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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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매장하는 거다. 우리는 카이사르를 매장하러 왔소. 그의 3월인지 6월의 재앙일(災殃日). 그는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

 

그런데 저쪽 비옷 입은 홀쭉하게 보이는 녀석은 누구야? 글쎄 누군지 알고 싶군. 글쎄 돈을 몇 푼 주어서라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으면. 꿈에도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녀석이 언제나 불쑥 나타나거든.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내내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자신이 무덤을 팔수는 있어도 죽은 다음에 그를 묻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게 아냐. 우리 모두가 묻어주지. 단지 인간만이 매장하는 거다. 아니야, 개미들도 그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죽은 자를 매장한다. 예컨대 로빈슨 크루소는 인생에 충실했다 지. 글쎄 그런데도 프라이디가 그를 매장했지. 그걸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프라이디)은 언제나 목요일을 매장하는 셈이다.

 

 

오,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런데, 죽음은 너무나 긴 휴식이야.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지. 느끼는 것은 단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아. 경치게도 불쾌한 순간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틀림없이 잘못일 거야: 다른 사람일 거야. 맞은편 집을 알아 봐. 가만있자. 난 살고 싶었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자 어두컴컴해진 죽음의 방. 빛을 그들은 원한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사제를 불러올까요? 그러자 떠들어대며 우왕좌왕. 한평생 감추었던 정신착란이 온통 쏟아진다. 죽음의 투쟁. 그의 잠이 순조롭지 못하다. 아래쪽 누꺼풀을 눌러 봐요. 코가 불쑥 나오고 턱이 내려앉고 발바닥이 노랗게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다. 운명(殞命)했으니 베개를 빼버리고 마루 위에 반듯이 눕혀요. 죄인의 죽음을 그린 저 그림 속에 악마가 그에게 한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셔츠 품속에 그녀를 포옹하고 싶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루치아>의 마지막 장면.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볼 수 없나요?" 쿵! 그는 숨이 끊어진다. 마침내 가버렸다.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서 조금 이야길 한다: 잊어버린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당신의 기도 속에 그를 기억해요. 심지어 파넬도. 담쟁이 날은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어 그들이 뒤따른다: 구멍 속으로 떨어지며. 차례 차례로.

 

(9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27일에 엄친의 무덤에 성묘하러 가야지. 묘지기에게 10실링. 그는 묘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해주지. 그 자신도 늙었어. 두 겹으로 몸을 구부리고 가위로 풀을 깎는 것이다. 죽음의 문 가까이. 죽어버린 자. 이승을 떠나버린 자.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나 한 것처럼. 떼 밀렸던 거다, 그들 모두. 목숨을 빼앗긴 자. 만일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면 한층 재미있을 거야. 모모(某某) 차바퀴 목수올시다. 나는 코크 리놀륨을 주문 받으러 다녔지요. 나는 한 파운드 당 5실링을 지불했어요. 또는 소스 팬을 든 한 여인. 저는 맛있는 아일랜드 스튜를 요리했어요. 시골의 교회묘지를 읊은 송시(頌詩)는 당연히 그런 시(詩)여야 할거야 누구의 시더라 워즈워드였던가 아니면 토머스 캠벨이던가. 영원히 잠들면 신교도들은 시(詩)를 쓰지. 노(老)머렌 박사의 무덤. 위대한 의사(神)가 그를 집으로 불렀던 거다. 그렇지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땅이야. 참 좋은 시골의 주거. 새로이 벽토와 페인트칠을 했군.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교회시보(敎會時報)』를 읽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혼인 광고를 사람들은 결코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아. 손잡이 위에 걸려 있는 녹슨 금속 꽃다발, 청동 빛 금박 화환. 돈으로 따지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지. 하지만, 생화(生花)가 한층 더 시적이야. 전자가 오히려 싫증이 난단 말이야, 결코 시들지 않으니. 아무 표정도 없고. 불사(不死)의 것들.


(9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여기는 누가 누워 있지? 로버트 에머리의 유해가 놓여 있다. 로버트 에메트는 횃불에 의해 여기 매장되었지, 그렇잖아? 저놈의 생쥐가 빙빙 돌고 있군.

 

방금 꽁지가 사라졌다.

 

저따위 놈 같으면 시체 하나쯤은 얼른 해치울 거야. 그것이 누구든 간에 뼈를 깨끗이 추린단 말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먹는 식사지. 시체는 상한 고기야. 그렇지 그런데 치즈란 건 뭐야? 밀크의 시체지. 나는 저 『중국 항해기』에서 중국 사람들이 백인(白人)한테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걸 읽었어. 화장(火葬)이 보다 나아. 사제들은 그걸 한사코 반대하지. 다른 화장회사의 하청을 맡아 일하는 거다. 도매 화장회사와 네덜란드식 가마(釜) 상인들. 페스트가 만연할 때. 페스트를 소독해 버리는 생석회 열갱(熱坑). 무통치사실(無痛致死室). 재(灰)에는 재. 아니면 수장(水葬)을. 그 배화교(拜火敎)의 침묵의 탑(塔)은 어디에 있는고? 새들에게 먹힌 채. 흙, 불, 물. 익사가 최고 안사(安死)라고들 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全)생애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공중에다 매장을 할 순 없잖아. 비행기로부터. 새로운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뉴스가 사방에 퍼질지 몰라. 지하 통신. 우리는 그걸 두더지들한테서 배웠지. 놀랄 것도 없어. 저놈들에게는 규칙적인 맛있는 식사야. 사람이 채 북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찾아오지. 디그넘을 냄새 맡는다. 저놈들은 시체 냄새를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소금기 하얀 후물거리는 연한 시체 덩어리: 하얀 생(生) 순무 같은 냄새, 맛.


(9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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