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千一夜話)와 네버 엔딩 스토리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굿모닝북스 투자의 고전 5
찰스 P. 킨들버거.로버트 Z.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 굿모닝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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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킨들버거(1910~2003)는 국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MIT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경력만 33년(1948∼1981)에 이르며, 2003년에 타계할 때까지도 MIT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있었다.

그는 경제사에서 유별나게 독특한 지위를 부여받은 '대공황 시절'에는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뉴욕연방준비은행, 국제결제은행(BIS)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마샬 플랜을 입안하기도 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생애 동안 무수히 경험했던 숱한 '금융위기'만으로도 부족해서 '과거의 기록들'을 세심하게 두루 살피고,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금융위기들까지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놓은 게 1978년이었다. 그 후 3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금융위기'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은 금융위기가 더해질 때마다 홍수처럼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금융위기'라는 주제를 다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은 시기적으로도 다른  저작들보다 훨씬 앞선 1978년에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도 '금융위기에 대한 고전'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만큼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이후 '끈질기게 피어오르는 질긴 다년생화'인 금융위기는 더욱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위기의 강도도 훨씬 더 거세진 듯하다. 1987년 10월 19일에 터진 '블랙먼데이'는 결국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의 제2판(1989년)을 쓰게 만들었고, 1990년부터 붕괴가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와 1994년에 전개된 멕시코 경제위기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제3판(1996년)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 후 우리에게는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혹독한 경제위기로 다가왔던 1997년∼1998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LTCM의 파산을 불러온 1998년의 러시아 금융대란이 발생했고, 금융위기에 대한 광범위한 국제적 전염에 대한 새로운 양상들은 결국 제4판(2000년)을 채우게 된다. 그 후 킨들버거가 작고하고 난 뒤 2005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국제경제금융학을 가르치고 있는 공저자(알리버)가 제4판 이후에 새롭게 추가된 금융위기에 관한 내용들을 담은 책(제5판)의 번역본이 이번에 뒤늦게 국내에 처음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이다.

투기적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많은 책들에서도 여러차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책 속에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과 연관이 깊은 책들로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대중의 미망과 광기, 금융투기의 역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싶은데, 이 책의 특징이라면 다른 책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우리만큼 '학문적이고 깊이있고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지닌 한가지 아이러니한 측면은 '인간의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기본적인 가정으로 삼아 이론을 전개하는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투기적 광기와 패닉,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경제위기를 주제로 책을 썼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경제학의 경계선'을 벗어난 '일탈과 일화와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오락거리의 수준으로 다룬 책이어서 경제학적 지식과 교훈의 내용으로 삼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대로 '경제학은 역사가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도 공감하게 되고, 전통적으로 지나치게 '이론과 담론'을 추구해 왔던 경제학 보다는 '경제학에서의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경제학'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중요해지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역사의 증언대에 불러 달라고 고함치는 듯한' 흥미로운 표본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집하고 점검하고 분류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저자의 오랜 수련과 탁월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런 작업에서 유형과 규칙성,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솜씨가 놀랍다. 난해하고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비합리적 사태들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와 제도의 상호 작용들에 대해 저자의 혜안을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닥쳐올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금융위기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미리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국제적 금융위기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도 깊이있는 논의와 통찰을 바탕으로 쓴 다소 어려운 내용들은 국제금융에 대해 사전지식이 부족한 비전공자들에게는 이해하기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문학적 경제사가(經濟史家)'로 불릴만큼 문장 표현력이 남다르게 뛰어난 경제사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여주는 '거대한 중량의 지식을 경쾌하게 날라주는' 문학적이고도 우아한 풍자와 단아한 문장 전개 솜씨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금융 위기의 전개과정에 일련의 규칙이 있음을 밝혀낸다. 국제적 유동성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이에 따른 자산가격의 상승과 풍요감의 만연,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신용의 팽창 등이 '화염에 기름을 붓는' 투기적 광기의 전개 과정이다. 자산가격의 상승에 따른 경제 호황과 신용 팽창은 필연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자금 흐름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결국 패닉과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제적인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은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 대한 역할은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과 국제적인 공조(바젤협약을 통해 구축된 통화스왑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저자가 판단하기에는) 국제적 금융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만한 능력을 아직까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60여년 전에 설립된 IMF가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역할을 떠맡아 왔는데, 저자의 지적대로 날로 커져가는 '국제적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지금 현재 수준의 IMF의 재원으로는 궁극적 대여자로서의 역할을 떠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우려는 이미 2010년에 불거진 유럽의 금융위기에 대한 IMF의 무기력한 대응에서 극명하게 현실화된 바 있다.

저자가 미래를 내다보며 또 한가지 심각하게 우려한 부분은 여태까지(저자가 살아있던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부각된 적이 별로 없었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되었을 때이다. 이 점에 대한 저자의 우려 역시 이미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금융위기로 닥친 지 오래이다. G20 정상회담의 핵심적인 의제가 바로 '미국달러화 가치의 평가절하 문제'이며 2010년에 이어 2011년 회의에서도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부의 증가, 통신의 가속화 및 저렴화,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금융 시스템의 진화 때문에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광기와 패닉의 규모와 속도 또한 그에 맞물려서 커지고 빨라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의 말미에서 '앞으로 발생할 금융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예고했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 책의 13장의 제목으로 쓴 '사상최대의 혼란기와 역사의 교훈'이라는 표현은 2008년에 발생한 '사상 최대의 금융위기' 때문에 '너무 일찍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됐다는 점에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제5판까지 나온 이 책이 언제 또 '새롭게 추가된 금융위기'를 포함하는 개정판으로 다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우리는 새롭게 다가올 금융위기 때문에 또다시 곤경에서 헤어나오기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괜히 '예방접종'을 맞은 듯한 일말의 안도감은 맛볼 수 있다는 느낌도 든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엘슨 MIT 교수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지 않는다면 5년 안에 후회의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고 말한 게 엄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보다 더 절실한 건 '앞으로도 또다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금융위기'에서는 이전의 금융위기때 보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다.

그런 측면에서라도 저자가 애써 발굴하고 정리해 놓은 방대한 내용들 가운데 특히 '밑줄긋기'한 부분들을 따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제1장 ∼ 제4장
제5장 ∼ 제8장
제9장
제10장 ∼ 제1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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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장 ∼ 제4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6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5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
  2. 제5장 ∼ 제8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7 
    과도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용어들 164풍요감에 들뜬 시기가 끝나고, 고전파 저술가들이 급반전과 신용경색(즉, 붕괴와 패닉)이라고 불렀던 사태가 시작되기까지의 과도 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다른 용어들은 불안, 걱정, 긴장, 절박, 압박, 불확실, 불길한 상황, 취약성이다. 보다 다채로운 표현으로는 "끔찍한 시장의 추락" 같은 것도 있고, "천둥이 칠 듯한 날씨" "폭풍 전야의 숨막힐 듯한 답답함이 다시 느껴진다"는 표현 같이 날씨에 비유한 것들도
  3. 제9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7 
    축축한 숲속 270부패 발생 건수는 신용 공급과 아주 유사하게 경기순환의 파동이 올라가면 함께 증가한다. 경기가 후퇴하면 대여자들은 개별 차입자들이 채무 상태와 자신들의 신용 노출에 대해 보다 신중해지므로, 곧이어 기업의 성장에 연료를 부어 주던 대출이 감소한다.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 오른다.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 272 아더 앤더슨 같은 회계법인들은 기업체들이 보고할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수치의 게
  4. 제10장 ∼ 제13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8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332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이 그드르이 과도함에 대한 대가로 치르게 되는 고통을 즐기는 것-또는 "파괴의 기쁨(schadenfreude)"-이다; 어느 정도 청교도적인 이 시각은 지옥의 불을 지나치게 탐욕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환영한다. 다른 요소는 패닉을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하는 폭풍우로 본다. "패
  5. 금융투기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미망을 살펴볼 수 있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8 
    이 책의 원제목은 Devil Take The Hindmost(동작 빠른 놈이 장땡)이다. 결국 악마는 제일 뒤쪽의(Hindmost) 끝자락을 놓치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투기'에 대한 사례들을 두루 분석하면서 '투기적 광기'가 얼마만큼 달아 오를 수 있는지, 그리고 투기의 결과는 언제나 똑같이 '버블 붕괴'로 이어지 뿐이라는 사실을 교훈적으로 들려준다.이 책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은 튤립투기(1630
 
 
사마천 2011-03-0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책이네요. 좀 보다가 끝까지 완결 짓지 못했는데.. 오렌님 덕분에 다시 일독해야겠습니다.

oren 2011-03-03 14:54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년 전에 사두고 '나중에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껴두었던 책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훓어봤을 때 '어느 정도는 익숙한 내용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좋겠다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말까지 한국증시로 급격하게 유입되는 '외국자본의 흐름'과 갑자기 풍요감이 만연하는 듯한 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상승 싸이클이 '미국으로부터 흘러나온 자본 흐름이 야기하는 투기적 광기'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 싶은 예감 때문에 이 책을 급히 읽게 되었답니다. 올해들어 갑자기 불거진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욕구 때문에 증시가 '딸꾹질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싶기도 한데, 앞으로의 증시흐름을 내다보는 데에도 충분히 유익한 내용들을 이 책 속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의 증가, 통신의 가속화 및 저렴화,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금융 시스템의 진화 때문에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광기와 패닉의 규모와 속도 또한 그에 맞물려서 커지고 빨라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는 말씀 공감합니다.
진짜 이런 책은 읽어봐야 하는데, 제 게으름 탓이지요.

일단 구매라도 해야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셔요, 오렌님.

oren 2011-03-04 12:48   좋아요 0 | URL
미래에 닥칠 금융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읽을 필요가 있겠지만, 호황기에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 *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本文 中에서)

사마천 2011-04-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다시 읽어봐도 정말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선보이는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

oren 2011-05-03 16:2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책도 자주 그리고 많이 읽고 싶고, 글도 자주 그리고 잘 쓰고 싶은데 그게 그리 쉽지 않네요. ㅎㅎ
사마천님께서 늘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iximalism 2017-11-0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를 사서 읽다가 너무 어려워,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해보려 합니다.
올려주신 글 덕분에 <이상과열>, <붐 앤 버블>이란 책도 알게 되어 구매하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