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불태우는 사람들

 

책을 불태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지우고 과거를 파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다.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서적 2만여 권이 불태워지는 동안 선전 부장이던 파울 요셉 괴벨스가 환성을 지르는 10만여 명의 군중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 여러분들이 과거로부터 내려온 이 왜설스런 것들을 불길로 집어던지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거야말로 전세계를 향해 낡은 정신은 죽었다고 선포하는 막강하고 상징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이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정신의 불사조가 일어날 것입니다."

 

당시 열두 살 소년으로 훗날 런던의 유대학을 위한 레오 백 연구소 소장이 된 한스 파우커도 그 현장을 지켜보았으며 화염 속으로 책을 집어던질 때는 엄숙함을 더하기 위해 이런저런 연설이 이어졌다고 그때를 회고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책들을 던지기 전에는 검열관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비난을 퍼부었다. "정신의 파괴적 분석에 기초를 둔 무의식적 충동이라는 허풍에 맞서서, 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작들을 기꺼이 불길에 맡기겠노라." 스타인벡, 마르크스, 졸라, 헤밍웨이, 아인슈타인, 프루스트, H.G. 웰스,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잭 런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포함한 수백 명의 저자들이 이와 비슷한 묘비명으로 경의를 받았다.(407∼408쪽)

 

 

피노체트의 판단

 

예를 들면 1981년에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사 정권은 칠레에서 『돈키호테』를 금지시켰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호소와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공격이 담겨 있다는 판단에서였다(피노체트의 판단은 꽤 정확했다).(412쪽)

 

 

독서가가 지닌 거대하고 다양한 힘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존재들

 

다른 사람들의 책 읽기를 금지하겠다고 나서는 권위주의적인 독서가들, 읽어도 좋은 책과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을 가리겠다는 광적인 독서가들, 쾌락을 위한 책 읽기는 거부하고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사실만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를 고집하는 금욕적인 독서가들, 이 모든 독서가들은 독서가가 지닌 거대하고 다양한 힘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검열관들은 불길이나 법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제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만 책들을 해석할 수 있다.(415∼416쪽)

 

 

교묘하게 종속시킴으로써

 

모든 독서가는 나름대로 책 읽기의 방법을 창조해 내는데,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독서가는 그 텍스트를 어떤 교의(敎義)나 전횡적인 법, 사사로운 이익, 노예 소유자의 권리나 전제군주의 권위 등에 교묘하게 종속시킴으로써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416∼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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