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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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신에게도 결여되어 있으니


사유 그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목적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사유는 그렇지 않다. 사실 바로 이 사유가 제작적 사유까지도 지배한다. 제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어떤 목적을 위해(heneka tou) 제작하며, 제작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단적인 목적이 아니니까. (그것은 어떤 것을 향한 것이며(pros ti) 또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다.) 단적으로 목적인 것은 행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to prakton)뿐이다. 잘 행위한다는 것(eupraxia)이 목적이며, 욕구는 이 목적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합리적 선택이란 욕구적 지성(orektikos nous)이거나 사유적 욕구(dianoētikē orexis)인 것이며, 인간이 바로 그러한 원리(
archē)이다.

 

그런데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어떤 것도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가령 그 누구도 일리온 도시가 함락된 사실을 합리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미 지나 버린 과거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에 대해서, 가능한 일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이며,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다음과 같이 말한 아가톤은 옳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미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만은 신에게도 결여되어 있으니.

 

지성적인 부분들 둘의 기능은 참이다. 그러니 각 부분이 그것에 따라 참을 가장 잘 인식하게 하는 품성상태, 바로 이것이 두 부분에 있어서의 탁월성이다.(205∼207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6권 제2장 「성격적 탁월성과 사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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