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
- 아이작 뉴턴

다윈의 진화론과 더불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였던 뉴턴 경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진리의 대양은 너무나 넓고 깊어서, 자신은 그저 해변의 조개껍질을 줍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의 말년에 위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다윈의《종의 기원》이 생명과 인류의 기원에 관한 비밀을 진리의 대양속에서 찾아낸 사실은, 마치 우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회'에 비유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어서, 생물의 진화에 관한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위니즘의 탄생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의 수많은 논란들이 당연히 존재해 왔겠지만, 다윈주의의 신봉자의 한 사람인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만큼 또다시 유전과 진화에 관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책도 흔치 않은 듯 하다.

저자 스스로가 '만약 다윈이 이 책을 읽는다면 거기에서 그 자신의 본래 이론을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 책은 분명히 다위니즘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주장을 담는 책이며, 197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만 해도 혁명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까지 비난받아 왔지만, 어느새 도킨스의 주장은 '무엇때문에 야단법석을 떨었는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천천히 정설로 자리잡아 왔다고 인정받는 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유전자'의 눈으로 본 '다윈주의의 관점'을 담고 있는 책이다. 즉, 진화는 유전자의 역사이며, 40억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난 이래, 이 불멸의 코일인 자기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되었으며, 그것들은 생존 기계에 해당하는 생물의 개체 속에서 안전하게 들어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며, 이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과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심지어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이 책은 마치 공상 과학 소설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사실 소설보다 더 기이한 정도로 진실에 대해 느끼고 있는 생각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한, 재미있고 멋지고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려고 한 책이다. 이 책은 DNA에 관해서 주로 다루고 있지만, 무슨 복잡한 DNA의 이중나선구조니 감수분열이니 하는 생물학이나 유전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자세히 알 필요까지도 없으며,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점은 저자가 미리 세 부류의 가상 독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무엇보다도 첫번째로 생물학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을 위한 배려를 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저자는 과학을 대중화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책의 주제가 가치있는 만큼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생물학 자체가 하나의 추리 소설이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생물학은 마땅히 추리 소설처럼 흥미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물행동학자의 전문적 지식과 아울러 다양한 인접분야와 고전문학, 시 등의 일반 교양 그리고 수많은 사회 현상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또 한가지 덧붙일 점은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에 관한 얘기는 결국 인류라는 종의 한 개체인 당신과 '나' 자신에 관한 얘기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전을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이다!", 혹은 "유전자가 그 자신의 복제품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은 자유로운 상상의 소유자라면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혁명적 발상'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지만, 저자는 이런 상상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명백한 '과학적 사실'임을 수많은 과학적 근거와 논증들을 통해 자세히 밝혀내고 있다. 물론, 다위니즘의 탄생 이래 존재해 왔던 수많은 '통설'이나 '보편적인 견해'들에 대해서도 '유전자의 눈으로 본 다윈주의'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에서는 저자의 무릎 앞에 굴복시키지 못할 주장은 별로 없게 된다. 저자가 잘못된 주장의 대표격으로 본 것은 '그룹 선택설'이며, 그것은 '개체 선택설'에서 더 나아가 '유전자 선택설'로 마땅히 바뀌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로서 제시되는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부분들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 유전자의 맹목적성, 이기적 목적을 둔 이타적 행동, 노화이론, 인간의 수명, 유전자의 손익계산, 부모와 자식의 친자관계, 가족계획, 번식 허가증, 암수의 다툼, 성의 전략, 이기적인 배우자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소주제들에 등장하는 동식물들 또한 무수히 많은데, 특히 재미있는 부류들은 교미시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 의태를 하는 나비, 사회성 곤충인 개미와 벌, 바다표범과 하렘, 탁란성 조류인 뻐꾸기 등이며, 행동 특성으로 분류한 매파와 비둘기파, 보복파와 허풍파, 선심파와 사기꾼파 그리고 원한파에 관한 이야기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바탕으로 하여 풀어나가는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12장에 나오는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Nice Guys Finish First)'에서 도출하는 결론은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도출해 낸 결론은 '배신', '협력', '관용' 등의 행동 가운데 최적의 전략은 '마음씨 좋은' 전략이며, 이는 소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에서의 결과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얘기는 '영합 게임(zero sum game)'과 '비영합 게임(nonzero sum game)'으로서도 보충 설명되는데,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축구 게임의 사례는 최근에 우리가 봤던 아테네 올림픽 축구 경기 후반전에서의 '한국과 말리와의 비기기 전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12장에서의 결론은 결국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 법칙에서 이탈하지 않고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도 협력과 상호 부조가 어떻게 번창하는지'에 관한 얘기이다. 유전자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 때때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설정하기도 하고, '영합 게임'에 맞딱뜨리게도 하겠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되면서까지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이 될 수 있다'는 자비심 깊은 사상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임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도 이 책의 말미에 덧붙인다. 즉 '유전자의 활동 반경이 생물체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개체의 밖으로까지 넓힌다'고 주장하면서 '확장된 표현형의 세계에서는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유전자에게 이익을 주는가를 묻지 말고 그 행동이 이익을 주는 것은 누구의 유전자인가를 묻기 바란다'고 독자들을 일깨운다.

또한 생물체는 소위 '병목형'의 생활사에 참가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코끼리 한 마리의 몸에 얼마나 많은 세포가 있는가에 상관없이 코끼리는 그 생애를 단일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했으며, 이 수정란이 좁은 병목이며, 그리고 코끼리로 성장하여 얼마나 많은 세포가 얼마나 많은 특수화된 세포로 이루어져 성체 코끼리가 달릴 수 있게 상세히 협조하든지 간에 이들 모든 세포의 노력은 오직 단일 세포(정자 또는 알)의 생산이라는 최종 목표에 수렴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인 우리 자신의 몸 속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로의 같은 출구-알이나 정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개체다움(oranismy)'의 느낌이 생겨나는 것이며 '개체'라는 이름에 걸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참으로 혁명적인 발상들이 끝이 없지만, 이 책에 푹 빠져 읽은 독자라면 애써서 저자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반박하기 보다는 '당연히' 그러리라고 수긍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자연 선택을 믿는 다위니즘의 신봉자 답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실제적으로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상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 이 지구에서는 그렇게도 낯익은 그 개체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복제자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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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날조된 신'에 관한 통렬한 공격을 담은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3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잠시나마 '망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도킨스라면 결국 언젠가는 '신의 부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결국 그는 이 책을 쓰게 되면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가 나서든지 결국 '신은 허구다'라는 주장을 '과학'의 힘을 빌어 당차게 도전하기 마련이었을 것이고, 사실 그런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과학이 인간을 미신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