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예견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역사가 예언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만일 미래가 예언에 열려있지 않다면, 그것이 실현되어 과거가 된다 해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가 뒤돌아선 예언자라는 것은 모든 역사 철학을 요약해주는 관점이다. 역사가는 물론 미래의 일반적인 구조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구조 자체가 사실은 우리가 과거나 현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시대를 잘 보길 원한다면 멀리서 봐야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적당할까?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면 족하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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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에서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해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눈 앞의 현실'을 일찌감치 멀리서 내다보고 거기에 딱 들어맞을 듯한 '좋은 선례'를 미리 충분히 남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때가 도대체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고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도 대(代)를 이은 독재자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디오니시우스 1세와 2세였다.

(시라쿠사는 '참주들의 목록'만 하더라도 스무 명에 가까울 정도로 '독재 정치'로 아주 유명한 국가였다.)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의 동해변에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였다. 도시는 기원전 734년 또는 733년 코린토스에서 온 정착자들에의해 건설되었다. 그리고 로마 공화국에 기원전 212년 정복되었고 그 후 시칠리아의 로마 총독 관저 소재지가 되었다. 독립 도시로서의 시라쿠사이 역사의 대부분에서 그것은 참주들의 계승에 의해 지배되었는데 민주정과 과두정 시기도 있었다.(출처 : 위키백과)


디오니시우스 2세가 두 차례의 전제정치를 끝으로 마침내 자리에서 쫒겨나 코린토스로 옮겨졌을 때의 이야기가 결코 머나먼 고대의 사건처럼 들리지 않아서 여기에 조금 옮겨보고 싶다. 유명한 철학자인 플라톤과 디오게네스까지 등장하는 일화여서 더욱 흥미롭다.


이보다 더 신기한 구경거리는 없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부하 몇 사람과 함께 보물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히케테스 눈을 피해 몰래 티몰레온 진영으로 들어왔다.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초라한 시민의 옷을 입고 티몰레온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뒤 배 한 척과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아서 코린토스로 옮겨졌다. 그는 부강한 나라에서 태어나 신분에 걸맞은 최고급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부왕이 서거한 뒤, 지금까지 10년 동안 전례 없이 심한 전제군주국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디온의 원정 뒤 12년 동안 온갖 고생을 겪었고, 그 가운데서 여러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남들에게 입혔던 고통보다 더 큰 벌을 살아오면서 충분히 받았다. 앞날이 창창한 아들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고, 꽃 같은 딸들을 납치당했으며, 누이와 아내가 눈앞에서 병졸들에게 능욕당한 뒤 살해되어 강물에 던져지는 것까지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디오니시우스가 코린토스에 닿자 모든 헬라스 사람은 이 유명한 폭군의 얼굴을 궁금해했다. 그 가운데는 그의 패망을 속 시원히 여기며 그에게 모욕을 퍼부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가 겪은 비극들에 동정심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신이, 그 섭리로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약하게 만들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려하고 찬란했던 왕이 오늘은 코린토스에서 생선 시장을 기웃거리고, 향수 가게 앞에 앉아서 쉬거나 싸구려 주점에서 물 탄 포도주를 마셨다. 거리 여자들과 하찮은 일로 다투기도 하고, 극단 여가수에게 노래를 가르치느라 음악의 운율과 화성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 무렵 사람들에게는 세상 여러 일 가운데 이보다 더 신기한 구경거리는 없었다.(463∼46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티몰레온>



플라톤디오니시우스가 코린토스에 오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곳에서는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시노페 사람 디오게네스는 거리에서 디오니시우스를 만났을 때 이렇게 애매하게 인사했다.


"아니, 디오니시우스. 당신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하시는군요."


이 말에 디오니시우스도 걸음을 멈추며 인사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제 처지를 동정해 주시는군요."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정색하며 차갑게 말했다.


"동정이라니요? 내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그대처럼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은 당신 아버지처럼 독재자의 궁전에서 쓸쓸히 늙어 죽어야 마땅한데, 우리와 함께 청빈한 생활을 즐기시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오."(465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티몰레온>


이 대목에 이르러 디오게네스가 받아친 저 훌륭한 말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지 않을 독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버티면 버틸수록 국가와 국민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더욱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조차 여태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는 '청빈한 생활을 즐기는 자유'조차도 영영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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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우스 1세


고대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재위 BC 405~ BC 367). BC 405년 참주가 되어 군사적 ·외교적으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시칠리아섬으로 카르타고 세력이 뻗쳐옴을 막으려고 3번에 걸쳐서 싸움을 벌였다. 대함대를 거느리고 이탈리아 반도로 세력을 뻗쳤으며, 아드리아 연안에도 식민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문예애호자로 자처하여 플라톤을 초대했고, 비극작품도 썼다.


디오니시우스 2세

디오니시오스 1세의 아들. 숙부인 디온은 그를 이상적인 군주로 만들고자 플라톤에게 교육을 받게 하였으나 실패하고, 그에 의하여 추방당하였다(BC 366). 뒤에 디온은 귀국하여 그를 몰아냈다(BC 356). 디온이 죽은 뒤, 다시 시라쿠사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전제()를 좋아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쫓겨나, 코린트로 도망가서(BC 344경) 가난하게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문학에 취미가 있어서, 시와 철학 논문을 쓰고, 플라톤 ·아이스키네스 ·아리스티포스 등의 철학자를 궁전으로 초대했었다.


디오게네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고도 한다. 가짜 돈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고향인 시노페에서 쫓겨나 아테네에 와서 안티스테네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고 보기 흉하지도 않으므로 감출 필요가 없으며, 이 원리에 어긋나는 관습은 반()자연적이며 또한 그것을 따라서도 안 된다고 역설하면서, 몸소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 생활을 실천하였다.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곁에 서서 소원을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그곳을 비켜 달라고 하였다는 말은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출처 :두산백과)



더 더러운 장소를 찾지 못해서


또 어느 사람이 그를 호화로운 저택으로 안내하고 이곳에서는 침을 뱉지 말도록 주의하자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 그 사람 얼굴에 침을 내뱉고, 더 더러운 장소를 찾지 못해서, 라고 말한 것이다. 단, 이것은 아리스티포스가 행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느 때 그가 '어이, 인간들이여'라고 외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그들에게 다가가 '내가 부른 것은 인간이고 쓰레기 따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헤카톤이 <잠언집> 제1권 가운데서 말한 것이다.


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만일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이길 바랐을 텐데, 이렇게 말했다는 것도 전해지고 있다.(357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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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리석고 조리 없는 말을 한다면
    from Value Investing 2017-01-25 23:48 
    (밑줄긋기)정신적으로 초라하다는 증거앞에서도 말했듯이, 디온은 디오니시우스 2세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가장 뛰어난 철학자로 알려진 플라톤을 시킬리아에 초대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플라톤이 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전하의 성품은 덕의 원리에 따라 고양될 것이며,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질서를 바로잡는 가장 숭고한 본보기가 되
  2.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
    from Value Investing 2017-07-08 15:32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 * 때로는 간단한 대사 한 구절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령 "이 한심한 화상아!(Alas, poor caitiff)"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4막 1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나는 이 대사로부터 위안을 얻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후 고부 갈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