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마음에 새기는 이미지가 제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라베는 그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과거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현재보다 더 도움이 되지요. 하지만 우리가 한때 느꼈던 환희는 흐릿해져만 가고 결코 되돌아오지 않아요. 그 추억은 그런 일이 벌어졌던 그 당시에 유쾌했던 것만큼이나 괴로운 것이지요. 눈앞의 다른 쾌락적인 감각들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어떤 추억이라도 예전에 경험했던 기분을 되살려 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새기는 이미지가 제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그것들은 우리를 악용하고 속이려 드는 과거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다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남기게 되면 훗날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영원 같은 사건들 속으로, 여전히 살아 끜틀거리는 그 사건들을 헤집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세월이 흘러 글씨가 적힌 종잇장을 들게 되면 우리는 옛날과 똑같은 장소로, 우리들 자신이 한때 빠졌던 그 기분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루이스 라베가 볼 때 독자의 능력은 과거를 재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382쪽)

 

 

자신이 읽던 책의 수많은 조상들을 읽고 있었다

 

릴케는 아울러 자신이 읽던 책의 수많은 조상들을 읽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읽는 책들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한때 다른 독서가가 소유했었던 책을 손에 들고 있다는 즐거움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즉 책장 여백에 갈겨 쓴 단어 몇 개나 책 앞뒤 백지에 휘갈긴 사인, 책갈피에 꽂힌 나뭇잎, 사연이 담겼을 포도주 자국들이 내뱉는 속삭임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떠올리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책들이 수많은 다른 책들의 연속선상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비록 선조격인 그런 책들의 표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 책들의 저자 또한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지금 손에 잡고 있는 책에서는 그런 책들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이루고 있다.(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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