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ㅡ 햄릿을 이해하겠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어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 * *


셰익스피어에 빠져 지낸지 어느새 한 달 가까이 흐른 듯하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동안에 다른 책들을 전혀 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흙 속으로 돌아간지 400년이 지나는 동안에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 주위를 맴돌았을까를 떠올려 보면, 마침내 이토록 멀리 떨어진 나에게까지 찾아온 그토록 귀한 손님을 내가 먼저 함부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그를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희귀한 천재인 그와 만날 기회가 반드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붙잡고 읽는 독자'에게만 열려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워낙 고명하고 저명한 분이어서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분을 서로 다투듯이 열심히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 어디에선가는 틀림없이 '연극 무대'에 올려져 있을 것이다.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숱하게 재방영되고 있을 것이다. 숱한 그림으로 여러 화랑의 벽면을 장식한지도 이미 오래일 것이며, 아무런 형체조차 없는 전파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방금 전에도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바로 그 음악에 자극을 받아 기어이 셰익스피어와 음악을 연결짓는 이런 글쓰기에 이제 막 나선 참이다.


물론 내가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살다 보면 '세익스피어의 음악'은 절로 귀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누가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그 애틋한 주제가를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80년대 초반에 서울 시내 개봉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홀로' 몰래 '숨어서 보는 기분으로' 숨을 죽이며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죽였던 숨이 다시금 멎는 듯한 순간들을 정말 여러 번 느꼈었다. 그토록 격한 감동을 안겨주는 러브스토리는 그 후로 영영 다시는 만나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만약 그 영화에 그토록 심금을 울리는 주제음악이 없었더라도 그 영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그토록 매혹적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A time for us>가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라라의 테마> 없는『닥터 지바고』를 떠올리는 것만큼 쉽게 상상하기도 어렵다.



A time for us Romeo and Juliet 1968


이쯤에서 한번쯤 '셰익스피어의 작품 목록'을 들춰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열 손가락을 가지고도 몇 번씩이나 오므렸다 폈다를 거듭해야만 간신히 셀 수 있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하루에 꼬박 열 시간씩' '드라마'로 본다면 과연 며칠이나 걸릴까. 이미 권위를 인정할 만한 곳에서 명백한 '견적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자료들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러닝타임이 총 5947분(99.1시간)이다. 하루에 꼬박 열 시간씩 '중지 버튼' 한 번도 누르지 않고 쉼없이 돌려도 꼬박 열흘은 지나야 끝을 볼 수 있는 셈이다.


01. Antony and Cleopatra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 비극 170 분
02. Coriolanus (코리올라누스) - 비극 145 분
03.
Hamlet (햄릿) - 비극 212 분
04. Julius Caesar (줄리어스 시저) - 비극 150 분
05. King Lear (리어왕) - 비극 183 분
06. Macbeth (맥베스) - 비극 146 분
07.
Othello (오셀로) - 비극 205 분
08. Romeo And Juliet ( 로미오와 줄리엣) - 비극 168 분
09. Timon of Athens (아테네의 타이먼) - 비극 128 분
10. Titus Andronicus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 비극 168 분

11. Henry IV, Part 1 (헨리 4세 - 1) - 시대극 148 분
12. Henry IV, Part 2 (헨리 4세 - 2) - 시대극 150 분
13. Henry V (헨리 5세 ) - 시대극 - 166 분
14. Henry VI, Part 1 (헨리 6세 - 1) - 시대극 188 분
15. Henry VI, Part 2 (헨리 6세 - 2) - 시대극 213 분
16. Henry VI, Part 3 (헨리 6세 - 3) - 시대극 210 분
17. Henry VIII (헨리 8세) - 시대극 165 분
18. Richard II (리차드 2세) - 시대극) 158 분
19.
Richard III(2DISC) (리차드 3세 (2 DISC)) - 시대극 230 분
20. Richard III

21. The Life and Death of King John (존 왕) - 시대극 155 분
22. A Midsummer Night's Dream (한여름밤의 꿈) - 희극 115 분
23. All's Well That Ends Well (끝이 좋으면 다 좋아) - 희극 142 분
24. As You Like It (뜻대로 하세요) - 희극 150 분
25. Cymbeline (심벨린 ) - 희극 175 분
26. Love's Labour's Lost (사랑의 헛수고) - 희극 120 분
27. Measure for Measure (법에는 법으로) - 희극 145 분
28. Much Ado About Nothing (헛소동) - 희극 148 분
29. Pericles, Prince of Tyre (페리클레스) - 희극 178 분
30. The Comedy of Errors (코미디 오브 에러스) - 희극 108 분

31. The Merchant of Venice (베니스의 상인) - 희극 157 분
32. The Merry Wives of Windsor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 희극 170 분
33. The Taming of the Shrew (말괄량이 길들이기) - 희극 128 분
34. The Tempest (태풍) - 희극 125 분
35. The Two Gentlemen of Verona (베로나의 두 신사) - 희극 137 분
36. The Winter's Tale (겨울이야기) - 희극 173 분
37.
Troilus and Cressida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 희극 190 분
38. Twelfth Night (십이야) - 희극 128 분


이 많은 작품들을 오로지 '연극 대사'로만 이루어진 희극으로 읽을라치면 사정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략 한 작품을 읽는 데 5시간씩만 잡더라도 총 185시간(37편×5시간)이 걸린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루에 다섯 시간을 꼬박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데 쏟아붓는다면 그는 대략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전부 다 독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으랴마는.

책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다시 음악 얘기로 얼른 되돌아 오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음악가들을 일일이 다 헤아리는 건 물론 나의 과제가 아니다. 나는 그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에도 얼마나 놀랍도록 광범위하게 스며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단순한 작업에만 주의를 기울일 작정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어떤 음악가에 의해 어떤 배경과 창작 과정을 거쳐 탄생했으며, 그 음악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얼마나 훌륭하게 재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쓸 겨를이 없다. 또한 그럴 능력이나 재주도 없다. 그런 주제는 내 능력을 한참이나 벗어난다. 나는 그저 내게 알맞는 정도로 이 둘을 '슬쩍 건드려 보는 데' 만족할 것이다.

이제 본론인 '셰익스피어 음악의 목록'을 잠시 나열해 보자. 거듭 말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가 아는 범위내일 뿐이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베토벤

<템페스트>(원작 또한『템페스트』인데, 흔히『태풍』이나 『폭풍우』로도 번역된다. 작가 말년의 대표작이다.)
<코리올란 서곡>(원작은『코리올라누스』, 코리올라누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자신의 전기'를 가진 고대 로마의 유명한 장군인데 셰익스피어가 '사극의 마지막 작품'으로 썼다. 코리올라누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T.S.엘리엇의 『황무지』에도 등장할 정도로 여러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http://blog.aladin.co.kr/oren/9121191)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소개하는 마당에 셰익스피어의『템페스트』한 대목조차 인용하지 않고 지나가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많은 작품에서 스스로 '음악'을 끌어들여 자신의 작품을 더욱 매혹적으로 장식한다.

     페르디난드
이 음악은 어디 있지? 공중에? 땅속에?
더 이상 안 들린다, 틀림없이 이 섬의
어떤 신을 시중든다. 해안에 앉아서
부왕의 파선을 울면서 다시 슬퍼했을 때
이 음악이 파도 타고 내 곁으로 기어와
격랑과 내 격통을 아름다운 곡조로
가라앉혀 주었다. 그걸 따라 왔는데
(오히려 나를 끌고 왔겠지.) 사라졌다.
아냐, 또 시작한다.

『태풍』, <1막 2장>


Ludwig van Beethoven "Tempest" Piano Sonata No. 17. / Daniel Barenboim



Beethoven - Coriolan Overture, Op 62 - Muti

(지휘자인 무티의 모습이 2년 전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내한했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서 깜짝 놀랐다. 한참이나 어린 그의 모습을 보니 마치 '무티의 아들' 같은 느낌도 든다. 베토벤이 살았던 빈의 '황금홀' 연주라 더욱 반갑다.)



차이코프스키

환상 서곡 <햄릿>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템페스트>

Tchaikovsky Hamlet Overture, London Symphony Orchestra, Valery Gergiev Proms 2007

(베르디조차『햄릿』을 표현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끝내 작곡을 포기했다는데, '셰익스피어 마니아'였던 차이코프스키는 정말 멋지게 성공했다. 나는 이 음악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햄릿을 이해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당에서 만난 게르기에프는 두 번 모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만 들려줬는데 이렇게 우연히 <햄릿>으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다.)



Tchaikovsky: Romeo & Juliet / Gergiev · London Symphony Orchestra · BBC Proms 2007



Tchaikovsky: The Tempest / Abbado · Berliner Philharmoniker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
오페라 <오텔로>
오페라 <팔스타프>(『헨리 4세』과『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에 등장하는 희극적 인물 '팔스타프'를 그린 작품)

Thomas Hampson - Perfidi!... Pietà, rispetto, amore (Verdi: Macbeth)



Verdi: Falstaff - Final Opera - Metropolitan . James Levine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그 가운데 특히 <꿈 속에 살고 싶어라>

Anna Netrebko "Je veux vivre" in Romeo and Juliet by Gounod (HD Paris 2007)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그 가운데 특히 <결혼 행진곡>

'한여름 밤의 꿈'중 '결혼행진곡' 변주곡_호로비츠_손열음



Mendelssohn A Midsummer Night's Dream Overture Op.21 by Masur, LGO (1997)



리스트

교향시 <햄릿>

Liszt - Symphonic Poem 'Hamlet'



드보르작

서곡 <오셀로>

Daniel Harding dirigerar Dvorak: Othello, ouverture



드뷔시

모음곡 <리어왕>


프로코피에프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Prokofiev Romeo & Juliet Suite



베를리오즈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극적 서곡 <리어 왕>

Berlioz: Roméo et Juliette - Radio Filharmonisch Orkest - Full concert in HD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맥베스>

Richard Strauss - Macbeth, Op. 23



쇼스타코비치


극 부수음악 <햄릿>


Shostakovich 'Hamlet' Film Music - Bernard Herrmann conducts



니콜라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Otto Nicolai, The Merry Wives of Windsor, Overture - Gilberto Serembe, conductor

(오토 니콜라이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설립자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흔히 셰익스피어를 '뮤즈를 울린 극작가'로 표현한다. 뮤즈는 여신들이다. 호메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조차 "노래하소서, 여신이여!"라는 말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그저 여신들로부터 '시적 영감'을 빌려올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신들이 무려 아홉이었다. 이 숫자에 대한 가장 오래된 근거는 호메로스가 제공했다.『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장례식 풍경' 속에 여신들이 딱 그만큼 등장하기 때문이다.(http://blog.aladin.co.kr/oren/7137045)

…… 그리고 모두 아홉 명의
무사 여신들이 서로 화답하며 고운 목소리로 만가를 부르기 시작했소.
그곳에서 그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르고스인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을 것이오. 낭랑한 무사 여신의 노랫소리가 그만큼
힘차게 일었던 것이오. 그리하여 열흘하고도 이레 동안 밤낮으로
불사신들과 필멸의 인간들이 그대를 위해 울었지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저승 속편_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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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뮤즈 여신들은 세 명의 자매로 서로 속성이 유사했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점차 각각의 특성들이 나눠지고 구체화되어 갔으며 그 수도 아홉 명으로 늘었다. …… 뮤즈 여신들의 우두머리이자 ‘서사시’를 담당한 칼리오페(Calliope)는 서판과 펜을 든 모습으로 주로 그려졌다. ‘희극’의 여신 탈레이아(Thaleia)는 익살스러운 가면을 쓴 반면, ’비극’의 여신 멜포메네(Melpomene)는 슬픈 표정의 가면을 쓰고 그리스 비극배우들이 신는 반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장엄한 종교 찬가’를 담당한 폴리힘니아(Polyhymnia)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베일을 썼다. ‘에로틱한 시’의 여신 에라토(Erato)‘서정시’의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는 각기 리라(lyre, 고대 발현악기)와 플루트를 상징으로 가졌다. 합창과 춤의 여신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는 손에 리라와 작은 채를 들고 춤을 추는 자태로 그려졌다. ‘역사’를 관장한 클레이오(Cleio)는 앉거나 기대서 긴 두루말이와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았으며, ‘천문학’을 관장한 우라니아(Urania)는 주로 막대기로 천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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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뮤즈를 울렸다면 그는 필시 음악도 울린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음악을 의미하는 ‘뮤직(music)’도 결국 뮤즈 여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작가가 "음악을 잘 들어봐"라고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음악으로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셰익스피어와 음악은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로렌초

그리고 악사들을 밖으로 데려오게.

언덕 위에 잠자는 달빛은 참 아름답구나!

우린 여기 앉아서 귓전으로 스며드는

음악 소리 들어 보자. 고요한 밤에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게 제격이야.

앉아, 제시카. 저것 봐, 저 하늘 마루에

황금빛 접시들이 얼마나 촘촘히 박혔는지.

보이는 천체 중에 가장 작은 것이라도

운행할 땐 어린 눈의 케루빔들에게

언제나 합창하며 천사처럼 노래해.

불멸의 영혼에도 그런 화음 있다지만

부패하는 이 진흙 의복이 그것을

두텁게 감싸고 있는 한 우린 듣지 못하지.


 악사들 등장.


이리 오게, 찬가로 디아나를 깨워 보게,

최고 고운 가락에 마님 귀가 열리고

음악에 이끌려 집으로 오시도록.   (악사들이 연주한다.)



         제시카

고운 음악 들을 때면 난 절대 흥이 안 나.



         로렌초

네 정신이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야.

야생에서 뛰노는 짐승 떼를 보거나

여리고 길 안 든 수말의 무리를 지켜보면

그들은 몸속에서 피가 끓기 때문에

미친 듯 날뛰면서 힝힝 킹킹 울어 대지.

하지만 혹시라도 나팔 소릴 듣거나

그 어떤 곡조라도 귀에 와 닿게 되면

사나운 시선이 감미로운 음악의 힘으로

얌전한 응시로 바뀌면서 다 함께

멈춰 서는 모습을 볼 거야. 그래서 시인은

오르페우스가 나무, 돌, 강물을 움직였다 꾸몄어.

음악이 잠시 그 본성을 못 바꿔 놓을 만큼

무감각하거나 광란에 찬 것은 없으니까.

자신의 마음속에 음악이 없거나

아름다운 화음에 무감동한 사람은

역모와 계략과 약탈에나 어울려.

그자의 정신은 밤처럼 둔하게 움직이고

그자의 감정은 명부처럼 시커멓지.

못 믿을 건 그런 자야. 음악을 잘 들어 봐.


『베니스의 상인』, <5막 1장>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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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2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주제로 한 모든 곡이 앨범으로 발매된다면, 앨범 CD 하나로도 부족하겠어요.

oren 2017-06-02 18:49   좋아요 0 | URL
설사 하나의 앨범 CD에 담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막상 ‘한정된 수요‘를 생각하면 발매하기 어렵겠지요.
그나저나 <셰익스피어와 음악>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 혹시나 없나 살펴보니 역시 없네요.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라는 제목의 책은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말이지요.

그랜드슬램 2017-06-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세한 설명과 자료,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세익스피어 작품은 넘어야 할 산이 아니고 즐겨야 할 산이군요^^

oren 2017-06-04 13:16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도 높은 산이기는 하지만 ‘즐기지 않으면‘ 그저 갈 길이 멀고 힘들고 따분하고 지치기 쉬운 산일 뿐이겠죠? 그런 면에서 랄프 왈도 에머슨의 표현만큼 셰익스피어를 적확하게 묘사한 인물도 드물다 싶습니다.

* * *

인류 최고 향연의 사회자로 머물렀다는 것

셰익스피어도, 호메로스도, 단테도, 초서도, 눈에 보이는 세계 깊숙이 아득한 천상의 반짝임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수목조차도 단순히 사과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이상의 존귀한 역할을 맡게 되고, 곡물도 단순한 식료 이상의 것이 되고, 이 지구라는 천구도 아득히 숭고한 존재가 되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지상의 온갖 것은 말하자면 더욱 섬세하고 묘한 ‘수확‘을 우리 혼에 베풀어 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 마음에 깃드는 이념을 상징하는 것이 되고, 천지자연의 다양한 영위는 모두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암시하는 ‘말없는 비밀문서‘와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와 같은 대자연에 있는 일체의 것을 자신의 회화를 채색하기 위한 그림물감으로서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다만 그는 그와 같은 현실세계의 현란한 고급의 두루마리에 넋을 잃은 나머지 그만한 대천재라면 당연히 가능했을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 결국 안 되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상징으로서 자연미 속에 잠재한 커다란 힘의 원천이 되어 있는 덕 그 자체의 의의를 그 이상 탐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근원적인 통찰이 결여되면 자연계가 말하는 실제의 이야기도 도대체 어느 정도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천지만물을 자기 뜻대로 다룰 수가 있었는데 결국 그것들은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약간 짓궂게 표현한다면 그는 ‘인류 최고 향연의 사회자‘로 머물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