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괴물'로 변해 버린 어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놀랍다. 몇 줄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쓰기 창'을 열었더니 어젯밤에 스쳐 지나간 엉뚱한 뉴스 한 토막이 어느 틈에 내 머릿속을 비집고 끼어든다.

 

그 뉴스의 제목은 이랬다.

 

"성매매 사실 폭로하겠다" 무작위 전화에 남성들 '수백만 원' 입금

 

이런 속임수의 원조는 아마도 '노벨상'에 빛나는 버나드 쇼가 아닐까. 그가 어느날 영국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보낸 장난 전보 하나에 런던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전보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모든 게 들통 났다. 빨리 튀어라!"

 

어느 여검사가 오랜 침묵 끝에 자신이 '직장 내에서' 겪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게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투 운동이 어느새 오랫동안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군림하던 사람까지 벌써 추악한 괴물로 추락시켰으니 그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정보 전달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빠른 세상도 일찍이 없었으니, 어느 누가 아주 그럴싸한 문장을 시대에 맞게 새로 꾸며내어 당장 내일 아침에 수백 만 남성들에게 '무작위'로 충격적인 메시지를 보낸다고 상상해 보라. 뻔한 보이스 피싱 하나만 듣고도 기겁을 하며 수백만 원씩 덜컥 입금하는 형편이니, 아주 그럴싸하게 꾸민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놀라 자빠질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겠는가.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니 문득 '시인과 술자리'를 다룬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 생각난다. 시인과 술자리에 더해 에로스까지 다룬 작품 가운데 플라톤의 『향연』을 제쳐 놓을 순 없다. 에로스에 관한 거의 모든 고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그 유명한 대화편의 무대가 마침 '등단'을 축하하는 술자리였다. 때는 기원전 416년이었다. 레나이아(Lenaia)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젊은 시인이 자축하기 위해 자신의 저택에 손님들을 불러모았는데, 그들은 너무나 '고상하게도'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에로스'에 관해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펼쳤다.

 

그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나 화려해서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모두들 하나같이 '당대 최고'라 불려 마땅한 인물이었다. 아니 '당대 최고'로는 조금 부족할지 모른다. 인류 최고라 불러 마땅한 인물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자리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처음 우승을 차지한 아가톤 자신 말고도 당시 나이가 쉰넷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최연장자로 참석했고, 서른네 살쯤 된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또한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도 있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맹활약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알키비아데스도 끼어 있었다.(알키비아데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도 다뤄지는 아테네의 영웅이었으며, 특히 소크라테스와 아주 친밀한 사이였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내가 새삼 끄집어내고 싶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나쁜 연인이란 혼보다 몸을 더 사랑하는 범속한 연인이네. 그래서 그런 연인은 한결같지 않은데, 한결같지 않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가 사랑하던 몸에 꽃이 지기 시작하면 그는 '날개를 타고 떠나간다네', 수많은 말과 약속이 물거품이 되게 하고는. 반면 고상한 성격을 사랑하는 연인은 평생 한결같은데, 이는 그가 한결같은 것과 하나로 융합되었기 때문이라네. 그러니까 우리의 법이 의도하는 바는 이 두 종류의 연인을 제대로 잘 검증하여, 어떤 연인의 청을 들어주고 어떤 연인을 회피해야 할지 보여주는 것이네. 그래서 우리의 법은 연인은 연동을 뒤쫓고 연동은 달아나도록 격려하는데, 이런 시련과 시험을 통해 연인과 연동이 이 두 부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지. 또한 그런 이유에서 첫째, 연동이 빨리 잡히는 것은 추한 일로 간주되네. 만물의 시금석인 시간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지. 둘째, 돈이나 정치권력에 잡히는 것도 추한 일로 간주되네. 박해에 주눅 들어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하든, 부와 권력을 맛본 뒤 그런 특혜를 무시하지 못하든 말일세.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특혜들에서는 고귀한 우정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그런 것들은 어느 것도 확고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은 것 같기 때문이네.(264∼265쪽)

 

 - 플라톤, 『향연』 

 

 

플라톤이 『향연』에서 풍성하게 펼쳐 놓은 '사랑에 대한 찬가'는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수많은 철학자나 시인들에 의해 셀 수도 없이 읽혀 왔다. 뿐만 아니라 대화편의 내용과 형식 자체가  철학과 문학과 예술 분야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 왔다. 그 가운데 일부를 여기서 조금 더 인용하면 이렇다.

 

 

에로스의, 절제, 용기에 관해 말했으니, 이제는 그분의 지혜에 관해 말하는 일이 남아 있네. 이에 관해 나는 빠짐없이 다 말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 먼저, …… 에로스가 남까지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지혜로운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겠네. 에로스의 손길이 닿은 자는 '전에는 비예술적인 자라도' 모두 시인이 되니 말일세. 거두절미하고, 우리는 이 점을 에로스야말로 모든 예술 창작 분야에 능한 시인이라는 증거로 삼아도 될 것이네.(289쪽)

 

 - 플라톤, 『향연』  

 

 

무려 2,600년 전에 있었던 고대 아네테의 어느 젊은 시인을 위한 '데뷔 축하연'이 어쩌면 이토록 고상할 수 있을까. 당대 최고의 시인과 정치가와 철학자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나눴다는 대화가 어쩌면 이토록 고상하고도 아름다울수 있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물론 그 당시만 하더라도 너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직접 술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던 플라톤이 나중에 '그날밤 술자리에서 나눴던 여러 이야기'를 그저 전해듣기만 하고도『향연』이라는 산문 걸작으로 되살린 것도 놀랍기만 하다.

 

다시 '우리 시대의 괴물' 이야기로 되돌아 오자. 어느 누구든 오랫동안 저질러 온 온갖 비행과 추행이 결코 영원토록 묻힐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당사자들이 저지른 추악한 행위들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조차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공연하고도 광범위하게 반복해서 저질러졌다면 더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괴물을 괴물로 똑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속고 살아왔던 어두운 지난 과거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괴물'을 옹호하려고 몸부림치는 괴물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서 호시탐탐 반격을 노리는 듯해 몸서리가 처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새 괴물로 변한 사실조차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어떤 시인이 최영미 시인을 두고 벌써부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젓이 올린 글 때문에 밤늦도록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치밀어 오른 분노가 아직까지도 좀체 풀리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제는 문제가 된 글을 내리지 않았을까 하고 다시 또 찾아가 봤더니 도리어 한술 더 뜨는 모습이다. 그 사람도 시인이란다. 참으로 놀라운 궤변이고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961658813991227&id=100004413510440

 

(2018.2.27 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랑스레 궤변을 늘어놓았던 그 사람이 이제야 비로소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당당하게(?) 내걸어 두었던 페이스북 글을 마침내 내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슬그머니 감춘 그 사람의 '흉한 꼬리'가 엉뚱한 데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숱한 괴물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그런 괴물들을 옹호하는 또다른 괴물까지 봐야 하다니 참으로 소름이 끼친다.

 

최영미 비판한 이승철 시인님, 그해 성추행 잊었나요?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8-02-0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페북 글이 내려져 있군요.

oren 2018-02-08 09:29   좋아요 0 | URL
제가 링크한 문제의 글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내려진 글이라면 ‘한술 더 뜬‘ 글 말씀이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