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소포클레스가 지은 순수 창작품일까? 아니면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전설이나 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일까? 아니면 실존 인물이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으나, 나는 '실존 인물'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그 주요 근거는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쓰여진 여러 문헌에서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데, 마치 트로이아 전쟁이 '신화나 전설 속의 이야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독일 고고학자인 슐리만에 의해 실제로 엄연히 존재했던 '고대 유적'으로 발굴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은 고대로부터 너무나 유명한 탓인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도 등장하고,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헤로도토스의 『역사』,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또한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있으며, 소포클레스보다 좀 더 뒤에 활약했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과 연관된 작품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 하면 그저 소포클레스가 순수하게 독창적으로 지어낸 작품으로만 알고 있는 듯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까마득한 과거에 '비극 경연 대회'에 올려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그런 작품들이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찬찬히 읽는 독자들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시대를 달리 하는 여러 고대의 작품들에도 다양하게 실려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품들은 대개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트로이아 서사시권' 작품들과 '테바이권 서사시'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들로 대별되는데, 테바이권 서사시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가 바로 '라이오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이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대 그리스 비극> 33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존하는 비극 33편 가운데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루는 작품은 불과 6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3부작'(『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작품보다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라는 작품도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사실 아이스퀼로스의 그 작품도 고대의 비극 경연 대회에서 한 세트를 이루는 4부작인 <비극 3편 + 사티로스 극 1편> 가운데 1편일 뿐이었고, 다른 세 작품이 망실되었기 때문에 홀로 덩그러니 외따로 떨어져 쓰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원래는 제1부 <라이오스>, 제2부 <오이디푸스>, 제3부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사티로스 극 <스핑크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스토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고대 그리스의 천재 시인이었던 소포클레스의 '너무나도 독창적인' 순수 창작품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아무튼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테바이 왕조의 출발점인 카드모스 왕 때 저지른 과오가 '인과응보' 격으로 라이오스 왕에게 '신탁'으로 내려졌다고 하며,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결혼하게 될 자식을 낳을 운명이었던 라이오스 왕은 그런 엄청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식 낳기를 한사코 꺼리다가 결국 오이디푸스를 낳았는데, 이 자식을 낳자 말자 부하를 시켜 키타이론 산에 내버렸다는 것이고, 그 때 혹시나 몰라 어린 아이의 발목에 구멍까지 뚫어서 나무에 붙들어 매어 놓았는데, 그 자식이 기어이 양치기 목동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궁궐에 입양되고,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자 코린토스의 궁궐을 떠나 테바이까지 갔다가, 거기서 괴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영웅이 되어 홀로 남은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해서 15년 정도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양치기 목동에게 구출되는 오이디푸스)

 

그러다가 다시 나라에 큰 역병이 돌자 다시금 '신탁'을 묻게 되고, 신탁에서는 선대왕인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 징벌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신탁을 듣고 해결사를 자청한 인물이 바로 오이디푸스였고, 그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범인임을 알게 되고(그는 테바이의 왕이 되기 전에 이미 '운명의 삼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신의 아버지를 사소한 시비 끝에 살해했다.), 결국 왕비인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달아 죽고, 자신은 죽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테바이에서 자청하여 추방된 끝에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길을 떠나 콜로노스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이 떠난 이후의 테베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 번갈아 1년씩 통치하기로 했으나, 형인 에테오클레스가 통치한지 1년이 지나도록 왕권을 물려주지 않자 동생인 폴뤼네이케스가 아르고스로 망명하여, 거기서 테베를 공격할 원정군을 모집하게 되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 이야기가 바로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에 담겨 있다. 거기서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게 되고, 섭정을 맡은 크레온은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말 것을 국법으로 공표하지만, 누이동생 안티고네는 '국법 보다 혈육의 정이 우선'이라며 기어코 오라버니의 시신을 매장하게 되고, 그녀는 끝내 사형을 언도받은 끝에 목을 매 자결한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이토록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막장 드라마 중에서도 최고봉'을 자랑하지만,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 또한 이에 못지 않다. 펠롭스 가문의 저주로도 불리는 그 비극에서는 형제간의 왕권 다툼이 결국 아이를 삶은 고기를 바치는 것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정부(情夫)와 짜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아가멤논)을 죽이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모를 살해하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남매의 이야기(『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등으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런 얘기들을 두루 담아서 『오이디푸스 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어떤 분이 정말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왔다. 오이디푸스 왕이 어머니와 결혼하여 낳은 네 명의 자식은 '소포클레스의 창작'이냐, 아니면 그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냐? 오래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라면 그 출전은 어디냐? 라고 질문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제23권 678행 ∼680행에도 등장하고, 『오뒷세이아』의 제11권 271행 ∼280행에도 나온다는 답글을 금방(?) 달았더니(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어디쯤에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는 얘기는 일부러 뺐다.), 이번에는 '오뒷세이아'를 통째로 외운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 책의 11권에 나오는지 알았느냐고 되묻는 질문이 달렸다.

 

암튼 알라딘 서재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질문들을 잇따라 받고 보니,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왠지 신선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덕분에 이런 기상천외한 글까지 쓰게 되고...

 

유튜브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KZxqeGxCF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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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0 0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도 막장이라 생각 정리를 위해 이 집안의 가계도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ㅋㅋ

oren 2020-02-10 09:49   좋아요 1 | URL
반유행열반인 님께서도 ‘가계도‘까지 그려보셨군요!
저런 그림을 한 번 그려보면 머리에 콱 박혀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점이 있어서 좋더군요.^^

로쟈 2020-02-10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독 눌렀습니다.^^

oren 2020-02-10 09:58   좋아요 1 | URL
로쟈 님께서 구독까지 눌러주시니 영광입니다!!

로쟈 님의 반갑기 그지없는 댓글을 보면서 문득 <이태원 클라쓰>를 떠올렸습니다.
손님도 없는 썰렁한 포차인 ‘단밤‘에 70만 팔로워를 지닌 막강 인플루언서 조이서가 도와주러 나타난, 딱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그리고, 박새로이가 이태원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도 떠올랐고요.

“쉬울 거라 생각 안했어, 어렵게 하면 되지, 돼, 당연한 거야.”

2020-02-10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2-12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십니다.
좋은 정보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20-02-12 23:25   좋아요 0 | URL
동영상 편집 기술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 표현하고 싶은 내용들을 마음껏 담아내지 못해 늘 아쉽답니다.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 * *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름난 문학작품일수록 유튜브에 동영상을 만들어 올릴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사실도 거듭 느낀다. 자칫하면 작품에 담긴 내용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오독했으면서도 그걸 도리어 자랑스레 떠벌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아니라 활자화된 글이라면 나중에라도 대처하기가 아주 쉽다. 아무 때나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는 즉시 흔적도 없이(!) 자신의 문장들을 고치거나 없애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은 한번 업로드한 이후에는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 영상을 송두리째 삭제하기 전까지는.

 

수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명망(?) 있는 유튜버가 올려 놓은 동영상에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게 분명해 보이는 '형편없는 오독'을 발견할 때에는 쓴웃음이 나온다. 구독자들의 수준이 유튜버를 따라 형성되는지는 몰라도, 그런 동영상에 덕지덕지 달린 수많은 댓글 중에서 따끔한 비판 한 마디 없는 걸 보면 더욱 씁쓸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나름대로 상당한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어떤 영상을 살펴 보고는 쓴웃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부터 앞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자체를 바꿔 놓은 정도는 실수나 애교로 봐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만남' 자체를 뒤죽박죽으로 순서를 뒤바꿔 놓은 부분은 너무 엉성해서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여주인공인 안나가 갑작스레 모스크바로 친정 오빠와 올케 언니를 만나러 오게 된 계기, 올케 언니를 만나기 앞서 기차역에서 우연히 브론스키부터 먼저 만난 경위, 안나가 키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무도회에 갔다가 도리어 브론스키에 매혹되어 키티의 훼방꾼으로 뒤바뀐 아이러니, 안나가 자기도 모르게 브론스키에게 매혹된 자신의 모습에 당혹해 하며 서둘러 모스크바를 떠나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지만, 귀가행 기차 안에서 또다시 브론스키를 만나 점점 더 그에게로 빠져드는 모습 등등을 (작가가 그려놓은) '사실임직한 순서 그대로' 정확하게 해설하지 않고도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이 가능할까.

 

우리의 여주인공(!) 안나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니고 브론스키 백작이 가장 먼저였다. 그런데도 안나가 모스크바에서의 볼 일을 다 끝내고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브론스키를 만났다고 해설하는 동영상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은 일일까. 등장 인물들 사이의 '만남의 순서' 자체를 뒤바꿔버린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 해설 동영상'이 이미 수 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에 의해 수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검색 상위 노출의 혜택'을 꾸준히 누릴 듯한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알라딘의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안나 카레니나』는 어쨌든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이런 걸작 소설에 대한 '작품 소개'를 한답시고, 리얼리티가 생명인 소설에서 '리얼리티 자체'를 뒤바꿔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톨스토이가 그토록 강조했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너무 배치되는 게 아닌가.

 

이런 불편한 얘기는 이쯤 하고, 차제에 다시 한번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도 이번에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나의 나이브한(?) 생각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일부러 직접 만들어 본) 다음의 표다.

 

 

놀랍게도 『안나 카레니나』가 영미권 유명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로 뽑힌 것이다. 『마담 보바리』 가 뜻밖에도 2위였고, 『전쟁과 평화』가 3위였다. 나는 <최고 작품 20선>에 뽑힌 작품 가운데 세 작품(7위, 10위, 19위)만 빼놓고는 다 읽었는데, 이 가운데 몇몇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로 바꾸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콕 집어내듯 어떤 작품을 빼고 어떤 작품을 대신 집어넣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밝히고 싶지 않다.(너무나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판단이고, 내 생각에 선뜻 동의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영화화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기회에 살펴 봤더니,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았던 여배우들은 과연 쟁쟁했다. 그레타 가르보(1935년), 비비안 리(1948년),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2년)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소피 마르소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 때 주로 사용했던 이미지들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으로 나섰던 2012년작 영화를 많이 참고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때 상상했던 안나의 이미지와는 조금 벗어나지만, 뜻밖에도 안나의 내면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일 아쉬운 건 '레빈의 시골 생활'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다. 레빈이 여름철마다 농부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풀베기에 열중하는 장면, 애완견과 함께 멧도요를 사냥하는 장면 등등은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소개 동영상에서는 그걸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24분짜리 동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이미지 컷은 대략 200장 가까이 소요됐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그림도 따로 만들어 봤다.

 

 

이 작품을 해설하면서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의 비교 설명도 조금 덧붙여 봤다. 톨스토이의 다양한 이미지도 찾아 보고, 『전쟁과 평화』의 육필 원고, 『안나 카레니나』의 육필 원고 이미지까지 찾아 넣었다.

 

이렇게나 열심히(!)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지만, 업로드한 지 무려 24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조회수'는 고작 50회 남짓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안나 카레니나』에게 무관심한 걸까. 이 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탓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위안으로 삼아 본다. 바이러스는  참으로! 밉다!!

 

유튜브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3rMl-7frv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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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2-04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말씀이...ㅋㅋㅋㅋ
이렇게 열심히 만드시는데 조회수 50이라니 기운 빠지긴 하시겠어요.
그러고 보면 알라딘 서재가 처음 생기고 서재질 시작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만해도 하루 조회수 50이면 꽤 괜찮은 수치였던 것 같은데...
저는 하도 와 봐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걸 더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아마 처음이라 그럴 것이고 차츰 늘어나리라 믿습니다. 오렌님 글은 이미 이곳에선 정평이 나 있지 않습니까?
좀 더 욕심을 내신다면 직접 출연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카메라가 다소 부담되시겠지만 유튜버가 화면에 등장하는 것과 안 하고는 차이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유튜버는 카메라는 보고 말하는 거지만 독자는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용기를 내보심이...!ㅎ

그렇지 않아도 오늘 EBS에서 <지식의 기쁨>란 프로의 지난 방송분에 윤새라 교수의 ‘톨스토이를 읽다‘가 있어
봤습니다. 그분도 ‘안나 카레니나‘를 언급했는데 톨스토이가 8부는 자비를 들여 따로 출간했다고 하더군요.
왜냐면 그때 톨스토이는 반전주의자가 되었는데 8부가 그런 내용을 그리고 있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전을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편집자와 뜻이 안 맞아 자비출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암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유튜브도 번창하시길 기원드립니다.^^

oren 2020-02-04 15:41   좋아요 2 | URL
알라딘 서재 초창기 시절엔 누구나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초창기 1년 내지 2년 동안은 하루 방문자수가 5회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요. 나중에 하루 50회 혹은 100회를 넘어가는 걸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었고요.

유튜브에서 얼굴을 (고의든 아니든) 드러내지 않고 영상을 만든다는 건 유튜버로서는 ‘심각한 손실‘이 아닐 수 없지요.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데도 음성통화만 고집하는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유튜브 영상에서는 유튜버의 생생한 표정과 아이컨택과 몸짓 등등이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요. 저도 그 점은 충분히 알고 있는데,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눈을 맞춰 가면서 ‘설명‘을 하자면, 지금보다 추가적인 장비가 상당히 들어갈 듯해서(웹카메라, 마이크, 조명, 프롬프터 등) 일부러 자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8부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톨스토이의 반전 사상‘이 실려 있어서, 편집자가 강하게 출판을 반대했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영상을 만들면서, 다른 영상들은 하나도 참고하지 않았는데(심지어 영화조차도 챙겨보지 못했고요.) 윤새라 교수님의 영상을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여러모로 유익한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Mind 2020-02-05 0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알라딘이 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탁월한 글을 읽고 “좋아요”밖에 누르지 못하니까요. 알라딘은 페이스북처럼 좋아요 · 최고예요 · 웃겨요(재밌어요) · 멋져요 · 슬퍼요 · 화나요 같이 다양하게 글을 추천하거나 비추천할 수 있도록 추천 기능 설정을 개편해야 합니다. 알라딘은 너무나 시대에 뒤처지고 있어요. 알라딘 블로그 글을 누군가가 공유했는지도 알 수 있도록 (페이스북처럼) 개편해야 합니다. 이모지(emoji)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필수적으로 설정해놔야 하고요. 알라딘은 책 파는 데만 신경 썼지 (알라딘 매출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블로거들의 블로그 활동을 위한 블로그 웹 페이지 개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합니다. 알라딘 블로그는 너무나 구시대적이고 휙휙 돌아가는 시대의 혁신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와 같이 울나라 인터넷 기업들 웹 페이지 운영 대부분이 한심스러운 수준이지만, 알라딘은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말 블로거들의 블로그 활동을 위해 뭔가 대대적인 개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진출은 꿈도 못 꾸고(안 꾸고) 걍 국내 소규모 인터넷 서점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무튼, oren 님의 유튜브 채널 운영 방법이랄까 동영상 제작상의 다양한 전략과 방법론이랄까, 이런 걸 몇 번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기회를 내지 못했네요. 걍 개인적 의견입니다. 제 얘기가 틀리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oren 님 생각은 저와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독자분들이나 시청자분들도 제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죠. 하니 걍 이런 의견도 있구나 참고만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① 목소리 톤(음색 · 음정 · 음강도 · 빠르기 · 리듬 등등)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할 듯합니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다시 말해서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자기 목소리를 일상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아마추어라고 봅니다. 유튜브는 일종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기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점검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고 더 많은 시청자와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얘기를 접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걸 누구는 모르겠냐고들 반응하는데요. 그런 반응은 사후약방문적이고 후험적인 것이며 뒷북치기식 반응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평이한 사항이라도 먼저 깨닫고 먼저 실제에 적용해야 비로소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② 제가 볼 때 oren 님 목소리는 일상에서는 정말 인간적이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한테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데 유튜브 동영상에서의 oren 님 목소리는 다른 수많은 유튜버들의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를 고려할 때 다듬어야 할 여지가 많다는 얘깁니다. oren 님의 원래의 일상적 목소리에서 검토와 훈련을 통해 훨씬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시청자들의 귀를 좀 더 유혹하고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뭔가 끌리는 소리로 청각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음색 · 음정 · 음강도 · 빠르기 · 리듬 등등을 섬세하게 개발해서 구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건대 oren 님의 목소리 톤은 아직은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물론 목소리에서의 열세를 내용으로, 오로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칸텐츠(콘텐츠)로 극복하고 승부하겠다는 생각도 분명 일리는 있죠. 하지만 거기에 다수 시청자가 원하는 목소리를 뽑아내 입힌다면 정말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즉 음색을 oren 님 원래 목소리에서 조금 더 맑고 투명하게 뽑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목소리 음색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자기 머리통이 소리통이 되어 들리는 자기 목소리는 일종의 공명음이기 때문입니다. 입 밖으로 발설돼 나가 타인의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와 공명음으로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애초에 우리 모두는 자기애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좋은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기나 동영상으로 객관화해 들어도 이미 자기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해서 내 목소리가 남한테도 내가 듣는 것처럼 좋게만, 최소한 별다른 이상 없이 들리리라는 무의식적 혹은 무자각적 심리 상태를 우리는 분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oren 님께서도 자신의 음색이 어떤 음색인지 다각도로 파악해 가다듬고 조율할 방도를 생각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③ 음정 · 음강도(강약) 등도 좀 더 부드럽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상황과 때에 따라 적절히 구사해야 하겠죠. 말의 빠르기 대해선 아마도 사람들 의견이 양분될 텐데요. 제 의견은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말하기 속도가 느리다고 봅니다. 인터넷 혁명 시대, 클릭 하나로 빛의 속도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를 맞아 한국인들은 좀 더 빠르게 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말을 빨리 한다는 건 생각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걸 의미하겠죠.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는 건 그만큼 배경 지식과 견문과 통찰력 등이 더 풍부하고 더 앞선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이런 사실은 말 빠른 사람이 더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하겠죠. 이런 논리가 모든 경우, 모든 상황, 모든 맥락에서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빠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강점이 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인 듯합니다. 해서 유튜브 시청자들한테도 풍부한 내용을 빠르게 전달해주는 동영상이 훨씬 더 강점을 지닐 것이라 봅니다. 물론 깊은 사유와 느린 음미가 그 본질이랄 수도 있는 문학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말 빠른 전달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우려도 있지요. 하지만 유튜브 문학류 동영상의 주 핵심은 ‘소개’ 혹은 ‘길잡이’ 혹은 ‘맛보기’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유튜브 동영상 시청자들도 호흡이 짧고 감각적인 것에 더 잘 반응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휙휙 옮겨가길 밥 먹듯이 하는 부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향에 맞춰 빠르게 소개해주고 빠르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 하나의 방안이 말을 빠르게 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호흡 짧고 감각적이고 변덕 심한 유튜브 시청자들을 효과 높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 대해 (oren 님의 말하기 속도가 그닥 느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oren 님께서는 깊게 고민해보셔야 할 듯합니다.

④ 말하기의 리듬 또한 우리 현대 한국어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한데 이것도 어느 정도의 훈련으로 충분이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말의 빠르기에 말 그대로 ‘리드미컬한’ 리듬과 가락(박자나 장단)을 넣어준다면, 문학 작품을 설명해주는 동영상의 경우 그 효과는 크게 배가되리라 봅니다.

⑤ 목소리 연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oren 님께서 세계 명작들을 소개해주실 때 작품 속 대사들을 낭독하거나 연기해주시는데요. 제 판단에는 너무나 서툴고 투박하고 딱딱하고 어설프게 들립니다. 이왕 할 거면 성우처럼, 영화나 극 중의 배우처럼, 대사에 맞는 감정을 넣고 연기력을 발휘해 아주 프로답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 성우나 배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oren 님께서 목소리 연기를 그럴듯하게만 해주신다면 유튜브 시청자들한테 더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리라 봅니다.

⑥ 앞으로 oren 님께서 직접 출연해 얘기해주는 동영상 제작으로 나아가시리라 예측이 되는데요. 그런 때를 대비해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사항들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목소리 동영상’을 제작해나가는 동안 적극적으로 반영 ·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목소리 디자인’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봅니다. 칸텐츠(콘텐츠) 디자인과 영상 편집 디자인 못지않게, 아니 그와 동등한 중요성으로 목소리 디자인 개념을 챙기셔야 할 줄 압니다.

이상 (다른 드릴 말씀도 많았는데 쓰려고 하니까 싹 사라져 버리네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oren 님께서 이미 고려하고 계획 · 추진 중인 내용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있을 줄 압니다. 아무쪼록 (칸텐츠 측면에서는 여타 유튜버들보다 훨씬 윗길을 가시는) oren 님께서 훌륭한 유튜버로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oren 2020-02-05 13:06   좋아요 1 | URL
조목조목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중한 말씀들을 어쩌면 이토록 조리 있고도 귀에 쏙쏙 박히도록 말씀해 주시는지요. 일부러 청해서라도 이런 조언들을 듣고 싶었는데, 자원(自願 & 自遠)해서 소중한 말씀을 남겨주시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알라딘의 블로그 활동에 대한 무신경한 대응은 저도 적극 공감합니다. 알라딘에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기 위한 이용자들도 많겠지만, 구매와 더불어 블로그 활동까지 곁들이는 분들도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블로그 활동까지 적극적인 분들은 책 구매량 또한 상당한 경향이 있고요. 그런데도 알라딘은 충성스런(?) 알라디너들의 블로그 활동에 대해 정말 너무 무신경한 듯합니다. 자신들의 플랫폼에 양질의 컨텐츠와 이용자들을 붙잡아 두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다른 많은 플랫폼들과는 너무 다른 행태들 때문에, 오랫동안 알라딘에서 블로그 활동을 했던 사람들마저도 ‘미련을 접고‘ 떠나가는 분들도 많은 듯하고요. 저 역시 알라딘에 오래 머무는 동안 적잖은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알라딘으로부터 ‘블로그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받거나, 육성된다는(?) 느낌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글쓰기를 적극 지원하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계속 생겨나고, 네이버나 유튜브처럼 직접적으로 ‘광고수익을 쉐어하는‘ 플랫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모습들을 보면, 알라딘의 디지털 마인드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 지기도 합니다. 알라딘 얘기는 이쯤 하고요.

제 유튜브 채널에 대한 귀중한 조언들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유튜브 영상에서 목소리나 음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오디오가 동영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0% 이상이라고도 말하더군요. TV나 유튜브 영상물들이 아무리 넘쳐흘러도 여전히 라디오를 애청하는 사람들이 많고, 유튜브 영상에서도 영상 보다는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중시하는 구독자들이 상당하니 말이지요.

그런데, 목소리는 훈련에 의해서도 개선되고 향상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았을 때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제 목소리였습니다. 사투리 억양도 있는 데다가,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거나, 음정의 톤이나 음색이 너무 조용한 편이어서 강약조절이나 악센트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무턱대고 영상을 하나하나씩 만들다 보니까, 다른 인기 유튜버들의 영상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제 목소리‘에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컨텐츠는 나름 봐줄 수 있을 듯한데, 목소리가 너무 전달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제 스스로도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영상을 새롭게 만들 때마다 조금씩(!)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 혹은 감정들을 담아보려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영상을 보고 들을 때마다 ‘목소리 연기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더군요.

여기에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도 얼마쯤 작용하는 듯합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유튜브 장비라고는 친구한테 빌린 ‘2만 원짜리 핀 마이크‘ 하나가 전부인데, 인기 유튜버들은 상당히 좋은 성능의 마이크를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초보 유튜버들의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오디오‘ 부분이 현저히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녹음 장비는 물론 녹음 환경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듯합니다.(저 역시 아직까지도 몰래 숨어서 녹음하다시피, 간신히 짬을 내어 조용하게 녹음하는 처지니까 말이지요. 초보 유튜버들은 심지어 건물의 옥상이나 지하 주차장의 자동차 안에서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분들도 심심찮게 보이더군요.)

어차피 유튜버로서 문학작품을 좀 더 호소력 있게 전달하려면 ‘목소리 연기‘는 필수인 듯합니다. 저보다 몇 달 앞서서 유튜브를 시작한 제 친구 왈, 유튜버는 어차피 ‘1인 크리에이터‘이면서 동시에 ‘작가, 연출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배우처럼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는 정말 공감합니다. 앞으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목소리 디자인‘이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참 많이 듣는 편인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멘트에 대해서 유심히 듣게 되더군요. 그들의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탐이 나고 부럽더군요. 그런데 그런 아나운서나 배우들도 정말 10년, 20년씩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런 경지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치게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유튜버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영상 제작 스킬‘뿐 아니라, ‘목소리 연기를 포함한 오디오 부문‘에서도 초보 유튜버와 인기 유튜버들 사이에는 누가 보더라도 확연할 정도로,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니까 말이지요.

Mind 님의 소중한 조언들을 두 번, 세 번 거듭 읽으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무신경하게 넘어갔던 많은 부분들이, 동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고스란히‘ 백일하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컨텐츠의 깊이나 퀄리티뿐 아니라, 그 컨텐츠를 설명하는 배우 또는 성우(결국 유튜버 자신이지만요)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얼마나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더욱 실감하게 되고요.

까마득한 옛날 고대 비극 시인들이 그저 단순히 시만 잘 쓴 게 아니라 ‘운율을 담은 노래가락처럼‘ 음송하는 실력 또한 얼마나 뛰어났을까를 생각하면, 요즘 유튜버들의 낭송 수준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그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전달능력‘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 어디에서도 구해 들을 수 없는 알차고도 귀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카스피 2020-02-05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알단 안나 카레리나를 필두로 러시아 문학들은 현재 입장에서 본다면 초 장편이라 일반 독자들이 제목을 들었지만 실제 읽은 분들은 적어서 아마 쉬이 관심을 가질수 없기 떄문일 겁니다.저한테 안나 카레리나는 뭐랄까 지루함이 대명사처럼 느껴지는데 러시아 영화 안나 카레리나에서 눈길의 마차 장면 클로즈업만 30분이나 나와서 책을 읽을 엄두를 못냈기 때문이죠.
그나저나 영미권작가들이 뽑은 최고 작품중에서 다른것은 그렇다 쳐도 롤리타가 들어있는 것은 참 의외입니다.국내에선 소아성애 변태문학쯤으로 치부되는 책인데 말이죠.

oren 2020-02-05 23:13   좋아요 1 | URL
영미권 작가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 가운데 TOP 10 안에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무려 넷이나 뽑힌 것도 그렇고, 1위와 2위 작품이 모두 ‘불륜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라는 점도 좀 특이하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너무 뛰어나서, 세계 최고의 작품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날 뿐더러, 결코 소아성애자의 변태성욕을 다룬 소설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왜곡되어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봅니다. 저도 그 작품은 한 번밖에 읽지 못해서 그 소설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번 혹은 세 번쯤 읽고 그 작품에 대한 리뷰나 소개를 할까 맘 먹고 있는데, 변태문학으로 알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작품의 1/10이 아니라 1/100도 읽지 못하고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싶습니다.^^ 결코 만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여행지에서 겪은 일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흥분 상태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 일행 네 명이 난생 처음으로 베를린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겪은 온갖 이야기만큼은 몹시 특별했다고, 아직까지도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일행은 2014년 여름에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자동차로 완전히 한 바퀴를 뺑 도는 '17일 동안의 장기 투어'를 떠났는데, 첫 도착지인 뮌헨에서부터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드는 상황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 구글 지도로 살펴본 '여행 예정 경로'
 

 

 

허츠에 미리 예약해 놨던 '짐칸이 넉넉한 4인승 자동차' 대신 벤츠에서 나온 신형 미니밴부터 부담스러웠다. 출고된지 6개월도 안 된 최신형 미니밴을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하라는 권유마저도 달갑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에는 무척이나 좋겠지만, 도심지의 좁은 주차장을 들락거릴 때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용했던 벤츠 미니벤, Viano)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아우토반을 시속 250km까지 뿡뿡 내달려도 소음과 진동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땐 마냥 좋았으나, 유럽에서도 오래된 여러 도시의 좁은 주차공간을 드나들 때마다 몹시 신경이 쓰였다.

 

첫 번째 '주차 사건'은 바로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에 벌어졌다. 호텔 종업원이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보더니, 호텔에 딸린 지하 주차 공간으로 내려가라면서, 호텔 건물을 끼고 한참이나 돌아 들어가는 '복잡한 동선'을 가르쳐줬다. 간신히 지하주차장 입구를 찾아 내려가면서도 조마조마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몹시 좁았기 때문이다.

 

커브길을 따라 지하로 2개층 정도를 내려가니 거기서 다시 커브로 꺾어 들어가는 출입구에 차량 제어바가 나타났다. 버튼을 누른 뒤 제어바가 올라가자 우리는 차를 조심조심 들이밀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탄 차가 예상보다 '덩치'가 너무 컸다. 차량의 우측 전방과 좌측 후미가 동시에 주차 제어 시설에 '꽉' 끼고 말았다. 주차 시설의 경광등이 삐뽀~ 삐뽀~ 울리고, 차는 꼼짝달싹도 못하고, 우리 뒷편으로 쭈욱~~ 주차를 위해 내려오는 차들은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기다리고... 정말로 난감했고, 진퇴양난이었다.

 

간신히, 간신히, 상황을 수습했다. 우리 뒤로 뒤따라 들어온 차량들을 일일이 뒤로 물린 끝에, 간신히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 우리는 (차량 손상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용감히 후진을 해서 화물차가 이용하는 통로로 간신히 우회해서 빠져나왔다. 무턱대고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해준 호텔 종업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간신히 주차를 하고 나서는, 그날 저녁에 벌어지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구경하러 나섰다. 그날은 마침 독일과 프랑스의 8강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고 축구 경기를 맘껏 즐겼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난 뒤 독일 축구팬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와 즐겼던 '뒷풀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첫날 밤이 지났고, 이튿날이 되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베를린 시내 투어에 나섰다. 그러나 둘째날은 첫째날보다 더 험악한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둘째날의 당혹스러움은 저녁 식사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한낮의 대소동을 간신히 수습하고도 모자라, 안도의 저녁 식사를 즐기다가도 난데 없는 봉변을 겪었다. 베를린에서도 가장 오래된 맛집이고, 식도락가였던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베토벤과 찰리 채플린까지 즐겨 찾았다는 그 유명한 식당을 간신히 찾아간 우리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헤프닝'을 실제로 겪었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뜻밖에도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을 읽을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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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2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월드컵에 독일이 한국에 지고, 조별 꼴찌로 탈락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ㅎㅎㅎㅎ

oren 2020-01-27 20: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토록 강해 보였던 게르만 전차군단이 4년 만에 녹슨 고철 덩어리처럼 허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2014년 저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 축구팬들 가운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데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짜리도 손흥민을 잘 알고 있더라구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프레이야 2020-01-3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과 일주일 전 베를린에 다녀와서 귀 쫑긋하고 잘 듣고 보았습니다. 저 레스토랑을 미리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걸 아쉽네요. 겨울이라 날씨가 별로여서 감기도 들어버리고 좀 그랬네요ㅠ 오렌님 구수한 말투로 유튜버로서 완전 자리 잡아가시는 거 같아요. 유머와 재미 그리고 책여행이 아주 잘 어울리고 영양가도 높아요. 구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

oren 2020-01-30 23:22   좋아요 1 | URL
불과 일주일 전에 베를린을 다녀오셨다구요? 정말 정말 깜놀이네요. 베를린이 무슨 이웃동네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 식당을 제대로(!) 촬영한 동영상을 외국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봤는데, 어찌나 감회가 새롭던지, 눈물이 다 나올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도 포크 통을 내리치던 그 용감무쌍하고 겁없던 40대 여종업원은 찾지 못하겠더군요. 이번 영상은 최대한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갖은 애를 쓴 덕분에, 그나마 재미있게 봤다는 반응을 얼마쯤 얻는 데 성공하긴 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지속성 있고 영양가 있는 영상을 만들어 보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채널을 구독해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요.^^
 

 

몽테뉴의 수상록은 내가 네 번이나 읽은 셈 치는 애독서 가운데 하나다.

 

맨 처음으로 읽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기간이었다. 그때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 몽테뉴와 알고 지낸지 어언 39년이 흘렀다. 몽테뉴의 책은 어느새 '평생을 함께 하는 길동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읽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고, 세 번째로 읽은 건 6년 전쯤이다. 네 번째로는 '필사'를 하느라 꼼꼼히 다시 읽었다. 필사한 내용을 교정 보느라 또다시 '필사한 부분'을 두어 번 더 읽었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는 '필사한 부분'만 따로 읽은 적도 있으니, 이래저래 따지자면 나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적어도 예닐곱 번쯤은 읽은 셈이다. 그러니 몽테뉴와 수상록에 대한 애착이 유별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을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싶은 열망은 굴뚝같았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어쨌든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 그가 쓴 재치있는 문장들을 여럿 소개하고픈 욕심이 컸는데, 컴퓨터 화면을 켜 놓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가 필사한 부분들을 꺼내 펼쳐서 '몽테뉴 수상록'을 설명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원고'없이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임기응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도를 여러 차례 '녹화'에 담아 봤는데, 녹화 시간만 엄청 잡아먹고, 결과물은 매번 신통찮아서, 결국 그 영상은 편집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몽테뉴의 엑기스는 필사한 부분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는데, 이걸 재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① (1∼116쪽)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② (114∼349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① (351∼593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② (595∼728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③ (733∼865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① (870∼994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② (995∼1112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③ (1116∼1248쪽) 

 

 

그런데, 고되게 필사한 부분들을 영상에 담는 걸 포기하고 나니, 몽테뉴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갑자기 몹시 수월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이미지들을 발굴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5 분짜리 동영상에 일일이 자막을 다는 '친절'까지도 베풀 수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들은 왜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자막을 달아주는 것일까. '자막'을 붙이는 작업만 하더라도 꼬박 너댓 시간쯤은 더 걸렸을 듯하다. 타이핑이 문제가 아니라, 내레이션에 정확하게 맞춰서 '자막'을 딱딱 타이밍에 맞게 집어 넣는 게 '진짜 일'이다. 이렇게 목소리와 자막까지 일일이 제공하느라 '영상 제작'이 힘이 드는 것이다.

 

몽테뉴가 말한 대로 동영상 제작자는 유튜브 이용자들을 위해 '그들 대신 씹어주는' 셈이다. 시청자들은 그저 영상 제작자가 애써 여기저기서 재료를 끌어와 자근자근 씹어 놓은 것을 그저 삼키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영상 제작자와 소비자들은 '수고'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비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어쩌랴. 유튜브라는 엄청난(?) 시장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된 작업이라도 참고 '공급'할 수밖에. 오늘 저녁 퇴근 후 자막을 1/10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딱딱 맞춰서 다는 동안 몽테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대신 씹어주는' 그 구절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원한다면 그들 대신 내가 대신 씹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 가지 위안이라면 '영상 녹음'과 '영상 편집'이 첫 번째 작업보다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25분짜리 몽테뉴 수상록을 일주일 이내로 뚝딱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는 온 듯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주엔 송년 모임을 두 번씩이나 쎄게 치렀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한 번은 토요일 하루를 몽땅 빼았겼고...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pCX01dJQy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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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2-3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셨군요. oren님의 새로운 도전 응원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좋은 리뷰와 좋은 동영상으로 뵙기를 기원합니다.^^:)

oren 2019-12-30 16:26   좋아요 2 | URL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건 11월 초순부터였습니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 우왕좌왕, 온갖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정신없이 연말까지 흘러온 듯하네요.

내년에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뿐만 아니라, 알라딘에 양질(?)의 글을 올리는 일도 병행했으면 싶은데, 잘 될런지 걱정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활기 넘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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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흘 남짓 동안에 『월든』과 뜻하지 않게 사투(?)를 벌였다. 유튜브에 올릴 『월든』동영상을 제작하는 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처녀작(?)은 완성되어 오늘 저녁에 업로드 됐다.

 

여러모로 아쉽고도 후련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에 대한 소개를 흡족하리만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쉽고, 나의 처녀작 동영상임에도 욕심을 꺾지 않고 밀어부친 끝에 무려 33분짜리 동영상을 기어코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 후련하다.

 

유튜브 동영상은 누구나 만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영상 녹화 프로그램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그 프로그램을 쓸 때 영상과 오디오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카메라와 마이크는 또 어떤 게 좋은지, 녹화 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또 어떤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로 '독학'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행착오 끝에 33분짜리 동영상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는 뿌듯하다. 그런데, 30분짜리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나다. 알라딘에서 페이퍼나 리뷰를 한 편 쓰듯이 만드는 '대본 작성 작업'은 그야말로 전체 공정에서 고작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책 소개 동영상을 하나 만들자면 알라딘에서 리뷰나 페이퍼를 쓰는 작업의 10배에 가까운 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숙달되고 나면 그보다야 훨씬 나아지겠지만 말이다.

 

맨 처음엔 이 작업을 아주 우습게 생각했더랬다. 내가 알라딘에 올렸던 '월든 관련글'만 무려 147개나 됐고, 그 글들 속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글과 사진들을 적당히 재활용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동영상을 제작하려다 보니, 불과 몇 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이미지'로 영상이 고정되기만 하면 그 영상 자체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30분짜리 동영상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하다는 말인가. 평균 3초에 하나씩만 바꾸더라도 무려 600개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걸 도대체 무슨 수로 충당하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들을 여러 차례 재활용하는 게 불가피했다. 가령 월든 호수의 이미지라든가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이미지가 그랬다.

 

그런데 나머지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알맞는 이미지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령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할 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 데도 골탕을 먹었다. '졸업장 제작에 드는 비용 1달러 납부'를 거부했다는 그 일화 때문에, 나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정과 졸업식 장면과 대학 졸업장은 물론 '양'에 대한 이미지까지 찾아내야 했다! 왜냐하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졸업장'이 양피지로 만들어지는 사실을 알고 '자연보호의 선구자' 답게 그걸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양가죽은 양들이 갖고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면서 '양'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그 영상이 도대체 얼마나 썰렁하겠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직업'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 겪었던 고통도 적지는 않았다.

 

소로우는 어느 날 하버드 대학교의 관리자가 '자신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교사-개인 가정교사, 측량사-정원사, 농부-페인트공, 목수, 벽돌공, 일용 노동자, 연필 제조공, 사포 제조공, 작가, 때로는 삼류시인입니다"

 

소로우의 이 짧은 대답 하나에 알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 나는 무료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을 여러 번 들락거려야 했다. 이 짤막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데 필요한 이미지를 구하는 데만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던 듯하다.

 

가끔씩은 생각 밖으로 좋은 이미지들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소로우가 형과 함께 보트 여행을 떠났던 일화, 동물들과 어울리는 소로우의 모습, '독서'에 관한 장을 소개할 때 찾아낸 이미지 등이 그랬다.

 

(보트 여행에 대한 이미지)

 

(동물들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몇몇 대목에서는 내가 한때 '소로우'를 떠올리면서 찍은 사진들을 쏠쏠하게 재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수공원의 저녁노을)

 

(영덕 칠보산에서 만난 '소나무의 죽음')

 

(호수공원의 저녁 노을)

 

내가 두 번째로 만들고 싶은 책 소개 동영상은 몽테뉴 『수상록』인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그나마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가 많아서 얼마든지 해당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게 가능했는데, 몽테뉴의 수상록을 소개할 때는 도대체 어떤 이미지를 골라 써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로우만큼이나 좋아하는 몽테뉴를 제쳐두고 다른 작가를 미리 소개할 수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일에 맞닥뜨려 보면 적당한 타협책이 있으리라 믿는다.

 

글을 쓰는 건 이렇게도 쉬운데 영동상 만들기는 도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

대본 읽는 작업이 쉽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 동영상은 아예 제외하고 목소리만 담았는데도 말이다!

(한밤중에 식구들 몰래 녹취하느라 목소리 톤이 너무 조용스러운 것도 조금 불만이다.)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VY9sw4nPX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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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16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 더빙까지 ^^ 신경 많이 쓰셨네요.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만한 작업으로 보이는데요.
현대에도 여전히 월든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건 아직도 우리 마음 속 고향은 자연이기 때문인가봅니다.
저는 사실 월든 끝까지 다 못읽었는데 페이지 마다 줄 안긋도 넘어갈 수 없던 책이라고 하시니 다시 읽어볼 동기부여가 충분히 됩니다.

oren 2019-12-16 12:21   좋아요 2 | URL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작업으로 보셨다면, 그래도 제가 만든 동영상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시네요. 그것만으로도 애쓴 보람을 느낍니다.^^

『월든』은 참 독특한 책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손꼽는 책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독자들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거나, 읽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등 반응이 정말로 제각각이니까 말이지요.

저는 『월든』이 ‘대단히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 책으로 읽혀서, 행간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찾아내는 데에도 상당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들을 동영상에 최대한 담아보려 했으나, 능력부족을 절감할 수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합니다.

hnine 님께서 『월든』을 다시 읽으신다면, 저로서는 그만한 보람도 없겠다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18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전문성까지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멋진 작업인 것 같아요.
한 해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달에 알차게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oren 2019-12-18 12:41   좋아요 1 | URL
영상물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에 ‘책 이야기‘를 만들어 싣는 작업이 간단치가 않네요.

흔히들 하는 말로, 영상 기획, 촬영, 녹음, 음향 및 영상 편집 등등 모든 요소들을 오롯이 1인이 홀로 다 떠맡아 해야 하는 지경이니까요.

그러나 책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이미지와 음성과 배경음악과 텍스트(자막)을 한꺼번에 결합했을 때, 새로운 활력을 얻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어떤 이야기든 에세이나 소설처럼 단순히 산문으로만 표현될 수는 없고, 때로는 서사시로, 때로는 희곡과 연극으로, 때로는 오페라와 음악으로, 때로는 드라마로, 아주 다양하게 전달되듯이, 책 이야기도 영상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될 여지는 많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어떤 이야기든 그걸 어떻게 잘 꾸미고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을 테니까요.

처음이라 아직 여러모로 정신이 없지만, 하나둘 맞닥뜨리면서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