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는 아주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스페인의 펠리페 3세가 지방 순찰을 나갔다가 길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떤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말했다. "저 남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큰 소리로 웃고, 어떤 독자는 빙그레 웃고, 어떤 독자는 겉으로 웃고, 또 어떤 독자는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 상태로 읽는다.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정의하기가 어렵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 * *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 일컫는 『돈키호테』를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 그것도 장장 두 달에 걸쳐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2년에 걸쳐서 읽는' 소설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굼뜨게 책을 읽는 나를 스스로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무슨 소설 한 권을 가지고 해를 넘겨서까지 다 읽지를 못하고 끙끙대냐고 말할 사람도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 소설을 두 달째 붙잡고 늘어지는 이유는 내가 생각해도 좀 엉뚱하다. 그저 읽다 보니 이 소설의 분량이 어느날 갑자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난생 처음으로 작심하고 읽은『돈키호테』는 고작 그 이야기의 '1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 스페인에서 쓰여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 바로 돈키호테가 아니던가. 그 줄거리 또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한 그 뻔한 소설을 내가 '돈키호테만큼 나이를 먹도록' 여태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책망하지 마시라. 어디 그런 유명한 책들이 한둘이던가. 그런데 뒤늦게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게 하필 작년 11월이었고, 마침 그 무렵에는 내 눈과 귀로도 무슨 새로운『돈키호테』가 1,2권으로 나뉘어 새롭게 출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으레 그렇듯이 나는 그 얘기를 나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인 줄로만 알고 귓등으로 흘려듣고 말았다. 왜냐하면 마침 그때 내가 읽기 시작했던『돈키호테』만 하더라도 이미 책은 충분히 두꺼웠으며(731쪽), 그 책만 다 읽으면 나는 당연히『돈키호테』를 '전부 다' 읽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언제 구출될 지도 모르는 채 기약없는 세월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책장에 갇혀 있던 그 '시공사 판'의 익숙한 『돈키호테』가 겨우 그 소설의 '1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한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시작하자 말자 '슬픈 몰골의 기사' 돈키호테와 그의 종자인 산초 판사에게 금새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책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내는 온갖 '기발한 모험들'과 '기막힌 말솜씨'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소설 속의 소설' 즉 '삽입 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는데, 그렇게 많은 모험과 등장인물과 대화와 이야기도 모자라서, 그 작가가 '돈키호테의 2부'를 또다시 추가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돈키호테 1부'를 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2부 마저' 더 사서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 끝에 나는 '옛날에 나온 돈키호테'를 바쁜 연말연시임에도 불구하고 틈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읽어 나갔다. 이만큼 재미있는 소설을 뒷전에 제쳐두고 다른 책을 읽는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될 뿐더러 이 소설을 쓴 작가는 물론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에게도 모독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시간들'을 빼놓곤 가급적 이 소설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틈을 자꾸만 엿보고 있었다는게 좀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심지어 '불요불급한 일'들은 좀 뒤로 미루고서라도 이 책을 조금이라도 더 읽고 싶은 생각에, 도대체 내가 '어데서' 그런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를 잠시 궁리해 볼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바뀌었고, 내 손에는 이미 열린책들에서 나온 '돈키호테 2부'가 절반쯤이나 '밑줄이 좍좍 그어진 채로' 나의 손길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으며, 이제는 겨우 나머지 절반만 깨끗한 채로 남은, 다시 말해서 '돈키호테 전체'로 따지자면 4분의 1만이 나에게 '미개봉'인 상태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전체의 4분의 3쯤 읽고 나니 문득 작가 세르반테스의 위대함이 자꾸만 새록새록 더 크게 다가옴을 어디에라도 고백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듯한 마음이 들고,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내가 이토록 굳게 입을 다물고 끝내 이 소설을 마저 읽는다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좀 아니다 싶어 이렇게 갑자기 두서없는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라도 『돈키호테』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어느 누군가는 반드시 내 얘기를 읽어줄 사람이 있으리라 믿고 어쨌든 내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 보겠다.

 

이 소설을 쓴 세르반테스는 비록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대학 과정을 밟은 적도 없고, 『돈키호테』1부를 출판(1605년)한 58세 때까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20대 초반에 그는 '스페인 법'을 어긴 일이 있었는데, 별로 중대하지도 않은 죄목으로 중벌에 처해지자 그는 고향 마드리드를 떠나 이탈리아로 도망쳤고, 거기서 2년 동안 고위급 사제의 시종이자 수행원으로 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군대에 자원 입대하게 된다.

 

그가 참전한 전쟁은 그 유명한 '레판토 해전'이었다. 거기서 그는 용감무쌍하게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어 왼손을 잃게 되면서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후에도 그는 5년 동안이나 더 군대에 몸담았다. 마침내 명예롭게 전역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던 그는 그만 태풍에 휩쓸려 터키 해적의 습격을 받은 끝에 알제로 끌려가 그리스인 해적에게 양도되어 5년 동안이나 포로로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만다. 포로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네 번의 탈출 시도가 모두 실패했지만 교회 수사의 도움으로 몸값을 치르고 극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가 전역후 직장에서 맡은 일도 <무적함대>에 식량을 납입하고 조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도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하는 등 그는 늘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돈키호테』를 구상한 것도 감옥에서였다고 한다. 체납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던 50세 때 하필 징수한 돈을 예금해 둔 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세비야에서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이토록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58세 때 내놓은 소설이 바로『돈키호테』(원제는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돈키호테 '1부')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68세 때 또다시 『돈키호테』(원제는『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돈키호테 '2부')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어림잡아 따져 보더라도 소설 『돈키호테』 가 세상에 나온 건 우리나라가 임진왜란을 막 끝낸 즈음일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그토록 오래 전에 살았던 옛 인물이 쓴 소설이 도대체 어떻게 그 수많은 쟁쟁한 소설가들을 모조리 다 따돌리고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의 소설'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른단 말인가. 그 점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숱한 언급들을 계속 보태왔으니 나까지 나서서 구차스럽게 새로운 말을 덧보탤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내게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온 말은 단연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한 다음 말이었다.

 

 "아! 세르반테스의 문체가 어떤 것이며, 사물에 접하는 그의 방식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텐데."

 

스페인을 대표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철학자로도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 저런 말을 내놓았을 정도이니, 평범한 독자가 세르반테스의 문체가 어떻고 저떻고를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그가 사물을 다루는 방식을 도대체 어떻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싶기도 하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키호테에 관한 명상 Meditaciones del Quijote》(1914), 《등뼈 없는 스페인 Espa?a invertebrada》(1921), 《예술의 탈인간화 Deshumanizaci?n del arte》(1925), 《대중의 반란 Rebeli?n de las masas》(1930), 《관객 El Espectador》(1916-1934), 《칸트 Kant》(1931), 《사랑에 관한 연구 Estudios sobre el amor》(1940)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든지 전작이 있고 나서 나중에 후속편이 나오면 대개 그 후속편은 전작 만큼의 감동을 주기 어려운 게 보통이다. 그렇지만 늘상 예외없는 법칙은 없는 법이듯이 『돈키호테』또한 그런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작품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옳게' 알았으면 좋겠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속편을 얼마나 훌륭하게 썼는지를 알게 되면 돈키호테의 전편만 읽고 소설 『돈키호테』를 다 읽었다고 말하는게 얼마나 한심스러운 얘기일 수 있는지를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여기서 잠시 (작가의 말도 들어볼겸) 소설 『돈키호테』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보자.

 

「그런데 혹시 ······.」돈키호테가 말했다. 「그 작가가 후속편을 약속하고 있소?」 

 

「그럼요.」삼손이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책이 나올 것인지 안 나올 것인지 우리도 궁금해하고 있답니다. 이런 사정인 데다 <속편은 절대로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자도 있어서 후속편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들 생각하지요. 토성보다 목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돈키호테 같은 짓을 더 보여 다오. 돈키호테는 돌진하고 산초 판사는 말하라,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야 우리가 그것으로 즐거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요.」

 

「작가는 어쩔 생각이라 하오?」

 

「그가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즉시, 다시 칭찬을 얻겠다는 뜻에서라기보다 그에 따를 이익 때문에 인쇄로 넘기겠지요.」

 

 - 『돈키호테 2』 <4. 산초 판사가 학사 삼손 카라스코의 의문을 풀어 주고 질문에 대답한 내용, 그리고 알아 두고 이야기할 만한 다른 일들에 대하여> 중에서

 

 작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2부를 얼마나 긴밀하고도 흥미롭게 1부와 서로 엮어 놓았는지, 또한 1부에서 다뤘던 '두 번의 모험'을 통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겪은 온갖 흥미진진한 사건들과 그 밖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가 꾸미고 만들어 내놓지 못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라고 느낀 독자들을 다시 한번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가 돈키호테 2부에서 얼마나 새롭고도 닮은 이야기들을 더욱 풍성하게 꺼내 놓았는지를 알게 되면 다시 한번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소설이 지닌 빼놓을 수 없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분명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삽입 소설'을 읽는 데 있음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물론 그 '삽입 소설'에 대해서 작가가 아무리 능청스럽고도 교묘하게 그걸 깎아내리는 것처럼 포장하면서 너스레를 떨더라도 말이다. 그 대목을 끌어들이는 작가의 얘기는 다음과 같다.

 

「그 이야기의 결점 중 하나는······.」학사가 말했다. 그 이야기 안에 <당치 않은 호기심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넣은 것이오. 이 이야기가 재미없다거나 내용이 엉망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들어갈 게 아닌 데다가 돈키호테 나리의 얘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지요.」

 

「내기를 걸어도 좋아요.」산초가 말했다. 「어떤 개자식이 양배추와 바구니를 섞어 놓은 겁니다요.」

 

「그렇다면······.」돈키호테가 말했다. 「내 이야기의 작가는 현자가 아니라 무식한 수다쟁이라는 말이군. 생각도 없이 어름어름하면서 그것을 썼다는 얘기요. 우베다의  화가 오르바네하가 했던 것처럼 말이오. 이 사람한테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지. 한번은 수탉을 그리고 있었는데 너무나 못 그려 전혀 닮지가 않자 그림 옆에다 <이것은 수탉이다>라고 대문자로 써놓아야 했다는 거요. 내 이야기도 아마 이런 식인 게 틀림없을 것이니,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할 테지.」

 

「그런 건 아닙니다.」삼손이 대답했다. 「아주 분명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손으로 가지고 놀고, 젊은이들은 읽으며, 어른들은 이해하며, 노인들은 기린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들 읽어 알고 있어서, 비루하고 비쩍 마른 말을 보기만 하면 누구나 <저기 로시난테가 간다> 하고 말할 정도죠. 그 책을 가장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시동들입니다. 『돈키호테』한 권쯤 놓여 있지 않은 주인집 응접실은 없는데, 누가 가져다 놓으면 다른 사람이 집어들지요. 누구는 덤벼들어 빼앗아 읽기도 하고 또 누구는 빌려 달라고 조르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으며 가장 무해한 오락거리라는 겁니다. 책 어느 한 군데서도 기독교적이지 못한 생각이나 불순한 말을 찾아볼 수 없고, 그 비슷한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 『돈키호테2』, <3. 돈키호테, 산초 판사 그리고 삼손 카라스코 학사 사이에 있었던 우스꽝스러운 토론에 대하여> 중에서

 

소설 『돈키호테』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삽입 소설 가운데 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이야기 또한 <당치 않은 호기심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작가 세르반테스가 오비디우스로부터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세르반테스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라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시도 때도 없이 여러 차례 등장시키지만, 그 이야기에서만큼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속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케팔루스와 프로크리스에서 직접 끌어온 이야기임이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의 정절'을 실험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자신과 아내가 모두 파멸하고 만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그 얘기이다.(돈키호테를 우리말로 옮긴 역자가 '내가 추정한' 바로 이 내용을 주석에까지 달아놓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공사'와 '열린책들' 모두 어떠한 주석도 없다. 이건 순전히 내 주장이다.)

 

근대 심리 소설의 효시라고도 불릴 정도로 흥미로운 이 <무모한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는 총 4부 52편에 이르는 '돈키호테 1부'에서도 무려 3편을 차지할 만큼 매우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작가는 편력 기사를 자처하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모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고는 독자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사랑과 우정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나 다름없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두 절친한 친구와 한 여자'를 등장시켜 꾸며놓은 그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교훈'을 던져준다.

 

······ 훌륭한 여자는 반짝이는 맑은 유리 거울 같지만, 그것에 닿는 어떠한 입김에도 흐려지게 마련이네. 정숙한 여인에게는 성스러운 유물을 다루는 방식을 사용해야 하네. 그것들을 찬양하지만 만지지는 않는 것처럼 말일세. 훌륭한 여인은 마치 꽃과 장미가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고 소중히 하듯이 해야 하네. 그 정원의 주인은 어느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해야 하네. 멀리서 철책 사이로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전부지, 마지막으로 나의 뇌리를 스치는 시구를 들려주고 싶네. 이것은 어느 현대극에서 들은 것인데,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와 꼭 맞는 것 같네, 어느 신중한 노인이 젊은 아가씨의 아버지에게 딸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잘 지키고 감추라고 충고하고 있었는데, 다른 말들 중에서도 그는 이런 말을 했네.

 

여자는 유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시험하면 안 된다,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모두 깨지고 말 테니.

 

깨지기는 쉽고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

깨질 위험이 있는 곳에 두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나에* 가 세상에 있다면

황금의 비 또한 있을 것이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다나에가 낳을 아들이 그녀의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운명 때문에 그녀는 탑 속에 갇히지만, 제우스가 황금의 비가 되어 들어와 그녀는 페르세우스를 낳았고 훗날 이 아이가 예언대로 할아버지를 죽인다.

 

 - 『돈키호테』, <33. 무모한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있는 플로렌스라는 이름난 풍요로운 도시에 안셀모와 로타리오라는 두 기사가 살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이 <무모한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단편'으로 봐도 좋을 만큼 이야기가 완벽하고도 재미있다. 그런데 내가 읽은 '돈키호테 1부'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시공사에서 나온 『돈키호테』였는데, 이 절묘한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에서 딱 한 번 '번역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무려 400년 전에 스페인어로 쓰여진 700쪽이 넘는 방대한 이야기를 현대에 맞는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내가 추측할 수 있는 영역이 결코 아니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독자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번역해 놓은 부분은 번역자나 편집자 또한 마찬가지로 알고 있었을 듯한데, 그 부분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문장을 가다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을 '1부'를 읽는 동안 내내 떨치기 어려웠다.

 

마침 『돈키호테』가 1부만 읽어서는 그 작품 전체를 온전히 제대로 읽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1부만 다룬 돈키호테를 다 읽고 나서 (2부를 마저 읽기 위해) 또다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돈키호테』를 (2부만 사는 게 아니라)  1,2부를 모두 산다는 게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바로 이 '번역이 애매한 부분'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라도 나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돈키호테』를 두 권 모두 사들이는 데 조금도 망설일 게 없었다. 어쨌든 열린책들을 펼쳐보니 시공사에서 애매하게 번역한 부분이 아주 명쾌하게 번역되어 있어서 그점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 읽은 1부'를 새로 산 걸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번역이 애매하다고 느낀 부분'을 옮겨 놓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과연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별 문제도 아닌데...' 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나는 그 부분을 읽는 데 애를 좀 많이 먹었다. 물론 문맥상 '잘못 번역된 부분'이 어떤 뜻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절친한 두 친구 가운데 로타리오가 한 이 말(인용문)은 물론 '결혼한 안셀모'가 자신의 아내의 정절을 시험해 달라고 친구인 로타리오에게 부탁하는 말에 뒤이어 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안셀모의 '제안' 또한 얼핏 들으면 구구절절 옳은 말처럼 들린다. 안셀모의 '이상한 제안'도 매우 길게 이어지지만 '도입부'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친구, 나를 괴롭히는 소망은 내 아내 카밀라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착하고 완벽한 여인인지 알고 싶다는 거라네. 불꽃으로 금의 순도를 증명하듯이 아내의 정숙함을 확인할 만한 시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네. ······"

 

"오, 친구여! 나는 자네가 내게 한 말들을 농담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자네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면 계속 말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네. 자네가 나를 모르거나 내가 자네를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네. 하지만 그럴 까닭이 없잖은가. 자네가 안셀모라는 걸 알고, 자네는 내가 로타리오라는 걸 잘 알지 않나. 문제는 나는 자네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네 또한 나를 평소의 로타리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네. 자네가 나에게 말한 것들이 나의 친구 안셀모의 말이 아니고, 나에게 부탁한 것들도 자네가 알고 있는 그 로타리오에게 청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네. 어느 시인도 노래했듯이, 절친한 친구 사이를 시험하거나 우정을 평가할 때에는 반드시 '제단까지만'으로 한정해야 하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에 반할 만한 일에 우정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길세. 우정에 대해 이교도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물며 기독교인이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신성한 우정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에 대한 우정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경의를 멀리하면서까지 그 신성한 우정을 포기하는 건 친구의 명예와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지, 이렇게 하찮고 아주 순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네. 자, 안셀모. 자네가 나에게 말해주게. 지금 말한 이 두 가지 중 무엇 때문에 내가 자네를 기쁘게 하고, 자네가 청하는 그토록 증오스러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절대 그렇지 않네. 내가 생각하기엔 오히려 이 일이 내가 자네의 명예와 생명을 빼앗고, 게다가 나의 것마저 빼앗을 걸세. 내가 만일 자네의 명예를 빼앗기 위해 애써야 한다면, 내가 자네의 생명을 빼앗게 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네. 명예를 잃어버린 인간은 시체보다 못하지 않나. 그래서 자네가 바라는 대로 내가 자네를 이토록 나쁜 상황에 빠뜨리는 도구가 된다면, 나 역시도 불명예스럽고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나? 잘 듣게, 나의 친구 안셀모. 자네가 소망하는 일들에 대해서 내가 자네에게 해줄 말을 끝마칠 때까지 묵묵히 들어주게나. 자네가 내게 반박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그 말을 경청할 테니 말이네." (448∼449쪽)

 

*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한 말로, 친구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만 아니라면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시공사판 『돈키호테』

 

 

「오, 내 친구 안셀모! 자네가 한 말이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네. 정말 그런 말을 자네가 했다고 생각할 수가 없군. 그러지 않았다면 그렇게 계속 지껄이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걸세. 자네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 긴 사설을 멈추게 했겠지. 내가 보기에 이건 아무래도 자네가 나를 모르거나 내가 자네를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네. 하지만 그건 아니잖은가. 나는 자네가 안셀모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네는 자네대로 내가 로타리오라는 것을 알고 있잖은가. 문제는 내가 자네를 평소의 안셀모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네 역시 내가 여느 때의 로타리오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네. 왜냐하면 자네가 한 말은 내 친구 그 안셀모의 말이 아니고, 자네가 부탁한 일은 자네가 알고 있는 그 로타리오에게 부탁할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니 말일세. 좋은 친구라면,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제단 밑으로까지 친구를 시험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되네.278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에 우정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세. 이교도조차 우정을 이렇게 느꼈으니, 기독교인이 인간적인 우정 때문에 신과의 우정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더 훌륭한 일이겠는가?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나 몰라라 한 채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할 정도가 되려면 일시적이고 가벼운 일이 아니라 친구의 명예와 목숨이 달린 일이어야 한다네. 그러니 말해 보게 안셀모, 내가 자네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자네가 요구한 것처럼 그렇게 혐오스러운 일을 해야 할 만큼 자네의 명예와 목숨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겐가? 분명 둘 다 아닐세. 오히려 내가 보건대, 자네는 내가 자네의 명예와 목숨을 빼앗고 내 것도 같이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네. 자네가 요구한 그 일로 내가 자네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그것은 곧 자네의 목숨을 빼앗는 일임이 분명한데, 명예를 잃어버린 인간은 죽은 자보다 못한 법이니 말일세. 또한 자네가 원하듯이 내가 자네를 엄청난 불행에 빠뜨리는 도구가 된다면 나 역시 불명예스럽게 남겨져 결국 죽은 사람과 같지 않겠는가? 친구 안셀모여, 욕망 때문에 자네가 저지르려는 일에 대해 내게 떠오른 생각들을 다 말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들어 주게. 자네가 내게 반박할 시간과 내가 그것을 들을 시간은 있을 테니 말일세.」(509∼510쪽)

 

278 플루타르코스Plutarkhos(50∼120)에 의하면 그리스 정치가인 페리클레스Pericles(B.C.495∼B.C.429)가 친구로부터 거짓 증언을 부탁받았을 때 이 말을 하여 거절했다고 한다.

 

 - 열린책들, 『돈키호테 1』

 

이쯤에서 나는 다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만나러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으로 서둘러 되돌아가야겠다. 마침 돈키호테는 이번 모험에서 '기쁨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진짜로 공작 부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편력 기사들의 꽃이자 정수이신 분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그리고 그들 모두, 아니 거의 대부분이 돈키호테와 공작 부부 위에다 병에 든 향수를 뿌렸다. 이 모든 것이 돈키호테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대접을 받은 그는 자신이 환상 속에서가 아니라 진짜 편력 기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전적으로 실감하고 믿게 되었다. 책에서 읽은 지난 세기의 편력 기사들이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의 모험은 아직도 나에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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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호 2016-05-1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 시공사꺼, 2004년판읽고있는데요~ 2편은 2015년판 2편으로 읽어도되나요???

oren 2016-05-11 11:30   좋아요 0 | URL
1편을 시공사판으로 읽으셨다고 해서 굳이 2편마저 시공사판으로 읽으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시공사판으로 2편을 읽는다고해도 별달리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저라면 역시 2편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안영옥 교수님 번역이 썩 훌륭하니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