. 그는 불과 39세에 일찍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가 필생의 대작으로 구상했던 작품은 결국 파스칼이 죽은 후 발견된 유고들을 모은 단장(短章)들의 묶음집 형태로 출간되었다. 1669년의 포르루아얄 판(版) 이래 『팡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작품은 수많은 단장(短章)들을 파편처럼 모아 편찬한 탓에 뚜렷한 체계가 없는 데다가 미완성인 채로 쓰다 만 짧은 메모 형태의 문장들이 너무 많다는 결정적인 하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동안 연구자들의 끈질긴 연구 덕분에 이런 저런 방식의 체계와 분류에 따라 무질서한 단장들은 차츰 뚜렷한 체계를 얻게 되었다. 그 체계는 크게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이다. 제2부는 <신 있는 인간의 복됨>이다. 그 중간에 이질적인 양자를 접합하기 위한 연결 부분은 <인간학에서 신학으로의 이행>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은 『팡세』의 제1부를 가장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된다. <인간학>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공통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인간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문제들이 총망라된다.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헛됨>, <비참>, <권태>, <허영> 등등이 여지없이 해부되고 비판받는다. 파스칼은 특유의 금욕주의적 경향과 아주 우울하면서도 심각한 태도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전능함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실로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며 끔찍할 정도로 비참하다.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의 인물이라도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위락을 찾기 바쁘다. 한시라도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조건을 잊지 않으면 그 자신을 어떻게 스스로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고안해 낸 온갖 재미난 오락거리들, 가령 사냥, 공놀이, 춤, 도박 등등도 결국은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잠시나마 잊고 다른 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련된 장치일 뿐이라고 본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른 채 감옥에 갇힌 죄수에 불과하므로.

 

파스칼이 펼치는 <인간학>은 놀라울 만큼 예리하다. 그가 비판하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은 당대 특유의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교양인들' 때문에 더더욱 강조된 듯하다. 기나긴 중세의 영적 억압으로부터 이제 막 풀려난 유럽인들이 바야흐로 도래한 '인간의 시대'를 만끽하면서 자유분방한 인간적 삶을 즐기려는 풍조가 얼마나 만연했겠는가. 파스칼의 <인간학>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감각 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그 무렵의 까닭없이 명랑한(?) 시대 풍조에 대한 파스칼의 저항심이 한몫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스칼이 살던 무렵의 시대 풍조가 그토록 과거와 달랐던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는 바로 몽테뉴(1533~1592)였다. 그 사람만큼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난 인간다운 삶'을 강조한 인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스칼 또한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미 몽테뉴로부터 '인간학'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흡수한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온갖 다양한 심리들까지도 자유자재로 풀어헤치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팡세』에 담긴 많은 문장들이 『몽테뉴 수상록』으로부터 직접 인용된 건 그 때문이다. 『팡세』에서 인용된 <몽테뉴 수상록> 속의 고전 작가들은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 테렌티우스, 세네카, 타키투스 정도로 그치지는 않는다. 몽테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던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페르세우스 대왕과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장식했던 피루스에 얽힌 이야기, 스파르타의 가장 훌륭한 인물이었던 에파메이논다스 등등이 그들이다.

 

인간의 비참을 삶의 모든 층위에서 예리하게 추적한 파스칼은 '인간의 비참'으로부터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낸다. 인간이 비참하다는 걸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짐승들은 비참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비참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적인 상태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짐승들과 달리 '참을 수 없는 비참'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위대는 바로 이 비참의 의식 때문이다. 인간의 비참을 가장 크게 인식할 수 있는 인물의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폐위된 왕>이다.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결코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을 불행을 왕위에서 추락한 왕은 얼마나 자주 자신의 비참을 떠올릴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2년 전에 탄핵된 전임 대통령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을 지배했던 통치자의 딸이었고, 오랫동안 집권 여당의 대표였으며, 한때 광신에 가까운 열렬한 지지자들로 둘러싸였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에서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는 일만큼 비참한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그녀를 역성들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파스칼이 <폐위된 왕>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든 인물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마케도니아 최후의 왕 페르세우스였는데, 그 왕의 사례를 읽으면서 탄핵 재판을 받는 순간까지도 끝끝내 거짓과 위선과 뻔뻔함으로 일관했던 전직 여성 대통령을 떠올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http://blog.aladin.co.kr/oren/8992966)

 

이처럼 인간은 비참과 위대가 한꺼번에 뒤섞인 존재이면서, 경멸과 존경의 대상이고, 모순과 역설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존재이다. 이런 인간을 그 누가 구제할 것인가? 파스칼은 온 인류의 지혜가 갈구하며 찾으려 했던 '최고선'들을 찾아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뒤쫓아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피론의 회의주의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인간의 비참에, 그와 반대인 독단론과 금욕주의는 인간의 위대에 의지함으로써 도리어 모순만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위대를 밝히기 위해 진술한 모든 것은, 다른 편에서는 비참을 결론짓기 위한 논리로서 이용될>(단장 237) 뿐이다. <인간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비참하고,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이 되는>(단장 237)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파스칼은 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자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인간은 애초에 창조되었을 때 원래 위대한 상태에 있었고 신의 위엄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타락한 끝에 낙원에서 추방되면서 추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원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인간학>이 <신학>으로 넘어갈 때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내기' 이론을 다룬 대목이다. 사람들이 경험과 이성적 사고로써 확인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기꺼이 동행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내디뎌 '신앙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 인간적 사고에서 초월적인 사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 증명>이 필수적인데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파스칼은 먼저 불신자의 입장을 수긍한다. 종교는 완전히 명료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이성은 신의 본질은 물론 존재 여부도 결코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선택이 문제가 될 때 선택 자체를 보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배에 올라타 있다.>고. 우리는 이미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베에 올라타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이 우리의 판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이해득실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자고 제안한다. 무신론과 유신론 중에 어느 편이 우리에게 더 <수지맞는> 장사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파스칼은 마침내 자신이 수학의 세계에 도입한 확률론까지 동원하여 결론짓는다. <신이 있다>는 주장을 선택하는 게 압도적으로 이롭다고.

 

이토록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간학>을 마무리짓고 <신학>으로 넘어가면 급작스레 뒤바뀌는 글의 분위기가 독자들을 당혹시킨다. 파스칼은 어느새 '전지전능한 신 앞에 무릎꿇은 가엾은 어린 양'으로 변모한다. 인간 이성의 한계와 신의 전지전능함과 신의 은총의 기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크리스찬의 '신앙 고백'에 가까운 글로 변한다는 얘기다. 종교가 따로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독자들이 읽기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내용들이 아닐 수 없다. <구약>에 등장하는 온갖 예언자들과 율법학자들은 물론 <신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메시아의 출현은 오래 전부터 예언되어 왔으며,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죄를 짓게 되었고, 예수의 수많은 기적들이 유일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증명하고, 다른 종교들의 허위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스칼은 신을 증거하고 신과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중보자(仲保者) 예수 그리스도에 주목한다.

 

이어지는 <신학 또는 인류 구속의 역사> 또한 기독교를 믿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독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랍비의 교리>, <모세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언> 등등이 '숨은 신'의 원리와 '표징'으로 설명되는데 무신론자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또한 성경에서 인용한 수많은 문장들과 뒤섞인 단장(短章)들은 불완전하고 함축된 문장들이 너무 많아 기본적인 수준의 독해마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대목들을 읽으면 자꾸만 엉뚱한 상상이 파고든다. 파스칼이 구상했던 방대한 저작이 실제로 완성되엇더라면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상상 말이다.

 

파스칼의 『팡세』는 방대한 노트들의 무질서한 묶음에 가깝기 때문에 유려한 문장들로 빛나는 논리정연하고도 심오한 철학 사상을 오롯이 느끼기엔 여러모로 한계를 지닌 작품이 분명하다. 그러나 『팡세』에는 몽테뉴처럼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솔직담백한 인간 유형 대신 끊임없이 확실함과 영원불변을 찾으려 애쓰는 나약한 인간 유형의 몸부림이 최대한으로 담겨 있다. 그는 몽테뉴를 몹시 좋아했지만 그의 회의주의 철학과 무신론적 종교관에 대해서는 몹시 싫어했다. 몽테뉴에게 철철 넘쳐흐르는 익살과 유머와 재치는 파스칼에게는 전율과 공포와 절망으로 뒤바뀐다.

 

몽테뉴. 몽테뉴의 좋은 점은 단지 어렵게 터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나쁜 점은 ㅡ 그의 품행은 제외하고 ㅡ 순식간에 고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너무 수다를 떨고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그에게 경고해 주었더라면.

 

몽테뉴. 몽테뉴의 결점은 크다. 음란한 말들. 구르네 양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쉽게 믿는 고지식한 사람, 곧 눈 없는 사람. 무지한 사람, 곡선형구적법(曲線形求積法), 더 큰 세계. 고의적 살인과 죽음에 관한 그의 의견. 그는 구원에 대한 무관심을 불어넣는다. 두려움도 뉘우침도 없이. 그의 책은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반드시 이에 구애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항상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게 할 의무는 누구에게나 있다. 생애의 어떤 국면에서 그가 다소 자유롭고 향락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전적으로 이교도적인 생각은 묵과할 수 없다.(508쪽)

 

 

비록 단장(短章)들의 무질서한 나열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파스칼의 문장들 속엔 니체도 부러워할 정도로 기지에 번뜩이는 날카로운 통찰들이 가득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문장 하나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파스칼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서도 『팡세』에서 상세히 다룰 정도로 기독교의 교리와 성서학에 두루 정통했는데, 먼 훗날 <안티 크리스트>라는 작품을 남길 정도로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철학자였던 니체가 파스칼의 문장에 매료되었던 사실은 생각할수록 '기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니체는 파스칼의 문장에 매료된 것일 뿐 그의 호교론마저 좋아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파스칼의 신앙

 

원시 그리스도교가 요구했고 드물지 않게 이르렀던 그 신앙, 여러 철학 학파들의 수세기에 걸친 긴 논쟁을 과거에도 당시에도 경험하고, 더욱이 로마제국이 베푼 관용의 교육을 받았던, 회의적이고 남국의 자유정신의 세계의 한가운데 나타났던 신앙 ㅡ 이 신앙은 루터나 크롬웰 같은 인물이나 그 밖에 북부의 정신적 야만인들이 그들의 신과 그리스도교에 매달려왔던 저 순진하고 거친 신민(臣民)의 신앙이 아니다오히려 그것은 이성의 지속적인 자살과 끔찍할 정도로 유사해 보이는 저 파스칼의 신앙이며, ㅡ 이것은 단 한 번에, 일격에 죽일 수 없는 끈질기게 장수하는 벌레 같은 이성이었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에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46절

 

<기독교 호교론>을 쓰기 위한 방대한 노트들이 하나의 완결된 작품 속에 녹아들지 못한 탓에 끝내 900여개가 넘는 짧은 문장들을 단속적으로 끊어 읽어야 하는 일은 조금 괴롭다. 또한 몽테뉴와 니체에서 발견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유쾌하고 긍정적인 문장들 대신 몹시도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파스칼의 문장들을 읽는 일은 조금 우울하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근원에 도사린 부조리와 비참과 불합리와 비극들에 대한 통찰들 만큼은 세 철학자들 사이에 뚜렷한 견해 차이가 없다. 비록 파스칼이 몽테뉴와 니체와는 완전히 정반대편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바라봤더라도 말이다.

 

파스칼의 『팡세』 속에서 발견되는 숱한 명언들은 첨단 과학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구약성서에 담긴 창조론이 더이상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받기 어려워진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 동안에 자주 경험하는 놀라운 일 하나는 오늘날의 TV 뉴스를 장식하는 여러 핵심 인물들이 책 속에 자주 어른거린다는 점이다. 그 이름도 해괴한 버닝썬이라는 술집에서 빚어진 사소한 폭행 사건 하나 때문에 이제는 온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된, 하루 아침에 저 높은 그들만의 별세계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만, 괴물처럼 추악한 몰골의 한류 스타 연예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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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 Reader 2019-03-24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his review essay, I think, is one of the most erudite and brilliant writings I‘ve ever read in this town of Aladin. It gives so many insights and reflections on human nature deep in my mind, especially on both aspects of the sublime and the tragic. I really like your essays. Keep up the good work, Sir~!

oren 2019-03-24 15:19   좋아요 0 | URL
Nice to meet you. Thank you for your impressive comments.
 

 

(밑줄긋기)

 

국가에 있어서 평화는 백성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같이, 교회의 평화는 교회의 재산인 진리와 교회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보배로운 것을 보호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 한 국가 안에 적이 침범하여 약탈하는 것을 보고도 평안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이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평화를 거역하는 일이 되는 것같이(평화란 오로지 재산의 안전을 위해 정당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일단 평화가 재산의 상실을 방임할 때는 부당하고 유해한 것이 되며, 오히려 이것을 지킬 수 있는 전쟁이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어서도 진리가 원수에 의해 공격당하고 신도들의 마음에서 진리를 앗아가 오류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한다면, 이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과연 교회에 봉사하는 일인가, 교회를 배반하는 일인가? 교회를 지키는 일인가, 파멸시키는 일인가? 진리가 다스리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것이 죄라면, 진리가 파괴될 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도 죄라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화가 정당한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정당한 때가 있다. 그렇기에 <평화의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다>(『전도서』 3장 8절)고 적혀 있으며, 이것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바로 진리의 이익이다. 결코 진리의 때와 오류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느님의 진리는 영원하리라>(『시편』 116장 2절)고 적혀 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면서(『요한』 14장 27절) 한편 전쟁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마태』 10장 34절). 결코 진리와 허위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447∼44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4편, 『프로뱅시알』을 위한 수기>

 

 

(나의 생각)

 

수천 년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 얘기가 왜 유독 우리에게만 새삼스럽게 들릴까? 북한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 때문에?  왜 진보 정권만 들어서면 이 불변의 진리가 어김없이 흔들리는가? 결국 '평화 만능 주의'가 빚어낸 웃지 못할 희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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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인간의 헛됨을 완전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 원인은 이른바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코르네유)이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온 땅과 왕들과 군대와 전세계를 뒤흔든다.(65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편, 헛됨> 중에서

 

(나의 생각)

 

이 대목을 읽는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버닝썬, 승리, 정준영, 유리홀딩스 등등이 떠오를까?

비록 그들이 단톡방에서 키득거리며 주고받은 동영상 속 인물들을 피해자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고,

추악한 괴물로 추락한 그들 가해자들과 피해 여성들 사이에 그 무슨 당치도 않는 '사랑'이 있었겠냐만,

그들이 온 땅과 왕들(한류스타들)과 경찰과 전세계를 뒤흔든 것도 사실이니까.

 

 

 * * *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망에 관하여. 자존심은 우리의 비참이나 실수와 같은 것들 가운데서도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차지한다. 우리는 기꺼이 목숨이라도 버린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해주기만 한다면.

 

허영 : 도박, 사냥, 방문, 연극, 명성의 거짓된 영속.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편, 헛됨> 중에서

 

(나의 생각)

 

이 대목을 읽는 데도 승리, 정준영이 거듭 떠오른다.

허구헌 날 아우성치는 팬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지내는 그들에게 허영 말고 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허영 : 해외원정 도박, 해외원정 성매매 알선, 한류 스타라는 명성의 거짓된 영속.

 

 

 * * *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상것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편, 헛됨> 중에서

 

(나의 생각)

 

그래, 맞는 말이야. 허영이 늘 문제지... 불타는 태양(버닝썬), 빅토리(승리) 등등

파스칼이 했던 말이 썩어 문드러진 오늘날의 한국 연예계의 추악한 민낯에 이토록 꼭 들어맞을 줄이야.

 

 

 * * *

 

 

당신이 자기들에게 별로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 것을 불평하면서 자기들을 존경하는 지체 높은 사람들의 예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당신은 만나본 일이 없는가. 이에 대해 나라면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들을 탄복시킨 당신의 진가를 보여주시오. 그럼 나도 존경하리다>.(67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편, 헛됨> 중에서

 

(나의 생각)

 

그래서 그들은 사무총장도 아니고, 대학총장도 아닌, 어마무시한 '경찰총장'을 끌어들인 거로군.

 

 

 * * *

 

 

자애심과 인간적 자아(自我)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는 위대하기를 원하지만 못난 자신을 본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한 자신을 본다. 그는 완전하기를 원하지만 불완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본다. 그는 뭇 사람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결함이 그들의 혐오와 경멸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안다. 이렇듯 궁지에 빠진 인간의 마음속에는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의롭지 못하고 가장 죄악적인 정념이 태어난다. 왜냐하면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의 결함을 인정하게 하는 이 진실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진실을 말살해 버리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그 자체로써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타인의 결함을 타인에게나 자기에게나 숨기기에 온갖 주의를 기울이며 타인이 이 결함을 그에게 보여주거나 그들 자신이 보는 것을 참지 못한다.(6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편, 헛됨> 중에서

 

(나의 생각)

 

아아... '위대한 개츠비' 가 괜히 '승리'와 결합한 게 아니었군.

 

 

 * * *

 

 

불의. 그들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킬 다른 방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80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3편, 비참> 중에서

 

 

 

불의. 오만이 필연과 결부될 때 그것은 극도의 불의가 된다.(87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3편, 비참>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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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원 2019-03-17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타는 태양(버닝썬) 빅토리(승리) 이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네요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oren 2019-03-17 16:05   좋아요 0 | URL
네...^^

겨울호랑이 2019-03-17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생각을 전해주는 책임을 oren님 글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됩니다^^:)

oren 2019-03-17 16:04   좋아요 1 | URL
네.. 고전을 읽으면서 작금의 현실들을 비춰 보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9-03-19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을 보니 민음사의 <팡세>, 66~67쪽의 허영에 대한 글을 읽고 웃었던 생각이 납니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저도 팡세를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댓글을 쓰는지 모릅니다.ㅋ

oren 2019-03-19 21:10   좋아요 1 | URL
파스칼의 『팡세』는 아주 유명한 책이지만 너무 호교론에 치우친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제게는 썩 구미에 당기는 책은 아니겠다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더랬지요. 그래서 페크 님꼐서 그동안 여러 차례 인용해 주시던 파스칼의 문장들을 보고도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까(아직 절반도 못 읽었지만요..) 뜻밖에도 ‘인간 존재의 조건‘을 둘러싼 재미있고 날카로운 통찰들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더군요. 몽테뉴를 많이 인용하는 것도 흥미롭고,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담긴 주장들과 유사한 이야기들도 많고요.(물론 몽테뉴를 그토록 자주 인용하면서도 그의 무신론에 가까운 입장에 대해서는 한사코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영 못마땅하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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