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둘째날, 랑탕계곡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오늘은 드디어 '체르코리'(4,984m)에 오르는 날이다.

당초 일정대로였다면 우리는 랑탕빌리지를 출발하여 캉진 곰파(3,870m)까지만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일찍 캉진 곰파까지 이동하게 되면 오후 시간이 통째로 남게 되지만, 그래도 고산 등반에 필수적인 '고소 적응'을 위해 '그저' 캉진 곰파 마을과 주변만 둘러보자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이드인 '텐디'의 얘기로는 '우리 일행의 진행 속도'라면 캉진 곰파에서 체르코리까지 4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으며, 내려오는 데에도 2시간 정도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랑탕빌리지에서 출발하여 체르코리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일정이 바뀌었던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단순 계산 상으로도 표고차만 1,654m(체르코리 4,984m - 랑탕 빌리지 3,330m)에 달하는 코스를 올라갔다가 다시 캉진 곰파로 내려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선택한 이유는 하산하는 길에 '코사인쿤드(4,380m)를 '보다 여유로운 일정'으로 오르기 위한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랑탕빌리지에서 출발하여 체르코리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정임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차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내심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자는 데 모두들 동의했다. 물론 체력에 자신없는 사람들은 캉진 곰파에 남기로 했기 때문에 모두가 '완강하게' 반대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체르코리 등정 일정은 무리였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우선 랑탕 빌리지에서 캉진 곰파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고소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이○○상무가 예상외로 너무 일찍 '퍼지고 말았다.' 맨먼저 10시쯤 캉진 곰파에 도착한 우리 일행들은 가이드인 '텐디'가 빨리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지만 맨 뒤에 홀로 뒤처진 이상무를 보살피느라 도무지 언제쯤 도착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자꾸만 지체되면서 결국 우리 일행은 보조가이드 1명과 포터 1명만 데리고 체르코리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체르코리까지는 무리일 것 같다고 판단한 4명은 캉진 곰파에 그냥 남아 있기로 하고, 나머지 6명이 사뭇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그렇지만 '고소적응'을 과감하게 생략한 댓가는 제법 가혹했다. 6명 가운데 3명은 4,300여 미터쯤 오른 이후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되어 결국 오후 1시를 전후해서 차례로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너미지 세 명은 금방이라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정상'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눈으로 뒤덮인 바위투성이 너덜지대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주위가 온통 바위 뿐인 너덜지대에 눈까지 뒤덮여 있어서 도무지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보조 가이드에게 '길'을 물어봤지만 체르코리는 처음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포터는 무거운 배낭(간단한 점심과 삼각대 등 카메라 장비를 담았다) 때문에 힘에 겨웠는지 먼저 내려가겠다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체르코리 정상을 오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쉴 틈도 없이 길을 재촉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위를 건너뛰기도 하고 눈 위를 잘못 디뎌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우리 셋은 그곳에서 체력을 너무 소모한 탓에 많이 지쳤다. 게다가 시간적인 여유도 별로 없었고 날씨조차 점점 빠르게 악화되는 듯해서 결국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대략 8부 능선에서 9부 능선까지 올라갔던 터여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더라도 우리가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에 과감하게 '하산'을 결정한 건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 조금 더 무리를 해서 기어이 정상을 밟았다고 하더라도 그 시각에는 이미 정상에서 좋은 경치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하산하는 길 역시 1,000m가 넘는 표고차의 가파른 산길을 서둘러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몹시도 지치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날 저녁에는 실제로 날씨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눈비가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몹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캉진 곰파의 숙소로 되돌아왔을 땐 주위가 제법 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체르코리에서 '고산병'에 제대로 걸렸는지 그날 저녁을 거의 먹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로 일찍 내 방으로 올라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침낭 속에 몸을 들이민 채 지퍼를 잔뜩 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더니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는 '오한'이 30분 이상 멈출 줄 몰랐다. 옷을 더 껴입고 핫팩까지 주물럭거려 보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가 병이 나겠다 싶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고 그후엔 나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히말라야의 5,000m에 가까운 봉우리를 너무 겁도 없이 무모하게 덤벼들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무사히 내려온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침식사를 마친 후까지도 '오늘 일정'에 대해 여전히 심각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



 - 보조가이드(맨 왼쪽)와 포터들도 괜히 덩달아 심각한 표정들.




 - 랑탕 빌리지에서 출발한 이후 문두(MUNDU, 3,410m)를 지나는 중.




 - 포터들은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도 끄떡없이 잘도 걷는다.




 - 갈 길은 멀고...... 목은 마르고......




 - 앉아서 쉬기 딱 좋은 곳이니 잠시 쉬었다 가야지...




 -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히말라야 트레킹은 '너무 즐거워'




 - 히말라야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훌쩍 날아보자 '야호~'




 - 우리 일행 네 분이 뒤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분들 모두 체르코리에는 미련이 없는 분들.




 - 랑탕계곡의 물줄기가 제법 줄어든 걸 보니 많이 올라오긴 올라온 듯.




 - 왼편 끝에 보이는 산이 체르코리(4,984m) 오른편으로는 강첸포(6,387m)와 팡젠도쿠(5,930m)




 - 캉진 곰파가 빤히 보이는 언덕, 바위에 올라서서 한 컷.




 - 캉진 곰파에 다 왔다. 가장 멀리 왼편으로 보이는 뾰족한 산이 강첸포(6,387m)




 - 왼편에 보이는 눈덮인 산이 우리가 올라가야 할 체르코리(4,984m)




 - 캉진 곰파에서 '티벳' 쪽으로 보이는 킴슝(6,745m)을 배경으로~




 - 체르코리를 오르기 위해 길을 가다 보면 넓은 강처럼 드넓게 펼쳐진 광경을 만나게 된다.




 - 체르코리에 도전하는 6인의 결사대.



 - 강물처럼 하얗게 빛나는 부분은 강물이 아니다.



 - 체르코리의 초반부 가파른 능선을 거의 다 올라왔다. (3부 능선쯤 되는 곳)




 - 능선 저 아래로 보이는 강처럼 생긴 곳을 거슬러 올라가면 랑시사 카르카(4,160m)까지 다녀올 수 있다.




 - 이 곳 고도는 대략 4,300m가 넘을 듯한데 가파른 길을 올라와서 그런지 아래쪽이 벌써 까마득하다.





 - 뒷편에 흰구름으로 덮인 산이 랑탕 히말에서는 가장 높은 랑탕 리룽(7,225m)
    벌써 고산병이 심하게 찾아온 이○○ 대표는 아예 바닥에 드러 누웠다. 
    이대표는 곧바로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하기 시작했으나 내려가면서도 무려 세번씩이나 쓰러져 잤다고 한다.




 - 체력엔 문제없는 장대장님. 랑탕 리룽을 배경으로~




 - 장대장님과 함께 끝까지 완주한 공이사



 - 나도 랑탕 리룽을 배경으로~




 - 고도 뿐만 아니라 시간도 늦은 오후로 흐르면서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 보조가이드와 포터도 다소 힘에 겨워하는 모습. 저 친구들도 '고소'에 어려움을 겪는 듯.




 - 구름이 좀처럼 말끔하게 걷히지 않지만 이만하면 킴슝(6,745m)을 보기에 충분한 듯




 - 씩씩하게 잘 걷기만 하던 '뻐덤'도 높은 고소가 힘겹기는 마찬가지인 듯.




 - 8부 능선 쯤 올라 잠시 쉬는 사이에 이미 정상을 밟고 하산길을 재촉하는 말레이지아 팀을 만났다.




 - 이 높은 고도(대략 4,500m 내외)에서도 야크는 살고 있다.




 - 포터 1명도 힘들다며 마저 하산하고, 이제는 보조가이드 한 명과 우리 일행 셋 밖에 남지 않았다.



 - 눈에 뒤덮인 너덜지대를 힘겹게 통과하는 중. 고도는 4,800m 내외,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25분



 - 길을 잃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을 악전고투끝에 통과하고 나니 거의 탈진할 지경이다.



 - 오후 4시 20분. 정상을 100여m 남겨둔 지점. 더 이상 오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하산을 결정하고 한 컷.



 - 끝까지 함께 한 공이사도 한 컷.



 - 하산을 재촉하는 장대장님. 마치 채석장과도 같은 너덜지대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 많이 내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많이 남았고 시간은 벌써 오후 5시 31분. 날씨가 급변하고 있다.



 - 온통 짙은 구름에 휩싸인 체르코리. 이날 밤에는 요란한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눈비가 쏟아졌다.



 * * *


 - 곰파를 다녀오신 분들의 사진 1




 - 곰파를 다녀오신 분들의 사진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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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 캉진 곰파에서 라마호텔로
    from Value Investing 2013-06-03 14:16 
    아침에 잠에서 깨어보니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왕체력을 자랑하는 장대장님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새벽 6시에 '랑시사카르카'를 향해 출발했다는 소식이고(어쨌든 오늘은 각자 원하는 대로 이동하여 저녁에 '라마호텔'에서 모이기로 했다.), 어제 체르코리 대신 곰파(티벳 불교 사원)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벌써 '라마호텔'을 향해 출발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와 공이사, 그리고 상준이 셋은 '캉진 곰파'에서 조금 더 머물다가
  2. 푸니쿨라의 추억
    from Value Investing 2017-03-02 00:21 
    높은 곳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을 오르기엔 다리도 몹시 아프고 숨도 벅찰 테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높은 곳에 오르기가 아주 쉬워졌다. 바로 푸니쿨라(등산전차)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푸니쿨라를 몇 번씩이나 타봤으면서도 그걸 나폴리 민요인 '푸니쿨리 푸니쿨라'와 연결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저 그 노래를 '귀에 익숙한 멜로디'로만 여기고, 그 노래에 얽힌
  3. 푸니쿨라의 추억
    from Value Investing 2017-03-02 11:45 
    "여기에서는 전망은 트이고, 정신은 고양된다." ㅡ 그러나 높은 곳에 있고 전망이 트여 있는데도 아래를 내려다보는 반대 부류의 인간이 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 *높은 곳에 오르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을 오르기엔 다리도 몹시 아프고 숨도 벅찰 테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높은 곳에 오르기가 아주 쉬워졌다. 바로 푸니쿨라(등산전차)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2013-06-0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 사진이 아주 좋습니다. 한 컷 한 컷 상당히 공들여 찍은 것 같습니다.
신들이 산다는 히말라야에서 사진 찍는다는 것이 매우 힘들것 같은데 정성이 대단합니다.
덕분에 생생한 사진 잘봤습니다.....

oren 2013-06-03 14:5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체르코리(4,984m) 올라갈 때 함께 가져간 삼각대와 망원렌즈(70-200mm)는 (숨이 가쁘고 너무 힘이 들어서) 꺼내볼 엄두도 못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