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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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 (wikimedia commons, 1504∼1570), 1563년경, 빌덴슈타인 미술관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주머니! 그대가 아무리 아는 게 많기로

영생하시는 신들의 뜻을 다 헤아리기느 어려울 것이오.

아무튼 내 아들한테 갑시다. 죽은 구혼자들과

그들을 죽인 사람을 내가 볼 수 있도록 말이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이층 방에서 내려가며 마음속으로 거듭

숙고해보았다. 떨어져 선 채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 머리와 손을 잡으며 입 맞추어야 할지.

그러나 그녀는 돌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뒷세우스의 맞은편 다른 벽쪽에 불빛을 받으며 앉았다.

한편 오뒷세우스는 눈을 내리깔고 높다란 기둥 옆에 앉아

착한 아내가 두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에게 무슨 말이든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얼떨떨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줄곧 두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볼 뿐, 여전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가 몸에 더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80∼95행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내 아들아! 나는 하도 얼떨떨해서 무슨 말을 할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얼굴을 마주 쳐다볼 수도 없구나.

하지만 이분이 진실로 오뒷세우스이시고

자기 집에 돌아오신 것이라면, 우리 두 사람은 더 확실히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증거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가

미소 지으며 지체 없이 텔레마코스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텔레마코스야! 네 어머니께 여기 홀에서 나를 시험하시게 해드려라.

이제 곧 더 잘 아시게 될 테니까. ······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104∼114행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이상한 분이여! 나는 잘난체하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크게 놀라지도 않아요. 노가 긴 배를 타고 그대가 이타케를

떠나실 때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요.

에우뤼클레이아!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新房)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이런 말로 그녀가 남편을 시험하자 오뒷세우스는

역정을 내며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데로 옮겼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신이 친히 오신다면 몰라도.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173∼185행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오뒷세우스! 내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다른 일에서도

인간들 중에서 가장 슬기로우시니까요. 우리에게 슬픔을 주신 것은

신들이세요. 우리가 함께 지내며 청춘을 즐기다가

노년의 문턱에 이르는 것을 신들께서 시기하셨던 거예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이렇게 환영하지 않았다고 화내거나 노여워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이 와서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않을까

내 가슴속 마음은 언제나 부들부들 떨었어요.

사악한 이득을 꾀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요.

제우스의 딸인 아르고스의 헬레네도 아카이오이족의

용맹스런 아들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도로 데려올 줄 알았다면, 낯선 남자와 사랑의 잠자리에서

동침하지 않았을 거예요. 확실히 어떤 신이 그런 수치스런 짓을

하도록 그녀를 부추기셨던 거예요. 그때까지 그녀는 결코

그런 비참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어요.

우리의 슬픔도 처음에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당신과 나 그리고 단 한 명의 하녀,

말하자면 내가 이리로 올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고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튼튼하게 지은 신방의 문을 지켜주었던

악토르의 딸 말고는 어떤 다른 인간도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잠자리라는 확실한 증거를 당신이 말씀하시니

마음씨 냉담한 나로서도 당신의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네요."

그녀는 이런 말로 그의 마음속에 더욱더 울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에 맞고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를 울며 끌어안았다. 마치 바람과 부푼 너울에 떠밀리던

잘 만든 배가 포세이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탓에 바다 위를

헤엄치던 자들에게 육지가 반가워 보일 때와 같이

-몇 사람만이 잿빛 바다에서 뭍으로 헤엄쳐 나오고

그들의 몸에서는 온통 짠 바닷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들은 재앙에서 벗어나 반가이 육지에 발을 올려놓는다-

꼭 그처럼 그녀에게는 남편이 반가웠다. 그녀는

그의 목에서 영영 자신의 흰 팔들을 떼려 하지 않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205∼240행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실컷 즐기고 나서 각자가 겪었던

일을 들려줌으로써 이야기로 서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었다.

여인들 중에서도 고귀한 페넬로페는 자기에게 구혼하며

소 떼와 힘센 작은 가축들을 죽이고 술통에서 포도주를

마구 퍼내던, 파멸을 가져다주는 구혼자들의 무리들을 보면서

자기가 홀에서 견뎌야 했던 일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제우스의 후손인 오뒷세우스는 자신이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온갖 고통과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듣고 좋아했고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그녀의 눈꺼풀 위로 잠이 내려앉지 않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300∼309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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