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검정 고무줄에는

 

 

김영남

 

 

 

내복의 검정 고무줄을

잡아 당겨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고무줄에는 고무줄 이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이상의 무얼 끌어안은 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무엇을 묶어본 사람이면 또 알 겁니다

어머니란 늘어났다 줄더들었다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람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어머니일수록 그런 신축성을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고무줄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어머니란 리어카 바퀴처럼 둥근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둥근 등을 굴려 우리들을 큰 세상으로 실어낸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지상 모든 고무줄를 비교해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고무줄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어머니가 내복의 검정 고무줄 속에 앉아 계신다.

검정 고무줄 속의 어머니는 환히 웃으시며 새벽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굽은 등으로 삶의 리어카 바퀴를 끝없이 굴려가면서 한 줄 검정 고무줄로 삭아 가는 어머니.

지신이 지닌 모든 피와 땀과 뼈를 기꺼이 내주고 한 줄 검정 고무줄로 남은 어머니.

다음 생에도 또 다음 생에도 고무줄의 삶을 살아갈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고무줄인 아, 우리들의 어머니!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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